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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 겔48:30~35
겔48:35b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겔48장 개관 https://rfcdrfcd.tistory.com/15979205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는 God + 샴은 거기 there,
합치면 God (is) there,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 라는 뜻입니다.
▲도입
구약에는 여호와의 성품을 알려주는 이름들이 여럿 나옵니다.
여호와닛시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살롬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평강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이레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이런 뜻입니다.
모두 신앙고백적인 이름들입니다.
에스겔서의 제일 끝 절인 48:35절에 나오는 여호와 삼마도
여호와의 성품을 알려주는 이름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에스겔은 포로생활을 하는 중에 예루살렘 성이 회복된 모습을 환상을 통해 봅니다.
그리고 이 성읍 city 의 이름이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 삼마’
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으로 예언을 끝냅니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48:35
이 말씀은 세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첫째, 우리의 이름도 여호와 삼마가 되어야합니다.
여호와 삼마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입니다.
이 말은 새 예루살렘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되어야합니다.
마치 그리스도인, 크리스천처럼 쓰여야 하는 이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안에는,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여호와 삼마) 합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본명이 있고 아명, 별명, 필명, 예명이 있습니다.
호(號)가 있고 자(字)가 있습니다.
과거에 학교에서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 배울 때는, 그 인물의 여러 이름을 외워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김정희(金正喜)라고 하면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 또는 완당(阮堂)입니다.
"시인 김소월(金素月)의 본명은 무엇이냐?" 국어 시험에 이런 문제가 자주 나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세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안중근 의사義士의 묘소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보도를 보는데
안중근 의사는 천주교인으로서 토마스 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가가 아니면 에명을 가질 필요가 없고, 문필인이 아니면 필명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을 (호號 처럼) 꼭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여호와 삼마", 조금 변형을 하면 "그 안에 여호와께서 계신 사람", 이런 뜻이 됩니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그 날"의 원어는 "미-욤"인데 "이제부터"라고도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회복된 그 날부터) "이제부터 네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아기를 가진 분들은 여러 가지를 조심합니다.
너무 요란한 곳에 가면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음식도 삼갑니다. 너무 자극적인 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하물며 내 안에, 거기에 하나님이 계신데, 나의 또 다른 이름이 여호와 삼마인데
내가 어떻게 함부로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술이나 담배 같이 정결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내 안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혼자서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조심하지 않습니다.
길에 속도 줄이라고 만들어 놓은 턱을 보고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덜커덩
그대로 넘어갑니다. 신호도 슬쩍슬쩍 위반합니다.
그렇지만 자동차에 귀한 손님이 타고 있으면, 조심조심 운전을 합니다.
파인 곳은 피해 가고 안전하게, 안전하게 운전하기 위해 힘씁니다.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에, 내 안에 계신데, 내가 거칠게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것을 더욱 분명히 알고 하나님을 모신 사람답게 살아가겠다는 뜻으로
한 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회복된 그 날부터) 내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의 이름도 여호와 삼마가 되어야합니다.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여호와 삼마) 집안이 되어야 합니다.
명문 집안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케네디 가문" "김씨 가문", 이런 식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가정은 ‘여호와 삼마 가문’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그 가정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어느 명문 가문의 이름보다도 좋은 이름입니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더라",
이 말씀을 "이제부터 우리 가정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이렇게 응용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이것이 우리 가정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 찬송가를 작사한 분은 전영택(田榮澤)이라는 감리교 목사님입니다.
아까 사람은 이름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 분은 장춘(長春), 늘봄, 추호(秋湖), 불수레,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분의 가정은 여호와 삼마의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559장을 작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직장선교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20여년 전 설교
직장 신우회가 전국에 6000여 개에 이릅니다.
정부 각 부처에 신우회가 조직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직업별 신우회도 31개가 됩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활발한 것은 운전기사 신우회라고들 말합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옆에 종교(宗橋) 감리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가 직장신우회 운동의 중심지입니다.
믿는 사람이 경영하는 사업장, 믿는 사람들이 일하는 직장, 신우회가 있는 직장들은
여호와 삼마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되어야합니다.
태국에 가면 거의 모든 상점이나 음식점이 부처상을 모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구석에 있기도 하고 어떤 곳은 중앙에 크게 모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이게 모실 수는 없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어디 곳에서나 모시고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행동으로 하나님을 대신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보지 못합니다. 대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을 봅니다.
교인들이 회사를 새로 시작하면서 목사님을 찾아와
이름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좋은 고민입니다.
이런 것은 "창조적인 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시면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을 가져 보세요. 줄이면 ‘여삼’
"여기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이런 마음으로 경영하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축복 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 교회는 철저하게 여호와 삼마의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요즘은 교회 이름을 지을 때 형용사를 많이 붙입니다.
아름다운 교회, 행복한 교회, 꿈을 주는 교회 이런 식입니다.
"향유 내음 가득한 교회"도 있습니다.
“자유하는 교회”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삼마교회’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는 교회, 누가 이 이름을 쓴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이름을 그렇게 했든지 안 했든지 간에 원칙적으로는
모든 교회가 여호와 삼마의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임마누엘 : God with us
여호와삼마 : Jehovah there
▲예수님 당시의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제사장들이 있었고 율법학자들이 있었고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형식적인 제사가 있었습니다.
제물로 드릴 짐승들을 잡느라고 비명 소리와 피비린내가 있었습니다.
장사꾼들이 들끓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계시고 싶어도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 성전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하기 어려웠습니다.
눅2장에는 예수님이 열두 살 시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간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유월절 때의 일인 것 같습니다. 성전이 너무나 혼잡하여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을 잃어 버렸다가 사흘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공생애 이전 예수님의 30년 생애 가운데 다른 일들은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왜 이 일만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바클레이 라는 성서주석가는, 그 때 예수님이 성전에 하나님은 계시지 못하고
불필요한 율법 논쟁, 형식적인 제사만 있는 것을 보시고
"내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어야겠다", 이렇게 결심했기 때문에,
소명을 새롭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나를 잃어버렸다. 율법학자들도 나를 잃어 버렸다.
사람들이 나를 찾으나 찾아내지 못한다. 나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내 사랑 안에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 네 사명이다", 이런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바클레이가 쓴 「예수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책은
열두 살 때의 이 일을 제1장으로 하고 시작됩니다.
성전은 여호와 삼마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 계신 곳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성전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해답을 주고 위로를 주고 새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웃시아 왕이 죽어 나라의 형편이 어려워졌을 때
젊은 청년 이사야는 답답한 마음을 품고 성전을 찾아갑니다.
거기서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존재가 되어 성전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예언 활동을 시작합니다.
여호와 삼마의 성전, 하나님이 계신 성전이 한 위대한 예언자(이사야)가 탄생하게 했습니다.
교회에 화려한 장식이 있고 성가대의 아름다운 찬양이 있고 조직이 있고
유력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삼마의 교회가 아니면, 여호와가 거기 계시지 않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환멸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을 생각하며
교회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 힘쓰는 가운데, 그 실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환멸이 변해서 환상이 됩니다.
▲에스겔서에는 에스겔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실망을 많이 한 일이 여러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겔8장에는 환상 중에 예루살렘의 우상숭배를 보는 일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왔던 제사장이자 선지자 에스겔은, 환상 중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남아있는 유대인들이 세운 ‘질투의 우상’이 있는 것을 보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우상숭배하는 것을 보았고
여인들이 앉아서 우상 가운데 하나인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것을 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는 것을 봅니다.
겔10장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것을 보는 일이 기록되어 있고
16장에는 예루살렘이 방자하고 음탕한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실망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서는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의 소망이 없더라" 하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리라" 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보여주고
갈라졌던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동쪽으로 향한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점점 많아져서 강이 되었는데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삼마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여호와 삼마,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소망과 환상을 갖기 바랍니다.
저희 교회는 무엇보다도 여호와 삼마의 교회, 여호와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찾아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제2의 이사야들이 탄생하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신앙인의 일생은 결론이 여호와 삼마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 "지금까지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셨다.
지금도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신다,
앞으로도 여호와 삼마, 천국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실 것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합니다.
역사의 결론도 여호와 삼마입니다.
에스겔서의 내용은 참으로 복잡합니다.
에스겔서에는 그 뜻을 알기 어려운 환상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상징적인 행동도 많이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을 담당한다는 뜻으로 왼쪽으로 390일,
오른쪽으로 40일을 누워지내기도 합니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삼분의 일을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칼로 치고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어버리는 일을 합니다.
예언활동을 하는 중에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일도 겪습니다.
예언의 내용도 다양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의 결론이 이것입니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이제부터 여호와께서 여기 계신다고 하리라" 48:35
우리들은 삶은 참 복잡합니다. 날이 갈수록 더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을 지키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의 생활은 여호와 삼마가 되어야 합니다.
하루를 마치고도..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서 거기 계셨다.
한 학기를 마치고도.. 여호와 삼마,
일생을 마치 즈음에도.. 여호와께서 내 일생 중에 계셨다고 할 수 있어야합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1791년 3월 2일 오전 10시에
88년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에 마지막 설교를 하고 기력이 쇠해져서 병석에 누웠습니다.
병석에서 무엇을 쓰려고 했는데 펜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비서인 릿치 양이 "선생님 무슨 말을 쓰시려 합니까? 제가 쓰지요" 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별로 쓸 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 밖에"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기도하고 찬송해 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 웨슬리는 "아멘"을 크게 했습니다.
임종이 가까운 것을 보고 사람들이 웨슬리 목사님이 누운 방으로 들어 왔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사람들을 보고 두 손을 들고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인용한다면 "제일 좋은 것은 여호와 삼마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임종 https://rfcdrfcd.tistory.com/13077792
영국 교회를 대표하는 웨스터민스터 성당에는
요한 웨슬리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들 형제들이 한 말 가운데 세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는 요한 웨슬리의 말,
I LOOK UPON ALL THE WORLD AS MY PARISH
"하나님은 그 일꾼은 장사(장례)하시나 그 사업은 계속하신다"는 찰스 웨슬리의 말,
GOD BURIES HIS WORKMEN, BUT CARRIES ON HIS WORK
그리고 요한 웨슬리가 임종할 때 남긴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는 말입니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그와 비슷한 여호와 삼마, 이 말은 이렇게 좋은 말입니다. 소망의 말입니다.
▲글을 쓸 때는 시작을 잘 해야 합니다.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저보고 성경 가운데 시작 부분이
특히 감동적인 성경을 들라고 하면
창세기와 요한복음과 히브리서를 들고 싶습니다.
또 끝맺음을 잘해야합니다.
구약의 성경들은 "죽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세기는 요셉이 110세에 죽어서 후손들이 입관을 했다는 것으로,
신명기는 모세가 120세 죽어 사람들이 삼십 일을 애곡하는 것으로,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고 아론의 아들 엘리아셀도 죽는 것으로 끝납니다.
복음서들은 부활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것이 대조적입니다.
저보고 끝 부분이 특히 감동적인 성경을 들라고 하면
여러 성경을 들 수 있지만 특히 오바댜서와 에스겔서를 들고 싶습니다.
오바댜서는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라는 말로
하나님의 역사통치를 선언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본문 에스겔서는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리라,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에 계셔서 통치하시는 것으로,
간결하고도 힘찬 말로 저희에게 소망을 주면서 에스겔서의 끝을 맺습니다.
구약에는 여호와의 속성을 알려주는 이름들이 여럿 나온다고 했습니다.
여호와닛시, 여호와살롬, 여호와이레, 여호와 삼마..
여호와 삼마는 그 가운데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이름입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신앙고백이 들어 있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거기(삼마)에 계셔야, 깃발(닛시)도 되고, 평강(샬롬)도 얻을 수 있고,
준비(이래)도 해 줄 수 있습니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여러분, 모두 이제부터 여호와 삼마의 삶,
여호와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가정과 직장과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기 바랍니다.
저희 교회는 삼마의 삼마,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들 가운데 대표적인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 복잡한 에스겔서의 결론이 여호와 삼마인 것처럼
우리 모든 것의 결론이 여호와 삼마가 되기를, 여기에 계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