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급소를 겨누라 | 엡 6:17 금요철야 |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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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급소를 겨누라 P2 엡6:17 2022.04.08.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은 본문에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랬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왜 '성령의 검'이라고 하셨을까요?
말씀과 성령의 절대적 관계를 말해주는 겁니다.
말씀이 깨달아 지는 것은 누가 하시는 거죠?
성령이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 보면, 말씀이 쉽게 깨달아 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 깨닫는 게 은혜라고 그러죠.
말씀이 깨달아 지면, 이미 엄청난 은혜가 임한 겁니다.
근데 이게 깨달아 지는 게 어려워요.
대부분 우리가 어때요? 나중에 깨달아요.
사고가 난 다음에, 된통 혼난 다음에, 뼈저린 깨달음이 오죠.
깨달음은 나중에 와요. 늦게 와요.
'아, 그때 내가 깨달았더라면...'
자 여러분, 깨닫는 것이 축복이고, 깨닫지 못하는 말씀은 실력으로 나타나지 않아요.
깨달아 지지 않은 말씀은, 그냥 말씀이에요. 그냥 말에 불과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머리로 이해한 것과, 성령으로 깨달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오늘 밤에 여러분, 성령으로 깨닫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머리로만 이해한 건, 그건 깨달은 게 아니에요.
그건 능력이 안 돼요. 성령의 검이 아니에요.
여러분, 성령의 검은, 성령의 능력으로, 은혜로... 깨닫게 될 때예요.
그래서 성령은 진리의 영이세요. 우리로 깨닫게 하시고,
우리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영이라는 거에요.
요14:26 '보헤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니라'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게 두 가지죠.
1)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2) 그리고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거예요.
설교자는 성령의 가르쳐 주시는 것을 전달해야 되고,
이게 없으면 설교를 못 해요. 그냥 지식 전달에 불과해지죠.
지식 전달할 때의 특징이 뭐냐면,
설교자도 머리가 아프고, 듣는 사람도 머리가 아파요.
중요한 것은, '성령이 너희를 가르쳐 주신다'는 거예요.
무슨 책도 필요하고 뭐 다 필요한데요,
뛰어난 성경 강해 목사님을 통해서도 잘 배울 수도 있고, 책도 요즘 좋은 책이 많죠.
그렇지만 반드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태도를
가장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돼요.
여러분들 모두가 예수 믿는 분이라면, 성령을 모시고 계세요.
내 안에 성령이 계세요. 성령이 도우려고 준비하고 계세요.
여러분, 옛날에 연세 많으신 권사님들, 학교도 제대로 안 다니셨어요.
근데 만나뵈면, 보통 지혜롭지 않아요. 어마어마한 지혜를 가지고 있어요.
그걸 누가 그 분들에게 가르쳐 주셨나요? 성령이 하신 거죠.
그분들이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시니까, 대학에서도 못 배우는 지혜를
성령으로부터 배운 거예요. 지식이 아니라 지혜!
성령의 지혜로 권사님이 한 말씀 하시면, 완전히 그렇게 지혜로울 수가 없어요.
완전 정답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독특한 책입니다. 그냥 책이 아닙니다.
문법적으로,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아무리 연구를 해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성경을 깨닫는데)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러니까 신학자 가운데서도,
-성령을 받은 신학자가 있고요.
-성령에 의존하지 않는 신학자가 있어요.
그러니까 성령에 의존하지 않는 신학자는... 자유주의로 가 버리는 거예요.
학문화 하는 거예요. 그가 학문적으로는 탁월한 데, 성령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이 쓴 책을 읽으면 안 돼요.
성경이 기록될 때도, 기자들에게 성령의 감동이 있었고,
그 기록된 말씀을 읽는 사람도, 성령의 감동이 필요해요. 그냥은 안 돼요.
여러분,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이라야
그 말씀이 내 안에 능력이 되고, 생명이 되고, 은혜가 되고, 변화가 일어나고,
오늘도 여러분, 성령에 의존해서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은
설교자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성령의 검'이란, 단순히 기록된 '로고스'로서 말씀이라기 보다는,
성령의 감동으로 주어진 '레마'의 성격이 있는 거죠.
살아서 내 안의 능력으로 지금 역사하는 (레마의) 말씀!
그래서 성령은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 있도록 만든다는 거예요.
2천 년 전, 3천 년 전에 기록된 말씀인데
성령께서 오늘 우리 안에서 라이브, 살아 있도록 하는 말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히4:12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어요.
마귀가 시험을 하는 동안에도, 주님은 성령의 이끌림 가운데 계셨어요.
그러므로 주님의 입에서 능력의 말씀이 적시에 터져 나오는데, 이것도 뭐예요?
성령의 역사라는 거죠. 성령이 도우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내가 굉장히 큰 시험에 빠져서, 그냥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는데
성령이 나를 도우셔서, 가장 적절한 말씀을 내 안에 주시고,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여
그 어려운 위기를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거..
이게 성령의 은혜요, 성령의 검이 하시는 일이죠.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의 검'은,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 가운데 역사합니다.
일상 속에서 늘 말씀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고자 하는 사람 가운데, 역사를 한다는 거예요.
매일 말씀이 내 삶을 비추고 있으면, 마귀가 테클을 거는 게 보여요.
말씀의 빛이 쫙 비치고 있으니까, 그 마귀의 거짓이 드러나죠.
분별력이 금방 일어나는 거예요. 마귀의 공격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근데 말씀의 빛이 비취지 않으면, 어둠 가운데 있으니까
마귀가 공격하는 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냥 끌려 다니는 겁니다.
◑말씀에 성령이 역사해야, 말씀이 능력을 발휘합니다
말씀이 내 안에 역사해서, 말씀이 불이 되어 나가면,
마귀의 공격을 무력화 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그 말씀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을 때
그 말씀이 불이 되어서, 불방망이가 되어서, 그냥 마귀의 급소를 찔러 버립니다.
이상해요. 여러분, 똑같은 말씀인데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그 말씀이 도리어 사단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가 하면,
막 그냥 그 말씀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성도들끼리도 싸울 때 보면, 말씀을 인용하면서 싸우더라고요.
교회가 갈라져서 싸울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죠.
여러분, 말씀에 성령에 불이 붙지 않으면 능력이 없습니다.
말씀이라고 해서 다 말씀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 성령을 통하여 말씀을 상고해야 돼요.
똑같이 하나님 말씀을 사용하는데..
-어떤 사람은 사람을 세우고, 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들을 상처받게 하고, 시험에 들게 할 수도 있어요.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요.
여러분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이 전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그랬어요.
오늘 여러분들이 '성령의 검'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도우심이 필요해요.
여러분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이에요.
예수님의 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이 역사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행하신 거예요.
성령 없이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하면, 그 충만한 상태 속에서 찬송가를 한번 불러보세요.
찬송가가 그저 노래가 아니에요.
찬송가 하나로도 내 심령의 병이 다 고쳐져요.
그 찬양으로 내 심령 안에 온전한 어떤 회복이 일어나요. 부흥이 막 일어나고요.
그냥 그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찬송가라도 그냥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과 비슷해져요.
'왜 누가 찬송가를 이렇게 5절까지 만들어 놓았지?'
은혜가 떨어지면, 후렴을 자꾸 반복해서 부르면 짜증나는 거예요.
'한 번만 불렀으면 됐지, 뭐 자꾸 후렴을 두 번, 세 번 부르는가?' 하고 지겨워 합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 날에도 찬송가 한 곡을 몇 번 반복해서 부르잖아요.
그러면 어떤 분은, 그 때 막 집에 가고 싶어 해요.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같은 찬송가를 계속 반복해서 부르면... 지겨워 못 견디는 거죠.
여러분 성령이 임하시니까, 그 찬송가 한 장만으로도, 그냥 뒤집어지는 거예요.
▲제가 호주에서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예배가 막 깊어 지니까, 여러 곡 부를 것도 없더라고요.
한 곡만 가지고도 20~30분을 계속 반복해서 부르는데,
근데 신기한 일이 일어나요. 더 깊어지는 거예요.
막 지성소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방인의 뜰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고,
완전히 하나님의 임재 앞에 그냥 압도 당하고 있으니까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말씀도 똑같은 거예요. 기도도 마찬가지고요.
기도도 성령의 불을 받으면, 기도가 한 시간인지, 두 시간인지, 세 시간인지...
세 시간 기도하고 나서도, 한 10분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반대로 성령의 불을 안 받으면, 약 5분 기도하고도, 한 시간 기도한 것처럼 시간이 안 가요.
자기는 꽤 오래 기도한 것 같은데, 시계보니까 5분 밖에 안 됐어요.
뭐 자기 가정, 자기 건강을 놓고 기도 하는데, 뭐 5분이면 충분하죠.
여러분, 말씀의 능력을 실감하려면, 성경의 역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이에요.
엡6:17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성경을 대할 때, 성령이 우리의 마음과 이성을 활짝 열어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사건이나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도,
가장 적절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해 보십시오.
이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해결의 열쇠입니다.
▲결혼 관계가 막 삐거덕 거리고 어려워지고 있다면,
가정에 필요한 말씀들을 구해 보십시오.
단순히 회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야 돼요. '말씀의 응답'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럼, 그 말씀의 응답을 붙잡고 기도하면,
그 결혼 관계가 점점 회복되어져 가는 거죠. 말씀의 약속대로 이루어져가는 거예요.
안 그러면, 우리의 상한 감정 상태로, 그냥 거친 말들이 막 오가면, 관계는 더 악화되고요.
우리의 언어로는, 우리의 설득으로는, 우리의 언변으로는 해결이 안 돼요.
우리의 감정에 몰두하기보다는, 성령에 귀를 기울이시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말씀, 그 레마를 가지고 나아갈 때,
마귀를 공격하고, 제압하고, 우리 가정을 관계를 깨뜨리고 하는 그 어둠의 권세를 깨뜨립니다.
뭘로요?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깨뜨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답은 딱 하나예요. '하나님, 말씀을 주십시오!'
-오늘 큐티 하는 동안에 말씀을 주시던지,
-아니면 오늘 설교를 통하여 말씀을 주시던지,
-아니면 오늘 소그룹 모임에 가서 말씀을 듣는 가운데 답을 주시던지
-누구와 대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던지...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십시오. 그 말씀에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사십시오!
여러분, 왜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까? 왜 실패를 거듭합니까?
성령이 빠진 채로 신앙생활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검'이 없는 거예요. 공격할 검이 없으니까,
마귀가 주는 수많은 이론과,
마귀가 속이는 거짓에 설득을 당하고 넘어가는 거예요.
여러분, 온 세상에는, 마귀가 풀어놓은 거짓이 그냥 막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미세먼지는 저리가라 예요. 미세먼지가 무서운 게 아니고,
마귀가 온 세상에 흩어 놓았던 이 거짓 이론들,
거짓된 철학들, 거짓된 가르침들, 거짓된 교사들...
말씀이 마귀의 심장을 겨누어야 돼요.
그냥 성경만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성령의 능력이 부어질 때,
그 말씀에 불이 붙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말씀!
그 말씀의 능력보다 더 강력한 화력(무기)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검을 사용하는 사람은, 말씀의 능력을 바로 알고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가를 알아야 돼요.
이 세상에 이것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돈의 위력이 대단하지만, 돈이 할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죠.
정말 중요한 것은 돈이 할 수 없어요.
돈이 사람의 생명을 연장을 할 수 있습니까?
돈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병든 영혼을 치료하고, 죽었던 영혼을 살려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만족할 수가 있어요.
오늘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정말 성령 안에서 제대로 주어지면,
이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깨달아 져요.
'사람이 떡으로 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그 말씀이
그대로 내 심령에 와 닿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로 내 안에 온전히 채워지면,
그냥 내 영혼이 만족해요. 내 영혼에 기쁨이 채워져요.
돈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만족이 오고,
돈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기쁨이 찾아오고,
여러분 세상의 물질은 우리에게 순간적으로 만족을 주지만
오래 지나면 그건 참 만족이 아니란 말이죠.
근데 하나님의 말씀의 떡은, 우리를 영원히 배부르게 하고, 영원히 만족하게 하고,
우리를 완전하게 회복시키는 역사가 일어나게 합니다.
이 말씀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요!
그런데 자꾸 마귀는 '이 돌들이 떡이 되게 하라'
자꾸 '당장에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지금 돈이 있어야 된다.'
'지금은 네가 은혜 받을 때가 아니다. 돈 벌 때다.
이 철야에 나오기 보다, 가서 대리라도 한 탕 더 뛰어라!'
여러분, 생명을 잃으면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죽고 사는 것은 오직 말씀에 있습니다.
세상의 환경이나 사탄이 우리를 망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 최강의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으로 무장한 사람을 이길 장사가 없습니다.
말씀으로 무장하면, 다 이깁니다. 못 이길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 났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놓쳤기 때문이에요.
왜 놓쳤죠? 마귀의 유혹에 무너진 거죠. 마귀의 거짓에 무너진 거죠.
'네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이 거짓된 속삭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요.
한 마디로 말하면,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창3:3
그 말씀을 생명처럼 붙들지 않았던 거예요.
이와 같이 여러분, 말씀이 생명이에요.
아무리 에덴동산이라도, 말씀을 놓치면, 쫓겨나는 겁니다.
지금도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면,
'어디에서 사느냐, 돈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 내 지위가 어디인가?' 상관 없어요.
이미 실낙원이에요. 불행이 찾아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에게 주신 축복된 삶을 계속 누리려고 하면,
말씀 위에 굳게 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놓치는 순간, 마귀는 달려듭니다. 그리고 유혹합니다. 시험합니다.
걸고 넘어집니다. 우리를 속박합니다.
말씀을 놓치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풍성한 삶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백성 답게 살지 못하게 되고, 비실비실하게 되고,
신자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양 눈을 다 뽑히고 맷돌 돌리는 삼손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되요.
마귀는 우리가 말씀으로부터 더 벗어나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매일 사로잡혀야 돼요.
말씀이 능력이기 때문에, 성령의 검을 사용하여
마귀를 제압할 수 있는 실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일상 속에서 말씀으로 작은 승리를 계속 거둬야 돼요.
그때 우리의 삶은 조금씩 조금씩 자유를 얻게 되고,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크리스천의 승리는 다른 승리가 아닙니다.
말씀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승리의 삶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중심에 두어야 되는 거예요.
잃어버린 생명과 축복을 다시 얻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붙잡는 길 밖에 없어요.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되찾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으로 통해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뒤켠에 두고,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말씀을 대충대충 보고, 말씀을 아주 가볍게 여겼던 삶을,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중심에 올려 놓으면,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은 회복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은 진리 전쟁이요, 말씀 전쟁입니다.
진리를 진리로 인정하고, 선포하고, 그 진리에 순종해서 사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막연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것입니까?
왜 그렇게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했는데, 신앙이 안 자라죠? 왜 늘 넘어지죠?
왜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중심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거죠.
무조건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기도도 마찬가지잖아요. 금요 철야를 우리가 하는데, 중요한 것이
제가 꼭 한 시간씩 설교를 해요.
설교를 한 시간 한다고 중요한 게 아니라
'기도회로 모였는데 기도에 열중하지.. 무슨 설교가 저렇게 기냐?'
아니에요. 말씀이 말씀으로 전달 되어야, 기도가 터지게 돼 있어요.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지 않고 기도해 보세요.
그건 장작이 없이 불을 피우는 것과 같아요. 장작이 없는데 불이 피워지나요?
기도에 불을 붙이는 것은, 결국 말씀의 장작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말씀에 강한 신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무장하시길 바랍니다.
머리로만 성경을 깨치지 말고,
성령의 빛 안에서 말씀을 깨닫는 은혜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경 필사도 많이 하고, 성경 통독도 많이 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을 필사만 하고, 암송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성령이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셔야 돼요.
그렇게 필사 할 때, 성령이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필사하다가 멈추는 거예요. 성령이 임하시니까!
막 손이 떨리고, 온 가슴이 막 떨리는 거예요.
그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율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거예요.
그냥 필사 했는데, 필사가 아니라, 그 구절을 적는 가운데 성경이 임하시는 거예요.
깨달음이 오는 거예요. 깨달음!
그럼 필사를 멈추는 거예요.
그냥 막 쉬지않고 기록하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그 말씀을 깨닫는 게 목적이에요.
성령이 그 필사하는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돼요.
여러분, 그게 차곡차곡 쌓여야 돼요.
'이 말씀이 그 말씀이구나!' 하고 온 몸이 저려오는 것이 있어야 돼요.
그런 게 여러분 한 구절만 있어도, 인생이 뒤집어 져요.
▲저도 가만히 돌아보면, 제 인생을 붙잡고 있는 몇몇 구절이 있어요.
제 온 삶의 바탕에는, 그 말씀들이 있는 거예요.
살아오는 가운데 그 몇몇 구절이, 내 인생에 그냥 완전히 검이 된 말씀이에요.
그것만 해도 엄청난 거죠.
여러분 그런 말씀이 뭐 수백 개가 안 돼도,
몇개만 되더라도, 그건 엄청난 열매를 맺죠.
여러분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이란, 성령 안에서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걸 말해요.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무엇을 하든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역을 할 때도, 봉사를 할 때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경을 암송할 때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암송하는 그 과정 속에서도 마찬가지고, 통독 할 때도 마찬가지고,
필사할 때도 마찬가지고, 찬양을 부를 때도 마찬가지고,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고,
전도 할 때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누가 전도 하는데, 그냥 뭐 내 말을 아무리 잘 해봐요. 전도가 안 돼요.
그냥 성경 말씀을 몇 구절, 그 복음의 핵심이 들어가 있는 몇 구절만 여러분이 암송하시면 되요.
제가 전도 집회 때 늘 쓰는 구절들이 있어요. 그 구절들만 정확하게 말씀을 해보세요.
그런데 그 말씀에, 성령의 불이 붙으면, 그 말씀이 레마로 나가요.
즉 '살아있는 말씀'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듣는 사람의 심장에 꽂혀 버리면
그 몇 구절이 그냥 그의 인생을 바꿔 버려요.
하나님의 말씀에 성령의 불이 임하면, 마귀가 그냥 뻗어 버려요.
말씀 앞에 사단은 벌벌 떨게 돼 있습니다. 우리는 사단을 겁낼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고, 생명이고, 승리의 원천인 줄 믿습니다.
말씀의 검의 양 날을 날카롭게 세운 영적 검객으로서, 사단의 거짓에 맞서기 바랍니다.
말씀을 붙잡고 살면, 세상과 마귀를 능히 이길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때부터 말씀 안에서 풍성한 삶이 펼쳐지게 돼요.
마귀에게 더 이상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기록되었으되' 하신 것처럼
그 말씀의 검으로 사단을 제압해 버리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 길을 따르기 원합니다.
그래서 마4장을 보면, '마귀는 비로소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을 수종들어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에 사단이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수종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