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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S 한국교회를 논하다] 513회ㅣ신학교육,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 YouTube
◈신학교육,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CTS 한국교회를 논하다 513회]
[비디오 클립]
선교 14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100여 년간 전례 없는 부흥을 경험했지만,
이후 교회의 세속화와 영적 침체, 다음 세대의 탈종교, 탈교회 현상,
교인 수 감소와 사회적 영향력 하락 등 많은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위기의 절벽을 마주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교회의 본질, 신학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 원인이라는
회개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특히 신학교육에서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식과 학문으로 강조되는 신학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생명력 넘치는 신학교육으로 개혁해야
복음의 능력이 있는 목회자가 배출되고, 한국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신학교육의 개혁을 통해, 한국교회가 회복되고 다시 성장할 수 있을까?
<한국교회를 논하다>에서는 '신학교육 개혁 특집'을 마련해
한국교회가 거룩함을 회복하고,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서
신학교육이 어떻게 개혁돼야 하는지,
이를 통해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5주에 걸쳐 깊이 있게 고민해 본다.
▲진행 박찬호 교수 / 안녕하십니까? <한국교회를 논하다>의 진행을 맡은 박찬호 교수입니다.
한국교회 회복과 부흥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신학교육 개혁특집" 4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선언의 참뜻을 짚어보면서,
신학이 학문이 아닌 이유에 대해 논의해 보았는데요.
그렇다면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경험할 수 있는 신학교육이란 어떤 것인지,
신학교육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에 대해서
오늘 <한국 교회를 논하다> 에서 자세히 함께 말씀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하실 출연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안양대학교 명예교수이신 이은선 교수님,
-서울 백석대학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박인섭 목사님,
-백석대학교 구약신학 교수이신 유선명 교수님 함께 하셨습니다.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화, 디지털화, 신자유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로 인한 여러 변화와 도전 앞에서
한국 교회와 신학교 역시 위기를 마주하고, 변화를 요청받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이런 부정적인 영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데요.
지금의 한국 교회와 신학교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면서
오늘 이야기를 열어가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이은선 교수 / 올해 2024 목회 데이터 연구소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니까
코로나 이후에 한국교회의 출석 인원이 10~15% 정도 감소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그래도 요즘 성도님들의 교회 출석 비율이 좀 높아졌는데,
성인들은 그래도 87%까지 올라왔는데,
교회 학교를 중심으로 해서 유초등부 쪽은 80% 정도 밖에 회복이 안 됐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의 교육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물론 뭐 신학교도 '신입생 모집이 어렵다'는 사실도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인데,
최근에 보니까 부산에 있는 모 대학에서는 2021년도에 신학과를 폐지했고,
그 다음 해인 2022년도에는 신대원도 아예 페지해서
이제 그 대학에서는 신학 교육을 아예 폐지해 버린, 이런 학교들이 나오는 걸 보았습니다.
신학교 학생 모집이 어려운 가운데, 폐과 사태까지 이르는...
좀 안타까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
박인섭 목사 /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서, 우리가 부정적인 얘기들을 많이 듣는데요,
코로나 이후에 한국 교회와 신학교의 부정적인 상황들을 많이 들어서
저는 조금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한번 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코로나 때 한국 교회는 바벨론 포로 70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좀 합니다.
'강제적 안식년'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이 코로나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가 본질적인 고민을 좀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예배는 무엇일까? 목회는 무엇일까? 나는 목회를 왜 하는 것일까?
신학 공부를 왜 하는 것일까?'
이런 본질적인 고민들을 하면서, 아주 값비싼 과외비를 내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통해서
코로나 이후에 좀 더 진지하고 진실한 목회에 한 걸음 한 걸음,
신앙생활에 한 걸음 한 걸음들을 내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좀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진행 / 분명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게 나름 우리의 실력이 어떤지를 평가하고,
우리 약점이 무엇인지 보완하는.. 그런 기회가 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유선명 교수 / 신학교육을 하면서 '지원자가 준다. 폐과, 폐교' 이런 것들도 염려가 되는데
저희 (백석대) 학교같이 비교적 운영의 어려움이 없는 학교도,
교육 과정의 목표랄까, 공부하는 내용이랄까?
신학교 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 에 대한 기대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오는 일수도 좀 줄고, 비대면으로 하는 온라인 수업도 많아지고,
또 동아리라든가 이런 스터디 그룹 같은 것도 좀 예전같이 활성화되지 않고요.
학교에서 가다가 학생들을 가끔 만나면, 학생들이 인사를 합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제가 기억이 안 나서 '미안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못 알아봤는데 미안해요.' 그러면,
'제가 온라인도 수업만 들었습니다.' 이러는 거죠.
그러니까 대학교를 2~3년 다녔는데, 온라인 수업을 많이 하니까
제 수업을 들었는데도, 제가 모르는 학생 수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신학교육에 있어서 물론 정보도 중요하고,
또 이런 온라인 수업 때문에, 외국에 계신 선교사님들이나 지방에 멀리 계신 교정요원들
이런 분들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장점이 있는 건 제가 다 압니다.
근데 그래도 '커뮤니티 라이프' ... 같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저라는 사람이 우리 후배들을 가르치기에 턱없이 부족한 그런 사람일지라도,
그래도 저라는 사람을 통해서 또 전달되는 그런 부분들이
신학교에서는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삶을 나누는 이런 것들이, 좀 기대치가 많이 낮아진 현실이 참 아쉽다는 생각을
좀 하고 있습니다.
▲진행 / 방금 한국교회, 또 신학교가 처한 현실에 대한 진단을 했는데요.
그렇다면 이제 한국교회 회복을 위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은선 교수 / '위기 때는 가장 그 본질로 돌아가라' 라는 말이 있죠.
한국교회 회복을 위해서 아마 가장 절실한 것은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뭘 하셨는지?' 이걸 생각해보면,
한국교회 회복에 가장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뭐라고 하셨는가?' 보니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10:10
또 한 군데 아주 도전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러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요7:38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결국 우리한테 '생명'을 주셔서,
그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셨는데,
바울이 자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더라고요.
'내 복음이 너희에게 전달될 때, 말로만 전달된게 아니고,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졌다.' 살전1:5
즉 그들의 삶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었고, 성령의 변화시키는 역사가 있었고,
고난이 와도 그걸 견뎌낼 수 있는 큰 확신을, 복음이 가져다 주었다는 거죠.
저는 한국교회가 정말 예수님처럼, 그렇게 생명을 전해 주어서
듣는 사람들에게, 말로만 아닌, 생명의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야 될 텐데,
결국 그런 (생명을 주는) 영적 지도자를 잘 길러내는 것이,
한국교회 회복에 가장 지름길이 아닐까 ... 생각해 보았습니다.
박인섭 목사 / 저는 우리 시대에 지금 좀 필요한 덕목이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풍성함,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이건 다른 것이 아니라, 원래 본질이 튼튼하신 분들은 유연하시잖아요. 부드럽습니다.
본질이 강하면 부드러움도 가능하고
본질만 지킬 수 있다면, 유연한 적용들을 할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질 수 있는데,
그래서이 코로나 이후의 지금 한국 교회에,
우리 신학자, 목회자 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서, 좀 부차적이고 세부적인 것들은 좀 서로 양보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 즉 성경, 영혼 구원, 사랑의 섬김... 이런 것에 대해서
좀 마음을 나누고 함께 동역하는.. 그런 부분들이 좀 절실히 필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진행 / <한국교회를 논하다> 오늘은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신학교육개혁 방안에 대해
논해보는 '신학교육 개혁특집' 네 번째 시간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는 선언이 나온지 벌써 2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 주장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고, 때로는 오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번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유선명 교수 / 제가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는 선언에 대한 오해를 생각해 보니까
첫째, 가장 많은 오해가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는 말은
'신학이 학문의 틀에 머무르면 안 되고, 그것에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죠.
진짜 신학에서 학문성을 배제하는, 그런 말은 아닌 거죠.
두 번째,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는 말은
'신학은 여타 학문과 다르다. 학문 중에 여왕이다' 뭐 이런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표가 다르고, 방법론이 다르고, 그 학문하는 자세가 달라야 되기 때문에
'신학은 여타 학문과 다르다. 모든 여타 학문들의 공통적인 기초가 되거나, 지향점이 된다'
그런 정도의 의미로 생각한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셋째는, 상당히 적대적인 그런 오해가 되겠습니다만,
이것은 일종의 반지성주의적인 흐름으로써
기독교가 갖고 있는 지적 콘텐츠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뭔가 감정주의, 은사주의.. 이런 것들을 추구하자는 좋지 않은 흐름이다...'
이렇게 공격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죠.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봐야 될 것은,
(그 선언에 동참하신 분들은)
그런 것들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고 얘기했을 때,
이것은 신학의 역사 속에서 너무 지나치게 학문화되고, 사변화되고, 형식화되기 때문에
놓쳐버린 신학의 본질을 우리가 회복해야 한다는, 정말 진심을 담은 선언이었죠.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노력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그런 명제라고 생각합니다.
▲진행 / 예, 그렇다면 지난 20여 년 동안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는 주장이
한국 교회와 신학교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 한번 좀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은선 교수 / 지금 방금도 말씀하셨는데 결국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는 선언은
'신학의 본질, 생명력.. 이것을 회복하자' 하는 선언이었다고 생각이 되어지고요.
결국 그럼 신학의 본질을 회복하는게 뭐냐?
'예수 생명의 복음을 전파해서, 결국 목회 현장을 살리는 신학교육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그것을 가장 잘 행하는 곳은 어느 신학교일까요?
이것이 단지 선언으로 그치는 게 아니고, 정말 실천되어진 곳,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선언하고 난 다음에, 어떤 열매가 나타났을까?' 궁금해 하는데,
제가 백석대학교와 신대원을 가만히 살펴보니까
그것이 선언이 아니고, 실제로 실천되고 있더라고요.
저도 중고등학교에도 오래 있어 봤습니다만, 학교에 커리큘럼 바꾸는게 참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백석신학교에) 가보니까, 입학하기 전에 학생들이 2주간 성경책을 읽더라고요.
(교수님들도 다 같이 한답니다)
그러니까 성경1독을 그때 하고, 교수님과 함께 집회하시는데
더 놀란 것은, 저녁에 집회하는데 보니까, 총장님이 딱 뒤에 계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사실 저도 신학교에 오래 있었지만,
보통 하면 그냥 몇몇 관련자들만 하는데,
그렇게 (총장님이, 교수진이) 끝까지 참석하시면서 저녁에 집회하시고,
막 1시간 이상 통성기도 학생들에게 훈련시키시고,
그리고 성경 중심의 신학교 교과 과정을 가르치니까
이 학생들이 정말 목회 현장에 가면, 아주 환영받는 목회자 후보생들이 되는 거 같습니다.
더 나가서는 그 백석대학에 보니까
'예수 생명의 복음을 모든 구성원들이 다 전해야 된다' 해가지고
'화목 우주선' 이런 표어를 내걸고 교내 전도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화목요일 교내전도
지난번 방송을 들으니까, 2024년 1학기에 *지난 방송 보기
지난 1학기 동안에 약 4천명 되었는데,
그중에 822명이 결신을 하였고, 그중에 199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그래요. *일반학과 대상
'이렇게 살아있는 신학교육이 되는구나..
정말 대학교 캠퍼스에서 전도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구나..'
그러니까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예수 생명의 복음이다' 라는게,
그저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정말 현장에서 실천되어져서 그 열매를 거두는게 백석대학이고
그뿐만 아니라, 제가 주변에 있는 친구 교수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많은 신학교들이 '이제는 정말 이론적인 학문에 너무 치우쳐서는 이건 목회 현장에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정말 경건을 더 강조해야 되고,
성경을 읽는 신학교육을 해야 되겠다' 하는 움직임들이 타 신학교들도 점차 확산되어져
나가는 것을, 이렇게 피부로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박인섭 목사 / 저는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는 주장이
우리 한국 교회와 신학교에 던지는 도전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첫 번째는 '신학의 제자리를 찾자'
이 주장은, 백석대학교 설립자이신 장종현 목사님의 저서 제목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교회를 살리는 신학>, <생명을 살리는 교리>,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이런 책들의 제목만 봐도, '도대체 신학이라는 것이 어느 자리에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신학 제자리 찾기' 이게 그 명제가 던진 첫 번째 도전이라고 생각하고요.
두 번째 도전은, 우리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첫사랑을 좀 회복하자' 라는 도전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한국 신학교를 주도하고 있는 분들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한국 교회의 가장 뜨거웠던 시절의 부흥의 열매'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은혜 받고 성령 체험하면서, '내가 평생을 신학자로 또는 목회자로 살아가야 되겠다'라고
첫사랑을 가지고 시작했죠. 그런데 전문적으로 신학 공부하고 이렇게 하면서,
'그 첫사랑이 좀 약화된 것이 아닌가? 좀 다른 방향으로 간 것이 아닌가?' 이런 차원에서
'신학은 학문이 아닙니다' 라는 이 말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첫사랑을 다시 회복하자.. 라는 호소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유선명 교수 / 저는 약간 개인적인 측면에서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이 뜨거워지면서
신학공부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때 제가 이런저런 지인들, 선배님들, 목사님들께 여쭤보았어요.
'신학공부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떤 신학교가 좋은 신학교입니까?' 여쭤보면,
그 분들의 공통된 답이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책을 많이 쓰시고, 이런 명성이 있는 교수님들이
교수진으로 많이 있는 신학교가 좋은 신학교다' 이렇게들 많이 말씀해 주셨어요. *학문성 강조
시간이 흘러서, 제가 그런 학문적으로 뛰어나다고 하는 신학교에 가서 공부도 해보고,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제가 미국의 그런 신학교에서 교수가 되어서 강의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렇게 탁월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고, 학문적 성과가 있던 그 학교들이
작년에 제가 이제 학교 공무로 출장 가서, 옛 동료들이나 교수님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가보니까 (미국의 그 유명한 신학교가) 굉장히 학교가 위축되어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학문적인 강조를 하고, 탁월한 신학교라고 인정받았는데,
'지금은 왜 그런가, 왜 위축되어져 버렸는가?' 제가 살펴 보니까,
'신학교가 실제로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데는 좀 실패했다'
교수진 본인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이름 있던 저명한 교수님들을 많이 내보내게 되고,
학교도 너무 위축되어있는 거를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교단 세(교세)도 줄어들고... 신학교 학생 수도 줄어들고...
그러니 교수들도 신학교에서 조기 퇴직하시게 되고...
국내에서도 봤었죠. 학술 활동하고, 학회 활동을 하다 보니까
여러 교수님들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그런 학교에서 공부하신 분들이 이렇게 얘길하세요.
'나도 그런 공부를 거기서 했고, 그런 교수님들한테 배웠는데,
여기 한국에 돌아와서 내가 교수 생활을 해보니까.. 그때 너무 (학문 쪽에) 치우쳤다...' 하는 거죠.
학문이 탁월하다는게 나쁜 건 아닙니다만,
학문성을 강조하다가 보니, 말씀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신학교에서 실제로 목회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을 하지 않는, 그런 방향으로 가다 보니까,
학문 자체가, 그리고 학교 자체가 존속하기 어려워진 이런 결과들이 나왔다는 것이죠.
그래서 다들 '이제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 이런데 공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백석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좋은 평가를 많이 받는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습니다.
'심성이 바르고, 말씀을 사랑하고, 겸손하고, 교회를 섬기는데 아주 충성스럽다...'
이런 얘기를 들어서,
우리 백석 교단 만이 아니라, 타교단 목회자들도 '백석 신대원생들을 좋아한다'
이런 얘기 들는데요. *교육전도사
장종현 총장님께서 줄기차게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고 강조해 오신 것은
단지 우리 백석 신대원을 위해서만 하신 말씀은 아니고,
온 한국교회를 품고 하신 충정에서 나온 말씀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철학과 그런 생각에서 나온 교육이
이제 백석 신학대학원생들이라는 좋은 열매로 돌아오고 있지 않은가는 생각하면서
신학교에서 '학문성' 이런 것을 강조하는 것이 가지는 부정적 결과와 함께
앞으로 우리 신학교들이 나아가야 할 미래의 좋은 방향을
우리가 (백석신대원의 사례를 통해) 직접 보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진행 /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에 대해서
박인섭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인섭 목사 / 신학이 왜 신학이 학문이 아닌가?
이것은 5가지로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장종현 목사님의 책과 설교에서 가져왔습니다.
1) 첫 번째 이유는,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신학이 학문이 될 수 있는가?
2) 두 번째는, 영이신 하나님은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죠.
3) 세 번째는, 학문은 구원을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죠.
4) 네 번째는, 기도와 성령,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목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목회를 도와주어야 하는 신학이, 어떻게 학문이 될 수 있는가?
5)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아주 중요한 목표인데,
이건 학문으로 할 수 없다 라는 것이죠.
장종현 목사님은, 일반 성도들에게 주로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주로 말씀을 전하시면서,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 대해서 아주 사명감을 가지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기도해 오신
결과물이
이 5가지 이유이기 때문에, 저희가 좀 마음에 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 / 신학의 학문이 아닌 이유에 대해서 쭉 짚어봤는데요.
이 5가지 이유 중에 가장 공감이 되는 건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한번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은성 교수 / 저는 다섯 번째, '학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는 말씀이
가장 공감됩니다.
마르틴 루터가 1518년에 '하이델베르크 논쟁'이라는 걸 했거든요.
자기가 종교개혁을 처음 시작하면서, 많은 공격을 받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논쟁했는데,
거기 28번째 항목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대상을 창조하신다.'
그러면서 '세상의 사랑은, 사랑의 대상의 매력에 끌려간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철학이나 세상의 학문은, 결국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좋은 점이 있으니까
그 학문에 끌려간다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 세상에 와서 가장 버림받고, 소외 당하고,
그런 사람들을 사랑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면서 그가 인용하는 성경 구절이 갈5:6절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러면서 사랑은 결국 믿음의 열매라는 거죠.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될 수 없다...
그러니까 세상 학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되지 않고,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 속에서 그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와서
세상 사람들은 다 피하는 그 존재들, 그 모든 사람들을... 성도들은 사랑하게 만든다.
저는 이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고,
설립자 말씀하고도 아주 잘 맞아 들어간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문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이죠.
유선명 교수 / 저는 (신학이 학문일 수 없는 5가지 이유 중에) 첫 번째,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신학은 학문이 아닙니다' 라는 주장이
가장 제 마음에 와 닿는 정도를 넘어서, 큰 충격을 줬죠.
왜냐하면 '그 두 개는 항상 같이 가는 게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즉 성경을 하나님 말씀을 믿고,
-학문으로써 또 성경을 엄격하게 연구하고... 이 두 개가 같이 간다고 생각했었죠.
근데 그 이후에 몇 년 동안, 제가 현장에서 가르치고, 책을 쓰고 하면서 생각해 보니까,
그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학자로서 연구를 하다 보면,
저는 구약학자니까, 성경을 원문과 여러 배경과 지식들을 검토 연구하다보면
성경이 하나의 문헌이 돼 버리는 거죠.
그리고 성경 안에 있는 등장 인물들, 또 그 책(성경 각 권)을 쓴
어떤 저자라는 입장에서 연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예레미야서면, 저자의 의도, 스타일, 그가 갖고 있는 생각들...
여기에 집중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게 하나님 말씀이다' 라는 의식이 옅어지고요.
이 책을 공부하면서 '내가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이런 귀가 자꾸만 닫히고,
하나의 문서, 책으로서, 그들이 저자인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는데 익숙해지는 것이죠.
'정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저자이신 책이다 라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구나...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나의 의식과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구나...'
이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진행 / '신학이 학문이 아닌' 그 첫째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는 점을, 신학교육에 반영한다면,
신학교육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인섭 목사 / 저는 한 마디로 '사고방식의 거듭남'으로
신학교육이 방향을 좀 잡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논리의 거듭남'이라고 해야 될까요?
결국 세상의 논리와 성경의 논리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완전히 차이가 나는 다른 부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나, 그리고 나의 감정, 이런 것에 따라서
'이것을 따를 것인가, 안 따를 것인가?'
이것을 (합리적, 이성적으로) 결정하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의 논리인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신학교에서 목회자를 기르는 교육은
'하나님의 논리, 성경의 논리에 따라서 생각하고, 반응하고, 따라갈 수 있도록' 가르치죠.
예를 들면 '원수를 친히 너희가 갚지 마라. 왜냐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실 것이기 때문에!'
근데 이게 세상의 논리로, 우리 감정으로는 이게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성경말씀의 논리를 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것을 마음에 깊이 말씀을 새겨주고,
힘들지만 기도하면서 따라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논리의 거듭남, 사고방식의 거듭남'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즉 세상 논리가 아니라, 성경적 원리로 신학교육을 하면 어떻겠느냐'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성경을 가르쳐야 되겠죠.
성경도 우리가 마음으로 전심을 담아 가르치고,
또 성경을 마음으로 새기고 따라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되겠죠.
그래서 제가 몇 달 전에, 제가 선배님 중에
작은 신학교를 운영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저한테 몇 년 만에 전화가 왔어요.
'백석신대원은 성경을 가르친다며?'
시청자분들은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뭘 가르치겠느냐?' 하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신학교에서는 '성경 자체'를 가르치기 보다는,
'성경에 관한 것들', 즉 신학이나 관련 학문들을 많이 가르치는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속해 있는 백석신대원에서는
15년 전부터 성경 본문 자체를, 우리가 마음으로 읽고,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각 장별, 구절 별로 가르친다는 뜻인듯
그래서 신입생 영성 수련회에서는, 성경을 직접 읽도록 하는 이런 것들을 시작하고,
또 신대원 6학기 전체에 걸쳐서, 필수과목으로
성령 자체를 마음으로 읽고, 또 우리가 적용하고 순종할 수 있는 신학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진행 / 저희 자녀가 다니는 (신)학교에서, 매일 아침마다 큐티 같은 걸 하는데,
그 교재 제목이 "복종이 있는 성경묵상" 이더라고요.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어떤 절대적인 순종, 복종을 훈련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좋은 방향이죠.
이은성 교수 / 아까 '성경을 자꾸 분석하는 데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찌 보면 바로 그런 '교육의 전환'을 했던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종교개혁자들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중세 말기에 스콜라주의자들의 유명한 신학책들,
뭐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이런 (철학적 신학) 책들을 갖고 계속 공부하던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걸 개혁한 것이 '종교개혁'이죠.
제가 청년 시절에 신학교 다닐 때에도, 학교 가면 제일 중요한 게 조직신학책,
그래서 '구원의 서정'이 어떻고, 하는 그런 이론을 배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성경이 나한테 뭐라고 말할까?'
즉 성경이 나에게, 신앙과 경건을 가르치고, 말씀하고, 책망하는 점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그때 신학교를 다녔던 것 같아요.
당시에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는지
들어야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가장 강조했던 말 가운데 하나가, 히브리서 1:1~2절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즉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부분과 여러모로 말씀했지만,
신약시대, 마지막 날에는 아들로 말씀하신다'고 했죠.
그래서 '오늘날도 지금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하고 강조했죠.
당시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는, 7가지 성례를 강조했습니다. 신앙이 의식에 치우쳤죠.
그렇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성례를 행하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듣고,
그리고 그 말씀을 교회에 가서 선포하는 것이 신학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된다'
그래서 결국 루터가, 그 당시에 그는 성경을 독일어로 직접 번역을 해서,
'성경으로 돌아가자' 주장한 것이죠.
한국 교회에도 정말로 성경을, 너무 학문적으로 분석할게 아니라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으로 들어서
교회에 선포할 수 있는 사역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이렇게 신학교육의 방향이 좀 바뀌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진행 '신학이 학문이 아닌' 둘째 이유는,
'영이신 하나님을 학문으로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고
강조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이 점을 생각할 때,
달라져야 할 신학교육은 어떤 것이 있는지 말씀헤 주십시오.
유선명 교수 /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조직신학적 범주로 '영이라는게 뭐냐?'
이렇게 (조직신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와 존재 자체가 다르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 계시해 주셔야 하고, 우리에게 다가와 주셔야 되죠.
이거를 피상적으로 그냥 '교리가 그러하다'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누구신가, 또한 나에게는 누구신가'를 생각해 보는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 (혹은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는데 엡1:17
우리가 공부할 때마다, 또 연구하고 강의하고 함께 수업을 듣는 이런 모든 과정에서,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가 신앙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진심으로 순종하려고 나아가는
진지한 신앙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지금 성경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우리가 지금 수업을 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진지하게 기도하고요,
무한하시고 영이신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에게 뜻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인간의 언어로 말씀해 주셨다... 이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것인지요.
이것이 그냥 어떤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서
하나님 가슴에서부터 우리에게 건네주신 그런 사랑의 메시지라는 것을
정말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우리가 신학교에서 수업하기 전에, 짧은 기도를 하고 수업을 시작하죠.
제가 하루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그냥 타성에 젖은 습관적 기도가 아니라,
'정말 오늘 이 수업을 하나님이 받아주시고, 우리가 말씀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런 간절함을 담은 그런 기도와, 또 의존하는 그런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은선 교수 / 요한복음 4장에 보면, 그 영이신 하나님은 탐구 대상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고 경배의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요4:23~24
그래서 신학교에서, 탐구나 연구가 아니라, 예배와 경배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그 바울의 고린도후서 4:6절의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제가 생각해 볼 때, '아마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그 체험을 말한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창조할 때는 깜깜한 세상, 어두움, 흑암 속에 있을 때
그 가운데 빛이 쫙 비치면서, 이 모든 걸 분별할 수 있게 만들었었는데, *빛이 있으라
근데 자기 영이 깜깜했을 때,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율법에 능통했던 사울이라도,
그 신념, 성경지식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다 찾아내서 죽일 정도였고,
자기가 보기에 예수님은 '나무에 달린 저주받은 자인데
아니 저주받은 자를 메시아라는 제자들은 이건 완전히 이단자다.'
그래서 성도들을 핍박하지 않았습니까?
그러할 때, 그 밝은 영적 빛이 사울에게 쫙 비춰오면서... 비로소 깨달아졌다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가 신학교에 가서 성경을 공부하는데,
정말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 어떻게 그 하나님을 알겠습니까?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 영광의 빛을, 사울에게, 루터에게 비춰주셨듯이
우리한테도 확 비춰주셔야 된다는 거죠. 그때 비로소 영적 깨달음이 오는 거죠.
(그러면 자동적으로 신학을 학문적으로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중세 때까지만 해도, 먼저 성경을 읽고, 신학 공부하고,
그다음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하는 방식으로 신학을 공부했는데,
루터는 '그게 아니다. 우리가 어두운 상태에서 성경 아무리 봐도 못 깨닫는다.
먼저 기도하고, 먼저 성령이 조명해 줘셔야 된다. 그래야 우리가 성경을 깨닫는다'
그 성령의 비추심 속에서, 정말 이 성경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는 말씀으로,
심령과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는 말씀으로 체험되는 거죠. 히4:12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진행 / 박인섭 목사님은 신학교의 교목 본부장이신데
학생들을 위해서 하고 있는 어떤 경건 훈련에 대한 걸, 간단하게라도 좀 소개해 주시죠.
박인섭 목사 / 월요일에 우리 신대원에서는 '개척학교'라는 걸 합니다.
학교 다니면서도 교회 개척을 하는, 그 뜨거운 심장을 가진 학생들이 있는데
그 수료식에서 제가 설교를 했습니다.
그 때 제가 이걸 이야기했습니다.
'아직도 큐티 안 하는 촌스러운 신학생이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도전을 했는데,
왜 제가 그거를 이야기했냐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중요하다는 거죠.
하나님의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두 번째 문제고,
우리가 정말 그 사명의 자리에서 롱런하고,
우리가 그 사명을 감당하고 버텨내면서 갈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중요하다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뿐만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하며 믿음으로 구할 때,
우리가 사역을 잘할 수 있고, 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저뿐만 아니라 우리 신대원의 많은 교수님들이
이것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 기도하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는 것입니다.
▲진행 / '신학의 학문이 아니다' 라는 말을 깊이 생각할수록,
신학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답을 찾게 되는 것 같은데요.
전통적 신학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한국 교회와 신학교가 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간절한데... 앞서 나눈 말씀 외에, 신학교 교육과 관련해서
의견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유선명 교수 / 이제 '신학 교육' 이라는 것이 어떤 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배우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런 인격적 교류, 하나님 안에서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희 백석신대원 경우에는, 이제 저희한테 큰 장점이
굉장히 많은 여러 교목 (교수)님들을 저희가 모시고 있고,
그분들이 이제 '담임 교수님'이 돼가지고,
신학생들이 교목 선생님들의 (성도처럼) 양육을 받는 이런 면이 굉장히 강조되는 학교입니다.
많은 교목들이 정말 헌신적으로 훌륭하게 감당하고 계신데,
저같이 일반 전공과목을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는,
우리가 실수도 많고, 주야간 가르치고, 굉장히 바삐 과목을 가르치다 보면,
이게 좀 분리되는 느낌이 있단 말이죠. 따로 따로 진행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걸 어떻게 좀 더 융합, 통합될 수 있는 그런 방식을 우리가 찾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목과 교수의 융합
그래서 학과목이라든지, 전공영역이라든지,
일반 교수님과 교목 교수님의 차이를 넘어서,
좀 더 액티브하게, 굉장히 좀 더 단순하게 서로 만남이 이루어지고,
신앙과 사역과 이런 경험들도 함께 나누어지고,
함께 기도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는 것들이 좀 더 활발해진다면,
훨씬 더 시너지가 올라가는 그런 신학 교육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지식의 전달이 교육이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 생명을 나누는 공동체로서의 이런 신학교를 꿈꾸면서,
모두가 함께 이런 노력을 한다면, 훨씬 더 양질의 신학교육,
즉 생명이 나눠지고, 또 전파되는 교육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박인섭 목사 / 저는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이 명제가 왜 우리에게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가?
그리고 이것이 왜 한국 교회 안에 지금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가?
이거 자체가...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처음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서 은혜받고,
정말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복음, 사랑, 말씀의 토대 위에서 시작했다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역사와, 전통과, 교리에 갇혀 가지고
지금 한국 교회 안에서 혼돈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에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왜 신학은 학문이 아닌가?' 이 이슈가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앞으로 좀 더 하나님 말씀 붙들고 기도하면서
영혼 구원,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이 본질을 붙들고,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이렇게 가는 것이 정말 필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진행 / 어떻게 보면 표류하는 거 같은 한국 교회를 향해서 하시는
그런 말씀으로 이해가 됩니다.
이은선 교수 / 당연히 '신학이 학문이 아닌 것은' 아까 말씀한 대로
신학의 생명력을 회복하자는 취지인데요.
결국은 가장 소망하는 것은, 신학생들이 졸업하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이 원하셨던 그 생명 사역을 실제로 감당할 수 있어야 될 거 같은데요.
저는 제가 신학교에 입학가면서 제 마음속에 늘 품었던 말씀은
사도행전 4:33절이었어요.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더라'
따지고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하고 다니면서, 3년 동안 말씀으로 잘 훈련받았고 했었는데
처음에는 전도가 잘 안 됐는데,
그런데 결국 그들이 기도하면서 성령 충만을 받으니까,
그들에게 성령의 큰 권능이 있었고,
그때 그들이 나가서 말씀을 전하면, 거기에 큰 은혜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고 하는 설립자님이 꿈꾸는 목표는
여기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가운데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춰 주시고,
그것이 깨달아지는 가운데 기도하면서 성령 충만 받아 가지고
큰 권능으로, 큰 은혜로 사역할 때,
그래서 정말 말씀을 들을 때마다 모든 성도님들에게 큰 은혜가 있으면
한국 교회가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사도행전에 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를 해 봅니다.
▲진행 / 이제 끝으로 한국 교회와 신학교를 생각하면서
제안의 말이나 기도 제목이 있다면 나눠 주시면서 마무리를 했으면 합니다.
박인섭 목사 / 저는, 저를 포함한 우리 목회자분들이 신학자 분들이
'믿음을 위해서' 좀 기도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최근에 이걸 많이 기도하는 것 같아요.
'하나님 제가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면, 다르더라고요.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는 우리가, '이 말씀이 정말 맞다. 하나님 믿음을 주십시오'
라는 이 기도를, 우리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좀 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유선명 교수 / 앞서 나온 내용들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또 연구하고 가르치는
외형적 형태가 그다지 달라질 것 같진 않아요.
그러나 정말 말씀을 맡은 자들이 진심으로,
저 자신도 말씀 앞에서 '이걸 얼마나 많이 가르치지만, 내가 순종하지 않고,
내 자신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가르쳤나?' 이런 것들을 많이 회개하게 되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그저 옛날에는 교회의 구조나 몇몇 목사님들이 잘못해서... 이렇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내가 문제고, 내가 이 은혜의 통로에서 막히는 그런 걸림돌이 되는구나'
이런 것들을 깨닫는 시간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시청자들, 또 함께 하시는 교회 목회자 신학교 교수님들께서도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는 이 말씀의 뜻을
이런 점에서 좀 개인적으로도 적용해 보시면서,
이 운동에 다 동참하는 그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은선 교수 /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방향성과 추구가
그래도 백석대학을 지금 많이 변화시켰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이것이 좀 더 많은 방면으로 (다른 신학교로) 확산되어져 갔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오늘 시청자분들께서 같이 기도하실 때,
정말로 모든 한국의 신학교들이, 이렇게 성경을 학문으로 배우는 걸 넘어서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공부하고,
다시 한국교회를 말씀으로 살리는,
그래서 침체되어 있고, 위기라고 하는 이 상황을 벗어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교회로 가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같이 좀 기도해 주시고, 같이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진행 박찬호 교수 / <한국교회를 논하다> 오늘은 신학교육 개혁특집 네 번째 시간으로
신학교육이 당면한 쟁점과 과제를 짚어보면서
학문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영적인 능력이 있는 목회자를 배출할 수 있는 신학교의 방향성에 대해서
함께 대담 나눠 보았습니다.
거룩하고 충성된 일꾼을 키워내는 신학교육으로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