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2/05/22 "시련을 돌파하려면" - YouTube
59:45초부터 녹취
◈시련을 돌파하려면 약1:19-27 2022.05.22.
※이 설교는, 대부분 설교자가 전하는 복음과 큰 결이 같지만, 약간 다릅니다.
국내에서도 이렇게 설교하는 분들이 있지만, 많지는 않습니다.
인도의 잭 푸닌 목사님이 이렇게 설교하고요. ☞잭 푸닌 설교모음
주류 목회자들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라고 설교하고, 그것으로 복음을 끝내버리죠.
계명이나 율법(도덕법)은, 우리는 연약하여 절대 지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계명과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걸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죄인임을 깨달으라고'
그 목적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이렇게 주류가 설교합니다. 우리가 수 십 년 전부터 이런 복음을 들어왔습니다...
(성경에, 복음에 이런 면이 들어 있죠. 그러나 복음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 진리입니다)
그런데 '새언약'을 가르치는 설교자들은
새언약을 통해, 즉 성령을 통해, '변화된 심령이 계명, 율법을 지킬 수 있다'
'그래서 계명, 율법을 지켜서 성숙에 이르고, 온전함에 이르고, 구원의 완성에 이른다'
고 가르칩니다. ☞관련글 보기
참고로, 여기서 '온전=완전=성숙=장성'은 완벽주의 perfectionism 를 뜻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 칭의를 받은 성도는
이제 말씀을 행하는, 성숙한 성도로 점점 변화되어져 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게 성화의 길을 가는 거죠.
아래 설교는, 그런 주제의 말씀을, 약1:19~27절 본문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가 처음 들으면 어색하겠지만, 자꾸 들으면 익숙해지고, 차츰 이해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점점 세상에 온전한 복음이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
어릴 때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게 되면
'사는 게 왜 이리 힘들지?' 라고 더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해야 할 일도 더 많아지고, 결정해야 될 일들,
그리고 맡겨진 일들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임져야 될 식구들도 많아지기 때문이죠..
학교 다닐 때에는, 시험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졸업하면, 취업하는 것을 놓고 또 고민을 합니다.
나이가 들면,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큰 기도 제목이지요.
그렇게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는 문제,
낳은 그 자녀를 공부시키는 문제,
그 아이가 십대가 되어지면 자녀가 겪는 갈등들...
계속 '산 너머 산'같은 힘든 일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을 이렇게 긴 시간으로, 평면적으로 펼쳐서 볼 때에도 힘들지만,
그러나 그 시간을 쪼개서, 이렇게 매 순간 끊어서 생각해 봐도 어렵습니다.
매주 인간관계 안에서 겪는 갈등들, 경제적인 어려움들,
외국에 살다 보면 누구나 겪는... 살 집을 찾는 것, 비자 문제, 정서적인 외로움 등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때, 이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사실은 정상적인 것이며, 이것이 사실은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 야곱이, 노년에 애굽 왕 바로 앞에 섰을 때
그가 했던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130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모세도 노년에 쓴 시처럼 보이는데, 시90:10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 연수에 자랑할 수 있다는 게... 수고했던 일, 슬펐던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것도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삶 자체가 버겁고 힘들지만, 특별히 더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말씀이 어떻게 가르칩니까?
◑지난 시간 복습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야고보서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박해받아서, 진짜 자기 고향을 떠나고 집을 떠난...
지금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쓴 서신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피난 와 있고, 먹고 사는 것들이 많이 힘든,
가난에 찌든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 상항에 있는 자들을 위해서 야고보가 이 서신을 썼고,
당연히 야고보는 이 교인들에게 했던 첫 번째 이야기는
'현재 당하고 있는 여러 어려움들을 잘 참아내라' 라는 말로 본론을 시작하게 됩니다.
감정적으로는 그렇지도 않고, 인간적인 경험을 봐서도 이건 힘든 일이고,
그래서 불안할 수 있지만,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잘되게 하시고 이끄신다는 사실 앞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뻐하라.
반드시 우리 미래는 잘되게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사실 앞에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참고, 인내하고, 믿고, 신뢰하면,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이 약1:2~4절까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바로 이어서 1:5~8절부터 하신 말씀은
막상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실 것을 믿지만,
그 어려움을 만나면... 되게 마음이 어렵고,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자기의 부족함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옳다 싶은 것, 내가 하나님 믿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 있지만, 그렇게 살아낼 수 없는 자기를 보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 뿐만 아니라, 그대로 살게 하는 것,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내게 하는 능력...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혜'인데,
그래서 어려움 가운데 힘들어하는 그들에게 '그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라고
1:5~8절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도들이 겪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어려움은,
당연히 기본적인 먹고 사는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것을 1:9~11절에 이어서 그 다음에 이야기합니다.
가장 확실한 예를 든 것이죠.
이런 어려움, 가난의 문제, 부의 문제에 직면한 그들에게
야고보 장로의 권면은 '가난을 영적으로 부한 자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기도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그것(물질)이 많든지 적든지 관계없이 만족하며 살아가는 비결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배우라 라고 오히려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는 거죠. 약2:5
더 나아가서 1:12~18절은,
신앙적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지난 주에 나눴던 말씀의 포인트였습니다.
어려움이 계속되다 보면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가?'
'사랑하신다는 분이 왜 이런 어려움을 내게 주시는가?
나는 지금 하나님께 시험을 받고 있어' 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의심하기 시작하면, 우리를 온전케 할 수 있는 시련이
템테이션으로 바뀌어서, 진짜 유혹으로 바뀌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에 대한 신뢰,
그분의 사랑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어디에 근거를 두어야 된다고 이야기했습니까?
'그것은 십자가 사건이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신 그것이야말로,
확실한 우리를 향한 사랑의 증거이므로,
십자가를 붙들어야, 어려운 순간에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그 사랑을 붙들어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있고 확신할 수 있다...
이것이 지난 주에 살펴본 1:12~18절까지의 내용이었습니다.
◑설교 시작 약1:19~25
여러분 이상의 야고보서의 말씀을 보면, 시련과 어려움에 당면한 그들에게 주신
여러 가지 다양한 말씀을 하셨지만
그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야고보가 지금 계속 이야기해온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내용의 핵심이 뭐였습니까?
그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에게, 어떻게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지금 야고보가 일관되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너희들의 믿음,
지금 믿었기 때문에 도망치고 있고 쫓겨다니는데,
바로 예수님에 대한 그 믿음으로, 환난을 돌파해야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항상 어렵습니다.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힘들게 하는 일을 계속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모양이든, 나쁜 모양이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간에
삶 자체가 주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그것을 거뜬하게 이겨내고, 짊어질 수 있는 힘은, 나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내 의지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내 정서가 너무 약해졌을 때는, 진짜 내 힘으로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상황이 언제나 좋게 바뀌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참 어리석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한결같이 어려움을, 삶의 무게인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조금 전에 계속 말씀드려온 것처럼,
이미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할 때 받아들인 그 복음, 구원, 은혜를
더 굳세게 붙드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 성경 전체에 일관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바울이 쓴 서신에 보면
골2:6절과 8절에 바울이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골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분 안에 살아가십시오. 예수님 안에 살아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식물의 예를 들기를
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식물이 뿌리를 내려야 잘 자랄 수 있듯이
예수를 믿은 이후에, 그 예수께 깊이 뿌리 내리라는 것입니다.
또 건물의 예를 들었습니다.
어떤 건물이든지 튼튼하려면, 기초 위에 잘 세워져야 되는데, '세움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인생이 되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무슨 교훈, 무슨 가르침을 받았을까요? 또 그 가르침이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가르침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골로새서 전체도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된다'
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라' 이렇게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돌파하는 것은, 이미 받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 깊이 뿌리내리는...
예수에 대한 믿음을 세워가는 것이, 어려움을 돌파하는 것이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상황이 바뀌어지기를 기다리거나...
언제까지 내 자신의 의지를 다지면서 살아갔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미 받아들인, 이미 영접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더 굳게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게... 예수님께 집중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어서 골로새서에 보면
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예수를 믿고도 적당히 교회를 나가는 정도,
평소에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다면, 나는 괜찮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세상에 나갔을 때에는 내가 행복해지려면
내가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된다고 말하는...
이런 세상의 거짓된 이론들을 철썩같이 믿고 살아가는 삶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즉시로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빼앗기는 것이라고 바울은 이야기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렇다면, 야고보가 결국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동일합니다. 야고보도 역시 어려움을 당하는 그들에게 동일하게 이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 이렇게 이야기하죠.
▲약1:21절 '그러므로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모두 버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여러분 속에 심어주신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새번역
'여러분 속에 심어주신 말씀을 받아들이라'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우리에게 심어준 말씀'이라는 표현이 좀 새롭지 않습니까?
'너희 속에 심어주신 말씀을 받아들이라'
그 심어주신 말씀이 뭡니까?
이미 심겨진 그 말씀을 바로잡아라고 하시는데, 그 심어주신 말씀이 뭐겠습니까?
야고보서 문맥을 본다면 1:18절 내용일 것입니다.
약1:18 '그는 뜻을 정하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주셨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 우리를 태어나게 한 진리의 말씀이,
오늘 본문에 말씀한 '심겨진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새로 영적으로 태어나게 한 말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메시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심어주신 말씀'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에,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면,
많은 부분에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내 입장에 유리한 대로 말을 하기 시작하고,
감정적으로 화를 내기도 더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상황이 해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미 네가 예수를 믿을 때 너를 거듭나게 했던,
예수 믿게 한 그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당시에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격언의 하나인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에는 더디하고
노하기를 더디하라'고 하는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1:19
듣기를... 무엇을 들으라는 말씀입니까? 하나의 말씀을! 그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너 자신을 위해서 말을 많이 하고, 아무리 뭔가 화를 내면서까지 싸운다고
그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인생의 어려움을 돌파하는 게 아니라, 속히 듣는 말씀, 어떤 말씀?
이미 내 마음이 심겨진 복음의 메시지를 빨리빨리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힘쓰라'고 한 것은,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 마음에 숨겨진 진리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순종적이고 거부감 없이 대단히 수용적이며
권면하는 말에 '네' 라고 말하는 마음과 같습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그것을 돌파하는 것은,
이미 내게 심겨진 그 복음의 말씀, 그 말씀의 중심이 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이 같은 것을 더 강조하는 말로, 연이어 말씀을 이어갑니다.
▲약1:22절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당연히 이 말씀은 복음의 메시지겠죠. '이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행하는 데까지 나아가라고 더 강조합니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속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복음의 메시지를 듣는데, 뭐가 속는다는 말입니까?
복음의 메시지를 듣는 순간에 감동이 있습니다.
죄인이고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이 거저주신 사랑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대책들을 말씀하시니까
복음의 메시지만 들어도 감동이 됩니다.
위로도 되고, 소망도 생기고, 용기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혜로운 설교 한 편만 들으면,
은혜로운 교회만 출석하면, 자기 인생이 바뀐다... 라고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다 해서, 그것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는 어떻습니까? 내 삶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시작은 될 수 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거울을 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약1:23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여러분 거울을 보면 어떻습니까? 보는 순간에는 실체입니다.
또 다른 내가 거기에 있는 것처럼, 진짜 실체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내 거울을 덮어버리면, 또는 그 거울을 지나가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냥 똑같은 것입니다. 그냥 거울 보기 전과 똑같이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거울을 볼 때는 실제같이 보이지만, 거울을 보지 않으면
그냥 본 것을 그쳐버리면, 다 잊어버리고 똑같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1:24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보고 떠나가서
그것이 어떠한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마치 그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실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다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토록 말씀을 '행하기' 시작할 때,
행할 때.. 비로소 실제가 되는 것이지,
'듣는' 것으로 그쳐버리면, 내 삶의 변화가 일어나느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10년 20년 교회를 다녀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그건 거울 보고 냐서, 본 것을 금방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거죠.
그러면 우리가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1:25 '그러나 완전한 율법 곧 자유를 주는 율법을 잘 살피고
끊임없이 그대로 사는 사람은, 율법을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가 행한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지금 하나님 말씀을 달리 '완전한 율법'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자유를 주는 율법'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율법을 이야기할 때,
율법은 그 자체로는 의롭고 선하고 영적이지만,
율법 그 자체가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까지 주지는 않기 때문에,
그 율법 자체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도 주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텍스트(말씀)지만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결국 깨닫는 것은
'나는 못 지키는구나.. 나는 죄인이구나.. 나는 죄의 노예의 상태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즉 정죄하는 것에 있다고 했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야고보는 바울의 말씀과 반대되는 의견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조금 전에 문맥을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새언약의 백성, 신약의 성도들은,
즉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말씀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이 주는 복을,
이 말씀이 원래 주고 싶은 그 생명력을,
신약의 우리 성도들은 경험할 수 있으므로,
완전하게 할 수 있는 '자유케 하는 말씀(율법)'으로 이렇게 달리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예레미야 31:33절에 보면, 구약시대에 신약을 내다보면서, *새언약
앞으로 장차 맺을 새로운 언약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내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렘31:33 '내가 나의 법을 그들 속에 두며'
오늘 본문에 우리 속에 우리 속에 말씀을 심었다는 것처럼,
어떤 날이 되면, 신약시대가 되면 새로운 어떤 언약이 이루어질 텐데,
'그때 내가 나의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야고보는, 바로 신약시대에 이 약속이 이루어진 이후,
예수께서 죽으시고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신 이후에,
'이제는 그 말씀이 내 속에 있고 내 마음에 새겨져 있으므로'
이제야말로 나를 온전케 하고, 이제야말로 나를 자유케 하는 바로
그 관점에서 야고보는 말씀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럼 여러분, 우리가 기억할 게 있습니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그 진리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음과, 본능과, 능력까지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은 완전한 것이 되었고,
우리를 완전히 하는 것이고, 자유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는 이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말씀을 지킬 때, 비로소 그 원래의 말씀이 포함하고 있었던 복을 우리가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속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
내가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하라 '의 의미 https://rfcdrfcd.tistory.com/15976649
내가 예수를 믿자마자, 내 아이디가, 내 존재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즉시로, 새로운 마음이 부어졌고, 새로운 생각이 시작되었고,
동기가 바뀌어버렸고, 말과 행동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우리 안에 그런 은혜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런 은혜가 임했지만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삶이, 그저 그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그것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
그런 능력이 임했으니까, 지킬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실제로 이제는 그 새로운 본능답게, 새롭게 만들어진 아이디답게,
새로운 그 포지션에 맞게끔, 새로운 신분에 맞게끔,
실제로 예전에는 못했지만, 이제는 실제로 하나님이 그렇게 바꾸어 주셨으니까,
지킬 수 있는 능력까지 성령께서 역사하시니까... 실제로 행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켜 행할 때 비로소 그것을 경험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음에 불구하고,
듣기만 하고...
지킬 수 있음에 불구하고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요?
그대로인 겁니다. 안 믿을 때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 20년을 교회 다니면서 똑같은 것입니다.
'무엇이 예수 믿어서 좋지? 예수 믿어서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좋단 말이지?'
이런 의문이 들고, 예수 믿어서 정말 좋음을
전혀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요? 말씀을 지킬 때, (새언약을 통해, 성령의 역사로) 말씀을 지키게 만들었으니까,
지킬 때 비로소 내 손에 잡히는 것인데,
그걸 지키지 않으니까... 그저 성경만 많이 읽으면...
그저 은혜로운 설교만 들으면 자기 인생이 저절로 바뀐다고 생각(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말씀을 지킬 때.. 비로소 네가 지키기 시작할 때.. 지키는 것에 헌신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네 것이 되는 거다. 비로소 네 손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기도 하지만, 진짜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이 말씀을 무슨 의미인지 알기 위해서, 그러면 연구하게 되어 있는데,
자세히 살피고 연구하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혹은 성경을 연구하는 데까지 갈 수 있지만, 그 말씀대로 사는 데는 소극적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로 그냥 얼버무리면서
여전히 음란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다 싶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말을 하고, 화를 내면서 쉽게 그를 판단하는 쪽에 섣불리 섭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을 좇아가는 사람으로만
그냥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 안 빠지고 나오고, 주중에 성경 읽고 기도하면
이것으로 충분히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다고 그냥 혼자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냥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포텐셜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어도
아무런 변화를 자기가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이다.' :
'행할 때 비로소 복을 받는 것이다.
행할 수 있으니까 행할 때 비로소 그때부터 말씀이 네 것이 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1:25
그러므로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사는 것 자체가 힘들게 느껴지는 세상,
아니 특별히 남들보다 더한 어떤 어려움을 만났을 때, 어떻게 그걸 돌파해야 됩니까?
단지 그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라는 기도에 우리가 머물러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해결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도 해결 안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어려움이 몇 년을 계속 갈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그 상황을 견딘다는 말씀입니까? 어떻게 그걸 돌파해야 되는 말씀입니까?
오직 한 가지, 제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제대로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이라고 성경이 말하는지를 알고, 그 말씀 그대로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게 도대체 뭡니까?
예수를 믿은 이후에, 도대체 성경이 무엇을 우리에게 요구합니까?
그대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대로 순종해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믿은 이후에 성경이 요구하는 대로, 내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뭡니까? 오늘 야고보서에서 말씀한 것이 뭡니까?
이미 받아들인, 그 네 속에 숨겨진 말씀, 복음을..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킬 수 있게 했으니, 부지런히 그걸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대로 살아가려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걸 경험할 거다.
하나님의 놀라운 나를 향한 계획이 뭔지를 발견할 것이다. 그걸 누리게 될 것이다.
복을 받을 것이다...'
'이래서 예수를 믿는구나... 야,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놀랍구나'
감동할 만한 일들을, 드디어 본인이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습니까?
복음에 집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적당히 착하게 살고, 교회 왔다 갔다 하고
성경 읽고, 기도 좀 드리고,
그리고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에서 뭔가를 얻기 위해서 살아가는,
그런 마인드로 그냥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어떤 신앙적인 활동을 하면 하나님 복주겠거니' 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께 올인해야 됩니다.
그분이 주신 말씀에 생명을 걸어야 됩니다. 진지해야 되는 겁니다.
정말 그 말씀에 내 인생의 가치를 맞추고, 생각을 맞추고, 삶의 습관을 맞추고,
진짜 말씀이 요구하는 대로, 내 인생을 확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그 상황을 극복해내고,
어려워도 극복하고, 좋아도 거기에 인조이하지 않고, 안 좋아하지도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거기에 내 인생을 걸고, 내 생명을 걸고,
내 운명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달라집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새로운 변화를 원하십니까?
수없이 모태신앙을 살아왔지만, 진짜 예수 믿는 맛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들었던, 여러분 마음속에 이미 심겨졌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
묵상하고 알아가는 일을 갈망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한번 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라고 말하는지,
어떻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지에 대해서, 더 배워가고 한번 행해보십시오.
그러면 진짜 복을 받습니다. 진짜 하나님이라는 걸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신비로운 체험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여러분 삶에 하나님 말씀하는 걸 경험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 삶을 이끌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풍성한 삶을 다 누려야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렇게 누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