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광교회-주일예배] 하나님은 여기 계신다 | 2024-0707 - YouTube
◈하나님은 여기 계신다 렘23:23~24, 시139:5~12
※마지막에 ‘기독교 상담가 지멘스의 이야기’가 뭉클합니다.
◑도입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여기 모든 곳에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로 Omnipresent (모든 곳에 계신다. 無所不在)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 계시는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큰 문제는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인들도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1935~1977 42세 사망) 가 죽은 후에 그 현장에서
구겨진 종이쪽지가 발견했는데 “나는 가끔 외롭습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세요.”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도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는데,
어째서 나는 혼자일까 내가 혼자라는 것이 너무 이상하다.” 라는 말을 남겼고요.
영화감독 알프래드 히치코크 경은 “나는 혼자라는 바다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셀럽들도 외롭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있었던 이들도
‘나는 외롭다’고 합니다.
마더 테레사 (1910~1997)의 가장 집중적인 사역은
빈곤층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 시대 서구 세계 빈곤은, 다름 아닌 외로움이다.” 이렇게 표현할 정도로
외로움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21세기인데 페이스북도 있고 소셜 네트워크가 엄청나게 발전됐는데도
이 시대에 사람들은 외로움을 훨씬 더 느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사망률이 2배나 높다고 합니다.
지난 6월 말 모 일간지에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50세 이상의 만성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은
뇌졸중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56%나 높다고 합니다.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를 피는 것처럼 독성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외로우면 큰 일납니다. 그래서 자주, 많이 모여야 합니다.
교회에 모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이 모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사람들이, 자기 주위에 사람들이 없어서 외로웠을까요? No
많은 사람이 주위에 있었지만, 이들은 외롭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은 주위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이상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를 버리지도 아니하시고, 떠나지도 아니하시는 바로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인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내 친구’라고 말씀하잖아요. 구주 예수님은 나의 친구도 되십니다. 요15:15)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 Omnipresent God
본문 렘23장 말씀입니다.
:2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은 피할 수도, 숨을 수도,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으신
바로 그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 하나님의 편재성이라고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주1)
존 오트버그 목사는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에 대해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데 하나님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계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가까이 계시는가 하면,
다윗은 지금부터 3천 년 전에 그것을 깨달아서, 위대한 시편 139편을 썼습니다.
시139:5~12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가장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은 은은한 달빛처럼 모든 곳에 계십니다.
내가 우리 집 마당에서 쳐다봐도, 달은 하늘에서 우리 집 마당을 비추고 있고,
그가 들판에 나가서 쳐다봐도, 달은 은은하게 들판에 서 있는 그를 비추고 있습니다.
군에 간 아들이 밤에, 그 깊은 산속에서 쳐다봐도, 달 빛은 자기를 비추고 있습니다.
달을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이 ‘저 달은 나를 비추고 있구나’ 생각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달이 꼭 나만 비추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편재성 Omnipresent God 입니다.
<그럼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 나와 함께 계시는지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어두운 곳에 나와 함께 계신다.
시139: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첫 번째, 하나님은 어두운 곳에 나와 함께 계십니다.
어두운 곳에 함께 계신다는 말씀은, 캄캄한 곳에 함께 계신다는 것인데
사람은 어두운 곳을 좋아해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안 보는 데서 뭔가 좀 하고 싶고, 내 욕심대로 좀 살고 싶고
그래서 ‘하나님 없는 곳이 혹시 없을까?’ 라고 생각하며 어두운 곳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다윗의 시편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 안 계시는 곳에 가서 무엇인가 좀 하고 싶은데
아니야 아니야. 하나님은 안 계시는 곳이 없어.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고, 어두운 곳에 가서 뭘 좀 하려고 해도
그 캄캄함이 나에게는 캄캄함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마치 빛과 같은 곳이야.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셔.
그러니 나쁜 짓 하면 안 되겠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셔!’
이렇게 마음을 가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어두운 곳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막 나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지금 다윗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는데, 내가 유혹에 빠지고, 나쁜 짓을 한다?’
△그런 순간을 맞이하면, ‘일시적인 무신론자’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시적인 무신론자’란, 분명히 주님을 믿는 성도인데,
그러나 일시적으로, 순간적으로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삶에 염려와 걱정과 근심, 분노, 유혹에 빠져서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할 때가 있습니까?
혹은 유혹에 넘어가서 ‘일시적인 무신론자’처럼 행동하진 않습니까?
다윗은 시편 139편을 통해서 거기에도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 보이는 곳에서 무슨 일을 도모하거나 유혹에 빠진 일이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것이 우리에게는 캄캄한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대낮같이 밝은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신앙생활에 정말 바른 길을 가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곳에서 나와 함께하심’은
나를 뭘 잘못하나 감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라는 건 돕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책망하시고, 잘못을 드러내시고, 정죄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돕고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마치 일시적인 무신론자처럼 행동할 때 하나님께서
“너 지금 뭐 하고 있니?”
이렇게 돌아서며 우리가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2. 하나님은 낮은 곳에 나와 함께 계십니다.
시139:8 ‘내가 ...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스올은 무덤, 또는 죽은 자가 가는 곳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
다윗은 그곳까지 내가 갈 수 있는데,
그곳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 스올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로 그 곳에도,
절망과 좌절 때문에 그냥 쓰러져버리고 내동댕이쳐 버려진 그 자리에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시 영적으로 탈진해서 영적인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어
기도도 안 나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 같지도 않고,
내 기도가 이 교회의 천장을 넘어가지도 못하는... 그런 나의 연약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까?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육적으로 너무너무 힘들고 지쳤고,
병이 있어서 나에게는 어떤 힘도 없어요.
또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 우울증 같은 것들이 나를 괴롭힙니다.
‘하나님 나는 완전히 바닥이에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곳에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의 영적 상태가 마치 로켓처럼 강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낮은 곳에서 영적인 절망감과 낮은 상태에 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계심을,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시139:8 ‘내가 ...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하나님께서 거기서도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지금 다윗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좌절과 절망의 자리, 슬픔의 자리, 어떤 소망도 없는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낮은 자리, 고통의 자리, 힘든 자리는 웬만하면 가지 말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희들의 삶의 목적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고,
우리에게 낮은 자리, 절망의 자리, 힘든 자리를 없애주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대부분은 거의 낮은 자리에 있거나,
힘든 자리에 있거나, 괴로운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망의 음침한 그 깊은 골짜기 그 낮은 곳, 그 스올과 같은 곳을 지나간다 해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라고 다윗은 고백했죠.
그런데 잘 살펴보십시오.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느끼기 때문이라’가 아닙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느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지라도
다윗은 지금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런 느낌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3. 하나님은 가장 멀리 피한 곳에서도 나와 함께 계신다.
시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찰스 린드버그(1902~1974)는 미국의 조종사로
1927년 세이트루이스 호를 타고, 뉴욕~파리 간의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처음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모할 만큼 정말 위험한 비행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하와이 마우이 해변의 작은 마을에서 마지막을 보내게 되었는데
자기가 병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그곳에서 마지막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묻혔을 때 묘비에 쓰여 질 글을 스스로가 썼습니다.
그게 시편 139:9절입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절은 안 썼는데, 묘비에 너무 길게 쓸 수 없어서 9절만 쓴 것입니다.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린드버그는 ‘내가 어디에 가거나 처음 가는 데를 가거나
사람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곳으로 비행해서 갔더니.. 거기에 하나님께서 계셨어,
육지를 향해서 갔더니.. 거기에도 하나님께서 계셨어!’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제 이 하나님께서는 나의 마지막 인생길, 마지막 삶의 길
내가 죽어서 가는 거기에도 하나님께서 계실 거야.’
이런 고백을 자기 묘비에 남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린드버그보다 3천 년 전에 다윗이 먼저 이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죽어서 가는 그곳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들과 전통들을 보면
바다와는 별로 관계없는.. 바다로 항해를 나갔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바다를 좋아하지 않았고, 두려워했고, 무서워했으며
바다를 저주하는 그런 내용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그 끝에 절벽,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이 다윗이 내가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9~10
‘바다 끝’은, 지중해 바다를 뜻하는데,
오늘날 표현으로 말하자면 ‘지구 끝까지 가더라도’입니다.
마치 요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듯이,
지금 본문 9절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까지 간다’는 것은,
좋은 뜻으로 간다기 보다는, 요나처럼 주의 얼굴을 피하여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하나님은 절대 피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요나도, 결국 도망갔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깊은 바닷속, 물고기 뱃속, 그 깊은 흑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이 구절을 확대해서 해석하면,
새롭게 내 삶이 시작되는 어느 곳에 갔을 때,
그곳에 이미 하나님께서 계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새로운 직장에 갔을 때, 새로운 나라에 갔을 때, 새로운 학기를 시작할 때
그곳에 하나님께서 이미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계시는 것은 장소적이기도 하고, 관계적이기도 하고, 사건적이기도 하고,
시간적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그 시점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셨고,
내 삶이 장소를 옮길 때 그곳에 갔더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셨습니다.
내 자녀들이 군대에 갔는데, 내 자녀들이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어요. 여러분들의 삶에 새롭게 시작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자녀들의 삶에 새롭게 시작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그곳에 이미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31: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4. 하나님은 태어날 때부터 나와 함께 계신다.
어쩌다 중간에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인생이 시작되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기독교 상담가 데이비드 지멘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상담했던 베티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베티는 ‘나는 아무 쓸데없어. 나는 사고로 태어난 사람이야.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자랐고
커서 어른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부모가 결혼한 이유가, 엄마가 자기를 임신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했고
베티가 태어나자마자 아빠는 집을 나갔고
엄마 혼자 자기를 키우면서 ’너는 태어나지 말아야 했는데 태어났어,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고달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없어져야 할 존재, 나는 사고로 태어난 존재..’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런 베티와 상담을 하다가, 상담가 지멘스가 숙제를 하나 줬습니다.
상담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당신이 이 숙제에 대해서 한번 당신의 생각을 써보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태어날 때, 엄마 뱃속에서 만들어지던 그 순간
하나님이 어디 계셨는가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베티는 숙제가 좀 황당하고 이상한 것 같아서 며칠은 하지 않다가
마지막 날 억지로 숙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썼는데 이렇습니다.
『오 하나님, 사랑 많으신 아버지께서 한 번도 나를 버리지 않으려 하셨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벅차오릅니다. 내가 세상적인 정욕으로 잉태되었을 때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어머니 뱃속에서 나를 생각하시고 나를 빚어주시고,
어머니가 나를 낳으실 때, 아버지의 빈자리에 거기에 서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버린 아이가 쓰라린 눈물을 흘리며 울었을 때,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내내 하나님의 부드러운 팔로 나를 안고 있었고,
당신의 부드러운 사랑으로 나를 부드럽게 흔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왜 당신의 존재를 몰랐나요? 하나님 사랑하는 아버지
내 마음은 얼어붙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랑의 빛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알고, 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들어질 때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 지나간 모든 시절 힘들었는지 또는 괴로웠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때 우리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 사랑으로
숨이 막히도록 가슴이 벅차게 내 마음이 끓어오릅니다.
▲마치는 말
1)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십시오.
창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전자기기들을 끄고, 조용히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5분만 묵상하면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를 계속하든지, 찬양을 하든지, 말씀을 묵상하든지... 계속 주님과 대화하는 거죠.
2)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보십시오.
사6:3 ‘~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세상 모든 곳에 하나님의 흔적이 있습니다. 자연에도, 꽃에도, 거룩한 음악에도,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에도, 저 태양에도... 하나님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나를 사랑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의 가장 힘든 그 순간에도,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릭 워렌 미국 새들백 교회 목사님의 삶에 정말 힘든 순간이 있었어요.
24살짜리 아들이 권총 자살을 했습니다. 너무너무 힘들어서 한동안 설교를 못 했습니다.
그러다 나타나서 설교를 하면서 “그 가운데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시116:9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여호와 앞에”를 NLT 성경은 In the LORD’s Presence
‘여호와의 임재 안에 행하느니라’로 번역합니다.
우리들의 삶은 여호와의 임재 앞에/안에 행하는 삶입니다.
조쉬 맥도웰은 강의를 하면서 칠판에 GODISNOWHERE라고 쓰고
여러분들은 이것을 무엇으로 읽습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God is nowhere : 하나님은 아무 데도 안 계신다. 무신론자가 읽는 방법입니다.
God is now here :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신다. 우리는 이렇게 읽습니다.
...............................
주1) 하나님의 편재성을 그런데 잘못 이해하면
우상숭배로 빠질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요점 하나가 있는데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신다는 것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들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에 다 신이 있어서 우리는 그 신을 숭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나무에다, 바위에다 대고 신이라고 복 달라고 기도합니다. *에니미즘, 토테미즘, 자연주의
왜냐면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고,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무소부재,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 없다는 성경의 의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곳에 계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서, 그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나무가 하나님이 아니라, 나무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2) 시139:5~12절의 메시지 성경
「주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모두 아십니다. 내가 뒤돌아보아도 주님은 거기 계시고
앞을 내다보아도 주께서는 거기 계십니다. 어느 곳에 가든 주께서 함께하시니,
내 마음 든든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나 크고 놀라워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 어디로 가며 주님의 눈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면 거기에 계시고 지하에 숨어도 거기에 주님이 계십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타고 머나먼 서쪽 수평선으로 날아갈지라도
주께서 금세 나를 찾아내시니, 주님은 거기서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속으로 “오, 그분은 어둠 속에서도 나를 알아보시는구나!
내가 밤중에도 빛 속에 잠겨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