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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

LNCK 2024. 3. 30. 08:40

다 이루었다              요19:30, 행22:10         2024.03.29.고난주간새벽5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19:30

◑1. 다 이루었다

예수님은 영혼이 떠나가시기 직전에, 마지막 순간이죠. 
머리를 숙이시기 직전에, 
한 단어예요. 우리 번역에는 두 단어(다 이루었다)로 번역되지만, 원어는 한 단어예요. 
 *테렐레스타이, teleo 의 수동 완료, finished, fulfilled, completed  

한 단어로만 말씀하신 거예요. 
근데 이 한 단어 속에 인류 역사 전체가 담겨 있는.. 
어떻게 한 단어에 그 많은 내용들을 담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많은 의미를 간추려서 아래 4가지로만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는 것은 
'모든 예언이 다 성취되었다' 그런 말씀이세요. 

'예수님을 통한 세상의 구원'의 예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나요?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죠.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 말씀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이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과 예언적 사건들이, 구약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게 다 이루어졌다는 거죠. 그걸 십자가를 지심으로 '다 성취하셨다'는 뜻이죠.

또한 예수님께서 그 구약에 예언된 말씀대로, 그 성취를 위해서 그대로 사셨다... 그런 말씀이죠. 
우리도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또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지시하시고 명령하신 내용들을 
우리가 다 살아내는... 

 

그래서 우리도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다 이루었다, 

나는 다 성취했다'고 자기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그 순종의 길을 우리도 주님과 뒤따라 걸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다 이루었다'는 말씀에 들어있는 두 번째 큰 의미는
'천국 백성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대가를 다 지불했다' 입니다.
더 치러야 될 치러야 될 잔금이 남아 있지 않고 다 지불했다... 그런 얘기예요. 

그러니까 상거래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한결 쉽습니다.
물건이나 노예를 살 때, 그 값을 완불했다... 이때 사람들은 이 말을 썼죠.  *테텔레스타이

즉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더 남거나, 그래서 더 보태거나 할 여지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로 '완납'이죠!

그럼 우리가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까? 아뇨, 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뭘 했습니까? 
각 가정마다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다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명령 따라서, 말씀 따라서, 그거는 순종을 했다고요. 

오늘날 우리도 어린 양 예수님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죠. 어떻게 바릅니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내 심장 한 가운데에 모셔드리는... 
그리고 그분과 함께 동행하며, 그분을 따라가며 사는 그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 마음의 결정을 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천국백성이죠.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켰듯이,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을, 천국백성들을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출해 내시고, 해방된 백성으로, 자유한 민족으로 또 살게 하시는 그 길이 
'다 이루었다'라는 선언을 통해서, 우리 앞에 펼쳐진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서 행진 했듯이, 
우리도 예수님이 앞서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서 
이 광야 인생길을 걸어가는 그 길이 열려지게 된 거예요. 

우리는 하늘나라 백성으로, 사단의 나라에서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출을 받아서 
본향을 향해서 걸어가는.. 주님을 따라서 걸어가는 그런 백성이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라는 자신감을 다 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다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거예요. 

▲3. '다 이루었다' 라는이 말씀의 세 번째 의미는 
<예수님 자신을 전부 다 쏟아부었다> 그런 의미예요. 

'이루었다'라는 말의 의미에는, 다 쏟아부었다 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요즘 '영끌족'이란 말이 있는데, 영혼까지 다 끌어모아 쏟아붓는다는 뜻이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공생애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끌어모아서 쏟아부으신 것이에요. 그걸 다 끝냈다는 거죠.
기름병으로 치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탈탈 털어서 부으셨다.. 는 의미가 들어있는 거죠.

예수님은 자신이 가진 것을 일부분 떼 놓고, 일부를 주신 게 아니라는 거죠.
자기 목숨을 내어 주셨다.. 그 전부를 털어서, 영혼까지 끌어서 다 내어주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이 먼저 몸소 그 말씀대로 사셨어요. 요15:13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또는 평소에도 십자가를 바라볼 때는, 
우리가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돼요. 
자신의 모든 것을 탈탈 털어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모두 버리신 그 사랑!
그것을 우리가 깊이 묵상하며 지나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외국 노래도요. '내가 사랑을 압니다, 내가 사랑을 이해합니다' 이렇게 말하질 않고요. 
I feel love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랑을 내가 느낍니다' 라는 뜻이죠. 

그렇죠, 사랑은 느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에 대해서 많이 듣고, 강의를 하고, 이해를 하고, 뭐 사랑의 박사가 된다 한들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의 가슴에, 십자가 예수님의 사랑,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을 
우리가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4. 네 번째로 '다 이루었다'는 말씀 속에 들어있는 의미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명하신 일들을 내가 다 행했다' 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이 땅에 왔는데, 그것을 다 순종했다. 그런 말씀이세요. 
요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 속에 담겨 있는 그 의미들은 
우리가 몇 날 며칠을 살펴도 끝이 없을 그런 말씀이긴 하지만
이 4가지 큰 제목으로 우리가 정리해서 생각하면, 
우리 머릿속에 또 우리 가슴속에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그럼 4가지를 묵상하며 기도하면 되죠.

◑2.  머리를 숙이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19:30

'다 이루었다' 이 외침을 마치신 다음에, 머리를 숙이셨습니다. 

'머리를 숙이다'라는 말은, 운명하시는, 돌아가시는 현상을 표현한 것이다.. 라고 우리가 이해하는데,
여기 사용된 이 표현은 '의지적으로 고개를 숙였다'는 뜻입니다. 
'머리를 툭 떨구었다'가 아닙니다.

사람이 의지적으로 고개를 숙일 때는 언제인가요?
경의를 표할 때, 인사할 때 고개를 숙이죠.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머리를 숙이신 것은, 
구원 사역의 일을 다 이루도록, 이 땅에 보내주신, 함께 해 주신
하늘 아버지께 경의를 표하는 그런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셨다.. 는 의미입니다. 

보통 그냥 잡혀서 이렇게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죄수는, 
제정신이 아니겠죠. 거의 뭐 혼수상태가 되겠죠.
숨이 떠나기 전에 벌써 마음이 먼저 죽고, 머리가 먼저 떨구어지겠죠.

이건 머리가 떨구어진게 아니에요. 스스로 머리를 숙이신 것입니다. 
이거는 원수 앞에 항복선언이 아니고요. 하늘 아버지께 경의를 표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엄숙한 순간이죠. 

그때까지 예수님은 머리를 꼿꼿이 세워서 다 보고 계셨고요. 
군인들이 손에 못을 박는 장면, 옆구리에 창을 찌르는 거 다 보고 계셨고, 
오히려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계셨어요.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19:26 
요한을 보시면서 '네 어머니다' :27 
이렇게 챙길 것을 다 챙겨주시고 
마지막으로 마지막 남아 있는 시편 예언의 말씀, '내가 목마르다'를 다 이루시고  요19:28, 시69:3, 22:15
그리고 고개를 숙이셨어요.  

예수님이 혼수상태에서 고개를 떨구신게 아니라는 이유를, 방금 설명드린 겁니다.
 
이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다 행하신 다음에 '다 이루었다'
하늘 아버지께 이 땅에 나를 보내셔서 
주의 백성들을 사단의 권세로부터, 흑암으로부터 건져내게 하신 
아버지의 그 장엄한 계획이 다 완성되었습니다... 하는 경의의 표지로 고개를 숙이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이 본문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세상에 살 동안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그 사명을 다 이루고 나면, 
마지막에 하나님께 고개를 숙이고 경의를 표하며, 숨을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웨슬리의 임종 https://rfcdrfcd.tistory.com/13077792

◑3.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19:30

'영혼이 떠나가셨다'
예수님 몸은 놔두고, 영혼이 그냥 쑥 빠져나가는... 
그런 '유체이탈'식으로 우리가 그렇게 상상하기 쉬운데, 그런 의미가 아니고
'예수님이 떠나가셨다' 그런 의미예요. 

십자가의 예수님 옆에 있는 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죠.
예수님이 떠나가셔서 낙원(천국)에 가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운명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23:46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저는 여기 (세상에) 있지만, 제 영혼을 잘 챙겨 주세요' 그런 의미가 아니고요. 
예수님 자신이 떠나가시는 거예요. 
이렇게 떠나가심으로 구원사역의 모든 일이 완결지어지는 거예요.

이 떠나가시는 장면은, 마라톤 선수가 42.195 Km를 한 바퀴 그냥 
그 고비고비 포기할 수도 있고, 또는 포기하도록 만드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그것을 다 견디고 마지막 최후의 마지막 5Km 
거기는 정말 뭐 죽을 고비를 넘길만큼 힘든 과정이라고 하는데요. 

예수님은, 그걸 다 마치고 드디어 골인 지점을 딱 통과하는 그 순간이란 말이에요. 
사도 바울도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하는 그 순간, 
그 순간이 오게 된 거예요. 

떠나가는 그 순간이, 사실은 승리의 순간이었고, 
사실은 그 떠나가는 순간을 위하여, 지난 3년 동안 그 과정을 예수님께서 다 감당하셨습니다. 
그 고난을 다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떠나가는 그 순간은, 영광의 순간이고, 떠나가는 순간이 승리의 순간이었죠. 

우리도 이렇게, 영광스럽게 떠나가게 되기를, 일평생 바라고 소원하며 기도로 준비하는 거죠.
영광스럽게 떠나기 위해서는, 오늘 매일 하루하루를
자기 사명을 감당하며, 성실히 충성스럽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제야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며, 영광스럽게 떠날 수 있는 거죠.

그 이후에는 사도바울의 말씀처럼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마친 후에, 나는 나를 위하여 예비된 영광의 면류관 
나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지금이 경주를 해왔습니다. 이제 마쳤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그렇게 '싸우고, 마치고, 지켰다'고 고백할 수 있기 바랍니다. 

   ☞https://rfcdrfcd.tistory.com/15973274

◑적용

▲1. 떠남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 떠나가심을 통해서 이루신 웅장한 구원사역, 
떠나가지 않으면 이루지를 못하는 그런 인류 구원의 그 아버지의 크신 웅장한 계획이 
다 완성되어지는 그런 떠남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떠남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이 또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순교자들이죠. 떠남으로써, 살아 생전의 일보다 더 많은 일들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떠남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주님을 따라서 우리가 떠나야 돼요. 

우리가 우리 자신(자아)으로부터 떠나야 되고요. 
우리의 욕심으로부터 떠나야 되고,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야 되고, 
그리고 어디로 갑니까? 본향을 향하여 걸어가는 순례의 걸음을 가는 거죠.
하는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으면, 십자가를 지고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제자들를 불러놓고, 이제 떠나시기 직전에 최후의 만찬에서 그런 말씀을 주셨어요. 
포도주 잔을 돌리시면서 '이 잔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 내 피다.' 

아마 제자들도 그 순간에는, 그 의미를 다 몰랐을 거예요. 
'아니 우리를 위하신다면, 계속 오래오래 사셔서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워 주시고, 독립을 쟁취해 주시고,
이 민족의 희망이 되시고, 이 민족의 영광이 되셔야... 그게 우리를 위한 것이지, 
아니 피를 흘리고 돌아가시는게 어떻게 우리를 위하는 겁니까?' 이해를 못 했을 거예요. 

그러나 나중에 나중에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그 피의 의미를 깨닫고 난 다음에 
제자들의 인생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거예요. 

다른게 아니에요. '그렇다면 나도 나도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야지,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돌아가셨는데... 나도 주님을 위해서 내 목숨을 바치며 살아야지..' 

만약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느꼈다면, 그 의미를 우리가 깨달았다면 
깨달은 주의 백성들의 가슴 속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은 
'그러면 나도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야지!' 그 마음이 올라오는 거예요.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사도 바울이 따랐고요. 
베드로를 위시한 모든 주의 제자들이 다 그걸 따랐고요.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 똑같은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았어요. 

'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이 세상을 삽니다.' 
이런 변화가 저와 우리 성도님들에게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것이 진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은 성도의 자연스런 반응이에요.

오늘 우리에게도 각자 주어진 사명이 다 있어요. 그 사명이 있어요.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의미가 있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존재 의미, 존재 이유죠. 

예수님도 그냥 강력하게 말씀하셨어요. 
'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마라. 
그거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출해낸, 해방시킨 
하늘 백성으로 살도록 만들어 준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라! 이것이 정상이니라' 하고 말씀하신 거예요. 

우리의 가슴에 그런 마음이 다시 올라오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도행전 22장에, 사도바울이 자신이 다메섹으로 갈 때에 
예수님을 만났고, 그 만나는 순간에 이제 깨달아진 거예요.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나를 왜 핍박하느냐?'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바울의 첫 반응이 
행22: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우리 구원을 이루어 주신 그 예수님! 
그 십자가의 의미와 그 사랑의 능력이 우리 가슴에 와 닿는다면, 
우리도 우리의 가슴속에서 '주님 그러면 저도 예수님을 위하여 앞으로 살겠습니다. 
일생을 주님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이제 제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 반응이 우리에게서 올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달려갈 길을 다 마친 후에, 
'내게 주신 사명을 다 이루었다'
'고개를 숙이며,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고 기도한 후에'
'우리 영혼이 영광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나가는'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