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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떡상 출25:23~30 2015년 설교 ☞성소의 등대
※떡상 위에 대접, 숟가락, 병과, 붓는 잔이 놓인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떡상만 있는 게 아니었네요...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정금으로 만들지며” 출25:29
서론
침례교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책의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이 책은 일반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성령의 영감으로 사도와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하게 하신
‘성경’을 가리킵니다. 즉 침례교인은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유익한 책입니다.
딤후3:16~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이 전부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유익한 책은 성경이 유일무이합니다.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의 총 66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일관된 메시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 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죄 용서함을 베풀어주시는 복, 영생을 주시는 복,
죽음 이후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복, 영원히 죽지 않는 복 등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눅24:27절에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의 관한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25~27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운 건조물 중 가장 중요한
‘성막’에 대한 계시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설교를 통해 성막의 모든 기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성막은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 데는 6일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성막에 관한 계시를 주시는 데는 40일이나 걸렸다.”
성막건설의 중요성을 적절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죄인 된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요?
지난 주에는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은 성소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성막의 크기는 가로 30규빗, 세로 10규빗입니다.
그 중 성소를 제외한 지성소는 가로 세로 10규빗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성막의 1/3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규빗을 45cm로 환산하면 성막의 크기는 가로 13.5m 세로 4.5m이며,
지성소는 가로 세로 4.5m이고, 나머지는 성소입니다.
(나중에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는 이보다 커집니다. 왕상6:16-19 등)
이 성소에는 아론의 후손 제사장들만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아론의 네 아들 중 맏아들 나답과 둘째 아들 아비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분향단에서 불이 나와 타 죽었습니다.
그래서 셋째 아들 엘르아살과 넷째 아들 이다말의 후손들이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민수기 3장 32절에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레위인의 족장들의 어른이 되고
또 성소를 맡을 자를 통할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셋째 아들 엘르아살이 모든 제사장을 통할하는 대표가 되었습니다.
▲제사장은 순번을 짜서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면 성소의 세 가지 기구를 대면하게 되는데,
오른쪽에 떡상, 가운데 분향단, 왼쪽에 금촛대(등대)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소에 있는 기구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제사장들은 떡을 먹어야 하고,
분향단의 향이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기도도 해야 하고,
등대가 빛을 발하는 것처럼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는 균형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 떡상은 어떤 구조인가?
떡상은 떡을 올려놓는 상이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습니다. 생김새는 일반적인 탁자와 비슷합니다.
조각목으로 만들었고, 정금을 입혔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안에 있는 모든 기가의 재료는 동일합니다.
아카시아 나무(‘조각목’이라고 나옴)로 만들어 도금을 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하고
‘금’은 불변하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임과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떡상의 크기는 가로 90cm(2규빗), 세로 45cm(1규빗), 높이 68cm(1.5규빗)입니다.
그리고 떡상의 윗부분에는 손바닥 크기의 턱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떡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금 고리 네 개를 만들어서 다리의 윗부분에 달고 채를 꿰어 제사장들이 운반하였습니다.
민4:15절에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출25:29절에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정금으로 만들지며”
하나님은 모세에게 떡상 위에 필요한 네 가지 주방기구(Utensil)를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1) 첫째는 ‘대접’입니다. 대접은 떡을 놓거나 진열하고 운반할 때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크기는 떡의 크기와 비슷합니다. 금으로 된 대접은 떡을 구울 때 사용할 수 없었기에
쇠로 된 대접도 있었습니다. 성소 밖에서 떡을 구울 때는 쇠로 된 대접으로,
그것을 운반하거나 진열할 때는 금으로 된 대접을 사용한 것입니다.
2) 둘째, ‘숟가락’입니다. 국을 떠먹는 숟가락처럼 생긴 것이 아니라
길쭉한 컵과 같은 모양을 한 숟가락입니다. 이 숟가락 위에 유향을 올려놓았습니다.
열두 개의 떡을 두 줄로 나누어 여섯 개씩 진열하고
그 떡 윗부분에 유향을 담은 숟가락을 올려놓았습니다.
29절에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정금으로 만들지며”
나머지 두 개 병과 붓는 잔은 성경의 번역 상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3)과 4) “병과 붓는 잔을 만들라”고 되어 있는데,
70인역이나 NIV에는 ‘병과 붓는 잔’(Pitchers and Bowls)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 반면,
KJV에는 ‘덮개와 대통’(Covers and Bowls)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70인역 성경에 따르면 떡상 위에 병과 잔이 있습니다. 그러나 용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전제(붓는 제사)를 위한 기구라고 하지만, 전제는 성소 안에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전제는 보통 성막 바깥쪽 번제단 아랫부분에 포도주를 붓는 것으로 이뤄지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제는 성소 안쪽 떡상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KJV 성경에 따른 번역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떡상을 보면, 떡과 떡 사이에 금으로 만든 덮개를 둡니다.
덮개는 떡과 떡 사이에 바람을 통하도록 해서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맨 위에 유향을 올려놓았는데, 문제는 떡을 여섯 개나 올려놓다 보면
아래 있는 떡이 찌그러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옆에 대통을 세워서, 떡과 떡이 눌리는 일이 없도록 한 것입니다.
KJV에는 ‘병과 붓는 잔’을 ‘덮개와 대통’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저는 이 구절에 대해 한참동안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결국 떡상 위의 떡이
상하거나 찌그러지거나 떨어지면 안 된다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과 붓는 잔’보다는
‘덮개와 대통’으로 보는 것이 적절한 번역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떡(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보전되기를 원하는 분이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에 문제가 많다고 진단하는데,
이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학이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질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복주의화 되고 있고, 세대주의 종말론이나 신비주의,
아르미니우스 신학과 같은 것들로 떡이 부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그런 떡을 계속 먹으면, 자연히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삶이 부패해 지면, 결국 불신자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부패한 떡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순수하게 떡을 유지하려는 최선의 노력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네 가지 기구의 목적은 결국 떡을 제대로 보관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되 바르게 예배하도록, 성도들에게 바른 말씀을 먹이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이라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접근하고 교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기구들은 결국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제멋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방식을 따라 예배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2. 떡상 위의 ‘떡’은 어떤 것인가?
‘떡’은 영어로 ‘Shewbread’라 하고, ‘제단에 올려진 떡’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얼굴들의 떡’(Bread of Faces)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떡에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떡’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떡은 일반적인 떡이 아닙니다.
그래서 ‘임재의 떡’(민 4:7), ‘항상 진설된 떡’(대하 2:4),
‘열을 맞춘 떡’(대상 9:3a), ‘진설병’, ‘진설하는 떡’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떡은 명칭만으로도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떡이며,
항상 떡상 위에 있어야 하고, 진설이 계속 되어야 하는 떡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상해서도 안 되고, 없어져도 안 되고, 무질서하게 놓여 있어도 안 되는 떡입니다.
레24:5~7절에 보면 “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둘을 굽되
매 덩이를 에바 십분 이로 하여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주1)
아주 고운 밀가루로 열두 개의 떡을 굽는 것입니다.
에바 십분 이로 하라고 하신 것을 리터로 환산하면 4.4리터가 됩니다.
그러니 대단히 큰 떡입니다.
떡이 이만큼 크기 때문에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부패할 위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
떡상 위의 네 기구를 만들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
▲또 떡 위에 유향을 올려놓으라고 하셨는데,
이 ‘유향’(Frankincense)는 액체가 아니라 고체입니다.
생김새가 마치 자일리톨 껌처럼 생겼습니다.
이 유향을 떡 위에 올려놓으라는 것은, 성도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의 삶은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삶이 되어야 합니다.
레24:8~9절에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 즉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들은 매 안식일마다 성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떡을 새것으로 갈아 넣고, 묵은 떡은 자기들이 먹습니다.
이 떡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떡이지만, 제사장들이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3. 떡의 의미는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현실적인 의미이고,
둘째는 교회를 향한 예언적인 의미입니다.
▲1. 현실적인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양식을 공급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밥(떡)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쌀은 인간이 연구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양식을 공급하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십니다.
레24:8절에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성도가 하나님께 떡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떡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헌금을 드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시내산에 있습니다. 시내산은 농산물이 생산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200만명이 무엇을 먹고 살았겠습니까?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했는데, 무엇을 먹고 살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성소에 진설병을 놓도록 하시고
‘나는 너희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는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증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그대로 40년 동안 매일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진설병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첫 번째 현실적인 의미가 이것입니다.
시편 111편 5절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먹고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두 번째 현실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과 교제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여호와 앞에 진설된 떡을 먹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과 (식탁에서) 교제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자녀들이 찾아와서 “아빠 엄마 사랑해요! 감사해요!”라고 하면
설령 그게 빈말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그런데 다 줬는데도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불평만 하는 자녀들을 보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해 주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먹을 것을 주시고 가정을 주시고,
자녀를 주시고,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큰 복을 주십니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교제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말을 듣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 밥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순종하며 살겠습니다.”라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 된 당신의 백성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출24:11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부르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날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일마다 때마다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진설병의 현실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양식을 공급하시고, 성도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떡을 먹는 아론의 후손들은 제사장들인데,
이들은 신약교회의 모든 성도를 예표한다는 것이 예언적인 의미입니다.
계1:6절에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고 기록되어 있고,
벧전2:9절에도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거룩한 곳에서 떡을 먹어야 합니다. 이 떡은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은 크게 세 가지를 가리킵니다.
첫째는 ‘성육신된 말씀’(Incarnated Word), 즉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 ‘기록된 말씀’(Written Word), 즉 ‘성경’입니다.
셋째, ‘선포된 말씀’(Preached Word), 즉 ‘설교’입니다.
1) 성육신된 말씀
요6:3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떡 자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요6:33절에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진시황이 영생을 얻으려고 그렇게 돌아다녔지만 영생을 못 얻지 않았습니까?
이 영생은 오직 생명의 떡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생명의 떡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선한 일을 하도록 독려하고 사회 구조를 개선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의 부수적인 일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영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2) 둘째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입니다.
마4: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사람은 빵이나 떡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떡만 먹고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기 때문에 영적인 양식, 영적인 떡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영적인 떡인 성경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성도는 영혼의 곤핍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 성경퀴즈대회를 마련하였으니,
이번 주간 영적인 떡을 폭식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은 생명의 떡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어둠의 사회가 될 것입니다.
3) 선포된 말씀
셋째로 안식일마다 제사장이 떡을 먹는 것은 규칙적인 예배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성도가 주일날 예배를 하지 않고 허구한 날 놀러만 다니면 되겠습니까?
주일을 제외한 나머지 육일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떡을 먹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증거된 말씀인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목사도 없고, 설교하는 사람도 없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도 없다면
흑암의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처럼 지도자 앞에서 잠깐 졸았다간 화염방사기나 고사포로 죽임을 당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무서운 어둠의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면 그런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출25:30절에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은 떡을 갈아 넣고 묵은 떡은 먹고 또 갈아 넣고 하면서
떡이 떡상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통풍을 잘 시켜서 신선한 떡을 항상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떡상의 떡이 사라지고 떡이 부패하는 것은 인간 사회가 어두워지게 되는 지름길입니다.
이슬람교나 불교를 따르는 국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밤하늘에 붉은 십자가가 많다고 그렇게 욕을 하지만
십자가가 없는 사회가 어떤 사회입니까?
설교 한 번 들을 수 없는 국가들이 어떤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까?
상상할 수 없는 어둠의 사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교제하는 제사장이 되고,
부지런히 말씀을 먹음으로 건강한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레위기 24:5~7에 나오는 떡의 영원한 규례
떡상 위에 떡(진설병)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
안식일마다 새로 교체해 주라는 거에요.
등잔대 맞은 편(북쪽)에는 떡상을 차려놓았고,
그 상위에, 12지파를 상징하는 떡 12개가 있었는데,
그 진설병이 항상 그 위에 있도록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떡은 토요일마다 교체되었죠.
성소 안 떡상 위의 진설병은
1)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떡상이 그렇게 큰 게 아닙니다.
높이가 75센티, 가로길이가 1미터 정도, 폭이 약 20센티 정도
그냥 작은 상이 차려져 있어요.
근데 그 상 위에 있는 떡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살리고 먹이시기 위한 '생명의 양식'을 의미하고
2) 또 한 가지, 이 떡이 바닥에 있지 않고, 상 위에 있다.. 라는 것은
식탁 교제를 위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양식,
하나님과 우리가 교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양식으로서
결국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시며,
우리에게 '교제의 수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진설병은 한번 만들어 놓으면 끝이 아니라, 매 주일 바꾸어야 하듯이,
말씀 안에서의 우리 삶 역시
과거의 어느 한 순간 들었던 그 말씀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매 주간 새로운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이 먹여지고, 양육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통해, 거룩한 성전인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은
그 성소의 상태와 같이
우리 속에도
-우리가 성령으로 늘 충만해야 되고 *등잔대
-하나님의 말씀이 늘 우리 안에 있어야 된다.. *떡상 위의 진설병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조지 뮬러의 묵상으로 기도하기
기도의 성자라고 일컬어지는 영국의 죠지 뮬러는
기도의 비밀을 묻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이런 충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하십시오!” Pray according to His promise!
전에는 일어나자마자 가능한 빨리 기도하려고 했으며,
아침 식사를 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기도에 전념하려고 했습니다.
제 영혼이 심하게 황폐되어 있던 때를 빼고는,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기도로 시작했으며,
다만 경우에 따라서 제 영혼의 양식과 회복,
속사람이 부흥되고 새로워질 필요가 있을 때에만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저는 종종 영혼의 위로와 격려와 겸손의 필요 등을 깨닫기도 전에
무릎을 꿇은 채 15분이나 30분, 혹은 한 시간 가량을 허비했던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 어지러운 마음으로 많은 고통을 겪은 후에야
겨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식으로 고통을 당하는 데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제 마음은 먼저 진리의 말씀으로 꼴을 얻고,
하나님의 귀하신 말씀을 통해 제게 비추어주신 것들에 대해,
그분과의 체험적인 교제 가운데서 저의 아버지이자 친구 되신 주님께
(물론 나는 그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하나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조지 뮬러의 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