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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32장 예언을 선포하고, 그 후

LNCK 2024. 12. 14. 06:27

20181030새벽-삶,그리고...-예레미야 32장 16~25절- - YouTube

 

예언을 선포하고, 그 후         렘32:16~25        2018.16.25.

※이 설교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의 모습에 오버랩 시킵니다.
예레미야는 그저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 선포된 예언의 말씀이 다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길을 예언하시고, 
당신이 예언하신 대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면서,
그 직전에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겟세마네에서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

그처럼 예레미야도, 자기가 선포한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시니라' 라고 말씀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메시지를,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선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내용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내용과 일치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고,   *하루 전날 설교
예레미야는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이야기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너희가 바벨론의 멍에를 질 것이고, 멍에를 져야 한다'
라고 말하면서, 그 말씀과 일치된 멍에를 스스로 매는 삶을 살았고, 

모든 사람들이 절망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소망의 메시지를 주시면서 
'너희가 다시 이 땅에 돌아올 것이며, 
포도밭과 이 모든 매매를 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그리고 '고엘'로써 그 땅을 사는 삶으로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말씀을 주실 때, 
말씀을 선포하면서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하였고
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와 일치되는 삶을 살면서, * 삶의 중요성 rfcdrfcd.tistory.com/15982232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후'는 무엇을 했습니까? 
(예레미야가, 그 선포가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메시지 선포, 그리고 그 메시지와 일치하는 삶, 
그리고 '그 후'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는 바로 '여호와께 기도하여' 라는 예레미야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아주 압축적으로 그가 했던 기도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 것이죠. 

메시지를 바르게 전하는 것, 바른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바른 내용을 가진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그 내용과 그 메시지와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 삶을 살면서,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어가야 되는.. 삶을 영위해야 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예레미야는 오늘 본문에서 '기도하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무엇인가요? 
'왜 예레미야는 이 상황 속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텐데, 

먼저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내기 위해서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다'
라는 개념을 바르게 잡으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내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로 요청하는 것입니다. 

렘32:24 '보옵소서 이 성을 빼앗으려고 만든 참호가 이 성에 이르렀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하고 그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는 기도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런 현실이 찾아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불평을 하거나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지만 
24절에 보니까 '보십시오 이제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고, 내가 선포했고, 
내가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멍에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현실이 코 앞에 와 있는 것이죠. 

예레미야가 멸망을 선포하고, 자기는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선포한 메시지가, 이제 자기 자신 앞으로도 왔어요.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뿐만 아니라 
그 나라 전체가, 바벨론에 의하여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그 상황이 
그가 선포했던 메시지대로, 현실로 다가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레미야도, 그 현실을 지나가야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 바벨론을 지나야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이것을 짊어져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니 그 혹독한 현실이, 이제 내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드디어 눈앞에 다가왔어요. (바벨론 군대가 코앞에 닥쳤어요)

그때에 예레미야도 그 현실을 함께 이겨 나가기 위해서 
지금 '하나님 보십시오'라고 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그 현실을 살아나가기 위해서, 
살아 내기 위해서, 하나님께 요청하여서 힘을 공급받는 시간이며, 
또한 그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길을 살아내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는, 

자기가 계획한 자기의 길을 살아내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로 요청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님이 지금 자신에게, 그리고 자기의 민족에게 말씀하신 길, 
그 바벨론의 멍에를 지는 길, 그 길 앞에 서서 
이제 한 발짝 내디디려고 하고, 결국 내딛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내가 이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이 길에서 멈춰 서지 않도록, 
끝까지 갈 수 있게 달라고' 기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길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이 길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떼를 쓰고 요청하는 것을 
기도로 사용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고, 
그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그리고 우리가 순종해야 될 모든 순종을, 몸소 다 해내신... 

즉 우리가 해야 될 순종을 (우리의 대표로) 해내셨고, 
우리의 죗값을 치르신 것뿐만 아니라 
그분은 죄 없는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대표로) 보여주는 샘플로서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근데 그분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고엘(기업무름)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이 지정하신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하여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 길을 저절로 가신 것이 아니고, 
그 하나님이 지시하셨던 십자가의 길, 골고다의 길을 가기 전에 
그 길을 가시는 도중에, 어디로 가셨습니까? 겟세마네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냥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주님도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십자가의 길은, 기도하면서 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라 하신 그 길을 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공급받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겟세마네를 지났을 때, 
비로소 그분이 십자가로 걸어갈 수 있었다.. 라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분은 땀이 피가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뭘 기도하셨습니까? 십자가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벗어나지 않도록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었고, 
하나님이 제시하셨던 이 길에서 내가 그대로 걸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이죠. 

그러니 '기도'라는 것은, 내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길을 쉽게 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셔서,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명의 길,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셔서, 내가 가야 되는 그 길, 
그 길을 기꺼이 잘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 그것이 기도이고, 

지금 이제 자신이 선포한 대로, 자신이 살았던 대로 
그 현실이 눈앞에 있는... 그 혹독하고 무서운 겨울 (십자가) 앞에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내게 해달라고 (예수님이, 예레미야가) 
기도를 하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또 하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데, 기도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과 약속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내게 주어진 그 길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기도이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있어요. 그분의 뜻이 있어요. 이거는 미래입니다. 

기도는 그래서 언제나 현재형 이어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언제나 내 삶 속에서 현재형으로, 
그러나 또한 기도는 멀리 미래를 바라보는 거예요. 

근데 그건 내 꿈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셨던 꿈, 
하나님께서 주셨던 소망,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회복, 
보이지도 않는 그 회복, 그것 앞에서, 그것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 바로 기도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25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32:25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나이다'

예레미야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지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자기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데,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인데,
자기의 친족이 찾아와서 고엘로 땅을 사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에 많은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증인들이 있었고, 
-그래서 서명을 한 증서와   *보관용
-서명을 하지 아니한 증서 ... 두 개를 항상 매매할 때 만들어요.  *증거용

근데 여기에 또 다른 증인들이 또 자기의 그 증거됨을 (손도장 같은 것을) 찍어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레미야가 이제 미쳤구나 
40년 정도 하나님 말씀 선포하더니 미쳤구나' 하고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당합니다.

예레미야 자신도 압니다. 너무나도 잘 압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 70년 후에 되어질 회복을 바라보면서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어 보이는지를 잘 압니다. 

그러나 그래서 그 회복을 자기가 누리지 못할 것도, 사실은 알아요. 
그러나 그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지금 자기가 바벨론이라는이 멍에가 지금 앞에 와 있고, 
자기는 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그 회복을 바라보면서 
'이걸 이루어 달라고'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숙부의 밭을 값을 치르고 사는 것입니다.

'나는 이거 미래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게 지금 자기에게는 실제도 아닙니다. 너무나도 멀리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명확하게 말씀하신 그 약속, 그 뜻,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 주십시오... 라고 하나님께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이죠. 

내가 이거 살아내는 것도 참 중요해요. 
그러나 이거 살아내서 결국 우리가 뭘 봐야 되는 것입니까? 
그분이 말씀하셨던 그 회복을 봐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 회복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기 위하여,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을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그분이 뭘 바라보고 계셨습니까? 

그분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어요. 뭘 바라보셨기 때문에? 
온통 옷을 벗고 수치스러운 그 상황 속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면서, 그분이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내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 하나이다' 뭡니까? 
그분은 심판, 십자가만 바라본 것이 아니고, (십자가는 죄에 대한 심판, 죄값 치름)
그 이후에 있을 하나님의 약속인 부활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걸 약속하셨는데, 나는 지금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내가 지금 그 부활을 바라봅니다. 
내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드리오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을
다 이루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베드로를 바라보시면서 
'네가 젊어서는 네 마음대로 다닐 것이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원치 않는 곳에 갈 것이고, 네가 팔을 벌릴 것이다' 
라고 얘기해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베드로가 마지막에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죽을지를 알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지금 십자가 앞에 선 순간 베드로가 어떻게 합니까? 사실은 도망가 버립니다. 
완전히 예수님을 버려 버려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반했고, 
가룟유다도 비슷하게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예수님이 베드로를 위해서는 '네가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고, 눅21:32
가룟유다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베드로는 결국 회복되었고, 
가룟유다는 회복되지 못한 것입니다.

한 구절만 더 찾아보죠. 겔36:37절, 
이 말씀은 기억하셔야 되기 때문에, 제가 반복해서 자주 말씀을 드립니다. 

에스겔 36장은 전체가 하나님이 하실 회복과 희망의 메세지입니다. 
이스라엘이 받을 복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하시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할 것이다' 라는 말씀을 쭉 하셔요.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시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복과 축복과 약속이 수없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믿음을 가진 자가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시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왜 기도해야 됩니까? 기도는 간절히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기도는 아버지의 약속이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에 요건 이루어졌고, 
아 이건 내가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도 전에는 언제나 메시지가 있고, 내용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상황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그 기도를 통해서 분별하게 되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모를 때에는 
우리의 소원을 담아서 간절히 기도해야 되겠죠. 

그런데 어떤 기도는 이루어지고, 어떤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간절함의 문제라기보다는, 내용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서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 내시더라 하는 것입니다. 

후략

예레미야도 예수님처럼 똑같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였고 
심판의 메시지를 살았고, 
그 심판을 견딜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을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바, 그 후에 회복을 반드시 이루어달라고 
지금 바벨론에 포위된 이 상황 속에서 
'아버지 내게 믿음을 주셔서 이루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예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언대로 살아야 하고,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