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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사랑하는 다니엘 단9:1~2, 삼상12:2 ☞ <신년, 송구영신>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 만에 마치시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서 6장을 보면 다니엘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은총의 때나 역경의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기도로 힘든 세상에서 믿음의 순결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제목은 ‘성경을 사랑하는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성경공부를 통하여 동족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이 70년 만에 끝나고
해방의 날이 임박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민족의 장래가 캄캄한 절벽과 같은 시대에, 이런 비전은 실로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발견은 다니엘에게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그의 기도 생활은 기적을 낳았습니다.
말씀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위대한 비전을 갖게 하고, 기도는 기적을 가져다 줍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생명력이 있고
때를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그 행사가 형통케 됩니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삶을 산 사람들은 모두 성경을 사랑했고,
성경 속에서 위대한 삶의 방향과 목적을 발견했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을 만든 말씀은 요6:37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또 내게로 오는 사람은 내가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종교 시인인 윌리엄 쿠퍼를 자살로부터 구원하여
위대한 시인으로 만든 말씀은 롬3:24절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가 깊은 번민에서 벗어나게 한 말씀은
롬1:17절에 연관된, 마르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들을 때였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늘 잘 알고 있었던 말씀이지만, 그 날 그 시간에
그 말씀을 들을 때, 웨슬리는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리빙스턴을 아프리카 선교사로 만든 말씀은 마28:19~20절입니다.
그는 일평생 이 말씀을 붙들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자기와 함께 해 주심을 믿고서, 아프리카를 종횡무진 선교하며 다녔습니다.
존 낙스가 자신의 영혼의 닻을 내린 말씀은 요17:3절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근대의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암 케리를 만든 말씀은 이사야54:2절입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최근 인터넷 세상이 된 이후에, 인터넷 설교의 최고 클릭을 얻는 설교자는
인도의 잭 푸닌 Zac Poonen입니다.
그의 젊은 시절, 그를 가장 크게 변화시킨 말씀은, 요17:23입니다
<하나님이 예수의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것만큼 사랑하신다>입니다. rfcdrfcd.tistory.com/15974199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성 어거스틴, 탕자와 같았던 젊은 청년 어거스틴을 변화시킨 말씀은
롬13:12~14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중간 정리하면, 본문의 다니엘처럼,
모든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이 일평생 붙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2023년도에 한 해를 계속 붙들고 지내왔던,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일평생 붙잡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언약은 무엇입니까?
만약 그런 것이 아직 없다는 사람은, 성경을 열심히 읽지 않은 것입니다.
말씀은 씨앗과 같다고 했습니다. 막4: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열매를 얻으려면 ..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어떤 사역자는 아래 말씀을 금년 상반기에 가장 많이 붙들었다고 합니다.
삼상12:2 ‘내가 (사무엘이)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And I have walked before you from my youth even to this day.
‘사무엘이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는 영어성경에
‘사무엘이 너희 앞서 행하였다’입니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앞에서 행하는 사람입니다.
앞을 멀리 내다보고, 앞서 가며, 솔선수범하며, 범사에 앞장 서서 행하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이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렇게 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늘 ‘앞서 행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 기도는 잘 응답됩니다.
이런 예는 셀 수 없이 많이 들 수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오늘도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목자가 인도하시는 대로, 그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서, 목자를 따라갑니다.
또 어떤 종은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골1:22
이 구절이 자기 목회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성도님들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시1:2~3절의 약속에 의하면,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승리하는 2024년을 살려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기로, 굳게 결단하고,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본문의 다니엘이 승리하고, 민족을 구한 이유도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기도할 결심을 하게 되고,
그가 기도했을 때, 예레미야서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때는 메대 사람 다리오 왕의 통치 원년, 곧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고
바사 제국이 등장하는 때입니다.
이는 강력한 바벨론 제국의 멸망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해방의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역사적인 전환기입니다.
역사적 전환기에는 여러 가지 병리 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럽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술 마시고 향락에 빠집니다.
지난해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헌법재판소의 수도 이전 불가 판결,
최악의 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자 발생 등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이와 비례하여 술과 담배 판매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했다고 통계청이 발표하고 있습니다(2005.1.30.).
이 발표를 보면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98년 이후 처음으로 담배는 전년에 비해 22.4%나 늘어났고,
술 소비도 크게 늘어나 소주 출하량은 108만1천833㎘으로
전년도보다 3.8% 늘었다고 합니다.
이를 시중에서 주로 판매되는 소주 용량인 360㎖들이로 치면
무려 30억509만여병으로, 국내 20세 이상 성인을 3천500만명으로 가정할 경우
지난해 1인당 약 86병을 마신 셈이 됩니다.
맥주도 지난해 173만4천331㎘가 출하돼 전년보다 1.2% 늘어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500㎖들이로 치면 34억6천866만여병으로 성인 1인당 99병에 달하는 양입니다.
그리고 시대가 어려우면 현실을 매섭게 비판하여 정권에 반기를 듭니다.
아니면 나만 잘 살고 잘 살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러한 시기에 무엇을 했습니까?
2절을 보겠습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 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라.”
다니엘은 여호와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는 대제국의 총리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는 업무를 적당히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충성되히 하기 했기 때문에 매우 바빴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선지자요, 꿈으로 환상을 보기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을 공부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점심 시간에 틈틈이 여호와 말씀을 읽고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퇴근하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TV나 신문, 인터넷 등으로 풀지 않고
여호와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하루는 다니엘이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두신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칠십 년 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다가 70 년이 차면 해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족의 장래가 캄캄한 절벽과 같은 그런 시대에 이 말씀은
그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과 환희로 바꿔놓았습니다.
이 말씀은 그를 기도하게 했습니다.
말씀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위대한 비전과 위대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성경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생명력이 있고
때를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합니다.
시편 1편을 읽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을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사무엘상 3:1절을 보면 말씀이 희귀할 때 異像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즉, 그 시대는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육신만 남고 영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도자나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당시 가나안 종교에 영향을 받아 우상을 섬겼습니다.
히브리 신앙은 청각적이고, 가나안 종교는 시각적입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현세적이고, 감각적이며, 육신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에게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지자 이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언 기자는 “묵시 Vision 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느니라.” 잠언29:18 라고 했습니다.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비전은 현실을 정확히 통찰하고, 미래를 정확히 내다보는 안목을 말합니다.
우리가 비전을 보려면 현실에 대해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 때에 내일에 대한 진지한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이 말씀을 별로 읽거나 묵상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보지 않으니 비전이 있을리 없습니다.
비전이 없기 때문에 시대에 대한 깨어있음, 애통이 없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죽은 송사리 떼가 강물을 떠내려가는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시대의 조류에 따라 휩쓸려 갑니다.
방자해져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관, 희망, 사명, 목적, 방향을 찾지 못해 방황합니다.
자신의 분명한 기도제목이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 속담에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까 무릎에다가 망건을 쓰고 쫓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남이 하니까 뭣도 모르고 그저 따라 갑니다. 왜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까?
이는 내일에 대한 비전과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비전이 없습니까?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교회도 많고, 신학교도 많고, 선교 단체도 많고, 부흥사도 많고,
각종 기독교 서적도 많고, 설교 테이프도 많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유명한 목사님들의 각종 설교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실로 말씀이 철철 넘치는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를 살펴볼 때에 진정으로 말씀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말씀이 있다면 왜 사회는 이토록 부패하고 절망의 나락으로 자꾸만 빠져가고 있는 것입니까?
말씀이 있다면 왜 영혼이 그토록 피곤한 것입니까?
말씀이 있다면 왜 젊은이들이 비전과 꿈이 없어 현실적이 되고 육감적이 되어 가는 것입니까?
말씀이 있다면 왜 이 시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입니까?
저는 가끔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들에게 오늘의 한국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하고 꼭 묻습니다.
그러면 한결같이 희망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말씀이 철철 넘쳐나고 있는데 왜 이처럼 희망이 없는 것입니까?
이 시대는 말씀이 있는 것 같지만 말씀이 없습니다.
선지자 아모스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시대는 영적인 기근 시대요",
"영적인 기갈의 시대"니다. 시대와 젊은이들에게 향한 메시지가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말씀만 있다면, 오늘날 젊은이들은 창공을 나르는 독수리처럼 힘찬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클라크 교수(선교사)는 일본의 홋가이도 농과대학에서 젊은이들에게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외쳤습니다.
그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기 위하여 열심히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훗날 일본의 지성계의 거목들이 이곳에서 배출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후 일본을 복구하는 초석들이 됩니다.
▲말씀은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파워가 있습니다.
말씀은 능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말씀에 모든 보화가 담겨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디모데후서 3:16)”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합니다(딤후3:15-17).
말씀은 삶의 의미와 가치관, 희망, 목적과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말씀은 이 시대에 내가 해야 할 사명을 가르쳐 줍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각자 우리에게 두신 희망을 보여 주십니다.
말씀은 이 시대와 이 민족과 세계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십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한 기도제목을 가르쳐 줍니다.
말씀은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희망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말씀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이 때 그는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19:21b).”
당시 식민지 백성이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을 때에, 바울은 로마선교의 큰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는 우상을 섬기는 그 시대에 대한 분노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심고자 하는 희망이
심령에서 용솟음쳐 올라 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5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더 나아가 타 문화권인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희망에 불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에 그는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말씀이 없으면 현실적이 됩니다.
그러나 말씀이 임할 때에 생각과 스케일이 원대해지고, 웅장해집니다.
벅차 오르는 감격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세계를 가슴에 안고 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공부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물질만능주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과거에 대학생들은 명분을 귀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명분도 신의도 우정도 돈 앞에는
다 소용없습니다. 점점 세상은 돈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영혼은 점점 메마르고 사회는 점점 타락하여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회를 말기 현상, 또는 위기의 시대 등 여러 단어로 진단하지만
한 마디로 이 시대는 ‘말씀이 없는 시대’라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암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성경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음을 믿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을 암송하고,
성경을 묵상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인격이 성숙해지고 인격이 온전하게 성장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안이숙 사모님 간증집 <죽으면 죽으리다>에 보면,
안이숙은 평양 형무소에서 성경을 매일 50장 이상씩, 어느 날은 100장씩 암송했다고 합니다.
평소에 말씀을 많이 암기해 둔 것이,
감옥 안에서도 성도의 승리하는 삶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말씀이 씨앗이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짧은 생각에, 과거에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이
‘무슨 지식이 있었겠나? 뭣을 제대로 알기나 했겠나?’ 하겠지만,
사실 그들은 너무나 뜨거운 사랑과 열정으로, 주님을 섬겼고
일제와 맞서 싸워 이겼으며, 훌륭한 한국교회의 승리의 역사를,
우리 후대에게 물려주었으므로, 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주야로 묵상하여 비전과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사랑하여 장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염려로부터 벗어나
하늘 나라의 영광과 하늘 나라의 소망의 빛으로 가득 차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비전을 줍니다. 비전은 기도하게 합니다. 기도는 기적을 가져다다 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