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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 부득불 해야 할 일 https://rfcdrfcd.tistory.com/15974520
◈걱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눅12:16~21, 16:19~24 1999.12.12
눅16장의 부자가 괜히 지옥에 갔습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부자가 사람을 죽였습니까? 아닙니다. 부자는 나쁜 짓을 안 했습니다.
다만 그가 부자로서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입니다. *주제
......................
눅12장과 16장을 함께 본문으로 읽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시는 대로 오늘의 이 두 본문 가운데 공통점은
‘부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제3세계 사람들에 비교하면, 누구나 ‘부자’입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부자에 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그리고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다 익히 잘 아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사실은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 마음속에 떠 오르는 한 가지 의문은,
비록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또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말씀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들의 보통세상 상식으로는 잘 납득 이 가지 않는 말씀이다...
하는 그런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우리가 보는 대로
부자는 죽어서 지옥에 갔고, 그 부자의 집에서 구걸하던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천국에 나사로가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본문을 아무리 자세히 살펴 본다 할지라도
부자가 지옥에 갈만한 그런 특별한 이유를, 우리가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 이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 갈 만큼 무슨 좋은 일을 했다거나
천국에 갈만한 뚜렷한 이유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냥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별로 뚜렷한 이유도 없이 부자는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천국에 간 나사로는 기분이 좋았을는지 모르지만,
별 이유도 없이, 특별한 하자도 없이 지옥에 간이 부자는,
참 억울했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저는 해봅니다.
혹자는 오히려 이 부자를 두둔합니다.
거지 나사로가 자기 집 앞에 구걸하도록... 그대로 놔 두는 자비를 베풀었다는 거죠.
요즘 부자들 같았으면, 이런 거지가 자기 집 대문 앞에 얼씬거리지도 못하도록
경비원을 시켜서, 멀리 내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유대 문화와 전통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구제를 강조하는 유대 문화와 전통은, 어느 집에서 잔치를 베풀면,
근처 가난한 자들과 거지들을 초대해서,
잔치가 끝나고 상에 남은 음식을, 그들로 먹게 하는... 그런 관습이 있었다고 하죠.
그래서 아마 거지 나사로가, 부잣집에 찾아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쨌거나 오늘 본문에 부자가 한 일에 대해서 한 구절이 나옵니다.
눅16:19 '한부자가 있어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한 마디로 이 부자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았던 사람이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도대체 왜 나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떻게 그것이 지옥에 갈 만큼 나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문제 제기
우리가 아는 대로 보통 세상에서 부자들이 어떻게 삽니까?
돈 있고 여유가 있으면, 당연히 좋은 옷 입고, 잘 먹고, 해외 여행도 자주 다니고,
이런 저런 취미 생활도 하고, 재미있게 인생을 사는 것...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부자가 자기 돈으로, 잔치(파티) 하고, 좀 좋은 음식을 먹고, 비싼 옷을 입고,
뭐 조금 인생을 즐기는 것... 그것이 무슨 잘못이고, 더군다나 그것이 왜 지옥에까지
가야 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까?
더군다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말씀대로 살핀다면,
이 부자가 돈을 모을 때 무슨 나쁜 짓을 했다던가,
누구를 억울하게 해서 돈을 모았다던가, 부정 축재를 했다던가... 그런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성경의 판단에 의하면, 이 부자는 지옥에 갈만큼 나쁜 짓을 한 사람입니다.
지옥에 갈만한 충분한 이유가 그에게 있었다 하는 것이 성경의 판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을 잘 살펴보면, 그 실마리가 한가지 나옵니다. 20절입니다.
16: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아마 이 거지 나사로는 몸도 성치 않았던 그런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이 구절 로 미루어 볼 때, 바로 이 나사로가 부자에게 있어서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자가 지옥으로 가게 된 것이, 바로 이 나사로 때문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주제를 미리 말씀드리면,
부자가 괜히 지옥에 갔겠습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부자가 사람을 죽였습니까? 아닙니다. 부자는 나쁜 짓을 안 했습니다.
다만 그가 부자로서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입니다.
나사로라는 거지가, 이 부자의 집에서 얼씬거리지 않았다고 하면
이부자는 지옥에가는일이 일어나지 않았을런지도 모릅니다.
부자가 지옥에 간 것은, 바로 이 나사로와의 관계였음을
우리는 본문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지 나사로와 부자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었기에
부자가 지옥에 가는 그런 엄청난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여러분, 냉정하게 우리가 따져본다면, 나사로가 거지가 되어서
남의 집에서 빌어먹고 병이 들은 것은, 부자의 책임이아닙니다.
부자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거지 나사로를 도와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가 거지 나사로를 꼭 도와줘야 된다는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도와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뭐 도와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자를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여러분. 가난한 사람 을 도와주면 칭찬 받을 일이지만,
안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될 일은 아닙니다. 안 하면 그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통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보편적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들의 이와 같은 보통 상식과는 전혀 다른 기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부자가 거지 나사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 것,
이것이 부자가 잘못한 것이다. 이것이 (큰) 죄다.
잘못도 보통 잘못이 아니라, 지옥에 갈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래서 부자는 당연히 지옥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판단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에 부자가 지옥에 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벌었으니 내 마음대로 쓴다. 내가 이 돈을 버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얼마나 수고를 했는데, 이걸 누구에게 줘?
내가 번 돈 내가 마음대로 쓰는데 누가 뭐라고 그래?내가 번돈, 내가 쓸 권리가 있지.'
보통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아마 오늘의 본문의 부자도 그렇게 생각을 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와 같은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돈이 있는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하나님이 주신 책임입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부자는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데,
무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반드시 가난한 사람을 도와 줘야 됩니다.
교회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헌금이라는 것이 교회만을 위해서 쓰여져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종종 교회의 헌금은, 그 교회의 것으로만 잘못 생각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사실은 우리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성경의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돈이 있는 부자다' 그러면 당연히 그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써야 될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돈을 가지는 순간, 그 책임도 함께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는, 단지 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식을 가지는 순간, 다른사람들에 대해서 책임이 주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기술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시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힘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그것을 갖는 순간, 그것은 그것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야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될 책임이, 함께 주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해 무한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의사는 환자에 대해서 책임이 있습니다.
의사가 되는 순간, 아픈 사람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돈 내고 내가 노력해서 의사가 됐는데, 내 마음 대로지 뭐'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의사이기 때문에
병든 사람에 대해서 조건 없이 의사가 되는 순간,
그때부터 조건없이 무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권력과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이 없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육체가 성한 사람은, 육체가 연약한 사람에게 지고 있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그 책임을 게을리 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는 죄를 짓는것입니다. 죄도 무거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옥에 갈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엇을 가진다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것입니다.
무엇을 갖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갖는다는 것이 그러므로 축복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일 나치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대학교수가 나치정부의 비밀경찰에 붙잡혀 갔습니다. 이 교수가 항변을 합니다.
"나는 나치정부에 대해서 한번도 비판을 하거나, 나치 정부를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조용하게 살았고, 정부를 반대한 적도 없습니다.
나는 죄가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나처럼 죄가 없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벌을 주려 하다니
나는 참으로 억울합니다."
그때 그 교수의 옆자리에서 재판을 받고, 형을 언도 받은 목사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교수님, 당신은 이 시대에 지성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야 될 선생님입니다.
당신의 말대로 이 잔학하고 불의한 나치정권을
당신이 한번도 비판하지 않고, 그 정부를 한번도 반대하지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이 큰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지성인으로서, 대학교수로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큰 잘못이요, 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한번 진지하게 살펴 보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다 하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애쓰고 노력하면서 사는가요? 우리 스스로 한번 잘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나는 내가 남보다 더 가진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기에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가요? 만약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적극적인 책임을
우리가 다 하지 못한다고 하면, 혹시 나는 지옥에 갈 수도 있는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눅16장의 부자가 괜히 지옥에 갔습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부자가 사람을 죽였습니까? 아닙니다. 부자는 나쁜 짓을 안 했습니다.
다만 그가 부자로서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입니다. *주제
▲여러분들,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를
'나는 세상을 살아갈 때, 뭐 남들에게 그렇게 특별한 잘못한 일을 한 것도 없고,
큰 죄를 짓는 것도 없고, 크게 나쁜 일을 한 것도 없고,
그냥 선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주어진 생활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그렇게 사는 것으로써 여러분들이 인생을 바르게 사는 것이고,
그것으로 만족한 인생의 삶을 사는 것.... 이 아니라는 것이죠.
본문의 교훈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책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 그것이 큰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직무 유기라는 것이지요. 자기 책임을 다 하지 않으니까요...
◑오늘 두번째 본문, 누가복음 12:16절 이하의 말씀은,
우리가 보통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라고 알고 있는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직접 들려 주신 비유의 말씀,
왜 이 부자가 어리석은 사람인가요?
내일 일을 알지 못 하고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이니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내일 죽을 줄도 모르고, 천년만년 계속 살 것처럼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실 이런 점에서 라고 하면, 우리들도 이 부자의 어리석음에 못지 않은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내일 일은 모릅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우리들이
천년만년 이 세상에 살 것처럼, 설치고 욕심을 부리고 삽니다.
우리가 정말 천년만년 이 땅에 살 것 같이 생각을 하지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50년 후에 이 자리에 남아있을 사람이 누굴까요?
그렇다고 하면, 우리들 모두가 다 자기 잘났다고 설치고 다니지만,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것이, 백년 도 안 되서 끝나고말, 보잘 것 없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년만년 살것처럼 설쳐 댑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본문의 어리석은 부자와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누가복음 12장의 이 부자는, 사실 '어리석은 사람' 이라고 하기 이전에,
사실 참 '한심한 사람' 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하기를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심한 부자의 이야기다' 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 랍니다. 이 부자가 많은 재물을 얻었습니다.
많은 재물을 얻고, 이 부 자가 생각한 것이 고작 무엇입니까?
'어떻게 내가 좋은 음식을 먹고 마시고 즐길까?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살까?' 그것이었습니다.
아니 자기에게 재물이 많이 생겼다고 하면
적어도 '이 돈을 가지고 어떻게 좀 의미 있는 일을 해볼 수 없을까?'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좀 좋은 일은 없을까?'
적어도 그런 것 때문에 좀 고민하고 생각하고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돈은 있으나 철학이 (신앙이, 영성이) 빈곤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남 얘기 할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때때로 많으나 적으나, 얼마 만큼의 물질이 있는 사람들인데,
여러분들은 이 물질을 놓고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이거 적은 돈이지만 어떻게 보람있는데 써 볼까?,
나도 쓰기에 조금 빠듯한 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노블리스 오블리제' 라는 말처럼,
내가 '사회적 책임'을 좀 감당할 수 있을까?
여러분, 그런 것을 한 번 걱정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 우리가 한평생 인생을 살아가면서
걱정을 안 할 수도 없고, 걱정이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문제는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걱정하고 살아가느냐?
이 걱정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더 차원 높은 걱정을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설교 제목
금년 일년이 다 지나갑니다. 새로운 해는 단순히 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시작 되고, 새로운 천년이 시작이 됩니다. *1999년 설교
내년에 무엇을 할까? 여러분들이 많은 걱정을 하실 줄 압니다. 계획을 세우실 줄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걱정과 계획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여러분, 우리가 100년안에 끝날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 한번 그럴듯한 인생을
살아봐야 하지않겠습니까? 차원 높은 걱정을 하면서 좀 살아봐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내가무엇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나, 이웃 앞에서, 그리고 역사앞에서 두려운 일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는 순간, 그것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엄중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쓰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이 그것을 가지는 순간,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그 책임(달란트)을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여러분들은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알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들의 걱정이 무엇인지를...
기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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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세 가지 국면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경건은 '기도'(마 6:5-15)
자기 자신과 관계에 있어서 경건은 '금식'(마 6:16-18)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경건은 바로 '구제'입니다(마 6:1-4).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위 3가지 경건에 힘썼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었죠.
구제가 빠진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 아닙니다. 약1:27
여러분, 공산화, 이슬람 국가가 발생한 이유를 아십니까?
7세기 이슬람의 발흥, 20세기 공산주의의 출현은 엄청난 재앙입니다.
그런데 그런 재앙이 발생한 이유는,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는데 있습니다.
교회는 대지주들의 편을 들었습니다.
정치가, 성직자, 신학자들은 추상적인 문제에 대해 논했고,
실제적인 문제는 주도면밀하게 회피했습니다.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토지가 없는 다수민중들이 봉기해
이슬람, 혹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구제에 힘쓰지 않으면, 사회 불안이 가중됩니다.
교회가 구제에 힘쓰는 것이 혹시 그 규모가 미약할지라도
선구자적 모범이 되어서
모든 사회와 기업들이 교회의 본을 따라하게 만드는
선구자(또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도 -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나를 복되게 하는 자
사람은 스스로 복되게는 잘 할 수 없다.
보통은 주변 사람이 나를 위해 복을 빌어 주어야 복을 받고, 행복을 느낀다.
사울 왕에게 다윗 같은 훌륭한 장수 역시 ‘나를 복되게 하는 자’였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그 복을 오래 누리지는 못 했다)
룻에게는, 자기를 잘 이끌어주는 시모 나오미가 ‘나를 복되게 하는 자’였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나를 축복해 주고, 나를 존경해 주고,
내가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는 ‘나를 복되게 하는 자’가 반드시 필요한데
나를 통해 하나님의 구제의 손길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축복해주고, 내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것이다.
이런 ‘나를 복되게 하는 자’가 없는 사람은(구제 없는 사람은) 정말 불행하다.
구제나 무료급식은 배고픈 저들을 도우기 이전에
딱딱하게 굳어진 우리들 마음이 부드럽도록 도우는 시간이며
인색한 우리들 마음이 넉넉하도록... 우리를 스스로 돕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