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학: 바울의 일생 6강 (이근목사) - YouTube
◈사도바울의 2차전도여행 P1 행16:1~17:10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보통 사도바울의 전도여행을 <지역> 중심으로 살피는데,
이 강의는 <전도여행의 동역자, 인물> 중심으로 살핍니다.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을, 이제 속속들이 알게 되어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과거에 이런 내용을 배우러, 외국까지 가서 돈들이고 고생했는데,
이제는 정말 쉽고 편리하게 (한국어로) 배우게 되어서 기쁩니다.
우리는 빚진 자로서 외국에 가르칠 사명이 있습니다/편.
▲안디옥에서 2차전도여행 시작
15: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15:36절이 2차전도여행을 시작하는 시점이죠. 출발지는 안디옥교회입니다.
그러나 마가의 합류 문제로 의견 불일치가 있어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를 향해 갔고,
바울과 실라는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따로 떠나게 됩니다. 15:41
안디옥에서 시작 시점부터, 나눠지게 됩니다.
▲루스드라에서 디모데 합류
바울과 실라는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의
루스드라와 더베에 들르게 됩니다.
루스드라 에서 디모데가 합류합니다.
그래서 바울팀은 3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바울, 실라, 디모데
이제 3명이 한 팀으로 전도여행을 다니게 됩니다.
16:1~3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리고 이 여정을 따라서 계속해서
소아시아라고 하는,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있는 지역을 향해서 가죠.
그런데 성령님이 방향을, 터키(아시아) 지역에서 유럽(그리스)으로 돌리십니다.
16:6~8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드로아에서 누가 합류
그래서 드로아로 왔는데,
드로아는 고대의 트로이 라고 봅니다. *트로이의 목마
여기서 바울은 '드로아의 환상', 또는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게 되죠. 16:9~10
행16: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여기에 '누가' 라는 이름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누가'가 합류했다는 증거는,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해 나가는 중에
갑자기 "우리"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이기 때문에,
'우리'라는 말에서, 누가가 합류했음을 알게 되죠.
그래서 바울팀은 4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 ☞누가의 배경 rfcdrfcd.tistory.com/15981403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에게 해를 건너 마게도냐로 감 .............
▲빌립보에서
드로아에서 누가가 합류했고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가면서, '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누가는,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행9~15장까지 나오는 바울의 이야기는,
아마도 거기서 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누가가 듣고 정리한 것입니다.
앞으로 나오는 행16장 이후의 이야기는,
누가가 직접 바울 전도팀의 일원으로 참여했으니까,
자기가 직접 보고 경험한 이야기들을 토대로 썼던 거죠.
'마게도냐와 아가야' 라고 하는데, 롬15:26, 살전1:7
그리스의 북부는 마게도냐 지역이고,
그리스의 남부는 아가야 지역이라 부릅니다. 당시 로마국 땐 그렇게 불렀죠.
(지금은 그리스로 통일되어 있죠. 현재는 '발칸 반도'라 부릅니다)
마게도냐 지역에서 처음 만나는 성이 바로 빌립보 성이었습니다. 16:12
사실 마게도냐 지역의 당시 행정 수도는 데살로니가 입니다.
그러나 더 큰 도시는 빌립보입니다. 그래서 아마 '첫 성'이라고 했던 거죠. 16:12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의 행정수도는 새크라멘토 이지만
로스앤젤레스가 더 유명하고 크듯이, 바로 빌립보가 그런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어딘가에 말씀을 전할 회당을 찾았을 것입니다. 항상 거기부터 갔으니까요.
그런데 빌립보에 왔을 때, 회당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지 않았다는 얘기죠.
그런데 빌립보 성문 밖에 나가 보니까
간지테스 강(시내) 근처에 우연히 모여 있는 여인들의 무리를 보게 되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모인 여자들 중에 바로 '루디아'가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였습니다.
'주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서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6:14
루스드라의 교회는.. 디모데의 집이었을 터이고, *디모데 출신지
빌립보의 교회는.. 루디아의 집이 최초가 되었습니다.
뒤에 나오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야손의 집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루디아의 집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고, 말씀을 전하고
그곳에서 이런 빌립보 교회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출신이인데, 계2장에 나오는 두아디라 교회와 같은 지명이죠.
루디아도, 바울처럼, 소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건너왔던 것입니다.
두아디라가 원래 염색과 직조제물로 유명한 도시인데, 그래서인지
루디아가 빌립보에서 자색 (고급 purple) 직물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루디아도 상당히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바울 일행은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한 여인을 만납니다. 주1)
△로마 시의 유대인 추방령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되는게 있는데,
AD 50년경에 로마 시에는 (바울이 2차전도여행을 하고 있는 이 시점에)
유대인들이 거기에 꽤 모여 살았었습니다. 같은 로마제국이라서 왕래가 쉬웠죠.
그 로마 시에는 유대인들이, 크리스천은 아니고, 민족 운동을 했던 거죠.
로마에서 민족 봉기 운동을 하게 되고,
로마 황제가 이런 것들을 견디다 못해서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로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다 추방하라'는 추방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로마시민권을 갖지 않은 일반 유대인들은
모두 다 로마 시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던 거죠.
그러니까 바울이 이곳 빌립보에 도착하기 1년 전 쯤에, 추방령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제국 내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빌립보는, 당시에 대도시요, '로마의 축소판' 같은 도시였습니다.
그렇다면 빌립보에서도 유대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다 쫓겨났을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이때 쫓겨나옵니다.
이 빌립보에서도 유대인들이 이미지가 안 좋았는데
때마침 점을 못 쳐서 수입이 줄어든 일부 시민들이, 바울을 모함 고소하게 되고,
바울과 실라가 붙잡혀서 감옥에 가서 매를 맞는 장면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근데 지금 전도팀은 4명입니다. 바울, 실라, 디모데(루스드라 합류), 누가(드로아 합류)
그런데 디모데와 누가는 헬라 사람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유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랬다고 보는데, 헬라 사람인 디모데와 누가는 빼고
유대인이었던 바울과 실라만 감옥에 갇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가 심하게 매를 맞았던 이유도,
당시 로마사회에서 유대인의 이미지가 매우 나빴으니까요. 추방령이 발표될 정도로.
16: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빌립보 감옥에서 나온 바울과 실라는 루디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전도팀 디모데와 누가는 루디아의 집에서, 바울의 석방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루디아의 집이, 빌립보 교회의 모태이었을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를 떠나지만, 누가를 빌립보에 남깁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돈벌이를 잃어버린) 빌립보 일부 사람들의 적대감이 다 사라진 게 아니죠.
여전히 바울 일행에 대해, 위해를 가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비록 감옥에서 나왔지만 계속 거기에서 머물 형편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빌립보를 떠나야 됐어요.
그런데, 이제 막 시작된 빌립보 교회를, 누가 돌봐야만 했어요.
그런데 바로 16:40절에 힌트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그들이) 가니라' :40
우리말 성경에 '두 사람이' 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는 '그들이' 입니다. (*인칭대명사는 없지만 '가니라' 동사가 복수 분사 they went)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16:10절에서 '우리가' 라고 했다가 *누가 포함
16:40절에서 '그들이' 라고 합니다. they went *누가 불포함
여기서 우리는 "누가는 빌립보에 남았고"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빌립보를 떠나갔다.. 는 것을 알 수 있죠.
만약 누가까지 몽땅 떠났으면 '우리가 떠났다 we went' 라고 했어야죠.
갑자기 떠날 형편이 생겼을 때, 누군가는 남아서 빌립보 교회를 지켜야 됐고,
누가가 남아서 빌립보교회를 지키게 되었던 겁니다.
왜냐면 누가는 헬라 사람이었고, 의사였어요.
그러니 빌립보 시민들도 같은 헬라인이요, 의사를 건드릴 필요가 없죠.
그래서 누가만 빌립보에 남고,
나머지 3명은 속히 빌립보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실라, 디모데
빌립보 교회에는 누가 남았습니까?
누가, 루디아, 감옥에서 예수 믿게 된 간수와 그의 가족들,
귀신 들렸다가 풀려난 소녀, 그 외 여러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를 이루었던 거죠.
루디아는 참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빌립보에 교회를 세우시기 원하셔서,
옷감장사 루디아를, 두아디라에서 빌립보로 먼저 보내셨고,
그 다음에 바울 일행을 보내서, 그들을 성밖 강가에서 서로 만나게 하심으로써,
드디어 빌립보 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참고로, 여기 16:40 빌립보에서 누가는, 바울과 헤어지는데
그러다가 3차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누가가 바울과 다시 합류하게 됩니다.
행20:5~6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여기 또 '우리'가 나옵니다. 누가가 '우리'속에 포함되어 있는 거죠.
그 사이에 누가는 빌립보 교회를 돌보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울, 실라, 디모데 3사람은 그래서 데살로니가로 가게 되었어요.
사실대로 말하면, 폭도들을 피해서 빨리 도망을 가야 된 상황이었죠.
그런데 '암비볼리 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로니가로 갔다'고 했습니다. 17:1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 까지는 약 16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시는, 데살로니가 (그리스 북부) 지역의 행정수도 였습니다.
그곳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유대인이 회당을 찾았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17:1
17: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17:2절에 근거,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딱 3주간(세 안식일)만 머물렀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성경학자들은 3주간~몇 달 사이로 봅니다. '세 안식일'은 복음 전도의 시작이었던 셈이죠.
그 뒤로도 쭈욱 이어졌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귀부인들까지도 권함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됐다'고 합니다. 여기서 열매가 많았습니다. 17:4
데살로니가의 귀부인들이 권함을 받았다는 것은,
그곳이 루디아의 영향을 받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안 그랬으면, 바울이 귀부인들까지 접촉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컨텍포인트가 없으니까요.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는 야손 의 집에서 머물게 됩니다. 17:5참조
성경은 야손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야손이 바울 일행을 영접해서 자기 집에 머무르게 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야손의 집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롬16:21에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라고 나오죠.
살전2:9에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은, 자비량을 했다는 것입니다. '밤낮으로 일하면서'
아마 천막 짓는 일을 했겠죠.
이때 또 빌립보에서도 도움이 왔어요.
빌4:16 '(내가) 데살로니가 있을 때,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아마 루디아가 보냈겠죠.
자 빌립보 교인들도 바울을 잊지 않았고,
또 바울의 전도 여행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고 또 시기하고 선동하게 됩니다.
어쩌면 데살로니가도 빌립보 에서의 소문을 들었을지 모르고요. '사회를 선동한다는'
그래서 바울은 또 도망을 가야 되는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되었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야손의 집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항상 교과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시기, 유대인들의 선동입니다.
이곳은 유대 지역이 아니죠. 데살로니가, 마게도니아, 즉 유럽 지역인데
이곳에서 이방인들, 헬라인들이 바울 일행을 핍박한 것이 아니라,
이들을 핍박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동족 유대인들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는 그 유대인들이
바울의 일행을 더 핍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5절에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바울 일행)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무슨 말이냐면, 요즘 말로 하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서
용역을 써서 야손의 집에 쳐들어간 것입니다.
이건 마치 바울의 일행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그래서 시민들이 응징하는 듯한
그런 일을 꾸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야손의 집에 쳐들어가서 보니, 우연히 바울과 그 일행들을 찾을 수 없었죠.
그래서 대신에 야손과, 그 집에 있던 사람들 몇을 끌고 가서 관리 앞에 세우고 모함하죠.
17:6~7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이 사람들이 가이사의 명을 거역했다' 라고 정치적인 올가미를 뒤집어 씌웁니다.
후에는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황제 외에 다른 신을 섬긴다'는 올가미로 몰아갔죠.
역사는 반복되는 것입니다.
17:8~9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다행히 바울 일행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손이 어려움을 겪었죠.
아무리 캐도 뭐가 나오지가 않으니까 '보석금을 받고 풀어 주었다'고 했는데,
아마 '각서나 서약서를 받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쓴 모양입니다. 주2)
한편 살전2:18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고자 하나 '사단이 막음'으로 해서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한 말이며,
특히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야손과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의 안전을 염려한 사랑의 배려 때문일 것입니다.
각서를 썼으니까, 괜히 야손과 접촉했다가는, 그들이 피해를 당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어느 지역이든지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만나는데, 갑자기 상황이 악화가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떠날 때가 됐다는 거죠.
바울은 더 이상 데살로니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빌립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또 몸을 피해야 됐습니다.
나중에 보면, 이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계속 쫓겨가면서.. 가는 도시마다 계속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희한한 역사입니다. 정말 하나님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십니다. 롬8:28.
그래서 핍박과 환난을 허락하시는 거죠.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옮겨갑니다.
17: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데살로니가를 빠져나올 때는, 밤에 빠져나옵니다. 상황이 위급했다는 거죠.
아주 오래 전에 바울은 다메섹에서, 밤에 광주리를 타고 빠져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행9:25
이때는 바울이 예수 믿고 회심한 초기 때였죠.
바울이 지금 도망을 가는데, 여유있게 가방을 싸고 짐을 꾸리고 떠나는 장면이 아닙니다.
사면에 모든 상황이 다급해져서, 그냥 급하게 피신 떠나는 상황입니다.
사전에 계획해서 가는 게 아니고, 급한 상황이 발생했으니까, 즉각 현장 대응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10절에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다는 겁니다.
그러니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 남겨져 있는 상황입니다.
배타고 올 때 4명이던 바울 일행이
누가는 빌립보에 남기고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 남겨지고
바울과 실라 2명만 베뢰아로 가게 된 것입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약 80KM가 떨어져 있습니다.
이틀이나 사흘 길로 갈 수 있는 도시입니다.
그곳에서도 바울 일행은 유대인 회당을 먼저 찾게 됩니다. 17:10
거기서 복음을 증거하자, 베뢰아에서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17:11~12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바울과 실라가 베뢰아로 갈 때, 아마 디모데도 어딘가 혼자 떨어져 숨어 있었겠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남아있다가
(성경에 그가 그때 데살로니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자세히 설명은 안 나오지만)
디모데는 나중에 혼자 베뢰아로 와서, 바울과 합류를 하게 됩니다. ↙
17: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위 구절에 보면, 지금 바울이 베뢰아를 떠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아직 베뢰아에 있는 상황입니다.
(성경에 일일이 다 기록 못 하죠)
디모데가 베뢰아에 혼자 머물렀다는 것은,
그가 앞서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와서 바울과 합류한 것입니다.
그런데 베뢰아에서, 데살로니가처럼, 디모데는 또 바울과 떨어지게 됩니다.
▲바울은 베뢰아에서 <혼자> 아덴으로 떠나게 됩니다.
17: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혼자)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위 구절은,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있고,
바울 혼자만 (아덴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베뢰아에서도, 복음을 믿는 신자들이 많아졌습니다.
80Km 떨어진 데살로니가에서 이 소식을 들은 거기 유대인들은
소위 '원정 핍박'을 베뢰아로 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을 내쫓았던 사람들이,
베뢰아까지 원정을 온 것입니다.
17: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바울 일행은 다시 도망을 가야 되는데, 이 상황이 단어 몇 개로 되어 있지만,
굉장히 긴박한 상황입니다.
디모데는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실라도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각자 볼 일 보러 어디로 갔겠죠. 폭도들이 미리 예고하고 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때 바울만 혼자 다급하게 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만큼 급했다는 거죠. 17:14
그래서 나중에 아덴에서, 디모데가 바울과 합류하게 됩니다.
(누가는 지금 빌립보에 계속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누가의 추가 언급이 없으므로)
17: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15절을 보십시오. 바울만 빠져나온 상황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인도자들이 (바울이 초행길이라서, 새신자들이 인도를 해 줬겠죠)
바울을 아덴까지 데려다 주고,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는 속히 아덴으로 오라고, 인도자들에게 당부(명령)하고
인도자들은 자기들의 고향 베뢰아로 돌아갔습니다.
조금 상상을 가미하면, 이렇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상상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지금 급히 배를 타고 폭도를 피해 가려는데,
(요즘도 공항에 가서 스탠바이 하고 있다가, 빈좌석 생기면 타고 가는 경우도 있죠)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항구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는 떠나려고 뱃고동 소리를 울립니다. 그들은 오지 않습니다. 상황을 몰랐던 거죠.
그래서 결국 바울 혼자만, 인도자들의 재촉에 못 이겨, 배를 타고 아덴으로 떠난 것이죠.
아마 아덴 행 배를 골라서 탄 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냥 가장 먼저 떠나는 배를 올라 탔는데, (일단은 폭도들을 벗어나야 했으므로)
그 배가 아덴으로 가는 배였던 것이죠. 바울 혼자 간 것으로 보아,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바울의 혼란
지금 바울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보죠.
나는 원래 아시아 (터키)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나를 마게도냐로 가라고 해놓고,
그런데 자기는 마게도냐(그리스 북부)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지금 폭도들에게 쫓겨서 아가야(그리스 남부)로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뭐지? 하나님이 왜 나를 이렇게 인도하시지?
내가 폭도들에게 당하는 한이 있어도, 거기 마게도냐에 계속 머물렀어야 되는 건가?'
나중에 바울은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살전2: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데살)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그러니까 바울은 마게도니아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환상 보고 갔으므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아가야 지방으로 보내시게 된 것입니다.
자 아가야 지방의 주요도시인 아덴은
마게도냐에서 남쪽으로 약 320KM 떨어져 있습니다.
뱃길로 바울이 아가야 지방으로 넘어갔을 때
실라와 디모데는 이제 베뢰아에 남아 있었습니다.
아덴에 도착한 바울은, 자신의 길안내자들에게
'빨리 베뢰아로 돌아가서 실라와 디모데를 내게로 빨리 오라고 전해 주십시오' 17:15
▲바울이 마게도냐로 <실라와 디모데를> 도로 보냄
드디어 디모데가 아덴에 와서, 바울과 합류합니다.
디모데가 아덴에서 합류했다는 내용은 성경에 꼭 집어서 안 나오죠.
그렇지만 아래 구절(살전3:1~2)을 보면, 디모데가 데살로니가로 보내지죠.
데살로니가 교회를 돌보러 간 것이죠. 그 말은, 디모데가 아덴에 왔다는 거죠.
바울 본인은 '마게도냐 인의 환상'을 받고, 마게도냐로 와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전도를 했는데,
그만 거기서 계속 쫓겨다니면서, 본의 아니게 아가야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마게도냐 전도 명령'이 자기 마음속에 계속 살아서 불타고 있으니까,
본인은 돌아갈 입장이 못 되니
디모데를, 자기 대신에 데살로니가로 보내서, 신생 교회를 돌보게 한 것입니다. ↙
살전3:1~2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이 시기에 누가는 빌립보 교회를 돌보고 있었고요.
△같은 시기에 실라는.. 행적이 성경에 안 나옵니다.
다만 이 시기에,
빌립보 교회는... 누가가 돌보고 있었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디모데가 돌보는 것으로 봐서 살전3:2
베뢰아 교회를... 실라가 돌보게 했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성경에 실라의 마지막 행적은 베뢰아였죠)
2차전도여행 중에 지금까지 여정에서
개척한 교회는, 그 세 곳이었거든요.
바울은 지금 아덴에 내려와 있고요.
나중에 바울은 아덴에서 고린도로 가서 오래 머물렀는데,
자기 전도팀을 고린도로 모두 부릅니다. *행18장
실라는 아덴에서 바울과 합류했다가, 다시 베뢰아로 보내졌든지
아니면 아예 베뢰아에 계속 머물러 있었든지.. 성경에는 안 나옵니다.
바울은 그래서 아덴에 혼자 남았다가, 고린도로 갑니다.
행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고린도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위 구절에 실라가 마게도냐에 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 의거, 실라가 마게도냐 지역의 베뢰아에서
신생교회를 돌보고 있었으리라 추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귀가 딱딱 다 드러맞게 되는 거죠.
빌립보교회 - 누가
데살로니가교회 - 디모데
베뢰아교회 - 실라
▲바울의 <혼자> 아덴 전도
다음 호에 계속
................................................
주1)
바울 일행은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인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 귀신들린 영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바울은 고민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을 고쳐 주자니 그렇고...
이렇게 고민했다는 흔적이 나옵니다.
16:18절에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바울이 처음에는, 그 여인을 피하고 그냥 지나갔던 거 같아요.
왜냐하면 루스드라에서 어릴 때부터 걸음을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었더니
그 동네가 바깥 뒤집혀서 바울과 바나바를 쓰스 Zeus 와 허메 Hermes 라고 섬기고
그것 때문에 많은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던 사람들이
바울을 질투하게 되고, 핍박을 받는 장면이 루스드라에서 나오게 됩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서,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내다버렸던 일이 있었죠.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이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주면
바울이 닥쳐올 그 후폭풍을 아마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바울이 마음을 돌이켜 여인을 고쳐줍니다.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바울이
결국 지나가지 못하고 그걸 해결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걱정했던 일이 또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귀신들린 여인을 통해서 점을 치는 사람들이
갑자기 그 일을 못하게 되니까... 바울을 고소하게 되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주2) 보석금 or 서약서 *행17:9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헬라어 '히카노스'를 우리말로 '보석금'으로 번역했으나,
이 말이 신약성경에 10회 이상 나오나
'금전'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인 적은 한 번도 없고
'많은, 충분한'이란 뜻으로 쓰였죠. 그래서 '충분한 서약'이 맞습니다.
NASB 도 pledge로, KJV도 security로 번역했는데, 돈이란 뜻은 아니고,
당시 가난한 서민들이, 무슨 보석금 낼 돈도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