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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LNCK 2025. 1. 6. 21:49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신년설교>

2025년 1월 1일 "‘산다는 것" 신년집회 

 

◈산다는 것           마2:19~23          2025.01.01. 

마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나사렛에서 '사신' 예수님


그래서 예수님은 애굽을 떠나셨어요. 애굽은 예수님이 계실 곳이 아니죠. 
하나님의 아드님으로, 메시아로 오신 그 분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준비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메시아로 등장하셔야 되니까,
이제는 애굽을 떠나서 '나사렛 예수'로, 
그래서 '애굽의 예수님'이 아니시고, '나사렛 예수님'이 되셨어요.

우리도 우리의 과거의 삶, 애굽의 삶을 떨쳐버리고 
'나사렛 사람이 돼야 된다' 하는 내용을 
오늘 (1.1.) 오전에 우리가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나사렛에 오셔서 하신 일이 뭔가요? 
오늘 방금 읽은 23절에 나사렛에 오셔서 하신 일이 뭡니까? 
그거는 '사셨다'는 거예요. 

23절 끝에 보면 '나사렛 이라는 동네에 가서 사니' ... 사신 거예요. 
여러분, 이제 새해를 맞이한 우리가 올 한 해 동안 열심히 해야 될 게 뭐냐 하면,
사는 겁니다. 

금년 한 해를 부지런히 사시기 바라요. 사는 게, 이제 우리가 해야 될 일이에요. 

 

▲그럼 뭐 '사는 것'은 누구나 다 그냥 존재하면, 저절로 사는 게 아닌가? 

여러분 존재하면 사는 거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존재하는 거기에다가 어떤 목적, 어떤 의미, 그리고 그 속에 우리 마음, 
이런 걸 담아야 그게 '사는 것'으로 승화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있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사는 거예요. (의미 있게) 사는 것! 

그래서 그냥 존재하는 거하고, (의미 있게) 사는 거는 다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살기는 사는데 '죽지 못해 산다'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여러분 이제 그런 말은 우리 입에서 없애야 돼요. 그런 말은 습관적으로라도 하면 안 되고, 
우리 성도님들의 삶이 의미가 가득한 삶이 되시고,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래요. 

사는 건데.. 이 '산다'고 번역된 동사가 에 헬라어로 '카토이케오' 인데, 
이게 두 단어가 합쳐진 겁니다.  카타 + 오이케오

오이케오.. 는 그냥 단순히 '산다' 그런 뜻인데, 
카타.. 가 앞에 붙으면, 좀 의미가 달라지는 거죠. 

이 '카타 kata' 전치사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이 '어디에 깊이 소속되는' 거예요. 
그 앞에 카타가 붙으면 어떤 장소, 어떤 대상에, 거기 소속되는 의미가 강조 됩니다. 

그러니까 '나사렛 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라는 말씀은 
'그냥 나사렛에 가서 머문다'는 정도의 뜻이 아니고, 
'나사렛에 속해서, 나사렛에 애착심을 가지고, 나사렛이란 곳을 사랑하면서, 
거기에 깊이 연결되어서 살아 가신다' ... 그런 뜻이 그 속에 있죠. dwell, settle

그러니까 이거는 그냥 일시적으로 잠깐 있다가 이렇게 지나가듯이 사는 게 아닙니다. 
'거기 속한다'고 하는 것은 지속성을 나타내는 거죠. 계속 거기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잠깐 만나고 헤어지는 게 아니라, 함께 계속 살아가는 거와 같아요.
 
처녀 총각이 만나서 사랑하게 되면, 맨 처음에는 데이트를 하잖아요. 
그래서 뭐 낮에 만나서 오후 내내 같이 있다든지, 
또 저녁에 퇴근 후에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든지... 
근데 그거는 얼마 지나면 헤어지잖아요. 각자 집으로 돌아가요.
그런 거는 '산다'고 말하지 않아요. 

언제부터 이 두 사람이 '산다'고 말하느냐면,
이제는 둘이 헤어지지 않게 될 때, 결혼을 해서 낮이든 밤이든 
두 사람이 모든 것을 함께 하게 될 때.. 그때는 이 두 사람이 같이 '사는' 거예요. 
여기 마2:23절에 사용된 이 '사니' 라는 동사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사렛 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거는 나사렛에서 일정 기간 계시다가 그 다음에 또 다른 동네에 가서 사시고,
그런 게 아니고, 나사렛 동네에 뿌리를 내리신 거예요. 거기 정착하셨어요. 

이 동사가 사용된 용례 중에서 한 가지를 보면, 
엡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계시다'가 바로 여기 사용된 그 단어예요.   *카토이케오, dwell, settle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를 한번 만나서, 악수 몇 번 하고 떠나가시는 분이 아니시고 
주님은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사시는 것이에요. 
이게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올 한 해, 주님께서 여러분 속에 계속 머물러 계시기를 바랍니다. 
늘 함께 하시는 거예요. 이게 '같이 살아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은, 내가 '주여!' 그러면, 
저기 계시던 예수님이 잠깐 왔다 가시는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고, 
늘 그 분이 우리 안에 계시다.. 내 안에 사신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주님과 우리 사이의 연합입니까!

그러니까 여기 '나사렛 이라는 동네에 가서 사니라고 할 때,   마2:23
그 '사니' 동사는 그런 뜻이다... 하는 거를 우리들이 이해해야 됩니다. 
'아 예수님은 나사렛에 가서, 거기에 뿌리 내리고 거기 정착 하셨구나. 
계속 거기 계시는구나. 거기에 마음을 두셨구나' 이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제가 오늘 '산다는 것'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는 이유가 이겁니다. *제목


오늘 새벽기도회에 제가 나올 때, 5시쯤에 집에서 출발해서 오는데 
새벽인데도 그 남산순환도로에 차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여러분, 사람들이 왜 많이 나왔을까요? 케이블카 타고 남산에 올라가서 
신년 1월 1일에 해 뜨는 거 보려고 나오는 거예요. 

뭐 매일이 같은 태양인데도, 특별히 신년 1월1일에 뜨는 태양을 보면서 소원을 빌려고,
그 케이블카 타는 곳 주변에 차가 막 굉장히 복잡하더라고요. 

이제 내일 (1월 2일) 부터는 작년에 나갔던 그 지겨운 직장에 또 가야 되고, 
작년에도 했던 그 일을 또 해야 되고... 내일부터는 똑같은 일이 1월, 2월, 3월 이어질 거예요.

사실 일 년을 채우기 위해서는, 언제나 반복되는 일상... 
때로는 짜증나고, 권태스럽고, 벗어나고 싶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그런 일상을 
계속 유지해 가다 보면, 이게 365일이 채워지는 거예요. 

여러분, '어디엔가 내가 뿌리를 내리고 산다'고 하는 것 속에는 
그런 답답함과 고단함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걸 다 감당하면서, 거기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산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올해 2025년에, 저도 그렇고, 우리 성도님들도 그렇고 
'나사렛' 이라는 동네에 가서 '사신' 예수님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라고 주신 그 삶의 환경, 거기에 잘 뿌리내리고 
거기서 우리가 해야 될.. 늘 반복적으로 했던 일을 잘 감당하면서... 
거기서 행복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는' 일이, 행복한 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금년 365일이, 잔잔한 행복이 있는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는 게 힘들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죠. 
사는 게 행복이어야 돼요. 

예수님은 나사렛에 가셔서, 서른 살 될 때까지, 
거기서 오래 머무셨는데,  
그 사시는 생활이, 막 괴로운 하루 하루... 못 견뎌서 사는... 
하루하루 빨리 탈출하고 싶은 하루하루 였을까요? 

아니면 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그 나사렛 이라는 작은 마을에서의 삶이 
매일 같이 하나님 아버지를 뵈옵는 행복의 나날이었을까요? 
그 예수님의 나사렛에서 삶, 그거를 우리가 배워야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그 당신의 삶의 환경에 마음을 두셨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우리가 한 군데 더 성경을 찾아봅시다. 
이렇게 나사렛에서 사시던 예수님은 이사를 가셨거든요. 

마4: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여기서 '사시니'도, 본문 마2:23절의 '사니'와 똑같은 단어에요. dwell, settle, inhabit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오래 사시다가,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한 번 가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서른 살 되실 때까지 사시고,   *마4:12~13절을 연결해서 볼 때
그 다음에 메시아로서 세상 앞에 당신을 드러낼 그 무렵쯤 됐을 때는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가셨어요. 
가버나움에는 이미 베드로도 살고 있었고, 이제 그들과 한 동네 주민이 되신 겁니다. 

그런데 나사렛에서나 가버나움에서나 예수님의 모습은 똑같아요. 
거기서 '사신' 거예요. 
거기에다 마음을 두고, 뿌리를 내리고, 그곳을 사랑하면서, 
거기 사람들을 아끼면서, 거기에다 애착을 가지고, 거기서 존재하면서 의미를 찾으시고, 
하루하루를 거기서 살아가셨다는 거예요. 방황하지 않으신 거예요

여러분, 가버나움 이라는 동네를, 성경은 참 특이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마9: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 his own town 에 이르시니' 

본 동네는, his own town
'고향, 또는 자기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건 조금 이상한 겁니다. 
사실 이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어려서부터 사신 데가 아니거든요.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을 시작할 때쯤, 서른 살쯤 되셔서 옮겨 가신 곳이니까 *마4:12~13
그걸 고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잖아요. 

사실 고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곳은 나사렛입니다.
'나사렛 사람' 이시니까요.  마2:23

저는 이 말씀을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실제로 가버나움에서 사신 기간이 얼마 안 되는데 
왜 심지어 '본 동네', '그 분의 동네', '자기 마을, 고향' 이라고 성경에 기록했을까요?

제 마음에 드는 답은 이거예요. 거기 가버나움에 얼마 살지 않았지만 
고향인 것처럼, 거기 가버나움에 마음을 두시고, 
고향인 것처럼 거기를 사랑하셔서, 거기에 애착심을 가지시고 
거기서 열심히 살아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가버나움이 고향과 다를 바가 없어!'  
성경은 그런 뜻이겠죠. 
예수님의 마음이 가버나움에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리고 마태복음을 쭉 읽어보세요.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 중에서, 굉장히 우리 마음 속에 감동적으로 남아 있는 이적들이 

다 가버나움에서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면 

-마8:1, 나병환자를 고치신 얘기가 나오는데 그것도 가버나움,

-거기에 주둔하던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병에 걸렸는데, 그를 고치신 것도  가버나움,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는데, 그 여인을 치료하신 곳도 가버나움,

-어떤 중풍병 환자를 침대에 누인 채로 메고 와서 지붕을 뚫고 달아내렸던 곳도 가버나움,

-열두 해를 혈류병으로 앓던 여자가 옷 자락에 손을 대어 고침을 받은 곳도 가버나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그 딸이 다시 살아나는 엄청난 일이 있었던 곳도 가버나움입니다 .

한 마디로 예수님의 거처가 있었던 곳이자,
예수님의 갈릴리 공생애 사역의 본거지 였던 셈이죠.

'예수님께서 얼마 오래 살지 않은 가버나움에 굉장히 마음을 두셨구나

가버나움 사람들을 사랑 하셨구나' 그걸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죠.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사랑하셨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죠. 

이게 '사는' 거예요. 

◑적용

 

여러분, 제가 오늘 저녁에 이 말씀을 같이 나누는 것은 
우리들이 올 한 해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365 일을 살아야 되는데, 
여러분 그 365일, 여러분의 생활 터전을 사랑하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함께 사는 가족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일터를 올 한 해 동안 사랑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걸 우리가 잘 못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놀라운 이적을 보였죠. 
열 가지 재앙이 임하고, 홍해가 갈라지고... 엄청난 일들이 있었잖아요. 

그러나 그런 기적이, 날마다 새롭게 갱신된 게 아니에요. 대부분의 날은 똑같았어요. 
대부분의 광야 사십 년은, 늘 일상의 반복이었는데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이동하면서... 먹는 메뉴도 맨날 똑같았어요. 
만나를 반복적으로 먹었고, 그들이 지루해 할까봐 메추라기를 가끔 보내셨는데... 똑같았어요. 

여러분은 우리가 집에서 사는 게 뭡니까? 여러분이 식사를 어떻게 하세요.
물론 일년에 어떤 때는 멋진 레스토랑에 가족들하고 가서 특별한 메뉴를 먹는 날도 있겠지만,
그러나 대부분 날은 집에서 집밥을 먹는 거예요. 

여러분 집에서 식사하실 때, 맨날 따끈따끈한 새 밥에 새 반찬을 깔끔하게 차려서 드세요?
제가 안 가 봤지만 다 알아요. 

냉장고에서 반찬 남은 거 다시 꺼내가지고, 그냥 먹을 건 그냥 먹고, 덥힐 건 덥히고, 
식은 밥 남아있으면 '식은 밥 먹고 때우자' 그러는 날도 있을 것이고...
뭐 그렇게 한 끼 먹고 때우면서 사시는 분도 많을 거예요. 
다들 그렇게 사는 거예요... 저도 그렇게 살고 있어요. 하하하 

그러다가 가끔은 누굴 만나서 어떤 멋진 식당에 가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다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사는 걸, 자기가 짜증을 내고 못 견디면... 삶이 될 수 있겠어요?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사는' 카토이케오

여러분 누군가와 결혼해 가지고 부부가 되어 사는데 
날마다 뭐 백송이 장미를 바치는 겁니까? 그렇지 않잖아요. 
그건 어쩌다가 인생에 몇 번 있는 거고요. 
그냥 맨날 그냥 그 남자, 그 여자와 함께 그냥 그렇게 사는 거예요. 

문제는, 우리 삶이 왜 위태로우냐 하면, 이걸 (지루한 루틴, 일상) 감당을 못 하거든요.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이십 수 년 동안 사셨을 텐데 
그걸 감당 못 하셨으면 어떻게 메시아로 준비가 됐겠어요? 

묵묵히 그냥 매일 반복되는 삶을.. 
예수님도 목수로 사셨는데, 그 삶을 날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당하신 거예요. 
가버나움에 오신 다음에도, 또 그렇게 '살아가시는' 것이죠.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재주도 있고, 능력도 있고, 굉장히 가능성도 있는 것 같은데 
왜 중간에 무너질까요? 
그 (지루한) 일상을 견뎌내는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자꾸만 탈출을 꿈꾸는 거죠. 거길 벗어나서 좀 다른 데로 가보려고 하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거기 머물러라고 하시는 거예요.

우리 예수님도 메시아로 등장 하시기 전에, 나사에서 삶을 참아내신 거예요. 
거기서 계속 꾸준히 계셨어요. 

여러분이 날아서 비상하길 원하신다면, 현재의 장소를 사랑 하셔야 됩니다. 
거기서 꾸준히 기다릴 줄 알아야 됩니다. 

오늘 하는 일을 내가 사랑할 때, 내일의 일이 주어지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것을 맡기신다'는 거예요. 

그러면 큰 것을 맡기 위해서는.. 그 조건이 뭡니까? 
그 작은 일에, 오늘 충성하는 거예요. 
오늘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면, 내일 큰 일도 없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반복적인 매일매일의 일상을, 여러분들이 잘 감당해내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게 정말 중요해요. 

일전에 제가 어느 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는데, 그 교회의 역사가 42년이에요. 
42년인데 참 재밌어요. 그 지금 현재 목회하는 목사님이 2대 목사님이에요. 

현재 2대 목사님이 목회하신지 1년 됐어요. 
그러면 그 앞에 첫째 목사님은 41년을 목회하신 거예요.

어떻게 41년을 목회하셨나 물어봤더니
그 분이 29세에, 전도사 시절에 그 교회를 개척하셨는데, 
41년을 내리 목회하시고 70세가 되셔서 딱 정년 은퇴하시고 
후임자 목사님이 오셔서 이제 1년 된 거예요. 

저는 그 41년 동안 한 교회에서 목회하신 그 목사님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41년 동안.. 29세 청년 전도사님이 와가지고 개척을 시작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사람들이 '아휴, 저 분은 목사도 아직 아니래, 전도사가 개척하는 거래...' 
그러면서 사람들이 누가 왔겠어요? 

그런 상황속에서 한 분 한 분을 전도해 가지고, 교회를 개척했을
 그 어려운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계속 거기 있는 거예요. 

다른 데 한 눈 팔지 아니하고 묵묵히 그 자리를, 41년을 지켰어요. 
그 목사님이 뭐 설교를 어떻게 하는지, 어떤 목회를 했는지, 
그 목사님의 성품이 어떤지... 이런 거는 제가 잘 모릅니다. 

그러나 41년을 한 자리에서 계속하셨다는 그거 하나만 보면, 다 알 수 있어요. 
그 분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끈덕진 인내심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서 모든 걸 쏟아 부었는지를, 그거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정말 존경스러운, 이 시대에 보기 어려운 목사님이세요. 

그래서 그 목사님을 우리가 한 번 만나 보길 원해서,
이제 그 분이 우리 교회에 설교하러 한 번 오실 거예요. 
41년 동안 단 한 교회만 목회하고 은퇴하신 목사님!

저도 사실은 부산 땅끝교회에 갈 때, 그 교회에서 끝까지 있으려고 했는데.. 허허허 실패했어요. 
그래도 그 교회에 한 28년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영락교회에 왔어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어느 교회에서 20년을 목회하면, 원로목사님으로 이렇게  추대해요.
20년 동안 거기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거예요. 

날마다 새로운 일, 날마다 재밌는 일, 날마다 가슴 떨릴만큼 흥분되는 멋진 일만 
계속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얼마나 속이 썩고, 화가 나고, 견디기 어렵고, 자신이 못난 것 같고... 
우리가 다 살다 보면, 가정에서도 그렇고... 그런 걸 느끼잖아요. 
당장 탈출해서 나가고 싶죠.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여기를 내 가정으로 주셨다. 여기가 내 일터다.
여기가 내가 섬길 교회다' 그러면서 계속 '나의 나사렛'을 사랑하는 거예요. 
그게 '사는' 거예요. 

기적의 연속이 아니라, 평범함이 연속되는데 
그걸 견뎌낼 수 있는 그게,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함을 견뎌낼 수 있는 힘, 그게 정말 기적인 것이죠.  

우리 교회 찬양대원 중에, 지난 주일에 은퇴하신 분이 계시는데요. 
제가 인사하면서 '찬양대 몇 년 하셨어요?' 그랬더니 
23살에 찬양대를 시작해가지고, 지난 주일에 은퇴하셨어요. 47년 하신 거예요. 
그리고 이제 베다니 찬양대로 옮기셨어요.  *아마 장례식 성가대

47년간 찬양대 근속, 대단하잔하요! 그게 '사는' 거예요. 
여러분이 우리 영락교회에 소속돼서, 
이 교회가 지금 우리의 '나사렛' 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러분이 여기서 사시는 거예요. 
그렇죠? 교회를 사랑 하시기 바래요. 

 

여기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탈출을 꿈꾸지 마시고, 
그냥 여기 끝까지 계시기 바랍니다. 어디 가려고 하지 마시고.. 가봤자 별거 없거든요. 
그냥 여기에 계속 있으면서,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는 여기를 지키는 거예요. 

창16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아내 사라와 의논해서, 몸종 하갈을 들여서 아들을 얻으려고 했죠. 

하갈이 임신을 했어요. 그랬더니 여주인을 무시하는 마음이 생겨가지고 
사라의 미움을 받다가 쫓겨나요. 그래서 배가 부른 임신한 상태로 들판을 배회하는데 
하나님 앞에 목놓아 울었어요. 하나님께서 하갈을 만나 주셨어요. 

근데 참 하나님의 처방이 독특합니다. 
'하갈, 네가 사라에게 많이 학대 당했구나. 내가 너를 피할 곳을 준비했으니, 
거기 가서 잘 지내거라' 이러실 것 같은데, 하나님의 처방이 뭐였습니까? 

'사라에게 돌아가라'는 거예요.
'돌아가서 너의 주인에게 복종해라'   창16:8~9

거길 못 견뎌서 탈출했는데, 하나님이 내려주신 처방은 
'돌아가서 복종하고 거기 있으라'는 거예요. 어떻게 견디겠어요? 
그렇지만 하갈은 결국 주인에게로 돌아가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리고 한 민족과 12지파를 이루는 조상이 됩니다. 창25:12~18)

여러분! 여기서 지금 사는 게 아무 희망이 없는 게 아니라 
아기가 점점 자라나서 태어나는 날이 다가오듯이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계속 사시는 것이, 
그것이 답답한 나날이 아니라, 메시아로서 준비되셔서 
메시아로 등장하실 날이 다가 오잖아요. 

오늘 이곳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거기에 
하나님이 이루시는 위대한 일이 영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 해야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나의 삶의 터전을 사랑해야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께서 그렇게 그동안 해 오신 줄 알지만 
가정을 위해 기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 애착심을 가지기 바랍니다. 
가족들을 사랑하셔야 돼요. 

내 남편, '아 이젠 볼장 다 본 남편이다' 뭐 그렇게 하지 마시고 
'내 남편, 남은 여생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도록... 
그래서 천국에 이르는 그 날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남편 되도록...' 

아내를 위해서도 그런 애정을 가지시고, 여러분이 진지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식들이 섭섭하게 할 때도 많으실 거예요. 
'나 그 녀석들이 이제 어떻게 살든지 관심 끊겠어!' 화가 나면 그런 생각도 들겠지만, 
그 자녀들이 여러분이 사랑하셔야 될 사람들이고, 
그 환경이 '나의 나사렛'인 거예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효도하든지 하지않든지, 
나를 섭섭하게 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자녀들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매일 같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나사렛에서 사는 거예요. 

우리 교회도 그렇죠. 여러분 교회 생활하다 보면, 상처 입는 사람이 참 많이 있어요. 
보기 싫은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 사람만 없으면 우리 부서가 좋은데...' 그런 생각도 들 수 있을 거예요. 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사렛에서 견디신 그거를 우리가 배워야 되는 거죠. 
2025년이라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근데 그걸 견디는 거죠. 

저는 요즘에 여러분들하고 같은 마음이겠지만 
참 대한민국이라는 환경에 대해서, 실망도 많이 하고, 또 마음에 화도 많이 나요. 

'도대체 우리나라는 왜 이런가?' 
그러다가도 마지막에 답은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날 여기에 태어나게 하셨구나... 
내가 어떻게 대한민국을 벗어나겠나? 여기서 충성을 다 하며 살아야지...'

설령 다른 나라에 가서 산다고 거긴 문제가 없나요? 
지구촌 자체가 죄로 인해서, 어디나 다 고통과 답답함이 있는 거예요. 

그래도 지금 우크라이나에 있지 않은 걸 감사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내 아들을 우크라이나 전선에 내보내지 않게 된 것만 해도 우리 감사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겁니다. 

가끔씩 목사님들 가운데, 인내심이 부족한 분을 봅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와서 하소연합니다.
'(김운성) 목사님, 제가 이 교회에 왔는데요. 아, 못 견디겠어요' 
어디 이렇지 않는 교회, 이렇게 답답하지 않은 교회 있으면, 제게 좀 소개해 주세요' 

그래서 제가 이 교회, 저 교회로.. 그런 분들을 좀 소개도 해드리고 그랬는데, *임지 이동
그래서 어떤 분들은 제가 무슨 교회 복덕방 인 줄 알아요... 하하하 

물론 제가 너무 안타까워서 '이 목사님에게 맞는 목회지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적도 있지만, 
그러나 그런 분들을 만나면, 대부분은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지금 그 마음 가지고는, 어디 가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오히려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목사님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거기서 견디는 법을 배워야 돼요. 
거기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세요. 사랑하게 해달라고...' 

대개 저를 찾아와서 하소연하는 분들이, 어떤 특정인을 얘기해요. 
뭐 장로님 일 때도 있고, 누구 누구 때문에 자기는 도저히 여기는 못 있겠다고... 
그래도 저는 '목사님이 기도를 바꾸라'고 권면해요. 

 

'그 장로님이든지 누구든지.. 그 분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고..
그 교회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목사님 마음 속에서 그게 되면, 진정한 승리를 얻는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 같은 사람도 사랑하셨는데, 그게 목회하는 겁니다. 
목회는 가서 설교하는 게 목회가 아닙니다. 
목회는 그냥 사는 겁니다. 같이 사는 거!'  

여러분 그게 '사는' 거죠. 
아까 29살의 교회를 개척해서 41년 동안 계속 목회하신 목사님은 
그냥 거기 성도들과 같이 '사신' 거죠. 

저도 다른 교회에 설교하러 갈 때가 종종 있어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설교할 때가 좋을까요? 다른 교회에서 설교할 때가 좋을까요? 
잘 모르시죠? 그거는 목사들의 '영업 비밀'과 비슷한 거예요. 

다른 교회에서 설교할 때가 훨씬 편합니다. 
왜냐하면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니까, 그냥 뭐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그냥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작별하고 돌아오면 끝이에요. 

아, 근데 우리 영락교회에서는 그렇게 하면, 다음 주에 또 볼 건데, 
그래서 목사님들이 당신이 목회 하는 교회에서 설교하는 걸 힘들어 해요. 
나가서 설교하는 거는 아주 행복하게 생각해요. 
근데 맨날 나가기만 하면 또 어떡하겠어요? 엄마가 맨날 외출하면 안 되는 것처럼... 

여러분 사실은 자기가 있는 곳이 소중한 곳이에요. 
있는 곳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셔야 해요.

제가 아는 목사님, 누구라고 하면 여러분도 아실 만한 유명한 목사님이신데, 
그 교회에 계신 걸 너무 힘들어 했어요. 

당신이 목회하는 교회에 계신 게 너무 힘들어서, 자꾸만 바깥에 나가려고 했어요. 
그 목사님 마음이 저는 이해가 돼요.

근데 결국은 그게 올바른 건 아니죠. 그 목사님이 힘들어 했던 건 뭐냐 하면, 
당신이 목회하는 교회에서는, 매번 설교를 따로 준비해야 된다는 거예요. 
맨날 똑같은 거 하면 안 되니까, 매주 설교가 새롭게 준비 돼야 되는 거죠. 

근데 바깥에 나가서 할 때는, 설교 하나 가지고도, 여러 곳을 돌면서 계속 해도 되는 거죠. 

그 분이 한창일 때는, 인터넷 이런 거 없어가지고 잘 몰랐어요. 
요새는 뭐 유튜브에 보면, '저 김 목사가 여기서 한 거 저기서 또 하는구나' 이렇게 알지만...

그 목사님은 그걸 힘들어 하셨거든요. 
결국은 그 분이 그 어떤 교회에서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시는 걸 봤어요. 
근데 그거는 올바른 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심어 두신 거기를 사랑해야 됩니다. 
제가 요즘에 이제 성경을 이렇게 읽으면서 
'나사렛 이라는 동네에 가서 사셨다'는 말이 막 꽂히는 거예요.  마2:23

'내가 너에게 준 나사렛이 있는데, 거기서 끝까지 잘 살아내라.. 거기서 살아 내라.. 
살아 내면, 메시아가 되는 날이 예수님께 왔던 것처럼, 
너에게 특별한 일을 하나님이 또 준비하실 것이다. 그때까지는 인내를 배워라' 
그런 감동이 아주 강하게 밀려 왔어요.  

여러분, 대한민국이 어렵지만, 우리 여기서 잘 인내 합시다. 
우리 교회를 잘 사랑합시다. 
여러분이 섬기는 곳에 잘 마음을 두어서, 최선을 다해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사랑하시기 바라고, 일터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좀 회사가 어렵고 힘들어도, 아침 일찍 출근하시고, 부지런히 일하시고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시고, 좀 더 연구하시고, 노력하시고... 
그렇게 해가지고 여러분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해 지도록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답답한 삶일지라도, 좀 가꾸면 달라질 수 있잖아요. 
답답한 집이지만 거기에다 꽃 한 송이를 꽂으면 벌써 좀 다르잖아요. 
음악을 틀어 놓으면 분위기가 달라지잖아요. 그런 건 우리가 노력하면 할 수 있잖아요. 

 

내가 조금만 마음을 기울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꽃 한 송이 꽂는 것 같은 은혜가 올 것이고, 
좋은 찬송을 틀어 놓은 것 같은 기쁨을,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에게 올 거예요. 

그래서 삶이 조금 윤기가 나고, 바싹 메마른 삶이 거기에 기름을 바른 것처럼 될 거예요. 
그렇게 해서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 하루를 살아낸 것에 대한 감사가 있으시길 바래요. 

그리고 또 다음 날 아침에 눈 뜨면 
다윗처럼 '내가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오늘도 하나님이 나에게 기쁨의 하루를 주셨다. 
오늘도 내가 어제 먹은 만나를 또 먹는다 할지라도 
어제의 만나와 오늘의 만나가 똑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다른 거죠. 
왜냐하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또 감사함으로 먹고... 
그 하루를 하나님 안에서 살고... 

여러분, 우리 교회가 팔십 년을 맞이하는데, 
팔십 년 영락교회가 날마다 기적의 나날은 아니었잖아요. 

어려운 때도 있었고, 힘든 때도 있었지만 
우리 목회자들,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시종여일 하게 그 먼 데서도 새벽까지 달려와 찬송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안내하고 
재직 부서에서 최선을 다 하고... 그게 꾸준히 이어져 나가서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이에요. 

 

위대한 백 년은 저절로 맞이하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에 승리하는 그게 쌓여 가지고, 백 년을 맞이하게 될 것이에요. 
여러분, 올 한 해를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말씀 산책'을 이제 1년 동안 했는데    *매일 인터넷 말씀 나눔
감사하게 하나님께서 저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하루도 펑크 내지 않게 해주셔서, 
그래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매일 같이 은혜를 주셨어요. 

또 이제 새해를 맞이하면서, '하나님, 올해도 하루에 한 두 절 말씀을 
성도들과 나눌 건데, 그게 권태스럽거나 진부하지 않도록... 
매일 그 한 절을 통해 제 영혼을 적셔주시고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도 위로가 되게 해주세요.' 

늘 반복되는 거지만, 그런 마음으로 이제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그런 마음으로 늘 365 일을 채워 가시면, 
올 한 해 마지막에 가서 결산 할 때, 
'우리 금년에 참 잘 살았어!' 
여전히 '나사렛' 이지만, 그 나사렛이 우리에게 기쁨의 터전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게 '사는' 것이에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 인내의 마음, 이겨낼 수 있는 마음, 
그걸 기쁨으로 바꿔 갈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존귀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아버지께 올려드립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신년기도회로 1년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나사렛에서 사는 것'에 관하여 저희들이 생각하였습니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 하나님, 
반복적인 일이 계속되므로 때로는 권태롭고 때로는 힘들지만 
저희의 나사렛에서 살아내게 하여 주시옵시고, 나사렛을 지켜 내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루하루 주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기쁨과 감사를 우리 성도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