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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하시는 하나님 출15:22~26 2005.08.21.
※주제 : 몸이 아픈 사람이 많고, 특별히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데,
-과거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이.. 현재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미래의 천국을 기억하고 소망하는 사람이.. 현재 올바르게 살며,
이런 올바른 생각, 가치관, 믿음을 가질 때... 우리가 진정 치유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과 성령이 우리를 치료하는데, 영이 온전해지면, 육체의 치료에도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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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신병원에 환자 하나가 유독히 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큰 소리로
‘나는 나폴레옹이다, 나는 나폴레옹이다’ 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다닙니다.
물론 정신병자니까 그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도 없습니다마는
그를 뒤따라가는 또 다른 정신병자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야, 내가 언제 너를 나폴레옹으로 임명했느냐?’ 그럽니다.
참 이상한 게 하나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정신병자들은 정신이 없는 중에도 한마디씩 하는데 전부 교만하다는 거예요.
자기가 제일 잘났어요. 이상하잖아요? 그게 공통점이랍니다.
그러니까 교만하면 정신병자 되고, 겸손하면 정신병도 안 걸린다...
일단 그렇게 생각해도 됩니다.
정신병을 전문으로 연구하며 치료하는 분들의 말에 의하면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 하면,
정신병 환자는 하나같이 자기가 정신병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는 정신병이 없다는 겁니다.
‘저 나쁜 사람들이 나를 여기 가둬놨지 나는 멀쩡하다’는 겁니다.
자기가 정신적 질환이 있다는걸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걸 인정하기만 시작하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걸 인정하게 하는데 그렇게 어려운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다 정신병자고, 자기는 온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병의 근본 이유입니다.
▲또 한가지는 병중의 가장 무서운 병은, 자각증상이 없는 병입니다.
병은 걸렸는데 아픈 줄은 모릅니다.
저희 교회에 산부인과 의사로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부인 그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조금 몸이 불편한 거 같아서 조사해봤더니
부인병 3기 말기예요.
내가 남을 치료한다 하면서, 내 아내가 병들어 죽어가는 걸 몰랐어요. 왜요?
자각증상이 없었거든요.
하기야 뭐 6개월에 한 번씩 조사해야 한다고 떠들면서도
내 마누라가 그럴 줄은 몰랐거든요. 이건 진찰하지 않았더라고요.
결국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됐습니다.
여러분 아픈 줄 모르는 병, 통증이 없는 병, 이게 바로 문둥병입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자각증상이 없는 병이 많아요. 이건 난치병입니다.
▲또 한가지는 아픈 것은 있어요. 통증도 있지만 원인을 모릅니다.
여러분 요즘 잘 아시지만, 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진찰하는 데만 일주일 걸려요.
피도 뽑아서 검사하고, 각종 첨단 장비를 다 동원해서 검사한다고 그 난리를 치다 보면
멀쩡한 사람도 병들게 생겼다고요. 왜요? 원인을 찾기가 어려워서예요.
그렇습니다. 아픈 것은 있는데 원인은 몰라요.
의사도 이거 바로 맞추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상당한 퍼센트의 오진이 나오는 거예요.
이거 인줄 알아서 치료를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진단이 잘못된 거예요.
왜 의사가 잘못 진단합니까? 병명을 뭔지 확실히 모르니까...
원인을 몰라서... ‘아마 이럴 것이다’ 하고 진단하는 거죠.
아픈데 원인을 모르는 병은.. 죽을 병입니다.
▲미국의 전문상담가인 아돌프 퀘자다 라는 분이
<Loving yourself for God's sake> 라는 하는 아주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인은 하나같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혼돈과 불평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고 있다.”
대단히 중요한 얘깁니다.
먼저는 자신의 어떠한 존재라는 것에 대한 혼돈과 불평이 있어요.
1) 우선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불평이 있어요.
-내가 왜 이렇게 키가 작을까?
-왜 난 클까?
-나만 이렇게 못생겼나? 거울을 볼 때마다 불평이예요.
이건 못 고치는 병입니다.
2) 그런가 하면 자기 성격에 대해서도 불평이 많아요.
자기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내 성격은 영~ 못 되먹었다’ 이거예요.
3) 또 자기의 기능, 자기 능력에 대해서 항상 불만족합니다.
-나는 이것도 못났고 저것도 못났고... 이렇게 존재에 대한 불평이 많아요.
그러나 아시는 대로 이건 고쳐질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이거야말로 못 고치는 병이예요.
4) 또 하나, 자기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에 대한 불평이 많아요.
혼돈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소속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부모에 대해서,
내가 낳은 자식에 대해서도 내가 불평을 해요.
그래서 그랬다면서요? ‘너는 도대체 누구 자식인데 그러냐?’ 하고 자녀를 나무합니다.
내 자식에 대해서 내가 불평하고 있는 거예요.
이거 무서운 병입니다.
5) 또 한가지는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해서 후회가 많아요. 스스로 불평하는 거예요.
소망적으로 볼줄 모르고, 항상 절망적으로 자기 자신의 행위를 평가하고 있어요.
그래서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살아갑니다.
▲자 이제 아돌프 박사는 말합니다. 이제 이로부터 구제할 수 있는 길은 어디 있느냐?
‘구체적은 일은 당신 자신이 할 일이고, 원리만 말 하겠다’ 그랬어요. 그렇죠.
원리적인 것만 말합니다.
1) 첫째 과거와 화해하라. 나의 과거와 화해해야 됩니다.
여러분 지난날 그거, 너무 그렇게 아파하지 마세요.
성공한 사람마다 자기 과거를 미화한답니다.
‘그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내가 있다’ 안 그렇습니까?
저는 지금 생각해도, 북한에서 강제노동 수용소에 가서 몇 달고생한 거,
또 고학을 하느랴고 한 10년동안 고생한 거,
군대 생활한 거, 뭐 이런거...
아 그때야 참 힘들었지요만, 지금 난 생각해봅니다.
‘그날이 있었기에 나의 오늘이 있다’ 안 그렇습니까?
가끔 젊은 목사님들이 ‘아니 어떻게 하면 곽목사님만큼 설교할 수 있습니까?’ 물어요.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하죠. ‘여러분이 나처럼 살아야지...’
나의 뼈아픈 과거가 오늘이 있으니까, 오늘의 내가 있는 거예요.
보세요. 그 과거가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일들이었습니까?
그런데 건강치 못한 사람은, 과거를 후회할뿐더러, 과거로 돌아가는 거예요.
과거 때문에 자기 현재가 망가졌다고 생각해요.
아네요. 과거 때문에 오늘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거거든요. 이게 차이가 나는 거예요.
그런고로 ‘과거와 화해하라!’
과거는 당신을 아름다운 미래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2) 두 번째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버리고, 실제에 대해서 감사하라.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내가 내 자신을 용서하고, 내 스스로 만족하라.’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남을 누구도 행복하게 할 수 없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셋째는 지금도 모든 상황 속에, 내 자신의 존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확증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이다’ 라고 할 때 만
그 사람이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증, 하나님의 자녀됨에 대한 긍지,
이것이 자기 구제의 마지막 길이라고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왔습니다.
물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볼때는 완전 자유인입니다. 애굽에서 떠났습니다.
애굽과 인연을 끊었습니다마는 보세요,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는
아직도 애굽사람입니다. 아직도 노예입니다. 이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여러분, 이제 가만히 보면, 가나안에서 나와 가지고 홍해를 건너서
아직도 며칠 되지도 않았어요. 아직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며칠 전에 홍해를 건너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난리를 치면서
춤을 추고 아 이러던 사람들이, 잠깐 며칠 후에 물이 없다고 또 하나님을 원망해요.
모세를 원망하고... 왜 이래졌습니까?
여러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라고 하는 역사 속에,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은 게 있어요.
노예(근)성입니다. 한입니다. 원한입니다. 무책임하게 하는 불평들... 그게 체질이예요.
이것이 그들 속에서 병처럼 자리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간순간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이건 병입니다.
무서운 병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치유할려고 하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과거의 은혜로 현재를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어요.
이것이 문젭니다. 우리는 과거의 은혜로 현재를 해석해야 되요.
▲자 성경에 보면 아주 드라마틱한 얘기들이 많아요.
예수님께서 5천명을 먹였습니다. 아 광야에서 오천명을 먹이는 희한한 능력을 나타내고
지금 다음 날 아침에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데
배 안에서 빵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가 막혀서 ‘5천명을 먹이고 얼마나 남았더냐?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어찌하여 빵이 없음으로 원망하느냐? 빵이 없음으로 불평하느냐?’
어제 5천명 먹였는데... 이게 한 달 전 사건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예수님하고 같이 가면서 왜 빵 걱정을 합니까?
이 미련한 사람들이... 이 큰 능력의 체험으로, 왜 오늘을 바로 해석할 수 없더냐는 것이죠.
이게 인간의 미련함입니다. 그속에 깊은 병이 있어요.
그래서 과거에 받은 그 엄청난 은혜로, 오늘을 해석하면 이거 아무것도 아닌데...
‘이까짓 거는 아무 것도 아니야...’ 해야 되는데,
그런데 오늘의 조그마한 고통 때문에, 과거의 은혜를 다 잊어버렸어요. 깨끗이 잊어버렸어요.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저 요단강 건너에 있는 가나안 땅을 약속해 주지 않았습니까?
가나안 땅의 약속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ㅡ 오늘 이같은 어려움은 좀 참아야죠.
목말라도 참고, 배고파도 참고... 그렇지 않습니까? 이거 뭐가 대수로운 일입니까?
보세요.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습니다. 돌에 맞아 죽고
자기가 같이 지내던 동족들이 돌을 던집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나라를 쳐다봅니다.
예수님이 저기 계십니다. ‘어서 올라오너라’하고 서 계십니다.
그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무것도 아픈 것도 없어요. 슬픈 것도 없어요.
억울한 것도 없어요. 미운 사람도 없어요. 이게 스데반입니다.
미래가 확실하면, 현재는 미래속에 녹아버리고 말아요. 다 흡수되버리고 마는 거예요.
불평하는 것은, 이 믿음이 확실치 못하기 때문이예요.
▲내가 우습지마는, 제가 처음 목회할 때 신당동 중앙교회에서 전도사로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 신당동교회의 여집사님 하나가, 제가 아직 목사되기 전인데 제게 찾아와서
심각한 질문을 하겠다고 해요. 아 겁이 나더군요. ‘무슨 말을 할려나...’
딱 질문이 뭐냐 하면 ‘천당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래서 내가 ‘왜 그걸 묻습니까?’
‘전도사님, 복잡하게 설명은 안 해도 됩니다. 예스? 노?
있다면 있는 걸로 알겠습니다. 없다면 없는 걸로 알겠습니다. 대신 똑똑히 말하세요!’
그래서 제가 ‘아~ 천국은 당연히 있지요! ‘그런데 그걸 왜 묻습니까?’ 했더니
그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제 기억에 아직도 생생합니다.
‘천당 지옥만 확실하다면, 내가 이 세상 어떤 고난을 치러도
바르게 진실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복잡한 거 같지요? 모든 문제의 끝은 천당 지옥이예요.
천당 지옥을 믿느냐, 못 믿느냐에 달려 있어요.
이게 믿어지고 확 다가오면... 아직도 물질의 노예가 되겠습니까?
아직도 썩어질 육신을 위하겠습니까?
이거 보세요. 그 믿음이 문제예요.
종말론적 신앙, 약속의 땅에 대한 확실한 믿음!
이것이 오늘을 내 신앙을 결정하는 거예요. 오늘의 내 가치관을 결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미숙하고 병든 인격을 치료하십니다. 사람을 치료하십니다.
세계관을 치료하십니다. 가치관을 치료하십니다. 인격을 치료하십니다.
내 성품을 치료하십니다. 말씀으로... 때로는 사건으로...
과거의 어려움을 통하여 그리고 고통을 통하여, 전쟁을 통하여,
시련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미래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우리를 견디고 인내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치유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딱 두 가지 예요.
하나는 말씀을 들음으로 치유가 됩니다.
또 하나는 말씀으로 지킴으로 치유가 됩니다.
보세요. 루스드라에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설교하는 도중에 말씀을 들어요.
앉은뱅이가 맨 앞에 앉아서 열심히 들어요.
그 성경 속에서 참으로 귀한 말씀이라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말씀을 열심히 들어요.
뚫어져라 쳐다봐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딱 내려다 보면서
‘구원 얻을 만한 믿음있는 것을 보고...’ 그의 듣는 자세를 보고 믿음을 평가했어요.
구원 얻을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사도바울의 마음도 뜨거워졌어요. 행14:9
그래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니까, 그가 벌떡 일어났어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사람이 일어났어요.
사람들이 깜짝놀랐어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말씀을 듣는다는 거 중요합니다.
저는요 이유야 어쨌든 간에, 설교하는 가운데
여기까지 와서 졸고있는 사람은 참 안됐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말씀을 확실하게 들어야 되요. 그저 열심히 받아 먹어야 되요.
여러분, 그런 사진 보셨죠? 어미새가 벌레를 물고 오면, 새끼새들이 입을 딱 벌리고 있어요.
받아 먹을려고... 어미새가 딱 모이를 줄려고 쳐다보고 있어요.
어미새가 딱 쳐다볼 때, 새끼 새들이 입 벌리고 있을때 집어넣으면 꿀떡 삼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다 그렇게 간절히 말씀을 사모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복음은 들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그 다음에는 말씀에 순종하는 거예요.
들으면서 순종하는 거예요.
마가복음에 보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할때 그대로 믿어요.
아 얼마나 귀합니까? 순종함으로 구원의 역사는 이루워진다 그랬어요.
▲여러분 미국에 있는 의사들은 유명한 연구가 나왔는데요
전문의사 1044명을 상대로 해서 확실하게 조사를 해봤더니
의사 가운데 4명 중 3명은 하나님을 믿어요.
그뿐아니라 59%는 내세를 믿어요.
어찌 생각하면 이 의사는 과학자 중의 과학자예요.
과학의 이론 과학의 원리로 치료를 하는 사람이지만 저들은 생각해요.
‘나는 육체를 상대로 치료하고 있지만,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이걸 믿고 있어요.
직업 중에 의사가 제일 신앙이 좋아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왜? 생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고 내세가 있다고 믿어요. 이건 굉장한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여러분 치료? 여러분 육체의 병이 문제가 아네요.
영적인 병이 치료될때 육체는 자동적으로 치료가 되는거예요.
자연히 치료가 되는 거 그거 어려운 게 아니올시다.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 이름을 대지 않습니다마는, 어느 집사님 한 분 있는데 제가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는 너무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본인의 말대로는 집단 자살을...
온 집안이 같이 죽자고 했대요.
그 딸이 말하기를 ‘아버지, 죽는 건 바쁘지 않으니까 한번 교회 나가보고 죽읍시다’ 그러더래요.
그래서 끌려서 교회에 나왔어요. 생전 처음 교회라는 곳을 나왔어요.
그런데 첫 시간에 마침 제가 욥에 대한 설교를 했대요. 그분이 딱 말씀을 받았어요.
그의 말씀은 이겁니다. ‘시련이란 저주가 아니고,
시련이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하며,
내가 고치지 못한 것을 고치게 하며,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커리큘럼이다.’
이 한마디가 쏙 들어올 때, 그 분은 다시 일어나서 새사람이 되고요, 돈도 벌고요...
차츰 회복해 나갔습니다.
여러분, 딱 한마디... 이 말씀이 사람을 구원합니다. 세상을 구원합니다. 치료합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그에게 맡겨야 됩니다.
환자는 의사를 믿어야합니다. 모범적인 환자가 돼야 합니다.
의사가 하는 일에 전적으로 위탁을 합니다. 그는 우리를 치료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