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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수업 1

LNCK 2024. 12. 10. 13:07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리더쉽, 목회자

[신명기44] 왕 수업 1 (신17:14-20절)┃2024.11.3 주일예배 - YouTube


왕 수업 1         신17:14~20          2024.11.03.           

◑도입

 

구약에 보면, 특별히 세 직분에 대해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는데 
그것은 왕, 제사장, 선지자 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매시아, 신약의 그리스도는 같은 말인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의 세 직분이 하나로 통일 되어 나타나죠. 
즉 예수님께서는 왕이시며, 제사장이시며, 선지자이십니다. 

우리가 요즘 살펴보는 신명기에는 
17:14절~18장까지 쭉 이어져서, 이 세 가지 직분에 대한 법도가 나오는데요. 
오늘 본문은 이제 그 중에서 왕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왕에 대한 규례와 법도'를 살펴보고, 
다음 시간에는 이어서 '제사장, 선지자'에 대한 규례와 법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왕은.. 통치하는 통치자를 의미하고요. 
제사장은.. 우리 죄를 속하는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자죠.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했던 대언자죠. 

그래서 우리는 이 신명기 말씀을 통해서,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것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왕이시고, 대제사장이시며, 말씀을 전해 주시는 선지자 라는 거죠.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뭐냐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성도들 각자 역시
예수님을 닮아서,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벧후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왕같은 제사장'은.. 왕도 되고, 제사장도 된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제정일치 사회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죠)

하여간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서, 또한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작은 예수'의 역할과 사명을 감당하며 살게 되는데,
그래서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종교개혁시대에 '만인 제사장설'이 나온 거죠.

그래서 우리가 신명기 본문에서 '왕에 대한 규례'를 살피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되고,
또한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우리 각자 성도가 살아가야 될 길을 알게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신명기 본문 말씀은, 어떤 특정한 인물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거예요. 아멘이십니까? 

 

본문 '왕의 규레'를, 목사나 장로 같은 지도자에 대한 말씀으로 받으면, 오해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모든 메시지는, 일차적으로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로 받아야 돼요. 

 

여기 나오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에 대한 말씀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 성취 되셨어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통일돼서 나타났었어요. 

하지만 그 예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예수의 영으로 충만한 자들이니까 
우리 각자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야 된다고 믿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 가면, 왕으로서, 왕의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천국의 다스림의 삶을, 오늘 이 지상에서 미리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왕이다' 라고 성경은 그렇게 얘기합니다. 
왜요? 주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는 자니까요! 

계22:5 '그들이 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딤후2: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눅19:17  '...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계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왕'입니다. 
영적인 영향력을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며,  *섬김의 다스림
세상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중재자며, 
그분의 말씀을 맡아 선포하는 대언자, 그게 모든 성도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다스릴 왕이라면, 지금 이 땅에서 시간은 
그 왕이 되기 위해서 준비되는 시간입니다. 

마25:34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그래서 우리는, 주와 함께 영원히 다스릴 왕이 되기 위해서, 
지상에서 왕 수업을 받고 있는 시기입니다. 

여러분, 옛날에 왕들은, 갑자기 어느 날 왕이 된 게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왕 수업을 철저하게 받습니다. *제왕학
요즘도 재벌가에서는 '제왕수업'을 시킨다 그러잖아요.  *후계자 수업
그런 과정을 거쳐서 왕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 땅에서 성도는, 왕이 되기 위한 수업을 받는 존재예요. 
왜요? 머리에 면류관을 쓰고 영원히 왕 노릇 해야 되니까!
우리는 이 땅만 살다가 없어질 존재가 아니에요. 영원히 왕 노릇 할 존재인데, 
그래서 이 땅에서 시간들은, 영원히 다스릴 왕이 될 준비를 하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왕 수업' 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왕 수업을 받아야 되는지를,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쭉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17:15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이게 왕 수업의 내용입니다. 

▲왕 수업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기름부음에 대해서 먼저 좀 살펴봅시다. 
기름을 붓는다는 게 구약에서 무슨 의미였을까요? 

1) 기름부음은, 거룩한 구별과 선택을 의미합니다.
출30장에 보면, 관유를 만들어서   *관유: 각종 향품을 섞어 만든 기름
성막과 성막안 기구 들과 제사장에게 발라서 그것을 거룩하게 구별하라   출30:25~30

그러니까 기름을 붓는 의미가 뭐예요? 거룩하게 구별 됐다는 뜻이죠. 
이거는 하나님 만을 위해서 구별 된 거니까, 
다른 용도로 쓰면 안 돼! ... 이런 뜻이죠. 

하나님께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기름 붓는다고 하는 건 뭐냐 하면, 
'너희는 나를 위해서만 사용 돼야 돼, 나를 위해서만 일해야 돼!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존재야!' 이렇게 구별하는 건데, 
이렇게 선택받는 것은 영광이죠. 

성막에도, 여호와를 섬기는 기구들이 있죠. 
근데 어느 날 손님이 너무 많이 와가지고 밥그릇이 모자랐어요.

그런다고 '성막에 있는 밥그릇을 잠깐 빌릴 게요'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거예요. 
거룩하게 구별 됐기 때문에,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해서 써야 되는 거라는 거죠. 

이것은 구약에서 보여주는 모형이고 샘플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여호와 하나님 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된다는 거예요. 
세속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말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세상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존재 목적 자체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기름부음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거룩하게 구별 되고, 선택된 존재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곳에 사용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2) 기름부음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합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을 때, 그 위에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삼상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기름부음은,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기에 기름부음 받은 자는,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살면 안 되고,
성령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왕에게 기름 붓는다는 것이 그런 의미라는 거예요. 
왕은 하나님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왕 자신의 생각대로 나라를 이끌고 가면 안 되고요. 
왕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 직분을 감당해야 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왕직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렇다는 거예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내 힘과 내 생각으로 내 삶을 살아나가면 안 되고, 
성령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기름부음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3) 기름부음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완전히 보호하신다고 하는 것이 
기름부음 입니다. 

4) 기름부음은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아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 기름부음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내주 하십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충만하게 내주 하시기 때문에 
내가 기름부음 받은 자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로 충만한 자들 이에요. 
예수를 세상에 드러내는 존재고, 예수께서 가신 길을 똑같이 가는 존재고, 
예수께서 사신 능력 대로 살아가는 존재고, 
그래서 우리는 기름부음으로 인해, 
예수로 살고, 예수로 죽고, 예수로 충만한 그런 존재라는 거예요. 아멘 

◑그렇다면 이런 기름부음을 받은 존재가, 어떻게 으로 준비되어 가야 하는가요? 

(그 중에 오늘은 세 가지를 살펴보고, 나머지는 다음 주에 살펴봅니다)

▲1. 왕 수업의 첫 번째는 <소명, 부르심에 대한 확신>입니다.

신17: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왕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확실한 소명이 있어야 돼요. 
소명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왕 뿐만이 아니라, 모든 직분이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됐든, 선교사가 됐던, 아니면 교사가 됐던, 주방 봉사가 됐던, 
하여간 모든 직분은,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세우셨다'는 소명이 있어야 됩니다. 

하여간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어떤 직분이든지 간에 하나님이 세우셨으면 
거기에 대한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이게 첫 번째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인데 
모든 성도들이 왕으로서의 직분을 감당할 때 있어야 될 첫 번째 요소는 뭐냐 하면 
'소명에 대한 확신' 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왕으로 부르셨다'는 거죠.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이 여기에 나를 세우셨다, 하나님이 나를 여기로 보내셨다'
이 확신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리더십은 이 소명에 대한 확신에 기초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목사가 '내가 목사로 부름받은 거 맞나?' 이러고 있는데 
무슨 말씀의 권위가 나오겠어요? 
이런 사람에게 무슨 영적인 권위가 있겠어요? 

선교사도 '내가 여기 선교사로 부름 받은 것이 맞나?' 이러고 있다면,
무슨 영적인 역사가 있겠습니까? 
선교지에서 한 텀 버티기가 어려울 겁니다. 못 버티고 돌아옵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거기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뭐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여기 보내셨어,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셨어!'
이 확신이 있을 때 거기서 열매를 맺고, 거기서 영적인 돌파가 일어나는 거죠. 
그거 없이 긴가 민가 하고 있으면, 무슨 영적인 결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주일학교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이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교사로 세우셨다'
이 소명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영적인 영향력이 나오죠. 

그렇지 않고 '긴가 민가, 이걸 계속해 or 말어?'
이러고 있는데 무슨 영적인 영향력이 나오겠어요? 
그러고 있으면 여러분 배우는 애들도 힘들어요. 

잘 들으세요. 영적인 영향력은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세우셨다' 라는 확신에서부터 
나오는 거예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이 나를 이 아이들을 책임지는 교사로 부르시고 보내셨어!' 하는 소명. 
이 믿음과 확신이 있을 때, 거기에서 영적인 권위가 세워지고, 
그 권위 부터 영적인 영향력이 흘러가게 되는 겁니다. 

왕은 여러분 소명이 있어야 돼요. 
크리스천이 왕으로서 직분을 감당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구원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 입니다. 

'나는 예수 믿다가 맞아 죽어도 여기서 죽고, 굶어 죽어도 여기서 죽어!' 
왜?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셨고, 나를 구원하셨으니까!'

이런 사람은, 삶의 환경이 위태해지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거죠. '종교를 갈아타야 하는 걸까?' 하고 엉뚱한 시간 허비하지 않는 거죠.

그리고 '소명을 받을 때, 보통 사명도 함께 주십니다.'
사도바울도 그랬죠. 
소명은 '구원으로 부르심'이고, 그렇게 구원 받은 사람은
자기가 그 이후로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 즉 자기 사명도 연이어서 받게 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하고 있는 사역 가운데, 영적인 열매가 별로 없고, 열정도 잘 없다... 
그러면 일차적으로 소명을 확인해 보셔야 돼요. 
내가 소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떠밀려서 하고 있는 건가? 

떠밀려서 하는 일에는 여러분 열매가 없습니다. 영적인 영향력이 나오지 않아요. 
크리스천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첫 번째 기초는, 소명에 대한 확신이에요. 

♣크리스천의 왕 수업은, 작은 일에 소명을 가지고 충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영적인 원리에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큰 일을 먼저 맡기지 않으세요. 절대로! 
반드시 작은 일을 먼저 맡기세요. 왜요? 
작은 일에 충성하는 걸 봐야, 큰 일을 맡기는 거죠. 이게 성경 말씀이죠. 

작은 일에 충성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큰 일을 맡겨 놓으면, 큰 사고 칠 거 아니에요? 
하나님은 먼저 작은 일을 맡기시고, 거기에 소명을 가지고 임하는가? 두고 보시는 거예요. 
'충성'은 작은 것에 하는 것이지, 큰 것에 하는 거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큰 일을 맡기면 누구나 다 합니다. 
중요하고 큰 일을 맡기면, 누구나 다 하게 됩니다. 큰 일이니까요.

그때는 이 사람이 '하나님께 충성된 것인지, 큰 일에 충성된 것인지' 구별이 잘 안 가요. 
왜요? 큰 일을 맡기면 다들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작은 일은 금방 구별 돼요. 
하나님께 받은 소명, 사명이 있는 사람은, 작은 일도 크게 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크게 보는가?' 하는 것은 
'얼마나 작은 일에 충성하는가?' 를 통해서만 드러나요. 

바꿔 말하면, 우리에게 충성이 필요한 일은.. 큰 일이 아니라, 작은 일이에요.
또 우리가 충성 해야 되는 대상은.. 큰 일이 아니라, 큰 하나님 이에요. 

작은 일은, 누구만 충성 하냐 하면 
하나님을 크게 보는 사람만 충성 해요. 
왜요? 크신 하나님이 나에게 명하신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의 충성은, '크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큰 일'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거를 구분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큰 일을 먼저 안 맡기세요. 
항상 작은 일을 먼저 맡기세요. 

그래서 그 작은 일에 충성하는 걸 보고, 뭘 아는 거예요? 
'아, 이 사람은 하나님을 크게 보고 있구나!' 그걸 아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크게 보는 사람한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큰 일을 맡기신다는 거예요. 아멘! 

그런데 작은 일에도 한결 같이 충성된 사람은, 뭐 때문에 그렇게 하겠어요? 
하나님이 주신 소명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죠. 

이게 '왕 수업'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신 주신 소명 때문에 그렇게 계속 하고 있는 거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칭찬 하거나 인정해 주는 게 없어도... 
전혀 빛나는 자리가 아니라도... 
그것을 십 년, 이십 년, 평생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세우셨으니까!' 이게 소명이에요. *소명 : calling, 부르심 
또 사명이에요.  *사명 : 불러서 맡기신 일, '너를 왕으로 불러서(소명) 나라를 맡겼다(사명)

우리는 하나님을 크게 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지, 
일이 크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큰 일이 어디 있고, 작은 일이 어딨어요? 
크신 하나님이 시키신 일은, 다 큰 일이에요.
그래서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왕 수업'이에요.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이게 성경이 얘기하는 영적인 원리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소명이 있는 자는 작은 일이라고 허투루 하지 않습니다. 
그것에 생명을 걸지요. 
이게 왕이 되는 수업의 첫 번째 내용입니다. 

▲2. 왕 수업의 두 번째 내용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

신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병마를 많이 두지 말고, 병마를 얻으려고 애굽으로 돌아 가지도 말래요. 
고대 사회에서 '말'은 군사력, 즉 힘을 의미합니다. 

고대 사회에 탱크가 있습니까, 미사일이 있습니까? 
고대 사회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거는 말과 병거이에요. 
그래서 '병마'는 군사력, 즉 힘의 척도입니다. 

왕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래요. 
왜냐면 병마가 많으면, 왕이 하나님이 아니라, 병마를 의지하게 되기 때문에 그래요. 

사실은 병마를 많이 두는 이유 자체가, 하나님 만으로는 불안해서 그런 거죠. 
하나님 만으로 불안하면 병마를 구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갑니다. 
'아랍 말'이 유명하잖아요.

하나님 만으로 불안하면, 세속의 힘을 구하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불안하면, 성경은 '기도하라!' 그랬거든요.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하라.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사람이 불안하면.. 기도를 하는 게 아니고, 애굽의 병마를 찾아요. 
이게 사람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왕상10:26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천사백 대요 마병이 만이천 명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28 솔로몬의 말들은 애굽에서 들여왔으니 왕의 상인들이 값주고 산 것이며'

솔로몬은 힘을 얻기 위해서 애굽과 교역해서 말을 많이 얻었어요. 
그런데 모세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고했거든요. 본문이죠.

왕은 영적인 권위와 영적인 힘으로 다스려야지 
세속의 힘을 의지하려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며' 
이것이 왕에게 주는 모세의 두 번째 권면입니다. 
애굽의 병마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된다는 거죠.
세속의 힘이 아니라 영적인 힘을 사용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영적인 일을, 세상의 힘으로 하려는 거예요
좋은 일을 합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영적인 일을 해요. 

뭐 전도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선교를 돕기도 하고... 
하여간 영적인 일을 하는데, 세상의 힘으로 하려고 해요. 
즉 돈의 힘으로 하려고 하고, 또 비즈니스 논리로 하고, 또 인맥을 찾기도 하고... 
그게 다 '애굽의 병마' 입니다. 

좋은 일, 영적인 일을, 세상의 힘으로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왕은 여러분, 애굽의 병마를 많이 두면 안 돼요. 
애굽의 병마가 많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그 병마를 의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은 병마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그러다가 안 되면... 안 해야 되는 거예요.

왕은 하나님의 대리인 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 하시는 건.. 안 해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을, 
내가 애굽의 병마를 데려다가 하려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돼죠.
그렇게 억지로 병마의 힘으로 밀어부쳐서 되어진 일은.. 또 결과가 매우 안 좋습니다.

이게 다 우리 삶에 대한 얘기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곳까지 가서, 멈출 줄 알아야 돼요. 

근데 이게 잘 안 돼요.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아요.
일을 막 하다가 탄력이 붙잖아요? 그러면 멈춰라 그래도 안 멈추고 계속 가요.
그러다가 동력이 떨어지면, 애굽에 가서 병마를 구해 와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물론 병마를 모으는 게 죄는 아닙니다. 
다윗도 전쟁할 때 보면 병마가 있었거든요. 
하나님이 주신 병마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만으로는 불안해서 
다른 것을 찾고자 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는 유혹입니다.
돈을 찾게 되고.. 인맥 찾게 되고.. 세상 방법 찾게 되고... 
왕은 이거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왕은 '다윗의 병마' 와 '애굽의 병마'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전자는,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후자는, 선을 넘어서 자기가 의지하는 것들이에요.

우리가 어떤 일이든지 하려고 하면, 병마가 필요합니다. 
선교를 하려고 그래도 돈이 필요해요. 돈 없이 선교 하겠습니까? 당연히 돈이 필요하죠. 

그러나 영적인 힘이 우선이지, 세속적 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분별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안에는, 평안과 즐거움이 있어요. 그리고 일도 평탄해요.
그것은 '다윗의 병마'가 맞아요. 

그렇지만 '애굽의 병마'는, 내가 불안해서 뭔가를 이렇게 끌어다 쓰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불안하고, 일도 덜거덕거리고, 일의 결과도 결국은 엉망으로 끝나고 맙니다.

이게 왕 수업 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이게 너무 너무 중요해요. 
우리가 뭐 두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저절로 하나님의 일이 이뤄지지는 않죠.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 해야 돼요.

그런데 멈춰야 될 때가 있거든요. 근데 이 선에서 멈추지 못해서 이제 실패하는 거예요. 
멈춰야 되는 데도 멈추지 않고 더 가고 싶어 해요. 
욕심 때문에.. 또 불안함 때문에... 그래서 애굽의 병마에 손을 자꾸 내 뻗는 거예요.
이거 하지 말라는 거예요. 왕은 다윗의 병마로 자족 할 줄 알아야 돼요. 

▲3. 세 번째 왕 수업은, <욕망을 다스리는> 수업입니다. 

신17: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왕은 욕망을 다스릴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왕에게 요구되는 자질이고, 우리가 이 땅에서 받아야 될 왕 수업의 세 번째 내용입니다. 

왜냐면 영적 권위, 지도자의 권위는, 이 절제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래요.  
욕망을 다스리는 것과 영적인 권위가 깊게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여러 가지 욕망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 거죠. 
식욕, 성욕, 소유욕, 물욕, 명예욕, 지식욕, 탐욕, 하여간 뭔가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그리고 이것들이 다 나쁜 건 아닙니다. 
뭐 성욕이 없다면 결혼을 어떻게 할 것이며, 자녀를 어떻게 낳겠어요?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그랬죠. 
한 명도 두지 말라고는 안 했거든요. 

예를 들어서, 물은 좋은 거죠. 물이 없으면 아무도 못 살죠. 물은 정말 생명의 근원인데 
이것이 통제 됐을 때의 얘기고, 
만약 물이 통제되지 않아서 홍수가 났어요. 그래서 둑을 넘었어요. 그러면 재앙이 됩니다. 
욕망은 좋은 건데, 좋은 게 통제되지 않으면... 큰 재앙이 된다는 거예요. 

왕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욕망을 다스리는 주인이 돼야지요.
성령의 열매 중에 마지막 9번째로 절제가 있잖아요. 

성욕이 됐든 식욕이 됐든 무슨 물질욕 다 좋은데, 
그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선 안에서 누려야 되는 거예요. 
왕은 이걸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걸 배워야 된다는 거예요. 선을 넘어가면 안 돼요. 

왕이 절제 하지 못하고, 자기 감정과 욕구 대로 움직이면... 나라는 망합니다. 
왕은 욕망과 감정을 선 안에 둘 줄 알아야 돼요. 이것이 성령의 열매인 '절제' 입니다. 

절제의 열매는, 영적 권위와 깊게 연결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 절제의 열매가 많으면 많을수록 
영적인 영향력의 범위가 확대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영적인 영향력의 범위가 나 개인 밖에 없어요. 
그랬던 것이 절제 열매를 맺으면 맺을 수록, 영적인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져요. 

나에게서 가족으로, 또 가족에서 소그룹으로, 소그룹에서 지역 교회로, 
지역 교회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나라와 민족으로... 점점 점점 영향력이 확대되는데, 
그 열쇠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절제 라는 거예요. 

절제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중요한 열쇠 중에 하나가 절제 라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의 욕망과 감정을 통제하고, 선 안에 두는 것들을 계속 훈련해 나갈 때 
여러분 각자가 왕으로서의 직분과 영향력이 점점 확대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오늘 날은 '왕 수업'의 내용이 더욱더 중요해 진다고 믿습니다. 
이 MZ 세대의 슬로건이 뭐냐 하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이거거든요. 
그게 이 시대의 메시지잖아요. 

근데 성경은 반대로 얘기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선 안에서 행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결국 재앙이 된다는 거예요. 
어느 공동체든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큰 재앙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으셨어요.
정해진 한계선 안에서, 절제 안에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것들을 누리라고 말씀하셨지 
선을 마구 넘어도 된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절제를 통해서 영적인 영향력들이 더 넓게 퍼져가는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