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LNCK 2024. 2. 23. 09:59

https://blog.naver.com/karamos/220184989842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막12:28~34, 시41:1~3     2013.07.21.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성경말씀을 연구하고 성경말씀에 대해서 잘 알던

서기관과 율법학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가지고 있던 성경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66권이 아니라

구약성경 모세의 율법이든지 여러 예언서, 성문서 등 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루는 예수님에게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으뜸 되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이런 서기관과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12:29~31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마디로 결론지어서 말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뿐만 아니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똑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수많은 설교를 하고 때때로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한 내용입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저도 지난 27년 동안 갖가지의 제목으로 수천 번의 설교를 했지만

결국 제 설교의 내용은 딱 두 가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말씀입니다.

 

만약 제가 그동안 했던 설교가 이 두 가지 주제에서 벗어난 것이었다고 하면

저는 잘못된 설교를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설교를 잘 했다 못했다 하는 기준은,

이 두 가지의 주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핵심적인 가르침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감동적으로 전하느냐,

 

그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할 것이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7년 동안 제 설교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얼마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전하고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게 되었는가/ 아닌가 ... 하는 것이 진정한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갈릴리교회에서의 설교의 직무를 마치려 (은퇴) 함에

지난날들 제가 해왔던 모든 설교의 결론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삶을 사십시오.’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또 하나의 주제인 ‘이웃 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드리기 전에 제가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온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절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더군다나 목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때때로 교인들 중에 ‘저것은 교회 잘 다니라는 설교구나. 목사님을 위한 설교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절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설교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목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람으로서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다고,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돈을 많이 벌면 좋은 집에서 살게 되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알려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제대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르쳐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웃 사랑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즘처럼 나 혼자 내 식구끼리 먹고 사는 것도 힘이 들고 각박한 세상에

무슨 여유가 있어서 나와 상관없는 이웃을 사랑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이웃은 그만두고 나에게 딸린 식구들을 보살피는 것조차 힘든 현실입니다.

이웃을 사랑할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이 말씀을 하셨으면,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여유가 있는 사람만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일방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되풀이해서 이웃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가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제대로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사람들이 보기에 엄청난 삶을 살아도

제대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할 때, 그 인생이 평안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가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먹을 것이 넉넉한 사람은, 먹을 것이 없는 사람과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있는데 혼자 배불리 먹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모습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넉넉한 사람이 가진 것이 부족한 사람과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힘이 센 사람은 약한 사람을 위해 그 힘을 써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약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서

다른 사람도 당당하게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돼지 몇 마리를 길렀습니다.

때때로 제가 돼지 밥을 주는 심부름을 했는데,

제일 힘센 돼지가, 다른 돼지들이 오지 못하게 하고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다른 돼지야 굶든지 말든지, 힘센 놈 혼자 밥을 독차지 하고 배불리 먹었습니다.

 

돼지는 그렇게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돼지가 아니기 때문에,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나누어 먹는 것이 밥입니다. 혼자 먹는 것은 밥이 아닙니다.

혼자 먹는 것은 밥이 아니라 돼지가 먹는 사료입니다.

혼자 먹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돼지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돼지는 처음에는 혼자 먹다가도 80%쯤 배가 부르면

다른 돼지가 먹도록 물러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혼자 100%를 먹고도 또 먹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양보할 줄을 모릅니다. 남겨놓고 다음에 먹습니다.

못 먹어서 배고픈 사람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혼자 먹지 말고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같이 먹어야 밥이고, 같이 먹어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나누어 먹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내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누구든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면서 한 가지 조건을 붙이셨습니다.

‘형편대로 해라, 남는 것으로 해라’ 하신 것이 아니라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은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을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나누어 주는 것은, 이웃 사랑이 아니라 구제입니다.

이웃 사랑은 배고픈 사람의 창자의 아픔이, 내 창자에 그대로 느껴져야 합니다.

 

아바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그 사람이 힘들면 나도 힘이 듭니다.

그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면, 나도 억울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 사람의 아바타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배고픈 사람의 아바타가 되어서, 다른 사람의 배고픔이 나의 배고픔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서러움이 내 서러움이 되어야 합니다.

고독한 사람의 고독함이 나에게도 느껴져야 합니다.

누가 배고프든지 말든지 누가 억울하든지 말든지 누가 서럽든지 말든지

나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웃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사는 이웃 사랑은 그 사람이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자식이 굶주려서 먹을 것이 없는데

이것을 주면 힘이 나서 (북한이) 남쪽을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이웃을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북녘의 내 자식이 굶어죽는다고 하면, 먹을 것을 주면 쳐들어올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이웃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이웃 사랑을 해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남편답게 살아야 아내가 기뻐하고

아내가 아내답게 살아야 남편이 기뻐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셔야 우리에게 상급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무엇입니까?

시편 41편에는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사람에게 주는 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시41:1~3

 

우리가 다 보험을 듭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 나에게 있을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은 괜찮지만 병이 들지도 모르고 다칠지도 모릅니다.

교통사고 날 수도 있고 불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를 보살피면, 이런 재앙의 날에 (보험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41편을 보면 표제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권력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재앙이 닥친다고 해도, 병이 들었다고 해도,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돈이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돈으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참모도 있고 군사도 있고 어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것들이 다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에게 보험을 드는 것입니다.

다윗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성공한 인물입니다.

이런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표제에, ‘인도자를 따라 부른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중요한 말은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둡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말씀을 노래로 만들어서 밤낮 불렀다’는 것입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부르게 한 것입니다.

 

저도 지난 27년 동안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노래처럼 불렀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귀에 딱지가 앉았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은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입니다.

이들을 사랑으로 잘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토요일 아침마다 준비하는 사랑의 도시락은 배고픈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입니다.

정성을 다해 예수님을 대접해야 합니다.

 

잔칫집에는 가난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생일이나 환갑, 돌잔치가 진정으로

복 있는 잔치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을 초대해야 합니다.

 

베트남의 가난한 농가에 송아지를 보내는 것으로 그들을 여러분의 잔치에 초대하는 것입니다.

또한 북한 어린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다윗이 노래를 지어 불렀던 것처럼

저는 지난 27년 동안 이 말씀을 노래처럼 불렀습니다.

 

저는 이 교회를 큰 교회로 성장시키거나 대단한 기적과 이사를 베풀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정성을 다해서, 여러분이 정성드려 한 헌금을 한 푼도 낭비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이 일로 여러분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푼의 헌금도 헛되지 않게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말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

 

물질적으로 보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헌금한 것보다 몇 배의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비록 작은 교회지만 갈릴리교회가 한국 교회사에 아름답게 높이 퍼져

하나님의 자랑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이와 같은 축복은 이제 시작입니다.

지난 27년 동안 우리가 해왔던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우리의 헌신과 봉사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셔서

앞으로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실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갈릴리교회는 신유의 은사가 있는 교회입니다.

저는 병든 사람에게 한 번도 손을 들어 안수를 해본 적은 없지만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41:3

가난한 자를 보살핀 갈릴리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입니다.

 

혹시 여러분께서 멀리 이사를 가시게 되어 교회를 선택하셔야 할 때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잘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 교회 목사님이 얼마나 설교를 잘 하시는가,

그 교회에 빚이 얼마나 있는가를 살핍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교회가 헌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헌금을 사용하는 교회에 다니게 되면,

저절로 복을 받게 됩니다.

시편 41편에서 약속하신 복을, 그 교회를 다니게 되면 저절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속에 갈릴리교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복을 차고 나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사람답게 살라는 말입니다.

저 혼자 먹는 사람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밥은 나누어 먹을 때 밥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이 붙어 있는 계명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과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에게 잘하고 교회에 충성하는 것으로, 성도가 복을 받게 될지 말지

저는 그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삶입니다.

제가 엊그제 어는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양대학교 내에서 구두수선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분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평생 동안 한 달 수입 백만 원 중에 만원을 떼어서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정말 힘들고 아파서 일을 나갈 수 없는데도, 일을 하러 나간 것은,

내가 돈을 벌어야 한 달에 만원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한 평생을 살면서 나에게 남겨진 것은

내가 한 달에 만원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사용했다는 것뿐이다.

이것이 내가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남기고 가는 일이다.

그리고 이 만원 때문에 나는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

 

무엇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워서 혼자 살기에도 빠듯한 분이 계신 것을 제가 압니다.

그런 분들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은 이웃 사랑 안 해도 된다,’

그런 사람은 제외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인생을 인생답게 살려는 사람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갈릴리교회가 주님이 말씀하신 이 진리를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온 교회가 이 말씀을 힘써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말할 수 없는 축복이 여러분의 삶과 이 교회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