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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의 의복

LNCK 2024. 7. 12. 17:07

https://blog.naver.com/karamos/222140016308

 

◈제사장의 의복         출28:1~5        2015.06.21.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서론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이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그 어떤 교제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5:10절에는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반감을 갖거나 반항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종교는 신의 진노를 달래고, 신과 화목하기 위해 중보자를 필요로 합니다.

샤머니즘에는 무당이 있고, 원시종교에도 영매나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이런 중보자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중보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출28장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는 200만 명이 넘었고,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법을 주셨기 때문에

어엿한 하나의 법치국가가 되었습니다.

 

또 백성들의 장로와 방백도 있고, 천부장•오백부장•백부장 등을 두어

규모있는 행정체제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스라엘에 제사장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출28장에 모세에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제사장에 대한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제사장의 일하는 현장이 성막이기 때문에

성막과 제사장에 대한 계시가 연결되어 기록된 것입니다.

 

출28장의 내용은 대단히 복잡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에

차분히 생각하며 읽으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 아론의 가족만이 제사장 직분을 행할 수 있다는 원리

 

본문은 제사장 직분을 행할 사람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제사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입니다.

 

제사장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명하신 사람만 할 수 있기에,

제사장을 군대식으로 말하면 자원병이 아니라, 차출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론의 딸들은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아론과 그 아들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1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아론은 모세보다 나이가 세 살 많은 형입니다.

언변이 뛰어나기 때문에 모세의 대변인이 되어 그를 도왔습니다.

 

아론은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전쟁이 있었을 때 모세의 팔을 들었던 사람이었으나,

그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는 동안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하였을 때도

누이 미리암과 함께 그를 비방하는 죄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대제사장이지만 하나님 앞에 제사할 때는 그 역시 속죄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아론도 완전한 의인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이 되었고, 아론의 아들들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아론의 아들은 네 명이었는데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입니다.

 

이 가운데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불이 나와 즉사하였습니다. *성소 안의 향단에

그리고 막내 이다말은 특기할 사항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을 때 셋째 아들이었던 엘르아살에게

자신의 대제사장 직분을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제사장 직분에 관해서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원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지명하시고 임명하시는 사람만 될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자기 스스로 제사장이 되었던 사람도 많이 있고,

스스로 제사장 일을 했던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죄인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이었던 르호보암이 지혜롭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열 두 지파가운데 열 지파를 나누어 여로보암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는데,

백성들이 자꾸 국경을 넘어 남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이 내려가지 못하도록 최북단에 있는 ‘단’이라는 지역과

남단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니 너희는 더 이상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우상숭배를 조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로보암의 악함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역대하 13장 9절에 “너희가 아론 자손된 여호와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의 풍속을 좇아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무론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일곱을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소위 ‘성직매매’를 추진했던 것입니다. 원래 제사장은 아론의 아들들만 될 수 있는 것인데

소 한 마리나 양 일곱 마리를 가져오면 아무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입니다.

 

▲그 이후, 북 이스라엘의 아합과 남 유다의 여호사밧이 요단 동편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려 할 때에 여호사밧이 선지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전쟁에 나가면 승리할 수 있겠는가?”

 

북 이스라엘의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는 거짓 선지자 400명은 일제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올라가십시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전쟁에 나가면 이길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 한 마리나 양 일곱 마리를 갖다 바치고 제사장이 된 사람들이었고,

아론의 후예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속에 귀신들이 역사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귀신의 종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스마야 선지자만 “아합은 죽을 것이고, 백성들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흩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또 역대하 26:16절에는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남 왕국 유다의 10대 왕이었던 웃시야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이한 도우심으로

강성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교만하여 자기가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려는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러자 대제사장 아사랴가 제사장 80명을 데리고 와서 “왕이시여, 이것은 왕이 할 수 없는

망령된 일이니 그만하시오”라고 말하자 웃시야 왕이 대제사장에게 진노하였습니다.

 

아무리 왕이라도 대제사장에게 화를 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웃시야 왕이 노를 발할 때에 하나님이 그 즉시 심판을 내려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병이 오늘날의 한센 씨 병과 똑같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웃시야는 문둥병자가 되고 격리되어 외롭게 살다가 죽었고,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도 못한 자가 되었습니다.

 

웃시야는 왕이었지만 아론의 후손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사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여 제사장의 일을 하려고 하다가 문둥병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소명 받지 않았는데, 목사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목사는 자원병이 아니라 차출병입니다. 하나님이 목사가 될 사람을 뽑아내시는 것입니다.

 

목사는 소명이 있고, 차출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이 택하여 부르신 사람만 될 수 있는 것이지,

아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다고 되거나, 되고 싶지 않다고 되지 않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레위기 11:16~24절에는 아론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몸에 신체적인 결함(Handicap)이 있는

사람은 제사장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이 먹는 성물을 먹을 수는 있지만,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일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 매우 험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양이나 소를 잡아야 하는 자가, 핸디캡(장애)이 있어서는 제대로 그 일을 수행할 수 없었기에

장애우는 제사장의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원리를 정하신 분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물론 오늘날 핸디캡이 있는 사람이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오늘날은 제물을 잡아서 드리는 제사를 안 드리니까요.

 

단지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조건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는 소를 잡지 않습니다. 그러니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대단히 힘든 일을 소화해야 했고,

핸디캡이 있으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 제사장의 여섯 가지 기능

 

▲첫째, 제사장은 성막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예배와 제사를 수행하고 감독하는 기능을 합니다.

제사장은 조석으로 정기 번제를 위해 짐승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떡상에 떡을 갈아 넣고 순금등대에 기름을 채우고 분향단에 향을 올렸습니다.

또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 제사장은 백성들이 갈등하고 있는 문제를 재판하는 ‘판사’로서의 기능도 수행합니다.

신명기 17:8~9절에 “네 성중에서 송사로 다투는 일이 있으되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로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 것을 네게 가르치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렵지 않은 문제들은 백부장이나 오십부장이 해결할 수도 있지만,

판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제사장이 맡아서 처리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오늘날로 말하면 대법원 판사 격입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고 방자히 행하면

그를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물어 재판했는데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비를 걸거나 방자히 행하면 그를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셋째, 제사장은 의학적인 기능도 담당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병판별관’이기도 했습니다.

‘질병판별관’은 사람이나 건물이 문둥병에 감염되었는지 아닌지를 판결하는 사람입니다.

 

레위기 14:3절에 “제사장은 진에서 나가서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문둥병 환처가 나았으면”

제사장은 진 밖으로 나가서 환자를 진찰했고, 환자의 문둥병 환처가 나았으면

정해진 규례와 절차를 따라 문둥병에서 정결함을 받았음을 선언하였습니다.

 

우슬초에 새의 피를 찍어 일곱 번 뿌리고, 온 몸의 털을 밀고 옷을 빨게 하고

일주일 동안 격리시켰다가 다시 진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둥병자가 생기면 진 밖으로 격리하였습니다.

일정 기간 후 그 사람이 스스로 나았다고 생각이 되면 제사장에게 알립니다.

진찰을 요구하면 제사장이 진찰을 한 뒤 병의 유무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성 밖으로 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문둥병에 감염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넷째, 제사장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장에 나아가 백성들을 격려하는 ‘군목’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하였습니다. 신명기 20:2~3절에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거든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병사들을 격려하는 군목을 영어로 ‘채플린’(Chaplain)이라고 합니다.

제사장은 전쟁이 나면 일선으로 가서 병사들을 격려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다섯째,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설교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습니다.

남 왕국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을 백성에게 보내어

율법순회교육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역대하 17:9절에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 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성읍으로

순행하며 인민을 가르쳤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은 순회 설교자입니다.

 

▲여섯째, 제사장은 백성들의 ‘대표자’입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 앞에서는 백성들을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대표하는’(Representative) 사람이었습니다.

 

출28:1절과 3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법에 따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에 어긋나게 되면 현장 즉사입니다.

그러니 제사장의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바쁜 일입니까?

 

제사장은 옷도 아무것이나 입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입으라고 정해주신 옷만 입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출28:43절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지어서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후손의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제사장의 의복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면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입는 의복은 무엇이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3.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성의가 갖는 의미

 

“사람이 어떤 옷을 입는가?”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결혼식장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등산복을 입을 수 없고,

의사가 하얀색 가운이 아닌 빨간색 티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진료를 보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 아닙니다.

 

요즘은 목사들도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것을 대단히 센스 있고

감각적인 것처럼 자랑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대하는 설교자로서, 또 말씀을 강론하는 자로서 건방진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상황에 적절한 의복을 갖춰 입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목사가 가운을 입는 이유 https://rfcdrfcd.tistory.com/12538761

 

▲우선 대제사장과 제사장이 입는 의복은 여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는 ‘고의’입니다. 고의는 가장 먼저 입는 옷으로,

트렁크 형태의 팬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2) 둘째는 ‘속옷’이라고도 하고, ‘반포(斑布) 속옷’이라고도 하는 의복입니다.

통으로 된 옷이고, 머리가 들어가는 부분에 구멍이 있고, 팔은 소매까지,

다리는 발목까지 오도록 만든 옷입니다. 색상은 베로 만들었기 때문에 흰색이고,

옷이 헐렁해서 가슴 부위에 ‘속옷 띠’로 묶어 입는 의복입니다.

 

그런데 이 띠가 굉장히 화려합니다. 금실과 청색•자색•홍색실과 베실로 만들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금색과 청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자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 홍색은 그리스도의 수난,

그리고 베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으심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일반 제사장은 ‘고의’와 ‘반포 속옷’만 입고 일을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론의 아들들은 이 두 가지만 입고 일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뾰족한 산처럼 생긴 ‘제사장 관’을 쓰고 일을 합니다.

관은 제사장의 것과 대제사장의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관은 일종의 터번처럼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대제사장인지 제사장인지는 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설명하는 의복들은 모두 대제사장만 입는 옷입니다.

 

3) 셋째로 반포 속옷 위에는 ‘에봇 받침 겉옷’이라는 것을 입습니다.

이 옷은 청색으로, 소매가 없이 통으로 된 의복입니다.

그리고 목 테두리는 쉽게 닳을 수 있기 때문에 이중으로 깃을 덧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주 세세한 것까지 계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겉옷 하단에는 석류 모양의 장식과 금방울을 교대로 달아 두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이 옷을 입고 일하면 방울 소리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주석에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이 겉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방울소리가 났을 것이라고 기록해 두었는데,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일반 제사장과 같은 복장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딸랑 거리는 방울소리가 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일을 할 때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석류는 풍요를 상징하고, 금방울은 권위를 상징합니다.

 

4) 넷째는 ‘에봇’입니다.

보기에는 앞치마와 비슷하고, 청색•자색•홍색실로 아름답게 짠 의복입니다.

 

어깨의 견대를 중심으로 앞뒤로 되어 있는 에봇은 앞 기장이 무릎까지,

뒷 기장은 허리까지 내려옵니다. 에봇의 견대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견대에는 호마노라는 보석이 각각 양쪽으로 하나씩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호마노 보석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각각 6개씩 적혀 있었습니다.

마치 군대의 계급장처럼 대제사장의 어깨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5) 다섯째는 ‘판결 흉패’입니다.

판결 흉패의 크기는 가로 세로 반규빗씩입니다.

정사각형인데 열 두 보석이 세 개씩 네 줄로 박혀 있는 흉패였습니다.

 

보석의 이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 호박, 백마노, 자수정,

녹보석, 호마노, 벽옥입니다. 진귀한 보석들이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이 다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에봇 앞에 부착하였습니다. 위아래 끈으로 네 군데를 묶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흉패를 왜 판결 흉패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흉패의 후면에 주머니가 있었는데, 그 속에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주사위와 같은 것으로 대제사장이 기도하고 이것들을 뽑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제비뽑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판별하는 기구입니다.

물론 오늘날은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않습니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이 있습니다.

제사장의 관은 솟아오른 산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대제사장의 관은 터번같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대제사장의 관에는 띠를 두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히브리어로 ‘코데쉬’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 뜻은 ‘여호와께 성결’입니다.

대제사장이 이런 관을 쓰는 것은 그 역시 죄인이기 때문에

함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관을 쓰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대제사장을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고,

제사를 받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모든 의복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출28장 2절에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즉, 거룩하고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의 의복 중에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신발입니다.

대제사장은 맨발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신을 벗었던 것처럼

성소가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대제사장 역시 신을 벗고 일을 했습니다.

 

◑4. 본문을 통한 세 가지 적용

 

첫째, 왕 같은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예배할 때 거룩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대를 가지고 임하는 예배와

그렇지 않은 예배가 같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자의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 제사장은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는데,

제사장된 우리도 항상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부단히 성경을 읽고 기도함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일입니다.

이 악한 세대에서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대제사장을 거쳐야 합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하나님과 교통하려면 대제사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 없이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아주 건방진 말입니다.

 

히브리서 5~7장은 구약시대의 대제사장과 신약시대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완전하시고 우월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인 아론은 죄가 있었지만 신약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아론은 죽었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피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매년 제사를 반복해야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단 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셔서

영원히 우월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이 히브리서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결론

 

우리에게는 영원하신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구약 대제사장의 의복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두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에봇 견대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 사람의 죗값을 당신의 어깨에 지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모두 갚아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깨에 이름이 있다는 것은 죄짐을 모두 져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대제사장의 가슴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된 판결 흉패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슴에 택하신 백성들, 속죄하신 백성들의 이름이 영원토록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이름이 가슴에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을 기억하고 사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누구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까?

아마 자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을 품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우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의 이름이 예수님의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이 예수님의 어깨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죗값을 갚아주셨고, 그 가슴에 우리의 이름을 품으시고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영원토록 경배하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