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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렘1장4-10 1998년 09월 20일
※건설이 되려면, 완전히 파괴가 먼저 된 다음에 건설이 된다는... 그것이 구원의 경륜.
즉 온전한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완전히 깨어지고, 회개하고, 납짝 업드리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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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프랭클(Victor E. Frankl) 이라고 하는 의사 선생님은 유대인이요,
그리고 심리학 박사입니다. 그는 여러가지로 유명한 이유가 있습니다만 특별히
2차세계대전 당시에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나온 사람 몇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고통을 치렀습니다.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고통을 치르고
많은 사람이 죽는 가운데, 600만이 죽는 그 무서운 죽음의 환경에서 구원을 받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가 직접 체험한 경험과 인간들의 반응을 환자의 심리치료에 직접 적용함으로써
심리치료법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는 로고테라피(Logoteraphy)라고 하는 방법론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친히 경험한 것들을 책으로 기록해 설명해 주는데
그 책의 이름은 <의미를 찾는 인간>이라는 그런 책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수용소에는 들어서는 순간, 그때부터 자기 이름은 없어집니다.
저도 오래 전에 북한에서 강제 노동 수용소에 몇 달 동안 들어가 있었던 일이 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이름이 없어지고 번호만 생깁니다.
"몇 번" 하면, 그것이 내 이름입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올시다.
그가 과거에 무엇이던지, 나이가 얼마든지 알 바 아닙니다.
지식이 있던 없던 상관 없습니다. 이제는 "몇 번"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아주 추운 날 숲속에서 수도 파이프를 묻기 위해서
땅을 파는 작업이 있었다고 합니다. 몹시도 추워서 땅은 꽁꽁 얼어붙었는데
작업 반장은 그대로 무서운 채찍을 휘두르면서 일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손이 꽁꽁 얼어서 감당할 수 없이 추운데, 이 프랭클 박사님의 눈에는
그 작업 반장의 손에 끼어 있는 두툼한 장갑, 그것만 자꾸 눈에 보이더랍니다.
손이 시리니까, 끼고 있는 장갑이 보이는데, 그러나 그건 어림도 없는 겁니다.
그는 본래 의사였기 때문에 땅 파는 일을 잘 할 수가 없지요.
땅도 파 본 사람이 파지, 또 그런 힘도 있어야 하고 근육도 있어야 하는데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작업 반장이 마침내 분노해서 이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돼지 같은 새끼들, 지켜보았는데 그것도 일이라고 하는 거냐?
이빨로 흙을 파게 만들어 줄 거다. 일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놈들이로구나."
그리고 마구 내려칩니다. 그리고 욕설을 하면서 프랭클 박사에게
"네 본래 직업이 뭐냐?" 묻더랍니다.
그래서 정중하게 "의사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는데, 이 작업 반장은 아주 치욕적인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등을 얼마나 쳐먹었냐?"
대단히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 돈이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습니다."
작업 반장은 큰 소리고 욕설을 하면서 미친 듯이 때렸고, 프랭클 박사님은 기절했습니다.
그 잔인함에 분노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뒤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분노한 것은, 이것과 얽혀 있는 모멸감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내 인생 평가, 이렇게 하는 것을 그냥 둘 수밖에 없는 것이 괴로웠다는 겁니다.
여러분, 고생은 감당할 수 있어요. 차라리 이대로 맞아 죽어도 좋아!
그러나 내 명예를 짓밟는 것은 참을 수가 없어요.
나는 나대로 진실하게 거룩하게 선하게 살려고 애써온 내 존재를
저 더러운 놈이 함부로 짓밟는 건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인간입니다. 살고 죽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부하고 가난하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나의 마지막 진실, 나의 마지막 의,
나라고 하는 존재의 의미를 이렇게 하찮은 인간이 짓밟아 버릴 때에
그 모욕감은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거기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아니었다'고...
내가 이 수용소에 들어 올 때에 옷을 벗기고 시계를 빼앗기고, 반지를 뽑아 버릴 때,
그 때에 개인적인 역사를 다 잊었어야 했다는 겁니다.
수용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내 미래의 운명은 물론,
현재는 물론, 과거의 내 역사까지 깨끗하게 잊어 버렸어야
오늘을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거예요.
과거에 의사면 어떻고, 박사면 어때요. 선하면 어떻고 악하면 어때요.
지난 날의 나의 명예 같은 거 깨끗이 잊어 버렸으면
그의 고통은 훨씬 덜했을 거라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고통이 어디에 있습니까?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잊지 못 하는데 있는 거예요.
하찮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뭐 굉장한 것처럼 붙들고 있는데
여기에 나름의 고통이 있는 것이올시다.
돈, 내가 소중히 여기는 이 진실을, 누군가가 막 짓밟아 버릴 때,
마구 형편없이 평가해 버릴 때 거기에 괴로움이 있는 거예요.
문제는 내가 그것을 잊었어야 하는 데 말입니다.
벌써 무너졌는데... 벌써 없어진 건데... 그걸 뭘 기억하고 있나?
그걸 붙들고 있는 한 어려운 거지요.
강요된 현실 속에서는, 여러분 이제 고칠 수 없는 것이라면, 마음을 고쳐야 됩니다.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생의 자세를 바꿔야 됩니다.
세상을 개혁할 수 없다면, 나 자신을 개혁해야 합니다. 그것이 남은 과제입니다.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라지 마세요. 내가 기대하는 것 같은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올 것이라고,
유토피아 같은 세상을 꿈을 꾸지 마세요.
문제는 수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강요된 현실이지만
이 속에서 내 마음자세를 바꿔야 됩니다. 잊어야 할 것은 빨리 잊어버리세요.
버릴 것은 빨리 버리세요. 그러면 자유할 것입니다.
▲여러분, ‘의미’처럼 중요한 건 없습니다.
무슨 고난을 당하더라도 ‘의미’만은 살아 있어야 하는데
그 의미가 소실되는 순간.. 나는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모든 것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 속에 소중한 생의 의미만은 그대로 붙들고 싶어요.
이것만 은 누구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그것마저 버려야 한다는데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을 인정하십시다.
없는 것은 없는 거예요. 끝난 것은 끝난 거예요.
(수용소에 들어온) 처음부터 잘못 되었던 거예요.
이것이 플랭클 박사님이 설파해주는 인간의 문제올시다.
◑오늘 성경에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보게 됩니다.
종종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해요. 그저 어쨌든지 이대로...
그저 좀 더 좋은 날이 왔으면 싶지요.
여러분, 버릴 것, 잊어야 할 것은 깨끗이 잊으세요. 그것이 길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저는 한 5년 공부하면서
미국 사람들의 기숙사에서 살았습니다. 저 혼자서 가 가지고.
그래서 이제 그 사람들과 똑같이 양식을 하면서 이렇게 살다가
주말이 되면 기숙사에서 밥을 안 줘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뭘 좀 사다가 해 먹어야 되는데
그래서 제가 슈퍼마켓을 가끔 갔습니다. 지금은 LA에 뭐 한국촌도 많고, 한국식당도 많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어요. 오로지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 슈퍼마켓에 가보면 거기에 앞치마를 두르고 고기를 써는 그런 분이 계시는데
이 분이 본래는 한국에서 목회하던 목사님이에요.
뭐 그때는 미국에 교회도 없고 하니까, 미국에 와서 정말 직업을 바꿔가지고
슈퍼마켓에서 일을 하는데 제가 아는 분이거든요.
제가 딱 들어서면서 "미스터 김! 그 동안 잘 있었나?"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반갑다고 인사를 해요.
그런데 이분이 제일 괴로워하는 게 뭐냐하면
"날 더러 곽 목사님만 날 더러 ‘미스터 김’이라고만 하지
다른 사람들, 옛날에 알던 분들은 만나자 마자 김 목사!" 그런다는 거예요.
이건 죽기보다 힘들데요. 제발 목사라고 안 불러 줬으면 좋겠대요.
나도 잊어버리고 싶은데 만나는 사람마다 "김목사님"
그러니까 앞치마를 두르고 이걸 어떡하면 좋아요.
그때마다 마음이 뜨겁고 괴롭고 이건 죽기보다 힘들다는 거예요.
"내가 잊은 걸 왜 다른 사람이 자꾸 기억하게 만듭니까?"
지나간 얘기인데, 이걸 자꾸 불러주어서 자기가 괴롭다 그래요.
내가 미스터 김이라 그랬더니 고맙다고, 고깃덩어리라도 줘서 돌아와서 잘 구워 먹었어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뭐라고 불러 주었으면 좋겠습니까?
다 지나간 이름을 불러줘야 좋겠습니까?
부도난 지가 언젠데 김회장은 뒀다 뭘 하오?
아니 이건 며칠 한 장관이라고 아직도 지금도 장관이라고 불러주길 바랍니까?
누가 부를까봐 걱정이지. 왜 이러는 겁니까? 깨끗이 잊어버리세요.
그 과거에 이랬으면 어떻고, 저랬으면 어때요?
변변치 않는 것 다 치워버리고 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그러면 미래가 보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는 종종 우리의 뜻, 우리의 계획, 나라고 하는 사람의 어떤 존재 위에
하나님께서 덤으로 복을 주시고, 형통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내 소원 성취를 주시고...
뭐 이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우리 생각과 달라요.
철저하게 과거와 인연을 끊으라는 겁니다.
세상과 관계를 끊으라는 겁니다.
세상적 그 무엇과 단절하라는 겁니다.
과거 그대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욕망, 우리의 자존심, 우리의 교만, 자기 자랑 뭐 그런 자기 신분...
옛날로 말할 것 같으면 ‘양반, (정승 집안)’ 뭐 이런 거요. 치워버리라는 겁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걸 완전히 파괴할 때
거기서부터 구원이 이루어진단 말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나왔습니다.
두 주일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왜 못 가고, 40년 동안을 헤매야 했습니까!
이유는 한가지, 애굽적인 것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자유를 얻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의식에 있어서, 문화에 있어서, 사고 방식에 있어서
그의 철학에 있어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옛사람 그대로 있습니다.
이 정신적 출애굽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40년을 머물게 했습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파멸이 있고, 건설이 있습니다. 심판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다 떠나 버리고, 새롭게 심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 1장을 읽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전체의 주제가 오늘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가서 외쳐라!"
메시지의 총 주제가 이것입니다.
"널 망한다고 외쳐라. 그리고 구원이 있다고 외쳐라!"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불 타버린다.
이 백성은 70년 동안 바벨론에 가서 포로가 될 것이다."
이 끔찍스러운 심판을 예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얼마나 가슴이 터지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울고 울었습니다. 창자가 끊어지도록 아팠다고 합니다.
눈물 흘린 눈은 다 진물이 들어서 눈이 어두웠다고 합니다.
그냥 외치고 외치고 울었습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별명 지어 말하기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서는 눈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니까, 심판이 있으니까!
이걸 알아야 합니다. 왜 예루살렘이 망해야 합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파괴가 있고 건설이 있느니라. 뽑아버리고 다시 심을 것이니라."
☞파괴, 건설 https://rfcdrfcd.tistory.com/15973536
왜요? 화려한 예루살렘도 필요없어요.
그 큰 성곽도 무너질 것이에요.
그래야 할 이유는, 저들이 우상을 섬기기 때문이에요.
그들에게 우상이 있고, 애굽을 의지하는 정치적 의지가 있고
사상이 썩고 부패했기 때문이에요.
그런고로 "파괴하 고 다시 건설할 것이니라. 가서 외쳐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물리적으로, 정치적으로는 개혁은 쉽습니다.
그러나 의식 개혁이란 참 어렵고요,
영적으로 개혁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발전이라는 게 뭡니까?
발전은.. 어떤 자연적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을 말하는 것이올시다.
전에 모르던 것을 깨닫고, 전에 못 보던 것을 보게 될 때에
거기서 변화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낮과 밤에 어느 쪽이 멀리 봅니까?
우리는 낮에 화려한 세계를 보는 줄 알지만,
사실은 밤에 멀리멀리 몇 백 광년 저 밖에 있는 저 별빛을 봅니다.
그 말은 낮에도 별이 있습니다만,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때는 별을 못 봐요.
아무 것도 안 보일 때만, 영롱한 별빛을 볼 수가 있는 것이올시다.
그런고로 모든 가치를 다 부정하게 될 때, 하나님의 세계가 보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익 숙한 것들, 체질화 된 것, 고질화 된 것, 우리 기억에서 다 사라진 것들
이 모든 더러운 것들이 깨끗이 파괴될 때,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미래는 파괴된 과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립니다만 작은 과거의 성공이 소중한 미래를 망쳐버리는 겁니다.
아무 것도 된 것 없이 된 줄 알고, 뭐 가진 것도 없이 가진 줄 알고,
뭐 대단한 줄로 붙들고 있는 동안... 미래는 그 앞에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보이지도 않습니다. 철저하게 자기 부정이 필요합니다.
▲제가 아시는 대로 결혼식 주례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주례할 때마 다 가끔 제가 문제되는 게 있어요.
제게 찾아와서 우리 교회에 결혼식 할 때는
교회에서 만드는 꽃꽂이 이것밖에 못하게 돼 있거든요. 아무도 더 이상 못해요.
부자고 가난하고 똑같이 한단 말이에요. 이렇게 돼 있는데 어떤 분은 찾아와서
"제가 아들 하나밖에 없는데 좀 돈을 많이 들여서 꽃을 좀 잘 장식하려고 합니다."
제가 "안됩니다." 그래요.
그러면은 막 시비를 겁니다.
그러면 제가 "자꾸 그러면 나 결혼 주례 안 할거예요!
장례식과 결혼식은 똑같은 거예요.
교회에서는. 이게 부하고 가난하고가 없어요."
그러면 뭐 그냥 “아들아 하나뿐인데 한 번뿐인데...”
그래서 내가 "누군 아들 둘인가?"
그 다음 또 화환들 가져오는 거, 그거 골치 아파요.
자꾸 안에다 놓겠다는 거 못 놓게 합니다.
그랬더니 마당에다 놓는데 그거요 지금요 여러분 여기서 말씀드립니다만은
그거 하나 치우는데, 그게 6천 원 들어요.
요새는 그거 가져오는 거 우리는 6천원 받습니다.
왜 골치 아프게 하는 겁니까?
그리곤 뭐 어느 회사 사장 아무개. 그 회사 부도난 지가 언젠데...
그까짓 거, 사장 아무개, 뭐 대학 동창회... 즐비한 화환들
왜들 이러는 겁니까? 조그만 나라에서 별 것도 아닌 일 가지고...
이 의식 개혁이 이렇게 힘이 든다는 거예요.
소중한 돈을 왜 거기에다 써요? 꼭 그래야 됩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그 변변치 않은 것들,
하나님은 이것을 완전 파괴하실 생각이에요.
그리고야 바른 세계에 인도하니까요.
소망은.. 내 욕망을 완전히 포기할 때 보이는 것이고,
세상 욕망을 완전히 파괴한 다음에 확실한 다음 세계를 주는 약속을 주십니다.
▲구원의 경륜이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깊은 뜻을 이해해야 됩니다.
베드로가 왜 예수를 따르지 못했습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는 죽음이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 Jesus 를 좇을 것입니다.
여러분 완전한 회개는 자기 부정을 말하는 것이고,
믿음이란 하나님의 의에 대한 전적인 신용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믿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레미야가 이렇게 답답해서
"다 망하면 어떻게 됩니까?"
“걱정하지 마라 내가 보여줄게”
예레미야서 1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보냅니다.
토기장이의 집에 가보니까 토기장이가 흙을 가지고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만들었다가 안 되면 깨부수고 또 만들고, 깨부수고 또 만들어서
좋은 것을 만드는 것을 보여줬어요.
“봐라! 토기장이가 저 그릇을 깨부수고 다시 새 것을 만드는 것 같이
내가 이스라엘을 그렇게 할 거다. 파괴에 대해서 슬퍼하지 마라.
그것이 세우는 길이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국에서 어떤 때 경매장이 열렸답니다.
많은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경매를 부르는데, 거기에 이상한 물건이 하나 나왔어요.
바이올린이 하나 나왔는데 한쪽 귀퉁이가 이렇게 깨진 거예요.
그런 바이올린이 나와가지고 "이건 얼마 요"
하니까 사람들이 다 웃었어요.
‘저것은 원 실링도 안 주겠다. 저걸 누가 쓰나 깨진걸, 고장난 거’
그리고 사람들이 비웃었어요.
그럴 때 한 노인이 딱 나와서
"그걸 날 좀 주십시오."
그리고 바이올린을 켜는데 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바이올린을 한참 켜 고 나니까,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어요.
그 다음에 "이 바이올린 얼 마요?"하니까
100파운드! 100파운드 값으로 뛰어 올랐어요.
하찮은 것이지만 주님의 손에 들려 쓰여지기만 하면,
높은 가치를 생산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보십시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이러합니다.
파괴하고 거기에 의미가 있고, 건설하고 거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다 뽑아 버리고 다시 심을 것이니라!’
그리고 나 자신을 깨끗이 비워 보세요. 예레미야를 통한 주의 음성이 들려 올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자유 하세요. 거기에 구원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