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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다스림 삼상7:12-17 ☞ 사무엘상, 전체 6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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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주신 말씀은 사무엘의 생애 가운데 가장 귀중한 말씀이고,
또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되어진 모든 일을 먼저 간단하게 요약해 주는
그런 중요한 말씀이다.
이제 사무엘의 신앙적 행위를 여러분, 이 시간 눈여겨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셔서 소위 말하는 미스바 집회를 이루게 된다.
모든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라, 그렇게 부르게 되고,
그리고 미스바에 모여서 하나님 앞에서 큰 부흥성회를 하게 된다.
모든 우상을 다 깨뜨리고 땅에 묻어 버리고,
그리고 심령적으로 종교적으로 신앙적으로 새로운 각성운동이 일어난다.
하나님 앞에 경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새롭게 영적으로 부흥하게 되는
바로 그 시간에, 블레셋 사람들은 이것을 기회로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진멸시키려고 했다.
한 자리에 다 모여 있으니까 이들만 포위하게 되면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다는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자 모인 이스라엘은 두려워하게 되었고,
사무엘은 ‘두려워 말라’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만든다. *우레는 우뢰의 표준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생각하게 될 때, 그들 모두가 다 흔들리게 된다.
그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어서서 블레셋 사람들을 따라가서 치게 된다.
끝까지 따라가서 다 쳐부수게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정치적 해방이 오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순서를 생각해야 된다. 먼저 영적으로 회복된다.
그리고 사무엘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분명해진다.
저들이 한데 모여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하나님 앞에 성실히 서는 그런 신앙이 된다.
그리할 때에 정치적으로도 해방이 되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나라와의 관계가 바로 되면서 평화가 있었다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생각할 것이 뭐냐하면 사무엘이 여기다가 돌비를 세운다.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이다.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웠다. 삼상7:12
‘미스바와 센 사이’라는 것은 바로 미스바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였던 곳이다.
그리고 센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오기 위해 집합했던 장소다.
그리고 미스바를 향해 쳐들어 올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우레를 발하셨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우레를 발하셨던 곳, 바로 그곳이 미스바와 센 사이를 가리킨다.
거기에다가 기념비를 세운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던 그곳,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그곳에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이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 같은 소중한 경험은 오래오래 간직해야 된다. 잊어버리면 안 된다.
우리가 기념비를 세우는 일을, 우리가 좀 소홀히 했던 것을 많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일본 히로시마에 가면 원자탄이 떨어졌던 그곳에 가면 기념공원이 있다.
원자탄이 떨어졌을 때 불타버린 그 건물들을 그대로 놔두었다. 지금도 그대로 있다.
여기에 원자탄이 떨어진 곳이다. 이렇게 말해도 소용이 없다.
물론 그때 찍었던 사진을 보여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실물을 딱 세워 놓고 이곳이 바로 원자탄이 떨어져서 불붙은 건물이다.
여기서 20만 명이 죽었다. 이걸 보여 주어야 한다.
그와 같이 우리가 625때 참으로 어려움을 많이 당했다.
그때 폐허가 된 건물 몇 개 정도 남겨 둘 필요가 있었어요.
포탄과 총알이 박혀 있고 맞은 흔적이 있는 그런 건물 몇 개를 남겨서
하나의 공원으로 만들어 놓을 필요성이 있었어요.
그대로 놔두고 ‘이게 바로 그 전쟁의 흔적이다. 이런 비참한 전쟁이 있었다.’
그렇게 보여 줄 필요성이 있었어요. 우리는 다 없애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 625를 설명하는데 아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게 기념비적인 일이 꼭 필요하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체험했다. 그 경험한 그 소중한 것,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평생 기억해야 되겠고 우리 후손들도 기억해야 되겠고
앞으로 오고 오는 세대의 사람들도 이것을 잊지 말아야 된단 말이다.
그래서 기념비를 세운다. 경험적 가치를 소중히 여긴 것이다.
▲좀더 나아가서 오늘 본문에 보면 사무엘이 기념비를 세울 때 그가 선언한 선언문이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지정학적으로 여기까지, 또 혹은 이처럼 도우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서
기념비를 세운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설명할 것이다.
‘이 돌은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미스바 성회를 할 때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치려 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도우시사 승리로 이끌어 주셨고
블레셋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하나님은 여기까지 도우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1. 신앙과 안보
또 그 다음에 여기 보니 이 일로 인하여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그리고 14절 마지막에 보니 ‘평화가 있으니라’ 그랬다.
7: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여기서 생각해야 된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을 치고 정복하고 했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평화가 있어야 된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때문에, 쳐들어오기 때문이다.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 사이에 경계를 분명히 하고, 화합이 있고 평화가 있다면
그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고 남의 권익을 침해하고 인권을 침해하고,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항상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블레셋 사람과의 사이에 평화, 이방과의 사이의 평화가 있었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항상 평화의 관계를 지켜 나가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사무엘의 일생을 다 들어서 한 마디로 말한다.
7: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평화가 있었더라 :14) ’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사무엘이 살아 있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그랬다.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오지 못했다. 왜? 하나님이 막으시니까.
하나님이 사무엘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이 이 백성들 속에 있기 때문에
‘저 백성들에게는 쳐들어가면 안 된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군사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다.
이스라엘의 왕을 무서워한 게 아니에요. 블레셋이 하나님의 사람을 무서워했어요.
하나님을 무서워한 나머지 감히 쳐들어오지 못했다.
'사무엘이 살아 있는 날 동안', 참으로 귀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살아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들과 함께 한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은 멸망의 징조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렸다는 의미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온 땅에 있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삼상4:1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3:20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말씀이 있는 동안은 절대로 이방 사람들이 쳐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말씀의 선포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
그러나 말씀이 끊어지면 우상을 섬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저들이 순종해 나갈 때, 우상을 섬기지 않았고
그리할 때 안보가 지켜진 것이다.
저들은 군사도 없어요. 아직 왕도 없어요. 정치적인 조직도 없어요.
어떤 면에서는 무정부 상태다. 그러나 이방 나라나 어느 나라든지 이 백성을 넘보지 못했다.
왜?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거기에 참 자유가 있고 참 평화가 있었다는 말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소통이 있었단 말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백성들은 모든 문제를 가지고 가서 사무엘에게 의논하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준다. 삼상3:21
바로 이런 관계, 하나님 앞에서 응답적 관계에 있을 때
이 백성이 평안했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지면 여지없이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허약해지게 되고 그러면 또 이방 사람들이 군사를 몰고 쳐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 관계를 깊이 생각해야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통이 계속 이루어져야 했다 말이다.
그래서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평안했다.
또 하나님이 막아 주셨다고 하신다. 이건 군사로 막은 것이 아니다.
권력과 경제로 막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막아 주셨다.
이스라엘에게 권세를 주시고 이방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된다.
영적으로 두려워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이다 라고 하는 그 의식 때문에
저들은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땅에 평화가 있었다고 한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지요.
◑2. 사무엘의 통치
이제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 주시는 귀한 말씀이 있다.
15절 이하에 보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했다.
정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치는 왕권적 정치가 아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정치적 정치가 아니다. 이것은 힘으로 다스리는 정치가 아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된다. 다스린다고 할 때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힘으로 다스리는 그런 평화가 있다.
다스리는 자의 힘이 강할 때 모든 백성은 노예적으로 순종하게 된다.
그러면 평안하지요. 조용하지요. 그러나 그건 평화가 아니다.
마치 지금 북녘 땅이 조용한 것같이 보인다.
조금만 반대하면 반동분자로 몰아서 처형해 버린다. 모두가 두려움에 벌벌 떤다.
조용한 것 같다. 다스려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
참 자유라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오늘 본문의 ‘사무엘이 다스렸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렸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다스렸다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니까 순회하며 다스렸다고 그랬다.
왕이라는 것은 본래 수도가 있으면 거기에 왕궁이 있고
또 거기에 신하들이 있고 군사들이 있고 그렇게 다스리는 것 아닌가?
제가 중국의 서안이라고 하는 곳에 갔을 때 옛날 왕궁으로서 지은 성이 굉장하더라.
성곽 위에 차가 세 대가 동시에 지나갈 정도로 넓게 튼튼하게 지었다.
적어도 한 5층 높이나 되는 성을 그것도 평지에 깨끗하게 지어놓은 것을 보고 놀랐다.
지금도 그 성문이 얼마나 큰지 자동차나 트럭이 그냥 지나다녀도 문제가 없다.
그렇게 크게 만들어 놓았다. 그걸 옛날 당나라 때 만들어 놓았다니까
우리 나라의 사신들이 거기에 가서 그 성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냥 입을 딱 벌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왜 그렇게 성을 크게 만들어 놓았나? 그 말이 중요하다.
왕이 백성을 믿지 못한데요. 그러니까 왕이 그 성안에 사는데,
그 성은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성이 아니다.
왕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 측근자들만 그 안에 집어넣고
문 꼭 닫아 놓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이다. 겁이 나서요. 이게 우스운 것이죠.
백성을 믿지 못하니까. 이게 바로 군주들이 하는 어리석음이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니까 사무엘은 그런 식으로 다스린 게 아니다. 순회하면서 다스렸다.
순회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혹 우상을 섬기는 자가 없나 돌아보고,
혹 잘못된 사람이 없나, 혹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이 없나,
있으면 재판을 하고 가르치고 다스리고, 그리고 저들을 봉사했다는 말이다.
영적으로 봉사했다. 이게 다스린다는 것이다.
사무엘이 순회하며 다스렸고 그리고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거기서도 다스렸고, 또한 거기서 제사를 드렸다.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참 평화가 있었다.
오늘날 '말씀의 사역자,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 에서의 다스리는(섬기는) 자들이다.
그들이 사는 날 동안에는,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하나님 나라에 평안이 있는 것이다.
사무엘이 보여준 예처럼! 그러면 나라도 평안해진다.
곽선희 목사 새벽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