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뉴포뉴스 교회들 신년 연합 성회 첫째 날 (youtube.com)
17:50 ~ 끝까지 녹취
◈거듭난 성도의 구체적인 증거 4가지 P2 요10:10, 벧전3:21, 딤전1:15
◑은퇴 후 마지막 황혼이 아름다운 인생이 되려면
본문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설교 막바지에 '무엇이 생명을 얻는 것이며, 더 풍성히 얻는 것'인지 설명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제가 생각할 때,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
한국교회에 가장 큰 문제는, '거듭난, 중생한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성도들이 많고,
또 거듭나고 중생했더라도, 오래도록 영적 침체 가운데 빠져 있는 교인들이 많다'
는 것입니다.
제가 이 문제를 위해서 많이 기도하고,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는데,
며칠 전에 제가 지OO교회 원로 목사님 설교를 들었거든요.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분이 은퇴하고 난 다음에 시간이 있어서
TV 설교방송에서 설교하는 많은 분들의 설교를 들었더니
"20명 중에 한 명 정도가 중생과 거듭남, 회심에 대해 설교하고,
19명은 다 '교회에 필요한 설교를 하더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제가 좀 용기를 갖고, 오늘 저녁에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거듭난 증거가 불분명한 선교사, 또는 영적 침체에 빠진 선교사..
이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예수를 믿어요.
내 중심의 예수를 믿어요. 나를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나와, 우리 가족과, 내 교회가 잘 되고, 잘 살고, 평안하고, 부유하고...
이것을 위해서 예수를 믿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지적 동의'를 하면서,
'예수를 믿어서 우리가 잘 되고, 성공해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이용해서
내가 잘 되고, 내가 영화롭게 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진정 거듭난 증거가 있는 사람, 주님 중심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갖고 인생을 살아갈까요?
▲좀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경상북도 거창이라는 곳에 거창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전영창 교장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분이 학생들에게
'직업을 택하는 십계명'을 가르쳐 줬어요. ☞애국자 전영창 선생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으니 의심하지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세상에 누가 이런 가치관을 따라서 살고 싶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이런 가치관을 따라 살고 있는 선교사, 목사, 장로, 집사가 주변에 많이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동물학자들이, 이미 지구상에 사라진 동물, 공룡 같은 것을 '멸절 동물'이라 그러고,
아직 소수가 살아있는 동물을 '희귀 동물'이라 그러는데
요즘 이런 신앙 정신으로 사는 성도는, 정말 희귀합니다. 있기는 있는데, 매우 적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치관을 따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12제자들도, 구약의 선지자들도 다 이런 가치관을 갖고 살았습니다.
월급이 적은 쪽으로 가고,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곳으로 가고,
가족들이 반대하는 곳에는 목숨을 걸고 가서,
목숨을 걸고 살다가 죽으셨던 예수님, 12제자, 사도바울, 초대교회 성도님들...
제가 처음에 설교제목을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고 정했습니다. 아8:6참조
주님은, 당신의 목숨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습니다.
죽음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바쳐야 할 사랑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랑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에, 이런 가치관을 따라 사는 사람,
-월급이 작은 쪽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
-부모와 형제와 약혼자가 반대하는 곳에 목숨을 내놓고 가는 고집쟁이,
만약 사도바울이 오늘날 21세기를 살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도 바울을 해석할까요? (아마 정신병자, 미치광이 취급했을 것입니다)
2007년도에 배형규 목사님이 아프간에 가서 순교당했잖아요.
그때 한국이 뒤집어졌죠.
세상이 뒤집어진 건 너무 당연한데,
일부 한국의 교인들도 비판적이었어요.
그들이 괜히 아프간에 가서 소란을 피워서, 교회 전체가 창피와 멸시를 당한다고
일부 교인들도 그분의 순교를 비난했던 것을 보면
'그때 우리 한국 교인들이 과연 어디로 가고 있었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사역하고 있는 선교지는, 제가 처음에 들어갈 때는 7천명의 인구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 30년이 지나니까, 인구가 2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성 가브리에우 다까쑈에이라 ('가브리엘 천사의 폭포'라는 뜻) 마나우스에서 경비행기로 4시간
주변에 인디오 마을에, 인디오 형제들이 많이 들어와서, 이제 마을이 커졌는데,
저희가 그곳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 지역이 국경지대 라서, 군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에요.
콜롬비아, 브라질, 베네수엘라 3국의 국경이기 마주 대하는 곳이기 때문에
(제가 한국에서 삼도봉 아래의 시골교회 목회했는데,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때 주님이 다 뜻이 계셨던 것 같아요)
브라질 군의 여단이 주둔하고 있고, 대대급 부대도 많이 있는데
그래서 저희 교회에, 브라질 군인들이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거든요.
근데 그 군인들이 교회에 나오면서, 저한테 정말 멋진 얘기를 많이 해요.
'뭐 당신이야말로 지금 내가 이 땅에서 만난 가장 헌신적인 하나님의 종이다.'
'당신은 정말 내 영적인 멘토다. 내 영적인 아버지다.'
라고 아주 뭐 아름다운 말로 제 귀를 굉장히 즐겁게 해요.
근데 제가 언제 그 교인(군인)이
진짜 헌신된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지 보려면,
전근 갈 때 보면 알아요.
이 지역에서 2년을 근무하고 난 다음에는 브라질의 타지역으로 전근을 가는데,
자기가 전근 가고 싶은 곳을, 먼저 군대 신청서에 쓴다고 해요.
1순위, 2순위, 3순위, 4순위로 자기 희망지를 쭉 쓰게 돼 있는데,
실제로 그 브라질 군인 가족들이 다 어디로 전근가고 싶으냐면,
살기가 좋은 곳, 자녀교육을 잘 시킬 수 있는 곳,
내 미래가 보장된 곳, 장래가 보장되는 곳을 선택해서 다 전근을 가더라고요.
저는 그걸 보면서, 약간 허탈해짐을 느꼈어요.
제가 그들에게 무슨 설교를 했겠어요?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서 부자 되고, 명예롭고,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제가 그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십자가의 길'을 가르쳤잖아요.
(전영창 교장의 '직업구하기 10계명'을 참고해서 제가 가르치기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십자가 짊어짐을 통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는가를 가르쳤는데,
결국 2년 동안 제 설교를 듣고 난 다음에
그들이 선택한 전근 희망지는,
살기 좋은 곳, 자녀교육 잘 시키는 곳, 내 장래가 보장되는 곳을 선택하는 것을
제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제 마음이 엄청나게 아프더라고요.
실제로 오지로 가서, 희생하고 헌신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뉴저지에 있는 굉장히 좋은 교회에 설교 초대를 받아 갔어요.
거기는 '우리 교회에서는 돈 자랑하지 말고, 학력자랑 하지 말아라' 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거기엔 대부분 교인들이 부자요, 엘리트 교인들만 모인 곳이었어요.
이렇게 제가 그 교회에 가서 서니까, 제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올라오더라고요.
'여러분의 인생의 마지막은 어디서 보내고 싶습니까?
은퇴하고 난 다음에, 여러분의 마지막 살고 싶은 장소는 어디입니까?'
그런데 뉴저지나 뉴욕에 살고 계시는 분들은
따뜻한 플로리다에 집을 사놓고, 플로리다에 가서 여생을 마치고 싶어 하신대요.
그리고 플로리다에 가서 골프를 치면서, 인생을 즐기며 살다가
자기 인생을 마치고 싶다고.. 그렇게들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분이 예수를 평생 믿은 결과가 고작 그것입니까?
정말 월급이 적은 쪽으로 가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는, 그런 예수님 중심의 가치관을 살았으면,
여러분이 플로리다로 갈 것을 소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제 마지막 인생, 내가 은퇴하고 난 다음에 그 남는 시간에,
제가 어디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그때야 말로, 제가 실버 선교사가 되어서
정말 복음이 필요로 하는 곳에, 제가 가서 무슨 봉사를 하더라도...
제가 이제는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에서 벗어났고,
자녀를 교육시키는 책임에서도 벗어났으니까
제가 마지막 인생을 그렇게 마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하는 그런 고백이 없다면,
여러분이 40년, 50년 신앙생활하고
교회에서 뭐 안수집사님 하시고, 장로님 하시고, 권사님 하시고,
그렇게 살았던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고 설교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길이 가장 아름다워야 되는데요.
아마존의 황혼은 아주 아름답습니다.
전혀 공해가 없는 아마존에서 해가 질 때, 정말 아름답게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그 하늘이 강을 물들일 때, 대자연 전체가 온통 다 붉게 변하지요.
그렇게 한 십 여분 동안 아마존의 황혼이 그렇게 황홀하게 이어지다가
해가 딱 떨어지면서 석양이, 황혼이 싹 없어집니다.
저는 그 황혼을 지켜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늘 합니다.
'우리 인생이, 정말 달아오르는 태양처럼 살다가,
마지막은 저렇게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고 떠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교회에 영광이고, 가문의 영광이고, 내게 영광이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어디 가서 은퇴 후에 멋지게 살고자 하십니까?
저는 잘 모릅니다.
여러분의 마지막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마지막 한 모금의 호흡마저도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구체적으로 <거듭난 사람의 증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요10:10
저는 아래 4가지가, 주님의 양들인 우리가
이 세상에서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이라고 믿습니다.
▲1. 첫 번째로, 진짜 거듭난 사람은 <전적 용납의 경험이 있습니다.>
회개의 체험이 있고, 또한 사죄받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중생은 전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다'고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주님이 찾아오셔서,
갑자기 내 마음 가운데 그분을 믿도록 나를 주관하시고,
그분을 믿으면서 '왜 나를 사랑하는가? 나 같은 죄인을, 왜 나를 사랑하시나?'
라는 그 사랑의 감격에 감동되어서, 그분을 사랑하고 싶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싶고,
거룩을 향한 몸부림으로 출발하는 것이.. 중생입니다.
벧전3:21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는 것이라'
그러니까 주님의 성령이 오시면
비로소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한 여행을 출발한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주님이 왜 나를 사랑하실까? 나 같은 죄인을 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내가 아직 죄인으로 사는데, 그런 나를 찾아오셔서
당신의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 그 사랑, 그 용납!
세상에 단 한 사람만 살고있어도, 그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구나.. 라는 그 엄청난 감격 가운데
우리 인생에 변화가 있어진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변화가, 이 거듭난 전적 용납(회개-용서받음)의 경험이 그 출발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하루아침에, 정말 완전한 가치관으로 바뀌는게 아닙니다만,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는데,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전적인 용납'의 경험이 있으십니까?
전적인 용납의 경험을 가진 사람은,
내가 처음 가졌던 그 하나님의 첫사랑에 대한 향수가 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렇게 (첫사랑처럼) 사랑해야 되는데, 그렇게 감격해야 되는데,
그 사랑이 지금 저에게 식었습니다.'
성경에 그랬습니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서 내가 토해 버리고 싶다'
'하나님, 저는 당신에게 토해 버리고 싶은 존재는 아닙니까?'
라고 하는 그런 아픔과 안타까움이 있는지요?
그리고 그때 가졌던 그 전적 용납의 경험(사죄의 확신)이
계속해서 성장해 가고, 또 성장해 가고, 또 성장해 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 처음에 가졌던 전적인 용납의 경험,
그 경험이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면서
주님을 향해서 달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전적인 용납의 경험이 있으셨던 분들은 향수가 있고,
그렇게 주님의 사랑을 받았던, 또 주님을 사랑했던 그 향수가 여러분의 마음에 있다면,
그는 거듭난 경험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없으니까,
내가 지금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아픔과 회개가 있지도 않고,
그리고 그 사랑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냥 어제가 오늘이고, 내일이 오늘이고.. 이렇게 계속 반복되시는 분들은
사실 거듭남의 경험이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런 분들은, 사모해야 합니다.
간절히 주님을 사모해서, 주님이 내 마음을 만져주시도록, 터치해 주시도록 사모해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거듭남의 증거는 <제자로 살아가는가?> 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이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뽕나무 위로 올라갔잖아요. 키가 작아서.
거기에서라도 예수님을 보고 싶었는데,
예수님이 뽕나무로 올라간 삭개오를 아시고
'내려와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겠다.'
그래서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갔을 때, 삭개오가 선언합니다.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것을 억지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다 갚아 주겠습니다."
라고 할 때, 주님은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그렇게 말씀합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가치관이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회개라는 말은 메타노이아 인데, 메타 change + 노이아 notion
즉 생각이 변화되었다, 가치관이 변화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전에 세상적 가치관으로 살던 사람이, 이제는 천국 가치관으로 살게 된다는 뜻이죠)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가치관이 바뀌어진 사람입니다.
제자가 됐다는 것은, 내가 그동안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내 관점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전영찬 교장이 말씀하신 것처럼
-월급이 적은 곳으로 가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라는 것처럼, 가치관이 변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동안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것입니까?
내가 하루 종일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그것이 ‘그 나라와 그 의’입니까,
아니면 ‘육신의 것, 땅의 것,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것들’입니까?
여러분이 오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이 무엇인가요?
그것이 거듭나면... 바뀝니다.
그게 세상 것에서, 내 욕심, 내 명예, 내 재산, 내 취미 이런 것에서
관점이 하나님 중심으로, 영생 중심으로, 바뀐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저는, 거듭난 사람은 물질의 관념이 확 바뀌어서
‘십일조 바치는 건 너무 당연하고 제가 더 못 바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라고 하며
물질에 대한 관념도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더 못 바쳐서 안타까운 거죠.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는데, 행2:36
브라질에서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데
주님을 세뇰 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도 들어보셨죠?
이거는 노예가 주인에게 절대 복종과 절대 신뢰를 말하며 ‘세뇰’ 이라고 말하거든요.
우리는 ‘주님’이라고 하도 많이 말하면서,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근데 주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건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내 삶을 다 드리겠다고 하는, 그분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겁니다.
주님이 피값을 치르시고 나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분에 의해서 구속되었는데
그분께 내 주권을 주장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정 거듭난 사람은, 삶의 가치관이 180도로 바뀌는데,
과거에 ‘나 중심의 내 인생, 내가 왕이 되어서 살던 인생’에서
이제는 ‘주님 중심의 내 인생, 내가 왕의 종이 되어서 사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이건 어렴풋하게 바뀌는게 아니라, 아주 뚜렷하고 확실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게 하루아침에 확 바뀌는 건 아니지만
점점 바뀌어져서 (성화되어져서) 정말 성숙한 그리스도인일 경우에
전영찬 교장이 말한 것처럼
‘내가 살기 좋은 곳, 내 자녀가 살기 좋은 곳, 내 미래가 보장되는 곳’이 아니라
‘주님이 영광을 받으실 곳, 내 한 몸을 바쳐서 주님의 나라를 세울 곳’을 찾아가는..
이렇게 가치관이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정 거듭난 사람은,
‘노후에 어디 가서 편안히 쉬겠다..’ 그런 생각으로 점철되지 않는다는 거죠.
막상 그렇게 살아본들, 거기가 천국이겠습니까? 여전히 괴로운 삶의 연속이겠지요...
▲3. 세 번째로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브라질 아마존 선교사로 33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때로는 큰 교회, 정말 수만 명이 모인 교회에 설교 초대도 받아 보았습니다.
제가 쳐다보면 사람이 하도 많아서,
그냥 사람들의 숫자에 압도당할 그런 교회도 여러 번 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10명 정도 모이는 작은 교회에 가서
또 이렇게 집회를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제가 많은 교회를 이렇게 방문해서 선교 보고도 하고, 설교도 했는데,
목회에 목숨을 거는 목사님들이 너무 많으세요.
그런데 저도, 옛날에 선교에 제 목숨을 걸었거든요.
제가 24시간 우리 사역지, 아마존 선교만 골똘히 생각했어요.
제 집사람이 '당신은 일 중독증이 걸렸다고.. 당신이 없으면 아마존이 무너지냐?'
그렇게 말릴 정도였죠.
사실 그때 저는, 제가 열심히 안 하면, 아마존의 우리 사역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아마존을 나는 떠나면 안 되고
나는 아마존을 위해서 내가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했었죠.
근데 그게 제 목회 성공, 선교 사역 성공을 위한 것일 수도 있었던 거죠.
△많은 목사님들이 목회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요.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요.
근데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선교적인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들을, 제가 아주 소수 이렇게 만났습니다.
대다수 목사님들이 교회 사역에 한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선교를 이렇게 포함시키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참 안타까웠습니다.
초대교회는 말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성도들은 ‘교회의 존재 목적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다’라고 생각했고
하나님이 오늘 하루를 더 살게 해 주시는 것은, 나를 살려 주시는 것은
‘복음을 전하라고 오늘 하루를 내게 더 주셨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근데 기독교가 공인되고 난 다음에
교회는 선교사를 양성해서, 그들은 전문적으로 전도하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아니야’ 라고 하는 생각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하루 주님이 내게 생명을 더 주신 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까?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선교를 위해서입니까?
교회와 선교는 동일합니까?
아니면 선교는, 교회의 교육, 예배, 봉사, 친교 등에 들어가는 구색의 한 가지입니까?
△저는 장로교 통합측 선교사로 파송 받았습니다.
제가 아마존에 딱 가서 보니까, 하나님이 저를 통합측 장로교회를 세우라고
아마존에 보냈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여기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선교지에 나가면, 교단 장벽, 교단 구분 이런 게
엄격하게 나뉘지지 않고, 다같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게 됩니다.
저희가 병원선 사역을 하거든요. 병원선이 1년에 한 9번 나가서
진료도 하고, 전도도 합니다.
한 번 나가면 10일씩 다니죠.
그리고 이제 저희가 또 신학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인디오 청년들을 대략 4년 동안 신학교육을 시켜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신학교육을 시켜서 돌려보내서,
그들이 자기 고향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돌보고,
또 새로운 부족에게 가서 교회를 개척하는 그런 사역을 하고 있거든요.
근데 저희 신학교와 병원선 사역이 초교파 사역이에요.
하나님 나라 사역이란 뜻입니다. 뚜렷하게 ‘우리 사역’으로 고집하지 않습니다.
근데 저는 칼빈주의자요, 개혁주의자입니다만
그렇게 개혁주의, 장로교단 등을 공공연히 선포하기를 좋아하진 않아요.
왜냐면 우리가 두 팔을 활짝 펴서,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동역하는 거죠.
브라질은 개신교 중에는 오순절 교회가 굉장히 크고요.
그다음에 침례교, 장로교회는 좀 작아요. *개신교22%, 무교8% 나머지는 가톨릭
근데 우리가 두 팔을 활짝 벌려서, 교파에 관계 없이 성도들과 동역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라면
‘내 교회, 내 사역’만 고집하고,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전체 하나님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이면... 그걸 바라보고 섬기는 것이죠.
꼭 내 사역이 얼어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래서 제가 거기에 가서, 인디오 연합 총회를 만들었어요.
‘원주민 인디오들은 제발 갈라지 말자’ 라고 하면서요.
뭐냐면 브라질 (오순절, 침례교 등의) 교회가 선교하면,
인디오 교회들을 막 자기네 교회로, 교파로 흡수하는 거예요.
그러면 인디오 교회가 자연적으로 쪼개더라고요. 각 교파로 나눠지는 거죠.
그래서 제가 ‘그렇게 쪼개지지 말고 인디오 교회들을 한 교회가 되어서
쪼개지지 말고 단일 교단으로 하자’ 하는 목소리를 내고,
그 다음에 자기들이 지원받는 (오순절, 침례교 등) 교단은
파트너쉽으로 일을 하면 좋겠다.. 그래서 제가 ‘인디오 연합 총회’ 그런 걸 만들었어요.
근데 이게 아주 어려운 게, 모든 선교사들이 다 개교회, 자기 교파 선교를 지향해요.
또 인디오 교회들은 가난하니까, ‘어떻게 하면 백인 장로교회,
브라질 침례교회 하고 연결을 맺어 좀 도움을 받을까?’ 하고 모색하게 되죠.
그래서 한 5년 걸렸어요.
5년 걸려서 제가 목소리를 내서 ‘인디오 부족 연합 총회’를 만들었어요.
저는 정회원으로 끼면 안 되죠. 저는 인디오가 아니고 외국 선교사니까요.
내 중심의 예수를 믿으면, 내 교회가 부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하나님은요, 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부흥하기 원하시고,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 슬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지요.
(*우리 교인이 혹시 다른 교회로 이전해 간다고 해도, 축복해 줍니다.
왜냐면 전체 하나님의 나라가 궐이 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가 거기 브라질 장로교회 소속으로 일을 하거든요.
브라질 장로교회에서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왜냐면 제가 브라질 장로교회 간판을 많이 걸어서
브라질 장로교회의 교세 확장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저는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관계 없이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계속해서 이 길을 가겠다’고 결심합니다.
이렇게 초교파적인 사역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건,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픔,
그것이 꼭 우리 교회가 채워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이 땅의 교회가 동반 침체해가고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통곡하는 심정으로, 전도해야 되지 않겠는가요.
오늘 21세기의 교회들은 되게 라이트하게 (가볍게) 예배도 드리시더라구요.
그래도 코비드 전에는, 막 예배가 여러 개 있었는데
예배도 많이 없어졌어요.
근데 저희 브라질 교회는요, 주일날 아침 예배, 저녁 예배, 매일 새벽기도회,
수요일 예배, 금요일 저녁에 예배... 등 예배가 많습니다.
혹시 예배가 너무 적어서, 예배에 그리우신 분이 있으시면
브라질 아마존으로 이민 오십시오 그럼 예배를 매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 기도도 있고, 주일에도 아침 저녁으로,
수요일, 금요일, 여선교회 기도회, 남전도회 기도회가 따로 있고,
그렇게 예배드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 제가 산다는 게 할렐루야라고
제가 감사를 드립니다.
△최근 아마존에, 120년 안에 가뭄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아마존 강물이 이렇게 줄어들었어요.
저도 33년 만에 강물이 줄어든 모습을 처음 봤죠.
그래서 저희가 작년 2023년 10월, 11월의 병원선 사역을 캔슬했습니다.
강물이 줄어들어서 병원선을 잘 가동할 수가 없었어요.
근데 제가 선교 편지에 “아마존에 120년 만에 가뭄이 들었습니다”라고 그랬더니
어떤 뉴저지에 사시는 성도님이
“내가 하도 편안하게 사는 것을 좋아해서, 편안함을 포기할 수 없어서
중보기도를 게을리했더니, 하나님이 아마존에 가뭄을 들게 하시고...
나를 회개케 하십니다.”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입니까?
뉴저지에서 편안하게 사는 사람하고, 아마존에 가뭄 든 거 하고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아무 관련 없습니다.
그러나 중보기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모든 잘못 되어지는 일은, 중보기도에 게으른 자기 탓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는 성도입니다.
지금 전쟁과 기근과 지진으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거 우리와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별로 관계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사람은요.
‘하나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하나님, 제가 열심히 기도하지 않은 까닭에, 하나님, 제가 중보하지 않은 까닭에,
그래서 이 전쟁이 끝나지 않고 계속 지속되고 있고,
세계에 이렇게 기근과 홍수와 가뭄이 계속 됩니다.
하나님 제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이 땅을 새롭게 하소서!’
이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 중보자들이 많이 나오죠.
다니엘 모세 느헤미야 예수님이 다 중보자였습니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 간접적으로 제게 책임이 있습니다’ 하고
그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다 개교회, 자기 교회가 부흥하기를 좋아하지만
우리 교회만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중요하다는
넓은 마음으로 여러분 사시기를 바랍니다.
▲4. 네 번째로 거듭난 사람의 증거는 <상한 마음을 갖고 사는가?> 입니다.
진짜 거듭난 사람은, '내가 뼛속 깊이 죄인이다' 라는 그런 상한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죄인이다' 라는 뼛속 깊은 상한 마음이 있습니다.
마5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난 천국이 저희 것이니라'
모든 복이 나열되는데, 그 중 첫 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하지 않으면,
애통하고 뭐 이런 나머지 모든 복이 의미가 없고,
(심령이 가난하지 못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이 아니라면
다른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은 별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상한 심령을 멸시치 아니하시리라'고 시편의 저자가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교회에 사시면서 성공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 땅에 성공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교인들은 성공한 사람을 생각할 때,
어떤 유명 목사님이나, 또 이름이 많이 알려진 선교사,
또는 사업을 잘하시는 영향력 있는 장로님,
또는 시상식에 나와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연예인, 스포츠 스타,
이런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예수님도 그런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실까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사도바울이 딤전1:15절에서 말하는 그분의 고백이
가장 성공한 사람의 고백이라고 인정하는데요.
여러분이 긍정하셔도 안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저는,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 하는 상한 심령을 갖고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제일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남을 항상 자기보다 낫게 여깁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 앞에서도 존귀한 대우를 받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없고요,
거듭난 사람은, 이런 생각이 더욱더 심화되어져 갑니다.
신앙과 믿음이 깊어질수록, 더욱 더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하고 사는 거죠.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수 믿어서 크게 성공했다기 보다는,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다 예수 믿어서 인생이 힘들어 졌습니다.
팔복의 말씀처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고요,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참된 평화를 누리며 살았고요,
주님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권세와 능력과 위험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가장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 이 땅에서 예수 잘 믿어 성공했다고 그렇게 나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 만약 사도바울이 이 시대에 살았으면,
우리가 그렇게 사도 바울을 존경했을까요?
2007년도에, 아프간 선교팀이 가서 배형규 목사님, 심성민 님이 순교를 했는데
사회에서 얼마나 욕을 먹었습니까? 많이 두들겨 맞았습니다.
'저것들 때문에 한국 교회가 욕을 먹는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사도바울의 순교는,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요?
이 땅에 사도 바울이 지금 살아 있다면, 우리가 그분을 존경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 고집쟁이가 그렇게 예루살렘에 예언자들이 가지 말랬는데,
굳이 고집스럽게 가더니 그냥 체포되어서... 나중엔 결국엔 또 잡혀 죽었다고...'
얼마나 사도 바울을 향한 비난과 모욕이 많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도바울, 역사 속에 가장 훌륭한 선교사로 자기 한 인생을 하나님께 바쳤던..
매도 많이 맞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그 많은 위험 속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사역하신 그분이, 자기 사역을 마감하는 막바지에 이르러
디모데전서를 쓰면서 놀랍게도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디모데전서는 AD 62-63년경 로마감옥 1차투옥에서 석방된 때부터
순교하기 전까지의 기간, 소위 4차선교여행 때 저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 안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란,
'내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악한 죄인이라'고 하는
뼛속 깊이 이 고백이 나오는 사람이,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구하는게 얼마나 많습니까?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제가 원하고 바라고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하는 것들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다 우리를 위한 것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빌3장에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도전합니다.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그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했습니다. 빌3:7~8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는 내용들, 그게 무엇인가요?
새벽기도 하고, 철야기도 하고, 모든 기도 때마다 열심히 기도하는 것들,
'하나님, 이거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는 내용이 뭡니까?
혹시 사도바울이 말한
'내가 그리스도 얻기 위해서, 내게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긴다.
내가 배설물처럼 여긴다' 그랬던 것들을,
우리는 열심히 주워담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까?
배설물이 무엇입니까?
제가 아마존 검은강 신학교에서 강의하다가 신학생들에게 물어봅니다.
'배설물은 여러분에게 나오는 누런 것인데,
자기 배설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그랬어요.
당연히 다 싫다고 하죠.
근데 일부 교인들은, 하나님께 그렇게 목숨 내놓고 기도하기를,
사도바울이 똥으로 여겼던 것들을
'하나님 사업 좀 잘 되게 해 주세요.
우리 자식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하나님 이게 좀 필요합니다' 라고 기도하는데,
어떻게 보면, '하나님, 제게 똥을 많이 주십시오. 제가 똥으로 꽉 차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천국 갈 때가 되었는데
주님이 '너는 똥 냄새 너무 나니까, 여기로 오지 마라'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3:7~8
그 '똥'이 그리스도를 얻는데 해가 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똥'을 구하다가, 참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거죠.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무엇을 먼저 구하겠습니까?
주님을 먼저 구하겠죠.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겠죠.
'하나님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나님 제 심령에 부흥을 주소서'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 심령 속에 상한 마음이 있는지, 여러분의 기도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래요.
여러분이 가장 많이 기도하는 내용이 뭔가요?
여러분이 가장 원하는 기도가 뭔가요?
하나님이 꼭 들어 주시기를 꼭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제가 오늘 아침에, 장로님이 데려다 주셔서
워싱턴 DC에 있는, 한인 기도원에 가보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어디를 가든지, 기도원, 기도의 집을 세우고, 기도하는 일에 열심입니다.
좋은 기독교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새벽에 가서 기도했는데,
제가 여기 미국에 와서 가장 많이 기도로 구한 것은
'하나님, 제가 당신을 더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제가 당신을 더 사랑하고 싶은 것이, 제 기도의 처음이고, 마지막이고, 모든 것입니다'
라고 제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똥'을 많이 구하는 사람은요, 상한 마음이 없는 사람이에요.
똥을 많이 구하는 사람은요, 내 중심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에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길로 가라, 거기는 찾는 이가 적으니라' 그랬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상한 심령을 갖는 사람, 상한 심령을 추구합니다. 그게 좁은 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만일에 '하나님 제가 거듭난 거 같지 않은데요..' 그러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듭남을 주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오늘 여기 와서 기도하는데요. 하나님이 이런 영감을 주셨어요.
'내 God 가 얼마나 슬퍼하는지, 내 슬픔을 저들에게 좀 알려주라'고 하는
그런 영감을 저한테 주셨어요.
이런 영감은 제게 처음이었어요.
제가 보통 1년에 한 번쯤 이렇게 해외에 나오거든요.
아마존 선교지를 떠나서 해외에 나와서 설교하는데,
과거에 제가 어떤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설교하는데
'내 God 슬픔을 좀 소개해 주라'고 하는 생각을, 하나님이 주신 건, 여기가 처음이었어요. *미국 VA
근데 '하나님의 슬픔'이란 게 무엇이냐면
'내가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는지
내가 얼마나 나의 백성들을 사랑하는지
그분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지
그분이 얼마나 우리에게 놀라운 계획을 가르쳐 주고 싶어 하시는지
그분이 얼마나 우리를 거듭나게 해주고 싶어 하는지'
그것을 좀 얘기해 주라고 하는 영감을 막 저한테 주셨어요.
혹시 여러분의 심령 속에
나는 '전적인 용납의 경험'이 없는 거 같다,
그런 첫사랑을 회복하고 싶다는 향수, 그런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제자로 사는지 안 사는지, 내 가치관이 별로 안 바뀐것 같다...
예수 믿기 전에는 돈 버는 게 제일 좋았고
그리고 명예롭게 사는 게 좋았고, 편안하게 사는 거 좋았는데,
지금도 똑같다. 나는 가치관이 안 바뀐 것 같다...
나는 우리 교회를 부흥시켜 달라고 기도를 많이 했지만,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게 달라고 기도를 안 한 것 같다...
나는 상한 마음은 별로 없는 거 같다...고 생각하시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진심을 담아 기도하시고,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우리 마태복음 7장 7절 너무 잘 아시잖아요?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리리라'
'하나님, 제가 거듭나고 싶습니다' 하는 소원을,
위 마7:7절에 적용시켜서, 하나님을 한 번 구하고, 찾고, 두드려 보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여러분을 만나 주십니다!
△제가 왜 '교인들이 거듭나지 못할까?' 라고 생각을 많이 했는데
1) 첫 번째로는 복음을 많이 듣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이OO 목사님이 말하기를,
"TV방송설교에서, 20명이 설교하는데
한 사람만 회심에 대해서 설교하고,
나머지 19명은 교회의 필요에 대해서 설교하더라..."
우리가 복음을 잘 온전히 듣지 못하면 거듭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이고
2) 두 번째로는 '세상을 너무 사랑하면 거듭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거듭났다 하더라도, 영적 침체가운데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는 거죠...
△제 개인적 얘기를 좀 나누겠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한국에 갔는데, 종합검진을 해보니, 갑상선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했거든요. 수술하고 조직 검사를 했는데,
암이 다른 데로 퍼져가고 있다고, 수술을 또 하자고 그래서, 수술을 두 번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선교편지를 썼더니, 제 편지를 받으신 어떤 분이
'아니 선교를 30년 가까이 했는데, 목사님이 암에 걸렸습니까?'
그리고 또 코비드가 지나갔지 않았습니까?
제가 아마존에서 코비드(코로나)를 세 번 걸렸거든요.
또 어떤 분들은 '어떻게 코비드를 세 번이나 걸리십니까?'
그러면서 저한테 그런 편지를 보내 오셨어요. (이해가 안 된다는 식으로)
지금도 갑상선 암이 좀 위협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계속 관찰을 하고 있는 중인데,
사실은 그 외에도, 눈에 녹내장도 있고, 물건이 두 개로 보이는 복시 현상도 있고,
그래서 눈도 사팔뜨기가 되고, 혈압도 있고, 당뇨도 있고, 전립선, 방광염
거기다 좀 더 창피하게 불면증도 있거든요. 나이가 들면 생기는 병이라고들 하는데,
그래도 해외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면, 국내보다는 건강관리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한국에 살아야 한다'고 말하잖아요)
근데 제가 또 거기에다 또 홀아비잖아요.
사람들이 저의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숨겨 놓은 죄가 많아서...
얼마나 저주를 많이 받았으면...' 이렇게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예수 믿으면 무조건 잘 되고 건강하고 성공해야 된다'는
기복주의에 많이 물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반문을 하거든요.
-역사 속에 하나님을 가장 사랑했던 그 하나님의 아들도
33살에 제자의 배신을 받아서, 십자가에, 강도들 사이에서 죽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33세에 회심하고, 그후 33년 동안 그렇게 목숨을 걸고 전도했는데,
로마의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다가 목이 잘려서 그는 죽었습니다.
-그 외 초대교회의 수많은 교인들도 예수 믿어서 잘 된 사람,
예수 믿어서 오늘 이 시대적 가치로 성공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 믿고 잘 된 사람이 가끔 나오죠.
솔로몬과, 다윗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부자로 살았다고 하는 것에
우리가 눈이 확 멀어 갖고,
'예수 믿으면 잘 돼야 돼, 예수 믿으면 건강해야 돼,
예수님 믿으면 자식 잘 되고, 무병장수 해야 돼!'
이게 누가 가르친 가치관입니까? 어디서 배운 가치관입니까?
이게 성경에 그런 가치관으로 살라고 써 있습니까?
예수 믿어서 (세상적 관점에서) 인생이 작살난 사람들이 성경에 많은데요,
'저는 잘못되지 않았어요. 당신의 가치관이 틀렸습니다'라고 제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뭐 홀아비이고, 여러 가지 병을 짊어지고 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이 땅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떤 가치로도 환산할 수 없는 그분이,
저와 연합한 삶을.. 하나님이 제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누구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향해서 풍성한 삶을 주길 원하십니다.' 증거합니다.
그 풍성한 삶이라고 하는 게, 이 땅의 가치로 예수 믿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예수 믿어서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스러워도
천국 가치로 풍성한 삶을 살았던 초대교회 교인들,
성경적 가치로 풍성한 삶을 살았던 그 수많은 순교자들이, 이 땅의 증인들입니다.
제가 내일과 모래 이틀에 걸쳐서
이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에 대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꿈꾸는 부흥에 대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는 예수 믿어서 아주 잘 된 사람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잘된 제 간증과 제 설교를 들으시면서
여러분의 인생 모두가 다 풍성한 삶을 살고, 그리고 영생을 기업으로 얻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