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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라

LNCK 2025. 1. 1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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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교회 2025-01-12 주일 3부 예배 실시간 스트리밍 - YouTube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라         말1:6~14       2025.01.12.     

아래 설교문 중에서 인용 

「정말 그때 청년 대학생들이 많이 모였어요.  
그때 제가 담당 교역자로서, 청년 3부에 대해서 가졌던 꿈은 뭐냐?
'우리 교회가 주위에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공동체가 되자'는 거였어요. 롬11:14

하나님, 진리의 성령님, 이 땅 흔들고 임하시고
은혜의 성령님, 하늘 가르고 임하여 주시고
거룩한 불꽃, 하늘로서 임하셔서

하나님, 우리가 금년 한 해 동안,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게 하여 주시고
우리 교회를 축복하여 주셔서, 이 시대에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거룩한 교회로' 세워주셔서
민족과 열방을 일깨울 수 있도록,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부흥을 허락하여 주소서!」

.................................................................

◑도입 

저희들이 2025년 1~2월은, 주일 낮 예배에 <말라기서>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이 첫 번째 시간이었는데, 기억하셔야 될 것은 
말라기서가 어떤  시대적인 정황 가운데 기록이 되었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고,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된 삶을 인해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그 놀라운 꿈이 점점 희미해지고 
또 하나님을 향한 그 열정들이 점점 식어졌을 그때, 
하나님께서 말라기를 통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라기서는 6개의 논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라기 선지자가 백성들과 논쟁하는 내용이 6번 기록되었는데,  
지난 주 1:1~5절이 첫 번째 논쟁이었습니다. 마치 서론적인 교훈인데, 

하나님은 '내가 그들을 사랑하셨다' 하고,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하고 반문합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답변하시는 내용이, 첫 번째 논쟁입니다.

▲오늘 본문인 두 번째 논쟁은, 조금 길게 진행이 됩니다. 
1:6~2:9절까지입니다. 선포 대상은 제사장입니다.

오늘 설교는, 그 절반인 1:6~14절까지만 살펴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인 지도자와 같은 인물이 제사장인데, 
제사장은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리는 일을 주관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루는 본문은  제사장과 논쟁을 하는데, 
특별히 "예배와 관련해서" 논쟁을 하고,  1:6~14
다음 주는, "가르침과 관련해서" 제사장과 논쟁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1~9

오늘 본문은, 조금 길기도 하고, 또 여러분이 보시면  혼란스러운 내용도 있기 때문에, 
먼저 내용을 정리를 하면... 결국 핵심은 뭔가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1st 논쟁)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고 
의심이 생기고 불신하게 되면, 
어디에 문제가 생기느나 하면... 예배의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인과관계처럼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는 형식화 되게 되고,  
점점  본질을 떠나게 되는... 이런 문제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1:6~10절까지는 '제사장들을 향한 책망'입니다.
1:12~14절까지는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내용' 입니다.

중간에 11절은, 정말 놀라운 선언입니다. 
'온 세상 가운데,  해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하나님을 향해 참된 예배가 드려질 것이다' 라는 내용이 
본문의 중앙인 11절에 위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론 부분에 한 번 더 설명을 드리겠지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는 무너져 있습니다. 

이 예배가 무너져 있을 때,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두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깨우쳐 주십니다. 

첫 번째 방법은 결국 뭔가 하면... 책망입니다. 
그들을 책망을 하면서, 그들의 예배가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를,  
하나님께서는 책망을 통해 교훈을 하시고,  

또 한 가지 방법은, 조금 더 적극적인데, 
온 세상, 특별히 이방 지역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래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향해 참된 예배를 드리게 될 때, 

그 참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그들에게 상상하게 하면서, 
'야, 그때 완성될 그 아름답고 참된 예배의 모습과 비추어 보았을 때, 
너희들의 예배가 잘못 되어져 있지 않느냐?' 

그래서 정말 하나님 앞에 드릴 참된 예배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들의 예배가 얼마나 여기서부터 동떨어져 있는지' 
그래서 '다시금 예배를 회복하도록' 교훈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설교는, 먼저 소극적인 책망과 
적극적으로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예배를, 그들에게 그림을 그려 주면서 

선지자는 그들이 돌아서고, 참된 예배를 회복할 것을 교훈하는 내용이... 본문의 대지입니다.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여기서 '공경'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보드'인데 원래 '영광'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영광'으로, 가장 귀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죠.
또 종은 주인을 가장 귀하게 생각한다... 공경 한다는 뜻이죠. 

그러면서 하나님은 질문 하십니다. 
'내가 아버지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시죠? 아버지입니다. 

왜냐면 바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부르셔서 그 이스라엘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시니까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시죠. 

'내가 아버지라면,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이라면 나를 두려워 함이 어디 있느냐?'  질문을 하시게 됩니다.  :6

그러면 6a절을 보면,
근데 이 말씀을 하시는 분, 하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은 누군가 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지금 말씀을 하십니다.   

말씀을 듣는 대상은 누군가 하면, 제사장 들입니다. :6
그런데 제사장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묘사하느냐?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6a 
그들에게  하나님은 질문을 하시는 거죠.  :6b

'멸시'라는 말은, 뒤에 나오는 '공경'과 대조가 되죠.  *카보드
'멸시'라는 말은, '가장 가볍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6a절에 '하나님의 이름' 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이름은 지금도 사람 한 분, 한 분을 식별하는 표지가 바로 이름입니다. 

사람들이 여럿 있는데, 누가 누군지 모르잖아요. 
그렇지만 이름을 부르면, 저 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특별히 말라기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름은 곧 존재의 본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정말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강조점은, '여호와 이름'은, 성전에 거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담고 있죠.

그러니까 지금 제사장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인데 
그들은 두 가지를 멸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존재의 본질을 그들은 가볍게 생각하고,  
-성전에 그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그들은 가볍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질문하시죠. '나를 공경함이 어딨느냐?, 나를 두려워함이 어딨느냐?'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6b  *히. 바자     
위에 나오는 '멸시'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 여러 번 사용되지만, 두 구절만 살펴보겠습니다.

창25: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바자   

야곱에게 형 에서가 배가 고파서, 지금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렸습니다. 
이것을 설명하면서, 개역은 '가볍게 여겼더라'고 했는데, '멸시했다'는 뜻입니다. despised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멸시했습니다. 가볍게 생각을 했어요. 

삼상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카보드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바자  

위 구절은 홉니와 비느하스를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위 구절의 '멸시'가, 본문1:6절과 같은 히브리단어 '바자'죠.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 가볍게 여기면, 하나님도 우리를 멸시, 가볍게 여기신다는 거죠.

어떻게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멸시했습니까?
그들이 드리는 제사에, 정성을 다하여 드리지 않았던 거죠.
특별히 그들이 드리는 예물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예물이었습니다. :7

▲그럼 이 말씀을 들은 제사장들의 반응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 하셨습니까?'  :6b  

'우리는 그런 적 없습니다. 매일마다, 안식일마다, 절기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빠짐 없이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이런 반응을 제사장들이 보이게 됩니다. 

7~8절은 그들의 항변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 했다는 사실을 
주님은 두 가지를 통해 그들에게 증명해 보이십니다.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 제물에는, 두 가지가 사용이 되었습니다. 
하나는 곡식 제물 입니다. 이거는 보통 가루 '소'자를 써서 소제죠. grain offering
곡식 제물을 재단에 태워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삶의 복을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전심으로 감사드리는 행동이, 곡식(소제)을 드리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요? '더러운 떡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7a
'더러운 떡'이란, 하나님이 보실 때 적합하지 않는 떡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실 때 적합하지 않는 '더러운 떡'을 드리면서 
'우리가 어떻게 줄을 더럽게 했습니까?' 라고 뻔뻔히 말하는 것은, 

왜냐하면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제단이란 뜻)은 이 식탁은 경멸히 여기는구나'   :7a
'야, 하나님의 식탁은 우리가 무시해도 돼, 가볍게 생각해도 돼!' 라고 
너희가 말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러운 떡을 드리면서 너희들은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거죠. 

◑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7질은 곡식을 드리는 소제였다면, 8절은 짐승을 잡아드리는 희생 제물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하나님은 제물의 분명한 기준을 정해 주셨어요. 

레22:20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레22:22 '너희는 눈 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습진이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버짐 있는)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은 제단 위에 화제물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이것들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실 것에 대해서 교훈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율법을 통해, 어떤 가축을 하나님께 드려야 될지를 말씀하셨지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특별히 제사장들은 본문 1:8절을 다시 보면,
'저는 것, 병든 것을' 그들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악하지 아니하냐?' 

그러면서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반격하시느냐면 
'그걸 너희 총독에게 한번 드려 봐라, 총독이 받겠느냐?'

여기서 '총독' 이라는 단어는, 말라기서 저작 연대를 결정하는 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총독'이 유대를 다스리던 시절은, 페르시아가 세계를 지배할 때, 
총독을 파견해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도록 했습니다. (*스룹바벨, 느헤미야도 총독)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8b

그럴 리 없다는 거죠. 그런 더러운 떡과 재물을 만약에 총독에게 드리면 
너희들한테 날 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실제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런 재물을 나한테 드리는 것이, 나의 이름을 멸시하는 거 아니냐?'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9~10절은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한 기도는, 대단히 겸손한 기도이죠. :9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보아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겸손한 듯한 기도,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는 외식에 불과합니다.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내가 너희 중에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받겠느냐?'라는 뜻이죠.
'내가 너희를 좋게 보시겠느냐?'
그럴 수 없다는 거죠.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나한테 헛된 예배가 드려지지 않도록, 성전 문을 닫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이는 코로나로 인해 교회에서 모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자주 인용되던 구절이었죠)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0은 어떤 말씀이 생각납니까? 바벨론에게 망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생생하게 교훈하셨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책망하셨던 그 말씀이, 여기서 그대로 반복이 됩니다. 

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기도자세)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멸망하기 전에 책망했던 그 형식적인 예배, 헛된 예배, 
최고로 존귀하신 하나님께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예배, 
그것 때문에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말라기 때 지금도 그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말1:12절부터 보겠는데, 
여기서 (제사장들에게서) 백성들에게로 초점이 옮겨지게 됩니다. 

◑1: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공동번역 '그런데 너희는 '주께 차려 올리는 제사 상, 더러우면 어떠냐? 
아무 음식이나 차려드렸으면 됐지.' 하면서, 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다.'

새번역 '그런데 너희는, '주님께 차려 드리는 상쯤은 더러워져도 괜찮아!' 하면서, 너희들도 
싫어하는 음식을 제물이라고 그 위에 바치니, 너희는 지금 내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이거는, 제사장이 아니고, 제사장에게 재물을 갖다 주는 백성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백성들이 제물을 성전으로 갖고 오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야, 이거 하나님께 드리는 거는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그렇게 제물을 (오늘날로 치면 헌금을) 그들은 가볍게 생각했다는 거죠. 

그래서 1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1: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제물이 아니라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다'는 겁니다.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내가 너희를 기뻐하겠느냐?' 

◑1:14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 나오는 사람은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짐승 떼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원할 때, 보통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데,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이니다.

곧 불에 태워질 건데, 좋은 것을 아까웠던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속여 내게 드리는 자'라고 하십니다. 
그냥 원색 그대로 말씀드리면 '나한테 사기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왜 이런 흠 있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겠습니까? 바로 경제적 이해 관계죠. 
흠 없는 가축은.. 고가입니다.
그걸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니까, 안 그래도 삶이 요즘 고달픈데,
'이 고가의 비싼 짐승,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어떻게 되겠나?' 

그래서 자기가 뻔히 최상품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병든 것, 흠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어요.  
떡도 마찬가지였고요. 

분명히 그들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경제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엉뚱한 걸 드렸어요. 

그러면 제사장들은, 그런 흠 있는 제물을 백성들이 가져왔을 때, 
왜 그걸 받아서 제사를 드려주었겠습니까? 그걸 거절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제사장은 왜 그걸 받아서 제사를 드렸을까요?

백성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 안 되니까... 
제물이라고 가져왔는데, 그거 거절해 보십시요. 관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백성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도 '그거라도 가져오면 감사하지..'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사장(목회자)들도 경제적인 이익을 생각했겠죠. 
그래서 그들은, 백성들도 '하나님의 식탁은 가볍게 여겨도 돼 괜찮아' 그러면서 :12
이제는 아주 남는 것들, 찌꺼기들... 버리기 아까운 것들... 그걸 제물로 갖고 왔고, 
제사장들도, 그걸 받아들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은 명확하죠.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그 분은 최고의 하나님이십니다. 
만군의 여호와, 그분은 최고로 존귀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어떤 예배를 드려야 되겠습니까? 최선의 예배를 드려야 되는 거죠.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 달라요. 우리가 경제적으로 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최고의 하나님께 걸맞는 최선의 예배를, 우리는 드려야 된다는 거죠.

▲아시겠지만 우리가 코로나 3년간을 겪으면서, 지금은 한국 교회에 
예배 문화가 엄청나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사실은 온라인 예배죠.

저희 교회도, 주일1부, 2부, 3부 예배 시간에 
같이 실시간으로 영상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매주 최소 삼백 명입니다. 

이 숫자는, 코로나가 끝난 이후 지금까지 바뀌지 않아요. 
삼백 명이 넘는 분들이, 지금 영상으로 온라인 예배를 우리와 같이 드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목회 데이터 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 중에, 이런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만약에 지금 다니시는 교회가, 온라인 예배를 제공하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뭐겠습니까? 정말 '내가 현장에 나오겠다' 라는 사람은 거의 없고 
90%이상이 '온라인 예배를 제공하는 다른 교회로 가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온라인 예배에 대해서, 저는 그게 얼마든지 필요하고, 또 불가피 하신 분들이 많이 계셔요. 
그렇지만 우리가 코로나 3년을 거치면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어떻게 됐느냐?

예배는 점점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되는 거죠. 
조금만 내 몸이 좋지 않으면, 조금만 집안에 뭔가 행사가 있고, 
조금만 내가 꼭 계획한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바로 영상 예배로 돌려 버립니다. 

그러니까 제가 지금 제기하는 것은 뭔가 하면,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 하는 거죠. 
어느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가?  
우리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배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삶의 여러 필요들인가?  

조금 있으면 이제 설날이 되잖아요. 
저도 서울에 아들이 있고, 며느리가 있는데 
자녀들이 대구에 한 번 내려올 때마다 진짜 고생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로는 '차표 구하기도 어렵고, 고속도로는 많이 막히고 하니,
금년에는 그냥 집에 있어라. 그냥 영상으로 얼굴보면 되지... 영상으로 세배하면 되지...' 

그러면 서울의 아들 부부가  '아버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이번에는 영상으로 인사드릴게요'
그래서 설날 아침에, 영상으로 만났습니다. 
요즘은, 핸드폰이 또 거실 TV와도 연동되니까, 얼굴이 더 크게 더 잘 보여요.

어쩌다가 한 번 그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근데 그 다음부터는, 그게 너무 편리하니까
아들 부부가 자기가 알아서 '아버님, 올 해도 영상으로 인사드립니다.' 그러면, 
만약에 해마다 그런 일이 계속 생긴다면,  부모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떠시겠어요? 

'야, 우리 자녀가 진짜 트렌디 하구나!' 이렇게 반응하실까요? 
아니면 마음이 조금 씁쓸할 것 같습니까?

지금 영상 예배를 들으시는 분들, 제가 충분히 인정한다고 말씀드려요.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시면서 '야, 너희가 정말  트렌디 하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겠어요? 

아니면 '나를 향한 공경함, 나에 대한 두려워함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저는 여러분들이 온라인 or 현장, 어디서 예배드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하나님에 대한 공경의 마음에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면 괜찮아요. 
이제 2025년을 시작했는데, (저는 과거에 사실 이런 표현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이 말은 사실입니다. "예배의 승리자가 인생의 승리자다"

제가 이런 말을, 과거에 크게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거기서 예배가, 교회의 공예배도 되지만, 우리 가정에서의 예배, 삶의 현장에서의 예배도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도, 저는 주님을 예배 현장에서 만난 게 아니고, 
저는 자취방의 예배와 기도 가운데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대한 가장 생생한 경험은, 자취방과, 도서관... 이런 곳이었어요. 
그런 면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 한테,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것도 공동체로 모여 예배드리는 
이 순간 보다 더 귀한 순간이 있겠습니까? 가장 무겁고 중요한 순간이 있겠습니까?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금년 한 해 동안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는 예배의 승리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바로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부어 주시는 거죠. 
여러분이 예배에 승리하는 자가 되셔서, 인생에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적용

11절을 다시 보면,
1: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 
이 말은 '세상 모든 곳에서'죠. 
즉, '이방 민족 중에서 ,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위대하게 될 것이다.' :11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시하고 있는 그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족 가운데서까지 위대하게 될 것이다.' 

'각처에서 (세상 모든 곳에서)
그들은 분양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릴 것이다. 
더러운 떡, 병든 짐승이 아니라, 깨끗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것이다. 
왜냐하면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이기 때문에, 

위대하신 하나님을 향해, 세상 모든 곳에서 
최고의 예배 최선의 예배가 드려 질 거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위 11절은 현재적 상황인가, 아니면 미래적 상황인가? 

'현재적 상황'이라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와 당위성을 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은 엉망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의 기대는 무엇이냐?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이름이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가장 위대하게 되고,  
그 분을 향해 가장 참된 예배가 드려지는 것, 

이게 정당한 것이고 하나님의 기대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래적 상황'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배에 무너져 있는 자기 백성을 깨우시는 방법 중에 하나가, 
지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몰랐던 이방인들이, 그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마음을 다해서 참된 예배를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게 될 거라는 거죠. 

이방인들이 참된 예배를 드리면, 그들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와 복을 부어주시게 됩니다. 
이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보게 만드는 거죠.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원래 저 복음 우리 거였는데, 우리가 잃어버렸구나'

그래서 그들 마음에 시기심이 일어나서 
그들도 참된 예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겠다는 겁니다.  

이 해석이 타당한 것은, 
신32: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 민족들에게, 풍성한 은혜와 복을 허락해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시기와 분노가 일어나게 하시겠다는 거죠.

왜냐면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께 시기와 분노가 일어나게 했으니까,
하나님이 그대로 갚아주신 것입니다. 보다 큰 목적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죠.

근데 이 말씀을, 바울이 인용해서 사용합니다.
롬11:13~14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그래서 '내가 (바울이) 이방인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포기한 행동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는 거죠. 
그래서 바울의 놀라운 꿈이 뭡니까? 
그가 이방인을 섬길 때, 그가 꿈꿨던 모습은 무엇인가 하면 
'이스라엘이 시기할 만큼의' 그런 신앙의 공동체를 이방인 가운데 세우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 가운데 놀라운 부흥, 놀라운 예배의 회복을 통해 
예배가 무너져 있는 자기 백성(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다시금 시기심을 통해 세우겠다...는 거죠.

본문 말1:11절을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깊이 생각했던 게, 1997년도에 우리가 여기에 입당을 했습니다. 
저희들이 광장 코아 맞은 편에 있다가, 현재 위치로 입당을 했습니다. 

그런데 뭐 어르신들도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저는 그때 청년3부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버스도 한 대 없었고, 지하철도 없었고, 
어르신들은 자가용을 가지고 이곳에 오실 수 있었지만, 
대학생들은 뭐 자가용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청년들이 정말 여기 교회까지 한 번 오려고 하면, 산 넘고 물 건너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예배드리러 이곳까지 왔어요. 

그래서 그때 제가 청년들에게 이야기했던 모토가 뭔가 하면 
"여러분, 매 주일을 성지순례 하는 마음으로 와라" 

근데 그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을 주셔서, 
제가 청년들을 섬기는 동안, 가장 많은 예배 인원이 참석했던 것이 
이곳에 오고 나서 였어요. 

그래서 그때 저희 청년들이 정말 놀라운 은혜를 경험을 했습니다. 
근데 그때 다른 교회 청년부에서, 저희 교회 청년부로 탐방을 많이 오셨어요. 
그래서 이것 저것을 물으셨어요.

근데 마지막 꼭 그분들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아이고 목사님, 내일교회 청년부가 이런 지리적인 조건을 가지고도 부흥을 했다면, 
아이고 우리 교회 청년부는 정말 얼마든지 부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대학청년부가 일주일에 세 번 모였습니다.
청년들이 새벽기도까지도 나왔습니다.
버스 내려서, 그 먼 길을 한참 걸어서 왔어요.

그때 이런 말을, 청년들이 했어요.
'목사님, 오기는 힘든데.. 하나 좋은 것은, 오면 못 나갑니다. 
오는데 너무 고생해서 왔기 때문에, 본전 생각이 나서, 쉽게 못 나갑니다'

정말 그때 청년 대학생들이 많이 모였어요.  
그때 제가 담당 교역자로서, 청년 3부에 대해서 가졌던 꿈은 뭐냐?
'우리 교회가 주위에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공동체가 되자'는 거였어요. 롬11:14

제가 대구 사람인데 '어떻게 하면 이 대구 지역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섬길 수 있을까?' 를 늘 기도하며 생각했었죠.

그때 하나님이 저에게 주셨던 답변이 었어요. 
'시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공동체, 그거 한번 세워봐라!

이런 열악한 조건 가운데에서도, 우리 청년들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셔서, 

그 청년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기만 하면,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기만 한다면, 
주위의 사람들이 시기심이 일어나서,

여러분, 우리들 높이자는 게 아니라, 바로 그들을 일깨우는... 
그들의 예배도 새로워지고, 하나님과의 만남도 새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공동체를 한 번 만들어 보자. (그런 공동체를 한 번 만들어 봐라) 

저는 지금도 갖고 있는 꿈입니다. 
저는 그때 이후로 내일교회를 어떤 공동체로 세우기를 꿈꿔 왔느냐? 
바로 '시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공동체가 되는' 거예요. 

이 척박한 대구 땅에, 어떻게 하면 지금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고, 
주님이 찾아오셔서 우리들의 삶 가운데 역사 하시고, 
부족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실 수 있나?'
 
그거 한 번 이 세상 가운데 보여줘서, 
사람들한테 '내일교회의 조건을 가지고도 저들이 저렇게 (부흥) 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이 부흥하겠네!' 

정말 그들의 마음에 시기심을 불러 일으켜서, 그들의 예배가 새로워지고, 
그들의 교회가 새로워 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런 공동체를 세우는 꿈... 저는 지금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지금 두 가지, 2025년 한 해 동안
무엇보다 우리 성도님들이,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는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배의 승리자가 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복을 누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를 회복해서,  
우리 교회, 우리 예배가 바로 주위에 시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예배, 
시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교회가 되어서, 

대구를 일깨우고, 민족과 열방을 일깨우고 섬길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로 세워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같이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찬양을 같이 드리겠습니다.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이 땅 흔들며 임하소서
거짓과 탐욕 죄악에 무너진 우리 가슴 정케하소서
오소서 은혜의 성령님, 하늘 가르고 임하소서
거룩한 불꽃 하늘로서 임하사 타오르게 하소서 주영광 위해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 땅 가득 불어와
흰 옷 입은 주의 순결한 백성, 주의 영광 위해 이제 일어나
열방을 치유하며 행진하는, 영광의 그 날을 주소서」

이 찬양을 많이 불렀던 때가, 그때로부터 지금 25년이 지났어요. 
그동안 하나님이 많은 은혜를 주셨지만, 그동안 교회가 교만하고 부족해서  
사회도 어렵고, 교회도 어렵고, 나라도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저는 지금의 이 상황이, 하나님이 다시 한 번 우리 민족을 세우시는 
정말 부흥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 정말 우리들에게 진리의 성령님 찾아오시고, 은혜의 성령님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 시대를 살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주십시오. 
우리 다같이 마음을 담아서 함께,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찬양 후 기도/ 하나님, 진리의 성령님, 이 땅 흔들고 임하시고
은혜의 성령님, 하늘 가르고 임하여 주시고
거룩한 불꽃, 하늘로서 임하셔서

하나님, 우리가 금년 한 해 동안,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게 하여 주시고
우리 교회를 축복하여 주셔서, 이 시대에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거룩한 교회로' 세워주셔서
민족과 열방을 일깨울 수 있도록,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부흥을 허락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