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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일꾼, 바울 (골6강)

LNCK 2023. 12. 1. 11:47

 2022-06-05 주일예배 // 교회의 일꾼, 바울 - YouTube

◈교회의 일꾼, 바울     골1:24~29       ☞ 골로새서 설교모음

◑도입 및 복습                            

저희들이 계속 골로새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1:15~2:5절까지가 본론의 첫 번째 부분입니다. 

그 중에서 1:15~20절까지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탁월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충분하신 그리스도 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만물의 얻듬이 되신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죠.

또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분이다. 
이렇게 바울은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1:21~23절까지는 ('그리스도'에게서) "너희"로 설명 대상이 바뀝니다. 
골로새 성도들에게 이제 탁월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을, 간략하게 묘사를 했습니다. 

과거는 어떤 모습이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고 
-그들은 악한 행실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을 통해서, 
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 

또 그들을 어떤 사람으로 세우기를 계획하셨느냐?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시기로
하나님은 이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1:23절 말씀에, 이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이냐? 
그 믿음에 계속 거하고, 그리고 복음이 주는 이 소망에 흔들리지 아니하면 
바로 이 일(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이 서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도전을 했습니다. 

 

..............................................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오늘 본문 1:24~29절까지는 이제 대명사가 ("너희"에게서) "나"로 바뀝니다. 
이제 바울은 자기를 누구로 소개하느냐? 
'교회의 일꾼'으로 소개를 합니다. 1:25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제 '교회의 일꾼'으로서, 자기가 어떻게 교회를 섬기고, 
또 사역의 핵심은 무엇이고, 
또 그가 깨달았던 그리스도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해 설명을 하게 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 
이제 바울은 교회 일꾼으로서, 골로새 성도들 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서 
받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다 보시면, 우리가 많은 괴로운 일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 괴로움을, 바울은 '기뻐한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악한 이 세상에 전파하고, 
악한 이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데 
주님께서는 필요한 고난, '내가 지고 갈 십자가'를 남겨 두셨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 악한 세상에서 세워 가실 때 
당연히 고난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그 고난을 바울은 '기쁘게 내 육체에 채우겠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rfcdrfcd.tistory.com/15981327

여러분, 나는 '너희(교회)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시나요? 
아니면 피하고 싶습니까? 

그 고난은 머리이신 교회가 받는 고난입니다.
그걸 (머리와 붙은) 몸된 우리가 동참하는 것이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그 고난 받는 것을 기뻐했던 것입니다.

△저도 청년 시절에 좀 은혜를 받았을 때 
그때는 교회에 좀 부족한 점이 보여도, 
불평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아, 내가 저 부족함을 채우는데 조금은 도움이 돼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교회의 부족함을 보면 볼수록 
역설직이지만 제 마음이 사실은 더 뜨거워졌던 적이 있습니다. 
'저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채우라고,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셨구나' 

제가 은혜가 충만할 때는, 이런 모습이었는데 
이제 은혜가 떨어지면, 교회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 
막 화가 나고.. 때로는 비판하고.. 또 정죄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는 이제 우리 한국교회가 가장 뜨겁고 부흥했을 때는 
바울의 고백이 사실 우리의 고백이었죠. 

정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남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피하는 게 아니라, 
내 육체에 채우는 삶을 살았고, 

또 그 괴로움을  '왜 나만 고생하나?'하며  억울해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참 기뻐했습니다. 

고후4:11~12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교회를 섬기시는 분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면 좋겠는데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우리가 섬기는 분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정말 죽음을 경험하면, 
그러면 예수의 생명이, 우리가 섬기는 분들 안에서 역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 골1:24절 말씀을 통해서 
교회 일꾼으로서 자신의 사역의 모습을 바울은 소개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25절을 보시죠. 
'왜냐하면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는 겁니다. 

◑골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일꾼'은 헬라어로 디아코노스 입니다. 
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인데, 때로는 '집사'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디아코노스의 핵심적인 뜻은 '식탁에서 시중드는 종'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즉 '교회의 일꾼'은, 식탁에서 시중드는 종처럼 성도들을 섬기는 사람, 
그들이 바로 '교회의 일꾼'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의 일꾼'은 소위 권세를 부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자리가 아닙니다.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게, 어떤 분이 투표해서 '안수집사' 님이 되셨어요. 
그래서 제가 "축하드립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제가 승진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서리 집사님은 매년 임명을 받으셔야 되는데, 
이제 안수집사가 되면, 평생 하는 항존직이니까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바뀌었다' 그러시더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의 일꾼'이 되는 게 
정규직이 되거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일꾼은 누구냐? 
식탁에서 시중드는 종처럼, 성도들을 살피고 돕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일꾼이 되었다고 했죠.

여기서 '직분'은 오이코노미아 인데,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경륜) 속에서 내게 맡기신 직책'입니다. 

이게 원래 어디에 사용되는 단어인가 하면 oikonomia는 대가족의 살림살이 (경영) 입니다. 
대가족의 살림살이를 할 때, 거기에 계획이 필요하고, 
그리고 일꾼들에게 구체적으로 업무를 분담해 줍니다. 

그러니까 '내게 주신 직분'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께서 '거대한 하나님의 집에서, 살림살이 경영을 하시면서 
그분의 구원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데, 
그 과정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기신 직책' 
그것을 여기 나오는 '직분' 입니다. oikonomia

그래서 결국 이 말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바울 스스로 결심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셨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그분의 놀라운 계획(경륜) 가운데에서 그 직책을 맡기셨기 때문에 
무엇이 되었느냐? 바울은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는 겁니다. 

△간혹 보면, 교회에서 안수집사, 권사, 장로 등 직분을 받은 분에게 
그냥 인사의 말로 '아이고 어떻게 집사님이 되셨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그분은 '여전도사님이 좀 도와주셨습니다' 뭐 이렇게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또 어떤 분은 '부목사님이 힘 쓰셔가지고 됐다'고 합니다.

그분들이 선거 운동을 좀 해주셨다는 뜻인가봐요. '저 분 찍으라고'
그 말을 듣는 제가 별로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왜냐면 여러분, 우리가 소위 직분, 우리가 여러 가지 직책을 받은 게 
누가 힘을 써서 된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노력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서 된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계획 속에 
바로 나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이게 25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죠.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이 경륜 속에 바울은, 자기가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직분을 받을 때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하노라' 하고 선포하죠.
여러분, 우리를 세우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이 개념과 믿음을 갖고 계시면, 
여러분이 감당하시는 그 직책, 직분이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 25b절 
바울이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은, 그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 라고 했습니다. 

'이루려함'이라는 말의 원래 원어적인 뜻은 
'가득 채우다' 라는 뜻입니다. *fulfill
'내가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다' 
우리 번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용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26절부터 나오는 '비밀'과 같은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울은 '비밀'이라고 이해하는데  *'복음'이라고 해도 되죠.
여기에 핵심적인 뜻은 결국 무엇이냐?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구원 계획, 
그 구원 계획에 관한 말씀을 온 세상에 가득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나를 교회 일꾼으로 세워 주셨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우리 교회만 부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큰 그림의 한 부분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계획에 관한 말씀을, 즉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가득 채우기 위해서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에게 교회의 일꾼으로서 직책을 맡기셨고 
우리가 이것들을 감당해 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같이 이루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25절을 통해서, 자신을 교회의 일꾼으로 소개하며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이 놀라운 뜻 가운데 나에게 맡기신 거다,' *직분

그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계획의 말씀을 (온 세상에) 가득 채우기 위해서'다.
이렇게 그가 고백을 합니다. 

26절, 27절은, 여기 나온 25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비밀'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비밀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골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비밀)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다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무엇이냐? 한마디로 '비밀'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비밀이라는 단어는, 서신서를 보면, 바울이 종종 사용했습니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고린도전서에서 이 '비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복음은 비밀이다' 라고요. 

그런데 학자들은 이 '비밀'이라는 단어를 
아마 사도 바울은 다니엘서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주1)

여러분 복음은, 머리가 좋고 똑똑하다고 해서 아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누구에게만 알려질 수 있느냐?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사람, 하나님이 알려주신 사람들만 알 수가 있는 거죠. 

26절을 다시 한번 보시죠.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함께 헌신해야 되는, 
그리고 이 세상 가운데 가득 채워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비밀'입니다. 

27절을 보면, 이제 이 '비밀' 속에는 누구도 포함이 되느냐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하려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비밀은 너무나도 놀라워서 
유대인들만 포함되는 게 아니라, 바로 이방인들까지 포함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당시에 정말 쇼킹한 내용이었죠. 유대교와 기독교가 다른 점이 이것입니다)

엡3:4~6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게 비밀이죠)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광스러운 이 비밀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다 참여가 되는 것이다.. 
- 이 사실을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비밀'인 거죠.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복음)은 '비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나도 풍성해서 
이방인들까지 다 포함되고, 아무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비밀의 중심은 무엇이냐?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것은 골로세서의 요절과 같은 말씀입니다. 
골로새서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죠.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영광의 소망'이십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어떤 상태에 지금 놓여있다 할지라도, 
여러분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소망! 
그분은 누구신가? 바로 그리스도 시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 영광의 소망입니다. 
'영광의 소망'이란 hope of the glory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7
비밀 = 그리스도 = 영광의 소망 입니다.

앞 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의 “비밀”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는 것이었죠.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셨고 지금도 믿는 자들 안에 살고 계십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있다는 분명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 골로새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개인적인 복음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구원받은 신자로서 당신은 “영광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즉, 신자는 그리스도가 지금 이미 자기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때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함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광의 소망은, 
우리가 하나님 뜻에 의해 변화되고, 온전케 되리라는 확신과 기대입니다.
즉 내가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영광스러운 주님을 뵙게 되는 '영광'입니다.

앞서 22절에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이렇게 거룩하게 변화되는 게 바로 '성도의 영광'이죠.
이 영광과 아울러 '영광스런 그리스도를 대면하여 보게 되는'  그 소망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소망'이죠. 즉 복음을 믿는 자들의 소망입니다. 

△여기 나오는 '비밀'이라든가, '완전'이라든가 이런 단어들은 
그 당시 다른 종교들이 즐겨 사용했던 표현입니다. 

여러분 다른 종교들, 고대의 종교들은 다 '비밀'을 가르쳐 주는 종교였어요. 
어떻게 하면 신적인 영역과, 우리가 접촉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정말 비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당시 종교의 하나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법을 터득하려면 '금욕'해야 된다는 사람들도 나오죠. 

근데 사도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최고의 비밀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그것이 바로 최고의 비밀이다! 
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지금도 신천지나 많은 이단들이 성도들을 결국 유혹하는 게 무엇이죠? 
우리 성도들이 모르는 비법, 비밀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성공의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근데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비밀은 무엇이냐?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28절에, 그리스도가 영광의 소망이시고, 그분이 탁월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충분하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여러분 바울 사역의 핵심이 무엇이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비법, 성공의 비법, 우리들의 마음이 평안한 방법, 자식 교육의 비법,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의 비법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파하겠다는 거죠. 

참 인상적인 단어는 '각 사람'이라는 표현이 본 절에 세 번이나 나옵니다. 
이거는 원래대로 번역하면 '모든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하나님이 맡겨주신 '모든 사람'이죠. 
왜 이걸 강조할까요? 

나중에 골로새서 뒤에 나오지만, 골로새 교회에 침투했던 이단 중 하나가 무엇이냐? 
엘리트 주의입니다. 다시 말해 영지주의입니다. 
'신령한 지식을 설명하는 사상'입니다. 

당시 교회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나왔느냐? 
신령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서 
'하나님과 직통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과 직통하면 
그들은 무엇이 된다.고 생각했느냐?  소수의 엘리트 '완전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신과 합일해서 완전해질 수 있다. 이것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다'라고 
가르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모든 사람을 권하고,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모든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하심이라'... 엘리트나 일부 특정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성도님들이 어떤 상황 속에 놓여져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도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서 바울은 무엇을 했느냐?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바울의 사역의 모든 초점이, 그리스도에게 맞춰졌을 때 
두 가지 효과가 나타났는데,
 
-각 사람을 권하고  
'권한다'는 것은, '훈계하다'가 더 가깝습니다. warn

여러분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가르칠 때, 사람들은 훈계를 받습니다. 
'아, 내가 이러면 안 되는구나. 그리고 세상의 유혹은 잘못된 것이구나. 헛된 것이구나' 

그래서 각 사람, 즉 모든 사람들은 훈계 (warn, 경고) 를 받습니다. 

-또 각 사람을 가르칩니다. teach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준비하신 진리와 복음이 무엇인지를, 
권위 있게 모든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죠. 

어디에 집중할 때? 그리스도를 전파할 때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하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의 사역 목적은 '성도들 한 분 한 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었어요. 

여러분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정말 '완전한 perfect' 자로 세워질 수 있겠습니까?

'뭐, 내가 완전해 진다고?' 
이 말씀 듣는 순간, 나는 여기에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과거에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28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운다'는 게 
도대체 뭔 말인가? 우리는 모두 '오호라 곤고한 사람인데' 말이죠.

제 자신을 보면, 저는 완전하지 못해요. 그래서 제가 참 이 말씀 보면서 
'야, 나도 완전하지 못한데, 아니 어떻게 성도들을 완전한 자로 세우란 말인가?' 
참 저는 이 말씀이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28절의 '완전한 자'를
어떤 영어성경은 perfect 로 번역했지만, *완전한
NIV같은 영어성경은 또 mature 로 번역했어요. *성숙한

헬라어는 '텔레이오스'인데, 
perfect(완전한), mature(성숙한, 장성한) 뜻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생각에는 perfect 가, 100% 무결점한 개념을 갖고 있는데,
그게 아니고 텔레이오스는 '성숙한, 장성한' 의미로서의 '완전한, 온전한'이란 뜻이죠.
그래서 '완벽주의적인' 이 아닌, '온전한, 성숙한'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창6: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한 자다' 라고 했죠. 
여기서 '완전한'은 히브리어로는 타밈 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 보면, 
타밈을 '텔레이오스'로 번역했죠.   * Νωε ἄνθρωπος δίκαιος τέλειος (70인역)

'노아는 완전한 자라' 그랬습니다. 근데 여러분 정말 노아가 완전했습니까? 
나중에 술도 마시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완전한 자다 라고 할 때 
바로 이어지는 표현이 '완전하다' (텔레이오스)  는 말의 뜻을 설명하는 거죠.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창6:9

정리하면, 신약성경에서 완전은 무엇이냐? 
100% 무결점한 완전주의가 아니라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서 살아가는' 겁니다. 또는 장성한, 성숙한 이란 뜻이죠.

마5:48절에 '너희는 하나님과 같이 완전하라' 는 말씀도, 그런 뜻입니다.
   ☞'완전하라'는 말의 의미 https://rfcdrfcd.tistory.com/15976649

그래서 바울이 추구했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하심이라'
이 말은, 우리 성도님들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라는 것은 결국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은 크게 두 가지죠. 

첫 번째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됐습니다. 
이게 최고의 일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과 교제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되죠. 

여러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지게' 됩니다. 

이렇게 완전한 자로 세워져서, 주님과 동행, 교제하고 살면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것이 바로 27절에 나온 '영광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여기서 '변화'라는 말은, 영어로 transform 이죠.

우리가 교회에서 '변화받았다, 변화되었다'라는 말을 종종 쓰는데,
바로 그 말 transform 입니다. 

근데 똑같은 단어가,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셨을 때, 쓰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온전한 자가 되는 것은, 
또 다른 측면의 표현으로는 '변화되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모하신 것처럼.. 그렇게 영광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영광의 소망'입니다. 

앞서 골1:23절에 '복음의 소망'이 나왔는데,
복음의 소망이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 분의 화목케 하신 사역으로 인해
우리 각자가 거룩하고, 흠이 없고, 영광스럽게 그 분 곁에 세워지는 것이었죠. 1:22~23

△사도 바울의 사역의 목표가 무엇이냐, 핵심은 무엇이냐? 
복음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는 것, 
주님과 화평하고,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면서, 
영광에서 영광으로(처음부터 끝까지 영광으로) 바뀌어지면서 
하나님과 같이 걸어가는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사도바울 사역의 핵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섬기는 역할은 각자 다 다릅니다. 
그렇지만 중심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겠습니까? 

식당에서 봉사하실 때도, 봉사자들의 목표가 뭐가 되어야 되느냐? 
'국수 드시는 모든 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지도록!' 

주차 봉사하시는 분들도 목표가 뭡니까? 
'여기 차 세우시고 교회 들어가시는 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지도록!' 

그리고 만약에 '라파'로 승리하시는 분들 같으면  *요양 사역 
'몸은 불편하시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지도록!' 
'이분들도 주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그 가운데 몸은 불편하지만, 바로 그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는 놀라운 은혜가 있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우리 모두의 목표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바로 이 열망을 가지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섬기는 일꾼이 된다면 
정말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골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이를 위하여'
즉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수고하다'가 헬라어로 '코피아오'인데, 제가 성경을 연구하다가 웃었습니다.
'코피아오 labour'가 한국어 '코피 터진다'로 외우면, 쉽게 암기되거든요.

이를 위하여 바울이어떻게 섬겼습니까? 코피 터지도록 섬겼다는 것입니다. 

'힘을 다하여' striving
이 표현은 운동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태도입니다. 
이기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자세이죠.
사도바울도 운동 선수처럼 필사적으로 힘을 다하면서 수고했다는 거죠. 

근데 참 재밌는 것은 중간에 무엇이 있습니까? 
바울은 자기 힘으로 수고한 게 아니라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누구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시죠.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시는 분의 역사, 
대부분 영어 번역은, 원문도 그 뜻이 가깝습니다. 
'역사'를 에너지로 번역을 합니다.  *에네르게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시는 그 예수님의 에너지를 따라서 
내가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이것이 교회를 섬기는 일꾼들의 태도가 돼야 된다는 거죠.

이거는 두 가지를 비판합니다. 

1) 이런 분이 있어요. 우리 교회에도 이런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는 머리 대신 우리 주님께서 지금 힘을 다해서 
교회 가운데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속 뜻은 무엇이냐? 
'목사님, 저는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다 일하고 계시니까, 
나는 그냥 믿고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하는 거죠.

가끔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고단수의 분들이 계셔요. 

2) 반대로, 저와 같이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죠.
너무 내가 과도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에너지를 크게 의지하지 않고요.

제가 매년 경주에서 열리는 '벚꽃 마라톤' 을 한 15년 가까이 달려왔는데, 
어느 땐가 제가 경주에 한 번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벚꽃이 피어 있더라고요. 

제가 불과 3~4일 전에 벚꽃마라톤 하면서, 거기를 똑같이 달렸는데 
그때 제 눈에는 벚꽃이 하나도 안 보였어요. 
그냥 기록만 눈에 보였던 거죠.
'내가 오늘 50분 안에 들어가야 되겠다'
그래서 저는 정말 이렇게 거기 벚꽃이 핀 줄 몰랐어요. 

저 같은 사람은 사실 일 중독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요즘 제 삶의 모토가 뭐냐? 
'나도 벚꽃을 보면서 살자! 기록 세우려고 달려가지 말고!' 

제 같은 사람은 쉽게 범할 수 있는 잘못이 뭐겠습니까? 
힘을 다해 수고하죠. 근데 무엇이 빠집니까? 
'내 속에서 능력으로 일하고 계시는 분이' 약화되죠. 

그분이 주신 에너지를 가지고 힘을 다해 섬겨야 우리는 탈진하지 않습니다. 
헛된 자랑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는 거죠. 

여러분, 각자 가정에서, 우리 자녀들 교육 문제, 
또 가정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애쓰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하다 보면 자꾸 지칩니다. 근데 우리 속에 누가 계시죠?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그분은 지치지 않습니다. 이게 놀라운 발견이죠

우리는 지치지만, 그분은 지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유한하지만, 그분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우리의 지혜는 유한하지만, 그분의 지혜는 무한하시죠. 

그러니까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시는 그리스도,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겁니다. 
그분이 주시는 에너지를 우리가 공급받고, 그 에너지를 힘입어서 
힘을 다해 섬기는 것입니다... 

......................................

주1) 그런데 학자들은 이 '비밀'이라는 단어를 
아마 사도 바울은 다니엘서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라고 추측합니다.

단2:27~28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단2장에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느부갓네살이 꿈을 꿨습니다. 
근데 이 바벨론 왕 너부갓네살은 위대한 제국을 세운 왕이죠. 

그가 하루는 꿈을 꿨는데, 제국의 미래와 관계되는 굉장히 중요한 꿈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문제는, 깼는데 꿈을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바벨론의 학자들을 다 불러놓고 정말 황당한 요구를 합니다. 
'내가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꿈의 내용과 해석을 나한테 알려 달라' 

이때 바벨론이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그거 해석하겠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은밀한 것, 이 감추어진 것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로 그 은밀한 것, 
왕이 꿈을 꾸었지만 잊어버렸던 그 꿈, 그 은밀한 것을 다니엘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고 나서, 다니엘이 왕 앞에 렇게 이야기합니다. 
단2:27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이 '은밀한 것'이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바뀔 때, 
바로 '비밀'(무스테리온)로 바뀌게 됩니다. 

왕이 물으신 그 비밀 그 비밀은 
지혜자, 술객, 박수, 점쟁이가 아무도 왕한테 보여줄 수 없습니다.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28 

여러분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모든 사람들의 눈에 감추어져 있는 은밀한 것, 비밀을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 나오는 '비밀'이 
지금 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비밀'의 가장 핵심적인 뜻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