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20] 영적인 초보를 버리라 (히5:11-6:8)┃2025.2.14 금요예배
*위 동영상 56분경부터 녹취
◑배도자에 대한 경고 히6:4~8 2025.02.02.
※히5장 영적인 초보를 버리라 rfcdrfcd.tistory.com/15982234 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도의 초보를 버리고 영적 성숙함에 이르라'고 하는 것이
히브리서의 첫 번째 경고였다면
히브리서의 두 번째 경고의 내용은 '믿음에서 떠난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다음을 구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히6:4~8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 말씀은 성경의 대표적인 난해 구절 중에 하나인데요.
그러면 '한번 성령의 한번 비췸을 받고 또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하면
다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건가?'
이게 사실은 좀 난해한 구절이긴 합니다.
근데 이거는 여러분, 그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돼요.
이 말씀의 배경은 뭐냐면,
지금 기독교를 떠나서, 유대교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 앞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핍박 앞에서 잠시 돌아가면 안 되나?'
그와 더불어 어떤 유혹이 있냐면,
'그냥 이 핍박기에 잠깐 피해 있다가 (잠깐 타협하다가, 신앙을 부인하다가)
이 핍박이 지나가고 나서 다시 돌아오면 안 되나?'
초대교회 때 여러분 이런 유혹이 있었습니다.
'너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줄게, 근데 예수 부인 안함을 죽일 거야!'
이게 실제적인 핍박이었잖아요.
그러면 어떤 유혹이 있었을까요?
마음으로는 부인을 안 할 거예요. '그런데 위기는 일단 넘기자' 하는 거죠.
그래서 '아휴,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케이 너는 집에 돌아가도 좋아'
그러면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믿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이 당연히 있었을 거예요.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건데, 당연히 유혹이 있죠.
그래서 사실은 이것이, 당시 초대교회 때 굉장히 심각한 신학적인 논란이 됐던 이슈였습니다.
그렇게 잠깐 예수를 부인하고 위기를 모면했던 사람들이,
핍박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니까,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랬을 때, 이 사람들을 받아 줘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하는 것이
초대교회 때에 굉장한 이슈였습니다.
그냥 이 사람들을 교회로 받아주자니.. 그럼 순교한 사람들은 뭐가 되는 거며,
안 받아 주자니.. 그래도 주님은 은혜로 구원해 주시는 분인데,
그렇다고 회개하고 돌아오는데 안 받아 주는 것도, 기독교 신앙 원리와 맞지 않았죠.
이게 그래서 참 어려운 이슈였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이슈였는데,
그래서 사실 위 구절에 대한 해석은 참 어려워요.
초대교회 선배들도 정확하게 결론을 못 내렸던 이슈이기 때문에...
▲근데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시 돌아왔을 때, 배도자들을 용서해 주실 수도 있어요.
그거는 제가 아는바 하나님은 그런 분이세요.
하지만 그것을 악용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원리는 분명합니다. 그것을 악용하지는 말라는 거예요.
뭐 우리의 연약함이 있기 때문에, 실수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받아 주시긴 할 거예요.
하지만 '이거(용서)를 악용하는 사람, 그 사람을 어떻게 하실까?'는
사실 하나님의 주권이에요. 그건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건 진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뭐냐면,
신앙에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라고 하는 단호함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물론 '이번에 실수해도, 내가 회개한 다음에는 용서해 주실 거야'
아마 가능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거기부터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이 뭐라고 신학적으로 단정해서 결론내릴 수가 없어요. 답을 낼 수 없어요.
그게 신학적으로... 여러분 초대교회 때도 결론이 안 났어요.
그러니까 신학이라고 하는 건, 어떤 규칙과 룰을 정하고 싶은 거잖아요.
그런데 인간의 규칙과 룰로 규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이 있어요.
배도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을 다시 받아 주실 수도 있고,
no more chance 하실 수도 있고... 이건 하나님 주권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죄에 대한 단호함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죄에 대해서 우리가 단호함들이 있어야 됩니다.
죄에 대해서는 '이번에 넘어졌지만, 회개하면 또 용서해 주시겠지..
은혜의 하나님이신데 뭐!'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건 잘못된 태도라는 거예요.
물론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태도는
'이번에 마지막이고, 이 죄 앞에는 절대로 넘어지면 안 돼!' 하는 단호함이 있어야 돼요.
그래도 우리는 넘어져요.
근데 이렇게 연약함으로 넘어졌을 때, 하나님 은혜로 용서해 주시는 것과,
이 용서를 악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말씀 마무리합시다.
히브리서 기자의 경고를 들으십시오.
영적인 성숙함에 이르고, 히6:1~3
영적인 단호함을 가지라고 경고합니다. 히6:4~8
이 성숙함과 단호함이 있을 때, 우리는 중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끝까지 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내로 구원을 얻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