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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시민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다

LNCK 2024. 9. 21. 11:46

설교본문 색인                 <기독교와 정치>         ▣ 성결, 성화

하늘의 시민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다 | 20240915 - YouTube

 

하늘의 시민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다      롬13:1~14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이중 국적자가 됩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우리에게 원래 있지만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우리는 하늘나라에 속한, 천국에 속한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고 살아간다'고 하는 건,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배워가는 삶입니다.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한 정체성이냐?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은, 내가 사망신고 되어지면 끝나버리는 거잖아요. 
반면에 천국의 시민권은 영원히 이어지는 거니까 이거는 비교 자체가 불가한 정체성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가, 이 땅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그 내용이 우리가 오늘 보게 될 롬13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이 <로마서 주석>에서 
지난 2000년 동안 국가라고 하는 곳에 교회가 존재했는데,
그 가운데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이렇게 네 가지로 규정했습니다. 

1) 국가가 교회를 다스리는 관계
초대교회 때 기독교가 국교가 되었을 때 그랬습니다. 
당시 교회는 로마 제국의 로마 황제의 다스림을 받고 있던 그런 상황인 거죠. 

2) 교회가 국가를 다스리는 관계
중세 시대 때 둘의 관계가 이랬습니다. 
교황의 권한이 각 나라의 왕들의 권한보다 훨씬 더 강력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3) 국가가 교회에게 어떤 특별한 권한을 허락하고, 
그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 교회가 국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관계 

근대시대의 기독교 국가들이 그랬습니다. 
1800년대 중반부터 2000대까지 기독교 국가라고 알려졌던 곳에서 
교회와 국가가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4) 교회와 국가가 각각 다른 교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히 감당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는 관계 

지금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내용과 
우리 대한민국 나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국가에서의 교회, 
지금 우리 교회의 상황이 아마 네 번째 상황과 제일 잘 맞을 것 같아요. 

국가의 기능이 있고, 교회의 역할이 있고, 
그것을 서로 존중하면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그런 관계, 

그러면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이 땅을 살아가면서 
그러면 국가 안에서 우리는 어떤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요?   

 

◑1. 세속 국가 안에서 우리는 '천국 시민권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법보다 하나님의 법을 더 우위, 상위에 두고 사는 가운데

   세상의 법질서를 지킵니다   롬13:1~7

천국의 시민들인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어떠한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가야 되느냐?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행해야 되는 것들이 있다는 거예요.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위 1절은, 아마 가장 오해도 많이 불러일으키고, 오용되어 왔던 말씀 중의 하나예요. 
독재자들이나 부패한 권력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애용하는 구절이 되기도 했고, 
부정한 권력에 아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즐겨 쓰기도 하는 그런 구절입니다. 

'누구든지 국가의 권세 잡은 사람들에게 복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은 권세는 없습니다.' 
이런 말씀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요. 

왜냐하면 이런 말씀을 들으면, 우리 마음속에는 어떤 인물이 딱 떠오르냐면 
히틀러, 스탈린, 김일성 ... 이런 인물들이 떠오르기 때문에 

'아니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런 악한 리더들을 세우셔서 
인간의 역사를 그렇게 고통으로 얼룩지게 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드니까,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라는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굉장히 불편하게 하는 거죠. 

'그들의 권력조차 우리는 순종하고, 복종하고, 맹종하고 따라가야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세우셨다'라는 말씀은 
'권위의 최종적인 권위는 하나님께 있다'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뜻이죠.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주관하는 자이시고.. 아멘이죠. 
어떤 강력한 통치자도 백년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거예요. 
선하든 악하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자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초월하시는 분이시고, 시간 위에 계시는 분이시고,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권세를 세우신다'라는 말의 궁극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권위를 인정하라' 라는 뜻이에요
(1절의 말씀의 의미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릴 때는, 
절대적인 복종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라는 거예요. 

실제로 독일에 교회들이 많이 있었는데 
어떤 일부 교회들은 히틀러의 미친 리더십을 추종하는 교회가 있었지만 *루터교회
어떤 독일의 교회들은 히틀러의 악함을 대항하며   *고백교회
그의 암살 운동을 벌일 정도로 그와 맞서서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교회들이 소수 있었고, 

또 북한에서도 625전쟁 이전에 김일성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많은 성도들과 많은 교회들이 있었고,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한국 교회가, 독립운동의 주체로 자리하기도 했었으니까 

이렇게 악한 지도자들이 나왔을 때, 거기에 따르지 않고 저항하고 대항하는 선택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언제나 주어질 수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국가의 요구를 따르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고려를 해볼 때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국가의 요구에는 응하지 않을 수 있는 
선한 양심이 우리 안에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분별력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가 그 많은 순교자들을 냈던 이유는, 
국가가, 혹은 최고의 지도자들이, 하나님 뜻에 반하는 명령과 요구를 했을 때 
목숨을 잃을지라도, 자기의 안녕이 없어질지라도, 
그거에 굴하지 않고, 자기의 신앙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대항하고 저항하고 맞서는 성도들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순교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면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모든 권세에 복종을 해야 된다'라는 말씀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국가를 세우시고 리더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그 국가를 향한 하나님의 질서가 존재한다' 라는 (원론적) 의미겠죠

지금 로마서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쓰여진 편지잖아요. 
그 당시에 로마를 통치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예요? 로마의 황제잖아요. 
비기독교인 이란 말이에요. 

그 당시에는 크리스천 리더십들이 전혀 없는 상태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자들의 권세를 주신 그 리더십에 
복종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이 국가에 필요한 안녕과 질서를 주기 때문이다... 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돼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람의 직책, 타이틀, 펑션, 역할 거기에 복종을 하는 거예요. 
그것을 존중하고 순종하며 따라가는 거예요. 

국가 내에서 위정자들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뭐냐면, 
'악을 징계하는 질서를 유지해 주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다스리는 사람들이나 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라고 얘기하죠. :3

13: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러면 다스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구냐? 
이게 법의 질서를 넘나지면서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징계하기 위해서, 다스리는 자들이 징계권, 칼을 차고 있다.. 라는 거죠.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법과 질서와 법을 유지할 수 있는 권한이 사라져버린 
그런 국가 제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불법을 행해도 아무도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이나 힘이 없는 나라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 무질서와 혼란이 어느 정도일까요? 그런 나라가 요즘도 실제로 있습니다. 

아이티 나라는 갱단이 나라를 접수했습니다. 그리고 갱단이 나라를 다 다스립니다. 
교도소를 습격해서, 죄수를 수천 명을 풀어 놓았는데 
그들을 징계할 사람도, 잡아들일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하고 힘든 나라인데, 갱이 나라를 점령을 해가지고 
나라가 무정부 상태에 빠지고,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국가질서가 무너져 버린 거죠. 

그러므로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씀은 :1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이 그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그 직책의 역할을 존중하며,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는 의무가 
우리 크리스찬 들에게 있다 라는 겁니다. 

의무가 또 있죠. 여기 세금 얘기 나오잖아요.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7
우리에게는 납세가 의무가 있고, 국방, 교육, 근로의 의무가 있는 거예요. 

이게 '권세를 존중하라' 라고 하는 건, 우리가 천국의 시민이 되었다고 해서 
이 땅에 있는 리더십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것이죠. 

▲그러면 국가의 권세를, 그 질서를 존중하고 따라야 되는 동기는 어떤 것이냐? 
사도 바울은 두 가지 동기가 있다고 얘기해요. 

1) 첫째는,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따르는 겁니다.

이거는 선한 동기가 아닙니다. 
왜냐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게 징벌의 대상이 아닌 순간 
우리는 멈추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얘기 들어보신 적 있나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도둑 떼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도둑질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특별히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물건을 슬쩍 훔치는 게 아니라 
수십 명씩 상점으로 몰려 들어가서, 옷이나 운동화나 생필품을 한 움큼씩 들고 나가는데, 
경비원들도 점원들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법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 왜 도둑 떼들이 생겼는가? 

혹자는 이게 캘리포니아 주 '건의안 47호'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이 '건의안 47호'는, 중범죄의 수준을 예전의 400불 절도 행위에서 
950불 절도 행위로 변경하는 법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400불 어치를 훔치면 
내가 중범죄를 지었기 때문에 감옥에 가야 되는 겁니다. 

경범죄는 다른 벌금형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중범죄는 감옥에 가야 되는데 

그런데 CA주에 지금 어떤 문제가 있냐면, 감옥에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겁니다. 
그래서 진짜 중한 범죄를 지은 사람들이 감옥에 들어갈 수가 없는 거예요. 
이 400불어치 도둑질을 한 사람들 때문에!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이 400불짜리 범죄를 경범죄로 취급을 하고, 
'950불 이상 훔친 사람들만 감옥에 보내자' 라고 하는 법안이 '건의안 47호' 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법안을 어떻게 곡해했냐면 
'950불 미만은 마음대로 훔쳐도 된다' 라는 면죄부로 이해를 한 거예요. 

이게 상황이 얼마나 미국에서 심각해졌냐면, 
일부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안전과 신변 보호를 위해서, 가게 문을 닫아 버렸어요. 
점포를 철수해 버렸어요. 왜냐면 한두 명이 몰려오는 게 아니에요. 
아침부터 밤까지 수십 명씩 몰려와서 물건을 훔쳐 가는데, 감당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벌을 받지 않는다' 라고 생각할 때, 사람들이 이렇게 변하는 거예요. 
뉴욕에서 두 시간 동안 정전이 됐던 적이 있었어요. 
맨해튼이 깜깜하고, 어떤 전등불도 들어오지 않는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뉴욕은 수 만 명이 도둑으로 변했어요. 

유리창을 깨고, 상점을 부수고, 백화점을 깨고 들어가서, 물건을 훔쳐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징계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이렇게 변하는 거예요. 

△제가 지난주 토요일, 결혼 예배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신사동 사거리에서 제 앞에서 살짝 접촉사고가 났어요. 
그러니 여러 대의 차가 멈춰 섰을 거 아니에요. 저도 멈춰 섰어요. 

근데 차가 막히니까 제 뒤에 있던 택시가 저를 추월해서 다른 차선으로 가려고 하다가
제 차 꽁무니를 살짝 스쳤어요. 많이 상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스치고 지나갔으니까. 

그래서 제가 차에서 내렸어요. 
그리고 택시 운전사가 미안하다고 하면서
'지금 차가 많이 상하진 않았으니까, 혹시 견적을 받으신 다음에 
돈이 많이 안 들면, 회사에서 보험 처리하지 않고 그냥 보상을 해드릴 수 있으니까 
견적을 받고 회사에 연락을 주십시오' 
그러면서 사과를 받고, 전화번호 주고받고 헤어졌어요. 

근데 갑자기 이런 문자가 왔더라고요. 제 차 블랙박스 영상을 보내달라는 거예요. 
근데 저는 토요일 저녁에도 일정이 있었고, 주일날 하루종일 예배드리고, 
그날 저녁에 주일날 또 바깥에서 강의하는 모임이 있었고 
이어서 월요일날 화요일날 일정이 많이 바빴어요. 

근데 여러분은 아셨어요? 블랙박스가 이게 한 일주일 정도밖에 저장이 안 된대요. 
나는 몰랐어요. 나는 그래도 한 달은 가는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이런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 

블랙박스 영상을 달라고 해서, 보험사에 연락을 해서 찾아보니까 
영상이 올라가면서, 앞에 있는 영상이 지워진 거예요. 

그리고 저는 제가 실수한 게 아니니까, 
택시기사한테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고 하니까, 말이 싹 바뀌었어요. 
'내가 후진을 해서 사고가 났고, 자기가 지금 몸이 아프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을 해야 될 테니까, 대인 처리를 해달라고 
저희 보험사에다 연락을 했다'는 거예요. 

제가 졸지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처음으로 경찰서에 가봤어요. 그리고 교통사고를 신고하고 
'이런 일이 있었다' 라고 조서를 쓰고, 

근데 제가 앉아 있는 동안 거기 있는 조사관들이 하루 종일 하는 전화를 들어보니까 
무슨 내용이냐면 '아휴 영상에 다 나와요. 선생님,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냥 보험사 연락해서 빨리 보상하세요.' 이런 내용이에요. 

그 경찰관들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이 
거짓말하는 사람들, CCTV 찾아서 '당신이 거짓말 했으니까 보험 처리 해주라'고 하는 일이에요. 

여러분 이 택시 운전사도 그렇고, 택시 운전사 보상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전화를 하니까 처음에는 '견적 나온 대로 보상을 해주겠다'고 얘기하다가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 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경찰에 신고하려면 하시고,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거예요.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징계를 받는다면, 택시기사가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겠죠. 
징계가 주어진다면, 택시회사가 그렇게 반응하지 않겠죠. 

그런데 이런 걸로 징계를 받지 않아요. 
택시운전사 계속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징계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왜 국가의 법질서가 필요하고, 그 징계권이 필요한가요? 
왜 그들의 징계권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되는가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정말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 권세자들을 존중하고, 국가가 가지고 있는 법질서를 존중해야 되는 동기가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하면, 
이렇게 벌을 받지 않는 상황이 되면, 자기 마음대로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2) 둘째로, 그 동기가, 성령으로 거듭난, 복음으로 거듭난 선한 양심이 되면 
우리는 누가 지켜보든, 언제나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바른 분별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나라 역사를 보세요. 근대 민주주의 역사를 봐도 그렇고, 
우리는 나쁜 지도자도 있었고, 악한 지도자도 있었고, 독재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면 우리가 앞으로 만날 세상에서도 
또 똑같이 무능한 지도자들도 나올 수 있고, 악한 지도자들도 나올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지도자들도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복음으로 거듭난 선한 양심'이 동기가 되지 않으면 
분별을 못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난, 복음으로 거듭난 선한 양심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분별력을 가질 수 있는가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지도자의 요구가 있을 때 
그것을 믿음의 힘으로 거부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이야기로 넘쳐납니다. 여러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기억하시죠? 
느부갓네살이 만든 금신상 앞에 절하라고 했을 때, 그들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절하지 않으면, 불타는 풀무불(용광로)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거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 한 번 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기에 
일곱 배나 뜨거워진 풀무불에 던져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해내신 것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죠. 
그러나 우리가 먼저 보아야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라'고 하는, 왕의 요구, 국가의 요구에 
그들은 응하지 않았다 라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죠. 왕의 명령을 듣습니다. 
'30일 동안 다리오 왕이 아닌 어느 누구, 다른 신에게도 기도할 수 없다' 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총리입니다. 왕 다음으로 높은 사람입니다. 
왕의 명력을 준수하는 자이고, 집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 명령이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명령이었기 때문에 
그는 목숨을 내놓고, 어떠한 대가가 주어지더라도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먼저 순종하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요구가 정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순종해야 한다.. 라는 믿음의 결단이 
하늘의 시민권을 품고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으로 거듭난 선한 양심, 이걸로 분별하고, 
이것이 우리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가볍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뭘로 분별을 하냐면, '감정으로' 분별을 합니다. 
누군가가 지도자가 되면, 우리는 뭘로 분별하느냐? 
'내 맘에 안 들어, 내 맘에 들어 
내가 좋아해, 내가 싫어해...' 이런 감정을 따라 분별합니다. 

아니면 이데올로기를 따라 분별합니다. 
근데 이데올로기도 변하고, 감정도 변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복음으로 거듭난 선한 양심을 따라가면, 
우리는 국가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Not MY President!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 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으로 거듭난 선한 양심으로 분별할 수 없다면,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는 진영의 논리에 따라, 지역의 논리 따라 판단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대한민국을 사랑하죠. 
그러면 진보가 대한민국의 소망입니까? 보수가 대한민국의 소망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근데 복음으로 거듭난 선한 양심으로 분별하지 않으면 
벌써 정치 얘기 앞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날아가 버립니다. 
'나는 진보니까, 나는 보수니까' 둘 다 망국의 길입니다. 

대한민국을 살리는 건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1945년 이후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세요. 
그 가난을 뚫고 나오게 하신 분이 누구예요? 보수예요? 진보예요? 
아니잖아요. 하나님이시잖아요. 

우리에게 그렇게 힘든 민주화 과정이 있었지만 
그때 우리나라를 지키고 보호하셨던 게 누구예요? 진보예요? 보수예요? 
아니잖아요.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국가의 국민으로 존재하면서 
복음을 따라가는 사람으로서 
복음으로 거듭난 선한 양심을 따라 분별하여 
만약 그것이 우리의 동기가 되지 않으면, 
우린 세상의 물결이 휩쓸려 버리는 거예요.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위대한 대한민국을 꿈꾸는 지도자들, 
위대한 대한민국을 꿈꾸는 위정자들, 
위대한 대한민국만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 정치가들, 
이런 사람들이 나와야 되는 거죠. 

진영을 얘기하고, 지역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다 과거의 시대의 사람들이니까 
뒤에 멈춰져 있어야 되는 것이고 
우리에게 이런 분별력이 있을 때,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떤 선택이냐? 여러분 마음에 안 드는 지도자들이 나오면 어떻게 해요? 
그냥 계속 비판하죠. 조롱하고 떠들죠. 
근데 그것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근데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요? 
딤전2:1~4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늘의 시민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 
그들은 권세를 잡은 자들,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자들, 
나라를 위해서, 정부를 위해서, 쓰임받는 일꾼이 된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요? 

마음에 들던/ 마음에 들지 않던, 
그들이 신앙이 있든/ 신앙이 없든, 
그들을 내가 좋아하든/ 내가 좋아하지 않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란 말이에요. 

어떻게 우리의 입맛에, 취향에 꼭 맞겠어요? 누가 그런 지도자가 있겠어요? 
그러나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십을 위해서, 기도와 간구와 도구와 감사를 하며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신대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게 하실 수 있다 라는 거예요. 
그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말씀이 그렇게 요구하니까,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고 
그들이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니까,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중보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최고의 국민이 돼야 됩니다. 
최고의 중보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고,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중보자들이 될 때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2. 하늘의 시민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두 번째는

진짜 사랑을 보여주는 겁니다. 

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하늘의 시민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두 번째 라이프스타일은 진짜 사랑을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의 러브레터가 되는 겁니다. 

바울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라고 말씀을 해요. 
'사랑의 빚' 참 표현이 아름답죠? 
'사랑으로 갚아야 되는 빚이 생겼다' 라는 뜻이죠. 

사랑받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갚아야 하는 빚이 생겼다는 겁니다. 
먼저 사랑을 받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베풀어 주어야되는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 이런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물어봅시다. 세상에서는 어디 가면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까? 
어디에 가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는 가장 숭고한 사랑이 뭡니까? 첫사랑입니까? 허니문 사랑입니까? No

우리가, 가장 숭고한 사랑은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부모님의 사랑이죠. 
이 땅에서는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만큼 숭고한 사랑이 없습니다. 

저희 집 막둥이가 모기 알러지가 있어요. 그래서 모기에 물리면 막 이렇게 퉁퉁 부어요. 
언제 하루는 에어컨을 켜놓고, 침대에서 둘이 같이 밤에 잠을 자고 있었는데 
모기 소리가 웽웽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 혼자 있으면 그냥 잘 텐데, 모기 소리가 들리니까 
아이가 모기 물리면 또 퉁퉁 부을까봐 막 모기를 찾기 시작해서요. 
쉽게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불을 끄면 또 웽웽 소리가 나고... 

그래서 제가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죠. 
아이를 얇은 홑이불 덮어놓고 저는 웃통을 벗었어요. '나를 뜯어먹어라' 
왜냐하면 어른하고 아이하고 있으면, 꼭 모기가 아이를 물잖아요. 
그래서 저는 피부 노출을 내가 더 많이 하고, 나를 뜯어먹어라 이렇게 얘기했어요. 

아이가 사춘기가 시작되는데 언니들하고 같이 모여있어서 얘기할 때 제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딸야, 네가 앞으로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리고 너는 그 남자아이들이 아빠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할 거고, 
그 아이들이 너를 아빠보다 너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얘기를 하나 해줄게. 

너를 위해서 모기가 앵앵거릴 때, 너를 위해서 웃통을 벗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 아빠밖에 없는 거야. 
너를 좋다고 다.가오는 모든 그 녀석들에게는 그런 사랑이 없어! 

여러분 과연 그런 사랑을 하는 남자아이가, 제 딸 앞에 올까요? 천만의 말씀! 
그만큼 부모의 사랑은 숭고한 거예요. 

그런데 그 숭고한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파괴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우리 사회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연합뉴스 9월 12일자 기사입니다. 타이틀은 "교사 주제에 어디서? 
부모와 함께 와서 무릎 꿇고 빌어라" 입니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하는 부모님의 민원 내용과 협박 내용이 이렇다' 라고 실렸어요. 
들어보세요. 

'칼 맞고 싶냐? 골프채로 머리를 때릴까? 
교사 주제에 어디서 말대답이야? 
아이한테 지장이 있으니, 선생님의 임신과 결혼은 미뤄주세요. 
선생님, 수능 몇 등급이셨어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늦게 오면, 학원 지각해요. 
청소시키지 마세요. 
선생님, 모친상 장례가 3일인데, 왜 5일이나 자리를 비워요? 
우리 아이 몇 시에 기침을 몇 번 했는지, 체온은 얼마인지, 체크해서 보내주세요.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니, 급식실에 이야기해서, 죽 좀 끓여 먹여주세요.' 

어떤 학부모는 '교사를 잘못 키운 부모도 책임이 있으니, 
교사와 부모가 함께 자기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빌면 
아동학대죄로 신고하지 않겠다' 라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자식 사랑, 부모의 숭고한 사랑이 보이나요? 
부모의 사랑이 가장 숭고하다면서요? 

그런데 그 숭고한 사랑마저, 이렇게 파괴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겁니다. 
25살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서이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그녀가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됐던 이유가 
도를 넘은 학부모의 민원과 괴롭힘이었다 라는 사실 앞에, 우리는 너무 충격을 받았었죠. 
자녀를 사랑하는 숭고한 부모의 사랑마저 파괴적으로 변질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결과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므로 하늘의 시민이 된 우리가 
이 땅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사랑을 보여줘야 합니다.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사랑을 찾게 도와줘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부족합니다. 
여러분도 저도 너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한번 물어봅시다. 
이 땅에서 교회 말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 말고, 
진짜로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만날 수 없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또 있습니까? (없죠)

교회가 '서로 사랑하는 기능'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기능'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 부끄러운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한다' 라고 하는 게 너무 중요한데, 
우리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을 해요.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해야 한다' 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보낼 때 드시는 자리에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 알리라' 말씀을 하셨어요. 

 

근데 예수님께는 사랑하는 게 너무 중요한데, 
정작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일이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숭고한 부모의 사랑마저, 이렇게 망가지는 시대가 되었는데도 
교정해 줄 수 있는 곳이 아무 곳도 없는 거예요. 

참 사랑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거든요. 여러분 세상에는 사랑이 없어요. 
세상은 자기 편만 사랑해요. 그런데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어요. 

세상에서는 미워하고 분열해요. 예수님은 용서하고 화목하게 하세요. 
세상에서는 자기에게 유익이 있을 때만 사랑해요. 예수님께서는 희생하며 사랑하셔요. 
세상에서는 자격 있는 자들을 사랑해요. 
예수님의 사랑은 자격 없는 자들을 위해서 주어지는 사랑이에요. 

세상의 사랑은 금방 변해요. 예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 
세상의 사랑은 참견하고 집착하는 사랑이에요. 예수님의 사랑은 치유하는 사랑이에요. 
세상의 사랑은 공평하지 않아요. 정의롭지 않아요. 
예수님의 사랑만큼은 정의롭고 공평한 거예요.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은 날마다 거칠어지고, 어두워지고, 파편적으로 되고 
인간됨이 더 각박해질 때 
이 세상에서 사랑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예수의 사랑밖에 없는 거예요. 

근데 예수님이 눈에 안 보인단 말이에요. 
예수님이 눈에 보이면 문제가 다 해결되겠죠. 

근데 예수님의 사랑이..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해 러브레터를 쓰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우리 성도들이에요. 

성도인 우리가 세상으로 들어가서 
예수의 사랑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고 
예수의 사랑을 만질 수 있게 만들어주고 
예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통로가 돼야 
우리가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는 거예요. 

이집트에서 40년 동안 선교사를 훈련하고 파송하는 일을 하고 있는 지도자를 만났어요. 
제가 너무 궁금했어요. 
어떻게 하면 모슬렘들을 주님 앞에 인도할 수 있을지 
어떻게 그들은 모슬렘 사회에서 그렇게 살아있는 생명력을 가진 크리스찬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제가 물어봤어요. '모슬렘을 어떻게 전도하면 됩니까?' 
그때 나이가 많으신 목사님께서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목사님, 모슬렘에게 복음을 전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들을 그냥 전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들의 친구가 돼야 됩니다. 
진짜 우정을 줘야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이 감동받을 때까지 섬기는 친구가 되어야 됩니다. 

그들이 감동하면 그들의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예수를 전하면, 그때 그들이 예수를 받아들입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죠. 그게 복음을 전하는 진리 중에 진리잖아요. 

여러분들이 내일 출근해서 만나는 사람들, 
여러분들 주변에 있는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여러분'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러브레터를 통해서 
예수가 사랑이시다는 걸 보고, 
예수가 사랑이시다는 걸 만지고, 
예수가 사랑이시다는 것을 느끼고, 
예수가 사랑이시다는 것을 확인할 때,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는 줄로 믿습니다. 

추석 명절이 됐습니다. 명절이 좋은 분들도 있지만, 
명절이 스트레스가 되는 분들이 있어요.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준비기도 하고 들어가야 되는 분들도 있어요. 

'우리 친척, 가족들이 내게 또 무슨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하려나?' 
여러분, 그들에게 하나님의 러브레터가 되세요. 

인상 쓰지 마세요. '하나님을 모르니 저러는 거지... 
교회를 다니는데도,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니 저러는 거지...'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가 천국 시민인 거예요. 

우리를 통해서 전해지는 사랑이, 즉 하나님의 거룩한 침범이 
그 사람들한테 이루어질 때 
예수의 사랑을 만났는데, 예수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은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예수를 거부하는 이유는, 아직 예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그 예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천국의 시민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3.  하늘 시민권자의 라이프스타일은

세상의 물결을 거스르는 거룩과 순결로 삽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성결하게 사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13:11~14 

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하늘의 시민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빛의 갑옷을 입는 거죠. :12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14
그게 무슨 뜻일까요? 

'세상의 정욕과 음란과 방탕함을 따라 살지 않겠다' 라는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 라는 것은, 근본적인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거든요. 

사도 바울은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라는 얘기할 때, 잠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잠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이전보다 더 가까이 왔다'
이거는 종발론적인 표현이에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다가오고 있다' 라는 종말론적인 표현이에요. 
우리가 깨어있어야 된다.. 는 것을 강조하는 거죠.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방탕하고, 문란하고, 음란하고, 호색하고, 
퇴폐적으로 변하게 되어 있어요. 어둠이 그런 곳이기 때문이에요. 

사도 바울은 그런 상황을 향해서 '깨어있어야 된다. 잠에서 깨어야 된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저는 이게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우리들은,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서, 시대적인 변화에 대해서 무관심하면 안 된다,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 라는 말씀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직장 생활하다 보면, 접대하다 보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야.. 
일을 더 잘하려다 보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야...' 

이렇게 타협하고, 적당히 무관심하게 못 본 척하고, 이런 거에 너무 익숙해 있으니까 
오늘은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이렇게 악하고, 추악하게 변하고 있는 세상의 상황에 대해서 
우리는 절대로 무관심하면 안 되고, 깨어 있어야 된다.. 라는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제가 서울의 방탕한 민낯을 그대로 성도들에게 영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팀들을 데리고 제가 오밤중에 강남역 뒷거리를 찾아가서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업소들 앞에 나가서 영상을 찍고, 거기에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을 인터뷰를 하고 하는데,
너무 취해서 무슨 얘기 하는지도 모르고, 인터뷰하자고 하면 취객들이 다 받아주는 거예요. 

어떤 클럽 앞에 제가 도착을 했어요. 사람들이 쭉 줄을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서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를 제가 시작을 했어요. 

'어디서 나왔냐?' 그러길래
'CGN TV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카메라 들이대면 또 열심히 얘기를 해요. 인터뷰에 잘 응하더라고요.
*CGN TV가 교회 방송사인줄 모르는듯

근데 클럽 앞에서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하고 제가 인터뷰를 하는데 
뒤에서 누가 "목사님!" 하고 저를 부르는 거예요. 

제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까, 내가 잘 아는 형제 한 명이 서 있는 거예요. 
얼굴을 보니까, 이게 1, 2차는 어디서 하고 온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술이 많이 취해서, 본인이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저한테 이런 말을 건네더라고요. '목사님, 여기 놀러 오셨어요?'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 '목사님, 여기서 줄 서서 들어가시려면 너무 힘드실 거예요. 
제가 여기 단골이니까, 저랑 들어가시면 금방 들어가실 수 있어요. 같이 들어가실래요?'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제가 '아뇨, 형제님 저는 놀러 온 게 아니고 취재하러 왔습니다' 라고 얘기를 하고는 
취재를 마쳤어요. 

그리고 같이 갔던 젊은이들이 '서울의 민낯이 정말 이런 겁니까?' 
교회에서 자라난 친구들은 '정말 이 시대가 이런 시대입니까?'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저한테 '저랑 같이 들어가실래요?' 했던 형제님은 
교회 열심히 나오는 분이셨어요. 그래서 제 얼굴을 아는 거죠. 
시간이 얼마 지난 다음에, 전자발찌를 차고 살아가야 되는 상황이 됐어요. 

빛에 있지 않고 어둠 속에 있으면, 어둠의 자식이 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으면, 세상의 옷을 벗어버릴 수 없고 
음란과 방탕함과 정욕적인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저를 포함해서 '거룩'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 시대에 '순결'이라는 단어만큼 '고색창연'한 단어가 어디에 있습니까? 
*오래 되어 옛날의 풍치가 저절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

거룩과 순결, 우리 시대와 어울리는 단어인가요? 전혀 어울리지 않죠. 
우리는 그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 더 음란하고 더 방탕하고 더 정욕적인 문화를 
우리 다음 세대에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녀에게 '앞으로 좋아질 거다. 지금은 이렇게 어둡지만 
우리 사회는 앞으로 더 깨끗해질 거다. 더 거룩해질 거다. 더 순결해질 거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지만, 너희들의 시대는 달라질 거야'라고 
약속해 줄 수 있습니까? 

산불처럼 번져가는 포르노 산업,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책을 보니까 '포르노를 보는 나이가 4살로 내려왔다' 하더라고요.

유흥업소, 접대 문화, 성매매문화, SNS를 켜면 몸을 다 드러내고 
성을 파는 젊은이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양심을 잃은 어른들의 조건만남, 원조교제, 
2016년 여성가족부에서 성매매 실태 조사를 했는데 
가출 등 위기를 경험한 청소년들 응답자 중에서 61.8%가 미성년자인데 
어른들과 조건 만남을 한 경험이 있다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불륜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그라질 줄 모르는 러브호텔의 성업, 

이게 OECD 국가 중 낙태율 1위라는 오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2017년 1월 대한남부인과의사회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낙태는 하루에 3천 건, 연 110만 건의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출산 인구보다, 낙태하는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은 겁니다. 

대학생 청년들은 높아진 월세, 물가 등을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남자친구, 여자친구와 동거하는 게 일상적인 문화로 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우리는 이 시대가 더 좋아질 거라고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이 땅이 어떻게 정화될 수 있나요? 

누가 거룩과 순결을 가르쳐 주나요? 
어떤 학교가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얘기하고, 
어떤 학원에서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된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나요? 

오직 예수님만이 세상의 물결을 거슬릴 수 있는, 거룩과 순결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하늘의 시민이 된 우리들이 어둠으로 가득하고 음란과 정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이 무엇이냐? 
우리 자신을 사단의 유혹에 노출시키지 않겠다 라고 하는 
마음의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인터넷 포르노를 보지 않을 것이다. 야한 영상, 야한 글, 야한 만화 보지 않을 것이다. 
음담 패설을 입에 답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어떤 경우도 유흥업소, 퇴폐업소에 출입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마음의 결단이 크리스찬들에게는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업하는 형제님 거래처 사람에게 
'이런 이런 장소에 가서 접대를 받고 싶다' 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퇴폐업소였습니다. 그래서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손해를 봤습니다. 
거의 망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학비를 보내줄 수가 없어서 
아이가 다시 돌아와야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라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우린 이런 간증을 좋아하죠. '그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 만배로 갚아주셨다.' 
그럴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을 사단의 유혹에 노출시키지 않겠다.. 라고 하는 
믿음의 결단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거룩과 순결을 가르치고 
자녀들의 거룩과 순결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다 라고 하는 헌신이 
부모님들에게 필요합니다. 

△제가 우리 모든 부모님들에게 하나 권면의 말씀을 드릴게요. 
아이들이 청소년 될 때, 이런 (언약의) 금반지 하나 준비해 주세요. 16K, 10K가 좋겠죠.
 
자녀가 청소년기에 들어갈 때, 그 반지를
결혼반지를 끼는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주세요. 그리고 얘기해 주세요. 

"이 반지는 네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반지야. 
네가 이 땅에서 거룩하고 순결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지야. 

너는 많은 유혹을 경험하게 될 거야. 
성적으로 타락하고, 성적으로 방종하라는 유혹을 경험하게 될 거야. 
물리치기가 힘들겠지.. 그러나 그때 이 반지를 봐. 

너를 거룩하게 지키면, 언젠가는 네가 너의 배우자를 만났을 때 
'나는 너를 위해서 나를 순결하게 간직했어!' 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거야. 

하나님 앞에서 너는 죄를 맞서 승리했다고 간증할 수 있게 될 거야. 
그리고 결혼하는 날, 이거를 빼고, 결혼 반지를 끼게 될 거야!"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순결과 거룩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은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 하늘의 시민이,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길은 
사단의 권세를 대적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음란의 영을 대적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퇴폐 사업이 무너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위정자들과 함께, 그런 퇴폐 업소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정책을 만들고 
법을 개정하는 데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깊어지지 않으면, 세상의 유혹은 달콤합니다. 
믿음은 사랑하는 힘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힘으로 세상을 사랑하고픈 유혹을 이기고 
정욕과 음란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힘으로 어둠의 일들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죠? 
여러분 집에 들어가면 집을 환하게 밝히는 전구? 조그맣습니다.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조그만 전구가, 빛이 발해서 집을 밝혀줍니다. 

바닷물의 염도는 99% 아닙니다. 평균 3.5%라고 합니다. 
여러분 한국 기독교 인구가 15%입니다.  
우리 15%가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 되면, 세상은 빛을 만나게 될 것이고 
세상의 부패함을 막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역할입니다. 
그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주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