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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36장 여호야김의 만행과 비참한 결과

LNCK 2025. 4. 3. 20:2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예레미야서  

 

여호야김의 만행과 비참한 결과       렘36:1~32      2009.06.03. 스크랩, 정리

 

※예레미야의 예언서를 소도로 잘라서, 화롯불에 태워버렸던 여호야김,

그 즈음에, 같은 해에, 얼마 후에 바벨론이 남유다로 쳐들어와서

1차포로 사건이 발생합니다. 본문 렘36장은, 그때 일어난 일입니다.

https://rfcdrfcd.tistory.com/12412854의 “♣여호야김”을 보세요.

 

......................................

 

앞서 이야기했듯이,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당시의 국제적 상황은 매우 복잡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앗수르와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바벨론

그리고 호시탐탐 이들 사이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애굽이라는 세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유다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늘 주변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리 저리 움직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여호야김의 아버지 요시야는 당시 앗수르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서를 발견하는데

이는 현재 신명기의 일부(12-26장)으로 여겨집니다.

 

요시야는 원신명기라고도 불리는 이 율법서를 토대로 모든 우상을 명하는 숙청작업을 하여

남유다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우상을 멸하였습니다.

 

요시야의 이 종교개혁은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으로는 앗수르로부터 독립하는 것이었고,

정신적으로는 유다백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그야말로 범국가적인 개혁이었습니다.

 

즉 당시 신흥 바벨론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고,

앗수르가 약화된 틈을 타서 요시야는 잃었던 영토를 되찾고

유다의 홀로 서기를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뜻밖에도 바벨론과 전투하고 있는 앗수르를 지원하러 올라온

애굽의 느고에게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요시야의 죽음으로 그의 종교개혁과 정치적인 독립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후 유다는 애굽의 속국으로 전락합니다.

 

요시야가 죽자 백성들은 요시야의 둘째 아들인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으나,

애굽의 느고는 여호아하스를 제거하고 그의 형인 엘리야김을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고치게 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 여호야김

 

▲애굽의 속국이 된 유다는 애굽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고

당연히 이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자신의 궁전을 크게 건축하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했고 압박하여

무고한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이에 예레미야가 이를 신랄하게 경책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예레미야는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즉 유다왕 여호와김 4년에 예레미야는 감옥에 투옥되어있습니다. 36:1, 5

이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유다를 향한 말씀을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감옥에 투옥되어있기에 바룩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두루마리에 대필하게 하고

이를 금식일에 선포하게 합니다. 36:2~6

 

바룩은 예레미야의 지시대로 여호와김 5년 9월 금식일에 두루마리에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백성들 앞에서 낭독합니다. 36:8

 

이를 들은 미가야는 왕궁의 고관들에게 바룩이 선포한 말씀을 전합니다.

이에 고관들은 바룩을 궁정으로 불러 백성에게 선포한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36:13~15

 

이 내용을 들은 고관들은 그 내용에 깜짝 놀라서, 바룩에게 말씀의 출처를 물었습니다.

바룩의 말을 통해, 두루마리 말씀의 출처가 예레미야임을 알고

바룩과 예레미야에게 피신하게 합니다. :19

 

▲고관들은 두루마리를 왕이 잘 볼 수 있는 서기관 방에 두고,

이 두루마리의 내용은 서기관을 통해 여호와김 왕이 듣게 됩니다.

 

두루마리에 적혀있는 글을 낭독하자 이를 들은

여호야김의 행적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21~23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루마리에 말씀을 기록하게 한 이유를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3

 

하나님은 두루마리에 여호야김의 세대만의 내용을 기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요시야의 날로부터 현재 여호야김 4년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종교개혁을 주도한 아버지 요시야 왕의 신앙과

여호야김의 신앙을 비교하게 함으로

자신의 죄에 대해 뉘우치게 하기 위해,

두루마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서 전하게 했던 것입니다.

 

성전 수리 중에 율법책을 발견한 아버지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씀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었지만(왕하 22:11, 대하 34:19),

 

그의 아들 여호야김은 두루마리, 즉 하나님의 말씀이 낭독될 때 두려워하지도 않고

옷을 찢지도 않았음에 두 사람이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왕하 22:13)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있는 두루마리가 낭독되자

이를 칼로 베어 화로에 던져 불살라 버렸습니다.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용장 밑에 용병이 있다고 하는데

다윗에 버금가는 신실한 요시야... 그런데 그의 아들의 이러한 태도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적으로 보자면 여호야김은 개혁자인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것도 애굽왕에 의해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면 살았건만,

아버지는 애굽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젊은 여호야김에게 아버지의 이같은 죽음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는 하나님을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가장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편을 드는

기회주의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친바벨론, 친애굽을 왔다갔다 하죠.

 

따라서 하나님을 더 이상 믿지 않는 그의 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고

이에 그는 전혀 망설임 없이 두루마리를 한 장씩 불살라 없애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여호야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지 않습니까!

 

정의 보다는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어리석은 삶으로 평가되는 세상,

그토록 신실하게 새벽기도를 드리고 귀가하던 성도님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사망 소식

등을 접할 때 우리의 믿음 역시 휘청하곤 합니다. 가슴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왜?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합니까?

하나님을 그토록 신실하게 믿고 의지하던 성도님에게 왜 이런 일이 발생합니까?

 

여호야김은 이 갈등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하심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리고 현재만을 믿기로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여호야김과 똑같은 사람인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현재 만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을 바로 볼 수 있는 믿음의 시야를 허락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주일 설교를 통해 살펴보고 있는 야고보와 베드로를 당시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산 인생의 패배자입니다.

그러나 바로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삶을 누가 어리석다고 하겠습니까!

누가 인생의 패배자 인가요!

야고보를 죽음으로 내몬 당시의 권력자 헤롯이 인생의 패배자가 아닌가요? 행12장

 

실제로 친애굽이었던 여호야김은 유브라데스의 길가메쉬 전쟁에서

바벨론이 애굽을 격파하자 곧 바로 친바벨론으로 돌아섰다가(BC. 604-602),

(*위 시기는 그가 바벨론에 잡혀가 봉신으로 있었고,

아래 시기는 그가 바벨론에서 풀려나 남유다 왕으로 있었던 시기입니다)

BC. 601년에 잠시 애굽이 하맛 전투에서 승리하자, 다시 친애굽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바치던 조공을 끊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함락합니다.

이때 바벨론은, 여호야긴을 대신 왕으로 세우죠.

그는 예루살렘 성 밖에 버려져 죽습니다.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30b)

예레미야의 이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여호야김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소도로 잘라서, 화롯불 속에 던져넣었던 그 즈음에

바벨론이 남유다를 치러 와서,

그 자신도, 바벨론에 잡혀갔던 것입니다. 거기서 3년간 봉신으로 섬깁니다.

https://rfcdrfcd.tistory.com/12412854의 “♣여호야김”을 보세요.

 

현재 순간에만 집착한다면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 상황에 적응했던 여호야김의 선택이

탁월한 것 같지만 오래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져버린 그는 역사 속에서 덧없는 인생으로 사라졌지만,

그가 불살라 없앴던 하나님의 말씀은 이후에 예레미야를 통해 다시 필사되어

2009년 6월 3일 이 새벽에 우리가 읽고 묵상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나에게 무어라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칼로 잘라 불태웠던 여호야김이 받은 형벌은 큽니다.

 

36:3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이 내용은, 아래 ‘절별 해석(주석책)’에서 가져왔습니다)

 

왕은 두루마리를 직접 불태웠으며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 선포의 권한을 탄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의 후손들이 다윗 왕위에 앉지 못할 것이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은 불과 석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왕위에 앉았기는 하나,

곧장 폐위되고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에서 죽었다(왕하 24:8, 9 , 25:27-30).

 

여호야김은 이 예언대로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였고(22:18, 19참조),

그 시체가 매장되지도 못하고 낮에는 햇볕에, 밤에는 서리에 노출되었다(30절).

불 옆에 편안히 앉아서 여호와의 말씀을 찢어 불속에다 던졌던 이 사람의 시신은

낮에는 더위에, 밤에는 추위에 내던져질 것이다.

 

...................................

 

◑절별 해석

 

36:1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제사년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야김 사 년에' '여호야김 사 년'은 B.C. 605년에 해당된다.

B.C. 605년은 고대 근동 지역의 국제적 상황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 해에 바벨론 군대가 유프라테스 강변 갈그미스에서

애굽 군대를 격파시킴으로써, 명실 공히 근동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굽 군대를 격파하고 난 다음에 바벨론은 곧이어 팔레스틴으로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과 예레미야의 예언을 담은 두루마리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두루마리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도구가 바벨론이 될 것이며,

그리고 여태까지 선포해왔던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36:2 너는 두루마리 책을 가져다가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나라에 대하여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거기에 기록하라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이 '두루마리 책'이란 표현은 본절 외에 4절과 시40:7,

겔 2:9에만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책으로 만들어진 긴 두루마리인지,

아니면 기록할 용지로서의 두루마리인지는 확실치 않다.

 

'두루마리'(메길라)는 '굴리다'는 뜻의 '갈랄'에서 유래한 말이다.

고대에는 오늘처럼 종이 제조 기술이나 제본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까닭에

주로 갈대로 만든 파피루스나 동물의 가죽을 대신 사용했으며,

그것을 여러 장 연결한 후에 끝 부분에 굴림대가 있는 막대기를 부착시켜

양편에서 말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여기서 '모든 나라'가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 메시지가 유다를 넘어서 보다 넓은 관점에서 선포된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한 흥미로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그것은 예레미야가 왜 두루마리에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말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상황을 고려해서 살펴보면,

그는 제사장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방법만이 백성들과의 교신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5절).

 

또 다른 요인을 든다면, 바벨론 군대가 금방이라도 이 민족을 멸망시킬 것 같은 상황

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흔히 있던 바와 같이 구전(口傳)으로 전달하면

전쟁의 혼란 속에서 곧 잊혀질 염려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가 계속 살아 있고 또 사회적 안정이 보장되어 있었다면

백성들은 언제라도 선지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 당시로서는 예레미야의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었고

민족 전체가 부패한 상황에서 그의 말을 귀기울여 들으려고 하는 분위기도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두루마리에 기록으로 남겨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B.C. 622년에 요시야 당시 성전에서

두루마리 책이 발견된것 역시 하나의 선례가 되었을 수도 있다.

 

36:3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유다 족속이...돌이키리니'

이 예언의 일차적 관심은 '유다 족속'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시점까지도 유다의 회개를 기다리고 계셨다.

회개의 기초는 여기서 지적되고 있는 바와같이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이었다(7절, 26:3 참조).

 

36: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바룩이...기록하니라'

예레미야의 개인 비서 혹은 서기 역할을 하였던 '바룩'은 유다의 명문(名門) 집안 출신으로 짐작된다(51:59).

한편 바룩의 대필(代筆)에 관해, 우리는 하나님이 바룩에게 영감을 주신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을 때 예레미야가 영감을 받았을 뿐이며,

바룩은 그 영감받은 말씀을 단순히 받아적었다고 보아야 한다.

 

36:5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는 붙잡혔으므로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

 

본문에서도 문자적으로 감옥에 갇힌 상태를 말하지 않고,

여호야김과 방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성전 출입이 금지되었음을 뜻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19, 26절에서 처럼, 예레미야와 바룩은 스스로 몸을 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36:6 너는 들어가서 내가 말한 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읍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본절에 언급된고 있는 금식일은 어떤 고정된 절기에 따라 소집된 것이 아니고

특정한 사안이나 위기가 닥쳐서 소집된 것이었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금식일에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 것을 계산했으며,

이때 두루마리를 읽게 함으로써 큰 효과를 거두려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되었던 바와 같이 금식일로 소집되어야 했던 긴급한 안건이 무엇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것은 바벨론 군대가 팔레스틴 평원에 도착한 것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36:7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나리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여움과 분이 크니라

 

금식의 날에 백성들은 여호와께 현재의 고통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것을 탄원할 것이다.

본절에서는 예레미야가 자기 백성의 회개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3절).

 

여호와께서 엄청난 분노로 예고하셨던 그 심판을 돌려 놓으려면 회개가 필수 불가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백성은 돌이킬 줄 몰랐다.

 

36:8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명령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니라

 

'바룩이...낭독하니라' 비슷한 내용이 10절에 언급되고 있다.

 

36:9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의 제오년 구월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

 

'여호야김의 5년 9월에...금식을 선포한지라'

본절에는 백성들이 금식을 선포한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안일과 교만에 빠진 정치 종교 지도자들보다 백성들이 더욱 신앙적, 국가적 위기 의식을

절박하게 느꼈음을 알려주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금식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금식을 행하였다는 실천적 의미로 보기도 한다.

또한 백성들이 금식 선포의 주체가 아니라 금식 선포의 주체를 당국자로 보고

당국자들이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여 모이게 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아무튼 여기서 금식이 선포된 날짜는 여호야김 오 년 구 월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양력으로 B.C.604년 11, 12월에 해당된다. 이 때의 날씨는 추웠다(22절).

 

36:10 바룩이 여호와의 성전 위뜰 곧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새 문 어귀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말을 모든 백성에게 낭독하니라

 

'바룩이...그마랴의 방에서...낭독하여' 바룩이 두루마리를 읽어 낭독한 것은

국가의 공식 서기관인 사반의 아들 그마랴의 방에서였다.

이것은 요시야 시대에 성전에서 두루마리가 발견된 이야기와 관련시켜 볼 때 흥미롭다(왕하 22:3-23:3).

 

요시야 당시 그마랴의 부친 사반은 요시야의 국가 서기관이었으며

그 역시 두루마리를 읽었던 것이다(왕하 22:3).

 

25절에는 그마랴가 예레미야의 메시지에 상당히 공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사반의 다른 아들이 26:24에 언급되고 있는데, 그는 아히감이었다.

아히감 역시 예레미야에 대해서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바룩이 그마랴의 방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그마랴가 예레미야를 선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한편 바룩이 백성들에게 두루마리를 낭독해주었던 그 방은 성전 윗뜰에 있었다(26:10).

그렇기 때문에 바룩은 성전 마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었고 또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그의 낭독하는 말씀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 했는지는 언급되지 않고,

다만 고위 관리들의 반응만이 다음절에서부터 기록되어 있다.

 

36:11 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미가야가 그 책에 있는...듣고'

여기서부터는 예레미야의 말씀이 낭독된 이후에 일어나는 급박한 사태의 진전이 언급된다.

미가야는 두루마리의 말씀을 듣고 그 사실을 궁정내의 여러 장관들에게 보고하였다.

그리고 장관들은 바룩을 그들 앞으로 데려오도록 명령하였으며,

그들이 직접 그 두루마리의 말씀을 경청한다. 그 내용이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이 문제를 왕에게 가져가기로 결정하는 것이다(16절).

 

36:12 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고관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고관이 거기에 앉아 있는지라

 

'서기관에 엘리사마와...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관리들은 내각을 구성하는 장관의 지위에 있던 사람들로 보인다.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언급되어 있지만,

그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엘라단의 부친인 악볼은 요시야 당시 성전에서 두루마리책의 발견 기사에 등장한다(왕하 22:12).

 

36:13 미가야가 바룩이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을 그들에게 전하매

 

'들은 모든 말로 그들에게 고하매'

본장 내용은 요시야 당시와 지금 여호야김 당시 사이의 여러 유사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부각 시키고 있는 듯하다.

특히 요시야 때의 두루마리 책과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는 둘 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그것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경위에 대한 서술이 양쪽 다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36:14 이에 모든 고관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오니

 

장관들은 여후디를 시켜서 바룩을 불러 다시 한번 자기들에게 그 두루마리를 낭독하도록 하였다.

 

36:15 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 바룩이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 이들 장관들은 그를 아주 정중하게 대우 했었다. 아마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그들이 바룩에 대해서, 또 예레미야에 대해서 우호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6:16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아뢰리라

 

'그들이...왕에게 고하리라'

장관들은 예레미야와 바룩을 곤경에 처하게 하려는 의사가 없었으며,

그들을 죽이고자 고자질하려는 의사도 없었다.

다만, 그들은 두루마리의 내용이 참으로 심각하고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왕에게 보고하려고 했을 뿐이다. 뒤에서 언급되겠지만, 그들은 이 사안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빨리가서 숨어 있을 것을 권고하였다. :19

 

36:17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그가 불러 주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냐 청하노니 우리에게 알리라

 

방백들이 바룩에게 이렇게 물어본 의도는 두루마리의 내용이 실제로 여호와의 말씀인지,

그리고 예레미야에게서나온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36: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의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불러 주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방백들은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대로 바룩이 받아 적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바룩이 예레미야의 글을 받아 적은 이 사건은

앞으로 두 사람 사이에 있게 될 긴 협력 관계의 시작일 뿐이었다.

 

예루살렘이 최종적으로 멸망할 때까지 약 18년이란 기간 동안

이들은 협조와 동역 관계를 가지게될 것이며,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 예레미야는 아나돗 밭을 사서 그에게 위탁하기도 한다(32:12, 16).

 

바룩 역시 마지막에는 예레미야와 함께 애굽으로 가게된다(43:6).

아마 이런 긴 세월 동안에 걸쳐 바룩은 예레미야의 어록과 활동 상황을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을 것이다.

 

본서가 현재의 형태로 있게 된데는 바룩의 공로가 결코 배제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신명기 사상의 산문체라고 알고 있는 그런 어떤 산문체도

어쩌면 바룩의 손에서 나왔을 수 있을 것이다.

바룩 역시 그러한 문체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던 사람이었겠기 때문이다.

 

36:19 이에 고관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가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방백들은 선지자의 두루마리 내용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과 확신을,

여호야김 왕이 공감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이런 주도 면밀한 배려는 곧 정당했던 것으로 밝혀진다(26절).

 

본장의 사건의진행을 이끌어 가고 있는 저자는 여기서 다시 한번 호기심을 자극시켜서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아무튼 이 방백들은 왕이 예레미야와 바룩의 생명을 해할 것으로 보고

이들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이와 함께 사안이 극히 중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를 왕에게 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36:20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을 왕의 귀에 아뢰니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여호야김은 이미 선지자 우리야를 사형에 처한 바가 있다.

우리야가 애굽으로 도피했었는데도, 그를 끌어와서 죽였다(26:20-24).

 

방백들은 왕에게 보고하러 가면서 두루마리를 엘리사마의 방에 안전하게 남겨놓고 떠나갔다.

아마도 이는 왕의 손에서 그 두루마리를 지키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36: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왕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지키려고 한 노력은 아무 소용도 없게 되었다.

여후디가 두루마리를 가져와서 왕과 왕의 곁에선 모든 방백들 앞에 낭독하게 된 것이다.

 

36:22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겨울 궁전'이라 함은 겨울에 사용하도록 별도의 궁전을 지어 놓았다는 것이 아니라,

궁전 내에 난방 시설을 갖춘 곳을 의미한다(3:15).

 

유대력으로 구월은 양력 11, 12월에 해당되는데, 이때는 눈이 내리기도 하였으나

오랫동안 내리지는 않았다. 여기서 '화로'란 석탄이나 나무로 불을 치운 청동 화로였는데,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부자들은 추운 날씨에는 이 화로에다 불을 피워

방 한쪽에다 두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마루에서 불을 피웠다고 한다.

 

36: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조각내어 불태웠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예레미야와 그의 메세지를 모욕하고 무시하고자 했다.

어쩌면 그러한 행동은 단순히 모욕의 차원을 넘어서,

선지자가 선언하고 있는 저주문들의 힘을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포함하고 있었다.

 

어쨌든 왕하 22:11-20에서 여호와김의 부친 요시야가 율법책의 낭독을 들을 때

자기 옷을 찢은 것과 여호야김이 두루마리를 찢은 것은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36:24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을 때 두려워하고 옷을 찢으며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던

요시야의 반응과는 달리 여호야김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 정반대되는 반응을 보였다.

 

아마, 그 당시 국제 정치적 관점에서 여호야김은 북방 적에 대한 예레미야의 경고의 예언을

무시하고, 명목상의 대국에 지나지 않는 애굽이 그들의 봉신된 유다를 도우러 올 것이라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던것 같다.

 

36: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말도록 아뢰어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그마랴는 사반의 아들로서 서기관이며 바룩으로 하여금 성전 새 문 어귀 곁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백성들에게 두루마리를 낭독하도록 허락해준 자이다(10절).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왕의 잘못된 행동을 막으려고 애썼는데,

이로 보아 그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참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음에 틀림없다.

 

36: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마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여호야김은 두루마리를 소각시킨 것도 모자라서, 그것을 기록한 저자를 색출해 죽이려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여호야께서 이미 그들을 숨기셨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의 운명은 26:20-23에 언급된 우리야의 경우와 같은 그런 처벌을 받고 말았을 것이다.

 

예레미야와 바룩이 얼마나 오랫동안 숨어 있었는지 하는 점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오래지 않아 예레미야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철회한 것 같다.

왜냐하면 연대상 이때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레갑 사람을 시험할 때에

그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35장).

 

36:27 왕이 두루마리와 바룩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야김은 두루마리를 불태움으로써 유다 멸망에 대한 예언의 능력을 소멸시켰다고 믿었을지

모르나, 두루마리를 불태운다고 해서 여호와의 말씀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36:28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다시 기록된다.

그러나 그것이 기록으로 남든 그렇지 않든 간에 여호와의 말씀은 굳건히 설 것이고

또 성취되고야 말 것이다.

 

바룩은 전과 같이 다시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대로 새로운 기록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새로 기록되는 이 두 번째 두루마리에는 첫 번째 내용도 포함되었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영감에 의한 새로운 내용이 첨가되었을 것이다(32절).

 

36:29 또 유다의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의 왕이 반드시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냐 하도다

 

36:3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36:31 또 내가 그와 그의 자손과 신하들을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할 것이라 내가 일찍이 그들과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에게 그 모든 재난을 내리리라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왕은 두루마리를 직접 불태웠으며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 선포의 권한을 탄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의 후손들이 다윗 왕위에 앉지 못할 것이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은 불과 석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왕위에 앉았기는 하나,

곧장 폐위되고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에서 죽었다(왕하 24:8, 9 , 25:27-30).

 

여호야김은 이 예언대로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였고(22:18, 19참조),

그 시체가 매장되지도 못하고 낮에는 햇볕에, 밤에는 서리에 노출되었다(30).

불 옆에 편안히 앉아서 여호와의 말씀을 찢어 불속에다 던졌던 이 사람의 시신은

낮에는 더위에, 밤에는 추위에 내던져질 것이다.

 

36:32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가 전하는 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더 하였더라

 

여호야김의 두루마리 소각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끈질긴 시도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말씀에 영감을 불어 넣으신 하나님은 또한그 말씀을 친히 보존하시기 때문이다.

 

모세 당시 백성들의 가증스러운 범죄로 말미암아 십계명이 깨뜨러졌을 때에도

하나님은 다시금 십계명을 새겨 주셨다(출 32:19 , 3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