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티니] 21. 솔로몬 3 - 솔로몬의 실패 (왕상 11:1-5) - YouTube
◈솔로몬의 실패 왕상11:1~5, 잠4:23 [데스티니] 21강 솔로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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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솔로몬의 데스티니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데스티니가 있죠.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창조하시고 만드실 때, 아무 생각과 계획 없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아주 디테일한 계획을 가지고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인생의 목적은, 우리의 데스티니가 무엇인지..
그것은 우리를 만드신 분의 계획이잖아요.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삶 가운데, 자기 데스티니를 발견하고 이루지 못하면
무엇을 해도 자기 마음 가운데 부족함이 있고, 허무한 게 있어요.
그래서 우리 삶 가운데, 허무함과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의 데스티니를 발견하고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셨어요.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 DNA 안에 '너는 어디서 이렇게 태어났어,
이러이런 삶을 살고 저러저러 하다가, 이렇게 살게 될 거야' 라고 하는
계획(데스티니)을 심어 놓으셨기 때문에,
그 삶의 온전한 트랙 가운데 있지 못하면, 우리는 무엇을 해도...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많은 것을 성취해도,
그래도 마음가운데 만족이 없게.. 그렇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데스티니를 발견하고
이루어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데스티니 설교 21번째 시간인데요.
똑같은 얘기로 21번 들으신 거죠? 그래서 다 외우셨을 줄 믿는데,
솔로몬에게도 역시 데스티니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가지고 솔로몬을 만드셨고
솔로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아주 구체적인 섭리가 있으셨어요. 그것은 뭐였죠? 세 가지였습니다.
솔로몬의 데스티니는 명백하게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다윗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솔로몬은 세 가지를 하는 사람으로 살게 될 텐데
-첫째는 샬롬을 누리는 사람이 될 것이고
-둘째는 이스라엘에게도 샬롬, 평화를 주는 사람이 될 것이고
-셋째는 내가 거할 성전을 건축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름을 솔로몬으로 지으라고 했어요.
솔로몬은 샬롬에서 나온, 어원이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평화의 왕, 샬롬을 누리는 왕, 또는 샬롬을 주는 왕이라는 뜻이 솔로몬의 이름이에요.
그리고 이것은 솔로몬 만의 데스티니가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동일한 데스티니라고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다른 디테일한 데스티니들이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공통적으로 우리 안에 두셨던 것은.. 이 세 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샬롬을 누리는 자로 창조되었어요.
하나님 안에서 평강과 평화와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자로 창조되었고
-둘째는 우리만 누리는 것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샬롬을 누리도록 하는 자로, 복의 근원이 되는 자로 지음받았고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을 짓는 자로, 성전을 건축하는 자로!
그것은 우리 안에, 또 구체적으로 보이는 교회 안에, 또 이 세상 안에
모든 나라와 모든 영역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처소를 마련하는 자로
이렇게 지음받은 것이 저와 여러분의 데스티니입니다.
▲솔로몬 인생의 전반부에는 그의 데스티니가 어느 정도 잘 이루어져 갔습니다.
그에게는 헌신도 있었고, 열정도 있었고, 결단력도 있었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 데스티니에서 어긋나지 않고
자기 데스티니를 잘 이루어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왕이 되자마자 성전 건축을 시작하고, 7년 만에 성전 건축을 마치고,
그 다음에 13년 동안 왕궁을 짓고... 이런 일들을 쭉 해나갑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20년 동안의 건축 사역이 끝나고 나니까
솔로몬이 변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이 끝까지 초심을 지킨다고 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솔로몬의 실패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솔로몬 인생 후반부에 왜 이런 실패가 찾아왔는지.. 그 원인이 뭐였는지..
또 우리가 거기서 받아야 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처음에 시작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끝(마무리)이에요.
시작은 좀 미약해도.. 끝에 가서 많은 열매를 거두는 사람은,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처음에 화려하게 시작을 해도
마지막에 가서 다 말아먹는 사람은..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거죠.
여러분, 처음보다 끝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마음, 초심을 여러분들이 마지막까지 동일하게 지킬 수 있다면
거기에는 많은 축복과 열매들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이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솔로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솔로몬이 후반부에 왜 그의 데스티니로부터 어긋나게 됐는가요?
결론은, 자기 마음을 지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내 마음을 지키는 게 그렇게 쉽지 않아요.
예수님을 잘 믿다가 끝이 좋지 않은 분들을 많이 보는데
이분들이 처음부터 안 좋았던 게 아니에요.
처음에는 대단한 열심과 대단한 헌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왔던 분들이고
정말 다윗 같은 사람들이었고...
그런데 문제는, 그가 다윗이 될 건가, 솔로몬이 될 건가 하는 것은
시작에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솔로몬도 시작은 아주 좋았고요. 다윗도 시작은 아주 좋았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의 시작은 아주 좋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는데 어떻게 시작이 안 좋겠어요?
그 안에 감사가 있고, 헌신이 있고.. 다 있지요.
그런데 이 마음을 마지막까지 지켜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게 우리의 싸움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10년 뒤에도 똑같은 마음, 20년 뒤에도 똑같은 마음,
50년 뒤에도 똑같은 마음, 처음에 하나님 앞에 가졌던 마음을 똑같이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마음 지키는 것이, 여러분 제가 반복해서 얘기하지만, 절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솔로몬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정말 힘든 싸움이에요. 정말 힘겨운 싸움이고, 이 싸움을 끝까지 승리하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힐 정도예요.
그래서 마지막까지 자기 초심을 지키고, 삶의 경주를 경건하게 다 마치신 분들에게는
정말 박수 쳐 드려야 돼요. 정말 어려운 싸움을 이기고 승리하신 거예요.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은 마지막까지 마음을, 처음 마음과 똑같이 지키시는
그런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제가 그것을 질책해 드릴 거고요.
제가 타락하는 것 같으면, 여러분이 저를 질책하셔야 되고요.
그래서 우리는 하여간 마지막까지 마음을 계속 지켜나가야 됩니다.
◑솔로몬의 망가진 데스티니 3가지
자, 솔로몬 이야기를 살펴보죠. 솔로몬 왕의 실패는
오늘 본문을 보시면,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이방신들을 섬긴 거였어요. 그것이 솔로몬의 타락의 원인이죠.
심지어는 밀곰도 섬기고, 아스다롯도 섬기고, 가나안 땅의 신들을 섬겼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렇게 됐나 돌아보니까, 결혼이 문제였어요. 아내가 너무 많았던 거예요.
아내가 1천명이잖아요. 후궁이 700명, 첩이 300명
도대체 이 아내들을 어떻게 다 관리했나 모르겠어요.
천 명을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아마 이름도 다 못 외웠을 것 같아요.
이 아내들의 문제는, 상당수 이방 나라에서 온 여자들이었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방 여인과는 결혼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어요.
왜냐하면 그들이 네 영혼을 타락시킬 거다...
그들이 네 영혼을 망가트릴 거기 때문에 절대로 그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솔로몬이 이 말씀을 어겼어요.
왕이, 성전을 건축한 자가,
처음부터 어길 마음은 없었겠지만, 결국 이 말씀을 어기게 되고,
이방 여인들을 그것도 천명이나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들이 결국 솔로몬 말년에 솔로몬의 마음을 빼앗은 거죠.
이방 여인들이 시집올 때 그냥 몸만 왔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아니고, 자기의 살던 패턴들을 가지고 들어오잖아요.
문화도 가지고 들어오고, 당연히 섬기던 신들도 가지고 들어오고,
그래서 이스라엘 안에, 이방 신들이 들어오게 되는 문을 열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솔로몬의 타락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거예요.
솔로몬의 데스티니가 망가지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과,
그로 말미암은 이방 신을 섬기게 되는 것들...
그런데 그 이전에 보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으로부터 이게 시작되는 거죠.
'(이방여인과 결혼을)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불순종하는 것으로부터 이 솔로몬의 타락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불순종한 것도 시작은 아니에요.
그 이전에 뭔가가 솔로몬 안에 일어났어요.
그거에 대한 결과로 결국 말씀을 어기게 되는데
솔로몬이 몰락하게 되는데, 시작은 죄를 짓는 것으로 보이지만 죄를 왜 지었냐는 거죠.
이미 그전에 솔로몬의 마음 가운데, 뭔가 변화가 일어난 게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 마음의 변화가, 죄를 선택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가장 먼저 일어났던 변화가 무엇일까요?
솔로몬 마음가운데 있었던 가장 먼저 일어났던 변화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펴봐야 될 메시지라고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죄를 짓게 되면,
당연히 그 죄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망가뜨립니다. 이게 죄가 무서운 이유죠.
당연히 죄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고,
우리의 데스티니를 망가지게 해요. 그런데 왜 죄를 짓게 되는 거예요?
그 이전 동기가 있잖아요. 그 동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죠.
우리 마음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그렇다면 이 솔로몬 마음가운데 도대체 무슨 변화가 일어났기에
이런 불순종을 하게 됐을까요? 단순히 솔로몬이 여자를 너무 좋아한 걸까요?
아니 솔로몬이 여자를 너무 좋아한 거였으면
이스라엘 여인 중에 1천명, 2천명 얻어도 되는데
왜 참 이 사람은 독특한 사람입니다. 국제결혼을 천번 가량이나 한 거죠.
이게 쉬운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했을까요? 거기에 여러분 이유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단순히 그냥 여자를 좋아해 가지고, 1천명을 얻은 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이것이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어요.
왜 이방나라, 바로의 공주를 왜 아내로 얻었을까요?
모압의 공주를 왜 아내로 얻어왔을까요? 이게 정략결혼이었다는 거예요.
(이게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어느 날 정말 성전 건축하고 하나님 믿고 예배하고
이럴 때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슬금슬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무슨 생각이냐면 '가만있어 봐, 나의 데스티니가 샬롬을 주는 자인데,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에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보니까 나라(이스라엘)가 강대국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군대가 강한 것도 아니고, 땅이 큰 것도 아니고, 자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수로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그리고 주변에 돌아보니까 강대국들은 너무 많아요.
애굽을 비롯해서 수많은 강대국들과,
이스라엘과 비슷비슷한 나라들 모압, 암몬... 하여간 많아요.
'이런 나라들 가운데서 어떻게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방법이 딱 하나밖에 없어요.
가진 게 없고, 힘이 없고, 땅이 좁으면, 외교적인 전략이라도 써야 되는 거에요.
이 주변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솔로몬이 선택한 것이, 외교 정책이었어요.
주변에 있는 나라들과 좋은 우방의 관계를 맺는 거예요.
그러면 평화가 유지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과거에도 그렇지만,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이게 아주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바로의 공주를 아내로 맞았어요. 그렇게 해서 아이를 낳았어요.
그럼 이 아이의 할아버지가 누구예요? 애굽의 바로잖아요.
나(솔로몬)는 남일 수 있는데, 우리 아들은 남이 아닌 거죠.
얘는 바로의 손자인 거예요. 그러니까 피가 섞인...
그러니까 손자를 죽이려고 설마 쳐들어오겠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오히려 도와주려고 하겠지요.
이게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는 거예요. 아주 현명한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솔로몬이 이 정책을 통해서 성공한 것처럼 보여요.
많은 우방들과 수교를 맺고, 외교적 안정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이것은 아주 지혜로운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대가가 있다는 거예요. 대가가 뭐냐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여자들만 오면 좋은데, 정치적 관계만 형성되면 좋은데,
이방 신들도 따라 들어온 거에요.
그래서 결국엔 솔로몬이 가나안 신들을 섬기기 시작하는데
심지어는 암문 족속의 밀곰을 섬깁니다.
밀곰은, 몰렉과 같은 신입니다.
여호수아 때 하나님이 가나안 백성을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다 죽이라고 했을 때
그 직접적인 이유가 이 몰렉이었던 거 아세요?
왜 하나님이 이렇게 싫어하셨냐면, 몰렉은 아이들을 불태워 죽이는 제사를 드렸던 게
몰렉 제사였어요.
하나님이 이걸 가증하게 보신 거거든요.
그래서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하셨죠.
그런데 놀랍게도 솔로몬이 이걸 섬겼다는 거예요.
갈 데까지 간 거죠.
이런 이방신들로 말미암아, 솔로몬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고 그렇게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다윗의 마음처럼 솔로몬의 마음이 온전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이 솔로몬을, 그의 데스티니로부터 어긋나게 합니다. 벗어나게 해요.
한번 살펴볼까요?
▲1 솔로몬이 그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떠나자 첫 번째 일어난 반응이 뭐냐 하면
그의 마음 가운데 샬롬이 사라진 거예요.
이걸 어디서 볼 수 있냐면, 전도서에 나와 있잖아요.
전도서가 솔로몬 만년에 쓴 글인데, 나와 있는 글을 보면 구구절절이 어두워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 새것이 없고..'
하여간 고통과 근심과 헛되고 헛된 거.. 샬롬이 떠나버린 솔로몬의 마음들을
쭉 기록하고 있는 게 전도서입니다.
솔로몬이 말년에 그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자
그의 첫 번째 데스티니가 파괴됩니다.
즉 샬롬을 누리는 자가, 그의 안에 있던 샬롬이 파괴되고 떠나간 거예요.
이것은 솔로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고, 모든 사람의 이야기예요.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되면, 첫 번째 일어나는 변화가 뭐냐면
샬롬이 없어지는 거예요.
샬롬이라는 것은, 단순한 평화가 아니라
우리 마음 가운데 빛이 사라진다는 거예요.
만족, 기쁨, 의미, 충만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대신에 허무함, 불만, 분노 이런 것들이 쌓인다는 거예요.
이것이 전도서의 메시지이고,
하여간 이 샬롬이 떠나고, 허무함이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으로 채워질 때, 만족과 기쁨이 있고 샬롬이 있도록 지음 받았어요.
우리 삶의 의미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와요.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죠.
△비유를 하나 들어볼까요? 어느 주인이 도자기를 구워서 컵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차 마시는 걸 참 좋아해요. 그래서 따뜻한 차를 마시기 위해서
컵을 만들 때, 손잡이를 만들어 붙였어요.
그래서 주인이 그 컵에다 늘 뜨거운 차를 담아서 마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컵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마음에 안 드는 거에요.
'주인이 왜 나를 이렇게 학대할까? 맨날 뜨거운 물 부어서 마시고 말이야'
그래서 어느 날 반란을 일으켜 컵이 주인을 떠납니다.
그러고 나서 이 컵의 인생에, 허무가 찾아오기 시작한 거예요.
무슨 허무냐면, 이해할 수 없는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주인(하나님)에 대해서 거의 잊어버렸어요.
자기 한테 손잡이가 있는데, 이 손잡이가 왜 있는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왜 컵 자기 몸에 손잡이가 붙어 있는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고
거추장스럽기만 하게 보였어요.
컵이 주인을 떠나버렸으니까, 자기 삶의 목적을 상실했으니까,
그 손잡이가 뭐에 쓰는 건지 모르는 거에요.
여러분 창조자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인생에 대한 수많은 의문들이 생기는 거 아세요?
도대체 삶은 왜 사는 건지.. 죽음은 뭔지..
그리고 우리 마음 가운데는 왜 이런 허전한 마음이 있는지..?
도무지 대답할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생기는데,
이 질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셨던 것을
딱 깨닫고 아는 순간 '아, 그래서 이게 있는 거구나' 다 맞아 떨어져요.
그런데 그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우리 인생 가운데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들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여러분 '샬롬'이 떠나버리는 거죠.
또 컵이 자기를 보니까 이렇게 뭉푹 패서 (물을) 담는 데가 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고 맨날 빈 채로 있어요.
그래서 '이건 도대체 왜 있는 걸까? 왜 이렇게 빈 채로 움푹 패여 있지?'
컵의 인생이 허무한게 당연하죠.
자기는 주인이 차로 마시려고 창조한 건데
주인을 떠났으니까 채워지는 게 없는 거지요.
우리 인생 가운데 뭘 갖다 채워도 만족이 안 돼요. 왜요?
원래 그 목적을 위해 지은 받은 게 아니니까
그래서 솔로몬의 전도서 1장, 2장을 보면
솔로몬이 별의별 짓을 다해가면서 자기 마음에 헛된 것을 채우려고 애를 씁니다.
돈, 쾌락, 술, 명예, 권력 하여간 다 해봐요.
그런데 안 되는 거에요. 샬롬이 떠나버린 게 돌아오질 않아요.
그 허무함이 채워지질 않아요.
왜요? 컵은 그걸 위해 지은 게 아니거든요.
주인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든 거거든요.
저와 여러분은 물론 컵처럼 하등한 존재는 아니지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펠로우십을 위해서 지은 받은 존재예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위해 지음 받은 존재예요.
그래서 이걸 떠나버리는 순간, 이해할 수도 없고, 만족할 수도 없고...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거에요.
그래서 샬롬을 누리는 자로서의 우리의 데스티니가 깨져버리는 거죠.
여러분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은 행복하십니까? 혹시 컵처럼 허무하진 않으세요?
주인의 손에 붙잡혀 있을 때만 행복한 거예요.
그런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솔로몬의 두 번째 데스티니도 역시 어긋나기 시작해요.
두 번째 데스티니는 뭐죠? 샬롬을 주는 자예요. 그게 어긋나서 샬롬을 주지 못하게 돼죠.
성전 건축을 위해 한 마음이 되었던 백성들의 마음이 떠나고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왕상11장 뒷부분에 보면, 여로보암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해요.
왕상11:26~27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
그가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는 까닭은 이러하니라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이 무너진 것을 수축하였는데'
그 아래로 반역의 사건들이 쭈욱 나오는데
여로보암 뿐만이 아니라, 솔로몬 만년에 보면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솔로몬 삶의 전반기에는 이스라엘에 그런 시기가 없었어요.
전쟁도 없고, 분쟁도 없고, 정말 평화의 시기였는데
솔로몬 왕의 말기에 가보면, 끊임없이 뭔가 사건이 일어나요.
그중에 대표적인 게 여로보암이죠.
그래서 여로보암이 반란을 일으켜서 결국 이스라엘을 두 토막 내지요.
그는 북쪽 이스라엘을 전부 다 차지하고,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남게 됩니다.
왕상11:14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이런 사람도 일으키시고 그래서 계속 전쟁과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게 뭐냐면, 솔로몬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샬롬을 위해서
이방여인과 결혼한 거잖아요. 이스라엘의 샬롬을 위해서 이방여인과 결혼했는데
처음에는 외세의 위협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진 것 같아 보였어요.
우방들을 많이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자 내부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여러분 이것이, 인간이 지혜로 샬롬을 얻으려고 했을 때, 반드시 생기는 일입니다.
뭔가 하나를 해결하면 '와! 해결한 것 같아'
그런데 다른 데 문제가 생겨요. 마치 풍선효과처럼.
우리 인생 가운데 되풀이 되고 있던 일 아니에요?
돈이 없어서 우리 가족이 너무너무 불행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가난하게 자라서 너무너무 가난이 싫어!'
'오케이 내가 돈만 벌면 행복해지리라'
그래서 정말 식음을 전폐하고 돈 벌어가지고 부자가 됐어요.
근데 부자가 되고 나서 보니까, 중병에 걸린 거예요. 또 불행한 거예요.
아니면 열심히 돈 버느라고 가족은 소홀히 하다보니까,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서, 아이들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고, 가출하고..
이게 여러분, 인간이 하는 일이 이렇다는 거예요.
많은 여인들을 얻어서 샬롬을 얻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정말 그게 성공한 것처럼 보였어요. 거기선 성공했어요.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들이 터지는 거예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여로보암이 나타나고...
여러분 샬롬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인간이 얻어내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꾀를 쓰고,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우리가 얻는 샬롬은, 정말 샬롬이 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샬롬은 하나님이 주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샬롬이세요.
그분이 샬롬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무슨 짓을 해도 결국 샬롬을 얻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이 참 미련한 게,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미련하고 큰 실수는
샬롬을 얻기 위해 샬롬의 근원을 떠나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바보 같나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신앙 생활을 조금만 양보하기만 하면,
'그래도 이것만 타협하면 내 삶 가운데 샬롬이 있을 것 같아...'
그래서 하나님을 잠깐 내려놓고, 샬롬스러워 보이는 것을 취하는 거예요.
돈, 직장, 명예, 힘 등 샬롬스러워 보이는 것들을 취합니다. 왜요?
샬롬을 누리려고 그러는 거죠.
그런데 정말 모순은, 그렇게 샬롬스러워 보이는 것을 취하느라고
샬롬(하나님)을 버리는 거에요.
이게 여러분 솔로몬이 했던 일입니다. 정확히 그런 거였어요.
'이스라엘의 평화'라고 하는, 주변국과 정치적인 조약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이게 굉장히 샬롬스러워 보이잖아요.
이걸 얻기 위해서 정말 샬롬이신 하나님을 버리는..
솔로몬이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선택이 결국 솔로몬의 데스티니를 어긋나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결국 진정한 샬롬을 얻지 못했어요. 끊임없는 내란과 전쟁으로 고통 받았어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선택은 샬롬입니까?
아니면 샬롬스러워 보이는 겁니까?
이것이 솔로몬의 인생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다윗의 마음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까?
다윗도 샬롬스러워 보이는 것들이 있었어요.
다윗이 가장 힘들었을 때가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였죠.
쫓겨 다니니까 무슨 샬롬이 있겠어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밤에 잠을 자도 다리 뻗고 잘 수도 없고, 언제 사울이 야습을 할지..
언제 암살조를 보낼지 전혀 모르는.. 샬롬을 전혀 누릴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이 샬롬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온 거에요.
사울왕이 다윗을 죽인다고 좇아왔다가, 용변이 급했죠.
그래서 동굴 안에 들어갔는데, 마침 그 동굴이 다윗이 숨어있는 데였잖아요.
다윗이 그냥 칼 들어서 치면, 샬롬을 얻을 수 있는 굉장히 샬롬스러워 보이는 유혹이
자기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샬롬스러워 보이는 것을 취하지 않아요.
참 이상하죠. 그것을 안 취해요. 그리고 샬롬이신 하나님을 선택해요.
'하나님이 세우신 기름부음 받은 자를 내가 칼로 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해야 하는 것과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이 샬롬스러워 보이는 것을 거부하고, 샬롬을 선택해요.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다윗이 이때 사울을 죽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부하들은 보는 대로 배우는 거예요.
아마 나중에 누군가가 다윗을 똑같이 죽였을 거에요.
똑같이 다윗이 화장실에 있을 때, 누가 들어와서 죽였을 거예요.
당장 눈에 보이는 위기는 넘어갔을지 몰라요.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는 샬롬이 주어진 것 같아 보였을지 몰라요.
그러나 궁극적인 샬롬은 주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아마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들이 다윗의 인생 가운데 일어났을 겁니다.
나중에 왕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백성들이 나중에 '(왕을 죽인) 반역자'라고 그랬을 거 아니에요.
왕이 됐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똑같은 짓 하려고 흉내 내는 사람들의 위협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가 참 힘들었을 거예요. 궁극적인 샬롬이 주어진 게 아니죠.
샬롬스러워 보이는 것을 취하는 것은, 잠깐은 해결책 같아 보이지만
결국엔 우리 인생을 망가뜨립니다.
여러분, 샬롬을 선택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샬롬스러워 보이는 걸 선택하면 안 돼요.
하나님을 선택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3. 셋째, 솔로몬의 성전의 사명도 역시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솔로몬이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을 떠나자
공동체가 분열되기 시작하고, 여로보암이 나라를 찢어서 북쪽을 가져가게 되고
그러고 나서 뭘 하냐면, 여러보암이 사람들로 성전에 가지 못하게 해요.
여로보암은, 산당을 만들고, 우상을 만들고, 레위지파 아닌 사람들로 제사장을 삼고
그래서 다른 처소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들이 일어납니다.
성전은 뭐예요? 이스라엘이 예배하기 위해서 지은 건데
이게 다 파괴돼 버린 거예요. 더 이상 이스라엘 전체가 예배할 수 없게 돼 버린 거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떠날 때
이것은 첫째는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내면의 샬롬을 앗아가지만
결국에는 우리 삶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열매와 사명까지 다 망가뜨리게 돼요.
그러므로 여러분, 이 올바른 데스티니에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솔로몬의 데스티니가 망가지기 시작한 이유
여러분, 이게 보이세요? 참 정확한 게 왕상 11장, 12장을 보면
솔로몬의 세 가지 데스티니가 정확히 망가지는 이야기가 나와요.
여러분, 그 시작이 뭐였죠? 이방여인과 결혼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왜 그렇게 결혼을 했지요? 마음의 문제였다는 거예요.
그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의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틈을 마귀가 이용하기 시작한 거죠.
여러분,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데스티니가 어긋나는 것도 똑같습니다. 똑같아요.
솔로몬의 이야기에서 한 치도 다르지 않아요.
항상 우리의 데스티니가 어긋나는 시작점에 가보면, 마음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큰 문제는 아니에요. 근데 조그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요. '이것 정도야 뭐!' 하는 조그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가보면, 이 구멍이 점점 커지는 거에요.
그래서 결국 우리 마음을 지키는 것에 실패하게 돼요.
시간이 지나게 되면, 결국 우리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거예요.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잠4:23
여러분 이게 참 아이러니컬 하게도 잠언에 나온 솔로몬의 얘기더라고요.
자기가 경험해 본 거예요. 이 잠언도 그의 말년에 쓴 거잖아요.
말년에 솔로몬이 회개하고 돌아왔다고 믿는데
솔로몬이 마지막에 회개하고 돌아와서 보니까
'아, 내 인생 평생에 제일 큰 문제가 뭐였을까? 내 마음을 못 지킨 거구나!'
그래서 솔로몬이 뭐라고 그러냐면, 잠언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나라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군대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성전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켜라!'
이것이 솔로몬의 마지막 권면이고, 또 성경의 권면이에요.
저와 여러분도 마음을 지키시는 그런 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지킨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까요?
마음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지 않게 한다는 거죠.
반대로 그럼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난다는 게 뭔가요?
크게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1)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기 시작하는 것이고요.
2)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즐기기 시작하는 것이고
3)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자랑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게 마음이 떠나는 거예요. 이 세 가지를 아래에 자세히 살펴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지켜지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떠났는지를
여러분이 테스트 해 보시려면, 내 마음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세요.
'내가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의지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떠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거예요.
두 번째는 '내가 무엇을 즐기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즐거워하고 있는지?
내 마음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셋째는 '내가 무엇을 자랑하고 있는지?'
이것이 우리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하나님에서 마음을 떠난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하나님 이외의 것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돈을 의지하거나, 사람을 의지하거나, 학벌을 의지하거나
무엇이든지 하여간 하나님 이외의 것을 의지하는 것.. 이게 마음이 떠나는 첫 번째 증상이에요.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그 하나님이 나의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고, 나를 구원하는 분이시고...
이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이것이 마음을 지키는 겁니다.
우리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고 계신다'고 하는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마음이 떠나기 시작하면,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큰 것부터 의심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안 속죠.
그런데 작은 것에서 의심이 들기 시작해요.
하나님을 안 믿겠다는 건 아니에요.
하나님이 책임 안 져주실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 믿음은 있어요.
그렇지만 '그래도 뭔가 좀 보조수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도 하나님 만으로 정말 다 될까?'
하나님을 믿기는 믿어요.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도 다 믿고,
하나님을 떠나겠다는 얘기도 아니에요.
'그래도 플랜B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니까?' *대안, 1안을 대치할 2안
솔로몬이 처음부터 '내가 하나님을 떠나서 밀곰을 섬겨야 되겠다'
뭐 이러고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솔로몬도 정신이 온전했을 때,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 때는
하나님 한 분이 샬롬의 근원이시고, 다른 대안은 필요 없고,
그분이 이 나라를 지키실 것이고, 안전하게 하실 것을 다 믿었어요.
그런데 20년 지나고 나서 뭔가 조금 의심이 드는데..
'가만히 있어봐, 그래도 플랜B를 준비하는게 필요할 거 같아'
'그래도 뭔가 조금 내 앞길, 살 길은 좀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러고 있다가 큰일 나는 거 아닌가? 갑자기 적들이 쳐들어오면 어떡하나?
아이고, 안 되겠다. 애굽이랑 조약이라도 맺어내야 되는 거 아닌가?'
이것이 솔로몬 타락의 시작이었던 거 아세요? 우리 마음도 똑같은 거 아세요?
'내 마음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떠나서 멀어지겠다..'
그렇게 결단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이 지켰던 마음(잠4:23)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보면
하루 아침에 와르르 무너지는 게 아니고
매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애굽의 군대와 모압과 암몬과 협약을 100% 신뢰하겠다'
이런 뜻은 아니었어요. 그저 보조수단으로 조약을 맺고, 정략결혼을 한 거죠.
근데 점점 시간이 지나서 보니까, 이 비율이 바뀌기 시작하네요.
처음에는 하나님 8, 외교 수완2 였는데,
그런데 비율이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7:3.. 5:5.. 3:7..
어른들이 종종 하는 얘기가 이런 거죠.
'뭐 하나님 믿으면 다 된다고? 그렇지만 역시 세상은 돈이야 돈!'
'돈 없으면 서러워.. 나이 들어봐!'
이게 내가 돈을 100 % 신뢰하겠다는 얘기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래도 이게 조금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처음에는 하나님 90%, 돈10 %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비율이 점점 바뀌는 겁니다.
어느새 8:2, 6:4, 5:5 ... 2:8
우리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결국 거기까지 가더라고요. 결국 거기까지 가요.
이건 아마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 거예요.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떠나기 시작하면.. 결국 끝까지 가요.
이게 인간이에요.
그래서 마음을 지켜야 돼요.
조금이라도 여러분 멀어져 있다면, 지금 빨리 돌아오셔야지
이걸 방치해 두면 결국 무너지는 겁니다.
거대한 댐이 무너질 때, 조그만 구멍 하나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처음에 조그만 구멍이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그 구멍이 점점 커져서, 어느 날 땜이 무너지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혹시 하나님을 보조할 보조수단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계십니까?
내가 하나님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이외에 또 보조수단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혹시 드시지는 않습니까?
△제가 사실은 제 삶가운데 마음이 떠났던 그 빅 슬럼프가
대학 졸업하고 나서, 미국 유학 가기 전까지, 몇 년 동안 빅 슬럼프 였는데요.
이 시작이 정확히 여기서부터 시작됐어요. 그래서 제가 경험으로 아는 거예요.
제가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 그때까지 마음을 잘 지키고 신앙생활을 잘 했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일곱 번씩 교회 가고,
하여간 전도하고, 예배하고, 정말 잘 믿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보호하셔서, 제가 그전에도 간증했지만,
그래서 대학에서 공부도 아주 잘했어요. 뭐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학점도 아주 좋았고요.
그랬는데 대학교 4학년이 되니까 무슨 생각이 드냐면
'어, 4학년이네? 그래도 내 앞가림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갑자기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일주일에 7번.. 너무 많은 거 아니야?
4학년이 7번은 말이 안 되지.. 두 번만 줄여서 5번만 가자'
열심을 안 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 조금씩 잠식되어 나가는 거죠.
제가 대학원 준비하고 있었는데, 대학원 떨어지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이게 정말 마귀 장난이었던 게, 대학원에 떨어질 리가 절대로 없었어요.
대학원에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0 %였어요. 그때 대학원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근데 내 마음가운데 의심이 들기 시작하니까 '그래도 조금은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시작한 게 빅슬럼프의 시작이 되더라고요.
결국 마지막에 가보니까 '하나님 의지하는 믿음'이 하나도 남지 않고 없어졌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여러분도 보조수단이 필요하다고 느끼세요?
'하나님 이외의 것도 그래도 필요하지...' 이런 생각 드세요?
주의하십시오 여러분, 솔로몬도 거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부하는 게 잘못된 것, 돈 버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이런 말은 아니에요.
우리가 다 해야 돼요. 열심히 일해야 돼요. 마땅히 돈도 벌어야 돼죠.
이 설교를 잘못 들으면, 그런 부작용이 생기 수 있죠.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채워지길 기다리는 걸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보조수단으로 마음이 떠나는 것과,
정상적인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 마음의 동기를 보면 알아요.
-불안해서 그 일을 하는 거냐?
-아니면 하나님이 주는 확신 때문에 하는 거냐?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불안해서 그 일을 하는 거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거죠.
불안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신 거를 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죠.
예를 들어서 단기 선교를 가려고 해요.
대학생이 단기 선교를 가려고 하는데 돈이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하는 게 마음을 지키는 겁니까?
1번, 믿음으로 하나님이 공급해 주실 것을 조금 도 의심하지 않고 기다린다.
이때 뭔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벌고 하는 것은
하나님 이외의 것을 의지하는 것이므로, 마음이 떠나는 것이다.
2번, 아니다. 기도도 하지만,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해서 필요한 돈을 벌어야 된다.
1번이 맞아요, 2번이 맞아요?
자, 여기에 정답은 없어요.
1번이 될 수도 있고, 2번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가지고 '마음이 떠났네, 안 떠났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만약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도하는데
'이번엔 내가 다 채워 줄 테니까, 너는 그냥 믿음으로 기다려'
그 마음을 주셨으면, 일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에 하는 거잖아요.
주님이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못 믿으니까.. 이건 마음이 떠나는 거예요.
근데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니에요.
성경에도 보면 '네가 먹을 거 네가 벌라'고 그랬잖아요.
그럼 당연히 일해서 버는 것이 맞는 거죠. 성경적이죠. 물어볼 것도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보조수단을 구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나는 것,
다른 것을 의지하게 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에요.
어떨 때는 우리가 열심히 일할 수도 있고. 돈도 벌 수도 있고.. 다 해도 돼요.
근데 왜 하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난다는 건 뭐냐면 불안함이 있는 거예요.
'이걸 안 하면 혹시?
그래도 내가 내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지..' 하는 불안에서 마련하는 대안,
이게 하나님을 떠나는 마음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 믿으면, 평안, 담대함이 생기고,
그런 플랜B, 대안을 신경쓰지 않게 돼죠.
직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해고당할까봐 불안하세요?
그렇다면 그것은 이제 뭔가 조금 마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증거예요.
'짤리면 하나님이 다른 직장 주시겠지!' 이게 믿음이에요.
놀다. 짤리면 회개해야 되는 거지만
열심히 일했는데도 짤리면 하나님이 다른 직장 주시겠지요. 뭘 걱정을 해요?
그런 상황에 자기가 불안해서 플랜B, 대안을 마련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게 솔로몬이 외교적 방책이라는 대안을 마련한 마음이었던 거죠.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불안함 때문에
여러분들이 뭔가 대안을 찾고 있다면
마음이 지금 무너지고 있는 중거예요. 마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보조수단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거든요. 완전하신 분이세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만약에 보조수단을 마련한다면
결국 그 보조수단이, 보조수단에 머물지 않는다는 거예요.
결국 여러분의 삶을 다 삼켜버리고 말아요. 절대 허락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지킨다고 '기관' 등 인간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2 둘째, 마음이 떠난다는 것은, 다른 것을 즐거워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성경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했어요.
즉 내가 즐거워하는 것, 거기에 내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이 나의 보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내 보물로 여기는 게, 마음을 지키는 거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거예요. 영적인 활동들이 즐거운 거예요.
예배드리는 것이 즐겁고, 기도가 즐겁고, 또 성도의 교제가 즐겁고...
그런데 어느 순간에 보니까, 내 마음이 다른 데 반응하고 있어요.
내가 무엇을 즐거워하는가 보려면, 내 마음이 어디에 반응하는가 보면 됩니다.
언제 내 심장이 뛰냐고요?
예를 들어서, 홈플러스 세일하는 광고 볼 때 심장이 뛴다든지,
아니면 게임할 때 심장이 뛴다든지,
직장 승진 소식을 들으니까 심장이 콩닥콩닥 한다든지
자녀들이 1등 성적표를 들고 오면 너무 좋다든지...
엄청난 월급을 주는 직장에 취직했을 때, 이럴 때 만약에 여러분의 마음이 뛰신다면,
여러분 마음이 어디에 반응하는가.. 한번 보세요.
그것이 여러분이 즐거워하는 거예요.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이 떠나게 되면, 시쿤둥하게 되면,
행동은 그냥 나타날 수 있어요. 여전히 교회에 다니고, 여전히 헌금하고 다 할 수 있는데
마음이 반응을 안 해요.
영적인 얘기를 들어도, 확 끌리질 않아요. 시쿤둥하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그러다가 눈이 확 뜨이는 데가 있어요.
그러다가 무슨 백화점 세일, 공돈 생기는 일, 이런데 눈이 확 떠 져요.
'마음을 지킨다'(잠4:23)는 것은, 내가 무엇을 즐거워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요.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계속 지키냐는 거예요.
아니면 다른 것이 더 즐겁고 재밌냐는 거예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나고부터, 정말 마음이 한결 같았어요.
하나님, 예배, 영적인 거.. 이거에만 마음이 정말 다 가 있었어요.
정말 그렇게 몇 년을 살았는데
대학교 4학년 때 제 마음이 약간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제가 대학원 1학년 때 빠졌던 게 컴퓨터 게임이었어요.
제가 뭐 하나에 빠지면, 못 헤어나오는 증상이 있거든요.
그 당시에 '삼국지' 라는 유명한 게임이 있었는데,
이게 내 마음을 다 빼앗는 거에요. 막 너무 재밌는 거에요.
그러면서 제 마음이 거기에 반응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게 사실은 제 빅 슬럼프로 가는 과정이에요.
그러면서 거기에 반응하기 시작하니까
영적인 활동들에는 제가 점점 덜 반응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게임에 내 마음을 뺏기게 되니까, 일어나는 증상이 있는데
시간 사용하는 게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뼈 아픈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저를 회개케 하시고, 회복시켜 주셨는데,
그때 결단했던 게 뭐냐면 '앞으로 남은 평생에 게임에는 손도 안 대리라!'
제 안에는 중독의 DNA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한테만 중독돼야지 딴 데 중독되면 큰일 나요.
그러니까 그러면서 제가 알게 된 게 뭐냐면, 시간 사용하는 게 달라진다는 거예요.
점점점점 '삼국지'(게임)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요.
점점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어요.
교회 가는 것도 줄어들고 시큰둥해지고...
기도는 물론 안 하거나 현저히 약화되지요.
여러분이 '내가 하루에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한 번 종이에 쫙 써보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 마음이 어디 있는지 금방 나와요. 아주 정확하게!
여러분, 우리가 마음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그래서 아주 구체적인 거예요.
우리의 시간이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세요.
물론 교회 가는 시간, 예배 보는 시간 이런 게 아니라도
자기 직업적 소명을 따라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 이런 것도 다 영적인 일입니다.
거기에 시간 사용하는 것을, 세상적인 시간 사용으로 볼 수는 없어요.
그러나 내가 퇴근 후에, 무엇을 즐기고 있는가? 이건 우리가 재볼 수 있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즐기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말씀 묵상은 얼마나 하십니까?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이 있어요. 어디에 시간을 사용하십니까?
주식을 기웃거리는 시간과, 말씀을 끼웃거리는 시간의 비율은 어떻게 되십니까?
홈플러스 광고 전단을 묵상하는 시간과, 말씀 묵상하는 시간의 비율은 어떻게 되십니까?
TV 홈쇼핑과 인터넷 서핑과, 하나님 앞에 보내는 시간의 비율은 어떻게 되십니까?
▲3 세 번째, '마음이 떠난다'는 것은 다른 것을 자랑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돈이 많음을 자랑하고
외모를 자랑하고
학벌을 자랑하고
남편 자랑하고, 자식 자랑하고
자동차 자랑하고, 집 자랑하고...
자 이게 뭐예요. 여러분? 거기에 내 마음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 무엇을 자랑하느냐는 것은,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냐는 것을 드러내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자랑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동일하게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 마음은, 하나님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신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솔로몬이 그거 였잖아요.
이방과의 우방관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 앞에 마음을 지키는 거잖아요.
그런데 솔로몬은 다른 걸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이방과의 관계 중요하게 여기고, 그걸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자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측정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내가 어떤 토픽을 가지고 계속 말하는가를 보면 돼요.
우리 말에 다 나타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대한민국 정치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돈 버는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여간 뭔가 얘기하고 자랑하는 것들이 있죠.
그래서 내 마음이 어딨나를 보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가를 보면 돼요.
무조건 하나님 얘기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과 우리가 자랑하는 게, 주로 뭐냐는 거예요.
여러분 대화의 주제는 뭡니까? 거기에 여러분의 마음이 있어요.
▲4 그런데 마음이 떠나는 네 번째 증상이 있습니다. 자각 증상이 어렵다는 거죠.
그건 뭐냐 하면, 우리 마음이 떠났다고 해서,
우리 행동이 바로 마음을 따라서 떠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마음이 떠난 후에도, 행동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시간차가 있다는 게 무서운 거예요.
마음이 떠났을 때, 바로 행동으로 뭔가 변화가 일어나면
'아이고,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알 텐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마음이 떠나도, 인간은 꽤 오랫동안, 자기가 하던 삶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마치 뉴턴의 관성의 법칙이, 마음에도 있어요.
마음이 떠났다고 해서, 갑자기 교회 안 나오는 거 아니고요.
마음이 떠났다고 해서, 갑자기 헌금 끊는 것도 아니고..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예전같이 다 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마음은 없어요. 다른 재밌는 일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솔로몬이 몰락했던..
그 지혜로웠던 솔로몬이 몰락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인 거 아세요?
마음이 떠났는데, 별로 겉으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거에요.
마음을 지키기 힘든 이유가, 사실 이것 때문에 그래요.
이게 간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간이 그렇대요.
간이 아프다는 걸 인식하면, 이미 끝난 거래요. 간은 자각 증상이 없대요.
이게 아파도, 간 전체의 한 10%만 작동하고 있어도, 증상이 안 나타난다는 거죠.
우리 영혼이 그렇다는 거죠. 쉽게 자각이 안 돼요.
꽤 오랫동안 정상인 줄 알아요. 꽤 오랫동안 문제가 없는 줄 알아요.
꽤 오랫동안 솔로몬은, 자기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믿었어요.
여인들을 맞이한 후에도, 당장 솔로몬이 성전 허물고 그랬던 거 아니었어요.
여전히 성전에서 제사드렸고, 여전히 솔로몬은 하나님 이야기를 했고,
단지 마음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이야기하는 것보다, 군대 자랑하는 것이 좋아지고,
성전에 들어가 있는 것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금은부화를 바라보는 것이 조금 더 즐거워지고...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것이 솔로몬 몰락의 시작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마음을 지키고 계세요?
너무 멀리 가면 돌아오기 힘들어요.
만약 여러분 마음 가운데, 처음에 예수 믿을 때
여러분이 누렸던 것 같은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면
여러분 심각하게 생각하셔야 됩니다.
내가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내 마음에 일어났던 반응들이 있잖아요? 감격과 기쁨과 열정과...
여러분 이게 아직 그대로 있으십니까? 아니면 그 열정이 식어져 버렸습니까?
그걸 계속 방치해두면.. 나중에 솔로몬처럼 결론 나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무너지기까지는(북왕국 분리) 시간이 꽤 많이 걸렸어요.
그러나 그것의 조짐이 시작됐을 때, 솔로몬은 거기서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기 데스티니를 젊은 시절에는 이루었지만,
노년에 이르러.. 그는 자기 데스티니를 모두 망가트려버리고 말았죠...
그리하여 영원의 세계에서, 그는 부끄러운 이름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