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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서 12월로 가는 마음

LNCK 2024. 12. 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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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4일 "11월에서 12월로 가는 마음 - YouTube

 

11월에서 12월로 가는 마음        딤후4:9~18              

우리 교회에 요즘 3040(삼공사공) 세대들이 열심히 모이는 것은 
참 고무적인 일이고 감사한 일인데 
이번 토요일에 3040 기도회가 있습니다. 
젊은 분들이 많이 오셔서 함께 해주시는 귀한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백 퍼센트 정확하진 않겠지만 학자들의 연구에 의한 사도 바울의 연대표를 살펴보면, 
예루살렘에서 폭도들에게 체포돼서 위기를 넘긴 이후에 
그는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구금 생활을 하던 끝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로마 황제에게 직접 재판을 청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이 로마에 도착한 때는, 대략 주후 60년 초인 것으로 생각되고, 
그때부터 62년까지 가택 연금 상태로 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행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이때 아마 옥중서신, 즉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하셨을 것으로 봅니다.  

그 이후에 재판을 받으셨을 텐데, 석방된 사도 바울께서는 (*원고 불참 승소로 추정)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말씀을 전하셨고 
아마도 그분의 평생 소원대로, 그 당시 땅 끝이라고 여겨졌던 서바나
오늘의 스페인까지 가서 말씀을 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랬던 사도 바울은, AD 66년 경에 두 번째로 로마에 구금 되었는데 
이때는 가택 연금이 아니라, 진짜 감옥에 갇히셨고, *AD64 로마 화재로 인한 박해로
그 해 늦가을에, 성경에 남아 있는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를 기록해서 
디모데에게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듬해 AD 67년 경에 순교를 통해서 
사역과 삶을 마치시고 하나님 앞에 가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사도 바울의 마지막 몇 년의 삶을. 
한 해의 흐름에 비추어서 생각해 보는 것은 
대단히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준다고 여겨집니다. 

12월은 한 해의 모든 것이 끝나는 달 아닙니까. 
그러므로 바울 사도께서 순교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끝마친 것은 
12월에 해당한다...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12월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직전에 마지막 편지인 디모데후서를 기록해서, 디모데에게 보낸 때는 
11월 마지막 쯤 해당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왜냐면 디모데후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11월 끝에서 12월을 바라보며, 12월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11월에서 12월로 가는 마음' 이렇게 정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11월 끝자락 인 마지막 주일 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2024년도도 12월 한 달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 11월 끝자락에 서서, 지난 11달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남아 있는 한 달을 바라보는 우리 성도 님들의 마음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11월과 12월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 추수감사주일에 우리는 다 같이 모여서, 
또 사랑하는 이들을 초대해서 함께 예배하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의 감사, 찬송을 많이 올려 드렸습니다. 기쁨의 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2월을 생각해 보면 '올 한 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구나' 
'그리고 한 해가 끝나면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붙들어 둘 수 없는 올 한 해가 아쉽게만 여겨지고, 
12월을 맞이하는 마음이 스산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여러분, 이게 11월, 12월에 가지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저는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리스도인, 우리 성도들의 영적 실존은
늘 11월 말에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12월은 한 해가 끝나는 날인데, 
비유적으로 '우리 인생의 끝 즈음'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우리들을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삶이 끝나는 때가 있을 것인데, 
그 때가 우리들의 12월 이겠죠. 

그런데 여러분, 주께서 언제 우리를 부르실 지를, 알고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게 바로 코 앞에 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11월 끝자락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날이 가까이 오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이게 11월 말을 살아가는 그리스도 인의 영적 실존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나는 1월, 2월, 3월을 사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살 날이 많다고 여기기 때문에, 게으르거나 방종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11월 끝자락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서, 
곧 마지막인 12월이 온다고 여긴다면, 
우리들은 방종하기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인생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던, 
불편한 것들,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을 과감하게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본질에 충실하게 될 것이며, 
얼마 남아 있지 않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까, 
우리의 삶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지난 세월에 잘못 살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짧은 시간이나마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 쏟아부어서, 열정을 가지고 그 남은 삶을 불태워서 
하나님 앞에 드리기 위해 노력하게 될 테니, 
바로 그 모습이야말로, 깨어 있는 그리스도 인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늘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 이렇게 말씀 했으니 
'11월 끝자락에 서 있다' 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깨어있는 그리스도 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 중에서도 
또 마지막 장인인 4장의 일부를 읽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다 보면, 사도 바울이 흐트러진 모든 것을 반듯하게 정돈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마치 어질러진 책상 위를 깔끔하게 정돈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말씀들을 보면, 
우선 그는 제일 먼저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떠난 자'와 '남은 자'를 이야기합니다. 
바울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떤 이는 떠난 자 였고, 
어떤 이는 아직 남은 자였습니다. 

1) 떠난 자로 제일 먼저 언급된 사람은 데마 입니다. 
데마는 바울이 처음에 로마에 와서 구류 생활을 할 때, 바울 곁에 있었던 사람이죠. 
그 내용이 빌레몬서1:23~24절에 나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몬1:23
이게 첫 번째 로마의 가택 연금 됐던 때인데, 
그때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몬1:24

여기 데마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해 지난 다음에, 바울이 두 번째로 로마에 투옥 되었을 때는 
데마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마는 주님을 버렸습니다. 믿음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버렸고, 그는 데살로니가로, 세상의 즐거움을 따라 떠났습니다. 
그는 몸도 떠나고, 마음도 떠난 사람이죠. 

2) 그런가 하면 바울 곁을 떠나기는 했지만, 사명 때문에 떠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레스게, 디도, 두기고 입니다. 

딤전4:10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딤전4: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아마 이 분들은, 바울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도 그들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되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있지만, 
자네들은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게!' 
그러면서 사명 때문에 그들을 떠나보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곁에 두고 싶었을까요? 보내고 싶지 않았겠죠.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해야 된다는 대의를 위해서, 세 사람을 기꺼이 보낸 것입니다. 

어쩌면 이 땅에서는 영영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이 땅에서 보지 못한다면, 천국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그들은 눈물로 석별의 정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 분들은,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바울에게 남겨 두었을 것입니다.   

 

3) 그런가 하면 바울 곁에 남은 자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의사인 누가 입니다. 

딤후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빌레몬서에 의하면, 바울이 1차투옥 때도, 누가가 바울 곁에 있었는데, 
몇 해 후에 2차 투옥 때도, 여전히 누가가 바울 곁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정말 의리 있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4) 그런가 하면 이 편지를 쓸 때는 바울 곁에 있지 않았지만, 
곧 바울에게로 올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은, 이 디모데후서의 수신자인 디모데입니다. 
4: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입니다.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이죠. 
아마도 디모데는, 이 편지를 받자마자, 만사를 제쳐놓고 바울에게 달려 갔을 것입니다. 
또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려오라'고 말하니, 
마가도 이제 곧 도착할 사람이죠. 
4:11b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행13장에 보면, 1차전도여행 때, 마가가 바울의 전도팀에 동행했으나
밤빌리아 버가 라는 곳에서, 중도하차 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연약했던 마가이지만, 나중에는 아주 영적으로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우리가 읽는 마가복음을 기록한 이도 바로 그 마가이죠. 

그는 바울이 1차 투옥 되었을 때, 그때 바울과 같이 있었는데, 
2차 투옥되어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때는 바울 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어떤 복음 사역을 위해서, 바울을 떠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내게로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와라. 그는 내게 유익하다'
이렇게 부탁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 디모데와 마가는 즉시 달려왔으리가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디모데와 마가가, 사도바울을 만났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죠.

▲여러분, 이렇게 보면 사도 바울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떠났고, 
-어떤 사람은 남아 있고, 
-어떤 사람은 이제 곧 도착할 것이고, 
이게 이제 바울의 인간 관계였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혼자 산 게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또 지금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이는 떠난 자이고, 어떤 이는 남은 자이겠죠.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은 어떤 이들 일까요?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떠난 이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런가 하면 일 때문에, 지방이나 혹은 타국에 
짧게는 몇 년 동안, 길게는 수십 년을 떠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가끔씩은 우리에게 화가 많이 나서, 토라져서 떠난 이도 있겠지요. 
그들 중에는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이도 있지만, 
어떤 이는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간 관계에 있어서, 두 가지 가치가 중요한데, 
-하나는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는 자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랑할 땐 사랑해야 되지만, 
때로는 자유하기 위해서, 마음을 정돈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께서, 내 곁을 떠난 사람 때문에, 
너무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날 버리고 떠나?' 그러면서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도,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유해야지요)

여러분, 떠난 사람 때문에,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서 
계속해서 고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에 쌓여 있는 원한, 그 떨쳐지지 않는 미움과 증오, 
그리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 그 감정의 찌꺼기들을 
우리 마음에서 다 씻어 내기를 원합니다. (자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맑게 정돈된 신념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에게 적합하다..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도 불편한 마음을 정리하려고 노력한 것을,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첫 번째 예가,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 입니다. 

알렉산더는 사도 바울을 굉장히 힘들게 했던 사람이고, 
하나님의 교회를 어렵게 했던 사람이어서 
바울의 마음에도 그에 대한 분노가 끓어 오르지만, 
그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더 이상 거기 묶여서, 분노의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를 얻기 위한 것인데요...

딤후4;14~15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사람이 복음을 가로 막고 교회를 어지럽히니 너도 조심해라' 
라고 충고는 하지만, 더 이상 바울은 알렉산더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주께서 갚을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다 알아서 정리하시고, 주님께서 다 갚으실 것인데, 
더 이상 그를 미워하면서, 그 미움의 노예로 자기는 살지는 않겠다... 
이제는 알렉산더 라는 사람에게서 놓여서 자유를 누리겠다...'
이게 바울의 정돈하는 마음이죠. 

▲바울은 자기를 떠난 사람들도, 더 이상 원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4: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여기 '변명한다'는 것은, 재판을 받으면서 자기를 변호한다는 뜻으로 보이는데, 
바울이 재판을 받고 어려울 때, 
사람들이 다 와서 자기를 응원해야 되지만, 다 자기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외롭고 힘들었다는 거죠. 섭섭한 마음을 말할 수가 없는 거죠. 

우리도 살다 보면 '아니 그 사람이 어떻게 날 모른척 할 수가 있나? 
내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했는데... 내가 어려운 줄 뻔히 알면서, 
어떻게 저렇게 싹 모르는 척 할 수 있나?' 
여러분, 이런 섭섭함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습니까? 바울도 그러했다는 거죠.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은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한다'
바울은 더 이상 그들을 원망하지 않기로 생각을 했어요. 
'그들에게도 사정이 있었겠지... 
나라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상황이 그들에게 있었겠지...' 
이렇게 그들을 이해하기로 했고, 다 자기 마음에서 내려놓기로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건 한편으로는 용서라고 말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야, 바울의 영혼이 고통받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묶여있는 그런 밧줄에서부터 
자기를 풀어 자유롭게 하려고 
알렉산더 와의 관계도 그렇고, 자신을 떠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 그 (감정적으로) 묶인 것들을 끊어내기로 작정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열한 달을 살고 11월 마지막 주일에 와 있는 우리 마음 속에, 
어떤 사람들로 인한 집착과, 미련과, 원망과, 분노가 계속 끓어 오르고 있다는 것은, 
우리를 참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런 감정의 찌꺼기들 때문에, 고통받지 않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많은 사람을 보내 주시기도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데려가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 관계의 중요한 가치가 사랑이니까,  
우리가 사람을 사랑해야 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되지만, 
그러나 사람에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해야 되지만, 그러나 집착하지 말고, 
그 사람을 놓을 때, 내 스스로 그를 내 의식 속에서 놓아줄 때,
우리는 또 하나의 가치인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한 번 보세요. 
우리는 뭐 떠나지 않을 사람입니까? 우리도 떠나지 않았습니까? 

아마 우리도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 날을 회상해 보면,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붙들었지만, 
그가 미워서, 싫어서, 혹은 여러 이유로, 
그동안 우리도 수도 없이, 누구를 떠난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떠났기 때문에, 누군가가 얼마나 울고, 마음 아파했을까를 생각한다면, 
남 얘기 할 게 없는 거죠. 우리도 떠나는 자니까요! 

그리고 언젠가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날이 오면, 
아무리 가족들이 우리를 애타게 불러도, 
우리는 어차피 또 떠날 사람 아닙니까? 

우리도 떠나는 자이면서, 우리를 떠난 자를 원망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거기에서 내 마음을 비우는 게 너무나도 중요하죠.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예수님도 떠나지 않았습니까. 
아니, 예수님은 영원히 계실 것 같은데, 
감람산에서 제자들만 남겨 놓으시고 '다시 오겠노라'고 하시면서 
승천하여 올라가실 때, 이 제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겠습니까? 

'아니 주님께서 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주님이 떠나가십니까?'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떠나셨다고,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담담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면서 
그들이 해야 될 일을 하면서, 주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그들이 걸어가야 될 길을, 끝까지 걸어갔던 것을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떠난 자들로 인해 고통 받지 마시고, 
남아 있는 자들과 잘 지내야 됩니다. 

여러분 곁에 남아 있는 이들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과 협력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내게 다가올 때 기댈 언덕이 되어 주시고, 
또 그들에게 기대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체면과 자존심이 센 사람이야' 그러면서 기대는 걸 거부하지 말고, 
곧 쓰러지기 직전인데 버티지 말고, 
가끔씩은 좀 누구에겐가 기대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내서, 나에게 기대게 만들기도 하시고 
또 내가 그들에게 기대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보내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 해야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손의 손을 마주 잡고 
같이 주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 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몇십 년을 사는 동안, 그 몇십 년을 계속 같이 하지는 않습니다. 
그 중에 십 년, 그 중에 이십 년, 
부부가 되어서 그 중에 사오십 년, 
아니면 짧게 몇 년 그렇게 같이 있다가 헤어지는게 인생인데,  

그게 대부분의 우리들의 모습인데, 
그 짧게 있는 동안에, 서로 미워하고 그러지 말고, 
우리 곁에 그가 있는 동안에,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함께 주님의 일을 도모한다면, 그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보면, 바울은 떠난 자들을 다 이렇게 (자유롭게) 보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또 오라고 부르기도 하지 않습니까. 

'디모데야, 오느라.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너라'  4:11
이러면서 우리는 같이 이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나그네요, 우리 곁에 있는 이들도 나그네요, 
우리가 다 그렇게 나그네 인생을 오가면서 
만나서 함께 하다가, 또 떠나기도 하고, 또 같이 있기도 하는 것인데, 

우리 성도 님들의 인간 관계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셔서 
사랑 하면서도 자유하는.. 그런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사람에 대해서만 말하는 게 아니라, 
<물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이 자신의 사생활을 얘기하는 적은 아주 드물고, 
특별히 물건에 대해서 언급한 적은 거의 없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아주 특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4: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이렇게 물건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이 말씀이 아주 독특하게 않습니까? 
여러분 물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옷도 입어야 되고, 뭐 여러 가지 삶에 필요한 물건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물건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삶에 필요한 물건들을 소유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인생에 필요한 물건들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삶에 필요한 물건을 가지는 것과, 
물질에 대해서 탐욕을 가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늘 여기 바울도, 책을 가져오라고 하기도 하고, 겉옷을 가져오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의 인생의 마지막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품을 가져 오라는 것 뿐이지, 
금은 보화를 가져오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 바울 사도가 마치 미니멀리스트 처럼 
삶에 꼭 필요한 물건 만을 가지고, 언제나 소탈하고, 검소하게, 
그렇게 반듯하게 정돈된 최소한의 삶을, 
그러나 부족함이 없이 충만하게 살아가는.. 그런 멋진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필요한 물건은 가지되, 탐심은 버리면서 
물질로부터도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이 11월 끝자락까지 살면서, 혹시 얼마나 많은 물질에 대한 욕망, 
이 세상의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망과 탐심으로 
우리를 비틀 거리게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면서, 

이 인생의 끝자락에는, 바울의 마음을 좀 배워서 
우리도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늘 내 곁에 계시는 분은 우리 주님 뿐!

저는 이 말씀을 계속 묵상하면서, 
로마의 감옥에서, 다가오는 순교의 그 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 바울의 모습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의 머릿 속에, 지나간 수십 년의 세월이 계속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내 곁에 많은 사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나를 총애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 같은 유대 지도자들도,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나를 부르신 이후에, 
나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다 나의 원수가 되었고 
또 그 대신 믿음 안에서 새로 나의 아들 된 이들, 형제 자매 된 이들을, 
내게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그들의 위로와 기도와 격려를 통해, 오늘 내가 여기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 죽음이 멀지 않은 이 시점에 와서 보니,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고, 
여기 이렇게 제가 달랑 남아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누가가 내 곁에 있고, 
이제 디모데와 마가도 곧 오게 되겠는데, 
'아, 이렇게 천국으로 가는구나' 
'내가 사람에 집착하고 욕심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허망한 뻔 했겠는가? 
그러나 사람은 다 이렇게 나그네로 가는 것이기에 
그들이 없어도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는 거죠. 

「또 세상에 오만 물건을 다 가지고, 그 물질 속에 파묻혀 사는 사람도 많지만, 
주님, 제가 부족하긴 했으나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없는 중에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먹고, 입고, 여기까지 살게 해주신 거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지나간 세월의 많은 회환과, 
또 이 사람, 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많은 일들이 그의 가슴 속에 떠오르다 사라지고, 또 떠오르다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인생 맨 끝에, 
11월 말을 사는 것 같은 내게, 
남아있는 게 뭘까 생각해 보니까, 
딱 한 분이 남아계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분은 바로 바울을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셨습니다. 
사람은 왔다 가기도 하지만, 
또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과도 언젠간 헤어져야 되겠지만, 
'주님은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시는구나' 이걸 깨닫게 된 거죠. 

맨 마지막에 그의 가슴을 채운 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이셨습니다.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내가 사자의 입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고통을 많이 겪었으나, 
주께서 내 곁에 계셔서 나를 건지셨고, 
지금 이 감옥에 나와 같이 계심을 믿습니다.' 

여러분, '내 곁에 서신 주님' 이라는 바울의 표현은, 대단히 독특한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서 폭도들에게 위험을 당할 때 
천부장이 그를 로마부대 영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런 위험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주께서 그의 곁에 서셔서 그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지 않았습니까!

행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나중에 그가 유라굴로 강풍에 죽음의 위기를 만났을 때도 
주님은 그의 곁에 서 계셨습니다. 

행27:23~24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비슷하게 고린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죠.
행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바울의 평생에, 이 사람도 왔다 가고, 저 사람도 왔다 가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도 또 떠날 것이지만, 
아니면 바울이 또 떠나기도 하겠지만, 
그의 곁에 영원히 떠나지 않고 늘 계시는 분은 주님 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12월에, 인생의 끝자락에 
사람으로 인한 기쁨과 섭섭함이 교차하고, 
얻은 물질에 대한 뿌듯함과, 
혹은 얻지 못한 것이나 잃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하겠지만, 

오늘 이 예배 시간을 통해서, 우리 곁에 여전히 계신 주님으로 인하여 
기쁨을 얻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면서 그 주님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에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소망이 있는데, 
그게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천국! 얼마나 놀라운지요!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 어두운 감옥에 앉아서 바울이 바라보는 미래는, 두려운 미래가 아니라, 
그가 바라보는 미래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 천국에 대한 소망, 
바로 그게 바울이 바라보는 미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11월의 끝자락에 서 있고, 이제 곧 순교의 날 12월이 오게 될 텐데, 
그 12월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는 천국을 바라보니까, 
12월을 넘어 새로운 1월이 올 것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롭게 맞이할 그 1월은 
다시 또 12월이 되는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1월이요, 영원한 생명이요, 영원한 천국인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 마지막 시간을 감사함으로 보내고 있었던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11월에서 12월로 가는 마음, 
그게 바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로서, 언제나 가져야 될 마음인 줄 믿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어..' 라고 생각하면서,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방종하지 말고, 사랑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삶으로 영광돌리기 원합니다. 

그래서 마치 마지막 단풍이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남은 자투리 시간이지만, 하나님 앞에 최고의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남산 자락을 걸으면서 발견한 것은 
아무리 단풍이 빨갛게 물들어 아름다워도, 
햇볕을 받아야 아름다운 것이지, 
해가 저버리고 나면, 그게 단풍 잎인지, 무슨 잎인지, 
빨간지, 노란지 알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해 보여도, 아름다운 것은 
빛이 비추이는 동안만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름답게 보여 지도록, 빛을 비추시는 분은 주님 이십니다. 
주님의 빛이 나를 비추는 동안에만, 우리는 그나마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여러분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12월로 걸어들어가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도 12월을 지나면, 1월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1월은 영원한 1월이요, 영생의 1월이 될 줄로 믿습니다. 

12월은 그래서 특별한 달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1월이 있음을 암시라도 하듯 
12월에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여 오신 성탄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겁니다.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왜 오시는가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천국으로 우리를 부르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탄생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 대림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11월 끝자락에, 겸손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마음의 옷깃을 여기면서 
남은 시간을 믿음으로 원망하지 않고, 욕심 품지 않고, 
주님의 빚만 받으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기 원합니다. 

그리고 12월을 두렵지 않게 맞이하기 위한 믿음의 준비를 하는 거, 
그러면서 그 이후에는 영원한 천국으로 나갈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그 모습,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가져야 될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1월을 잘 넘어, 12월을 거쳐서 
생명의 1월로 나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