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19] 믿는 도리 (히 4:14-16, 10:19-39)│2025.2.2 - YouTube
◈믿는 도리 히4:14~16, 10:19~39 2025.02.02. [히브리서19]
◑도입
믿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가 누구신지 또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우리 믿음의 기초이고,
또 우리 신앙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에 대한 책이고, 특별히 예수에 대한 책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기자는 '예수가 누구신지', '예수가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계속 우리에게 반복해서 전하고 있고, 이것이 결국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이 세속의 거센 흐름으로부터,
우리를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행하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믿을 때, 그것이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그런 영혼의 닻이 됩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라고 말씀합니다. 히4:14, 10:23
그래서 오늘 저희가 살펴보려고 하는 설교의 제목은 "믿는 도리"입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는 도대체 뭔가?' 하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히브리서 1 ~ 4장까지 내용은 '예수가 누구신가?'에 대한 거였다면
4:14절부터 ~ 10장까지는 '예수가 행하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까지 우리는 '예수가 누구신가?' 하는 것을 살펴보았고요. 1:1~4:13
이번 주부터는 '예수가 행하신 일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주제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4:14~
그래서 오늘 읽으신 4:14절부터 ~ 10장 끝까지는.. 길지만,
그냥 한 호흡으로 (단숨에) 쭉 읽어내려가야 되는 그런 내용입니다.
▲히4장부터 10장까지 내용을 쭉 한 번에 읽어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셨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예수께서 새로운 언약, 새 언약을 주셨다는 거예요. 그게 성령님에 대한 거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새 언약 되신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셨다는 거죠.
세 번째 하신 일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보통 예수 그리스도 하면, 세 번째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첫 번째, 두 번째 것은 좀 부족하죠.
하여간 예수님은 이 세 가지를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제 4장부터 ~ 10장까지 쭉 기록하고 있는데,
기록하는 방식을 보면, 시작하는 4:14~16절,
끝나는 10:19~39절에서, 그러니까 이걸 '양괄식'이라고 그러죠.
시작 때 한 번, 끝날 때 한 번 요약해서 얘기를 합니다. 강조하는 거죠.
*양괄식 : 산문 구성 방식의 하나. 글의 중심 내용이 첫머리와 마지막에 반복하여 나타남.
그리고 그 중간에 길게 풀어서 쓰는, 히브리서는 이런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우리의 믿는 도리가 무엇인지... 그것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믿는 도리
히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예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잡으라는 거죠.
예수가 누구신지, 또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그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십시오.
'믿는 도리', '도리'의 헬라어를 보면 '호멀로기아'라고 하는 단어를 썼습니다.
'신앙 고백' 이란 뜻입니다. *our profession, our confession
'도리' 이것은 두 단어의 합성어인데요. 호모스 + 레고
호모스 : 비슷하다, 같다
레고 : 말하다
그래서 '도리'란, 비슷하게 말하는 것, 똑같이 말하는 것, 즉 '신앙 고백'이라는 뜻이죠.
무슨 뜻이냐면, 이것은 모든 교회가, 개교회 말고요,
모든 크리스찬, 우주적인 교회가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 ... 이런 뜻입니다.
예를 들면 사도신경 같은 게 그런 거죠.
사도신경의 내용을 쭉 보면,
모든 크리스찬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어떤 신앙의 고백이잖아요.
그래서 '믿는 도리'라는 것은, 이렇듯 모든 크리스찬들이 다 같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믿음의 내용.. 이런 뜻입니다.
'그런 믿음의 내용을 굳게 잡아라' 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기자가 기록하고 있는 믿는 도리의 내용, 믿음의 내용은 뭘까요?
4장부터 ~ 10장까지 해서 그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오늘 요약해서 보면, 대충 5가지 '믿음의 도리, 믿음의 내용'을 얘기합니다.
1) 첫 번째는, 우리 믿음의 도리는, 우리에게는 대제사장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거예요. 4:14~15절인데요.
대제사장이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재하시는 분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재해 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거예요.
우리를 위해서 대신 말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거예요.
이게 첫 번째 믿음의 도리고요.
2) 두 번째는, 너희는 그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속죄되었으니까
성소로 담대히 들어가라는 거예요. 4:16, 10:19~20
'하나님께로 나아가라' 하는 것을 권합니다. 이게 우리 믿음의 도리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믿는 내용은 뭐냐면,
'너희는 죄사함 받았으니까 하나님 앞에 나가야 돼!'
그것이 우리가 믿는 내용이라는 거예요.
3) 세 번째 믿는 내용은 뭐냐면, 그럴 때 '그가 우리를 도우신다'는 거예요. 4:15, 10:23
우리가 믿고 있는 내용은 뭐냐면,
'하나님은 당신 앞에 나오는 자들을 도우시는 분이시다' 라는 거예요.
4) 네 번째, '그러니까 너희는 소망을 잃지 말고' 10:23, 34
인내함으로 10:36
담대하게 끝까지 가라 10:39
그게 이제 네 번째 믿음의 도리입니다.
너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 옆에 나아가면,
도우시는 분이 계시니까,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멈추지 말고, 담대하게 끝까지 가라...
5) 다섯 번째는, 그분이 지체하지 않고 곧 오실 거라는 거예요. 10:39
'그러므로 너희는 이 믿음의 내용들,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고 끝까지 가라'
하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메시지입니다.
좀 더 자세히 이 믿음의 도리, 우리가 믿는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죠.
◑1. 첫째, 믿음의 도리의 첫 번째 내용은 뭐냐면
'우리에게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께서 계신다'는 거죠.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에게는 대제사장 예수님이 계신데, 대제사장이 하는 일은 뭐냐면 중재자예요.
그러니까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중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뭐냐면 (하나님과 사람) 양쪽하고 다 얘기를 할 수 있어야 돼요.
양쪽하고 다 소통을 할 수 있어야, 중재를 할 수 있죠. 그것이 중재자의 자격 조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예수께서는, 인간이 되시긴 했지만 '죄가 없으시니라' 4:15
하는 얘기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승천하셨어요.
그래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셨다는 거예요.
비록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셨습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4:14절에 보면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고요.
지금 어디 계시냐면, 8:1절에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그러니까 승천하셔서 지금 어디 계신다는 거예요?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도 하나님과 소통하고 계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대변하고 계신
존재라는 거예요.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2. 두 번째,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통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
예수께서는 하나님뿐만 아니고, 사람하고도 소통하실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신이 인간이 되셨는데, 100%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고통을 다 체험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와 소통하실 수 있는 어떤 기초를 놓으셨다는 거예요.
잘 생각해 보세요. 그냥 하나님의 입장에서 우리하고 소통을 한다 그러면,
아마 우리를 이해 못 하실 거예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 또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가 뭔지...
또 우리의 고통이 뭐고, 어려움이 뭔지... 이런 걸 이해 못 하실 거기 때문에,
그래서 중재자가 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뭘 해야 되냐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친히 다 경험을 하셔야 돼요.
그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의 모든 것들을 모든 어려움과 고통과 한계들을
친히 체휼(체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대변하실 수 있게 됐다는 거예요.
예수께서는 중재자이십니다.
히5:1~2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예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모르는 분이 아니세요.
'에이, 너 그것도 못해? 이 바보 같은 놈!' 이러시는 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무자비한 왕이 아니시고, 우리의 무식하고 미혹된... 우리가 이런 존재라는 거예요.
우리의 그 연약함을, 예수께서도 다 친히 경험해 보셨다는 거예요. 100% 인간으로서!
하나님으로서 경험하셨다... 그거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시니까 당연히 그렇게 하시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100% 인간으로서, 저와 여러분과 똑같은 인간이 되셔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십니다.
우리의 무식함을 이해하시고요. 우리가 받는 미혹과, 우리가 가진 연약함을 이해하세요.
그래서 우리의 무식하고, 미혹됨을 정죄의 눈으로 보지 않으시고
긍휼의 눈으로 보십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죄는 없으시니라'는 4:15
말씀이 더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 인간이 되셨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소통하실 수 있으십니다.
왜? 죄가 없으시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중재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에
우리를, 우리 입장에서 하나님께 대변해 주는 분이세요. 그런 분이 계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감사한 겁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아도
우리를 위해서 대신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거예요.
'어휴, 쟤네들이 말씀에 무식하기는 하고, 좀 미혹돼서 맨날 저러긴 하지만,
그래도 쟤네들이 그렇게 나쁜 애들은 아니에요.'
이렇게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거예요. 하나님 옆에서.
이분이 우리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게 우리의 '믿는 도리'예요. 할렐루야!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보신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또한 그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죄를 속하는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비껴가게 하는 것이 대제사장의 역할인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 일을 하셨다는 거예요.
스스로를 희생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를 향하여 쏟아지는 모든 진노를
비껴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 위에 쏟아진 하나님의 모든 진노와 모든 심판을
다 비껴가게, 무마하신 것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너희는 성소, 하나님이 계신 보좌 앞에
담대히 나이갈 담력을 얻게 됐다는 것입니다.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래서 믿는 도리의 두 번째 내용은 뭐냐면,
'너희가 죄사함을 받았으니까,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구원에 대해서 조금 오해가 있습니다.
구원의 핵심은 뭐라고 생각하냐면 '죄사함'이라고 생각을 해요.
틀린 말은 아닌데, 온전하지는 않아요. 죄사함을 받은 이유가 뭐예요?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서인 거예요.
그러니까 죄가 뭐냐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거거든요.
원래는 분리되어 있지 않았어요.
하나님과의 아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살도록 지음받았는데,
죄로 말미암아 이 fellowship이 깨진 거거든요.
그래서 구원은 뭐냐 하면,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게 구원이에요.
그런데 화목하게 하려다 보니까, 죄 문제가 해결이 돼야 돼요.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구원의 마지막은 뭐예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구원의 마지막이지,
죄사함이 구원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사함은 구원의 과정인 거죠.
죄사함을 받아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가 구원에 대한 걸 이해할 때,
'아이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 죄가 다 사함받았어요. 할렐루야 아멘!'
그러고 끝나면, 아직 구원은 뭔가 부족한 거예요.
그러니까 구원은 어디까지 가야 구원이에요?
죄사함을 받았으니까.. 그렇지,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분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누리는 것,
이것이 구원의 완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믿는 도리'를 보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로 끝나지 않아요.
'죄사함을 받았으니, 너희가 성소에 나아갈 담력을 얻었느니라' 10:19~20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지니라' 이게 우리의 믿는 도리예요. 아멘이십니까?
예수께서 휘장가운데로 새로운 살 길을 여셨어요. 10:20
그 길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여셨다는 거예요.
죄로 말미암아 끊어졌던 길, 죄로 말미암아 사라졌던 길인데,
그 성소로 나가는 길을 예수께서 (새롭게, 십자가로) 여셨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도리, 믿는 도리'입니다. 담대히 나가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 보좌 앞에 나갈 때 어떻게 됩니까?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게 대제사장 예수께서 하신 일의 결과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셨어요.
그래서 이제 누구든지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는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 없고요. 쭈뼛거릴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죄값은 예수께서 다 치르셨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어떤 흉악한 죄를 지었든지 상관없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긍휼과 은혜입니다. 진노가 아니에요.
이게 우리의 '믿는 도리'예요.
여러분이 지금 '아멘'하시지만, 실제로 이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리가 그냥 보통 때는 '아멘, 아멘' 할 수 있는데,
죄를 지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죄를 매일 짓잖아요.
죄를 지으면, 그 다음에 어떤 생각이 우리를 속이냐 하면,
'하나님이 나한테 화 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요.
'내가 이런 짓을 했으니까, 하나님이 화내실 거고,
그러면 내가 하나님이 무섭고...' 이게 믿는 도리와 안 맞는 거거든요.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던지,
그러니까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간에, 또는 짓고 있는 중간에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감정은, 긍휼 과사랑이지, 진노가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 안에 있으면!
예수 밖에 있으면, 그건 모르겠어요. 그건 다른 얘기지만,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한, 우리가 지금 무슨 죄를 짓고 있던,
죄를 아주 의도적으로 짓는 게 아니라면,
아주 의도적으로 하나님한테 막 반역하고 이런 게 아니라면,
그건 이제 예수 밖으로 벗어나는 행위겠죠.
그게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벌어지는 죄들이라면,
'아이고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짓는 죄들,
이런 죄들에 대해서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믿는 도리'에 대해서, 마귀가 우리에게 속이는 게 있어요.
뭐냐면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속여요.
'화가 나 계시고, 진노해 계신 하나님'으로 우리를 속입니다.
미국에서 크리스찬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게 있는데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감정은 뭘 것 같습니까?' 물었더니
응답자 중 70%가 '화가 나 계실 거라고' 답을 했대요.
이게 마귀가 속이는 거죠.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우리가 믿는 도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간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한결 같아요. 그것은 긍휼과 사랑이에요.
이게 우리의 '믿는 도리'입니다. 이걸 굳게 잡아야 돼요. 4:14
이거 안 잡으면 흘러 떠내려가요. 2:1참조
왜 그러냐면, 사람의 죄 문제는,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나의 모든 죄 문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해결이 돼요.
그런데 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께 나가지를 않아요.
그러면 이게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거예요.
계속 죄에서 또 다른 죄로, 또 다른 어두움으로 계속 반복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해결이 되는 건데,
그런데 나아가기 위해서는 뭐가 있어야 되냐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확신이 있어야 돼요.
'내가 비록 이런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여전히 나를 향해 긍휼의 눈빛으로 보고 계신다'
이런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 우리가 죄로 넘어지더라도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죄를 뚫고 나아가서,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데...
이게 잘못된 이미지가 돼 있으면,
그러면 죄를 한 번 짓게 되면, 계속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간단 말이에요. 무서우니까!
그럼 해결이 안 되는 거죠. 계속 이게 악화되는 거죠...
그게 이제 마귀가 속이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될 믿음의 도리는 뭐냐면,
이게 사실은 히브리서 4장부터 ~ 10장까지 전체의 결론이 사실 이겁니다.
우리가 끝까지 굳게 잡아야 될 건 뭐냐면, 어떤 죄 가운데 있든지,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떤 잘못을 했든지,
'여전히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 여전히 하나님은 나를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셔!'
이 믿음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우리 믿음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거예요. 아멘! 흔들리면 안 돼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세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긍휼의 눈으로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세요.
평생 이거 놓치시면 안 돼요.
이거 놓치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율법이 돼버리고요.
율법은 우리를 두렵게 해요. 율법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가요.
그러면 계속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돼요. 이거를 마귀가 노리는 겁니다.
이건 마귀가 노리는 거지, 예수께서 하신 일이 아니에요.
예수께서 하신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거고,
예수께서 하신 일은 우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신 거예요.
우리의 무식함과 연약함을 다 아신다는 거예요.
'너희가 어차피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거를 다 이해하신다는 거예요.
그래도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그래도 다시 하나님 옆에 나아가는... 이거를 계속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우리의 믿음의 '믿는 도리'입니다. 아멘!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8:37~39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이게 진리입니다. 이게 우리의 '믿는 도리'입니다.
(회심한) 우리가 믿는 도리는 율법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변화된) 우리가 믿는 도리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는, '우리는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거예요.
우리가 믿는 도리는,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는,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적 동의로 믿음 신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님
우리가 믿는 도리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거예요.
우리가 믿는 도리는,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분이 아니라, 긍휼이 여기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믿는 도리는, 하나님은 항상 선하신 분이시라는 거예요.
우리가 믿는 도리는,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아멘!
이게 우리의 믿는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예수께서 휘장 사이로 길을 여셨어요.
죄의 저주로 인한 모든 진노는, 십자가에서 소멸됐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뿐이에요. 이게 믿는 도리입니다. 아멘!
자 이게, 아주 단순한 진리인 것 같고, 또 너무나 익숙하게 아는 진리인 것 같지만,
우리 삶 속에 쉽게 적용되지 않은 진리입니다.
이것만 든든하게 붙잡고 있어도, 우리가 웬만해서 낙심하거나 넘어지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의 신앙을 계속 낙심하고 넘어지게 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이걸 굳게 붙잡고 있지 못한 거예요.
특별히 죄 가운데 넘어지거나 실수했을 때는, 항상 이 '믿는 도리'가 흔들려요.
그러다 보니까 그 죄로부터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 낙심하고... 이것이 반복됩니다.
여러분,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16절입니다.
◑3.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십니다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보좌 앞에 나갈 때,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는대요.
▲1. 첫째, 긍휼하심을 받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누군가를 쳐다볼 때는, 두 가지 눈총이 있습니다.
긍휼의 눈과, 괘씸의 눈입니다.
긍휼의 눈을 가져야지, 괘씸의 눈을 가지면... 답이 없습니다.
제가 옛날에 대학에서 강의할 때, 이제 기말고사가 끝나잖아요.
그러면 항상 학생들이 찾아와요. 이게 없었던 해는 한 번도 없어요.
찾아와서 '자기 답안지 다시 한 번 볼 수 있냐고...' 채점 다시해서 학점 올려달라는 거죠.
그래서 한 번은 어떤 학생이 찾아왔어요. 그런데 그의 태도가 영 제 마음에 안 들어요.
껄렁껄렁한 하고요.
마치 내가 자기 점수를 잘못 줬다는 듯이, 저를 막 이렇게 블레임을 하면서 찾아왔어요.
'이 친구가 벌써 수업에도 잘 안 들어오고 그러던 자네...'
그래서 제가 괘씸하심으로 이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속으로 '이 녀석,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시험은 그렇게 아무렇게나 봐놓고서 뭐하는거야?'
그러고 괘씸함으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얘는 뭐합니까? 자기 점수 올릴 거를 막 찾잖아요.
저는 뭐하겠어요? 점수 깎을 거를 찾는 거죠.
수학 점수라고 하는 게, 항상 이게 줘도 되고, 안 줘도 되는.. 좀 애매한 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시험 답안지를 보면서, 점수를 더 깎을 것을 골라내는 거예요.
'이거 내가 잘못됐다. 이거 채점할 때 깠어야 되는데 안 깠다. 마이너스 5점'
이게 뭐예요? 이게 괘씸한 눈으로 바라보는 거죠.
여러분 괘씸한 눈으로 바라보면, 부정적인 것을 찾아요.
뭐든지 탈탈 털려고 합니다.
이래서는 답이 없어요.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괘씸하심으로 바라보잖아요.
그러면 답이 없어요.
반면에 긍휼하심이 있습니다. 긍휼의 눈으로 바라볼 땐,
어떻게든지 도와줄 것을 찾게 돼요.
또 다른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굉장히 겸손하게 찾아왔어요.
너무 죄송해하면서...
'제가 4학년 졸업반인데요. 이게 F가 나오면 졸업이 안 됩니다.'
막 이러면서 너무 이렇게 겸손하게 찾아와서 하는 얘기가
제 학점에 대해서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시험을 망쳤기 때문에.
그렇게 받는 건 당연합니다. 그래도 혹시 은혜를 베푸셔서, 제가 졸업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찾아온 거예요.
그러면 제가 그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요? 긍휼의 눈으로 보게 되는 거죠.
그래도 명색이 '목사'잖아요. 교수할 때도 제가 목사였거든요.
그러니까 '얘를 좀 도와줘야지.. 졸업은 해야 될 거 아닌가..'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합니까? 도와줄 방법을 찾는 거죠.
그런데 시험 답안지를 봐서는, 도저히 점수를 올려 줄 수가 없었어요.
'너 저번에 이 레포트 안 냈네?'
'그러면 그거 내가 늦게라도 받아줄 테니까, 그거라도 써 내라.
레포트 내면 F에서 내가 D라도 줄 테니까'
그랬더니 얘가 감사하다 그러면서 돌아갔어요.
그리고 나중에 레포트를 써서 가져 왔더라고요. 그래서 졸업은 했죠.
이게 뭐예요? 어떻게든지 도와줄 걸 찾는 게, 이게 긍휼하심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루신 기적이, 이거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하심으로 바라보게 하셨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하심으로 바라보게 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든지 자기 앞에 나오는 자는 긍휼하심으로 바라보시기 때문에
도와줄 거를 찾으신다는 거예요. 없으면 막 억지로라도 찾아요.
아무것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게 없어요.
이렇게 보시다가 '네가 다섯 살 됐을 때 엄마 따라가서 기도했던 거 있잖아'
그거라도 찾아내셔서, 긍휼의 점수를 주신다는 거죠.
더욱이, 우리는 내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나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신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트집 잡고, 우리를 막 이렇게 괘씸한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에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기 원하는 분이세요.
어떻게든지 도와주려고 하니까, 그냥 어떻게든지 하나님 앞에 나가세요.
그리고 그냥 겸손하게 나가세요. 지옥은 안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F는 안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지옥 안 가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게 예수께서 이루신 반전의 기적입니다. 아멘!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세요.
▲2. 둘째, 그분의 보좌 앞에 나아가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4: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에서 '때를 따라'는
헬라어로 유카이로스 라는 단어인데, 이건 두 단어가 합쳐졌습니다.
유 + 카이로스
유 : 좋다는 뜻이고,
카이로스 : 하나님의 때
합치면 '가장 좋은 타이밍'에 이런 뜻입니다.
가장 좋은 타이밍에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거예요.
'때를 따라 돕는다'는 게 그런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도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너무 늦으면 별 도움이 안 돼요.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야 내가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남편을 기쁘게 해줘야지'
그리고 막 좋은 음식을 엄청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저녁시간이 훌쩍 넘어가 버렸어요.
음식 만들다 보니까 밤 12시가 다 됐어요.
그래서 그 사이에, 남편이 기다리다가 너무 배고파서,
나가서 식당에 가서, 저녁 사 먹고 들어왔어요.
그러면 엄청난 음식을 만들었는데 도움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되죠. 너무 늦은 거지요. 이게 타이밍이 중요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그런 경우들 많이 대하게 되잖아요.
'아이고 너무 늦었네요. 조금만 빨랐어도...' 타이밍을 놓쳤다는 거죠.
맞아요. 여러분. 도움은 늦으면 안 돼요. 정확한 타이밍 해야지, 너무 늦으면 안 됩니다.
반대로 너무 빨라도 문제가 됩니다. 너무 빠르면 왜 문제가 되냐면,
그 사건을 통해서 배워야 될 교훈이 있거든요.
그래야 우리 인생이 성장해가고, 성숙해가고,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그것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거든요.
고난을 통한 인생의 교훈들, 또 신앙의 교훈들이 있는데,
(고난이 너무 빨리 끝나버리면) 이걸 배울 기회를 놓치게 돼요.
그리고 그냥 의례히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도 보면
엄마 아빠가 너무 미리 앞서서 뭘 다 해주잖아요. 그럼 애들이 배울 걸 못 배워요.
스스로 뭔가 배워나가야 되는데, 그냥 엄마 아빠가 미리 다 해줘 버려요.
그러면 의례히 그렇게 (은혜로 다) 되는 줄 알아요.
그러면 이제 애의 인생이 망가지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도우실 때는, 너무 빠르지 않게 도우세요.
그걸 꼭 배워야 될 걸 배우도록 하세요.
그런데 이걸 만약 우리가 놓치게 되면, 하나님이 나를 너무 빨리 도와주시면,
첫째는 감사가 없고요. 그냥 의례히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 팁을 하나 가르쳐 드릴게요.
뭔가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이 좀 느리게 느껴져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꾸 지연되는 것 같다...' 그때는 뭐 하셔야 되는지 아십니까?
그때는 빨리... '하나님은 내가 뭐를 배우기 원하시는 거지?' 하는 걸 돌아보셔야 돼요.
하나님은 나를 안 도와주시길 원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고 싶으신데,
하나님이 아직 도움의 손길을 푸시지 않고 있다면,
뭔가가 지금 해결안 된 게 있다는 거잖아요. 뭔가가 있다는 거죠.
그거를 고칠 때까지, 배울 때까지, 또는 깨달을 때까지
하나님이 기다리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를 빨리 질문하셔야 돼요.
그리고 그거를 빨리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릴 줄 알아야 돼요. 또는 해결지어야 돼요.
그래야 그 다음에 하나님의 도움이 나게 풀어지게 됩니다.
뭐 구체적인 내용과 모양들은 다를 수 있어도, 그 내용의 본질은 다 같아요.
교만이에요. 교만!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께서 다루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교만이에요.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 또 나는 스스로 뭔가 한다는 생각'
그거 하나님이 내려놓기 원하세요.
'아이고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납작 엎드리는 거를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뭔가 하나님의 응답이 느려진다고 생각할 때는,
'내가 하나님 앞에 꺾지 못한 게 뭐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게 뭐지?
내가 아직도 이렇게 붙잡고 있는 게 뭐지?' 그걸 빨리 파악할 줄 알아야 돼요.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이렇게 내려놓고, 엎드릴 때
그 다음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이제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때를 따라 돕는 은혜'와 관련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자, 어쨌든지 간에, 도움은 딱 때를 맞춰서 정확히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늦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게... 그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도우신다는 거예요. '유카이로스의 때'에,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방식입니다.
내 때가 아니라, 카이로스, 하나님의 때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늦는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유카이로스가 있어요. 좋은 때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이 베스트라고 생각을 해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더 좋은 타이밍을 알고 계신다는 거예요.
내 때가 아니라 '유카이로스'예요. *'때를 따라', 가장 좋은 타이밍에
조바심 내지도 마십시오. 유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때를 놓치지도 않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가서 아뢰셨습니까? 그렇다면 됐어요.
그렇다면 접수된 거예요.
더 이상 조바심 내지도 말고요. 불안해하지도 말고, 그냥 샬롬하십시오.
느긋하게 앉아서 커피 한잔 하시면서 기다리세요.
유카이로스, 정확한 하나님의 타이밍에 도움이 올 거예요. *때를 따라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았다면, 빨리 나가세요. 빨리 접수하셔야 됩니다.
접수가 안 돼 있으면, 처리가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그랬냐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라' 그랬거든요. 이 얘기는,
'보좌 앞에 나가라. 때를 따라 돕는 도우심이 있다' 이 말이거든요.
나가셔야 돼요. 나가셔서 탄원하십시오. 하나님께 탄원하세요.
'주님, 도와주십시오. 이런 도움이 필요합니다.'
탄원하셨으면 그 다음에는 그냥 샬롬을 누리세요.
☞한나가 기도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근심이 없음 rfcdrfcd.tistory.com/15982218
일상의 삶을 그냥 꾸준히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도우실 거예요.
정확한 타이밍에 ('때를 따라') 도우실 거예요. 이것이 우리의 믿는 도리입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의 '믿는 도리'는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 겁니까?
그것이 성경이 얘기하고 있는 진리에 기초한 이미지입니까?
아니면 마귀가 심어놓은, 또는 여러분의 죄가 심어놓은 왜곡된 이미지입니까?
믿는 도리는요. 우리 하나님은 긍휼하신 분이시며,
때를 따라 도우시는 분이시라... 이것이 진리입니다. 아멘!
여러분의 예수는 어떤 예수십니까? 성경이 얘기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긍휼하신 분이시고,
우리 하나님은 당신 앞에 나오는 자들을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때를 따라 도우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때를 따라 도우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예수께서 그 하나님 앞에 나아갈 새롭고 살 길을 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의심하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끝까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거예요.
큰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일어나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