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 로마서 11:11-15 | 20240728 - YouTube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롬11:11~15
로마서 11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자리를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해석도 다양하고, 논란이 굉장히 많은 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장은, 많은 방대한 양의 생각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기보다는,
'롬11장 전체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되는 맥이 무엇인지'를 짚어보면서
본문 말씀과 우리의 삶이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좀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미래의 운명은 오직 하나님만 아시거든요.
여러가지 해석도 있고, 여러가지 논란도 있지만,
결국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여러분이 '이스라엘 회복'이라는 큰 주제 앞에서, 이것만은 분명히 알고 계셔야 돼요.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사건은 '종말론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것과, 긴밀하게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선교적인 관심을 갖고, 그리고 종말론적인 관심을 갖고,
이스라엘을 지켜보고 있어야 되는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되는 것과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항상 이스라엘을 향한 관심이,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는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신앙을 만들어 가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롬11장 말씀 가운데서 어떤 맥을 갖기를 원하냐면,
이 본문 말씀이 과연 우리랑 어떤 상관이 있는가? ... 생각을 해볼 거예요.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다!' 그래?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 되려면, 나와 상관이 있어야 되거든요.
그러려면 11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바울의 논리가
우리의 삶에 들어오고, 우리의 삶과 관계가 있어야 하니까,
먼저 우리가 이런 큰 줄기를 좀 붙잡아야 될 것 같아요.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이 (롬11장이), 오늘날 우리를 향한 말씀이 되려면
1) 예수님을 거절한 이스라엘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고 예수님을 전하지만
마음을 열지 않고 있는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우리의 이웃들의
얼굴을 떠올리셔야 돼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보내주셨는데
메시아를 거절하잖아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이웃들에게 전하는데
그들도 거절하잖아요. 이게 서로 연계가 돼야 된단 말이에요.
'아 그러면 이 이스라엘을 향한 언약의 말씀이,
나의 가족을 향한 언약의 말씀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셔야 되는 거예요.
2) 또 우리 주변에, 예전에는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고 잘 믿었는데
지금 잠시 신앙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있어요.
방학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에요.
예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언약으로부터 떠나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먼저 받았지만,
지금 떠나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주어진 말씀이라면,
지금 잠시 믿음에서 벗어난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들, 가족들,
그들을 향한 말씀이 될 수 있다... 라는 것이, 우리가 붙들여야 되는 두 번째 줄기예요.
3) 세 번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버린 이스라엘을 보면서
우리는 위기 가운데 있는, 흔들리고 있는 우리 나라의 교회를 봐야 돼요.
또 과거에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고, 교회 종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던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만약에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다면(여전히 유효하다면),
흔들리고 있는 한국교회, 교회 종소리가 멈춰있는 북녘 땅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도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라는 믿음을 붙들수 있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자기 백성을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신다
11:1~5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언젠가 회복될 것이다' 라는 큰 주제 속에서,
오늘 우리가 보아야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버리지 않으신다' 라는 거예요.
그들의 타락이 하나님의 사랑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들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강팍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들을 향해서 여전히 유효하다..
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우리가 받아야 되는 거예요.
▲수년 동안 오래도록 기도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가족이 있어요.
10년, 20년 기도했는데도, 예수를 전하면 마음을 굳게 닫고 있는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님, 배우자, 자녀들, 친구들이 있단 말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세요.
그들의 강퍅함이, 그들의 완악함이.. 하나님의 사랑을 지워버리지 못한다는 거예요.
믿음을 떠난 가족들이 있어요. 예수님을 향한 가슴이 식어버린 가족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세요.
그런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죠. 여러분들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시잖아요.
그리고 정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예수를 전해보잖아요. 근데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잖아요.
그러면 우리 마음이 안타깝고, 먹먹해지고, 그리고 두려운 마음도 생기죠.
'이러다가 끝까지 하나님을 향해서, 예수님을 향해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운 마음이 생겨요.
그런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어요.
하나님은 절대로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세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전제 하에)
그들의 굳은 태도와 완악해진 마음이, 하나님을 좌절시키지 않아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냐면,
'하나님의 사랑은, 처음부터 그분을 거절하는 대상을 향해 쏟아지는 사랑이다.'
이렇게 이해를 해요.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죠.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을 거절했을 때,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열지 않았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이 어떻게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확증하셨다.. 라는 거예요.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부어진 사랑, 그것이 십자가의 사랑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만큼 사랑하시느냐? 십자가에서 죽으실 만큼 사랑하시는 거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을 거절하고 예수님을 거절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도 절대로 (가족, 자녀, 친구를) 포기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멘으로 받으세요.
아무리 기도해도 변함이 없어요. 눈에 드러나는 것이 없어요.
그래도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되는 거예요.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담대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예수를 전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 가자, 교회 가자' 하지 마세요. '예수를 믿으라'고 얘기하셔야 돼요.
'교회에 가자'는 복음이 아니에요. 교회에 와도 복음을 못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평생 교회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하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진짜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생명, 구원을 전해주고 싶으면,
'교회에 가자'가 아니라
'예수를 알아야 된다, 믿어야 된다'라고..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사랑하는 부모님들이, 배우자가, 자녀들이, 친구들이
예수님을 모를 때,
내가 예수님을 말하면(전도하면) 그들의 마음이 상해서
화를 내고 거절하고 관계가 어려워질까봐 너무 두려워하는 분들이 계세요.
여러분, 그들의 닫힌 마음만큼,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그 두려워하는 마음이에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담대하게 증거하세요.
그들의 영혼을 향해서 여러분의 갈급함이 있고,
그들의 영혼을 향해서 우리 안에 간절함이 있다면,
두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담대함이 생기게 돼요.
우리가 진짜 복음을 믿는다면, 내 안에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고,
'강권해서 내 집을 채우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제 친구 하나가 미국에서 경찰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주님을 뜨겁게 만났어요.
원래 그런 친구가 아닌데.. 주님을 뜨겁게 만났어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사람을 경찰차 뒷좌석에 체포해서 태울 때
수갑을 채우거든요. 수갑을 채워서 유치장에 데리고 가면서
사람이 차 뒤에 앉아 있을 때, 운전하면서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원래 그렇게 하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말을 해요.
'너는 왜 지금 내 차 뒷자리에 앉았는지 알아?
네가 예수를 몰라서 그런 거야. 예수님을 안 믿어서 그러는 거야'
그리고 사람이 유치장에 들어가기 전에 앉혀놓고 '너 지금 두렵지? 무섭지?
너 저기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아무런 생각도 없지?
또 네가 저기 왜 들어가는지 내가 네게 알려줄게.
네가 예수님을 안 믿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네 인생이 제대로 되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돼!' 이런 얘기를 자꾸 하는 거예요.
제가 '너 그래도 되냐?' 하고 물어보니까, 원래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자기가 뜨거우니까, 갈급하고 간절하니까, 예수님을 얘기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 친구가 고등학교에 가서, 경찰 근무를 하던 때가 있었는데
고등학교에서 시큐리티(안전요원)로, 경찰이 근무하는 학교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그 경찰에게 오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이겠어요?
사고 치고 오는 아이들인 거죠. 문제 아이들...
그 문제 아이들이 자기 사무실에 들어오면, 먼저 앉으라고 하고는,
그러고 보통 아이들이 확 얼어있고, 긴장하고 있는데
'네가 지금 왜 내 사무실에 와 있는지 알아?
네가 예수를 몰라서 그런 거야.. 너 예수님 믿어?'
이러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그 친구에게 물어봤어요.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해도 되냐?
공립고등학교인데, 그거 문제 생기지 않냐?'
친구는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나는 이 아이들이 정말로 예수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예수를 전한다'는 거예요. 담대하게 전할 때 역사가 나타나는 거예요.
그때 체포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문제아 학생들이 예수님을 믿기도 하고, 마음의 결단을 하기도 하는 등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제가 아는 장로님 한 분이 고위공직에 임직을 하게 됐어요. *김하중 장로님인듯
그래서 청문회가 막 끝나고, 취임사를 준비 하시는데, 취임사 내용이 이런 거예요.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 자리에 보내주셨으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내가 이 일을 잘 하겠습니다.'
이렇게 취임사를 쓴 다음에 보좌관들한테 보여주니까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이거 TV에도 나오고, 사람들이 다 정부 요인들이 모여서
취임식을 하는 건데, 장로님 여기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정식 취임사를 쓰셔야 됩니다. 이렇게 하면 큰 일 납니다.'
그래서 이 장로님께서 취임사를 다시 쓰셨어요.
'최선을 다해서 내 주어진 직무를 감당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셨겠죠.
그리고 연이어 이렇게 연설하셨대요.
'여기까지가 제 공식 취임사입니다.
지금부터는 제 사적인 취임사를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하나님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자리,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복음의 통로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취임식 때 얘기를 하셨다는 거예요. 왜 그래요? 그렇게 안 해도 되잖아요.
뭔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으니까,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는 거예요.
▲저희 장인은 청소년 때, 6.25 전쟁 때 부산에서 피난민 시절에 복음을 받으셨어요.
미국 선교사님이 복음을 전해주셨고, 길거리에서 굶고 있으니까
'야 너 학교 안 가고, 왜 여기 바깥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냐?'
'학교를 가고 싶은데 돈이 없습니다. 너무 배가 고픕니다.'
선교사님이 밥을 사주면서 '너 그러면 학비를 주면 학교를 가겠느냐?'
'학비를 주시면 학교를 가겠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한 달에 10불씩 헌금해주는 독지가를 연결을 해주셔서
6년 동안 지원을 받으면서, 장인은 공부를 하셨어요.
이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된 다음에, 장인은 마음에 빛을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예요.
그때 미국은 어땠느냐?
1960년대 초중반에 미국이 마약과 성적 자유화 문화로 아주 타락되어 있을 때예요. *히피운동
그리고 월남전 때문에 젊은이들이 방황을 하고 이럴 때,
29살의 젊은 목사(장인)가
'내가 미국 선교사한테 복음을 받았으니
미국 청년들이 저렇게 방황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마약에 쩔어 살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줘야 되겠다' 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파송된 제1호 선교사로 미국으로 들어가셨어요.
여러분 그 당시에 인종차별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각 주를 다니면서,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10년 동안 복음을 전하셨는데,
10년 동안 300만 명의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 이름을 외쳤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집을, 저희 장인어른을 위해서 열어놓고
'우리 도시에 올 때, 언제든지 우리 집에 들어와라.
당신 우리 집에서 먹고 자면서 복음을 전해라'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별명이 '수트케이스 미셔너리 (여행가방 선교사)' 였습니다.
제가 병아리 전도사 할 때, 옆에서 보면,
그 분의 열정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제가 중고등부 전도사였을 때, 저희 교회 아이들 중에서 세 명이
교통사고로 죽는 사건이 있었거든요.
16살, 17살 된 아이들 세 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됐습니다.
저희가 섬겼던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는데,
그들이 다녔던 학교의 거의 모든 학생들이 다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여러분 저희 장인어른은 그 기회를, 슬픔과 애도하는 기회가 아니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청소년들에게, 과거에 그가 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 받는다' 라는 복음을,
장례예배 때 주저하지 않고 부르짖던 모습이, 지금도 제 눈에 선합니다.
목회 일선에서 은퇴하시고 미자립교회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목사님들을 돕다가 치매가 오셔서 사역을 접으셨는데,
치매가 이게 기억이 없어지는 병이잖아요. 기억이 지워지는 병이거든요.
아들의 얼굴도 잊어버리고, 아내의 얼굴도 잊어버리고,
아들들의 이름, 딸의 이름도 잊어버리는데...
그분께서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건 뭐였는지 아세요?
'내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돌아오면 옆에 있는 노인들에게
'Do you know Jesus? 당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물어보기도 하고,
나중에는 치매가 심해지셔서 말도 제대로 못하셨거든요.
그런데 요양원에 계실 때 방문을 해보면
그 요양원에서 돌보시는 분들이 저한테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저 분이 목사님이세요? 그 분이 자기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이라고 얘기를 하세요.'
여러분, 복음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닫혀 있는 마음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거절하는 마음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 이름의 복음을 전할 때,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 나오라'는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시오'가 복음입니다.
예수를 증거할 때 닫힌 마음이 열리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 복음을 통해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자기가 선택하신 백성들을 버리지 않는다' 라는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엘리야를 이야기합니다.
엘리야 시대는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아합이라는 나쁜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알 앞에 무릎을 꿇게 한, 악한 왕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목소리를 내었던 사람입니다.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과 영적인 대결을 벌이죠.
제단을 두 개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제물을 올려 놓고
'너희는 너희의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진짜 하나님께서 불을 떨어뜨리셔서 제물을 태우실 것이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이, 자기들의 몸을 자해해 가면서
바알과 아세라를 부릅니다. 아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조롱을 하죠. '너희 신이 바쁠 수도 있지 않냐?
멀리 여행 중에 있을수 있지 않느냐? 잠을 잘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더 크게 소리 질러서 한번 깨워봐라!'
그러니까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이 광란의 제사를 드리며
자기 몸을 자해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제단 앞에서 기도하죠.
'하나님, 불을 떨어뜨리셔서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 것을 드러내주시고,
내가 그 참 하나님의 종인 것을 드러내주십시오'
그러자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제단 위의 제물을 사릅니다.
그리고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엘리야가 처단을 하죠.
그것을 본 이세벨 왕비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낙심해서 도망을 가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죽여달라고 기도를 하다가
이런 푸념 가득한 호소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죠.
'주님, 그들이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주님의 제단을 헐어버렸습니다.
이제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근데 이제는 나까지도 죽이려고 합니다.'
'이제 나 혼자 남았습니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추락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과거의 부흥의 파도가 잦아든 것 같고,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더 이상 부흥하지 않는다. 더 이상 청년들은 교회로 오지 않는다.
청소년과 아이들은 교회에 오지 않는다. 좋은 시절은 다 떠나갔다.
한국 교회는 이제 사멸의 수순을 걸어가고 있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엘리야가 주님 앞에 푸념어린 호소로 '나 혼자 남았습니다' 라는 무력한 말이
바로 일부 사람들이 얘기하는 '한국교회는 좋은 시절이 다 끝났습니다.
부흥은 이제 오지 않을 겁니다' 라고 하는 무기력한 외침과 비슷합니다.
왜 그 말에, 저는 동의하지 않는가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흥을 원하는 건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교회가 살아나는 것을 원하는 건,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청년들이 주 앞에 자기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
그것을 원하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이 복음이 없는 척박한 땅이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부흥이 있기를 소망하셨고, 부흥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 때문에, 여전히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주님 이제 나 혼자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는
이런 무력한 말을 우리는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의 사람들을 남겨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 혼자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모든 제단을 허물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저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의 사람들을 남겨놓았다' 라고 말씀하시죠.
그렇습니다. 한국 교회가 흔들립니다. 위기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무릎을 꿇지 않고, 바울에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남겨 놓으셨을 겁니다.
우리가 그 7천명이 되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진짜 성도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를 사랑하는 성도가 되고,
우리가 세상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의 하나님의 사람, 즉 남은 자가 되면,
우리가 부흥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니까,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우리도 꿀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우리 시대가 아합의 시대만큼 어둡다고 해도,
아합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이라면,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실 것이고,
아합의 시대에 7천명의 바알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성도들을 남겨놓으신 하나님이라면,
이 어두운 시대에도,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에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의 성도들,
7만명의 성도들, 70만명의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남겨놓으셨기 때문에, 이 땅의 교회에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무기력한 말을 하지 마세요.
'교회는 끝났다.. 부흥은 없다.. 젊은이 청년들은 교회에 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무기력한 말을 하시면 안 돼요.
교회를 욕하시면 안 돼요. 우리가 교회인데, 왜 교회를 욕하세요?
하나님께서 소망하시는 것이 부흥이고,
하나님께서 간절히 소망하시는 것이 교회가 살아나는 것이니까,
반드시 우리에게는 그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구원을 이루시고, 부흥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강퍅, 완악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오히려 반전과 역전의 발판이 됩니다
롬11:11~15절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악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완전히 망하게 되는 것인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다.. 라고 말씀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절대로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위대하고 신비한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했어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이방인에게 가게 되는 거예요.
오히려 이스라엘의 범죄가 세상에 풍성한 복이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열방이 더 빨리 예수님의 복음을 접하게 되었어요.
이게 은혜의 아이러니죠.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려요. 하나님을 등졌어요.
그러자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도 없는 이방인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었던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게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강팍함 때문에,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예요.
그 은혜의 신비가 무엇이냐?
인간이 망쳐놓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최고의 드라마는 완성이 된다 라는 거예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최선의 결과는 만들어진다.. 라는 거예요.
인간이 망쳐놓은 것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아름다운 사건들은
여전히 진행된다., 라는 거예요.
이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만나게 되는 신비로운 은혜예요.
▲대한민국을 바라보세요. 625 전쟁이 터졌죠.
우리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참한 수준까지 떨어졌어요.
나라가 다 폐허가 되어버렸어요.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였어요.
원조를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데 그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최고의 드라마가 연출이 돼요.
미국에서 컴패션, 월드비전 같은 선교 단체가 만들어져서
한국 전쟁 고아를 돕기 시작하고,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해요.
너무 가난해서 소망이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님만 부르게 된 거예요.
너무 비참해서 기댈 데가 없어요. 그래서 믿음만 붙들 수 있었어요.
전쟁, 가난, 빈곤이 ... 최악이었어요.
근데 하나님은 그곳에서 '기도하는 한국 교회'를 만드시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한국 교회의 부흥'을 이루셨어요.
일제강점기 와 625는, 우리 민족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비참한 순간들인데
그 어두운 순간, 절망의 순간에,
한국교회는 부흥하는 교회로, 오직 예수를 외치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거죠.
최악의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시대를 열 수 있는 준비를
만들어 놓으신 것, 그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우리가 레바논에 선교사님들을 파송했죠.
레바논에 150만 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들어왔어요.
그들도 똑같아요. (최악의 상황이, 최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요. 똑같아요.)
여러분 무슬림들에게 복음 전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 선교사들이 무슬림들에게 마음껏 복음을 전합니다.
특히 이명희 선교사님은 교회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무슬림 아이들이 예수 믿고, 주님 앞에 삶을 드리고, 새벽기도 하고, 방언하고
헌신하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재환 선교사님 (컴미션 대표)의 아들이, 레바논에
시리아 난민 사역하러 들어가셨는데,
거기서 사역을 잘하고 있는 곳들을 방문하셨어요.
너무 놀라셨어요. '아니 무슬림들에게 이렇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여기서 이렇게 교회를 한다고?'
바로 코앞에 무슬림들의 모스크가 길 건너에 있는데,
이렇게 교회를 하고 있다고? ... 믿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해요? 여러분 믿으세요?
시리아 난민들이 자기 가정들을 다 잃어버렸어요. 자기 고향을 떠나야 했어요.
최악이죠. 절망이죠.
근데 그 최악의 절망적 상황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라는 복음을 만났어요.
하나님의 반전의 드라마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어지는 드라마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을 돌아 봅시다. 내 뜻대로 살아가다가 인생이 망가졌어요?
어둡게 되었어요? 잡초가 무성한 인생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절망의 그림자가 가득하게 드리워지기도 해요.
그때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셔야 돼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봐야 돼요.
그러면 우리가 망쳐놓은 어둠 속으로, 하나님의 빛이 들어오게 될 것이고,
우리의 가장 좌절스러운 상황 속에,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이
반전의 은혜를 만들어 놓기 시작할 거예요.
속임수와 사기로 얼룩졌던 야곱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스라엘로 변화돼요.
예수님을 배신했던 베드로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자
하나님의 양들을 돌보는 전도자가 돼요.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울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자,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돼요.
복음을 전하다가 포기하고 도망갔던 실패자 마가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자,
그가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사도 바울이 '나에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그런 귀한 일꾼이 되는 거죠.
우리가 망쳐놓은 꿈...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면 거룩한 비전이 돼요.
우리가 망쳐놓은 아이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면,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제자, 예수의 제자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망쳐놓은 가정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면, 작은 천국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망쳐놓은 나라...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면, 위대한 대한민국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은, 어둠을 어둠 속에 그대로 두지 않아요.
절망을, 절망 가운데 두지 않아요. 좌절을, 좌절 가운데 두지 않아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는, 위대하고 신비한 업어치기(뒤집기)가 있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어둠은 빛이 되고, 절망은 소망이 되고, 좌절은 꿈을 만나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에서.. 실패는 도약을 만나고,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에서..
우리의 초라한 배경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통로가 되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가 받았던 상처는,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통로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가난은, 하나님의 부여함을 만나는 거룩한 성소가 되는 거예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은.. 최악의 상황을,
최고의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자리로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이 사랑을 맛보아 아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어두움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거기에 반전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롬11:25~27절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악함에 왜 머물러 있게 되느냐?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거예요. 뭐를 기다리시는가요?
이방인의 구원 받은 자가 충만해질 때까지,
그래서 예수님께서 언제 제림하시는가요?
모든 민족이 복음을 들으면, 마지막 때가 오는 거란 말이에요.
이방인의 숫자가 충만해지는 거죠.
이 말씀을 종말론적으로, 그리고 선교학적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거죠.
그리고 이방인의 숫자가 충만해지면, 모든 민족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오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던 바로 그 민족인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은혜를 보게 되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 없어요.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어떤 특별한 은혜의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라고 얘기해요.
그 은혜가 이사야 59장에 이렇게 나와 있죠.
사59: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부르시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가
이스라엘을 향해서 베풀어질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아무리 기도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그 약속, 언약을 지키신다는 거예요.
또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웠던 저 북녘 땅,
예배 드릴 수 없는 닫힌 땅, 우리의 불쌍한 형제 자매들,
그 땅이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땅도 분명히 회복될 것이다...
라고 우리는 소망하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충성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죠.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하나님이라면, 닫혀있는 북녘 땅도 언젠가는 회복하실 것이다...
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스라엘을 향해서 흘리고 있는 바울의 눈물과 기도와, 그가 느끼는 슬픔과 고통은,
허무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보다 더 뜨겁게, 이스라엘의 구원을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 11장에서 이 사실을 꼭 기억하세요.
1)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믿지 않는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을 원하시는 건,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의 교회를 주께서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은, 우리 인생에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은혜가 임하는 최고의 드라마로 바꾸어 놓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곤고합니까? 실망하지 마십시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곤고한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하게 되면,
반전의 하나님의 엎어치기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약속,
이 땅에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 그리고 특별히 북녘 땅을 인한 우리의 형제들을 위해서
온 마음으로 붙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 시대에 그것을 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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