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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오솔길이 대로가 되게하라

LNCK 2024. 12. 20. 10:1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믿음론 (순종)   

 

시온의 오솔길이 대로가 되게하라 - Youtube 설교
*위 동영상 0:00~56:20초까지 녹취


시온의 오솔길이 대로가 되게하라        요14:12, 마14:28~30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여러분 이 말씀이 정말 이루어질까요? 
'우리가 예수님이 하신 일도 하고, 또 예수님이 하신 것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이 말씀이 정말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주님의 약속인데, 안 믿 자니... 이것도 큰 불신 일 것 같고 
또 주님의 약속이라서, 덜컥 믿지 않니... 너무 어마어마 하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도 하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 이렇게 말할 때 
느낌이 드는데 '저 사람, 너무 교만한 거 아니야?' 그런 생각도 들잖아요. 
'아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

그러면 아주 상식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네 겸손한 사람은, 
주님의 말씀(요14:12)을 안 믿는 데도.. 괜찮은 사람이고 

'나는 주님이 하신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선포하면 
'저 사람 조금 너무 광신적인 것 같아, 너무 교만한 것 같아...'
사람들에게 이렇게 또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 잡았는데... 이게 정말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이더라고요. 
이 말씀에 대한 확신이 제 마음에 한동안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 주님이 말씀 하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말씀이 주는 충격과 감동은...  저에게는 없었어요.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주님이 제 눈을 이렇게 여시면서 
이 말씀에 대하여, 놀라웁게 하나님께서 새 믿음을 주셨어요.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어떤 영적인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읽혀진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주님을 계속 바라보고, 그것을 매일 일기로 기록해 가면서 
계속 지속적으로 주님을 바라 보려고 하면서 
'아, 이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이고, 복된 말씀이고, 
그리고 이 말씀이 나를 살리는 말씀인가' .. 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변화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똑같지 않습니다. 믿음이 계속 달라집니다. 

제가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제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믿음의 변화'입니다. 
'아, 이 믿음이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전에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의 변화가 너무 놀라운 거예요. 

예배당 건축 하면서 큰 어려움이 있어서 
심장의 쇼크가 올 정도로 그렇게 큰 부담, 스트레스가 쌓여 있을 때 
'나는 죽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고백하다가 
그 심장의 통증이 쫙 사라지는 순간에 
갑자기 제 마음 속에 '이 교회의 모든 건축비 부채는 다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그게 믿어지는 거예요. 믿어지는 거는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그냥 믿어지는 거예요.

어떤 목사님이 어릴 때, 자기 엄마가 진짜 엄마인지가 믿어지지가 않았대요. 
하도 자기를 시골에 보내고, 또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맡기고, 
옛날에는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애 데리고 무슨 직업도 못 가지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죠. 

'엄마가 내 진짜 엄마가 아닌가 봐' 
또 항상 주변에서는 또 부추기는 사람이 있어요. '다리 밑에서 주워오는 거 봤다'

그래가지고 한 번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어린 아이인데 삶의 의미가 없어요. 

어느 날, 크게 배탈이 나서 학교도 못 가고, 며칠을 그렇게 앓고 있는 데 
엄마가 그 소식을 듣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거의 뭐 실성한 여인처럼 울면서, 자기 이름을 막 부르면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비로소 '우리 엄마네!' 이런 느낌이 오더래요. 
'엄마가 아니면 저럴 수가 없는... 어, 우리 엄마네!' 이게 확 믿어지는 순간이 오더래요. 

그럼 그 다음부터는 누가 뭐라고 놀려도, 뭐라고 짓궂게 이야기 해도 상관이 없어요. 
우리 엄마인줄 확실하게 믿어지니까! 

제가 2009년에, 한 달 동안 안식월, 육신의 치유를 위해서 안식월을 가지면서 
내내, 매일... 그때가 이제 영성일기 쓰는 처음 시작이었죠.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루 하루를... 그렇게 한 달을 살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돌아오는 길에, 제 마음에 변화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주님이 제 마음에 계신 게 믿어지는 거예요. 

'주님이 내 마음이 계시다고 귀로 들은 거'하고, 
'주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 게 믿어지는 거'하고는.. 그건 엄청난 차이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십 년이 지났죠. 
그때 주님이 내 마음 속에 계신 게 확 믿어지는 그때 이후로.. 
제 삶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어요. 

믿음이 정말 놀랍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믿는 자' 라고 표현 하셨어요. 요14:12
아무나 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도 하고, 또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은 아닙니다. 
'나를 믿는 자'라는 표현을 쓰였어요. 그들만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한다'는 거죠.

우리가 지금까지 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죠.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들어서 압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우리 죄를 사하신 분이다.. 뭐 그것도 알고 믿어요. 
근데 이런 걸 '믿는다'고 표현 할 수 없어요. 

내가 진짜 예수님을 '믿는다'면, 더 이상 두려움과 염려가 없어져요. 
나는 믿는 분이 있어요... 그래서 편안한 거죠.  

 

그래서 여러분도, 아주 정말 인상이 좋고 얼굴이 편안하고, 
어려운 일이 많은데도 늘 얼굴이 밝은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어디 믿는 데가 있나 봐! 어디 믿는 구석이 있나 봐!'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렇죠. 
삶의 환경이 정말 힘든데 본인은 천하태평 이에요. 
그러면 '저 사람은 어디 믿는 데가 있나 봐' 그렇죠. 

여러분들한테도 주변 사람이 늘 그렇게 말하지요? '당신은 어디 믿는 데가 있나 봐요.' 
이렇게 말하죠? 

그게 아니라 '당신은 무슨 걱정이 있으신가 봐요' 그런 말을 자주 합니까? 
엄청난 차이에요. 

'나를 믿는 자는'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요14:12
주님을 믿는 것, 그러니까 믿음에 열쇠가 있습니다. 

이 약속, 주님이 주신 이 엄청난 약속이 
'내 약속이 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믿음의 문제예요. 

실제로 이 말씀은 사실 교만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정말 자기가 취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어휴, 저 사람은 교만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참 예민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모세가 바로 왕에게 가서 '하나님이 내 백성들을 다 해방시켜 주라고 하셨다' 
그럴 때 그 모세가 교만한 거예요? (그렇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뭐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기죠? 근데 그게 믿음 이었어요.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게 믿어지니까, 
그러니까 바로 왕 앞에 가서 그렇게 말하는 거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게 믿어지지 않았는데 그랬다면, 
모세가 자기 능력을 의지해서 갔다면, 
그건 교만한 게 아니고 미친 거죠. 그죠?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다윗이 물맷돌을 가지고 골리앗 앞에 나갈 때...
골리앗을 거꾸러 뜨리겠다고 나갔어요. 교만한 거죠. 
실제로 다윗은 교만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큰 형 엘리압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 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삼상17:28

분명히 다윗은 '믿음'으로 골리앗에게 나아가려고 하는데,
남들 눈에 보이기는 '교만' 처럼 보이는 겁니다. 

근데 하나님을 정말 믿으니까, 그런 담대함이 생기는 걸 어떻게 합니까. 
글쎄요. 만약에 진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다면, 다윗은 완전히 미친 거죠. 
죽기를 작정한 거죠.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이 모세나, 다윗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다윗이 되게 했던, 
그런 믿음의 역사가 있습니까? 

요즘 여러분의 살아가는 삶 속에, 모세나 다윗에게 있었던 것처럼 
'내가 예수님을 믿으니까' 담대하게 나아가는 그런 면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당신은 너무 교만해!' 
이렇게 말할 정도로, 여러분들이 어떤 일을 추진하는 게 있으세요? 

우리의 믿음을 한번 정확하게 들여다 보게하는 말씀입니다. 
왜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시는 것, 그보다 더 큰 일 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없었나요?
왜 그런 사람이 적은 가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예수님을 진짜 믿는 사람이 적은 거예요. 

한 신학 강연회에서 하워드 핸드릭스 박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는 기초를 파 놓고, 
그 위에 닭 장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

기초는, 1백 층이 되는 그런 빌딩을 지을 수 있는 엄청난 기초를 닦았어요. 
근데 '도대체 몇 층을 올리려고 저러나?' 하고 봤더니 
거기 위에다 비닐 하우스로 닭장을 만들었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정말 이해가 안 될 거예요. 
'도대체 왜 닭장 지으려고 저렇게 기초를 엄청나게 했나?' 

근데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에 누가 계세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죠.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의 기초예요. 성경에 그렇게 표현 했습니다. 

고전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내 인생과 우리 교회의 터가 예수님이에요. 그러니 만약에 건물로 비유하자면, 
1백 층도 능히 지울 수 있는 기초지요. 견고한 기초이지요. 

그런데 그 위에 우리가 뭘 짓고 있나요?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도대체 무엇이 지어지고 있나요? 

정말 기초는 1백 층을 지을 기초를 해놓고 ,그 위에다가 닭장을 짓고 사는 
이런 꼴이 지금 많은 성도들의 현실입니다. 
내 능력에 맞는 일만 하고 사는 겁니다. 내 계산에 맞는 일만 하고 사는 거예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고, 예수님이 내 생명이신데, 
실제로 살기는, 자기 계산과 자기 능력에 의해서만 사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을 기초로 둘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생명과 주님으로 영접은 왜 했습니까? 
살기를 그렇게 살 거라면, 예수님께서 내 안에 오실 때, 
그저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고 편안하게 지내는 걸 위해서 오셨겠어요

'생수의 강이 되어 흐르라고'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거예요. 
'나를 믿는 자는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리라' 요7:38 

지금 여러분에게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고 있습니까? 
주변 사람들이 지금 막 헤엄치고 있죠? 

왜 생수의 강이신 주님이 내 속에 계신데,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저렇게 힘들어하고, 매말라 있고, 어려워 할까요? 
한 번 우리 자신을 정확히 점검해 봐야 됩니다. 

보배 같은 믿음은 내게 있는데, 
평생 믿음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는 것... (안타깝지 않으십니까?) 

하나님 앞에 가면 큰 죄 지은 거는 없는데... 혹시 사람 죽인 분 있으십니까? 
그런 일은 한 적이 없어요. 남의 집에 들어가서 물건 훔친 적... 그런 죄를 지은 적은 없어요. 
아주 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그런 방탕한 생활... 그렇게 산 적은 없어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괜찮겠습니까? No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저 자기 생각, 자기 능력의 범위 내에서만 살았던 사람, 
그게 얼마나 주님 앞에 섰을 때 가슴을 크게 (안타까워서) 치는 것인지... 
'나는 왜 그렇게 밖에 못 살았을까?' 이렇게 될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돼요. 

우리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한 번 해 봅시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 그것 좀 해봅시다. 
그러면 이제 여러 의견이 나옵니다. 

그럴 때 이런 말이 항상 발목을 잡아요. 
'그거 실패할 것 같은데요...' 
'아, 그거 믿음으로 해 본다고 해놓고, 그거 안 되면 어떻게 해요?' 꼭 이런 말이 나와요. 

'믿음으로 한다'는 일은,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이 큰 일입니다. 
계산해 보고, 따져 보고 한다면... 믿을 게 뭐 있어요? 

그렇죠. 지금 여러분이 돈이 십만 원이 있는데, 
만약에 어떤 어려운 사람이 1만 원만 좀 도와달라고 하면, 
여러분이 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게 어려울 거 없지요. 
'제가 도와드리지요' 
뭐 그때 만 원 드리는 것 때문에 기도할 필요가 없지요. 

근데 내가 가진 건 만원 밖에 없는데, 어떤 사람이 십만 원을 도와 달래요. 
자, 이럴 때는, 이거 돕기는 해야 될 것 같은데, 나는 가진 게 만 원 밖에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요? 정말 간절히 기도가 나오는 거죠. 

 

'하나님, 이거 십만 원을 도와줘야 될 것 같은데, 내가 가진 건 만원 밖에 없습니다. 
주여, 어떻게 하 하면 좋습니까? 주여, 좀 제발 역사해 주세요!' 
항상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할 때는, 이런 위기가 옵니다. 

근데 만약에 돕겠다고 해놓고, 실제로 돈이 안 생기면 또 어떻게 해요?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되는 거죠. 

근데 여러분 꼭 기억해야 돼요. 실패 가능성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되는 거예요. 
'절대 실패는 하면 안 돼, 절대 실패는 하면 안 돼!' ... 그러면 믿음으로 못 삽니다. 

▲베드로가, 주님이 물 위를 걸어 오실 때, 
그때 '당신이 진짜 주님이시라면, 나도 이 물 위를 걷게 해 주옵소서'  마14:28

주님이 '오라' 하시니까, 그는 그냥 배에서 물 위로 뛰어 내렸어요. 
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을까요, 못 걸었을까요? 
여러분이 성경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제 질문에 대답해 보십시오. 

그럼 백 퍼센트 물에 빠지는 거죠. 
정말 그렇게 무모하게 하면 안 되죠. (이건 성경을 모르는 사람의 대답이었고요)

네, 그런 점은 정말 조심하셔야 되지만, 베드로는 이때 참 잘 했어요. 
베드로도 그건 거의 가능성 제로 예요. 그런데 믿음으로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물 위를 자기가 어떻게 걷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베드로가 물 위를 좀 걷기는 했지만, 금방 물에 빠졌죠. 
결국은 물에 빠져서 막 허우적 거리는데, 
예수님께서 그 베드로의 손을 잡고 일으켜 건져 내셨잖아요. 그죠? 

그런데 다른 제자들은 그런 수모도 안 당하고, 그런 어려움도 겪지 않았어요. 
배 안에서 그저 가만히 있는 바람에, 물에 빠지는 이런 일도 안 겪었어요. 

근데 잠깐이라도 물 위를 걸어본 경험은 못 한 거죠. 
성경은 누구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시도하고 실패한) 베드로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 말도 안 되는 그런 시도, 믿음으로 해보려고 했던 그 시도, 
다른 제자들은 뭐 생각이 없어서, 믿음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겠어요? 

자기들도 해 보고 싶었겠지만, 너무 말도 안 되니까... 아예 시도를 안 한 거죠.

근데 베드로는 달랐어요. 
'정말 주님이시라 면 나도 걷게 해 주세요!'  마14:28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게, 우리 보기엔 아슬아슬 하잖아요.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 베드로의 무모할 것 같은 그 시도를,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이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그리고 제자들이 복음을 들고 사도로서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로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의 삶은, 물 위를 걷는 것 같은 그런 (어쩌면 무모한) 삶의 연속이 될 거니까, 
그날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아주 분명한 메세지를 받은 거예요. 

베드로도, 다른 제자들도 '주님 바라보고 나아가면 물 위도 걷는다!'
'베드로가 걸었잖아, 우리가 다 봤잖아!' 

'우리는 그때는 그냥 그런 믿음이 안 되니까, 뱃전에 앉아 있기만 했지만 
베드로가 실제로 무리를 걷는 거, 우리도 봤잖아!' 

실제로 그 다음부터 이제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그들은 달랐어요. 
그게 사도들의 그 다음의 생애였고, 역사였어요. 

▲오병이어의 기적, 여러분이 잘 아실 거예요. 
빌립은 계산이 굉장히 빨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무모해요. 
계산한들 아무 의미가 없어요.

남자들만 오천 명, 여자들까지 하면 거의 뭐 한 2만 명 
그렇게 많은 무리에게, 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해요? 
빌립이 계산해 보니까 2백 데나리온의 돈이 있어도, 해결할 길이 없어요. 

그러니까 빌립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니까 
뭘 해보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안드레는 그런 상황인 줄 뻔히 알면서도 
소년의 보리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그걸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께 가지고 나왔어요. 
'주님, 우리가 가진 게 이것 밖에 없습니다' 

안드레는 뭘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생각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죠. 

그런데 주님은 그 안드레를 통해서 역사하셨어요. 
성경이 어디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를 아셔야 돼요. 

실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안 되는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주님이 그걸 원하시니까, 주님이 물 위로 오라고 하시니까' 
그렇게 나아가는 이 믿음이 없이는, 이 말씀을 절대로 경험을 못 합니다.

실패하지 않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실패를 해도, 주님이 하라는 일을 했습니다. 
주님이 하라고 명하셔서 제가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실패네요...' 

주님 앞에 섰을 때, 어느 쪽을 주님이 기뻐하시겠어요? 
'저는 실패 할까 봐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저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주님이 하라고 하셔서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갈라지는 거예요. 
'이 말씀이 실제로 체험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여기서 갈라지는 거예요. 

▲제가 15년 전에 선한목자교회에 부임해 올 때 
모두가 이 교회에 가지 말라고 그랬어요. 
'유목사님이 거기 가셔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 교회는 해결이 안 됩니다.' 

저도 가만히 형편을 살펴보니까 
제가 이 교회에 와서, 어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제게 없었어요. 
저 자신이 저를 알지요. 

그런데 '힘들고 어려우니까 안 갈 거냐?' 그게 딱 제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가서 성공할 거냐?' 저는 자신이 없었어요. 
내가 거기 가서 해봐도 실패할 것 같아요. 

'그렇게 어려우니까 그러면 안 갈 거냐?' 
'아니, 주님의 일을 어렵다고 안 가면 되나? 
그건 갈지, 말지 결정을 지을 조건이 아니잖아? 
주님이 가라고 하시면 (무조건) 가야 되는 거지!' 

여러 가지를 기도하고 또 분별해 보면서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잘못된 길은 아니다!' 
그래서 결단하고 온 거거든요. 

만약에 꼭 성공 해야만 가는 길, 
그랬다면 한 번 저는 선한목자교회로 안 왔을 거예요. 엄두도 안 났으니까! 

여러분들도 이제부터 무슨 일이든지 판단의 기준을, 
'앞으로 성공할 거냐, 실패할 거냐?'로 보면 안 됩니다. 
'주님이 기뻐 하시느냐, 아니냐?'는 거예요. 

 '이 일을 주님이 기뻐하시냐?' 
주님이 기뻐 하시면, 뻔히 실패할 것 같아도, 나갈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돼요.

<대만 교회 목회자 세미나> 했을 때, 제가 거기서 '예수 동행 일기'를 소개를 했어요. 
그랬더니 어떤 질문이 계속 나오냐면 
'그 일기 쓰면, 교회가 성장 하느냐?'는 거예요. 

대만 교회 목사님들의 관심은 온통 '교회가 성장하는' 것에 있었어요. 
그래서 '그 일기 쓰면 교회가 성장 하느냐?' 

제가 '아니 교회 성장하는 거 하고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교인들 반응을 보면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고, 주님과 온전히 하나 되고,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떠이는 데는 매우 유익한 것 같습니다.' 

'아니, 그 말 아니고, 그 일기를 쓰면 성장 하느냐고?' 
이렇게 계속 물어보시더라고요. 

제가 참 답답했어요. 목사님들이신데도, 목표는 오직 교회 성장에만 두니까 
그러니까 주님이 역사하시지 못 하는 거예요. 

교회 성장은 정말 주님이 하실 일이죠. 
저는 믿어요. (일기를 쓰면) 교회도 성장한다고 믿지만, 
그러나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예수동행 일기를 쓰라' ... 그러면 다 실패 해요. 

교회를 성장 시키기 위해서 예수동행 일기를 쓰는 목회자는, 다 실패해요.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성도가 되도록 훈련시켜 주는 일이.. 그 자체가 기쁨이죠. 
주님이 그걸 더 원하시죠. 

그렇게 하다 (일기를 쓰다) 보니까 성도들이 은혜가 되고, 
또 더 은혜롭게 복음의 문들이 열려서 전도가 되고, 
그것이 교회도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되지요. 

'예수동행 운동, 이게 성공할 건가?' 
처음에는 성공할 것 같지 않더라고요. 

일기를 쓰라고 그러니까, 다 고개를 돌려요. 
아니면 고기를 숙이거나... 눈을 안 맞추는 거죠. 
그러니 뭐 그게 뭐가 되겠어요? 

목사님들에게도 소개했더니 '제게는 일기 쓰라는 말 하지도 말라고' 
그리고 저하고는 여행도 같이 안 가겠대요. 
'매일 일기쓰는 목사 하고, 무슨 재미로 여행을 다니겠느냐고...'

제가 정말 괴로웠어요. 
'주님, 이 예수동행 일기를 쓰는 사역을 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성공할 거냐? 실패할 거냐?'를 생각했으면.. 안 하는 게 낫죠. 그죠? 
근데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뭔가? 
아, 그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겠구나!' 그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아멘 이에요. 
그러면 순종의 길로 가는 거죠. 
이건 굉장한 변화예요. 우리의 마음의 생각의 변화!
 
지난 주일에 이번에 '속회 관계 전도' 했던 분들, 교회로 초청을 했습니다. 
193분이 교회까지 오셔서, 예배 같이 드리고 가셨어요. 

실제로 이렇게 전도를 해보면, 이게 될 것 같지가 않아요. 
우리 교우들이 '속회 관계 전도'에 너무 열심히 참여해 주신 것은, 참 기적과 같은 일이에요. 

처음에는 교우들이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더라고요. 왜 그랬지요? 
'해봐야 안 되는데 뭐... 요즘엔 전도 안 되는데... 
속회 나오라 그러면 누가 오겠어? 어차피 안 될 거 시작도 하지 말자...' 
이런 생각이 쫙 퍼져 있었어요. 

그러니까 '성공할 거냐, 실패할 거냐?' 따지면 전도 못해요. 
이번에도 193 명이 오셨는데, 많이 온 거에요, 적게 온 거예요? 

마지막에 우리가 전도 초청 하신 분들이 몇 분인 줄 아세요? 3,390 명입니다. 
3,390 명에게 '우리 속회로 오세요. 우리가 이렇게 좋은 잔치를 준비했는데, 
오셔서 함께 식사도 하시죠.' 이렇게 초청을 했어요. 

그 중에서 교회까지 오신 분이 193명, 
전도를 193명에게 한 게 아니고, 실제로는 3,390명에게 한 겁니다. 
전도 했잖아요. '예수 믿으시라고, 꼭 교회 나오시라고' 
우리가 그분들을 초청하고 전도 했잖아요. 

근데 참 이게 미련한 방법이에요. 실제로 그렇게 애쓴 거에 비해서는 
열매가 너무 적어 보이잖아요. 

여러분,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반드시 해야지요. 
미련해 보이고.. 뭐 열매가 적어 보여도.. 그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잖아! 
'빈 방석 놓고라도 잔치 하면 되지 뭐!' 
'그렇게 몇 년을 하면 주님이 반드시 문을 여실 거 아니겠어?'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거예요. 

저희 교회에서는 간증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무슨 성공 사례를 발표하는 간증은 별로 없어요.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이니까 제가 갔습니다. 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니까, 주님이 하려고 하시는 일이니까.. 
순종하는, 행동하는 그 믿음이 진짜 간증이죠. 

어느 나라나 복음의 열매를 맺는 배경에는, 순교의 피가 있습니다. 
여러분 순교자는 성공한 사람일까요, 실패한 사람일까요? 

아니 예수님 전하다가 죽었어요. 
'예수님을 전하다가 고난도 있었지만, 결국은 다들 예수 믿게 됐다'...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예수님을 전하다가 (결과도 못 보고) 죽었어요. 그냥 비참하게 죽었어요. 
그럼 누가 예수 믿고 싶어요? 
그러니까 순교자는 어떻게 보면 완전히 실패자예요. 백 퍼센트 실패자예요. 

우리들도 마음에 늘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님이 나더러) 순교 하라고 그러면 어떡하나?' 그런 마음의 걸림이 있어요. 

왜요? 너무 비참 하니까, 너무 실패 같이 보이니까! 
만약에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사람, 
그래서 '오직 성공하는 길만 찾아가야 돼!' 그런 사람은 순교 못 합니다. 

오만의 오종석 선교사님이, 오만의 무스카트 라는 곳에 외국인들의 무덤이 있는데 
그곳을 다녀온 글을 쓰셨더라고요. 

그 무덤 중에 영국 성공회의 파송을 받아서, 파키스탄에서 평생을 사역하다가 
은퇴하시고,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서 이제 남은 생애를 보내고 계시던 
토마스 샘 이라는 선교사님이 

중동 지역 선교를 담당하고 있는 사무엘 쯔엠이라는 분의 사역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슬람권 세계 속에서 중동에서 참 힘들게 사역하시는 쯔엠 선교사님 이야기를 듣고, 
토마스 샘은 은퇴를 이미 하신 분인데, 그 나이 많은 몸으로 오만으로 옵니다. 

오만에 와서 그 무더위와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6개월 만에 죽어요. 
그분이 묻힌 무덤이, 오만 무스카트 외국인 무덤에 있더랍니다. 

오종석 선교사님이 그 무덤 앞에서 '이 어리석은 일을 왜 하셨나? 
(토마스 샘이) 오만에 오셔서 6개월 만에 한 사람도 무슨 전도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냥 죽어서 이 중동 땅에 묻힌 이 나이 많은 선교사님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 길을 가셨나?' 이런 생각이 쭈욱 들더래요. 

근데 그때 마음에 어떤 생각이 딱 드냐면 
'아, 이 분(토마스 샘)이 엄청난 일을 하셨구나! 
그렇게 아무 빛도 없이 허무하게 6개월 만에 그렇게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하나님이 이 오만을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드셨구나...'
 
당신은 육 개월 만에 죽었어요. 선교적인 열매도 아무 것도 없고... 
그렇지만 그곳에 묻혀서 무덤이 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이 오만을 포기 하시겠냐?
그 토마스 샘 선교사의 그 죽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의 순교를 받으신 하나님이, 
그리고 나 오종석을 이곳 오만으로 오게 한 것이 
바로 그 토마스 샘 선교사(의 죽기 전 기도) 때문이었구나!'  

토마스 샘 선교사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요? 
'하나님, 내가 여기서 이렇게 그냥 죽습니다. 
그러나 이 땅 오만을 포기하지 마시고, 이 땅에 복음을 전할 선교사들을 계속 보내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여기 오만에 온 거구나!' 
그래서 받은 은혜를 글로 쓰셨어요. 

제가 오종석 선교사의 글을 읽으면서, 굉장히 참 은혜가 됐어요. 
'선교사가 가서 순교 했다. 그게 실패 일까요?' 절대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만약에 우리에게 어떤 계산이 너무 빠르면, 
주님이 일하실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못 해요...

 

▲제가 예수 동행 일기 사역을 처음 시작할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저에게,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너는 실패할 거다' 

아니, 격려를 해주셔야 되잖아요. '너 잘 될 거야' 그렇게 말씀하셔야 되잖아요. 

근데 너무 분명하게 '너는 실패할 거다!' 
갑자기 제 마음이 이렇게 턱 내려 앉아요. 

저는 이 예수동행 일기를 쓰게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모든 교회 집회, 부흥회 인도를 다 포기했어요. 시간적으로도 안 맞고... 
그래서 '제가 부흥회는 더 이상 못 갑니다. 
저는 이제부터 예수동행 일기, 또한 위지엠 사역만 하게 되겠습니다.' 

사실 뭐 목회하던 교회도 어지간히 안정됐어요. 
그리고 여기저기서 설교해 달라고 이렇게 요청하는 데도 있고, 
나름대로 이제 어느 정도 목회가 안정기에 접어들어서 
이렇게 그냥 은퇴할 때까지, 그저 교우들 하고 재미있게 목회를 해나가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성도들이 주님을 계속 바라 보도록, 
매일 매일 일기를 쓰면서, 서로 나눔방을 갖도록' 
이 사역을 하라는 거죠. 

만만치가 않은 일이고, 목사님들 사이에서도 서로 마음이 하나 되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그렇게 막 힘들어 하고 있는데, '앞으로 너는 실패할 거라'는 거예요.

 

'이 일이 실패할 것이다...' 
그러면 실패할 일을 왜 해요? 
근데 주님이 또 물으시는 거예요. '너는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안 할 거냐?' 

당연히 제가 안 하지요. 실패할 거면 안 하지요. 

근데 그런 대답을 듣기 위해서, 주님이 제게 질문하신 게 아닐 것 같아요. 
'너 실패할 거기 때문에 안 할 거냐?' 
제 마음이 참 무겁더라고요. 

정답은 뭐예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답 찾는 일이 제게는 중요한 관심이었어요. 
그래야 성적이 오르니까! 

제가 뭐 믿어지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지...  그건 상관이 없어요. 정답이 중요한 거지. 
근데 정답은 '실패할 거라도 해야 된다'는 거였어요. 

'실패할 거라도 해야 된다!' 정말 숨이 확 막히더라고요. 

이게 실패할 줄 알면서... 계속 영성일기 쓰시라고... 교우들에게 그렇게 권하는 일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될 일을 하면, 보람이라도 있죠. 
'어차피 안 될 일을 한다고, 이렇게 고생을 해야 되나...' 

근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깨우쳐 주셨어요. 
제가 하도 그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니까...
'내게는 실패이지만, 주님께는 실패가 아니다'라는 겁니다. 

성도들에게 '주님을 계속 바라보십시오. 
매일 일기를 쓰면서까지 주님 바라보는 생활을 계속 유지해 가십시오. 
그러면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분명히 열리게 됩니다. 
주님과 친밀한 동행하게 됩니다...' 

그렇게 막 권하고 또 권했는데... 제가 죽을 때까지는 열매가 없어요. 
그러면 (그 사역은) 실패죠. 뭐 그렇게 했는데도 별 열매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주님은 1백 년, 2백 년 이어가면서, 그 일을 쭉 진행해 나가실 때... 
주님은 무언가를, 언젠가는 열매를 거두실 거 아니에요? 

그게 만약에 2백 년 걸려서 열매를 거두게 될 일이라면, 
저는 실패해도 가야지요. 
'실패하면 안 가!' 그러면, 누가 주님의 일을 바턴을 받아서 게속 해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금 2천 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어요. 
주님은 어떤 일을, 뭐 3백 년, 5백 년, 1천 년, 2천 년에 걸쳐서 일을 진행하시는 분이에요. 
우리는 기껏 살아야 백 세도 못 살아요.

'꼭 내가 성공하는 사역만 해야 되겠다' 
우리가 만약 그렇게 나온다면, 
주님은 당신의 종을 불러 쓰시려고 해도, 기꺼이 손해볼 종을, 못 찾으실 거예요. 

그러니까 순교자도 나오는 거예요. 
자기 살아 생전에, 열매를 못 거두는 사역자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사실은 진짜 포기예요. 
왜요? 하나님 앞에 가서 (보상을) 다 받을 거니까! 
이 세상에서는 못 받겠지만, 하나님 앞에 가서 다 받을 거니까요! 

그리고 우리 주님이 다시 재림해 오실 때, 
그때는 그 수고 열매들을, 다 그때 보상받을 거니까... 그죠? 

세상에서 성공하고 영광 다 받은 사람은, 더 받을 것도 없잖아요. 
그게 확 제 마음에 깨달아 지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주님, 저는 실패 하겠지만 주님은 실패하는 게 아니군요. 
제가 하여튼 뭐 성도들이 반응이 있든지 없든지 
제가 목회를 여기서 하는 동안에 
교인들이 다 예수님 동행일기를 쓰든지 안 쓰든지, 
이제는 저는 그걸 상관하지 않고, 

그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니까, 주님이 명령 하신 일이니까, 
주님, 저는 그 길로 계속 가겠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칠 년을 지내왔어요. 

▲지난 7년을 가만히 뒤돌아보니까, 이건 정말 기가 막힌 일이더라고요. 
만약에 주님이 '유목사, 너 성공할 거야... 참, 너는 내 마음에 든다. 너 잘 될 거야... 
교인들이 뜨겁게 반응할 거야... 교회들이 막 뜨겁게 반응하고 일어날 거야...' 

이렇게 제가 (지시를) 받았다면, 저는 하다가 중간에 끝냈을 거예요. 왜요? 
안 되니까! 
분명히 주님은 성공할 거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안 되니까... 

목회자 세미나도 한 1백 명 모인 목회자 세미나를 하면, 
한 대여섯 명 쓰시고, 나머지는 '그때만 은혜 받았다'고... 그러고 끝나더라고요. 

그러면 이 사역을 계속 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아휴, 세상에 이것 때문에 내가 다른 거 다 포기하고, 
영성일기 세미나를 하고 돌아다녀?' 이런 느낌이 확 들지요.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벌써 끝냈어요. 20차 (세미나) 까지 오지도 않아요. 
그런데 '너는 실패할 것이다' 라고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사역이 안 되는 게 그냥 당연한 거예요. 

진짜 영성일기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반응하는 목회자들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그래, 주님이 실패한다고 그러셨지... 그래도 나는 계속 가겠다고 했지...' 

근데 참 이상하죠. 7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확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지금은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막 문이 열리기 시작해요. 

그때 주님이 저에게 '너는 실패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제가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저를 준비시키신 섭리예요. 

되는 길만 찾아 다니면.. 주의 일은 못 하는 거예요. 
안 되는 것 같고, 이건 뭐 어리석은 일 같고, 
이건 뭐 도무지 반응도 없고... 근데 주님은 그 길을 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반응을 무시하고 계속 사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주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옥토 밭만 갈려고 생각하지 말고, 
돌짝 밭도 엄청나게 귀한 복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이 이 믿음이 분명하면, 그러면 반드시 
'주님이 하시는 일도 하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요14:12
완전히 주님을 신뢰하고 나갈 수 있는 믿음이 되니까요. 

'아휴, 목사님 저한테는 제발 좀 그런 거 시키지 마세요. 저는 믿음 없어요. 진짜...' 
또 이런 분들이 있어요. 

자기가 믿음 없다고 엄청 강조하는... 
그런데 정말 믿음 없는 사람은, 여기 집회에 찾아오지도 않았겠죠. 

우리가 다 믿음이 있어요. 작을 뿐이죠. 그렇죠? 
믿음이 아직은 작을 뿐이에요. 

근데 여러분, 믿음이 작다는 게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던 게, 믿음이 커서 그런 줄 아십니까? 

베드로가 확 물에 빠졌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뭐라고 그러셨는지 아세요?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 하였느냐?' 마14:31

아, 믿음이 그렇게 작다고 주님한테 이렇게 책망 받은 베드로가, 
이렇게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안에, 겨자씨 같은 믿음이 있으니까 오늘 여기 집회까지 오신 거죠.
믿음이 아예 없었으면 왜 여기 와요? 몽유병자입니까? 
잠이 안 나서 어떻게 방황하다가, 길을 지나가다가 무슨 영화관 인줄 알고 들어오셨나요? 
그건 믿음인 거죠. 여러분을 여기까지 인도 하신 것은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인 거예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으로 살아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데 쓰지 않으면, 절대 믿음은 안 변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아보면, 반드시 그 믿음에는 역사가 일어나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어느 순간에 나도 하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는 일을 보게 되는데... 그건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주님이 내 안에서, 나를 통해서 하시는 거예요. 
'아~ 나는 그게 안 믿어져..' 하는 사람은, 
진짜 예수님을 믿는 이제 중요한 때에 온 겁니다.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을 믿으면, 
그러면 여러분이 주님의 일을 하고, 더 큰 일을 하는 게 뭐가 걱정이 돼요? 
뭘 믿기가 어려워요? 

..................... 더 읽으실 분 (길어서) ................

 

신대원 제자 훈련을 했더니, 전도사님 한 분이 간증을 하시는데 
그런 간증을 하세요. 

"예수님의 사람 제자 훈련" 코스를 하면서 
자기 마음에 '죽기 싫은 마음'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걸 발견했다는 거죠.
'아, 죽으면 무슨 희망이 있어? 죽으면 이제 고생만 할 것 같고... 
제자 훈련 하면서도 (전도사님 이신데) 나는 정말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기 싫어...' 
이런 생각이 자기에게 계속 있음을 알았다고 간증 하더라고요.

저도 실제로 그런 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그 전도사님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 하겠더라고요. 

결국은 우리 속에 역사가 있어요. 열쇠가 있어요. 
주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예수님과 내가 이미 연합하여 죽었고, 

이제는 예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들의 마음을 여세요. 

그때부터 주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세요. 
'주님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구나...' 그게 깨달아 져요. 실제 체험이 와요. 

뉴욕의 그레이스 침례교회가 있는데, 레슬리 플린 목사님 이라고 계십니다. 
그 목사님의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교회가 있는 지역에 술집이 하나 있는데 
송구영신 예배 드리는 날, 연말 마지막 날, 
그 술집에 이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그 목사님의 아들이 있었어요. 
사무엘이라고... 레슬리 플린 목사님의 아들이 아주 방탕한 생활에 빠져서... 
목사님에게 극한 슬픔이었지요. 아들이 저렇게 방탕하게 사니까... 

그래서 송구영신 예배 드리는 날, 그 아들은 술집에 가 있었다니까요. 
근데 누가 술집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서 하는 이야기가 
자기가 술집으로 오다가, 그 교회 앞을 지나 왔는데 
교회에서 지금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있더래요. 
그러면서 '우리도 여기서 예배드립니다' 완전히 하나님을 조롱하는 투로 얘기한 거죠. 

그러면서 자기 앞에 있는 어떤 한 사람에게 '당신이 기도해 주세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알겠습니다' 그러고, 즉시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이제 교인들이 하는 식으로 흉내를 내가면서 기도를 해요. 완전히 조롱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 다음에는 '우리 찬송 합시다' 
찬송은 기본적으로 아는 나라니까, 그러니까 술집에서 술 마시면서 
찬송가를 또 흥얼거리면서...  정말 히히덕 거리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더니 이 사람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 사무엘 청년이 거기에 앉아 있는 걸 보고,
그가 목사님 아들인 걸 다 알지요. 다들 동네 사람이니까! 

'사무엘, 당신이 설교하시오. 당신 아버지가 목사님이잖아? 그러니까 당신이 설교하시오!'
사무엘은 '그건 싫다'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 날 술집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설교 해, 설교 해!' 
어떤 사람은 설교 제목까지 정해 주었어요.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니까... 사무엘은 할 수 없이 주저하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더듬 더듬 이제 입을 열어서 설교를 해요. 
아버지가 늘 설교 하던 기억을 더듬어서요... 어릴 때부터 듣기는 했으니까요. 
그냥 주워들은 대로 설교를 합니다. 

"우리가 다 마음에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죄는 너무 심각해서, 우리가 절대로 바르게 못 삽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빨리 회개하고 돌아서지 않으면, 
우린 영원한 지옥에 갑니다..." 다 아버지가 설교할 때 이렇게 들은 내용들이에요. 

그러니까 뭐 술집에 있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농담하는 줄 알고 다들 웃었죠. 

근데 사무엘은... 자기가 차츰 이상해지는 겁니다. 
아버지 흉내를 내면서, 이렇게 아버지가 했던 말을 따라 했는데 
이게 막 마음이 뜨거워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꼬였던 발음도 정확해 지고, 마음도 점점 간절해 지고,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어머님이 늘 어릴 때부터 이야기해 주던 내용, 
그 어린 시절에 교회학교를 다니면서 들었던 성경 구절들, 
아버지가 설교 했던 내용들, 그런 내용들이 막 머릿 속에 떠오르니까... 

그러니까 막 그 떠오르는 말씀들을 전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술집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졌어요. 

처음에는 장난처럼 하는 줄 알았는데, 메시지가 점점 강해지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쟤 정신이 없네?' 이러면서 이제 서로 막 야유를 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서서히 그런 야유가 이제 가라앉고, 
다들 그 사무엘이 말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겁니다. 

사무엘은, 자기가 자기 입으로 아버지 설교를 흉내 내서 하다가 
그게 자기를 향하여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확 깨달아 졌어요. 

"이것이 진짜라면, 우리는 이 시간에 여기서 바로 회개해야 됩니다." 
본인이 그렇게 선포 하고는, 그가 술집 한복판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그러자 같이 술 마시던 사람들 중에 두 명이, 같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어요.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결단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흉내 내고 조롱하고 하던 것이 
싹 다 가라앉았어요. 

그 날 저녁에 이제 송구영신 예배가 끝나고, 
그 목사님은 예배당에서 나오시고 
그 아들은 술집에서 은혜 받고 나오다가... 서로 길에서 만났어요. 

그리고 아버지에게 그날 저녁 술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쭉 했습니다. 
그 레슬리 플린 목사님은, 얼마나 마음이 감격스러운지... 

그렇게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마음이 절망 될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계속 기도를 쉬지 않게 하신 하나님... 

근데 이런 역사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거예요. 
서로가 함께 밤이 새도록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거죠. 

지금도요. 성경말씀 그대로예요. 
주님은 우리를 떠나서, 저 어디 하늘 나라에 가 계신 게 아니고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세요. 
지금도 (과거와) 똑같이 역사하고 계세요. 오늘도 똑같이 역사하고 계세요. 

'너희는 내가 하는 일도 하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요14:12 

여러분, 다른 것도 다 중요한 말씀이지만, 
요14:12절은, 정말 응답 받고 실제로 누리고 살아야 될 말씀이라고 
저는 그렇게 깨달아졌어요. 
그래서 이 말씀을, "하나님의 약속 시리즈"의 마지막 말씀으로 택하고 싶은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