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거룩한 요동

LNCK 2024. 7. 21. 07:45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삶의 통찰력

 

https://blog.naver.com/karamos/80049181254

 

◈거룩한 요동 搖動             사6:1~8           1998년 설교

 

여름이 되면 우리나라에는 무서운 피해를 주는 태풍들이 여럿 찾아 옵니다.

그런데 지금 자연의 태풍보다 훨씬 더 무서운 실업 태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자연의 태풍은 많은 비와 강한 바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실업태풍의 구성 요소들은 훨씬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명예퇴직․구조조정․부도․퇴출․정리해고․인수․합병․민영화․폐업이 복합적으로 얽혀

지금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사라호 태풍보다 더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6월 현재 실업자가 150만을 넘어서고 실업률 6.7%,

12월까지는 실업자 200만 명 실업률 9%로 예견되고 있습니다. *1998년 설교

 

▲교회도 이 태풍에서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성도들 가운데 아픔을 겪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태풍 속에서 목회자는 두 가지 짐을 지게 되는데 하나는 실직이라든가 부도, 폐업을 한

성도들의 아픔을 나누어 지는 짐이요, 또 하나는 "죄송합니다" 하는 짐입니다.

 

안산에서 목회하시는 고훈 목사님이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는데 그 전반부를 소개해 드립니다.

 

「목회자의 다른 이름은 ‘죄송’입니다

두 아이 손잡고 학교 갔다 오다

우리 아이 무사하고

집사님 아이 교통사고로 생명 잃을 때

죄인보다 더 머리 숙여 집사님께 죄송합니다

 

(반대로) 집사님 아이 무사하고

우리 아이 생명 잃을 때

죄인 되어 교회 앞에 더욱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 대학입시 합격하고

성도 아이 불합격일 때

내 자식만 위해 기도한 죄 같아

교회 앞에 죄송합니다

 

성도 아이 합격하고

우리 아이 불합격하면

미련한 우리가 죄 되어

모두 앞에 고개 들지 못하고 죄송합니다

 

불황속에서

장로님들 기업이 쓰러져 부도나고

성도들 가정은 불화하고 자녀들은 가출할 때

사례비, 판공비, 도서비, 생활보조비,

쌀, 전기수도비, 연료비까지 다달이 받을 때

성도들의 피를 받는 것 같아 차마 죄송합니다

 

성도들 가정 평탄하고 건강한데

목회자 가정 식구들 병으로 쓰러지면

은혜 못 받은 것 같아 교회 앞에 죄송하고

성도들 가정 식구들 당뇨, 암, 혈압으로 쓰러질 때

목회자 가정 식구들 건강하면

우리만 축복 독차지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여러분, 저도 죄송합니다.

실업태풍 때문에 개인이 동요합니다. 가정이 동요합니다. 사회가 동요합니다.

나라가 동요합니다. 지금과 같은 실업 사태는 잠재적 사회 폭동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동요를 "거룩한 요동"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거룩한 요동’이란 무엇입니까?

의미가 있는 동요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인을 아는 동요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는 동요입니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동요입니다.

 

우리는 6․25를 하나님께서 휘두르신 사랑의 채찍이라고 부릅니다.

8․15라는 큰 선물을 주셨는데 일제시대의 잘못을 회개하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고 화해하지도 않고 갈라지고 싸우고 미워한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사랑의 채찍을 드신 것이 6․25입니다.

 

IMF 상황을 흔히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하는데 IMF 역시 사랑의 채찍입니다.

두 번째 사랑의 채찍입니다. 우리의 방종과 무절제와 과소비와

경제적 풍요의 잘못된 사용에 대해 하나님께서 사랑의 매를 드신 것이

바로 IMF 상황입니다.

 

IMF 상황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전직 대통령의 무능을 먼저 듭니다.

경제관료들의 무책임을 또한 이야기합니다.

그 가운데 일부에게는 지금 법적인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막대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를 맞을 때 이유를 알지 못하고 맞으면 더 아픕니다.

부당하게 맞으면 견딜 수 없이 분하고 쓰리게 아픕니다.

그러나 이유를 알고 맞으면 덜 아픕니다. 이 매를 통해서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는, 그 매가 오리려 달게 느껴집니다.

 

IMF 상황으로 인한 동요를 하나님께서 때리시는 사랑의 매라고 고백할 때

그것은 의미 있는 요동, 거룩한 요동이 됩니다.

   *관련설교 /  파괴, 건설 https://rfcdrfcd.tistory.com/15973536

 

▲탕자가 아버지의 집에서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잘못 사용했습니다. 허랑방탕했습니다.

 

이제 돼지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했으나

그것조차 주는 사람이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탕자가 여기서 그대로 주저 앉아 불평만 했으면 그는 탕자로 끝났을 것입니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스스로 돌이켰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자기의 잘못에 대해 책임 질 각오를 했습니다. 일어나 아버지에게 갔습니다.

이제 그는 탕자가 아니라 돌아온 아들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를 지배한 것은 탕자문화였었습니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탕자로 끝나느냐, 아니면 돌아온 아들이 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지금의 동요를 단순한 요동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거룩한 요동으로 만드느냐 하는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1998 IMF

 

▲폴 틸리히(Paul Tillich)라는 독일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현대 신학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이 분은 오늘 본문 가운데 특별히 4절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1948년에 <The Shaking of Foundation>이라는 첫 번째 설교집을 냈습니다.

이 책은 1959년에 우리나라에서도 「흔들리는 터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틸리히는 사람은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다른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재결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재결합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실현되고 고백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결합을 위해서는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거룩한 요동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딛고 서 있던 기반이 흔들리고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틸리히의 또다른 설교집에 <The New Being>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말로 「새로운 존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요동을 통과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의 소명장인데 본문의 체험을 통해,

<거룩한 동요>를 통해 이사야는 예언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사야가 그 전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사야는 왕족이었던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오늘 이 거룩한 요동의 체험은 이사야로 하여금

동방 조그만 왕국의 평범한 왕족 가운데 한 사람에서

인류의 정신사에, 하나님의 구속사에 불멸의 자취를 남긴 대예언자로 변모시키는 일을 합니다.

 

▲실업 태풍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사회가

이 동요를 거룩한 요동으로 받아들일 때, 영적인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분이 겪고 있는 고통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때

그는 깊은 신앙을 가진 성실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소유가 다 없어지는 아픔을 겪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재산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불성실한 아들이었습니다.

 

'저거 언제 내 것이 되나?' '저 가운데 얼마나 내 것이 될 것인가?'

'저걸 어디다 써 먹을 것인가?',

그 때 이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관계를 어느 신학자는 "나와 그것의 관계"(I and It Relationship)이라고 불렀습니다.

서로 이용만 해 먹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때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기만 바랐을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혹 그렇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복 주머니의 끈을 쥐고 있는 할아버지로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이방 나라에서 돼지 치는 생활이라는 거룩한 요동, 거룩한 충격을 통해서

둘째는 성실한 이들이 됩니다.

 

실업과 사업의 부진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우리나라를,

우리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성실한 아들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목숨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인데,

이 목숨을 끊는 것은 살인과 맞먹는 죄로 여기고 있습니다.

 

서울의 세운상가 자리에 장사동감리교회가 있었는데(지금은 이전했고 교회 이름도 바뀌었음)

이 교회 담임 목사님에게 어느날 한 청년이 왠 상자를 하나 옆에 끼고 와서

결혼주례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어느 여성과 교제를 하다가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못하게 되자, 애인이 자살을 했습니다.

그 상자 속에 유골이 들어 있는데 유골과 결혼 할테니, 주례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은 결혼을 주례 해 주셨습니다.

 

감리교 본부에서 이 일을 알고 교회재판을 열어

상당 기간 이 목사님을 파문에 처했었던 일이 있습니다.

 

자살만 죄입니까? 절망도 죄입니다.

절망만 죄입니까? 낙심도 죄입니다.

실엄과 부도와 실직과 사업중단과 취업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 여러분,

낙심하는 죄를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국에 홀리데이 인(Holiday Inn)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텔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이름을 가진 숙박업체가 있지요.

 

홀리데이 인에 들 때마다 이름이 그래서 그런지 '정갈하다' 하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왜 홀리데이 인일까?' 하는 의문도 갖게 됩니다.

 

'홀리데이'는 "거룩한 날", 성일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인(Inn)은 여관, 여인숙 "거룩한 날의 여관",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늘 가졌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도 그렇지요. "거룩한 요동",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더 깊은 진리가 있는 경우가 교회에는 많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이렇습니다. 미국에 예수 잘 믿는 목재소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우리나라의 IMF 같은 불경기가 찿아와서

이 직원이 마흔이 넘은 나이에 정리해고가 되었습니다. 충격이 컸지요.

 

이 사람은 실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너 조그만 여관을 해 보아라.

여관이라는 것이 건전하지 못한 유흥장소로 사용되는 일이 많은데

사람들이 편안하게 묵을 수 있는 그런 여관을 운영해 보아라' 이런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홀리데이 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이제는 세계적인 체인을 가진 큰 사업체가 되었습니다.

 

주저앉아 있어도 안됩니다.

순발력있게 대응해야합니다.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했으면 가정경제도 구조조정을 해야하고

가족간의 의식도 구조조정, 다시 말씀드려 의식의 전환을 해야합니다.

 

▲"가족과 성 상담소"라는 곳에서 "추락하는 중산층 부부화목 10계명" 이라는 것을 제정했는데

그것을 보니까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실직은 개인의 무능력이기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알고 자신감을 갖자"

 

"어려울 때일수록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격려와 애정표현을 자주 하자"

 

"경제 위기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최선의 방법을 부부가 함께 찿자"

 

또 IMF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산가정에서는 경제적으로는 주부들과 자녀들도

취업에 나서 대체소득을 확보하고 소비를 합리화하고

한계상황에 대비해서 자산을 관리하고 비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죄절감을 극복하고 가사를 분담하고(남편도 가사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가족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는 충고도 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고통은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IMF는 이제 시작단계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이 더 커질 것이라고들 하는데

점점 더 어두워진다는 것은 새벽이 점점 더 가까워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계를 느끼십니까?

인간의 한계점이 바로 하나님의 출발점이라는 사실도 아시기 바랍니다.

 

▲「안네의 일기」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유태인 소녀 안네가 나치의 핍박을 피해 가족과 함께 암스테르담 운하 옆 어느 집 4층에 숨어서

여기저기 뒤지는 독일 친위대의 발자욱 소리에 숨죽이며 지내면서 적은 일기입니다.

「안네의 일기」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우러러 보면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가고 이 잔학함도 끝나고

평화와 정적이 세계에 깃들일 것을 나는 믿고 있다"

 

밑층에서 자기들이 숨은 곳을 찿기 위해서 수색을 하고 있는 독일군인들의 군화에

계단이 삐꺽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하늘을 우러러보면 마음에 평안이 찿아온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사랑", 이런 하늘을 우러러 보십시다.

이 실업태풍은 언젠가 지나가고 안정과 번영이 다시 한 번 우리를 찿아올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청룡열차를 탑니다. 어지럽고 속이 뒤집히고 비명을 지르고 야단이지요.

그런데 청룡열차가 왜 인기입니까? 그걸 왜 스릴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애인 앞에서 왜 다시 한 번 타려고 하는 것입니까?

 

얼마 안 있어 이 열차가 스톱하고 땅에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것이 스톱하지 않는다면, 청룡열차 타는 것은 형벌 가운데 형벌이 될 것입니다.

 

끝이 있다는 것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끝을 앞당기기 위해서 힘써야합니다.

 

나라가 온통 동요인지 요동인지 흔들리는 가운데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거룩한 동요로 만들어야합니다.

이 태풍에 의미를 부여해야합니다.

 

이사야처럼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부정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고백하는 가운데..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어야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동요를 거룩한 동요로 받아들여 이것을 잘 극복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축복의 계기로 만드는 여러분과 저,

그리고 컴퓨터를 통해 이 설교를 대하는 모든 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