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V9tkje53YVs
◈호렙의 시간, 가데스 바네아의 시간 신1:5~8 2024.01.02. ☞ <불>관련글
◑도입 / 속도를 더 올리고, 더 깊이 들어가는 한 해!
자 2024년도에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은, 주일날 신년 메시지에서 나눴듯이
"더 깊게 들어가라 Go Deeper"는 것입니다.
영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여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속도로 가는게 아닙니다.
속도의 변화가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자동차를 보면, 1단 기어로 갈 때가 있고, 2단으로 올리고, 2단에서 3단으로 올립니다.
올리는 걸 영어로 shift up 이라고 하죠.
그런데 만약 자동차가 달리면서 쉬프트업 하지 못하고,
1단이나 2단, 또는 3단으로, 즉 계속 똑같은 속도로만 달리게 되면
엔진 과열이 되어서, 엔진이 고장나 버리지요.
그래서 주행 속도에 맞춰서, 변속기도 적절하게 쉬프트업 해 줘야 됩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변화의 때에는, 그 변화에 맞춰서, 우리를 쉬프트 업 또는 쉬프트 다운 해야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영적인 삶은, 계속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삶을 반복하는게 아니에요.
계속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게 아닙니다.
운전을 할 때, 계속 변속기어를 적절하게 변속시키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행하시는 일들을 따라가다 보면,
계속해서 우리의 영적인 속도들을 바꿔 줘야 됩니다.
그래서 Shift Up 하는 것이 올해 주셨던 첫 번째 키워드이고,
그리고 쉬프트업 하는 것의 핵심은 더 깊어지는 것이라고 했죠. Go Deeper!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하는 것은, 지적인 호기심이지, 꼭 영적인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것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 이전에, 자기가 이미 아는 것을 깊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얘기를 예로 말씀드렸죠.
사랑이 더 성숙해진다는 것은, 그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지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해서, 그래서 오늘은 이 여자, 내일은 저 여자
그렇게 새로운 것을 찾는 게, 사랑이 성숙해지는게 아니지요.
영적인 것도 이와 같다는 거예요.
이 영적인 활동은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게 아니지요.
부부가 사랑해서 함께 살기 시작하면
한 20년 30년 같이 살았는데 계속 뭐 새로운게 나오나요? 아니잖아요.
한 3년 4년 살아 보면, 뭐 알 거 다 알고..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지루해지는 건 아니지요.
20년, 30년, 40년을 같이 살아도
그 사랑이 더 깊어지고, 더 깊어지고, 더 깊어지는 것이 영적인 거지요.
그렇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만 추구한다 그러면,
아마 부부가 30년 같이 사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그래서 영적인 것은,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2024년도에는, 더 깊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깊어지는 해가 되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깊어지는 해가 되시고,
형제들을 향한 사랑과 배려도 더 깊어지는,
가족을 향한 사랑과 배려도 더 깊어지는,
또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섬김도 더 깊어지는,
쉬프트업 하고, Go Deeper 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1단으로 달렸던 분들은
적어도 2024년 동안 적어도 2단의 속도로 달릴 수 있기를 축복하고요.
또 2단으로 지금까지 달려오신 분들은 3단의 속도로 달리시길 축복하고요.
3단으로 달리셨던 분은, 4단이나 5단으로 달리시는 새해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참고로, 요즘 자동차는 기어가 16단으로 자동 변속된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5단이었죠)
하여간 여러분들의 영적인 속도가,
이전과 달라져서 한층 더 가속화되고,
또한 깊이도 더 깊어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기서 '속도'는, '깊이' 하고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영적인 깊이가 1단에서 2단으로,
2단에서 3단으로, 3단에서 4단과 5단으로 더 깊어져서,
하여간 적어도 한 단계 이상씩은 더 깊어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한 해가 지났을 때는, '하여간 작년보다는 와~ 내가 더 깊어졌구나' 하는 것을
여러분도 알고, 셀 사람들도 알고, 주위에서도 다 알게 되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그래서 여러분들, 방금 간증해서 나왔듯이, '투덜거리지 않는 것' 이게 굉장한 깊이거든요.
이거 사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성경에, '자기 말(언어)을 제어할 수 있으면 그같은 지혜가 없다' 그랬어요.
사람이 자기 말을 제어하는 것은, 사실 영적인 성숙도 중에서도 굉장히 높은 레벨의 성숙에 이른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 말을 보면, 대충 영적인 깊이를 알 수 있거든요.
하여간 여러분들의 말도, 금년에는, 투덜거림과 짜증과 불평이 없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이전보다는 더 진실한 말을 하게 되기를 축복하고
이전보다는 더 축복의 말들을 하게 되기를 축복하고
이전보다는 더 인내의 말들을 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이 달라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섬김과 헌신의 깊이도 달라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전에 섬겼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시고요.
이전에 하나님께 헌신했던 것과는, 쉬프트업해서, 또 다른 높은 차원으로 헌신하는
그런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신명기는, 40년의 광야 생활을 끝나고 요단강을 목전에 앞둔 시점에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제 이 요단강만 건너가면,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즌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광야에서 생존을 위해서 살아왔다면
이제 요단강을 건너가게 되면, 땅을 정복하고 차지해야 되는 그 일이 시작되지요.
그러니까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요단강 바로 동편(모압땅)에서 했던
모세의 마지막 설교 세 편을 모아놓은 것이 신명기입니다.
그래서 이 신명기가 주어진 때는
변속기어를 바꿔야 되는 때였어요.
가나안의 시간이 이제 바로 앞으로 다가오고 있고,
그래서 쉬프트업을 해야 되는 시간이었고,
이 쉬프트업(고단으로 변속)의 핵심은 뭐냐면
신명기에서 모세가 정말 지겹도록 반복하는 말은, 한 마디로 "깊이를 더하라"는 거에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
-너희가 말씀을 청종하라, 말씀에 순종하라.
하여간 이게 다 예요. 전부 예요.
신명기는 이 이야기를, 이리 말하고, 저리 말하고, 다시 반복하고, 또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가운데,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하는 지적 만족이 아니라,
더 깊은 영적인 만족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이 이전과는 또 다른 수준으로 깊어지는, 쉬프트업 되는
그런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호렙의 시간과 가데스바네아의 시간>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두 개의 시간이 있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두 개의 시간이 있는데,
그것은 호렙의 시간과 가데스바네아의 시간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는, 이 두 개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두 개의 경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호렙에서 보내는 시간이 있어야 되고
가데스바네아에서 보내는 시간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오늘은 이 두 개의 시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호렙의 시간은, 불과 사명을 받는 시간이고,
가데스바네아의 시간은, 사명지로 출발하는 시간입니다.
◑호렙의 시간
호렙산은, 시내산과 같은 지명인데요.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곳이고, 모세가 또 떨기나무 사이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죠.
호렙에서의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머무는 시간이에요. ↔가데스바네아는 행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호렙산에 머물게 되는데, 약 8개월 동안 머뭅니다.
꽤 긴 시간을 머무는 거죠.
그 8개월 머무는 동안 뭘 했을까요?
이 8개월 동안 한 일에 대해서, 신명기 4장에 보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4: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11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12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호렙산에서 했던 일은, 한마디로 "여호와의 불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었어요."
이게 '호렙의 시간'입니다.
그 불 속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대요. :12
그 불속에서,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었던 언약이 다시 갱신됩니다.
그 불속에서,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이,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이 됩니다.
호렙 이전까지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었지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은 아니었어요. 그것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그러나 이들이 호렙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불 가운데 임했을 때,
그래서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실 때도, 불 가운데 임하시잖아요.
아브라함이 재물을 쪼개 놓고 깊이 잠들었는데, 불가운데 여호와께서 임하시면서
그 쪼개진 제물 사이를 지나가시죠. 창15:17
이게 뭐예요? 생명을 건 언약을 체결하신 거예요. *결혼식 같은 언약식
그런데 이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것은 우리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하나님의 언약이고,
그 하나님은 우리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던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은 우리 아브라함과 동행하셨던 하나님이지,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하고는 거리가 있는 거예요.
그냥 귀로 전해 들었던 하나님, 전해 들었던 언약이지요.
그런데 출애굽 백성이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에게 불 가운데 임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똑같이 불 가운데 임하신 거예요.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불 가운데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똑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 가운데 말씀하신 거예요.
아브라함과 불 가운데 언약을 맺으셨던 하나님께서
똑같이 이스라엘과 불 가운데서 언약을 맺으신 거예요.
이게 여러분 '호렙의 시간'입니다.
그곳이 호렙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금도 이 호렙산을,
자기 민족이 시작된 곳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과 맺으신 이 언약이,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된 날이 된 거예요. *출19장의 장면을 모세가 지금 회상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시작되는가요?
그것은 '호렙의 날'이 있어야 돼요.
여호와의 불이 임하셔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
이스라엘의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불로 임하셔서 말씀하시는 시간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이 아니라, 모세와 맺었던 언약이 아니라,
오늘날 나와 맺으신 언약.. 그 언약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아브라함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시간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호렙의 시간'입니다.
▲자 그래서 모세가 이 '호렙산에서 여호와 앞에 섰던 날'이라고 부르면서
호렙산에서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대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신4: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출19장 시내산 언약의 회상, 같은 사건, 시내산과 호렙산은 언어의 차이, 백두산 장백산 처럼
그러니까 '너희가 생존하는 동안에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해야 될 한 날이 있다'는 거예요. 4:9
그날이 뭐냐면, 호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섰던 날이라는 거예요. :10
이 날이 너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는 거예요.
너희가 살아있는 한, 숨이 붙어 있는 한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되는
아주 중요한 한 날이 있는데, 그날이 뭐냐면 호렙산에서 여호와 앞에 섰던 날입니다.
즉 '호렙의 날'이라는 거예요.
즉,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되는 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경험해야 되는 날, 그날이 '호렙의 날'입니다.
그리고 그 호렙의 날을 통과하면서 조상의 하나님이 비로소 '나의 하나님'이 되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되는 날이예요.
그래서 이 호렙의 날이 없으면, '나의 하나님'도 없고요,
'나와 맺으신 하나님과의 언약도 없다'는 거예요.
그냥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고, 뭐 목사님의 하나님일지는 모르지만
'나의 하나님'은 없다는 거예요.
호렙의 날을 지날 때, 비로소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되고,
성경말씀이 '나와 맺으신 언약'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날이 있습니까?
이 날이 있으셔야 돼요.
여러분에게 '성령의 불'이 임한 그날이 있으십니까?
성령의 불의 임해서 나의 죄를 조명하고,
성령의 불의 임해서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에게 쏟아 부으신 날,
이날이 여러분에게 있으십니까?
만약 그날이 아직 없다면, 이거부터 시작하셔야 돼요.
2024년이 호렙에서부터 시작되어야 돼요.
여호와의 불 가운데 나의 모든 죄를 조명하신 하나님의 거룩함과
나의 이런 죄악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정말 불처럼 우리 가운데 부어지는 호렙의 날.. 이걸로 시작하지 않으면
그 다음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아요.
호렙산 이란 장소는 시작이에요.
이스라엘이 자기 민족이 시작된 날이, 이 날이라고 믿고 있는 거예요.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의 불을 대면한 그날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에요.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여정도 똑같습니다.
호렙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대면하는 날,
호렙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불이 임하는 날,
그래서 그 불 가운데 나의 죄가 소멸되는 것을 보고,
불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모든 죄를 덮는 것을 보고,
8개월을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대면하면서 지냈다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우리의 신앙 여정의 시작이 되는 거예요.
2024년이 '호렙의 날'로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로 시작되기로 축원합니다.
그냥 모태신앙으로 자란 거,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요.
교회를 20년 30년 다닌 거,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요.
여호와 하나님을 대면해야죠.
여호와 하나님의 불을 대면해야지요. 아멘!
▲자 호렙산에서 여호와 앞에서 섰던 날을 상기시킨 모세는 *40년 전 일이었죠.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계속 얘기합니다.
신4:11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출19:18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이는 짙은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어 생긴 어두움을 뜻하는데,
이 역시 맹렬한 불꽃과 더불어 하나님의 현현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현상이죠.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시104:2, 딤전6:16
당신을 인간들에계 현시(顯示)하시기 위해서는
그 눈부신 영광의 광채를 반드시 구름과 어두움으로 가리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불과 더불어 구름과 어둠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출19:9, 16
그래서 모세는 신4:11, 12, 15, 24절에서 4번이나 '여호와의 불'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4:11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12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15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모세가 호렙산에서 여호와 앞에 섰던 날을 얘기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가 '불'이에요.
그래서 '호렙의 날'은, 한 마디로 '여호와의 불이 임하는 날'이에요.
그래서 우리 부모님 세대 때는, '불'이란 표현을 많이 썼거든요.
근데 요즘은 잘 안 쓰는 것 같아요.
'불 받았다' 말을 정말 많이 썼거든요.
요즘은 그런 말을 잘 안 쓰는데, 사실은 가장 성경적인 표현 아닙니까.
호렙에 섰던 날 여호와께서 어떠셨다고요?
불로 임하셨다는 거예요.
그 불 가운데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그 불 가운데 언약을 갱신하셨다는 거예요.
그 불 가운데 우리의 죄를 소멸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순절 성령님의 임재도 불로 임했죠.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장의 오순절은, 신약교회가 시작되는 날에, *이스라엘 나라와 대비
예수님의 제자들이 만났던 '호렙의 날'입니다. *오순절 날과 대비
그러므로 '호렙의 날'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피해갈 수 없어요.
모든 사람이 호렙의 날의 만나야 돼요.
모든 사람이 호렙의 시간을 통과해야 돼요.
제자들에게도 그 시간이 왔는데, 그게 오순절 날이었죠.
그리고 이 제자들이 맞이했던 호렙의 날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맞이했던 호렙의 날과 똑같이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 임하셨어요.
똑같이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 임하시고,
똑같이 불 가운데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신약교회)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들의 허물은 거룩한 불 가운데 소멸되고
하나님의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이,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면서 구약의 옛 시대가 끝나고, 신약의 새 시대가 시작되는 쉬프트업이 일어나지요.
우리 각 사람의 여정도 이와 같습니다.
호렙의 날, 여호와의 불이 임하는 날,
그 불 가운데서 우리는, 이전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게 되는 거예요.
육신적으로 살던 삶이 끝나고, 영적인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 불 가운데서 옛 사람은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탄생하게 되는 거예요.
여호와의 불을 사모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저는, 새해에 시작되는 3주 기도회가, 여호와의 불로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3주 기도회 동안에, 우리 각 사람 각 사람이,
호렙의 날을 경험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축복합니다.
호렙산에 임하셨던 하나님의 불이,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이곳에 여호와의 불이 임하기를 기대합니다.
이것은 혼자 받는 분이 아니라, 다같이 받는 불이거든요.
본문 신명기에서는 민족이 함께 받았고요. 행2장에는 제자들이 함께 받았어요.
함께 그 불이 임할 때,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받는 불과는
또 다른 차원의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저는 저희 교회 공동체가, 이번 3주 동안 함께 기도하면서
호렙의 하나님을 대면하는.. 그 일로 금년 한 해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자 여호와의 불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임합니다.
신4:12~15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13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1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가 거기로 건너가 받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36 '여호와께서 너를 교훈하시려고 하늘에서부터 그의 음성을 네게 듣게 하시며
땅에서는 그의 큰 불을 네게 보이시고 네가 불 가운데서 나오는 그의 말씀을 듣게 하셨느니라'
여호와의 불이 임할 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호와의 불은 말씀의 불이에요.
불이 임할 때,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임하는 거예요.
말씀이 임하는 것은, 전혀 모르던.. 갑자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는 게 아니라,
대개의 경우,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말씀일 수 있어요.
(제가 영적인 건, 새로운 게 아니라 그랬잖아요)
이미 알고 있던 말씀인데, 여호와의 불 가운데
내 안에 그 말씀이 막 살아나는 거예요.
내 영혼이 그 말씀을 경청하는 거예요.
내 영혼에 그 말씀이 막 울리는 거예요. 아멘!
이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거예요.
여호와의 불은 말씀의 불입니다.
성령의 불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에 새겨지지요.
또 언약의 말씀이 우리에게 선포됩니다.
여호와의 불 가운데, 언약이 임할 때..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그 말씀을 지키겠다는 헌신이 나오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드림이 나오고, 결단이 나오죠. 이게 불의 역사입니다.
저도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만나면서, 이 여호와의 불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불을 경험할 때마다, 제 신앙이 하나씩 하나씩 깊어져 갔던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여호와의 불이 임할 때, 그곳에서 제 영혼에 새겨졌던 말씀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 말씀 앞에 헌신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제 삶을 드리고, 여호와께 헌신했던 기억들이 있어요.
그게 뭐예요? 불 가운데 하나님을 대면하는 거예요.
저는 금년 2024년도에, 저와 여러분이 불 가운데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의 말씀 앞에 엎드려지는 해,
여호와의 말씀 앞에 헌신하는 해,
여호와의 말씀 앞에 내 삶을 드리게 되는 해...
이게 여호와의 불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여호와의 말씀 앞에서 반응하는 '호렙의 시간'으로 한해를 시작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도전합니다.
▲또한 호렙의 불 가운데서 약속이 임해요.
약속이 임하는데, 이 약속은 사명이고, 비전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이는, 우리를 향한 목적을 가지고 계세요.
우리의 삶은 방황이 아니에요. 여정이죠. 즉 분명한 목적지가 있어요.
불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목적지를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너희는 내가 약속한 땅을 차지하라'
이게 여호와의 불 가운데 임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호와의 불 가운데 서 보지 않은 사람은, 자기 인생의 데스티니가 뭔지 몰라요.
자기가 무엇을 향해 가야 되는지를 몰라요.
그냥 하루하루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여러분 절대 속지 마십시오. 그럴듯해 보여요. 그럴듯해 보여요.
그냥 매일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멋있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경적은 아니에요. 무슨 말이냐면, 계속 설명을 들어보세요.
성경 어디에, 성경에 나오는 어떤 사람이,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과 동행하는게 어디 있어요?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며 분명한 목적지를 보여주셨죠.
목적지가 있다는 거예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목적지가 있다는 거예요.
그가 그 인생을 통해서 성취해야 될 사명이 있고요,
그가 그 인생을 통해서 차지해야 될 땅이 있고, 약속이 있고, 기업이 있다는 거예요.
이거 없이 '그냥 하루하루 동행하다 보면 뭔가 되겠지..' 이 말에 속지 마세요.
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땅이 있고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이 있어요.
'너는 내가 약속한 땅을 반드시 차지하라'
이 사명과 이 비전이 언제 보여진다고요? 호렙에서 부어지는 거예요.
호렙에서 여호와의 불이 임하실 때, 그 불 가운데서
우리의 사명과 우리의 비전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게 약속이고, 언약이에요. 아멘!
이 호렙의 시간이 여러분에게 있으셨습니까?
만약 아직 없으셨다면, 이 호렙에서부터 시작해야 되고요.
또 과거에 이미 있었지만, 그 불이 다 식어버렸다면
다시 불부터 지펴야 됩니다.
호렙에서 여호와의 불이 임할 때
그 불로부터 우리의 신앙 여정이 시작되는 거예요. 아멘!
출애굽 백성들이 거기서부터 시작한 거죠.
이 호렙이 없으면, 말씀도 없고 언약도 없습니다.
그래서 호렙이 없는 사람은
그냥 지식으로 성경을 읽고요, 습관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냥 종교 생활일 뿐이지, 거기에 생명은 없어요.
이 날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보면, 출애굽기에 보면 뭐라 그러냐면
'산이 흔들리고 백성이 떨었대요.'
호렙이라는 경험은, 잊어버릴 수 있는 경험이 아니에요.
산이 흔들리고 백성이 떨었던.. 똑같은 날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만약이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면, 다시 호렙으로 돌아가셔야 됩니다.
호렙에서부터 시작하셔야 되고요.
'아직 호렙이 뭔지 나는 모르겠다. 목사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분명히 여러분 중에 그런 분이 계실 텐데,
그렇다면 이 호렙을 반드시 지나셔야 됩니다.
이건 모르고서는 영적인 삶을 시작할 수 없어요.
이건 모르고 가는 신앙생활은, 그냥 지식으로 성경 읽는 거고요.
습관으로 예배드리는 겁니다... 영적 성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호렙의 날을 맞이하십시오. 여호와의 불을 받으십시오.
불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불 가운데 비전을 받으십시오.
불 가운데 사명을 받으시고, 불 가운데 헌신하게 되고,
불 가운데 반응하게 되는 이 영광된 호렙의 날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가 있습니다. 그런데 호렙의 날이 전부가 아니에요.
두 번째 시간이 있다는 거예요. 뭐냐면 가데스바네아의 시간입니다.
◑가데스바네아의 시간
가데스바네아는, 호렙에서 8개월이 지났을 때,
하나님께서 행군 명령을 내리신 곳이에요. 이게 가데스바네아 입니다.
(불행히도 처음엔 불순종했죠. 그러나 40년이 지난 후에는 행진 명령에 순종합니다)
때가 차니까 하나님께서 '가서 땅을 정복하라'며 진군 명령이 떨어지거든요.
그게 가데스바네아의 시간입니다.
신1:6~8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
7 방향을 돌려 행진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방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네겝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8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만약 여러분 우리가 있던 곳이 진짜로 호렙이라면,
반드시 이 진군 명령이 떨어지게 돼 있어요.
만약 이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호렙이 아닌 거죠.
이거 사람들이 많이 속거든요.
네 저도 뭐 30 몇 년 신앙생활하면서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었는데요.
우리가 참 많이 속아요.
근데 이게 정말로 여호와의 불을 대면하고 있는 거라면
반드시 행진 명령이 떨어지게 돼 있어요.
계속 거기 머물러 있는게 아니에요.
'너는 이제 행진하여 내가 줄 땅을 차지하라' 는 액션 명령이 반드시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떨어지지 않고,
1년 지나고, 2년 지나고, 5년 지나고, 10년 지나도
그냥 계속 여호와 앞에 서 있기만 해요. *호렙의 날
그것은 사실은 여호와 앞에 서 있는다고 하는 내 감정을
계속 만족시켜주고 있는 그런 혼의 작용이지,
사실 영의 작용은 아닐 수 있어요.
정말로 우리가 호렙산에 서 있다면, 때가 됐을 때, 반드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될 일, 우리의 사명, 우리가 차지해야 될 땅, 우리의 기업을 반드시 말씀하셔요.
만약에 행진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호렙에 있는게 아니에요.
40년 광야 생활 중에 있는 거죠. 그냥 뺑뺑 돌고 있는 거죠.
어디선가 실패해서, 뭔가에 불순종해서, 목적 없이 광야를 떠돌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호렙산에 왔습니다.
그곳에서 8개월간 여호와를 대면해요. 그리고는 행진명령이 떨어집니다.
'강을 건너가 땅을 차지하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실패합니다. 불순종하지요.
그랬더니 그 다음에 뭐가 이어져요?
40년의 방황이 이어지는 거죠.
이 40년의 방황 가운데는, 더 이상 행진명령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가데스바네아에 와서, 다시 재차 행진명령을 들을 때까지 긴 시간(38년)이 걸립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호렙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1년 지나고, 2년 지나고, 5년 지나도 아무런 하나님의 명령이 없어요.
아무런 비전도, 사명도 주어지지 않아요.
그러면은 자는 광야에 있는 거지, 호렙에 있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문제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요.
광야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냥 내팽개쳐 두신게 아니잖아요.
광야 생활 동안에도, 매일 만나를 주셨어요. 매일 먹이셨어요.
또 광야에서 기도하면 물도 주셨어요. 또 고기도 주셨어요.
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도 하셨어요.
자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스라엘처럼) 광야의 시간 동안에도 경험할 건 다 경험했어요.
기도 응답도 경험합니다.
물 달라고 하니까 물 주셨잖아요.
또 날마다 만나도 주셨잖아요.
인도하심도 경험합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래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착각을 합니다.
자기는 광야에서 뺑뺑이 돌고 있으면서, 호렙에 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아니에요. 여러분, 그것은 광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이지,
사명을 위한 행진은 아니에요.
이 둘의 차이가 보이십니까? 이거 볼 수 있어야 돼요.
그건 그냥 광야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지요.
그래서 '하루하루 동행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광야에 있으면서, 자기가 호렙에 있다고 속게 된단 말이에요.
광야에서도, 하루하루 동행하는 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분명히 있어요. 간증도 있어요.
'와~ 내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런 위기에서 나를 건지셨어,
내가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나의 재정의 필요를 채우셨어!'
광야에서도 만나 주셨죠.
광야에서도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해 주셨죠.
광야에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단 말이에요.
그러나 광야 뺑뺑이와
'너는 일어나 행진하여 내가 너에게 주는 땅을 차지해라'
이건 다른 거라는 거예요. 이건 전혀 다른 거라는 거예요.
우리가 정말로 호렙에 있다면, 호렙에서 광야로 들어가면 안 돼요.
호렙에서 가나안으로 행진해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호렙에서 이어지는 것은, 광야에서 뺑뺑 도는 것이 아니라
사명의 길로 가야 된단 말이에요.
▲맞아요. 우리의 지나온 세월들을 보면, 호렙의 시간들이 있었어요.
아마 여러분도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크고 작은 호렙의 시간들이 있었을 거예요.
그러면 그 호렙의 시간에, 어느 타이밍에선가
분명히 하나님이 사명을 말씀해 주셨을 거예요. '네게 이 일을 맡기노라'
그런데 여러분이 뭔가 삐끗한 거예요.
-못 들었든지..
-아니면 두려워서 주저했던지..
-아니면 못들은 척 했든지..
-아니면 무시했든지... 하여간 뭔가 있은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에 뭐가 이어지는 거예요? 광야 뺑뺑이가 이어지는 거예요.
40년 광야가 이어지는 건데, 그때도 은혜는 있단 말이에요.
만나를 먹이시고, 또 물도 마시게 하시고,
또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다 해 주신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다음에 신자들은 뭐라고 신앙을 정의하기 시작하냐면
'그냥 하루하루 신실하게 동행하는게 신앙이야'
아니요. 여러분, 그거는 광야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모든 믿는 자들이 여정은, 분명한 목적지가 있단 말이에요.
분명한 사명이 있고,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해서, 그 사명을 위해서라면
내 생명도 아깝지 않다고 했던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이 있어요. 기업이 있어요. 땅이 있어요.
그 땅을 차지하러 가는 행진을 해야
그래야 올바른 호렙에서의 출발이 진행되는 건데,
그렇지 않고 광야에서 뺑뺑이 돌면서, 스스로 속는단 말이에요.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크리스천은 사명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저 주어진 땅에서 40년 광야 떠돌듯이 떠돌다 가는 존재가 아니에요.
분명한 목적지가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사명이 있고, 각 교회에게도 사명이 있고, 각 민족에게도 사명이 있어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이루어야 될 사명이고,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목적이 있는 인생이지, 그저 사는 인생이 아니에요.
그걸 데스티니라고 하죠.
우리는 주께서 주신 땅을 차지하는 일, 즉 자기 데스티니를 이루어 가야 되는 존재이지,
그냥 시간을 때우며 살다가, 시간이 다 되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세대에게 신명기가 주어지는 거잖아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요단을 건너서,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을 차지해라는 거예요.
자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시간, 즉 가데스바네아의 시간이 있는 겁니다.
가데스바네아는 어떤 곳이냐면, 사명이 시작되는 곳이고요.
우리의 데스티니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주신 땅을 정복하는 사명이 시작되는 곳이에요.
호렙의 시간을 보낸 사람에게는, 반드시 가데스(바네아)의 시간이 옵니다. *사명지로 출발하는 시간
광야를 떠도는 사람에게는 가데스의 시간이 없겠지만,
호렙의 시간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행진명령이 떨어집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2024년이 새로운 행진명령을 받는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새로운 행진 명령을 받는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오.
크리스찬은 사명이 있는 존재지,
그저 주어지는 대로 현실 상황을 헤쳐나가는 존재가 아니에요.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바로 이 함정에서 허우적대는지 모릅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도우시고, 은혜도 주시고,
바위에서 물도 내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도 하십니다.
또 성막에서 들린 예배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이 큰 그림에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차피 목적지가 없는데 말입니다.
어차피 광야 40년은, 모세의 세대가 다 죽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있지,
늙은 세대는, 그거 말고 다른 이유가 없었어요. 아무 목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그 시간이 흘러가도록 기다리는 거예요.
혹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그렇게 된다면, 너무 슬픈 일 아닙니까?
우리 각자에게 주어져 있는 시간이 있을 거예요. 80세가 될지, 100세가 될지...
그런데 그 시간이, 그냥 그 시간이 다 가기를 기다리는 거라면,
이것처럼 슬픈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요 여러분,
크리스찬은 40년 시간이 다 가기를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40년 동안 아우 그래도 신실하게 하나님과 매일매일 동행했어!'
그게요, 광야를 방황한 거지, 동행한게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동행했다고 하는 건 뭐냐면, 하나님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고,
하나님과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고,
하나님과 함께 그 땅을 차지하고... 이게 동행하는 거예요.
바위에서 물이 나왔다고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받았다고요?
결국 가나안에 못 들어갔으면.. 뭐가 다른 거죠?
(물 안 나온 것과, 구름 기둥 인도 못 받은 것과.. 어떤 면에서 별 차이 없어요)
이게 40년 광야 생활은 참 허탈해요.
모세 세대가, 어른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거든요.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물도 주시고요. 만나도 주시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나, 그렇게 안 하나.. 도대체 뭐가 다른 거예요?
어차피 40년 시간 있다가 다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을 텐데....
우리 인생이 그렇게 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주어져 있는 시간이 그냥 흘러가기를 기다리고 있기만 한다면,
즉 사명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의 길을 행하지 못하고,
그저 뺑뺑이 돌기만 한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인생 낭비 입니까?
그런데도 '제가 하루하루 동행했습니다.' 이 거짓말에 속지 말자는 거예요.
우리는 분명히 이루어야 될 사명이 있고요. 분명히 정복해야 될 땅이 있고,
받아야 될 기업이 있어요. 행군 명령이 들릴 겁니다.
우리가 호렙에 있다면, 분명히 행군 명령이 들릴 거예요.
이 명령에 반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하나 주목해서 봐야 될 것은, 이들 이스라엘 민족이 다 함께 호렙에서
하나님을 대면했다는 거예요.
각각의 개인이 대면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함께 대면했다는 거예요.
특별한 경우에는 뭐 개인이 대면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보면, 신약시대에도 오순절 불이 임할 때도
120 성도들이 함께 경험하고 함께 불을 받는 경험을 하죠.
여호와의 불이 임할 때 보면, 3천명, 5천명이 함께 불을 경험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잖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이루어야 되는 사명은,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게 신명기에 또 하나의 주제입니다.
전쟁은 군대가 함께 싸우는 거지, 개인이 싸우는 싸움이 아니에요.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병사의 아이덴티티가 아니고,
UFC 파이터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어요. 혼자 싸우는 싸움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싸움은 UFC 파이터가 아닙니다. 전쟁이지요.
전쟁은 뭐예요? 함께 치르는 거예요.
그래서 여호와의 불을 공동체가 함께 받고,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함께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2024년 올 한 해가, 우리 교회가 다 함께 호렙의 불을 받고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함께 하나님을 대면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사명을 받고
함께 비전을 받고, 함께 행군 명령을 받는 그런 날이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