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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히신 예수님

LNCK 2024. 4. 1. 19:09

2024년 고난주간특새(02) ’붙잡히신 예수님’ (youtube.com)

붙잡히신 예수님       막14:43~52       2024년 고난주간특새(02)  

※맨 아래 '◑적용' 단락이 재미있고 의미심장 합니다.

 

▲제일 무서운게 절망이죠. 
절망보다 더 무서운게 뭐죠? 잘못된 희망입니다. 

절망도 무섭지만, 사실은 더 무서운게 
그 기대와 희망이 잘못됐을 때... 그건 끔찍한 겁니다. 

여긴 줄 알고 힘써 등정을 했는데, 
올라가 보니까 '어, 여기가 아니네?' 이런 낭패를 만약 겪는다면 
그 상실감은 어떻게 했습니까 

어제 새벽 메시지를 정리하자면    ☞ 2024년 고난주간특새(01)  
겟세마네 동산의 현장은 
'아들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 사이에 더 없이 하나' 라는 사실이 확인됐어요. 

아들 예수님도, 그 처절한 순간에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다시 한번 검토해 달라는 절규가 있었습니다. 

그 상황 자체가, '하나님과 아들 사이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얼마나 하나일 수밖에 없었는가?'를 잘 보여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크게 사랑하시는가?'를 드러내는 현장이었습니다. 
(아들 예수님을 외면하고, 우리를 구원하셨으니까요)

결국 아들 예수님은, 겟세마네 기도로, 
하나님의 경영과 교회에게 철저하게 동역하시죠. 놀라운 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고난 주간의  막14:27절부터 시작이 돼야 돼요. 
막14: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스가랴13:7) 

▲오늘 본문은, 막14:50절 입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이 구절은, 43절부터 시작되는 에피소드의 종결입니다.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거두절미하고 '유다가' 이렇게 말해도 될 텐데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그러니까 이 유다가 12제자 중에서도 사실 재정을 담당했을만큼 
예수님께 밀착된 관계였습니다. 

유다와 제자들이 한 그룹이 되어서 
예수님을 추종했고, 지금 여기 겟세마네까지 좇아와 있어요. 

근데 정작 이 겟세마네 동산의 현장에서 기도할 때, 유다는 사라졌다가

(이 시간에 대제사장과 예수님의 체포를 모의했죠)  
이제 유다가 갑자기 이 장면에서 등장을 하는 거죠. 

유다가 왔는데, 누구를 데리고 왔는가 하면,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에게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3

'검과 몽치 (몽둥이)'
무기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상징적인 도구예요.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은 유대의 권력을 대표하는 그룹들입니다. 
그들의 종(성전 경비병)들이 유다와 함께 온 거죠. 

근데 뭘 가지고 왔냐면, 검과 몽둥이를 가지고 왔어요. 무기를 가지고 왔어요. 
이것은 사실상 예수님과 제자들이 
'로마를 향한 반 정부의 의도를 가진 테러분자'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순회, 떠돌이 전도활동을 하셨으니까, 삐딱하게 보면 그런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나중에 이렇게 표현을 해요.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8

'강도'는 
그저 길거리에서 금품을 빼앗는 잡범 수준의 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그 양편의 강도도 사실은 테러 분자입니다. 
(유대 독립을 원했던 산적, 무장 단체, 그래서 강도질이나 살해를 저지른 자로 봅니다)

그러니까 유다는 물론이고, 나머지 제자들이 예수님을 여기까지 추종해 왔지만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잘못되어 있었던 거죠.

하나님의 계획과, 경영과, 말씀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드러낸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49절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성경을 이루시려는 예수님과,

성경과는 동떨어진 그 외 사람들 (제자들, 대제사장들, 서기관과 장로들)

 

여기까지 오시면서 당신의 미세한 동작 하나, 발자국 한 걸음이 모두  
예수님은 성경을 따라, 성경을 이루시려는 방향으로 걸어 오신 거예요.

이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시기도 전에, 이미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27

근데 그 근거가, 예수님의 직감이 아니라, 
스가랴 선지자의 글을 인용해서   *슥13:7, 막14:27
'내가 지금 하나님의 계획과, 구원을 위한 경영에 
내가 지금 스스로 적극적으로 들어가고 있다. 
나는 이 땅에 성경의 예언을 이루려고,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이 땅에 온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자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돌발 변수가 하나 생깁니다.  

45절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이것은 이미 짜놓은 암호였어요. 
'내가 입맞추는 자가 바로 그 주동자다. 그 집단의 두목이다.'  :44

아마도 이런 무기를 지참하고, 또 이런 군호(암구호)를 짜서 체포조를 움직이고,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라는 표현으로 봐서, :44

저들은, 두목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 함께한 무리들이, 격렬한 저항을 할 줄 알았어요. 

체포과정에서 당연히 물리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것이고, 
그 충돌은, 부득이 이들이 테러분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예측을 하고, 군호를 서로 약속해서, 흉기를 가지고, 체포조들이 들이닥친 겁니다. 

이들(체포조를 보낸 자들)의 오해는 성경을 모르는 데서 오는 무지였어요. 
근데 예수님은, 49b절에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예수님은 성경을 이루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시려고, 
지금 적극적으로 죽음의 길로 들어가시는데... 제자들은 도망갔어요. 

도망의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주소를 잘못 알았구나. 헛다리 짚었구나... 
우리가 추앙하고 따랐던 이 분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힘없이 
스스로 포승줄을 받고 체포될 줄이야 몰랐다. 저항조차 하지 않을 줄 몰랐다.' 
그래서 다 도망가버리고 말았어요. 

여기서 절정이 뭔지 아십니까?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사람이 소개됩니다. 
47절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한 사람이 저항했어요. 
근데 이 저항은, 성경을 이루려는 저항이 아니라, 
자기의 의리와, 신의와, 충성을 담은 저항이었어요. 
마가복음 본문에는 이름이 소개되지 않지만 베드로예요. 

'어디다 감히 우리 스승에게 손을 대?' 
굉장히 인간적입니다. 굉장히 신의가 있어 보입니다.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놓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요. 

근데 여기에 아주 아이러니가 있어요. 
이 베드로의 문제는 뭘까요? 

앞서 살펴보았던 대로 27절을 보면 '다 흩어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사실 이런 베드로 고백과,  *나는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 태도는 일치하는 태도입니다.  *칼을 빼서 휘두름

근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과 경영과 계획과 하나님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역설이에요. 

베드로의 문제는, 너무 자기 힘이 들어가 있어요. 
그 힘이라는 것은, 사실상 인간적인 힘입니다. 

 

◑적용

 

교회에서도 이런 아이러니가 많이 벌어져요. 
교회에서도, 칼을 뺀 베드로처럼, 각자 나름 주님을 위하고 있는 거예요. 
나름 주님을 위해서 힘을 쓰는 거예요. 자기 목숨도 거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의 의도와, 하나님의 시간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거죠. 

사실 목회자도 그래요. 목회자도 정말 목회를 대충하는 목사는, 제가 말이 못 봤어요. 
저도 부족하지만, 목회를 대충 할 수가 없죠. 
모든 목회자들이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합니다. 

근데 더 슬픈 것은, 그러한 수고와 애씀과 힘씀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방향과 가치를 담고 있는가?' 질문할 때 
하나님과 전혀 다른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그 열심이) 허무해져요. 

▲최근에 제가 오랜 친구 목회자를 만나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어요. 
친구 : "야 내가 너한테 할 말이 하나 있다." 
제가 : "뭔데?" 

친구 : "니보다 나의 목회 여정을 더 자세히 아는 친구가 없는데, 너도 알다시피  
이상하게 지난 세월 동안, 내가 손 댄 것은 다 망했다." 

그 다음에 뜬금없는 얘기를 하나예요. 
친구 : "근데 내가 손 안 된 것만 (방치한 것만) 잘 됐다." 

제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어요. 
그건 본인 판단이겠죠. 
그리스도 안에 망한 게 어디 있어요? 잠시 망하는 것이 있었다 해도, 다 완성을 향한 과정이죠.

제가 : "네가 목회 망친 건 내가 잘 알겠는데, 
그렇다면 네가 손 안 대서 잘 된게 뭐가 있냐?" 그랬더니 
자기 자녀들이 잘 됐대요. 

그렇게 말하고는 서로 같이 많이 웃었어요. 
그 친구의 자녀들이 정말 잘 됐어요.
영적으로도 그렇고, 세상적으로도 그렇고 
하나님이 정말 잘 키워 주셨어요. 

그러니까 목회든, 인생이든 
자기의 힘을 빼야 되는데, 평생 그 싸움이 제일 힘든 싸움입니다. 
(목회에서, 사업에서) 내 힘을 빼는게, 가장 힘든 싸움이에요. 믿습니까? 

▲여러분, 교회 안에서 자기 힘을 빼세요! 
왜냐하면 (본문에 칼을 뺀 베드로처럼) 
내가 교회 일을 위해서 몰입하고, 열중해서 뭘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갈 수가 있다고요. 

얼마나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아이러니 입니까?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주님과는 반대로,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가 너무 쉽다고요. 

근데 본문에서, 제자들은 결국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아니 여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어나 함께 가자' 라는 말씀 속에는   :42
그 긴 긴 나머지의 시간 속에서 
이들을 어떻게 빚어 가시고 만들어 가시겠다는 의지가.. 
거기(일어나 함께 가자는 말)에 약속되어 있는 겁니다. 

41~42절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됐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근데 함께 간 그 길은, 
제자들은 배반의 길이었고, 도망가는 길이었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죽음으로, 십자가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시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늘 본문에서는 벌거벗고(:52), 도망가고, 다 줄행랑을 쳤지만 
우리가 성경에 결론을 보면
이 제자들이 나중에 부활한 이후에 주님을 만나고 나서 
성령을 받고 나서, 어떤 모습으로 열매 맺고 성공합니까? 

다 고난 받고, 순교하고, 순교의 죽음으로 자기의 온 인생을 드리는 모습으로 성공합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자기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게 성공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과 경영에 맞게 그 길로 들어가는 것이 진짜 성공, 영원한 성공'입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누구도 나를 흉내낼 수 없는 성공입니다.  

어줍잖게 세상과 싸우지 말고, 세상을 흉내내서 이겨 먹으려고 하지 마세요. 
성경은 정확하게 뭐라고 얘기합니까?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그랬어요. 

근데 왜 혈과 육으로 싸워서 성공하려고 합니까? 
그건 우리 싸움의 대상이 아니에요.
영적인 싸움이란 말이죠. 

오늘도 우리는 이 제자들의 모습 속에 아이러니를 발견하면서 
'하나님, 내 의지, 내 결심, 내 열정, 내 헌신마저도 내려 놓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붙들고,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드시는... 
제가 수동적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제가 순종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항상 여러분들에게 제가 강조하는 바가 
'인생은 수동태다!' 
이끌림을 받는 것이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마시고, 해결 받는 인생이 복된 인생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이 말씀이 여러분들을 
깊은 기도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밤에 다 같이 주신 말씀 붙들고 기도할 때 
첫째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들어가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 말씀에 이끌림 받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도우시며 

나의 힘, 나의 의지, 나의 열망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열망, 하나님의 계획에 
내 인생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