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WfJ2yKhHhtY
*위 동영상 44:35초부터 녹취
◈내 증인이 되리라 P2 행1:6-11 2024.06.14. P1
어느 날 제가 이렇게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 질문 하셨어요.
'야 경남아, 너는 왜 나를 네가 생각하는 틀 안에 가두고
하나님은 요렇게만 역사하세요! 이렇게 하고 있냐?'고 저한테 질문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 문제를 놓고 6개월 동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6개월 후에 다시 우즈벡을 방문했어요.
그때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정말로 성령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제가 사역하고 복음의 증인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했어요.
그렇게 기도하면 뭔가 일어날 줄 알았어요.
근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요.
근데 제 마음 가운데 갑자기 믿음을 주시더라고요. '내가 기도하면, 병이 낫겠구나'
그래서 그 다음에 저희 사역지로 돌아왔는데,
저희가 거기서 처음 전도한 그 자매에게, 오빠가 한 명 있었는데,
하루는 그 자매가 저를 찾아왔어요.
자기 오빠가 정신이 왔다 갔다 한다고... 정신과 약이 있으면 좀 달라고, 찾아온 거예요.
'한국에서 가지고 온, 잘 듣는 약이 있으면 좀 달라고...'
그런데 제가 그 오빠의 증상을 가만히 들어보니까
-아침에 두려움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어요.
-길거리에 가다가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하고 사람들하고 싸워요.
-또 가족들에게 칼을 들고 나와가지고 '우리 가족이 나를 죽게 만들려고 한다'고 또 싸워요.
두려움의 영이 가득 찬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아 이거 어떻게 하면 병이 났는지 내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그 오빠를 저희 집에 초대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희 현지어 실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현지 언어로 기도를 못하는 그런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형제(오빠) 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보니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능력이 나타난다'고 믿는데,
기도하면 당신의 그 두려움이 없어질 텐데... 내 기도를 받겠느냐?' 이렇게 말했어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 '천 번이라도 받겠다고'
이슬람 권에서는 '천 번이라도' 이게 아주 관용적인 표현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오빠를 위해 신유기도를 하는데
다 한국말로 기도하고 나서, 현지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두려움의 영은 떠날지어다!' 이렇게 기도 했어요.
기도가 끝났는데, 이 사람이 '당신이 기도하는데 제 마음이 갑자기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라고 하더라고요. 할렐루야!
저는 거의 아무 느낌이 없어요.
그런데 믿음을 주셔서 신유기도를 해 드리고, 자기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다음 날 좋은 소식이 들려왔는데, 그 날로 이 사람이 온전케 됐다고 알려왔어요.
그리고 2주일 있다가 그가 찾아왔길래, 제가 '예수 영화'를 그에게 보여줬어요.
'예수 영화'는 누가복음을 그대로 영화로 만든 건데, 이 영화를 보더니 하는 말이
'내가 보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네요!'
무슬림이 절대로 할 수 없는 고백의 말을 했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눈물로 영접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증인 되도록, 성령의 능력을 이미 부어 주셨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선교지에서 빨리 빨리 교회가 개척 되는 곳에 가보니까,
성령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말씀으로 강력히 가르치는 두 날개를 가지고
현지에 나아갈 때, 역사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살아 갑시다.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는 제자가 되십시오.
성령충만함을 날마다 사모하고, 성령께 순종함으로,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여러분 한 분 한 번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내 삶의 현장과 땅 끝에서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성령을 부어 주신 이유,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우리를 변화시켜 가시는 이유는,
내게 성령의 능력이 주어진 이유는... 증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 1:8
헬라어로 위 구절을 살펴보면,
'성령을 받게 될 것인데, 그러면 너희가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영어로 하면 should be 입니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그런 말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증인이 반드시 되어 진다' 이런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서 사명을 맡기실 때
'그냥 네가 알아서 해라'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 성령을 통해서 되게 하도록 해 주시겠다' 고 약속해 주신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증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쉽게 말하면 내가 본 대로 말하는 사람이죠.
내가 본 이야기를 그대로 가감없이,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이야기해 주는 사람!
어떤 놀라운 일을 보면, 우리가 계속 그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렇죠.
여러분이, 남극 같은 아무도 안 가는 곳에 여행을 다녀왔다고 상상을 해 봅시다.
그러면 여러분이 누구를 만나면, 거기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싶겠지요.
어디를 다녀오면 입이 근질거려요.
'내가 이런데 다녀온 사람이다' 라는 걸 얘기를 해 줘야 되는 거죠. 왜 그래요?
그게 너무 너무 좋았거나 또는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죠.
증인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내가 예수를 만나고 나서 보니까
내가 예수님과 동행해 보니까, 내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을 살아보니까,
그게 얼마나 좋은지... 다른 것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예수님 이야기를 증거하고야 말리라'
▲저는 믿는 집에서 자랐지만, 또 어려서 뭐 다양한 신앙경험도 했지만
대학교 1학년 때에서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 내가 죄인이구나' 이런 걸 깨닫고
그리고 '예수님 없이는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예수님이 저의 정말 주인이 되어 주세요!' 이렇게 초대하는 그런 모든 경험이
대학교 1학년 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깊이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2학년 새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제가 그때 같이 했던 CMF 라는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 가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어요.
'아 내가 겨울방학 때 예수님을 이제야 진짜 만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막 횡설수설 하면서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말했어요. '내가 이걸 모르고 교회만 계속 다녔으면 큰일 날뻔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막 이야기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을 만나 보니, 그 이전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여러분은 어땠습니까?
말(증거)하고 싶지 않던가요?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운 존재라고' 얘기해 주고 싶지 않던가요?
여러분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도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처럼, '내가 만난 예수님은 이런 분이에요'
증거하고 싶은 여러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증인의 헬라어 원어는 '마르투스'인데 영어로 마터 martyr 라는 말인데
영어로 이 말은 순교자를 뜻합니다.
다른 말을 하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 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행2:32절에서 베드로는 자신의 증언의 핵심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고, 공생애를 사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모든 일에... 나는 증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나는 증언한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저희가 선교지에 가서 하는 일이,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은 이런 분이세요.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어요.
그리고 그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서 이런 일을 행하셨어요.' 라고 말해 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어디에 있든지, 내가 만난 예수를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증인되는 것을 쉽게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이미, 행4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지 말라는 위협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제자들은, 압박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증인이 됐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늘 도전합니다.
'굳이 너희가 그렇게 예수를 증언해야 되냐?' 하고 거세게 도전합니다.
교회를 핍박하기도 하고, 예수님만 진리라고 선포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로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스스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를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이 말을 하면, 직장에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할까?
내가 이 말을 하면, 너무 외골수라고 하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 때문에 증언하기를 주저합니다.
심지어는 기독교 국가였던 저 유럽이나 영국이나 서구에 가면
기독교를 뺀 나머지 모든 종교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습니다.
근데 예수님에 대해 말하면, 그만 두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모습은 놀랍게도 초대교회 상황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시작됐던 그리스 로마 문명은
개인의 자유와 사상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사회였습니다.
'내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내가 믿는 대로 행동하고, 내가 무엇을 택하든지 내 자유다'
이렇게 믿는 다원화된 사회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너무 비슷하지 않습니까?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라고 믿었던 그리스 로마 문명에
기독교가 전파되어서 '그리스도가 주이시고, 중심이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앞으로 20년이 가기 전에 전 세계가
1세기 기독교가 시작될 때(의 이방 사회)처럼 될 것이다.' 이렇게 예측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라는 상황 속에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고 증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핍박도 받았고 죽음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제럴드 싯처는 이런 말을 남겼는데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 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부와 신분과 권세와 로마 제국 그 자체를 거부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예수를 따르기 원했다."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된다면,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를 믿으시겠습니까?
예수 믿는 신앙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전히 예수님을 택하시겠습니까?
네, 저는 우리가 다 '아멘' 할 줄 믿습니다.
▲3세기에 북 아프리카에 비비아 퍼페투아 Vibia Perpetua 라는 한 여자 성도가 있었습니다.
이십 대 초반이었는데 막 결혼했어요.
그래서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젖을 아직 떼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로마군대에 잡혀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라고 요구받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로마 군대의 고위관료 였어요.
근데 아버지가 찾아가서 '퍼페투아, 제발 한 번만 눈 딱 감고 예수가 주님이 아니라고 해라.
그리고 그냥 나랑 집에 가서 다시 신앙생활 새로 시작하면 되지 않느냐?'
아버지가 막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눈물로 거절 했어요.
'아버지, 나는 내가 만난 예수님을, 주님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어요.
나는 나의 마음 전부를 예수님께 드렸기 때문이에요.
나는 나의 인생 전부를 예수님께 드렸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이 내 주인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결국은 원형 경기장에서 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이죠. 어떻게 보면 비이성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퍼페투아 라는 사람은, 예수님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분이고,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영원한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임을 깊이 알았기 때문에,
그는 끝까지 예수님을 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내 삶의 전 영역에서 예수님이 주인 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 '주님' 이라는 말은, 굉장히 실제적인 말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자기 가방을 카페 의자 위에 놔 두었는데,
어떤 사람이 쓱 오더니, 여러분의 가방을 막 이렇게 뒤적거려요.
그럼 여러분의 마음이 어떨 것 같으세요?
어떤 사람은 화를 내거나, 어떤 사람은 싸움이 날 수 있어요.
'아니 왜 내 물건을 함부로 만지나?' 무지하게 기분이 나쁠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내 삶은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내가 깨어나서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내 시간의 모든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내 삶의 목표가, 예수님의 목표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내 가정과, 자녀와, 일터와 삶의 모든 영역이, 예수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주' 라는 단어의 뜻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리스도가 주님이 되는, 이 아주 단순한 것이,
여러분의 매일 매일의 삶에서 실제가 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 증인 됨은, 개인적으로만 증인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동체 적으로 예수를 따를 때, 증인 되게 됩니다.
행2장을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공동체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이들이 함께 모였을 때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행2:42~47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그곳에 이루어진 작은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증인 되게 하십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47
초대 기독교 역사 속에, 그리스도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기독교인들 공동체는
로마 시대의 사회와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은 고아와 과부를 아주 환대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오면, 마치 자기 식구처럼 감싸줬습니다.
교회 형제나 자매가 어려움을 당하면 금식을 했는데
왜냐하면 금식을 해서, 그 금식한 돈을 모아가지고, 그 형제나 자매를 도와주었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야~ 이런 사랑이 있다면, 나도 그 공동체에 합류하고 싶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하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할 당시에, 크리스찬은 전체 로마 시민의 1%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로마는 밑에서부터 위까지 완전히 변화 되었습니다.
우리가 증인 되면, 소망 없는 것에 소망이 생겨납니다. 어두운 곳에 빛이 임하게 됩니다.
사랑 없는 곳에 사랑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러분, 주인 되신 예수님을 더 깊이 경험하실 수 있기를 권합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삶의 순간 순간마다 예수님께 묻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면, 더 깊은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은혜를 나누면, 자연스럽게 증인이 됩니다.
또 공동체가 사랑으로 하나 될 때, 이 세상이 볼 수 없는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기에
그 자체로 증언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그럼 어디서 증인 돼야 될까요?
1:8절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끝은 동시다발적입니다.
예루살렘을 완전히 마치고, 다음으로 유대로, 이렇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만약 그렇게 넘어간다면, 복음은 아직도 제자리를 맴돌 것입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순차적이면서도, 동시다발적입니다.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의 모든 영역에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마28장의 표현으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이 될 것입니다.
계7:9~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등이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은
바로 땅 끝에서 온 사람들임을, 사도 요한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증인은 하나님의 이런 큰 그림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내가 서 있는 곳에도 증인이 되지만, 땅 끝에 항상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특별히 증인은, 복음의 접근이 어려운 곳에 더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은,
누군가 거기 가서 복음을 전해 주지 않으면, 복음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중동에 간 이유도 그런 이유입니다.
저희 WEC 선교회가 미전도 종족에 초점을 맞춰서 사역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 받을 수 있는데
그런데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가 없어서, 복음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 웩 선교회를 만든 분이 C. T. Studd 스터드 라는 분인데,
이 분이 이런 말을 남겼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를 위한 어떠한 희생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이 분은 53세 대 때 아프리카에 가서, 거기서 선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면 죽을 거라고 스터드를 만류했어요.
그런데 그가 아프리카로 간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때 당시에 아프리카 중심부에 아무도 복음을 전한 사람이 없어서
수없이 많은 식인 풍습을 가진 사람들이, 복음을 못 듣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설령 내가 거기 가서 죽는다 할지라도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거기로 갔습니다.
위 도표를 보면, 여러분 놀랍게도 21세기에도 아직도 7300개가 넘는 족속들은
누군가 가서 복음을 전해주지 않으면, 복음을 들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른쪽에 있는 지도에, 초록색 점, 주황색 점으로 찍힌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전체 인구 중에 크리스천이 0.1%도 안 되는 지역들입니다.
그곳엔 크리스천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뜻이죠.
그들 인구를 모두 합하면 20억입니다.
무려 2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누군가 거기 가서 복음을 전해 주지 않으면
전혀 복음을 들을 수 없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에 관심을 갖고,
저기 지도에 나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내가 가서 증인될 것인가?'
그렇게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내 삶의 현장과 땅 끝에서 동시에 증인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1:10~11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은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주님의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이제는 안 계신데...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하늘을 이렇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삶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도 깨달았고, 증인이 돼야 된다는 것도
옛날부터 지금까지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제자들처럼 하늘만 쳐다보면서
'주님 이게 맞나요?' 이런 고민 속에 아직도 머무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중에 그런 분이 계시다면
11절의 천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여러분, 우리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종말적으로, 궁극적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이미 저와 여러분을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서 초대장을 전달 하라고
저와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목적에 참여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하고
그 은혜를 경험하는 복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