◈에7장, 자기 생명을 민족의 생명과 동일시한 에스더 ☞출처, 정리
◑서론 및 도입 ☞ 에스더 설교모음
서론으로, 이제까지 에스더서를 공부해 오면서
세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1. 첫 번째,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계속 물밑에서 일하십니다.
에스더서는 야웨, 엘로힘, 아도나이 같은 하나님의 호칭이 일절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이 아무 역사를 안 하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본문 에7장에도
마치 모든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게, 하나님께서 이 사건들 가운데 개입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모든 게 우연이 벌어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배후에서 기막힌 타이밍으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앞서 6장에서도 그 기막힌 타이밍을 살펴보았죠. 주1)
이게 이제 왕이 잠시 자리를 떠났는데
그때 때마침 하만이 에스더의 의자 위에 올라가 가지고 *sunbed 같은 긴 의자임
막 이렇게 구걸하고 있는 장면,
근데 딱 그 타이밍에 왕이 들어와 가지고 진노하는 장면!
이 모든 절체 절명의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세팅하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여기 지금 적그리스도의 환란의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에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내가 기도 열심히 하고, 금식도 하고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 일하여 주십시오'
기도해도 아무 응답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사람이 만나는 일들, 사람이 헤어지는 일들,
뭐 왕궁 후원에 앉아 있는 일들,
이 모든 일들을 세팅하시고 역사하신다.. 하는 겁니다.
이 믿음이 있으셔야 돼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우리의 삶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근데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일하시더라는 거죠.
이걸 '주님께 맡긴다'라고 표현하죠.
욥이 맡기는 일을 제일 잘하죠.
욥은, 자기의 삶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는 사람이었어요.
자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심지어 자녀가 죽음 앞에 있다 할지라도
아브라함 보십시오. 자녀를 죽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믿음으로
칼을 들어 정말 이삭의 목 가까이까지 칼이 갑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너무 놀라서 '멈춰라 그만해라' 이렇게 하시죠.
신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셔야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이것이 에스더서를 볼 때, 가장 먼저 봐야 될 인사이트 이에요.
에스더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엘로힘, 아도나이, 야웨 라는 단어가 일절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름조차 나타나지 않지만,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에스더서는 부림절에 관련된 얘기인데,
적그리스도의 때를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이런 절기가 두 가지 있는데, 부림절과 수전절(하누카) 때입니다.
수전절(하누카)는, 신구약 중간기 때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핍박하던 때죠.
그가 불결한 돼지 피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고,
이런 적그리스도의 모형이 수전절에서 나타났고,
여기에서는 하만이라는 적 그리스도의 모형이 나타나는 겁니다.
*수전절 : 수전절은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유대인들이 우상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정결케 한 역사를 기념해
11~12월 (기슬르월) 25일부터 8일간 지키는 절기.
수전절은 부림절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유대인의 민족 절기.
그래서 이 두 절기는, 적그리스도의 때에 어떻게 성도들이 이겨야 될까?
어떻게 행해야 할까를 정확하게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오늘 이 하만의 본문을 보면서도
우리가 장차 이러한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를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걸 보지 못하면, 에스더서의 중요한 한 부분을 못 보는 겁니다.
▲3. 한 가지 더 보태면, 배경이 1차 포로기과 2차 포로기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1차 포로기에 유대로 돌아가야 될 백성들을 흔드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입니다. 주2)
언약 백성들이 기회를 주셨을 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돌아가지 않을 때, 하나님이 흔드시는 일이 '에스더서, 부림절 사건'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마땅히 시키시는 일들이 있는데
그 일을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마구 흔드신다는 겁니다. 고난을 당케 하십니다.
하나님이 흔드시면 간이 철렁해요. 죽을 뻔하는 일이 생깁니다.
자기와 아내, 아이들 다 죽을 뻔했어요. 얼마나 가슴 철렁할 만한 일이에요?
그래서 어느 때든지, 한국교회가 만약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흔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아파요. 정말 아픕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사참배. 1938년 9월 9일에 가결되었죠.
(*1938년 9월 9일부터 15일까지 평양서문밖교회에서 조선과 만주 27개 노회의
총대 193명, 목사 86명, 장로 85명, 선교사 22명이 모여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 중)
앞서 감리교, 성공회, 가톨릭 전부 다 신사참배 다 가결했고,
마지막 남아있는 교단이 장로교였어요.
1938년까지 버티고 버티고 버텼던 교단이 장로교였다고요. (1930년경 부터 강요 시작)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일성이 공상당을 창당한 날이 9월 9일인데, *1948년
이게 10년 전, 신사참배를 가결한 날과 동일한 날이라서,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보죠.
그리고 이제 한경직 목사님이나 이런 분들이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회개했죠.
'제가 너무 두려워서 그 신사참배 가결하는데 자기도 있었다'고 고백하고
'제가 그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하며 공식적으로 회개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8번, 9번의 공식적인 신사참배회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건은 용서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언약 백성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흔드시는 일이 있을 겁니다.
그때는 우리 자녀가 상하든지, 우리 아비들이 상하든지,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다가올 일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사 같은 우상은 사라졌지만, 이념의 우상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동성연애, 보편주의, 무종교주의(무신론).. 같은 이념들입니다.
이런 이념의 우상화, 우상숭배를.. 교회는 깨어 있어서, 그 순수성을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본론1. 자신과 민족을 동일시한 에스더
오늘 에스더 7장에 보면요. 드디어 마지막 잔치가 벌어집니다.
에스더가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나라의 절반이라도 내가 너에게 주겠노라' 하고 계속 얘기를 하는데도
나중에요, 내일요.. 하면서 자꾸 애를 태우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제 결전의 날이 왔습니다.
3절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원어로 하면
'나의 생명과 내 민족의 생명을 돌려 주옵소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될 게 뭐냐면
자기 자신과 민족을 동일선상에 놓고,
왕이 나를 사랑하니, 내 민족도 사랑할 것이라는 그 확신에
나와 내 민족의 생명을 돌려주십시오 하고 간청하고 있는 겁니다.
이걸 <동일시 기도>라고 해요.
자기와 민족을 동일선상에 놓고
내 생명이 지금 내 민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라고 연결시켜 놓고 구하는 겁니다.
이러한 기도는 모세가 이렇게 기도했고요.
다니엘도,
사도 바울도
자기 민족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기도했죠.
자기 목숨과 민족의 운명을 동일시한 것입니다.
이 '동일시 기도'는 성경에 나타나는 굉장히 파워풀한 기도에요.
▲여러분 만약 한국에 전쟁이 나면, 우리가 도망가야 됩니까?
외국으로 피해 가야 돼요? 아니죠.
외국 나가기 전에 생각해야 되는 겁니다.
나와 이 민족이 지금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 백성이 그 자리에 남아서
지금 이 민족의 생명과 내 생명이 연결되어 있으니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겁니다. 어디 가야 될 게 아니고요.
근데 뉴스에 보면, 어떤 분은 전쟁 난다 해가지고
추종하는 성도들 400~500명이 그 분을 따라, 남태평양 어디로 피난갔습니다.
물론 전쟁이 안 났고, 그분들은 우습게 되었죠.
근데 성경적 사례들을 살펴보면요.
자기의 민족의 어려움을 두고, 목숨을 같이 해서 기도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자기 목숨과 민족의 운명을 동일선상에 두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을 이루는 기도의 거의 대부분은
특별히 민족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할 때는
동일시해서 기도하는 것이 굉장히 파워풀합니다.
과거에 포항에서 지진이 났는데,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우리가 포항 땅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하는 것과,
완전히 지진으로 폐허가 된 그 자리에 들어가서
거기에 일정 기간 머물면서 하는 기도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이걸 '동일시 기도'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우리 이렇게 기도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만약에 어떤 열방의 어떤 일이 일어났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로하여금 거기에 가길 원하시고
그 자리에서 그 백성들과 함께 그 땅을 위해서 부르짖게 하시는 때가 있다니까요.
동일시 되어서 기도하는 겁니다. 그 기도가 너무너무 파워풀해요.
교회가 이런 일들을 해야 됩니다.
▲에스더는 그냥 왕궁에 앉아가지고, 주는 밥 먹고, 멋진 실크옷 입고 다니면 좋잖아요.
그런데 왜 자기와 민족을 동일시해서 이렇게 간구합니까?
이렇게 해야 될 때가 있다니까요.
동일시 기도는 정말로 강력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포인트를 알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이러한 중보자들이 일어나야 돼요.
온 열방을 향해서 동일시 하면서 기도하는 중보자들이 일어나면요,
하나님의 역사들이 어마어마하게 일어나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역사들이 막 터져 올라올 것입니다.
'나의 생명, 내 민족의 생명을, 왕이여 제게 돌려주십시오!'
하고 동일시에서 간구하는 거예요.
◑본론2. '왕후'의 사명을 자각한 에스더
7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왕후'라는 단어가 총 7번 등장합니다. (1, 2, 3, 5, 6, 7, 8절)
그냥 에스더가 아니고 '왕후 에스더'가.. '왕후 에스더'가..
이걸 7번씩 계속해서 언급해요.
에스더가 전에는, 자기가 왕후의 위를 왜 얻었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왕후로서 무슨 일을 해야 될지도 정확히 모르고..
그저 그렇게 지내고 있었죠.
그런데 7장에 연거푸 '왕후 에스더'가 나오는 것은,
지금 여기서 에스더의 말과 행동은 모두
왕후로서의 자기의 정확한 일과 자기의 정확한 사명을
자기가 알고 있고, 또한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어떤 일에 임명을 받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목사죠.
그런데 목사 안수를 받아도, 그냥 철없이 다니고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특정한 시간이 딱 되어서
내가 '목사'라는 직임으로 어떤 일을 해야 될지 정확하게 알게 되는 날이 옵니다.
자의식이 깨어난다고 할까요?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게 이 때를 위하여, 나를 목사로 부르셨다'는 사명감이
딱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행동거지도 달라지게 되죠.
하나님 앞에서, 또한 이끌어갈 양떼들 앞에서, 사명자-목사로서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옆에 있는 사람들이 막 '목사님, 목사님' 이렇게 불러줘서
제가 목사가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 '너는 주의 종이다!' 하고 딱 인치실 때가 있다고요.
에스더도 왕후로서, 정확하게 자기의 일을 알았습니다.
누가 인정하던, 안 하던.. 자기가 왕후로서 감당해야 될 사명을 깨달았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이, 에스더처럼, 하나님께 받은 각자의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불러줘서, 내가 직분자, 임직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이 사명과 책임을 분명히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 자리에 오른 것은, 이 때를 위함이 아니니이까!' 4:14참조
◑3. 하만의 트릭과, 에스더의 간파
4절에 보면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라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하니'
앞서 5장에서,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의 교활한 계획을 승인, 윤허한 이유는
바로 1만 달란트 국고 수입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4장, '결국은 돈 문제였다' 참조 https://rfcdrfcd.tistory.com/15981314
지금 왕은, 위 문맥을 가만히 보면, 어떤 민족이 죽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왕은 그냥 '한 민족이 팔린다' 정도로 이해하고 있어요.
4절의 에스더의 말을 보면, 그렇습니다. *위 4절, 밑줄
일단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본문을 자세히 검토해 보십시오.
어디에서 이런 오류 내지는 어떤 이렇게 꼬였을까 살펴보면,
여기 '진멸함' 이라는 단어가 아바드 인데 אבד
아바드가 알레프 א 로 시작하죠.
근데 이게 아인으로 시작하면, 발음을 똑같이 아바드거든요.
'아인 ע'으로 시작해서 아바드는 '종'이라는 뜻입니다. עבד
그래서 진멸함 과 종은 발음은 똑같이 아바드죠.
철자는 다르죠.
3:9절에 보면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진멸하다가 아바드 로 되어 있습니다. אבד perish
그러니 조서가 어떻게 꾸져 있느냐면
그래서 왕한테는 '종 삼으십시오' 라고 표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기록할 때에는 '진멸하라'는 조서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까 알렙을 아인으로 바꿨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만이 장난을 친 겁니다.
하만이 왕에게는 '종을 삼으십시오' 해놓고, 3:9
서기관이 적을 때는 '진멸하십시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발음이 똑같아서요.
이게 말이 되는게,
1) 지금 왕은 '진멸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안히 벙벙해 하는 상황입니다.
2) 에스더가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라면 עבד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4
라고 말하고 있죠.
에스더는 하만의 '말장난'을 간파한 것입니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하니'
이 구절은, 성경마다 번역이 다릅니다. 주3)
▲진상을 파악하게 된 아하수에로
5절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말하여 이르되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왕이 말하여 이르되 (아마르 하멜렉...아마르)'
히브리 원문대로 한다면 '왕이 말하고 말하였다'입니다. 같은 말 두 번 반복은 강조법이죠.
따라서 본 문구는 아하수에로 왕이 극도로 불쾌하며 흥분한 상태에서
다음의 이어지는 문구의 말을 하였음을 시사합니다.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냐?' 하는 거에요.
아예 모르고 있다가, 방금 깨닫게 되었다는 겁니다.
아니 자기가 도장 찍어라고 내어줘 놓고는.. 모르는 겁니다.
하만이 말장난을 쳤기 때문에, 왕이 까마득하게 모르는 거죠.
하만이 '이 민족을 아바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종으로 삼으십시오
왕이 '아바드해라' : 종으로 삼아라
그리고 조서에는 '아바드', 즉 멸절하라로 쓴 거죠.
'이런 일을 감히 심중에 품은 자는 누구냐? 그가 어디 있느냐?'
왕이 이제야 그 궤계를 깨달은 겁니다. 자기가 우롱당한 거죠.
화낼 만하죠. 화 낼만 합니다.
에스더가 얘기하죠. '바로 하만입니다!'
6 '에스더가 이르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하니'
▲우연의 일치로 더욱 꼬이는 하만
7 '왕이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니라'
7b '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심한 줄 앎이더라'
하만이 자기 궤계가 탄로난 게, 순간 당황했습니다.
에스더가 그걸 다 꿰고 있었고, 그걸 왕에게 알게 했거든요.
그러니 이제 자기가 살 길은, 에스더에게 간청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하만은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잠시 당시 연회장 모습을 상상하자면,
당시 페르시아의 왕이나 귀족들은, 해변의 선베드 같은 긴 의자에 이렇게 앉았습니다.
중동 문화가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앉는 문화인데,
긴 의자 위에 그렇게 에스더가 비스듬히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을 거예요.
하만이 그 의자에 '엎드려져 있었다' 이렇게 나오거든요.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8
아마 긴 의자 위에, 에스더의 발 쪽으로 살려달라고 엎드렸겠죠.
문제는 에스더의 걸상 위에 자기 머리, 혹은 자기 상체를 엎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문화는, 왕비 근처로 아예 가 서도 안 되는 문화였죠.
왕의 여자를 아주 엄하게 보호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걸 하만도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지만,
에스더의 발을 붙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눈에는, 그런 자세조차 고깝게 보인 것이죠.
8 '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니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하만에게 악재의 연속이었는데, 자기가 안 한 것까지 다 뒤집어 쓰게 되었는데,
'우연'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였죠!
앞서 하만의 아내 세레스가 하만에게
당신이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6:13
라고 말했는데, 그게 마치 예언이요, 예언의 성취처럼 된 것이죠!
...............................................
주1) 에5장에 나타난 우연 같은 하나님의 섭리
-잘 자던 왕이 하필 그날 밤에 잠이 왜 안 왔을까요?
-왜 하필 모르드개가 달려 죽기 바로 직전 날 밤이었을까요?
-왜 하필 그때 <역대 (궁중) 일기>를 가져오라고 했을까요?
-왜 하필 <역대 일기> 중에 편 곳이, 모르드개의 내용이었까요?
-왜 하필 하만이 또 아침 일찍 왕궁에 찾아왔을까요?
다른 대신이 먼저 찾아왔다면, 다른 대신보고 모르드개의 말을 끌게 했을 것입니다.
모든 게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섬세한 역사가 그 안에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주2) 에스더서 부림절 사건은, 1차 포로기과 2차 포로기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BC 537년의 1차 스룹바벨 귀환과
BC 458년의 2차 에스라 귀환 사이에 (간극은 64년)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인 수산 성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림절 사건이 BC 473년이면, 2차 귀환 16년 전입니다.
☞에스라 연대표 https://rfcdrfcd.tistory.com/15488048
특별히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은
<영화 300>에 나오는 포악한 왕이죠.
에스더서의 부림절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중에 영적대각성이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연이어 에스라의 2차 귀환, 느헤미야의 3차 귀환이 일어납니다.
1차 스룹바벨 귀환 이후, 약 64년 만에 일어난 2차 귀환입니다.
부림절 사건이 어떤 계기가 된 것이죠. 연대표 참조하세요.
1차귀환 BC 537
부림절 BC 473 (1차귀환 64년 후)
2차귀환 BC 457 (부림절 16년 후)
3차귀환 BC 445 (2차귀환 12년 후)
주3) 7:4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하니'
이 구절은, 난해 구절입니다.
공동번역 '그러나 그 일로 임금님께서 입으실 손해는 무엇으로 메우시겠습니까?'
(한 민족이 멸절되는 일로, 왕이 입으실 손해가 막대할 것입니다)
새번역 '그만한 일로 임금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종으로 팔려가는 일로, 왕께 걱정을 끼쳐 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RSV는 '우리에게 닥친 곤경이 왕에게 미칠 손실에 비교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NIV는 '그와 같은 고난이 왕을 혼란스럽게 해드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으로 팔려가는 정도였다면, 그와 같은 고난이 왕을 혼란스럽게 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즉, 에스더는 유대인들이 차라리 노예로 팔려갔더라면
왕에게 그토록 손실이 되거나, 왕을 괴롭히는 일로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NIV가 가장 무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