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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해졌을 때 이렇게 기도하라

LNCK 2024. 7. 12. 11:21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시편 설교 모음

 

◈비참해졌을 때 이렇게 기도하라           시142:1~7          


요즘 형편이 많이 어렵습니다.   *코비드-19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자세히 사정을 들어보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동안에 그런 교우들이 있음을 보면서, 마땅하게 잘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 개인이 돕자니 너무 부담이 크고, 그리고 또 그 소식을 서로 나누는 것도 방법이 
마땅치가 않았습니다. 

근데 이번에 '위드' 라는 나눔 앱이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주보 뒷면에 QR 코드가 있는데, 거기에 들어가시면
'이 분은 정말 우리가 도왔으면 좋겠다' 하는 교우들의 사정을 거기에 올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보시고, 하나님이 감동 주시는 대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만큼씩만 여러분이 기부하시면, 
그게 모아지면 그 분에게는 상당한 힘이 되는 겁니다. 
교우들 사이에 십시일반으로 서로 도울 수 있는 이런 채널이 만들어진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정말 비참해진 심정으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하여 
    마음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도, 이 자리에 와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그런 일들을 여러 형태로 겪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시 142편

 

본문 시142편은, 다윗이 그런 비참한 처지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애원의 기도입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 비참한 처지에 처해있는 분은, 
오늘 본문 시편을 읽기만 해도 '이건 내 기도다. 구구절절 내 기도다' 
이런 고백을 아마 하실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서, 짐승처럼 내몰립니다. 

마치 사냥개 떼에 쫓기는 짐승처럼, 다윗이 도망가고 또 도망가다가 
결국은 네게브 사막 지역에 있는 아둘람 굴이라는, 
짐승들이나 사는 그런 굴 속으로 도망가서 겨우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게 됩니다. 
거기에 동굴이 수 백 개 이상 많이 있었나봐요. 그리고 굴 속도 깊습니다. 
그러니까 수색이 쉽지 않죠. 

다윗은 골리앗 장수를 꺾었던 민족의 영웅이었죠. 
그런 다윗이 하루 아침에, 짐승 같은 처지가 돼버리고 만 겁니다. 

굴 속에 들어간 다윗의 심정이 어떠 했겠습니까? 
억울하기도 하고, 너무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그리고 두렵기도 하고... 
또한 자기 앞날에 대한 절망감도 아마 느꼈을 겁니다. 

그런 처지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하나님 정말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그렇게 애통하며 드렸던 기도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런 자기의 형편에 대하여 스스로 고백 하기를 
'내 영혼이 연약해졌다'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142:3 '내 영혼이 연약할 때 주님은 내 갈 길을 아십니다. 
사람들은 나를 잡으려고 내가 가는 길에 덫을 놓았습니다.' 

'영혼이 약해졌다, 연약해 졌다'는 표현은, 
마음의 슬픔, 분노, 걱정, 그리고 두려움, 절망감이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계신 것을, 다윗은 여전히 믿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도 하는 거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마음이 무너지고, 슬프고, 두렵고, 염려하고, 무너지는 거죠? 
'영혼이 약해졌다'는 겁니다. 자기의 영혼이 약해졌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도 그렇게 알지만, 
그런데도 마음이 무너진 경험이 많으실 겁니다. 

왜 그렇게 슬픔은 떠나가지 않으며, 
염려 근심은 여전히 내 속에서 나를 괴롭히고,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계속 치밀어오르고, 
그리고 앞 일이 캄캄한... 정말 절망감에 빠지는 그런 경우를, 여러분들 다 경험했잖아요. 

그런 경우가 어떤 경우냐 하면, 영혼이 연약해진 겁니다. 
영혼이 약해지니까, 확신도, 기쁨도, 평안도, 감사도 다 사라지는 거죠.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자신 자신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현실의 형편이 어려운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 영혼이 약해진 겁니다. 

다윗은 그럴 만한 충분한 여건이었습니다. 
다윗은 지금 자기 주위에,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정말 혼자 입니다. 

짐승들이 사는 굴 속에 들어가서 혼자 있을 때, 그 다윗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4절에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를 도울 사람이 없고, 내가 피할 곳이 없고,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도와줄 자도 없고, 피할 곳도 없고, 나를 지켜줄 사람도 없다... 
그게 지금 다윗의 형편이었습니다. 

다윗에게도 가족이 있지요. 친척도 있지요. 친구들도 있지요. 
그런데 왜 다윗이 이랬습니까?

다윗이 가죽을 만나고, 친척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그러면 
그 소문이 사울 왕에게 전해지면, 
다윗이 만났다는 사람은 사울 왕이 다 죽입니다. 그래서 놉 땅의 제사장들을 다 죽였죠. 

다윗을 고발하지 않았다고요. 다윗을 도와줬다고요.

그러니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다윗은 만나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그 사람을 보호하려면, 다윗은 그 사람을 오히려 피해 가야 되는 거예요. 
이 기가 막힌 처지에 다윗이 빠져있는 거예요.      주1)

그래서 다윗이 결국 간 곳이, 짐승들이나 사는 굴 속에 기어들어 간 겁니다. 
그러니 다윗은, 주님만 바라보게 된 겁니다. 주님 밖에는 바라볼 분이 없는 거예요. 

5~6절에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 사람 사는 세상에서 내가 받은 분깃은 주님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너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부르짖으니 내게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 나를 건져 주십시오. 그들이 나보다 강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 다윗이 얼마나 비참해져 있는지... 불쌍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지금 다윗이, 이와 같이 주님 밖에는 바라볼 뿐이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 
하나님이 택하여 쓰셨던 사람들이 누구나 다 겪었던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 치고, '주님 밖에 나는 바라볼 분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 밖에는 내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고백을 안 해본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이따금 
'나는 정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의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피할 데도 아무데도 없어... 내 사정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하나님만 아실 거야. 주님 제 사정 아시지요?' 

여러분이 이런 심정이 될 때 기억하셔야 돼요. 
절망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중에 
그런 경험이나 과정을 안 거친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오히려 그런 처지가 되었을 때, 다윗은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우리가 주목해 봐야 되는 겁니다. 

다윗이 정말 그렇게 비참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졌어요. 
그럴 때 다윗은 어떻게 기도했었을까요? 그게 오늘 본문 시142편입니다. 

다윗은 그런 처지에서,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 했느냐 하면, 
'자기 영혼을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  
그런 기도를 드렸어요. 

142:7 '내 영혼을 감옥에서 끌어내 주셔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해주십시오' 
다윗은 지금 자기의 문제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이었어요. 

다윗의 지금 어려운 문제는, 
짐승들이 나타나는 굴 속에, 홀로 거기에 그렇게 도망 가 있는 그 처지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어요. 
자기 영혼이 감옥에 갇힌 것과 같다는 겁니다. 무슨 뜻이죠?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여전히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자기 머리로는 아는데... 이상하게 자기 마음이,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염려가 떠나지 않는 겁니다. 

자꾸 슬프고, 사람이 원망 스럽고, 사람에 대해서 분노가 그치지 않고, 
그리고 자기 앞날에 대한 절망감이 빠지는 겁니다. 

자기 영혼이 완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거예요. '이게 더 큰 문제구나...' 
그걸 다윗이 깨달은 거예요. 

자기가 지금 굴 속에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 영혼이 감옥에 갇혀 있구나!' 

다윗은 아주 어릴 때, 아버지의 양 떼를 돌보는 목동 일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목동들은, 들판에서 양떼들과 함께, 밤에 거기서 자야 되는 거예요. 

그 어린 아이가, 양떼들을 지키면서, 그 들짐승들이 우글거리는 그 들판에서 
혼자 밤을 지새야 될 때,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근데 다윗은 무섭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 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다윗은 그 들판에서 양떼들과 혼자 있을 때 
비파를 타면서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었습니다. 소년이었을 때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그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잖아요.  구척 거인 골리앗 앞에, 소년 목동이 서 있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무섭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 골리앗을 보면서 다윗은 담대하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17:45 

그렇게 외치면서 달려가서 골리앗을 물맷돌로 거꾸러 드렸어요. 
다윗이 그랬었어요. 
'그런데 왜 지금은 이렇게 내 마음이, 비참하고 두렵고 막막하고 슬프고 
분노가 해결이 안 되는 거지?'
 
다윗이 이렇게 스스로 절망스러운 걸, 다윗이 알 알았어요. 
'내가 지금 굴 속에 있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내 영혼의 상태가 완전히 지금 감옥에 갇혀 있구나..'  시142:7

기가 막힌 기도예요. 이걸 깨닫는 성도가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는 거예요. 
지금 내 형편이 어려운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 영혼이 지금 무너져 있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지금 완전히 감옥에 사로잡혀 있어요.
정상적인 신앙이 아닌 거죠. 

▲여러분 언제나 영혼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 마음을 잘 살펴야 돼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고전13:13
정말 여러분 안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항상 있습니까? 

평안, 기쁨, 감사... 성도라면,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진짜 안다면,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을 정말 내가 믿는다면, 
당연히 평안, 기쁨, 감사가 있죠. 

여러분에게 그것이 있다면, 지금 여러분의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잘 가고 있는 거예요. 
정말 잘 가고 있는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그렇지 못하다면, 형편이 어려운 게 아니고, 
여러분의 영혼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다윗은, 자기가 동굴 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 달라고 그렇게 구하게 된 거예요. 
영혼이 살아야 되니까, 먼저 내 영혼이 살아야 되니까요! 

잘 될 때도, 하나님 찬양해야 하지만... 당연히 그렇죠. 
그러나 어려울 때도, 하나님을 찬양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형편이 좋고 나쁜 걸 떠나서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은혜로우시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한 적이 없으시잖아요. 

그러니 잘 될 때도 찬양하고, 어려울 때도 찬양해야 마땅하지요. 
잘 될 때는 찬양이 되는데, 어려울 때는 그만 낙심과 절망에 사로잡혀 찬양이 그친다면, 
그건 아직 진정한 믿음이 아닌 거지요. 영혼이 너무 약한 거지요. 
  *영혼이 약하거나 강함에 대한 관련글 rfcdrfcd.tistory.com/15981745

그 찬양이 아람 굴에서 울펴 퍼져 나옵니다. 
다윗이 찬양하게 해달라고만 기도한 게 아니고, 실제로 찬양을 해요. 
그게 어디에 나오냐면 시57편에 나옵니다. 

◑시57편

 

아둘람 동굴에서 썼던 시편이 둘인데, 하나는 본문인 142편이고,
다른 하나는 시57편이에요. 

시57편에도 똑같이, 처음에는 그 굴 속에서 비참한 다윗의 심정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절절하게 토해 해지고 있습니다. 

57:1~3절을 보면 '참으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 피합니다. 
이 재난이 지나가기 까지 내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합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내가 부르짖습니다. 
나를 위하여 복수해 주시는 하나님께 내가 부르짖습니다. 
하늘에서 주님의 사랑과 진실을 보내시어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나를 괴롭히는 자들을 꾸짖어 주십시오' 

정말 눈물이 펑펑 쏟아지면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충분히 이해할만 해요. 

▲그런데 참 놀랍게도 갑자기 그 시57편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찬양이 나와요. 
57:7~11절에 보면, '하나님, 나는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확실히 정했습니다. 내가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내 영혼아, 깨어나라. 거문고야, 수금아, 깨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
주님, 내가 만민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뭇 나라 가운데서 노래를 불러,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그 사랑, 너무 높아서 하늘에 이르고, 주님의 진실하심, 구름에까지 닿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하늘 높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님의 영광 온 땅 위에 떨치십시오.' 7~11

다윗의 처지를 알고 이 시편을 읽으면, 정말 눈물이 날 정도예요.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아니 이 찬양이, 그 아둘람 굴속에서 드려진 찬양이란 말인가?' 

다윗은 절망 가운데서, 먼저 자기 영혼이 살아야 된다는 걸 깨닫고, 
그리고 진짜 찬양하면서... 다윗의 영혼은 소생됩니다. 
기가 막혀요.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 예언이, 그 입에서 터져 나옵니다. 
142:7b절 '... 주님께서 내게 넘치는 은혜를 베푸시니 의인들이 나를 감싸 줄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굴 속에 혼자 있어요. 다윗은 누구에게 찾아갈 수도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거예요. 
('아둘람'이란 말은, 피난처, 은신처, 격리된 장소 라는 뜻을 가집니다)

다윗의 영혼이 살아나니까, 
다윗의 그 굴 속에서 눈물의 기도가, 찬양의 기도로 바뀌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막 다윗에게로 찾아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둘람 굴 속에 사람들이 막 몰려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삼상22:1~2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아둘람 동굴의 다윗에게 몰려드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주2) '아둘람'
사울 왕의 통치 아래서, 온통 한 자, 억울한 자, 정말 비참해 진 사람들... 
그 시대가 그렇게 어두웠다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다윗이 어디 있나? 저 네게브 사막 그 아둘람 동굴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거기까지 찾아오는 거예요. 무려 4백 명이나! 

여러분 그들은 시험봐서 뽑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다윗이 무술 시험도 해보고, 면접도 해보고, '너는 나와 함께 가자' 이렇게 선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억울하고, 애통하고, 원통하고... 그랬던 정말 한 맺힌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그냥 몰려든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중에 다윗 휘하에 유명한 용사들의 됩니다. 
다윗 왕국의 기둥들이 됩니다. 
다윗 왕국은 거기서부터 시작이 됐어요. 

▲그들과 다윗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한 번은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블레셋과 싸웠어요. 

근데 다윗이 있던 곳은 산 위(23:14)이고, 산 밑에 골짜기에는 블레셋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다윗이 갑자기 옛날에 마시던 베들레헴 곁 우물 물이 먹고 싶어 졌습니다. 삼하23:13~17

그러나 그 우물은 지금 블레셋 진영에 있습니다. 
그때 다윗이 너무 목이 말라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뭐 물을 떠오라는 게 아니고, 자기가 탄식을 한 거죠. 
근데 그 혼잣말을 부하들이 듣습니다. 

그리고는 세 명의 장수가, 그 블레셋 진영으로 목숨을 걸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기의 주군 다윗을 위해서, 거기서 우물을 길어 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마시라고 가져와요. 다윗이 그 가죽부대를 받아보니까 마실 수가 없어요. 
그거는 부하 장수들의 피예요. 자기들의 목숨을 걸고 물을 떠 왔으니까요.

'내가 어떻게 부하 장수의 피를 마실 수 있나?'
그리고 그 가죽부대의 물을, '여호와께 드립니다' 하고 그냥 땅에 붓습니다. :16

다윗은 부하 장수들과 그런 관계가 되었어요. 
그러니 그걸 도대체 누가 이길 수 있겠어요? 그 관계가 도대체 어디서 일어난 거죠? 
아둘람 굴에서 맺어진 관계예요. 

아둘람 동굴이 다윗에게는 비참한 자리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축복의 장소였어요. 
다윗 왕국이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에 참 놀라운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때때로 고난을 놀랍게 사용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고난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해요. 요일5:18절에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막 전하고 다니실 때, 
때가 되지 않을 때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건드리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때는,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게 그냥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놀라운 때에요. 

하나님이 까닭 없이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 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때는 진짜 놀라운 때가 벌어지는 거죠.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이 살아있느냐, 죽었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내 영혼이 죽어있으면, 고난은 정말 헛 고생이지요. 
그런데 내 영혼이 살아있으면, 그 고난은... 
시절이 지나고 나면, 놀라운 축복의 시간이 됩니다. 간증 거리가 됩니다.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을 만난 것이 불행입니까, 축복입니까? 
그 어린 소년이 골리앗을 만나서 싸우는 것이 불행이라고 볼 수도 있잖아요. 

근데 다윗의 영혼이 살아있으니까... 그 골리앗과 싸운 것이 
다윗에게는 자기가 민족의 영웅이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다윗의 아둘람 동굴 속에 그렇게 비참하게 들어간 것이 
다윗에게 불행입니까, 축복입니까? 
그것은 다윗의 영혼의 상태에 달려 있어요. 

다윗의 영혼이 '자기 감옥'에서 벗어나니까 
그 아둘람 굴은, 다윗 왕국을 시작하는 기반이 된 거죠. 

여러분, 여러분이 아무리 비참한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정말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여러분이 영혼의 상태예요. 

'나는 여전히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사는가? 
평안과 기쁨과 감사함이 내 속에 계속 있는가?' 

아니면 '불평 원망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 사람에 대한 분노, 
그리고 절망감에 내가 묶여 있지는 않는가?' 그걸 잘 분별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살아나면, '자기 감옥'에서 여러분의 영혼이 벗어나면 
그러면 여러분의 삶의 지경 자체가 달라집니다. 

바울과 실라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무지하게 매를 맞고, 그리고 깜깜한 밤 중에 지하 감옥에 던져 졌습니다. 

그때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행16:25절에, '밤 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밀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 순간에 바울과 실라는 분명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의 영혼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았던 거예요. 

그들의 영혼은 자유했습니다. 찬양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감옥에 지진이 일어났어요. 그 지진에 감옥 문이 활짝 열렸어요. 

그 일을 계기로, 간수가 회개하고 예수 믿게 되고, 그래서 빌리보에 교회가 세워 졌어요. 
감옥에서 부르는 찬양은 이렇게 힘이 있어요. 

여러분이 지금 정말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비참한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영혼은 감옥에 갇히지 않아야 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면 안 되고, 찬송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믿음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지난 금요일에, 중국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되신 온성도 목사님과 사모님이 찾아오셨어요. 
한국에 돌아오시고, 몸조리 하고 요양 하시고, 이제 좀 다니실 만한 건강이 되셔서 
인사를 나누러 오셨습니다. *https://gpnews.org/archives/148450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탈북자들 2백 명을 구출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서 20년 이상 살아야 되는 
그런 무서운 죄에 해당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년 10개월 만에 석방이 됐습니다. 

감옥 속에는 똑같이 탈북자를 돕다가 
10년 넘게 복역하고 계신 분들도 계셨다고 그래요. 

참 하나님의 우리 기도에 대한 역사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여전히 중국 감옥에 탈북자들을 돕다가 고생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도 알게도 됐습니다. 

그런데 그 고생을 하면서.. 중국 감옥의 현실이 참 어렵습니다. 
아주 무서운 중노동을 해야 되는 곳입니다. 

아직도 그래서 몸을 추스리고 회복해야 되는 형편에 있지만, 얼굴이 너무 밝으신 거예요. 
감옥에서 그렇게 고생했던 분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서 하시는 이야기가 '감옥에서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겁니다. 
'무슨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물어보니,

그 동안에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구출하는 일을 끊임없이 하느라고 
사역은 열심히 했는데, 주님과 온전히 교제하는 시간은 거의 갖지 못했다는 거예요. 

근데 이번에 중국 감옥에 들어가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과만 동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국 감옥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마음이 기뻤다는 거예요. 
그 고생을 하면서도, 마음은 기뻤다는 거예요. 

얼마나 중국 감옥에서 은혜 받은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지... 
그 분 사모님이 듣다 듣다 못 해서 '그러면 다시 중국 감옥에 가라고 그래도 가겠냐?' 그랬더니 
즉시 가겠다고... 자기에게는 너무 좋은 기회였다는 거예요. 

여러분 도대체 온성도 목사님에게, 어떻게 그런 역사가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가 중국 감옥에 22개월 동안 갇혀 있었지만, 
그 영혼은 감옥 속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어요. 그 감옥 속에서 오히려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 보았어요. 
그래서 늘 감사했어요. 

그래서 실제로 만나 보니까, 놀라운 분이었어요. 
우리 교우들에게 그 감옥에서 받은 은혜를 좀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제가 참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의 사모님께서, 
한 번은 도저히 못 살겠다고 보따리를 싸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어머니 때문에 너무 시집살이가 힘들어서 못 살겠다는 거예요.
남편 목사님이 외아들 이십니다. 
그 외아들에게 집착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도무지 살 수가 없었대요. 

그때 목사님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쌌던 보따리 풀고, 다시는 보따리 싸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당신이 힘든 것 다 압니다. 당신 보따리 싼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당신에게는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어머니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작으면 떠나세요. 
그러나 어머니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거든 
보따리를 푸세요!' 

여러분 아무리 비참한 현실 속에 살아도, 그보다 훨씬 큰 사랑을 우리는 받고 있습니다. 
성찬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세요.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과, 네가 세상에서 고난 당하는 곳 중에, 어느 것이 더 크냐?' 

여러분, 이 성찬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참 은혜로운 예식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자 보다 나를 더 사랑 하셨어요. 
나를 구원 하시려고 독자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오셨어요. 우리와 한 몸이 되셨습니다. 

여러분 성찬은 설교 듣는 것과, 성경 보는 것과 또 달라요. 
우리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당신의 삶과 피를 직접 먹여 주시는 시간이에요.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 겁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싶으신 거예요. 
우리의 영혼을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으신 거예요. 
슬픔 좌절 절망 두려움 염려 미움 분노... 여기서 우리를 벗어나게, 
영혼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시간에요. 

그러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요. 
오늘 이 시간에 연약해진 여러분의 영혼이, 힘을 얻게 되는...
여러분의 영혼이 감옥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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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우리나라에 전직 고위직을 한 분도, 다음 정권의 미움을 받아가지고 
자기 주위 사람들 수 백 명이 다 털리고, 세무조사 받고, 정보원들의 감시를 받고...
그래서 뛰어내렸다는 설이 있습니다. 한 가지 이유가, 자기 주위 사람들 살리려고요.

주2) ‘아둘람’은 히브리어로 ‘은신처, 피난처, 격리된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둘람은
야곱의 아들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살았다(창38:1).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이었다(수15:35).

남 유대 왕 르호보암이 유대 땅을 방비하기 위하여 세운 요새들 중에 
아둘람 성읍이 포함된다(대하11:7).
그러니 남쪽(네게브) 지역으로 추정된다. 

아둘람은 텔 에쉬 쉐이크 마드쿠르(Tell esh Sheikh Madhkur)와 동일시되며, 
이 지역에는 많은 석회암 동굴들이 산재하고,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에는 거주지였고 철기 시대 이후의 토기들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