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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설교 2

LNCK 2024. 7. 6. 09:4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사도행전

 

2022 11 27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바울의 설교(1) (youtube.com) -정리-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설교 2           행13:23~41          1강 보기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설교를, 깊이 있게 한 구절씩 해석하고 있습니다.


◑도입

 

지난 시간(1강)에 이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설교를 계속 살펴봅니다.  
바울은 구약의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서 
왜 예수가 오셔야 했는지..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결국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설교의 핵심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3:13~22

이제 바울은 그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합니다. 그게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3:23~41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실 사도행전을 읽어온 우리 입장에선 새로운 내용이 없습니다. 
물론 이제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이 유대인 회중들은, 처음 듣는 내용이겠죠. 

그러나 우리는, 처음 듣는 내용이 아닙니다. 
사실 사도행전을 처음부터 읽어 온 우리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도 이 복음을 앞에서 몇 번 들은 적이 있고,
또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서도 들었습니다. 

'너희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 
그래서 예수가 바로 너희들이 기다린 구약의 그 메시아이다. 
그러니 돌이켜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 
이것이 앞에서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내용이었죠. 
바울은 이 내용을, 같은 주제로 지금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합니다... 

◑오늘은 본문에 나타난 바울 설교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바울의 설교를 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첫 번째 특징은, 성경만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간증이나 체험이 아니었습니다. 이게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님, 성경을 우선했다는 것)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했는가요? 

철저하게 '성경만을 가지고' 전합니다. 
바울은 구약 성경만을 가지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논증합니다. 

먼저 예수님의 죽으심이, 구약에 예언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부분이 13:27~29절까지의 내용인데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에게서, 죽일 죄목을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메시아를 죽인 게, 이미 구약 성경에 다 예언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7절과 29절에 보면, 반복되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27절에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9절에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메시아를 죽인 게 이미 구약성경에 다 예언되어 있었고, 그대로 응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이미 구약에 다 예언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예수님의 부활을 찾아서, 그들에게 보여줍니다. 
그 부분이 13:33~37절까지인데요. 
이 구절들은 해석이 좀 필요한 부분이라서, 한 구절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3:33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절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예수님의 부활이, 구약의 약속의 성취라는 얘기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구약에 이미 예언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이, 구약 어디에 약속되어 있는가요? 
바울은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3
라고 말합니다. 시2:7절을 인용한 것이죠.

이 구절은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만든 복음 성가도 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저도 한때 이 복음성가를 많이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찬양을 부를 때, 여기 '아들'을 누구라고 생각하며 부르죠?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부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하나님이 나를 낳으셨구나' 

그런데 본래 뜻은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물론 작은 예수인 우리들도 넓게 보면, 예수 안에서, 시2:7절이 적용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원래 뜻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것인데요.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탄생하셨고,  시2:7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활하셨습니다.  사55:3

위 34절은, 이사야서 55:3절의 인용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눈여겨봐야 할 표현은 '은사'라는 단어입니다. 
이 은사라는 단어는, 쉽게 말하면 '약속'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만 주신 거룩하고 미쁜 약속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약속이 무엇이죠? 소위 '다윗 언약'입니다. 삼하7장에 나오죠.
'다윗의 나라가 영원히 서고, 네 왕위가 끊어지 않고 영원하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약속이 성취 되었나요? 아니죠. 
다윗 왕조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서, 멸망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뿔뿔이 포로로 끌려가지 않습니까? 

유다가 멸망한 이후로는, 다윗의 자손들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더 이상 다윗 왕조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몰락을 했죠. 

그러면 삼하7장에 나오는 다윗 언약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죠.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죽으심에서 부활하심으로 지금도 영원히 살아계신 왕이십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는, 하늘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왕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이 다윗의 언약이, 영원한 다윗 왕가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성취가 되었습니다. 

부활이 가지는 의의가 뭔가 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결정적인 증거가 무엇인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1:4절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의 부활이 어떤 의미냐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실한 선포,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 예언의 성취라는 거죠.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예언된 구약 성경을 또 찾아서 보여줍니다. 
13:35~37절인데요.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이 구절은 시16:10절의 인용입니다. 
여기 보면 '썩음을 당하지 않는 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거죠. 

이렇게 바울은 구약(사55:3, 시16:10)을 통해서 
예수가 약속대로 부활하셨으며, 죽은 자가 부활했다는 것은, 
그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을.. 구약을 통해 증거하고 있고요. 
그 외 다른 얘기를 일절 안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설교를 할 때, 
예화를 가지고도 설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오늘날처럼, 예화를 가지고 딱딱하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설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철저하게 지금 구약 성경만을 가지고 예수를 전합니다. 
왜일까요? 왜 바울은 이토록 구약 성경에 집착을 했을까요? 

여러분 지금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장소가 어디죠? 유대인의 회당입니다. 
유대인 회당 안에는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구약 성경을 이미 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서, 다른 것은 안 합니다. 
오직 구약성경만 읽고, 듣고, 구약성경을 배웁니다. 
그리고 날마다 구약성경을 암송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약성경을 가지고 예수를 전했던 것입니다. 
'봐라 너희들이 보는 구약에 보면, 예수님의 죽으심이 이미 다 예언되어 있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다는 것도 구약에 이미 나와있다. 
그러니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가, 메시야가 맞다'고 전한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구약 성경을 제대로 알았다면,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약성경을 매일같이 암송하는 자들이니까요. 
구약에, 이미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이렇게 풍성하게 예언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여러분, 유대인들의 문제가 무엇이었죠? 
그 문제가 27절에 나오는데요. 

27절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죽인 이유가 무엇이죠? 바울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전합니다. 
여기 보면 유대인들은 '선지자들의 글을 안식일마다 외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작 누구를 몰랐느냐? 
그 율법과 선지서의 주제이신 예수를 몰랐다는 얘기입니다. 

그들은 구약을 잘 알았지만, 구약성경의 주제인 예수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지금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들도 비슷한 입장인 거죠)
이것이 바울이 구약을 가지고, 예수님의 죽으신과 부활을 풀었던 이유입니다. 

그들은 구약을 듣고 배우고 외웠지만 
구약성경이 말하는 예수는 정작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다시 구약 성경을 펼쳐서 하나씩 그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는 거죠. 

△(적용) 여러분 이 안타까운 일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들어서 성경은 잘 아는데, 정작 예수는 모릅니다. 

예수가 내 죄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합니다. 예수를 모르기 때문이죠. 

여러분, 예수에 대해서는 지식적으로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인격적으로는 모릅니다. 
그게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알았지만,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듣고 배우지만, 정말 예수를 알고 믿는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고, 그와 함께 그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여러분이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신앙생활의 연조가 여러분을 성도로 만드는 게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을 위하여 오셨고, 
내 죄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이 믿어진 사람은, 
증거가 나타나는데, 믿은 이후부터, 매일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면서 살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봉사를 하더라도, 아무리 성경을 읽는다 하더라도, 
날마다 큐티를 한다 할지라도, 예수를 인격적으로 믿지 않으면, 여러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매일 나누는 성도는, 반드시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주님이 나의 구주이시기 때문에, 구주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의 거룩한 변화가 반드시 있습니다. 

'주님이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는데, 그 죄인이 바로 저입니다. 
저야말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절실히 필요한 죄인입니다.' 

여러분 이런 회개의 고백이 없으면, 여러분은 자기 믿음을 다시 돌아보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니면서, 이런 저런 봉사를 하고 
심지어 본문의 유대인들처럼 성경에 능통해도, 
예수를 나의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마신 적이 없으면, 
안타깝지만 여러분은 주님과 관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본문의 회당의 유대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성경을 듣고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 구주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시는 복된 은혜가 꼭 있기를 바랍니다. 

▲2. 오늘 바울의 설교에 나타나는 두 번째 특징이 있습니다. 
이 두 번째 특징은, 바울의 설교의 결론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은 교리적 설명이 요구되는 부분인데요. 바울은 구원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구약을 가지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설교의 결론을 맺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 믿는 자에게 가져다주는 유익이 무엇인가요? 
예수의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유익이 무엇인가요? 

그 유익이 38~39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전도설교의 결론으로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얻게 되는 유익을 
두 가지로 말합니다. 

1) 하나는 38절,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힘입어'는, 다른 말로 '믿을 때'입니다. 
예수님을 힘입어, 예수님을 믿을 때 죄사함을 얻습니다. 

2) 그런데 또 한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39절,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참고로, 38절의 '위하여'는 헬라어로 'dia' 영어로 through, 번역하면 '그를 통하여'
39절의 '위하여'는 헬라어로 'en' 영어로 'by 혹은 in', 번역하면 '그에 의해서, 그 안에서'
 
개역에 '그를 힘입어'로 번역한 것은 약간 오버한 번역입니다. 
그래서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은 38절을 '예수로 말미암아'로 번역했네요.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사함을 얻게 되고,  :38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다. :39

    ※38절과 39절에 '믿는다'는 말이 안 나오지만, 
    '그를 힘입어, 그를 통해서' 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가 잘 쓰는 말로 고쳐쓰면
    '그를 믿어서' 입니다.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두 가지 유익이 있는 거죠. 
    -하나는 죄사함을 받습니다. :38
    -또 하나는 우리가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다. :39 

여러분 이게 바울 설교의 특징입니다. 
지금까지 베드로와 스데반의 설교는, 죄사함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죄사함에 더하여 +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로마서에 보면, 바울에 이신칭의 교리가 나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내용이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입니다. 

이 이신칭의 교리를, 바울이 로마서에서 처음 말한 게 아닙니다. 
(로마서는 3차전도여행 때 고린도에서 썼죠. 지금은 1차전도여행 중)
오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미 바울은, 이신칭의 교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죄사함'만으로 구원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죄사함에 더하여 의롭다함을 받아야지만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에 있어서는,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죄의 문제이고요, 하나는 의의 문제입니다. 
천국에는 죄인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천국에는 의인만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죄의 문제이고요. 
-하나는 내가 의인이 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는 죄인이면 안 되고, 
또 하나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주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다 받아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아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영 단번에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는 죄사함을 받습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영단번에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죄사함을 받는다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으려면, 율법을 행함에 흠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다 지켜야, 의롭다 여김을 봤습니다. 
(이건 우리가 안 되잖아요. 그러나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 첫사람 아담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첫사람 아담은, 태어났을 때 죄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렇죠? 
타락하기 전에 아담은 죄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죄가 없는 상태로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죠? 조건이 하나 있었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샘플이 무엇이죠? 선악과 명령이었죠. 
일정 기간 동안 하나님이 주신 선악과 명령에 순종할 때, 아담은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순종해서, 100점을 맞을 때 
그에 대한 약속으로 영생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지키는데 실패했습니다. 계명을 어긴 거죠.
그래서 아담은 영생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만 다 용서해 주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다 씻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천국에 가려면, 우리도 의로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율법의 채점표 앞에서 백점을 맞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죠.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죄를 짓기 전의 아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율법에 하나라도 어기면,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의롭게 되지 못하여, 우리는 불의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신 분이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대표로서 (둘째 아담이란 의미, 롬5:15~21)
율법적인 의를 예수님이 우리 대신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완전히 행하셨습니다. 

그 증거가 마5:17절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I have not come to abolish them but to fulfill them.

그러니까 율법의 요구를 우리 대신 성취하러 오셨다는 뜻이죠. 
실제로 성취 fulfill 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하신 적 없으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게 목적이라면, 
왜 굳이 예수님이 33년이라는 긴 생애를 사셨을까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단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다면, 
굳이 그 긴 생애를 사실 필요가 뭐 있습니까? 
이 땅에 오셔서, 며칠 뒤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도 되지 않습니까? 

왜 굳이 이 땅에서의 긴 생애를 사셨을까요? 
예수님의 생애는 우리를 대신하는 생애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율법의 요구를 
마5:17절의 말씀처럼 다 이루어내셨습니다.  
두 번째 아담으로서, 모든 인류의 대표로서요.

우리가 실패했던, 이 율법의 계명들을, 주님의 인류의 대표로 대신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셨고, 
우리에게 의롭다 함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세상에서 33년반을 사시면서, 율법에 순종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그 '율법의 의'를, 대포로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율법에 순종해서 얻어야 할 그 의로움을, 우리 대신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그 의로움을 전가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율법에 순종해서 얻으신 그 완전한 의를, 
믿는 우리에게 거저 주십니다. 언제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요. 

그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예수 안에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본문 39절을 다시 보십시오. 

바울이 의도적으로 대조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의 율법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너희가 의롭다심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과 대조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이 사람을 힘입어'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니다. 

이 땅에 사시면서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하나님의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39

여러분 얼마나 복된 소식입니까? 
만일 예수님이 우리의 죄만 용서해주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율법의 말씀은, 
아담처럼 우리가 이제부터는 하나씩 순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다 순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역시 아담처럼 실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만 용서해 주신 것이 아니라,  :38
우리를 의롭다 함을 입게 해 주셨습니다.  :39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그 의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첫사람 아담이 순종해서 얻어야 할 율법의 의로움을,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믿음 안에서 값없이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분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모든 게 주어집니다. 

후략

(*이 복음이 아주 쉬워서, 누워서 죽먹기 같은데... 근데 좀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믿음으로 죄사함, 의로움 받아서 구원 받은 사람은, 
심령이 변화되어, 삶에서 믿음의 증거가 그 열매로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성화'죠.
만약에 성화가 빠진 칭의의 복음은.. 글쎄요. 온전한 복음은 아닐 것입니다.

 

폴 워셔 목사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오늘날 성화가 배제된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거죠.

참고로, 그럼 바울은 회당에서 이 '칭의의 복음'을 전하면서,
왜 '성화의 복음'은 증거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바울서신들을 보면, 지금 본문의 배경인 비시디아 안디옥은
갈라디아 지방인데, 나중에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써서 보냅니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더불어 이신칭의 신학을 가장 잘 드러내서 설명한 서신이죠.
그런데 갈5장부터는, '성화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의 거룩한 삶에 대해서 가르친 거죠.
갈라디아서 뿐만 아니라, 모든 서신서가 똑같이 '성화의 복음'도 함께 증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