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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성경공부(사도행전 8:32~35) - YouTube
◈단 한 번의 성경공부 행8:32~35 2024.08.07.
옛날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신대원 시험을 치르는데, 영어 시험도 치고
몇 가지 과목의 시험을 치릅니다. 또 졸업하기 전에도 시험을 치릅니다.
그 중에 신학생들이 굉장히 어렵게 생각했던 것은 '성경종합시험' 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성경종합시험은 정말 종합적으로 성경 66권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었죠.
그래서 오지선다형도 문제가 굉장히 많이 있었고
또 단답형 이렇게 답을 쓰는 것들도 있었고, 성경을 암송해서 쓰는 것도 있었고
성경 구절이 나와 있으면, 이게 어느 성경 몇 장 몇 절인지를 적는 또 그런 시험도 있었고...
제가 기억하기에는 문항수가 굉장히 많았고요. 시험 시간도 한 3시간 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종합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입학도, 졸업을 못하는 거죠.
그리고 매년 그 성경종합시험을 치는 기회가 있었어요.
성경종합시험을 일정 기간까지 통과하지 못하면,
진급을 못하고 졸업을 못하는 그런 제도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라는 취지였죠.
목사 될 사람에게 성경은 기본이니까요.
저도 입학할 때부터 매년 성경종합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우리 영락교에서 저한테 '한경직 장학금'을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단번에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죠.
그런데 그 성경종합시험 문제를 풀면서, 가끔 화가 났던 적도 있었어요.
왜냐면 문제 같지도 않은 문제가 출제된 경우예요.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서 인구 조사를 두 번 했다.'
인구조사는, 애굽에서 광야로 나와가지고 한 번 했고
그 다음에 광야 40년이 거의 끝나갈 때 또 한 번 했죠.
그런데 문제가, '두 번째 인구 조사를 했을 때, 시므온 지파는 몇 명이었나요?'
이런 거를 물어보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성경 읽을 때, 르우벤 지파부터 족장들은 누구고,
거기 속한 사람이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만한 사람이 몇만 몇천 몇백명이고,
이런 거 읽으셨을 거예요. 그 숫자 외우는 분 있어요?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그런 걸 답을 쓰라고 나오는 거예요.
아마 조교가 신학생들 골탕먹이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면 혹시 어떤 머리 좋은 학생이, 그걸 다 외운다고 칩시다.
그래서 어느 지파가 몇 명인지 다 외우면,
그 학생이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거 다 외운다고 '이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많이 알아' 이렇게 말할 수 있나요? No
여러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분량이 만만치 않은데,
어떤 성도가 저한테 와서 '목사님, 성경이 왜 한 권 밖에 없습니까?
불교는 8만 대장 정도 있는데... 우리도 좀 많아야, 남이 볼 때 심오해 보이지 않겠어요?'
그러길래 제가 '성경이 한 권인 걸 다행으로 아세요' 이렇게 말을 했는데
우리도 쪼개서 보면 구약 39권, 신약 27권, 그래서 66권이죠.
그런데 한 절 한 절이 다 소중하잖아요.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많은 성도들이 요3:16절은 성경 전체의 핵심이라고 여기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성경은 다 하나님 말씀이라고 믿긴 믿지만
어떤 대목은 그냥 쭈욱 읽어 내려가면 되는 거고,
역대상 1장부터 나오는 족보를 굉장히 중요하게 밑줄 치면서 읽는 분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중요하게 여겨지는 구절이 있는가 하면,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구절이 있는 거죠.
▲그러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거기에 경중이 있나?
중요한 게 있고, 덜 중요한 게 있나?' 이런 판단의 문제가 거기 등장하는 거죠.
'무턱대고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종교개혁자로서 우리 개혁교회 신앙의 기틀을 놓으신 칼빈 선생님은
<기독교 강요>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쓰셨어요.
그것도 아주 젊은 나이에, 주1)
오늘 우리가 보면 정말 기독교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책을 쓰셨어요.
그런데 그 <기독교 강요>는 이분이 <칼빈 주석>을 쓰기보다 먼저 쓰신 거예요.
기독교 강요는 쉽게 말하면 '기독교의 뼈대'라고 할 수 있어요. '강요綱要'가 그런 뜻이죠.
존 칼빈이 쓰신 <칼빈 주석>, 성경을 쭉 설명한 이 주석도 굉장히 유명합니다.
우리가 신학교에 들어가니까, 장로회 신학대학교 골목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에,
지금은 그런 게 없습니다만, 그때만 해도 거기에 책을 파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온갖 책들을 길바닥에 쌓아놓고 팔았습니다. 오리지널 영어 원서들은 굉장히 비싼 거죠.
그때만 해도 법이 허술할 때라서, 원서를 가지고 복사판(해적판)을 만들어 팔았어요.
그러면 <칼빈 주석> 이런 거는 막 수십 권 되거든요.
근데 이제 그분들이 카달록을 보여주는데, 거기에 이렇게 써 놨어요.
'칼빈 주석 없이는 목회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신학생들이 사는 필수적인 책이 있었어요.
가난한 신학생들이 돈이 있어야 '칼빈 주석 전집'을 살 거 아닙니까? 막 몇십 권 짜리 전집을.
그래서 그걸 할부로 사가지고, 밥을 굶어가면서도 주석 책은 사서
그걸 책꽂이에 꽂아 놔야 안심이 되는 거예요...
물론 목회하면서 그걸 들춰보지도 않는 사람이 태반이죠.
더욱이 영어 원서는 더욱 읽기가 힘들죠.
제가 부산에서 28년 동안 목회하면서도... 쌓인 게 책이었습니다.
상당히 넓은 방 두 개가 다 제가 쓰는 방이었는데
왜 그랬냐면, 십자가 종탑 밑에 그냥 창고 비슷하게 지은 방인데,
그 꼭대기에 아무도 올라가서 쓰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거기를 목양실로 해주세요. 저 혼자 올라가면 되니까'
그 십자가 종탑 바로 밑에 방이라서 조용하긴 했어요. 아무도 올라오는 사람이 없고...
어쨌든 방 위아래 층에 책이 꽉 차 있었어요.
여러분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신학생들이 사는 책들 중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책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빚을 내서 밥을 굶어가면서 샀어요.
그런데 칼빈이 쓰신 많은 것 중에 <기독교 강요>하고 <칼빈 주석> 두 개가
제일 유명한 책 중에 들어가는데
그런데 그 저작 순서가 뭐가 먼저냐 하면, <기독교 강요>가 먼저예요.
<칼빈 주석>은 나중이고요.
그러면 언뜻 생각할 때는, 성경에 관한 걸 먼저 쓰고, 나중에 이 기독교 강요,
기독교의 뼈대를 정리해야 될 것 같은데,
이분은 기독교의 뼈대를 먼저 정리한 다음에,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인간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그 분이 이루시는 구속사역은 무엇인가?
그거를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는 성령님의 역사는 어떤 건가?
이런 걸 쭉 먼저 얘기하고, 나중에 <주석>을 써서 성경을 설명하는 거예요.
그분이 쓰신 글 중에 왜 <기독교 강요>를 먼저 썼는지에 대한 중요한 내용을
담은 글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어떤 세상을 이렇게 들여다 볼 때
너무 방대하면 어디서부터 봐야 될지를 모르잖아요.
▲예컨대 루브르 박물관이라든지, 이런 데 어마어마한 박물관에 가면
봐야 될 게 엄청나게 많고, 어디로 들어가서 무엇부터 봐야 될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박물관 가이드' 라는 책이 있어요.
'당신이 시간이 얼마나 있습니까?'
시간이 하루 있다 그러면... 여기 저기를 보세요.
아니면 3일 동안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런 순서대로 보세요.
시간이 한나절밖에 없다... 그러면 그 사람의 시간에 따라서
'이 박물관에서 꼭 봐야 될 거는 이거 이거 이거다' 이렇게 친절하게 안내를 해줘요.
그런 식으로 성경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엄청나게 많은 양을 가지고 있는데
성경을 처음 읽거나 처음 연구하는 사람이, 그냥 중구난방으로 아무 데나 읽어 가지고는
성경의 핵심 주제를 파악할 수가 없으니까, '잘못 읽으면 시므온 지파가 몇 명이냐?'
이런 것만 알고, 정말 중요한 건 모를 수도 있잖아요.
<기독교 강요>는 기독교의 뼈대를 먼저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아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이런 거 이런 거 이런 거구나' 하는 거를 미리 설명을 듣고
그런 렌즈를 낀 다음에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성경 속에 길이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을 읽어 내려가고 해석하는 원리로 <기독교 강요>를 먼저 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은 별로 그런데 관여하지 않으시지만
설교를 준비하는 목사, 또 신학자 이런 분들은 성경 해석이 중요해요.
그래서 <성경 해석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있습니다.
'66권 성경을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해서
아니면 중심 주제로 해서 읽어갈 것인가?' 하는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 해석의 어떤 눈... 그런 게 중요한 거죠.
대단히 중요한 성경 해석학의 중심 주제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성경 전체를 꿰뚫는 주제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혹은 하나님 나라가 핵심 주제라는 것은, 그거는 세상 나라와는 비교되는 구분되는 거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기에 있는 것이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독생자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하시는 것인데,
독생자 예수님의 구원사역의 핵심이 뭐냐고 물으면... 십자가와 부활이죠.
그리고 그 이후에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게 하시고,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되게 하심으로,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는 ...
이런 것들이 이제 성경의 중요 주제가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을 먼저 배우고 나서 성경을 읽으면,
'아, 이사야 선지자가 이런 말씀을 예언하게 된 것은, 다 그런 것과 연결되어 있구나' 하면서
성경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고,
그래서 설교 속에는 성경 해석이 들어 있는 거예요.
성경 해석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이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또 성경 공부를 많이 하시는데,
그런데 대해서 이해를 가지게 되는 거죠.
◑이 정도 말씀을 드려놓고, 이제 본문 에디오피아 관리 얘기를 해봅시다.
우리 지난 수요일날, '이 사람은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왜 하나님의 눈길이 그에게 머물렀을까?' 말씀드리면서
왕복 한 8천 킬로쯤 되는 거리를 극복하고,
또 예루살렘에 와 봤댔자 이방인이라서 환영받지도 못할 걸 알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찾아온 예배자였다... 하는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분이 예배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흔들거리는 수레(마차)를 타고 가면서, 피곤할 텐데도 성경을 읽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사마리아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시던 빌립 집사님을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이렇게 보내 가지고, *오늘날의 가자 지구
이 두 분이 딱 만난 거예요.
빌립이 수레 위에서 성경을 읽는 이 사람을 만나서, 성경 공부를 진행하게 된 거죠.
여러분, 그 이야기가 지난 주에 읽었던 행8:28~31절까지 나오지 않습니까?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행8:28~31
그래서 그 흔들리는 수레가 성경 공부 장소가 된 것이고,
빌립은 가르쳐 주는 분이 됐고, 이 에티오피아 관리는 빌립에게 말씀을 배우게 된 것이에요.
▲그런데 오늘 이 설교의 제목을 "단 한 번뿐인 성경공부"라고 정하게 된 것은
이 사람이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게 되면, 언제 누구에게 또 말씀을 이렇게 지도받을 수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관리에게는, 이 수레 위에서 빌립에게 배운 하나님 말씀이
'평생에 딱 한 번뿐인 성경공부'였을지도 모르는 거죠.
딱 한 번 하나님 말씀을 깊이 들을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온 것이고,
그러니까 이 관리의 신앙에 있어서, 이 수레 위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 모르지만
너무도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거예요.
(설교자가 설교할 때, 또는 회중이 들을 때, 이렇게 '단 한 번의 마지막 설교다!' 라는 각오로
설교도 하기도 하고, 설교를 듣기도 해야 된다는 것이... 주제입니다.
두 번의 기회가 없다는 각오로!)
이 성경 공부 한 번에, 무슨 말씀을 배우는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거죠.
만약에 그때 그 소중한 시간에 '시므온 지파가 몇 명이었는지 아느냐?' 이런 거나 배웠다면,
너무 안타까운 거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한 사람의 예배자에게
꼭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셨던 말씀이 뭔가?'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고,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적용돼야 될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설교의 주제
그래서 우리도 그걸 붙들고, 앞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말씀을 주신 목적대로 이해해 나가야만 된다는 것이에요.
▲본문의 그날 성경 본문(이사야53장)을 정하신 분은, 저는 하나님이시라고 믿습니다.
두루마리 성경인지, 아니면 파피루스를 엮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 관리가 가진 성경은 이사야서였어요.
그럼 이사야서도 66장까지 있는 긴 예언서인데, 이 사람이 읽는 것은
그 중에서도 이사야 53장 7절... 그 부분이었어요.
그 이사야 53장 앞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런 유명한 말씀이 나오는데
그리고 그 사람이 읽는 대목, 즉 오늘 본문에 인용된 것은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어린 양 같았다' 이게 누굴 가리키는 겁니까? 행8:32
예수님을 가리키는 거죠. 이거를 '고난의 종 메시아에 관한 말씀'이라고 그래요.
언젠가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면 고난을 받으실 것이다.
그래서 '고난의 종의 노래'라고 그래요. 그런 게 몇 군데 있는데
구약성경에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거 하나가 이사야 53장이고,
오늘 우리는 이사야 53장에 고난받는 종의 찔림, 그 고난받으시는 거를 보면
예수님과 십자가를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고난과 승리를 다 예언하신 것으로... 읽잖아요.
그런데 그날 수레 위에서 성경공부 본문이 바로 이사야 53장 그거였던 거예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본문이 바로 그것이었어요.
빌립이 '읽는 것을 이해하느냐?' 그러니까
그 관리는 '지도해 주는 이가 없어서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같이 수레에 올라가서 같이 가면서, 빌립은 이걸 그 관리에게 가르쳐주었어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하는 이(에티오피아 관리)의 말씀 이해를 위해서
특별히 빌립 집사님을 보내주신 것인데
오늘날도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사모하며 알기를 원하는 열망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말씀을 깨닫게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제가 이 말씀을 알기를 원합니다.
깨닫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에서 힘을 얻길 원합니다.
제 삶에 이 말씀이 능력이 되길 원합니다.
주여, 나에게 깨우침과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친히 스승이 되셔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간절한 기도와 함께,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 안에서 말씀을 읽어야 되는 것이고, 설교를 들을 때도 똑같습니다.
'오늘 제가 예배의 자리에 가서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제 영혼 안에 등불을 밝혀주셔서, 말씀을 다 깨닫고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아멘하고, 그 말씀이 내 영혼에 기록될 뿐만 아니라
삶에서 실천하는 능력의 말씀이 되어서, 열매 맺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기도와 함께, 설교말씀을 우리가 들어야만 되는 거죠.
▲행8:32~33절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이사야 53:7절 근처를 읽은 거죠.
그랬더니 이 사람이 빌립에게 물었어요.
'여기 지금 말하는 그가 나오는데 그가 누구냐?
이 글을 받아서 쓴 이사야 선지자 자기를 가리키는 거냐?
아니면 어떤 다른 존재를 가리키는 거냐?' 이렇게 물었어요. 8:34
이 사람은 말씀에 대한 깊은 관심과, 호기심과, 알고 싶은 열망이 있는,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죠.
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은 '내가 이 말씀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말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해 주셨던 메시아를
말하는 것인데, 그 메시아가 벌써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고,
예루살렘에는 그분의 제자들, 사도들이 여러분 계시고
성령님이 임하셔서 지금 복음의 역사가 얼마나 왕성한지 아십니까?
저도 그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하는 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복음, 십자가, 부활... 이 복음의 핵심 진리를 빌립이 그 관리에게 쭉 설명해 준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보세요. 그 먼 거리를 걸어서 예배하고 돌아가는 이 사랑스러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딱 한 번의 성경 공부'를 시켜주시는데,
성경 저 구석에 있는 지엽적인 그런 말씀을 읽게 하신 게 아니라,
'다른 건 다 몰라도 이것만은 꼭 알아야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해주신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러면 성경에 중요한 주제들이 많고, 모든 말씀이 다 소중하지만
핵심 중에 핵심을 추리고 추리면, 맨 마지막에 남는 게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에요.
그래서 마가복음 1:1절은 이렇게 되어 있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성경 읽기, 성경 이해... 이건 다 틀린 거예요.
잠언 같은 데 보면 '거짓말하지 말아라, 부지런해라, 음욕을 품지 말아라,
재물에 대해서 이렇게 해라' 그런 실천적인... 거의 그냥 윤리나 도덕같은 이야기들이 많아요.
그것도 중요한 건데... 그러나 이제 곧 임종을 맞이할 사람에게
딱 마지막으로 성경 한마디 얘기해 준다면, 여러분은 뭘 얘기하실까요?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운 사람에게 '근면하십시오' 이런 거가 중요하겠어요.
이 주일날 예배 시간에 강단해서 목사님들이 다양한 주제의 설교를 합니다.
가정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많은 주제로 설교하지만
일전에도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예배가 생애 마지막 예배인 성도들도 있을 텐데...
그냥 성경의 지엽적인 얘기나 해서는 안 되겠다.
그 예배에 나왔던 성도가, 그분이 그날 듣고 가는 설교가,
몇십 년 신앙생활한 그분이 듣는 마지막 설교요, 마지막 예배라면,
그분이 예배당을 떠날 때 그 가슴 속에 예수님이 계시도록 하는 말씀을 전해야 되겠다.
왜? 예수님이 구원자이시니까!'
'그분이 그 주간에 부르심을 받는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고 그 주간을 살다가 승리하도록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이제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나갈 때
언제나 붙들어야 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이 있고, 예수님 이후에 신약 성경이 있잖아요.
그러면 구약과 신약은 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란 렌즈를 끼고 구약 성경도 읽는 것이죠.
구약은 뭐냐? '오래된 약속'입니다. 어떤 내용의 약속입니까?
독생자 예수님, 메시아를 보내주겠다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인데,
그 약속이 이미 이루어져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고,
이미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고, 복음이 다 만들어져 있는 거죠.
그럼 신약은 뭐냐? '그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는,
지금도 진행 중인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죠.
그래서 신약 성경의 눈을 가지고 구약 성경을 읽고,
그러니까 구약에 하나님께서 속죄 제사를 드리는 얘기를 하면,
그 속죄 제사에 제물로 죽는 양이 있잖아요. 그 '양'을 읽으면서 우린 누굴 생각합니까?
세상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딱 생각하는 거죠.
구약과 신약이 이렇게 짝이 다 맞는 거예요.
그래서 구약과 신약이 짝이 다 맞아서,
구약을 읽을 때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복음서,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읽으면서
구약의 그 모든 사건들이 생각나요.
출애굽하던 날 밤, 양과 염소가 죽어가지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지 않고 애굽의 장자들만 죽고, 그들은 출애굽을 하게 됐는데
그 문설주에 발려진 그 피, 유월절 어린 양... 그럼 우리는 딱 예수님을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이라고 하는 핵심 주제를 붙들고
그 안에서 성경 말씀을 읽어 내려가는 거예요.
그래야 건강한 성경 읽기, 성경 이해가 되는 거죠.
☞ rfcdrfcd.tistory.com/12967788 rfcdrfcd.tistory.com/12955843
그런데 여러분 이단들은, 이 주제를 엉뚱한 걸 붙드는 거예요.
엉뚱한 주제를 붙들고 성경을 읽다 보면, 그 해석이 이상한 쪽으로 해석이 돼가지고
분명히 성경을 읽고 하는 말인데, 결론이 이상한 대로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성경 이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전에 <설교학>을 가르쳐줬던 어떤 목사님은
아무리 유창하고 대단한 설교를 하는 것 같아도,
'예수님이 없는 설교는 설교가 아니다' 그렇게 가르치시곤 했어요.
*'삶의 요령'을 가르쳐주는 설교는, 설교가 아닙니다.
100% 공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죠.
하나님의 진리가 예수님 오시는 그날까지 옳게 능력있게 선포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영락교의 강단을 위하여, 여러분 끊임없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염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고 능력있게 선포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락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돼야 된다'고 할 때, 그 핵심이 뭐냐 하면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 강단이 좀 힘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건 뭐냐 하면, 여러 세상의 지식들이나, 여러 가지 좋은 얘기를 많이 하는데,
또 여러분, 요즘 목사님들이 교육받은 수준이, 몇십 년 전에 목사님들에 비해서
요즘 목사님들은 학벌 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그러니까 아는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은 거죠.
많이들 다 배우셨으니까.
근데 이제 아는 게 많아서 다양한 주제를 얘기하다 보면, 자칫 핵심을 놓칠 때가 있어요.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옛날에 교육 수준이 떨어져서, 어렵게 목사님이 됐던 일제시대, 해방 전후,
예전에 우리 선배 목사님들은,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은 아니었지만,
그분들이 강조한 건 예수님의 복음이었어요.
저는 한국교회가 왕성하게 일어났던 것이, 그때는 경제적으로 힘들 때였고,
지금은 사회 경제적 요소가 다 뒷받침 됐기 때문에 교회가 주춤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저는 지금도 복음이 살아있으면... 오늘날에도 교회는 부흥한다고 믿습니다.
복음이 구원하는 것이니까요. 복음이 사람을 구원하는 거고요.
천국문 앞에 섰을 때,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시므온 지파가 몇 명인지 이런 거 안다고 구원 받을까요?
내가 죄인인 거를 고백하면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죄 씻음 받고, 그분이 나의 영원한 생명의 구주되심을 믿는...
이 복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에티오피아 관리가 왔다 갔는데도
하나님은 딱 그 이사야 53장을 읽게 하심으로써
빌립을 통해서 예수님의 복음에 도달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랬더니 이제 그 에티오피아 관리가
'내가 세례를 받아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세례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예요.
그냥 예루살렘에 한번 왔다간 순례자가 아니라,
이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천국을 향한 순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에요.
단 한 번의 성경 공부! 정말 효과적인 핵심을 나눈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도 디다케 라고 해서 어떤 교훈적인 얘기들이 있어요.
디다케, 즉 '교훈'적인 얘기를 따라 우리가 살아야 되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캐리그마(복음 선포)적 말씀인 것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생명의 복음, 예수님 중심으로 성경 읽기를 해야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언제나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여러분들 마음속에 간직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설교 직전에, 담당 목사님께서 '별세자 광고'를 한 번 하셨잖아요.
오늘 광고되신 권사님은, 오랫동안 병중에 계셨던 분이신가? 아니에요.
68세 되시고, 갈릴리 찬양대원이고, 며칠 전에도 찬양대 연습도 하신 권사님이세요.
비교적 젊은 연세에, 건강하게 사시다가... 갑자기 부르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제가 깜쪽 놀라서 교구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봤어요.
권사님이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셨나 했더니
특별한 지병은 없으시지만, 호흡기 쪽으로 좋지 않으시고,
또 학교 교편 잡으시면서 사시다가 평생을 시를 많이 쓰신 시인이시고,
문단에 등단하셔서 상도 많이 받으신 분이신데,
몇 달 전에도 시집을 하나 저한테 보내주셨어요.
그 시집 제목이 <포근한 나의 성령님>이었습니다.
교사 명예퇴직이 한 62세쯤 된다면, 68세시니까
권사님께서 하나님 앞에 가기 직전 몇 년 어간에
권사님이 시로 남길 만큼 마음을 쏟은 주제가 뭐냐?
삶의 주제가 거기 시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여러분, 제가 그 시의 제목들을 지금 여러 개 읽어드렸는데,
그 제목들을 보면, 시들이 다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을 향하고 있고, 천국이라는 주제가 많이 나오고,
그러면서 '권사님은 성령님 안에서 사셨구나...'
그래서 제 마음속에 안타까움 속에서도 위로가 됐어요.
'우리 권사님은 복음, 예수님의 초점을 맞춰서,
하나님을 경외하시다가 떠나셨구나'
여러분 우리가 어떤 그리스도인이 돼야 될까요?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이 복음을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그분이 우리가 배워야 될 우리의 유일한 생명의 구주이세요.
우리가 딱 한 번 성경 공부를 한다면, 어떤 본문으로 성경 공부를 해야 될 것인가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쳐주는 말씀'
그것을 우리가 평생 붙들어야 되는 거죠.
주님이 언제 우리를 부르실지 모르는데, 맨 마지막 순간에
여러분, 예수님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맨 마지막 순간에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평소에 언제나 예수님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복음의 말씀들을 굳게 붙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눈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오래 전에 제가 중국에 자주 드나들면서, 북한에 선교하는 일을 돕고 그렇게 했을 때,
거기 어떤 분을 알았는데요.
그분이 북한 동포들이 중국으로 많이 나오니까, 탈북자들을 만나서 성경 공부를 하는데,
그분의 목적은 '복음을 전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지,
한국에 데리고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국에 나와도,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멸망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복음을 전해서, 혹시 북한에 들어가 살게 되더라도, 구원받는 성도가 되게 해야 된다'
그래서 이분이 목숨을 걸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 사람들하고 그들하고 의식구조가 다르니까
그분이 나름대로 개발했던 독특한 방법이 있었어요.
그분은 연변과기대 교수도 하셨고, 그런 훌륭한 분이신데,
그래서 하여튼 그분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고
그래서 한 3박 4일을 같이 먹고 자면서 수련회를 하면
그들이 다 김일성 주체사상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대한민국의 나를 데려가 주세요'가 아니라
'북한으로 들어가서 복음 전하다가 죽겠습니다' 하고
다 다시 돌아가는 엄청난 역사를 보고, 제가 옆에서 돕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복음이죠.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복음이 아닌 다른 지엽적 주제들을 너무 많이 설교하는 거 아닌가?
이 생명의 복음이 가장 중요한 건데요...
그래서 우리가 요한복음 3장 16절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에 굳게 붙들고, 언제 어느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더라도
다 주님 품에 편히 안기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북한 동포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수요 기도회인데,
북한에 살든지 대한민국에 살든지 어느 나라 어느 백성이든지
예수님의 복음이 아니면 구원 받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에티오피아 관리가 수천 킬로를 왕래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은 빌립 집사를 통하여 '딱 한 번의 성경 공부'를 지도해 주시면서
바로 그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의 눈으로 읽게 하여 주시옵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사모하며 확신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있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언제나 믿음 가운데 깨어있게 하시고, 하나님을 우러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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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존 칼빈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기독교 강요》를 저술했습니다.
1533년과 1534년에 회심한 칼빈은 1535년에 집필을 마치고 1536년에 바젤에서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