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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에서 예수님의 기도 눅22:39~46 2024.09.29.
※사복음서의 마지막 '십자가 사건' 본문들은, 설교가 가장 안 되어지는 부분이죠.
막상 설교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내용들입니다. 그렇지만 파면 생수가 나옵니다.
또 편식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
◑서론
본문의 정황 Context 주1)
최후의 만찬이 끝이 나고, 예수님께서 감람산으로 가시게 됩니다.
본문 말씀, 겟세마네 기도가 마치고 나면
다음 주에 우리가 살피는데,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붙잡히시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잘 아시는 것처럼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기도하신 내용들인데
그런데 누가는 '겟세마네' 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감람산'에 가셨다 라고 기록합니다.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 내용이, 마태복음, 마가복음과 비교해 보면,
분량이 그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누가는 좀 간략하게,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유월절 식사를 마치시고,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습니다.
제자들도 따라갔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습관을 따라'
요즘 나오는 표준새번역, 새번역을 보면 '늘 하시던 대로' '여느 때처럼'으로 번역합니다.
늘 하시던 대로 예수님은 감람산에 가셨고, 제자들도 동행했습니다.
앞서 21:37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셔서, 지도자들과 논쟁하고 마칠 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낮시간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그렇지만 밤이 되면, 감람원(감람산)에서 쉬셨다...
이 말씀과 연관해서 누가는 '습관대로, 늘 하시던 대로'
예수님은 감람산에 가셨다고 기록했죠.
그런데 막14:32절에서, 이 장면을 기록할 때,
감람산 가운데서 '겟세마네 라는 곳에 이르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18:1절을 보면, 겟세마네 기도가 다 마친 후에
유다가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장면인데, 그런데 그 장소를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가셨고
그곳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데...'
예루살렘은 아주 산지에 있습니다. *해발754M (감람산은 830M)
예루살렘 성 동쪽에 기드론 시내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 기드론 시내 건너편이 감람산입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예루살렘에서 기드론 시내까지 표고차가 약 100M 라고 합니다.
그러니 해발 100M를 내려가서, 감람산까지 해발 100~150미터를 또 올라기야 되는 거죠.
시내에서 남산 오르기 보다는 조금 낮은 곳이죠)
요18: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그러니까 좀 있으면 유다가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장면을 기록할 텐데,
바로 그 곳(겟세마네)을, 유다도 아는 장소였다는 거예요.
유다도 아는 장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기도를 하시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느 때처럼 감람산에 가셔서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데...
◑22: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여러분, <누가복음>은 제가 볼 때는 상당히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의 구조가 잘 짜여져 있다는 뜻입니다.
40절에 예수님께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해라'
이 단락이 끝나는 46절에, 또 어떤 표현이 있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해라'
그러니까 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의 시작과 끝이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해라"
이렇게 제자들에게 교훈하셨습니다.
40절은 '유혹'이고, 46절은 '시험'인데
한글 번역은 다르게 했지만 헬라어는 똑같은 단어입니다. *페이라스모스
이 단어는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습니다. test, trial, temptaion 등
그래서 외적인 고난 trial 과, 내적인 유혹 temptaion 을 다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유혹(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40
시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게 뭐죠? 무슨 의미죠?
이 말은, 외적인 고난이 옵니다. 또 내적인 치열한 유혹이 마음속에 일어나죠.
그런데 그 가운데 믿음이 떨어지게 되면,
바로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우리들의 삶의 외적인 고난과 내적인 유혹이 올 때
바로 믿음이 떨어져서 굴복해 버리는 것이 ... '시험에 빠지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겟세마네 기도의 시작과 끝에서 두 번이나 명령하신 게,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 :40, 46
그런데 여러분 이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또 언제 가르치셨죠?
주기도문 끝부분에 이런 표현이 나오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눅11:4
그러니까 이렇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던 주님께서,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다시 똑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22: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의 거리로 가셔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시게 됩니다.
마태,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는 12제자들과 다 같이 가시는데
기도할 때는 3명만 데리고 가십니다.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
그런데 누가는 그렇게 구분하지 않고,
그저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서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기록합니다.
'돌 던질 만큼'
당시에는 그런 줄자, 또한 측정단위 이런 게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략 이렇게 기록한 거죠.
'돌 던질 만큼'의 거리는 한 20~30M 정도 될 거예요.
이 표현은 강조점은 '멀리 떨어지지 않는 거리였다'는 거예요.
여러분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 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예를 들면,
-세례 받으실 때
-열두 사도들을 임명할 때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누가복음에서 기도 내용이 기록된 것,
보통 '예수님이 기도하셨다' 라는 기록은 있는데,
기도 내용은 사실 여기 본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기도를 하셨나?'
그러면 제자들이 어떻게 그 기도 내용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돌 던질 만큼'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셨기 때문에,
그 기도의 내용과 모습을, 그들이 곁에서 듣고 볼 수가 있었던 거죠.
자 예수님께서는 돌 던질 만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셔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십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일반적인 자세는 '일어서서 기도'를 합니다. 요즘까지도 그렇게 하죠.
그런데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는 것은,
이거는 긴장된 순간, 간절함이 이 표현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참고로 단6:10절을 보면,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가기 전에
왕의 조서를 알고도 총리였던 다니엘이,
'예전에 했던 것처럼 예루살렘을 향해 창믄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단6:10
그러니까 정말 긴장된 순간에, 아주 정말 단호하고 긴장된 순간에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그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자세가 '무릎을 꿇고' 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시고 계십니다.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2절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근데 여기서 두 가지를 눈 여겨 보셔야 됩니다.
1) 첫 번째, 예수님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어떤 호칭을 사용하셨나?
하나님을 향해 첫 마디가 '아버지여!'
이것은 예수님 기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유대종교 지도자들과, 예수님의 기도에 가장 큰 차이는 뭔가요?
호칭입니다.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실 때마다,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됩니다.
막14:36절에는 이걸 조금 더 강조해서 '아빠, 아버지여' 라고 기록되어 있죠.
아람어 '아바 아버지'는 어린아이들이 아버지를 친밀하게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아바'가 우리말 아빠와 발음이 거의 비슷하죠)
2) 기도 내용을 보면, 42절에 나오는데, 기도 내용은 아주 간결합니다.
'아버지의 뜻이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십시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 기도는, 두 가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원함을 하나님 앞에 그냥 솔직하게 다 표현합니다.
'아버지의 뜻이면 이 잔, 십자가를 지게 되는,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해야 되는 '이 잔을 좀 옮겨 주십시오!'
이렇게 요청을 하시죠. 그러니까 자신의 원함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두 번째는,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렇지만 나의 원함을 하나님의 원함에 복종시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라는 뜻이죠.
'정말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주님께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가 '영성신학'을 공부를 했는데, 기도와 관련해서
'기도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42절의 이 기도입니다.
여러분, 최고의 기도는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솔직한 원함을 다 하나님 앞에 그대로 표현하지만,
-아버지,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최고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언제나 이 두 부분이 필요합니다.
-나의 원함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렇지만 나의 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22: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이렇게 기도하셨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요?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서 힘을 더해주시게 됩니다. :43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이 앞으로 맞이하게 될 모든 위험들을
'다 제거해 버리셨다' 라고 기록하지 않고,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해 주셨다' 라고 기록합니다.
아마 이 사건과 좀 비슷한 것이, 단10장에 나오는데, 단10장은 유명한 장이죠.
다니엘이 3주 동안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듣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말씀을 주십니다.
미래에 대한 말씀을 주실 때,
그때 다니엘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단10:17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주님과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니리까 하니'
다니엘이 자기 입으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저는 완전히 탈진했습니다. 내 몸에 힘이 다 빠졌고, 호흡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과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18절을 보시죠.
단10:18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바로 천사) 나를 만지고 나를 강건하게 하여'
10:19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지금 다니엘은 기도하다가 탈진했는데,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다니엘을 강건하게 하셨습니다.
이 단10장과 마찬가지로, 지금 예수님께
'천사를 보내주셨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하고 계신다는 걸 보여주신 거죠.
아버지가 '그분의 기도를 듣고 듣고 계신다'는 것을 이렇게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천사가 도왔을 때, 44절을 한번 보시죠.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저는 이 구절만 보면 항상 기억나는 게, 제가 내수동 교회에 있을 때,
지금은 원로 목사님이 되신 박희천 목사님이 설교 하실 때,
"부사가 4개가 붙은 기도" 제목의 설교가 있었어요. *부사 : adverb
박희천 목사님이 설교하신 내용인데,
'기도했다'라는 말 앞에 부사가 4개가 나오는 구절이 있더라는 거예요.
'열심히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러면 부사가 두 개잖아요.
박목사님이 '기도했다'와 관련된 구절을 성경에서 다 찾아보셨대요.
그런데 대부분, '기도했다' 앞에 부사가 1개, 많으면 2개가 붙더라는 거죠.
그런데 본문 44절은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이렇게 부사가 무려 네 개나 붙은 거예요. *한글로 볼 때 부사가 4개
'힘쓰고 애써' : in agony 부사구 *엔 아고니아
'더욱 간절히' : more earnestly 헬라어로는 한 단어, 부사, *엑테네스테론
이렇게 원어성경에는 부사가 2번 나옵니다.
어쨌든 그만큼 성경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애써서 간절하게 기도하셨다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깊은 고민과 번뇌 속에서, 그분은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분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44
제가 이번에 여러 주석들을 읽다 보니까 한 신학자가 그렇게 지적을 했습니다.
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관련해서 (나중에 여러분이 한번 찾아보시죠)
아주 간결하게 처리가 됐다는 겁니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냥 이렇게 간결하게 끝이 납니다. 거기에 생각보다 '피'에 대한 언급이 없어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 뭐 이런 기록이 사복음서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피'에 대한 언급이 어디에 나타나느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을 묘사할 때 '핏방울'이 등장을 합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때 바로 핏방울이 뚝뚝 흘렀다' 이렇게 기록하지 않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마치 그분의 땀이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떨어졌다' :44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신학자는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그분의 몸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그분의 영혼은 겟세마네에서 이미 죽음을 경험하셨다" 좀 멋있는 말이죠?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정말 겟세마네에서, 바로 그분의 영혼이,
마치 '죽었다' 라고 표현할 만큼,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 수고와 고통을 참으신 것이었습니다.
◑22: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절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시고 일어나서 제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그때 왜 제자들이 잤다고 했습니까?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셨다'
이 단락은 이렇게 마무리를 됩니다.
저자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상대적으로
졸고 있는 제자들에 대해서 좀 우호적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슬픔 중에 그들이 잠이 들었다'
예수님의 그 처절한 기도 소리를 들을 때,
제자들의 마음이 정말 슬픔에 사로잡혔고... 그들은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와 마가는 어떻게 표현하느냐?
막14:37~38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태, 마가는 3명의 제자들을 기도 장소에 데리고 갔다고 했고,
2번이나 예수님께서 잠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신 걸로 기록합니다. 마26:44
누가는 한 번만 기록을 하지만요.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 이 대목에서 나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그들의 육신이 너무 약했다는 겁니다.
◑정리하면
▲1.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진다. 시험에 진다
오늘 설교의 결론인데, 그럼 한 가지 질문이 생기죠.
그러면 이렇게 정말 폭풍 같은 위기가 지금 다가오고 있는데
기도하지 않고 졸았던 제자들과,
이렇게 처절하게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차이점이 뭔가요?
여러분 기도하지 않았던 제자들은, 결국 (다음 주에 살피겠지만) 어떻게 됐습니까?
다 흩어지고, 다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그들은 버리고 떠나가게 됩니다.
결국 어떻게 됐죠? 시험에 빠지게 되었죠.
여러분 그들은 다 시험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패배하게 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가 본문에서 두 번 반복해서 강조되었죠. :40, 46)
이게 바로 기도하지 않았던 제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2. 기도하면, 십자가를 지는 담대함이 생긴다
그렇지만 기도하셨던 예수님은, 그러면 어떻게 됐습니까?
소위 태풍이 잠잠해졌나요?
정말 '십자가'로 대표되는 삶의 태풍이 잠잠해진 게 아니고,
예수님이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했을 때
그분은 태풍이 잠잠해진 게 아니고,
믿음을 가지고 태풍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셨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습니다.
여러분 태풍을 회피하지도 않고, 부인하지도 않고, 그분은 태풍 속으로 들어가셨죠.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습니다.
▲3. 기도해서 시험을 이기고 십자가를 지면, 나와 내 주변이 살아난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그분이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기 때문에, 바로 우리들이 다 살아나게 됐습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주변이 다 살아나게 됐습니다.
마지막에 어떤 일이 일어났죠? 하나님이 그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를 지극히 높여주셨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는데, 하나님은 그를 살리시고, 지극히 높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바로 이런 시험, 태풍이 몰려올 때
우리가 예수님처럼 깨어서 정말 힘쓰고 애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할 때,
'아버지,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할 때,
그 결과,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담당하게 될 것이고,
그 십자가의 희생 때문에, 우리 주변이 다 살아나게 되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지극히 높여주실줄 믿습니다.
◑적용
▲1. 시험에 지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 각자가 살아가면서 '십자가'를 만나게 될 때,
'시험에 들지 않도록,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성도들의 삶에 고난, 유혹은 언제나 찾아오지만
'하나님, 그 시험에 내가 패배하지 않도록,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 저를 붙잡아 주십시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드려야 될 기도입니다.
여러분 참 이렇게 가을이 왔고, 기도하기에 좋은 계절이 왔는데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셔야 돼요.
저는 살아가면 갈수록 느끼는 게 있습니다.
외적 어려움의 시험.. 이런 것에 넘어지는 성도들은 제가 볼 때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돈 좀 생기고, 삶이 형통해지고 평안해지면,
그때 유혹의 시험에 빠지게 되면... 정말 헤어나오기 거의 어렵습니다.
여러분 고난의 시험보다 더 무서운 게 유혹의 시험입니다.
유혹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여러분 자신과, 가족과, 성도들과, 지도자들을 위해
꼭 기도해 주셔야 돼요.
▲2. 기도해서 시험을 회피하지 마시고, 정면 돌파하십시오!
기도할 때, '아버지,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게 참 고통스러운 기도, 두려운 기도이지만
'아버지,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면서
한 번 더 태풍 속으로, 삶의 폭풍 속으로 자원해서 들어가기를 결심하고
그곳에서 주님의 손을 붙잡고 견디고 인내하면서
여러분의 헌신과 섬김 때문에 여러분의 주변이 살아나고
마침내 하나님이 여러분을 살리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깊은 고뇌와 번민 속에 빠져있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마음 속에 깊은 번뇌와 고민 속에 빠져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살다보면 한 번씩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나?'
라는 원망, 불평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지만 명확한 것은 무엇이죠?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때 우리가 그 십자가를 감당해서, 통과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때 태풍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태풍이 치워지는 응답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태풍 속으로 들어가는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태풍 속에서 그것을 견디고 인내하게 됩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내 주변이 살아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질 때, 내 주변이 살아나게 됩니다.
마지막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가는 그 사람을 살리시고
마침내는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이 길을, 우리도 걸어가야 된다는 거죠.
▲시험을 돌파한 제 경험 나눔
저는 이 말씀을 제가 이렇게 한 주 동안 묵상을 하면서
저도 이제껏 지나온 시간들을 한 번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과연 살아오면서, 십자가를 지고 폭풍 속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었는가?'
제가 신대원을 졸업할 즈음에, 교회 전도사를 하다가, 난지도로 들어갔습니다.
그 때 그 결정이, 저한테는 참 이렇게 태풍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난지도에 가면 쥐가 사방에 돌아다니고, 쓰레기 썩는 냄새, 태우는 냄새도 났고
무엇보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소위 '막장 인생'처럼 험한 분들이셨어요.
그런데 그때 결혼해서 애들까지 데리고 그곳으로 들어갈 때,
정말 그때 태풍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동안 그 시간을 지켜주셨고요.
이후 저의 목회 여정에 꼭 필요한 경험들을, 그곳에서 체험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또 한 번은, 제가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올 때
(난지도를 사임하고) 제가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서 섬기기로 결심을 했는데,
그때 제 기분은 태풍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왜냐면 제가 그때 딱 두 가지를 기도했습니다.
그때 저희 가정에 부채가 많았기 때문에 '하나님, 제가 과연 견딜 수 있겠습니까?'
제가 서울에 있을 때는, 그래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채권자들을 좀 피해갈 수 있었는데,
대구에 내려가면 부모님 갖고 계신 수많은 부채가, 나한테로 불통이 튈 텐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대구 내려올 때 딱 두 가지 기도했거든요.
-하나님 부채의 늪에 제가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 제가 대구에 (담임목사로) 내려가겠는데
교회가 분쟁에 휩싸이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딱 두 가지를 기도했거든요.
'하나님 이 두 가지만 해주시면, 제가 무엇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지고가야할 십자가였고, 통과해야 될 태풍이었습니다.
대구에 내려와서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응답해 주셨고,
또 이 교회를 섬기면서도, 기도는 저한테는 사실 좀 겁이 날 때가 많아요.
왜냐하면 기도하고 나면, 태풍 속으로 들어가야 될 때가 많았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뻔히 태풍 속으로 다시 한번 들어가야 되는... 그게 기도인 거죠.
그런데 지내놓고 보면, 그 태풍 속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는 것을
저는 조금은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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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본문의 전후 문맥
저희들이 계속해서 누가복음을 살피고 있는데요,
눅19장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에루살렘에 도착하셔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고,
20장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하셨습니다.
2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 또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눅22장을 살피고 있는데, 22장은 크게 두 가지 내용입니다.
-먼저는 마지막 만찬,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마지막 만찬과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잡히시는 내용이 눅2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찬, 겟세마네 기도, 잡히심
다음 장인 눅23장을 가면,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내는 이야기까지 기록이 되어 있고
눅24장은 부활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흐름가운데 오늘 22:39~46절 내용을 나누게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