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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진 마28:1~10
※내 영혼에도, 공동체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 좋다는 주제의 설교문
▲도입
우리가 이 다음에 천국에 가면 여러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을 만날 것이고, 모세를 만날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도 만날 것입니다. 믿는 가정은 돌아가신 부모님도 만날 것입니다.
그 분들을 만나 평소에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고 대답을 듣고, 그렇게 하다 보면
날마다 부흥회이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저는 마태 사도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도 마태님, 사도님은 세리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회계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라
혹시 지질학을 전공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도님은 지진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마가나 누가나 요한은 부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진이 났었다는 이야기가 없는데
왜 마태 사도님만 마28:2절에서 '큰 지진이 나며' 이렇게 지진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그것도 보통 지진이 아니고 '큰 지진'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다른 분들은 지진이 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마태 사도님만 지진이 났다고 마27:54절에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렇게 지진을 좋아하셨습니까?" *문제 제기
사실 이상한 일입니다. 부활에 대한 기사들을 살펴보면
마태복음에만 지진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땅이 흔들리는 지진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건인데 유독 마태만 이 일을 기록했을까요?
마태복음 주석을 여러 권 찾아보아도 이 문제를 제기한 주석은 없습니다.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니 대답을 제시하는 주석은 더욱 없습니다.
▲이 큰 지진은, 당시에 실제로 있었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의 정경에 대해 마태는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다"고 했고(마28:2),
마가는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막16:4),
"벌써"라는 점과, 돌이 크다는 것을 강조했고, *굴려져 있었다는 것은, 지진의 결과
누가는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눅 24:2),
요한은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요20:1)라고 적고 있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그 일을 본 시기와 관점에 따라 표현은 달라집니다.
화재가 났는데 불이 한참 타오를 때 그 불을 본 사람은 "큰불이 났다"고 하고
불이 꺼지고 잔불 정리를 할 때 본 사람은 "불이 났었다"고 합니다.
한참 뒤에 와서 잿더미를 본 사람은 "불이 났었던 모양이다" 할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 마가, 누가의 기록이 약간씩 다른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첫 보도는
마태복음이 제일 신속하고 자세하고 현장감이 있습니다.
역사가 요세프스는 헤롯 통치 때 팔레스타인에 큰 지진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서고고학 발굴대가 사해 부근에서 에세네 파들이 살던 곳을 발견했는데
건물에 지진 흔적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과 마태가 말하는 지진을 연결해 볼 수도 있습니다.
◑마태가 말한 "큰 지진"에는 더 중요한 뜻이 세 가지 있습니다.
▲먼저 "부활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하나님의 권능으로 역사하실 때
지진이 있었음을 가르쳐줍니다.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고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임하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옥중에서 하나님을 찬미할 때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도 지진이 있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권능으로 역사하신 일입니다.
마태는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큰 지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부활은 악한 세력들에게는 심판이다"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성경은 또 심판의 때에 지진이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고라 일당이 모세에게 반역하였을 때 땅이 갈라져서 그들을 삼켰습니다.
이에 대한 민수기의 기록에는 지진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분명한 지진이었습니다.
마24장, 막13장, 계시록에는 말세에 심판하실 때 큰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부활은 세상의 모든 불의한 세력에 대한 심판입니다.
당시 헤롯과 빌라도와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과 권력을 잘못 행사한 사람들에게
부활은 결정적 심판이었습니다.
마태는 이것을 말하고 싶어서 "큰 지진"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또 "부활은 큰 변화이다"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지진은 변화를 일으킵니다. 지금도 큰 지진이 일어나면 도시를 새로 건설해야합니다.
1976년에 중국의 당산시(塘山市)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24만 명이 사망했는데
지금의 당산시는 그 뒤에 새롭게 건설된 도시입니다.
지진이 나면 묵은 것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등장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날 때 문지방의 터가 요동했습니다.
"이제 너는 새로운 존재이다. 사죄받은 존재로서 살아야한다.
예언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성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게 했습니다.
◑마태가 말하는 "큰 지진"은
2천 년 전 오늘 새벽, 예수님의 무덤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이 큰 지진은 세 가지 분야에서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첫째, 인류 역사에서 큰 지진입니다.
인류 역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기원전과 기원 후, BC와 AD로 구분이 됩니다.
그러나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부활 이전과 부활 이후로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덤에 머물러 계시는 것으로 그의 생애가 끝났다면
예수님의 탄생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예수님의 존재는 공자나 석가나 마호메트의 탄생보다도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역사를
기원전과 기원 후로 나누는 일 같은 것은 물론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억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적은 기록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전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도 별로 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겨우 아주 두꺼운 고대 윤리학 교과서 가운데 두어 쪽 기록되는데 그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늘나라 운동은 갈릴리 한구석에서 있었던 아주 미미한 새로운 종교운동 가운데
하나로 인식될 것이고, 예수님은 실패한 종교인, 또는 실패한 도덕가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감리교신학대학교에 가는데
감리교신학대학 예전 본관에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 본관, 지금은 청암 홍현설 박사 기념관 로비에
삼일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감리교신학대학 출신 목사님들의 흉상들이
부조로 벽에 붙어 있습니다. 혹시 최근에 이 부조를 보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부조들의 전체 배치가 균형이 맞지 않아 조금 어색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는 거기 일곱 분의 부조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나중에 심하게 변절을 해서
교회를 일본당국에 굴복시키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해방 뒤에 이 문제로 공격을 받으니까 이 분은 천주교로 가서
"천주교야말로 정말 좋은 종교인 것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 글들을 발표하다가 돌아 가셨습니다.
몇 해 전에 이 분의 변절이 문제가 되어, 고향에 있던 그분의 동상이 강제로 철거되었습니다.
따라서 출신학교에 붙어 있던 흉상도 철거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초기에는 1904년의 원산부흥운동도 주도하고, 감독을 지냈고,
훌륭한 일을 많이 한 분인데, 끝에 가서 실패하니까, 전체가 실패한 것으로 되었습니다.
부조가 일곱 개 있던 자리에 하나를 떼어 냈으니까 어색하지요.
그것을 볼 때마다 "아, 끝까지 한결 같아야겠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겠다"
하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하고(마16:21),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말씀해 놓고(요11:25)
정작 부활하지 못했다면 예수님도 실패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기꾼이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이 일으킨 천국 운동의 불꽃은 그대로 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꺼질 뻔했던 예수님의 하늘 나라 건설운동의 불꽃이 거세게 다시 일어났습니다.
마태는 이 모든 것을 요약해서 "큰 지진"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의 큰 지진이었습니다.
이 지진은 로마 제국을 삼켰습니다. 유럽 대륙을 삼켰습니다. 미국 대륙을 삼켰습니다.
한국에도 이 지진이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이 지진이 한국을 삼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자연적인 지진이 일어나서 도시가 파괴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부활이라는 지진 속에 역사가 삼켜지고 나라가 삼켜지고 세계가 삼켜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부활은 인류 역사 속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큰 지진입니다.
▲둘째, 신앙의 역사에서 큰 지진입니다.
이 큰 지진은 안식일이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유대교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
이것은 지금 주일, 일요일, 오늘 동틀 무렵을 말합니다.
저희가 오늘 새벽에 수지고등학교 교정에 모여
이 지역사회의 교회들과 연합으로 부활절 예배를 드렸는데, 바로 그 시간을 말합니다.
마28:1절의 "안식일이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이것은 신구약 성경에서, 그리고 교회 역사적에서 주일에 대한 첫 번째 기록입니다.
교회가 언제부터 주일에 예배를 드렸는가 하는 기록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바울 당시부터 토요일이 아닌 주일에 예배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행20:7절을 보면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여기서 죽은 유두고를 살리는 일이 있었지요. 그 주간의 첫날은 주일입니다.
그러다가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일은 휴일로 정하는 명령을 내려서
이 날이 보편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안식일이 주일로 바뀝니다!" 하는 선언은
예수님의 부활과 동시에 마태에 의해 선포되었습니다.
안식일, 토요일도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완성을 기념하는 중요한 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창조사역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구속사역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성취됩니다.
인류의 역사는 새 생명의 복음이 약동하는 새로운 국면에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에게 한정된 유대교를 떠나
세계 복음 시대를 향해 시동을 걸게 된 것입니다.
구속사의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 이것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의 전환입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 이것은 율법에서 믿음으로의 전환입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 이것은 껍질에서 알맹이로의 전환입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 이것은 형식에서 내용으로의 전환입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 이것은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전환입니다.
구약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약 없이는 구약의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 이것은 "하지 말라"에서 "하라!"로의 전환입니다.
구약의 계명들은 "하지 말라" 투성이입니다. 신약은 "하라!"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안식일에서 주일로, 이것은 생명 아닌 것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입니다.
☞안식일을 넘어서 부활하신 예수님 rfcdrfcd.tistory.com/11477582
지금도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고집하는 종파가 있습니다.
이 종파는 아직도 이런 전환 이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일은 작은 부활절입니다. 오늘은 큰 부활절이고 매 주일은 작은 부활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어야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맛보았던 감격을 맛보아야합니다.
여러분, 이 지진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낡은 것들은 큰 지진으로 갈라진 틈으로 과감하게 집어넣으세요. 묻어 버리세요.
다시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세요. 그 위에 새로운 믿음을 건설하세요.
이것이 로마서 6:4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의 깊은 뜻입니다.
▲셋째, 부활은 각 개인에게 큰 지진입니다.
원로 코미디언인 구봉서 장로님이 간증을 할 때, 빠뜨리지 않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분은 어머니가 예수를 믿었지만 자신은 교회를 멀리하던 분이었습니다.
마침 연예인들 세계에서 성경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분의 부인이 신앙을 가진 분이어서, 돈암동에 있는 이 분 집에 모여 성경공부를 하는데
이 분은 심통이 나서 집의 보일러를 끄기도 하고
성경공부 하는 한 구석에 "나 좀 쉬어야겠다"하고 눕기도 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누워있다가 성경공부 인도하는 전도사가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하면
"흥, 고단백(高蛋白)식품만 먹었구먼!" 이렇게 방해를 하던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던 분이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으려고 하니까 심경이 매우 복잡합니다.
이 때 일을 말할 때 "그 때 내 해골에 지진이 났었습니다" 이런 표현을 해서 사람들을 웃깁니다.
지진 없이 예수를 믿었으면 뜨뜻미지근한 신앙을 가졌을지 모르는데
지진을 겪고 예수를 믿었기에 뜨겁게 믿어 연예인교회 설립에 앞장섰고 장로가 되었습니다.
△이 지진을 가장 심각하게 체험한 사람은 바울일 것입니다.
살기등등 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들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소리는 무덤 속에서 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을
증언하면서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바울에게 큰 지진이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었습니다.
핍박자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오직 율법으로!" 하던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넣던 사람이
예수 때문에 옥에 자주 들어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지진을 체험했습니다. 도망자들이 도전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진을 겪고 변화가 될 때 비로소 제자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빠짐없이 이 지진을 체험해야 합니다. *주제
(꼭 반드시 지진을 체험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체험하는 게 좋죠!)
△지진이 나고 무덤과 여인들을 가로막고 있던 돌이 굴려졌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이 여인들이 무덤으로 가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염려했다고 합니다(막16:3).
마가가 전해주는 대로 큰돌이었습니다.
이 돌이 굴려졌습니다. 가로막고 있던 것이 없어졌습니다.
치워지지 않은 것 같은 큰돌이 치어졌습니다.
지진이 나서 나와 예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돌이 굴려져야 합니다.
나와 이웃을 가로막고 있던 돌도 굴려져야 합니다.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돌도 굴려져야합니다.
남한과 북한을 가로막고 있는 돌도 굴려져야합니다.
영남과 호남을 가로막고 있는 돌도 굴려져야합니다.
예수님 부활 당시 있었던 큰 지진이 지금도 일어나야 합니다.
"산불도 지긋지긋한데 지진이라니요?" 하시지 마세요.
좋은 지진입니다. 변화시키는 지진입니다. 새롭게 하는 지진입니다. 생명의 지진입니다.
여러분 이 지진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하는 천사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가서 제자들에게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이르라" 하는
천사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전하기 바랍니다.
△지진의 근원이 되는 곳을 진앙(震央)이라고 합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먼저 진앙이 어디인가를 찾습니다.
저희 교회가 이 큰 지진의 진앙이 되기 바랍니다.
목양교회를 진앙으로 한 이 지진이 널리 널리,
이 지역사회, 수도권, 한반도, 아시아 대륙, 세계로 퍼져 나가야겠습니다.
여러분도 작은 진앙이 되어야합니다.
가정, 직장, 학교, 살고 있는 곳 주변에 지진을 일으켜야합니다.
변화시켜야합니다.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야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큰 지진이 오늘도 인류 역사에, 신앙 역사에,
각 개인에게 있어서 역사가 변화되고 신앙이 새로워지고 개인이 새로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