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기도로부터 시작된다 렘33:1~3 2011.10.28. 설교문 스크랩
렘33: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서 33장은, (예레미야서에서) 전환점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1절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위대의 뜰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 시대의 상황을 잘 말해 줍니다. 영적으로 최악의 상황입니다.
선지자가 갇혔다는 말은, ‘하나님의 입’(렘15:19)을 막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을 때, 소망이 없습니다.
영적인 문제뿐 아니라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인 모든 영역에서 위기의 상황입니다.
영적인 위기는 모든 영역으로 전염됩니다. 어느 시대나 영적 위기는 총체적 위기입니다.
▲(시위대 뜰에 갇힌) 예레미야는 선지자로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찾아오셨습니다.
33:1절을 보면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여기서 '갇혔다'와 '임하다'라는 두 단어가 눈에 띕니다. 두 단어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갇힌 상황은 모든 것이 막힌 상황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닫힌 상황이지만,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가로막힌 감옥이지만 한 곳, 하늘이 열려 있습니다. 그곳에서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어떤 상황이 가로막고 있다 할지라도
한 곳, 하늘만 뚫리면 됩니다. 그곳에 말씀이 임하면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상황적으로 갇혀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상황,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신자에게 최악이 상황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만약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진다면 최상의 환경입니다.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그것을 재앙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상황을 잠시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불신앙으로 몸종인 하갈의 몸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자 하나님이 숨으십니다.
말씀을 좇아갔던 그가 결국 말씀이 사라져 버립니다.
말씀을 좇아갔던 그는 방황하고 갈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최악의 세월을 보냅니다.
신약과 구약 사이에 400여 년의 침묵기가 있습니다. 역사의 어둠의 때입니다.
세례요한이 출연할 때까지 이스라엘은 어둠을 통과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기만 하면, 그 시대는 소망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강단에서 흘러내린다면, 그 시대는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날마다 기도할 때 한국 교회 강단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임하는 말씀이 그 땅 가운데 있다면, 아직 하나님이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국에서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불같이, 폭포수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쏟아질 때는
영국은 전성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 같이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든지 임한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개인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상황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열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면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밤이 하늘이 열리는 밤이 될 줄 믿습니다.
한 말씀이라도 살아계신 레마의 말씀이 내 심장에 꽂히면 변화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신음이 노래가 될 줄 믿습니다.
'임하심'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고 사람들에게서도 어떤 책에서도 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오직 하늘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예배 때 마다 임하심의 역사가 있다면
그곳이 시위대든, 감옥이든, 내 삶이 어떤 환경에 있든,
하나님께서 소망이 있는 곳으로 이끌어내실 것입니다.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으라'라고 하신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절박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절대적 한계상황에 빠져 있을 때 부르짖습니다.
시편에 보면 부르짖는다는 말이 위급한 일이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주 나옵니다.
시편 86:7절에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신 이유는, 예레미야는 기질적으로 우울질입니다.
소극적이고 매사가 심각하고 쉽게 우울하고 침통해지고 움츠러드는 사람 Jeremiah 이
언제 바깥으로 나갈지 알 수 없는 어두운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그는 평소보다 더 침울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오랫동안 안고 있다가 보면, 나중에는 아무리 힘든 것이라도 수용해 버립니다.
암에 걸렸다면 처음에는 분노가 일어나고 거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수용합니다.
아마 예레미야도 이 상황에 이 수용의 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운명으로 생각하고 꿈과 희망을 포기해 버린 불행한 삶이지만
거부할 용기가 사라진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 중의 하나는, 우리가 기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합리적, 논리적, 계산적인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안 되면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 문제가 오래되고 악화하면 기도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게 됩니다.
연못가에 물이 동할 때 먼저 뛰어들어가는 사람이 낫는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뛰어들어가지 못 하는 38년 된 병자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중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냥 일어나라고 하시면 되는데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38년 동안 누워있는 병자의 내면을 아셨습니다.
부정적이고 어두운 마음과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무너진 마음에
먼저 희망의 싹을 올리기 원하셨습니다. 그 심령에 주님은 희망의 불씨를 일으키셨습니다.
힘든 삶 속에 있다가 보면 조금 남아 있던 자신감도 사라져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움츠려 있던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르짖는다는 말은 얼어붙은 마음을 활짝 열라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암담한 현실이지만 기도를 시작해 보라는 것입니다.
암울한 상황에 짓눌린 마음을 걷어내려면 먼저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것은 아주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예레미야는 감옥 속에서 매우 소극적인 기질과 상황에 붙잡혀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좌절과 낙심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너는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내면에 있는 어둠과 소극적인 마음을 걷어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외쳐보라는 것입니다.
이 밤에 여러분도 오랫동안 기도생활을 하지 않고 문제 속에 짓눌려 있던 분은
기도가 잘 안 됩니다. 오늘 그 입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가 있어도 부르짖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눌려 있어서 안 된다는 마음이 자신의 내면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것은, 속에 있는 응어리가 터져서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것인데
부르짖고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도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찬양과 기도를 크게 하는 데는 그 자체를 통해서
내면세계에 있는 어둠과 답답함과 응어리진 것을 털어내는 카다르시스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그때 감정의 순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의 기질과 상황을 보면서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부르짖는 순간에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이 떠나가는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우리로 하여금 가장 먼저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모든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시기 전에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기도를 불러일으키십니다.
내 안에 기도할 마음을 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 역사의 현장을 보면 무엇인가를 행하신다면 전에 반드시 기도하는 일이 먼저 일어납니다.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의 시대의 상황이 너무나 답답하고 암울하지만,
하나님은 그 선지자에게 먼저 기도하기를 요청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기도하게 하십니다. 기도가 모든 일의 출발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그런 일은 흔합니다.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양의 대부흥 운동이 1907년에 강력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1903년 원산에서
기도의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사가들의 관점은 어디든지 부흥이 있기 전에는 기도가 먼저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현대 오순절주의 운동은 1906년, 미국의 LA 아주사 거리에 몇 사람의 평신도가
2층 다락방에서 기도했는데, 성령의 불이 붙어서
20C 말에 가장 강력하게 일어났던 일이 그 시작입니다.
우리 안에서 기도가 시작될 때부터 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내게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적 세계의 일의 순서입니다. 내 안에서 이상하게 기도가 일어나고 있다면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 일을 시작하시려고 하는 징조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먼저 기도를 일으키십니다. 우리 안에 기대감과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하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가장 무섭고 절망적인 상태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중단된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라고 하는 것은 절망과 포기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짖으라고 하는 말씀은, 단순한 기도의 요청 이전에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바꾸는 것입니다.
마7장에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기도의 귀한 교훈입니다.
이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적극적인 기도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없다고 주저앉아있지 말고, 잃었다고 안타까워하지 말고, 닫혔다고 끝이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열리고 찾고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것입니다.
기도가 되기만 하면 문제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잘 안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오랫동안 절망적인 상황에 익숙해진 삶에서 털고 일어나
살려달라고 소리쳐라. 그러면 살 것이다. 문제는 너의 안에 있다."라고 하십니다.
기도가 응답되고 안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에 와 앉아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기도의 자리에 나오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익숙하게 기도의 자리에 나아와 앉아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감옥에서 나오게 해 주겠다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감옥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하실 때, 기도하면, 하나님의 일은 시작된 것입니다.
▲부르짖으라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응답을 믿고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 :3
성경은 기도의 수많은 응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결론 같은 공식은 기도는 응답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과 시기가 아닐지라도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기도를 결단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기도를 잘 하지 않는 이유는
기도의 응답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는 일평생 고아 사역을 하면서 5만 번 이상의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고아원은 조지 뮬러의 방식 그대로 누구에게도 요청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급을 믿고 기도만 하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고아원을 가 보았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고아원이었습니다.
학교까지 운영하면서 기술을 가르치면서 자활할 수 있도록 하는 큰 고아원이었습니다.
조지 뮬러는 한 푼도 없이 운영했는데, 지금의 돈으로 계산하면 7억 불에 해당하는 돈을
하나님이 공급하신 것입니다. 오직 구하고 응답받은 것입니다.
OMF 선교단체는 지금도 허드슨 테일러의 선교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여
어디를 가든지 자신의 재정적 필요를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후원회는 없고 기도회만 있습니다.
오늘까지 그 선교단체는 건강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기도는 응답됩니다.
기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믿지 않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에 대한 강력한 확신을 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으실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라고 응답을 말씀하십니다.
6절 이하에 보면 응답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용서입니다.
패역하고 반역했던 백성을 심판하셨던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용서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 정도로 끝나지 않고 7절 하반 절에 보면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다 망가진 예루살렘의 완벽한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처음과 같이 영광스럽게 회복시키시겠다고 하십니다.
기도는 회복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약간의 돌봄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온전케 회복시키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9절에 보면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상상을 초월하는 약속을 하십니다.
우리가 신음하며 기도했지만,
응답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밤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응답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 응답은 나의 기도제목을 넘어선 것이어야 합니다.
기도의 재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엡3:20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기도의 응답은 우리의 생각을 훨씬 더 넘어섭니다. 하나님이 움츠려 있는 자에게
기도하게 하실 때는 그냥 일으켜 세우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열방 가운데 높이 들어 세우시는 영광스러운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기도의 응답은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2절에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응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히브리어 두 동사가 나옵니다.
하나는 '만드시다'라는 '오사'와 '지으시다'라는'요케'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만들다', '지으시다'라는 단어는 창2장, 3장에서 하나님이 창조사역을 하실 때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오늘 기도를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시고 응답으로 크고 비밀한 것을 보이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흑암 가운데 말씀으로 빛을 만드신 하나님이 기도를 요청하십니다.
창조의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창조의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한마디를 믿으면 믿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신실하고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오지의 선교사님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도 죽은(심정지) 자가 살아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 교회 평신도 선교사님께서 수지침을 배우고 이슬람권으로 가셨는데
기도하고 침을 놓으니 각혈을 하는 사람, 허리 디스크 있는 사람이 다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하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창조의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줄 믿습니다.
또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라고 합니다. 창세기부터 하나님은 부지런히 일하십니다.
주님도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에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도 마지막까지 강도를 살리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부활 이후에도 회복기도 없이 도마를 찾아가 확인시켜 주시고
디베랴 바닷가로 도망간 제자들을 찾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도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시는 끊임없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을 우리를 돌보시고 지키십니다. 지금도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때에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의 남자아이를 다 살육할 때 모세의 어머니는 석청으로 만든 갈대 상자에
모세를 담아서 나일 강에 띄웁니다. 그때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러 나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신 것입니다. 정확하게 오차 없이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조정하십니다.
모르드개가 장대에 매달려 죽게 된 전날 밤에 왕이 잠이 안 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입니다. 역사책을 읽게 하여 모르드개가 세운 공을 보게 하십니다.
가끔 일어나야 우연인데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기적이 반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결국, 하만이 매달리고 히브리민족을 살리십니다.
기도는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플러스 알파입니다. 기도를 배운 사람들은 플러스 알파의 위력을 압니다.
내가 아무리 잘해놓아도 플러스 알파에 의해서 모든 향방이 결정됩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내가 최선을 다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플러스 알파 즉 하나님의 일하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열심이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히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에서도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열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연약하고 자주 넘어졌지만
믿음의 조상으로 되기까지 끊임없이 다시 일으키시고
창22장 모리아의 정상까지 올려놓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일을 만들고 성취하는 여호와가 오늘 우리에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실패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너무 노력하지 마십시오.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떨 때는 실수를 통해서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때가 많습니다.
플러스 알파의 역사를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계획된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전환점마다 변화하게 하시고 역전극을 벌이시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만들어나십니다.
잠언서의 말씀처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시편 127편 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일을 행하고 성취하는 여호와의 손길이 우리의 삶에 역사 해야 합니다.
지금 어떤 상황에 있든지 상관없이 부르짖는 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도하게 하십니다.
문제는 내가 기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앉아 있어야 합니다.
그때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이끌고 가십니다.
오늘도 내가 그냥 철야기도회에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이 있고 일하실 것입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그러므로 부르짖는 나의 의지적인 행위가 필요합니다.
감옥 안에 웅크리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기도하라고 설득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삽니다. 창조의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주저앉아있지 말고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오늘 밤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실 줄 믿습니다.
구하면 응답받는다는 기도의 증거의 증인들이 되시기 바라고
창조주 하나님이 만지시는 회복의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