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삶의 비밀 | 수 1:1-6 | 25.1.24 - YouTube
4:20초경부터 녹취
◈승리하는 삶의 비밀 수1:1~6 2025.01.24. 교정예정
수1: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
수1:1절과 2절에 '모세가 죽었다'는 사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모세의 죽은 일들에 대해서 굉장히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제 모세의 공백을 무엇으로 메꿀 건가 하는 거죠.
이 공백을 잘못 메꾸면 사고가 나는 거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도, 이런 공백이 생길 때가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도 굉장히 정치적 혼란 속에 있죠.
여러분, 이 공백이 위험한 거예요. 이걸 뭘로 메꾸느냐는 거죠.
우리 인생에도 공백이 생길 때가 있어요. 뭔가 큰 구멍이 생기는 거죠.
이때 여러분이 성경을 잘 보셔야 돼요.
수1:1절에 보면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그 다음에 뭐가 나와요?
'여호와께서...' 이게 중요해요.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우리가 늘 뭘 찾아내야 돼요? 하나님이에요!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뭘 의미하는 거죠?
여호와께서 개입하신다는 거예요.
모세가 죽었다는 것은 종속질이에요.
어떤 면에서 거기에 덧붙여져 있는 겁니다.
핵심은 뭐예요? 여호와께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우리가 눈여겨봐야 되는 부분은 뭐냐면 '여호와께서' 예요.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든 역사의 주도권은 하나님이 쥐고 계신다는 거예요. 모세가 아니에요.
모세가 역사를 주도해서 이끌어 온 게 아니에요.
모세가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낸 게 아니에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끈 게 아니에요.
누가?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모세는 게임이 안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이게 우리의 역사관입니다.
크리스천이 역사를 보는 관점, 그게 뭘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 직접 개입하시고 관여하신다'는 걸 믿어요.
하나님 역사의 바깥에서, 시간의 바깥에서, 우주의 바깥에서
팔짱을 끼고 관망하시는 하나님이 절대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역사의 전 과정에 개입하시고
당신의 목표를 가지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겉으로 보면, 사람들이 뭘 이루는 것 같아 보여요.
걸출한 인물들이 일어나기를 우리가 기대해요.
그러나 우리 인간의 기대는, 언제나 실망으로 바뀌어요.
▲이스라엘의 남북왕조의 역사만 봐도 입증됩니다. 진정한 왕이 없었어요.
다윗이 유일한 모범이 되죠.
그러나 다윗마저도 말년에는 심각하게 범죄하고,
그 이후로 다윗 왕가가 기울어지죠. 오점을 많이 남겨요.
뭘 얘기해 주죠?
이스라엘 남, 북의 그 열조의 왕들의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는 게 뭘 얘기하는 거예요?
진정한 왕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걸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신다는 거예요.
지금도 역사는, 하나님이 섭리해 가신다는 거예요.
그걸 믿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히스토리라는 말이 뭐예요?
역사라는 말은, 그분의 이야기라는 거예요. His story
하나님의 이야기예요.
그래서 역사 속에 하나님을 빼버리면, 그냥 의미 없는 긴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역사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 역사의 히스토리에 두동강을 내신 분이 그리스도 이세요.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하여 역사가 두동강 났어요.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Before Christ, Anno Domini, BC와 AD가 나누어졌어요.
역사를 가르신 분이 하나님이세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해 역사에 새로운 출발이 일어난 거예요.
그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세상의 역사가들은 '인물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해요.
영웅 호걸들의 이름을 쫙 나열을 해요.
그러나 성경은 달라요.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잠시 쓰임을 받아 무대에 등장했을 뿐입니다.
연출과 기획과 감독은 하나님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언제나 이야기의 주어가 되신다는 거죠. 수1:1처럼.
역사의 주권은 인간에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경을 읽는 방식이 뭐냐?
그 본문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내야 돼요. ☞ rfcdrfcd.tistory.com/12955843
여러분이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매우 중요.한 것은
그 본문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찾아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행위가 강조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일시적이지 않고 영속적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뭐예요?
하나님은 영속적으로..
한때 한순간에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말씀하죠.
그래서 우리가 주기도문을 기도드릴 때마다 무엇을 구하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충만하게 해주십시오!'
여러분, 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가고 계시고,
시간은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향해 흐르고 있어요.
언젠가는 여러분, 이 모든 역사의 완성의 날이 오면, 시간은 그냥 끝이 나버려요.
그게 언제예요?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그래서 종말의 시점은, End-time 이라고 하는 끝 지점도,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이 역사의 모든 것들을 마치는
그 순간이 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살다 보면, 실망스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우리 생각대로 안 되고 당황하고, 절망하고, 두려워 떨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안에 가장 중심에 두어야 될 우리의 확신은 뭐냐면,
'이 역사를 하나님이 쥐고 계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는
이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는 언제나 위기에서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을 계속 하나님이 보내셔서 뭘 알려주시는 거예요?
사람들이 절망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하시는 건 뭐냐면,
그 절망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강에 의해서 너희들의 나라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내가 열강과 열방을 다스린다!'
사실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이런 나라들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면
몽둥이로 쓴 거예요.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룬 바벨론을 ... 버리시는 거예요.
모든 주변의 강대국들에서 나라가 이스라엘이 결정된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고, 역사의 헤게모니를 쥐고 계신다는 거예요.
이게 명확합니다.
자 여러분, 우리의 인간에게 역사가 맡겨져 있다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어요. 소망이 없어요.
세상이 돌아가는 걸 보면서, 우리는 매일 절망해야 돼요.
지금 역사가 진보하는 것 같습니까? 인류의 문명이 막 발전되니까,
우리의 삶의 질이 더 나아지고, 더 좋아져 가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여러분, 요즘 좀 보세요. 우리가 문명이 발달하니까
얼마나 쓰레기도 많이 배출하는지...
요즘 옷도.. 쓰레기가 보통이 아니에요.
얼마나 옷을 많이 만들어내는지...
또 요즘 옷은 잘 떨어지지도 않아요. 옛날에는 구멍이 나서 옷을 버리고 그랬거든요...
쓰레기들이 보통 많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 문명의 쓰레기들이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 우리가 먹고 남은 것 버리는 것만 해도요.
그게 우리나라만 해도 조 단위를 넘더라고요.
그걸 잘 하면, 아프리카 다 먹여 살릴 수 있어요.
근데 이 환경오염이 문제잖아요.
지금 만년설들이 다 녹아내리고, 빙하가 다 녹아내리고
지금 기후변화가 심각하게 왔잖아요.
이게 나중에 어떤 현상으로 변화되어서,
어떤 천재지변의 재난이 일어날지 몰라요.
이게 누가 만든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니거든요.
여러분 인간의 역사가 인간에게만 맡겨져 있다면, 우린 소망이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면,
하나님에게 모든 게 달려있다는 거예요.
오늘도 우리가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의 기도가 역사의 운명을 바꾼다는 거예요.
이 믿음을 가지셔야 돼요.
나라가 어렵거나 세상이 어려우면
우리의 기도에 문제가 있어요. 우리의 기도가 약한 거예요.
주권은 백성에게 있는 게 아니에요. 지도자에게 있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에게 있단 말이죠.
▲보세요. 모세도 죽어요. 여호수아도 때가 되면 죽을 거예요.
근데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상황에도 절망하지 말아야 될 이유,
우리의 시선을 언제나 하나님께 두어야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혼란하고 어려울 때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어야 돼요.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거예요. 사람에게 있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의 가정에도, 직장에도, 사업에도 문제가 있으면요.
결국은 누구를 바라봐야 돼요? 하나님을 바라봐야 돼요.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39:7
여러분, 어떤 사람이 쓰임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의 위대성이 아니고
그 사람을 사용하신 하나님의 위대성이 드러나야 돼요.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악기를 사용하시더라도, 명연주를 하실 수 있는 분이세요.
즉 하나님은, 어떤 인간을 들어서 쓰시더라도
하나님의 위대함을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이에요.
약한 자, 가난한 자, 미련한 자를 사용하셔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손에 누가 잡히느냐의 문제예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거예요.
◑모세는 죽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니 모세, 여호수아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동일하신데.. 주목해야 합니다
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보셔야 돼요.
1절을 다시 한 번 봅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수1:1
이게 핵심입니다. 모세는 죽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떻게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러분 오늘 본문 전체를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하나님이 이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말씀의 계승이에요.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여호수아에게 지금 임하고 있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여호와의 말씀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선지자가 된 것도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니라' 욘1:1 이게 중요한 거예요.
그게 가이드라인이고, 그것이 내 삶의 빛이오, 내 삶에 이끌어가는 힘이거든요.
여러분, 말씀이 임하는 게 참 중요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 공부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건 기초 공사이고, 어느 시점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임해야 돼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을 때, 그 말씀에 비밀이 담겨있어요.
여호수아에게 중요한 것은 모세가 남긴 말씀이 아닙니다.
모세가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앞선 리더십으로서,
모세가 남겨준 말이 여호수아에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호수아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위인들이 남긴 말들이 많아요. 격언들, 명언들...
아 정말 멋진 명언들이 얼마나 많아요?
근데 여러분, 그게 하나님의 말씀과는 비교가 안 돼요.
여러분, 논어, 맹자, 노자, 사서삼경 읽어보세요. 얼마나 심오해요, 얼마나 대단해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하고는 게임이 안 돼요.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은 달라요.
▲여러분, 모세가 죽은 것으로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단절이 일어나잖아요. 계속 이어지지 못하잖아요.
한때는 왕성에다가, 그가 죽은 후에는, 시들어버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여호수아에게 중요한 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이, 동일하게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을 받은 자가 이끄는 거예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어떻게 이끌었겠어요?
인물이 워낙 출중해가지고 리더십을 타고 나서요? 아니에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을 계속 주시니까!
말씀이 없으면 광야 길을 갈 수가 없어요.
광야의 길에서, 말씀이 없으면 죽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뭐죠?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면 떡이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떡이 있으면 살 줄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떡도 의미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지 않는데, 떡이 있었들 산 게 아니에요. 죽은 거랑 똑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광야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면 문제가 없어요. 말씀이 임하면 하나님이 살리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말씀이 임하면, 하나님이 살리십니다.
말씀이 주어지면 떡도 주어질 것입니다. 말씀이에요.
여호수아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은 받는데, 그냥 받는 게 아닙니다.
모세의 시종으로 있을 때 모세와 함께 하시던 그 말씀이
지금 여호수아에게 임하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 곳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거죠.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가장 큰 힘이 무엇입니까?
1:5절에 나와요.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이건 모세와 똑같은 거예요. 바로가 감당을 못했잖아요.
그 다음에 말이 중요해요.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여러분, 이 얘기를 여호수아는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어요.
'40년 동안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게' 무엇인지를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어요.
왜냐면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을 40년을 했어요. 1:1
시종이란 '종'이란 뜻이죠. 비서로 40년 동안 모세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죠.
따라다니면서 다 본 사람이에요.
여러분, 그가 40년 동안 모세를 따라다니며 경험한 게 있어요.
'모세와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을 여호수아도 생생하게 체험한 거예요.
아마 모세의 영향을 여호수아는 많이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안 돼요. 진짜 중요한 것은
'모세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을 목격한 거예요.
그가 목격하고 경험한 것은, 모세와 함께 하시던 하나님!
가장 잊을 수 없는 경험! 모세와 하나님을 분리시킬 수 없어요.
모세의 모든 광야생활 40년 동안, 그야말로 강력하게 임하셨던 하나님!
홍해를 건널 때는 어떻게 했어요? 모세의 지팡이로!
여호와의 함께 하심으로, 그 엄청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같이 홍해를 건너는
그 경험들... 잊을 수 없는 경험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하셨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여호수아는 너무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과 똑같이 너와도 함께 하겠다'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 이 대목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돼요.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과 같이',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모세가 경험한 것과 똑같은 경험을'
여호수아 너도 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이 말을, 여호수아는 아마 그냥 꽂혔을 거예요.
이 말씀은 추상적인 게 아니에요.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들을 때, 아마 크게 흥분했을 거예요. 충격을 받았을 거예요.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이 나와도 함께 하신다고요?'
이 말씀이 얼마나 여호수아를 담대하게 했겠어요?
여러분 똑같은 말씀이라도, 경험한 사람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말씀이 그냥 개념으로만 있는 거죠.
사변적인 신앙, 깊이 와닿지 않아요.
근데 여러분, 그 말씀을 실제적으로 경험해 본 사람은,
그 말씀의 의미.. 즉 '모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너무너무 생생한 거예요.
▲요일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오감으로... 눈으로 보고, 맛을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그랬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을 눈으로 보았다는 거예요.
그냥 본 게 아니라, 손으로 만진 바 되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다각적으로, 종합적으로, 총체적으로 경험한 거예요.
컬러풀하게 총천연색으로 경험한 거예요. 3D로 경험한 거예요.
여러분 어떤 때는요. 성경을 읽다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갑자기 걸어나오시는 것 같아요.
어떤 때는 너무 분명한 말씀이라서 온 몸이 전율하는 거예요.
여러분,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모세 곁에서.
그리고 그 말씀은 곧 능력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곧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셨어요.
여러분, 어떤 사람과의 만남을 얘기할 때, 우리가 다양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듣고 끝날 수도 있어요.
아직 얼굴을 보질 못해서, 그의 발자국만 들었어요.
어떤 사람은 그의 그림자만 보았어요.
어떤 사람은 목소리만 들었어요.
어떤 사람은 사진으로만 봤어요.
어떤 사람은 몽타주로만 알았어요.
어떤 사람은 그 사람에 관련된 논문만 읽었어요.
근데 아무도 만난 적이 없어요. 정보만 알고 있어요. 직접 만난 적은 없어요.
근데 여러분 지금 여호수아는 달라요. 40년간 모세를 따라다니면서
모세와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오늘 여호수아아에게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와도 함께 하겠다'
여러분,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을 많이 경험했습니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지고, 불기둥과 구름기둥...
광야의 길에서 그들의 발이 부르터지지 않게 하시는 것,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는 것들,
여호수아는 이런 체험들이 쌓이고 쌓였어요.
그는 광야 40년 이스라엘의 역사를 피부로 느끼며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체험은, 하나님을 체험한 거예요.
여러분,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게 무엇인지를 체험하는 것,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는 것,
하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는 분,
그처럼 우리의 삶의 모든 공급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에게 손 내밀 거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걸 경험해 보셔야 됩니다.
지금도 직접 하십니다. 자꾸 내 머리를 굴리고,
내 방법으로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자꾸 하나님의 역사를 제안하는 거지요.
여러분, 교회를 다녀도, 교회 체험만 하고 끝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사람만 만나고 돌아가면, 그냥 교회 체험이죠.
여러분, 왜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다가 시험에 들고, 교회를 떠나가기도 합니까?
하나님 체험은 없고, 사람 체험만 한 거예요.
종교적 활동만 하고,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으니까, 신앙이 휑한 거예요.
얼마 못 가서 질려요.
사람은 얼마 못 가서 다 질린다고요.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해야 돼요.
천상의 체험을 해야, 지상의 삶에서 승리한단 말이에요.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간증이 뭐예요? 간증은 하나님을 체험한 이야기예요.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분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이야기를 하는 게 간증이잖아요.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뚜렷한 하나님의 체험,
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다른 체험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신앙이 추상적이에요.
신앙의 추상, 뜬구름 잡는...
그러니까 누가 '우리 함께 신앙의 간증을 나누고 삶을 나누자' 그러면,
자기는 할 말이 없는 거에요.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체험을 공유하는 관계였어요.
여러분 우리의 관계도, 이런 체험의 공유가 필요해요.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체험한 것을, 공유하는 관계가 되어야 돼요.
나도 하나님을 체험하고, 상대방도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얘기하면
서로 얘기가 (손뼉이 마주치듯) 맞아요. 그때 공명이 일어나요.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면, 그 공동체는 강력한 공동체가 되겠죠.
말이 서로 통해요.
그런데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과,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이 만나면
얘기가 돼요? 얘기가 안 되지요. 서로 엇박자가 돼요.
여러분 모세가 그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여호수아가 계속 따라다니면서
그 모세가 경험했던 것들을 아마 나누었을 거예요. 말했을 거예요.
그러면 이게 공명이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이 가나안의 미션을 준 이유가 있는 거죠.
그 40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하나님을 체험했던 그 체험의 축적,
여러분 하나님을 체험하면 Another Class가 되는 거예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얼마나 성실하게 돌보시는지...
하나님은 모호한 존재가 아니에요.
하나님과 모세의 1대1의 관계는, 그 관계를 지근거리에서 보았던 이 여호수아!
그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말씀을, 동일하게 그대로 하시는 거예요.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도 함께 할 것이다.'
즉 '모세의 경험을 너도 동일하게 할 것이다.' 이 엄청난 얘기를 하신 거예요.
여호수아의 가슴이 막 뛰었을 거예요.
여러분 이것보다 더 확실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순간적인 감동이나, 순간적인 뜨거움만으로는 순종하기 어려워요.
여호수아는 40년 동안 쌓였던 이 하나님의 경험,
여러분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이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간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이었겠어요?
엄청난 부담감이죠.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것 같은 과업이었어요.
▲여러분, 멀리서 본 것과, 가까이서 본 것은 차이가 나거든요.
멀리서 보면.. 다 막연해요.
그러나 가까이서 본 사람은 '이게 사람이 할 일이 아니야...'
200만이나 되는 사람들... 그것도 그냥 노예 생활에 잔뼈가 굵었던 사람들,
입이 험악해요. 그거는 성품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성깔' 그러잖아요.
막 그냥 막 대들고요. 여러분 모세가 몇 번이나 죽을 뻔 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이 백성들이 막 돌멩이로 그냥 모세를 죽이려고 했어요.
얼마나 분위기가 험악했어요?
여러분이 막연하게 성경을 알고 ,어떻게 이 거친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아요?
무슨 재주로, 무슨 용기로?
여러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깡으로 살아요? 그건 안 돼요!
여러분 추상적인 말씀을 가지고야 게임이 안 되는 거예요.
현실에 들어가면 그냥 엄청난 도전들이 다가오는데...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 어려워요.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합니까? 그야말로 이 세상이 광야잖아요.
매일매일 무슨 사건들이 일어나고, 우리를 둘러싼 상황들이 만만치 않고,
쉬운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약속을 받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약속이 없는 거예요.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러니까 모세나 여호수아가 동일하게 경험한 게 뭘까요?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에게 리더십이 이어지는 과정에 끊김 현상이 없어요.
연속적이예요.
그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마찬가지예요.
아브라함이든, 다윗이든, 누구든 상관이 없어요.
'모세와 함께 있던 것과 같이 너와도 함께 할 것이다' 라는 이 말씀이 주어지면 되는 거예요.
'모세와 함께 있던 하나님,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 나와도 함께 하신다는 이 약속만 붙들면, 무적이 되는 거예요.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임마누엘의 은혜, 그 능력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달되는데, 그게 뭐예요?
'내가 내 백성과 함께 할 것이다'는 거죠.
여러분 '여호와께서 함께하신다'는 이 임마누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혈관 속에, 뼛속 깊이까지 베여있는 말씀이에요.
여러분들의 혈관과 뼛속까지라도 이 '여호와의 함께하심'이, 임마누엘이
완전히 속속들이 베여서, 나와 분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이 말이 얼마나 와닿는지 몰라요.
애굽의 바로왕 앞으로 나아가던 모세에게 딱 한마디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3:12
무슨 힘으로 모세가 애굽의 바로 왕 앞으로 갈 수 있습니까?
일개의 목자가!
그때 하나님이 딱 한마디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여러분 골리앗을 향해 달려가는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이 한마디예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17:45
하나님의 역사의 연속성입니다. 이것은 갑자기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거예요.
갑자기 툭 내뱉는 말씀이 아니고, 이미 앞에서 모세에게
40년 동안 충분히 함께 하셨던 그 말씀이,
오늘 너(여호수아)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한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놀라운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말씀을
오늘 우리가 들어도 아멘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말씀하셨고,
그렇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우리가 믿는 거죠.
요15: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여러분 태초에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세상을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깊이 관여하시고 운행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신 하나님은 그것으로 끝내신 분이 아닙니다.
그 빛은 지금도 계속 어두움 가운데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일하고 계신 하나님이죠.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부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전체가 나와 함께 하신 얘기예요.
하나님이 바쁘셔서 누군가 대리인을 보내서 나와 함께 하겠다는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 당신 존재 전체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이에요.
▲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수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적수가 없다는 거예요. 골리앗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소년 다윗은 그냥 소년 다윗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온 우주보다 더 크신 분이
나를 편들어 주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나와 한 편이 되어주시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게임이 끝난 거예요.
여러분 외형상 모세와 바로는 비교가 안 되잖아요.
미국의 대통령과 우리나라 시골 면장과 비교가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죠?
우리는 다 잘 몰라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한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우리는 잘 몰라요.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3절도 보세요.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여러분, 발바닥으로 밟는 것처럼 쉬운 게 없어요. 밟으면 다 주시겠다는데...
근데 여러분, 믿음이 없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못 나가요.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은 한 걸음도 못 내디뎌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금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는데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이 말을 했던 이유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처음이 아니에요. 여호수아에게 동일하게 말씀하는 거예요.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너희에게 주었다'
이게 모세에게 이미 얘기했던 거예요.
그 말은,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그 모세에게 주셨던 능력을 주시겠다는 거예요.
지금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건 뭡니까? 능력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려면 능력이 필요해요.
모세의 지팡이는 능력의 상징입니다.
지팡이는 아무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지팡이가 능력의 지팡이가 돼요.
여러분 이 능력이 나타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현실에서 드러나는 거죠.
여러분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은 분리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거예요.
▲여기에서 중요한 건 뭘까요?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것은 기억력입니다.
'모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그 말씀'에 대한 기억,
여러분 신자는요 기억력이 좋아야 돼요. 기억력이 좋지 않은 신자는요.
언제나 처음부터 시작해야 돼요. 늘 생소해요. 기억력을 가진 사람은
이전에 역사하셨던 하나님과 함께 출발해요.
그러니까 똑같이 사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이전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을 시작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에요.
이전에 이미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내가 안고 시작하는 거예요.
그 기억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새로워요.
사람들이 왜 시행착오를 겪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없이 시작하려고 하는 건 막막한 거예요.
근데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예, 예스, 알겠습니다... 하고 순종하는 거죠.
후략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 말씀에 책임을 지신다고요.
염려하지 말라는 거예요. 절망하지 말라는 거예요.
의기소침해 있지 말라는 거예요. 뒤로 자꾸 후퇴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위협하는 상황에 휘둘리지 마세요. 담대하세요.
여전히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그 말씀을, 여호수아에게만 말씀하셨습니까?
아니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뭐예요? 성경 말씀의 약속이에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믿음으로 반응하시고, 아멘하시고,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이 한 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