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글 : 내가 엘리야다 *불씨만 있어도 불길은 다시 일어난다
◈한 사람을 찾습니다 렘5:1~6 출처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오늘 본문 렘5:1~6을 읽다 보면, 역사의 변혁, 그리고 역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한 사람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본문이 시작되는 렘5:1절의 말씀을 함께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달리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아멘!
지금 하나님은, 예루살렘 거리에서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역사는 단순하게 많은 무리들의 상태로, 역사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역사는 한 사람으로 결정됩니다.
롬5:12~21절을 읽어 보면,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꾼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자 우선 롬5:12절을 함께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 한 사람이 누구죠? 아담이죠.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고,
인류가 사망에 종속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맥락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또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롬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멘.
처음 한 사람은 아담이었습니다.
그가 순종치 아니하므로 우리 모두가 죄인의 운명, 죄인의 실존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19절의 하반부는, ‘또 다른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한 사람은 누구죠? 예수님이십니다.
구약의 역사 속에서 보면, 이런 장차오실 한 사람, 그리스도를 닮은 역사의 의인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선 창18장에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는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소돔이 멸망을 하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의인 10명만 찾아도 내가 이 도성을 멸망하지 않겠다라는 약속의 말씀을 받고
이 소돔성이 멸망하기까지, 아브라함은 소돔의 빛이요, 소돔의 희망이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의 후반부 37장에 가면, 이 창세기의 마지막 드라마에서
요셉이라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은 창세기의 마지막 무대를, 이 한 사람 요셉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또한 이집트라는 거대한 제국이, 흉년의 위기에서 구출될 수가 있었습니다.
-한 명의 여인 에스더를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에스더>를 읽어보시면,
이 여인의 놀라운 고백, 뭐죠?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이 고백, 이 결단으로
페르시아 제국 내에 있던 유대인들이 몰살당한 위기에서 *에4:16
유대 민족이 구출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 에스더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또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의 위협으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한 사람, 누구죠?
다윗의 믿음, 다윗의 순종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 질서는 매우 혼잡합니다. 그리고 혼란스럽습니다.
미래의 전망을 하기가 무척 어려운 갈림길에서, 우리는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를 위해, 그리고 이 시대를 위해, 이 세상을 위해서,
저는 ‘하나님이 다시 한 사람을 찾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
(*요즘 21세기 세상의 특징은 multi-centric world, ‘다극화 세상’이라고 합니다.
과거처럼 ‘일극 체제’가 아니라는 거죠. mono-centric world
이런 면도 있는 거고, 저런 면도 있는 거죠! 둘 다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예레미야가 살던 세상 그때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로 돌아가서, 본문에서 중요한 주인공 몇 그룹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중요한 존재들 누구일까요?
우리가 본문에서 먼저 만나야 할 존재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용서를 위해 한 사람을 찾고 계시던 하나님, 그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겠죠?
역사의 마지막 결정자, 역사의 마지막 심판자.. 그는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심판이 불가피한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분은 언제나 인류에게 자비와 용서의 기회를 제공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은, 그 용서와 자비의 통로가 될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 문제 제기
오늘 본문은 ‘그가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정의를 행하는 사람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달리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정의를 행하며'
여기 정의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미슈파트’입니다.
이 단어는 본래 약자의 편에서 약자를 보호하는 ‘재판, 법률적 정의’를 뜻하는 말입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은 항상 고아라든지 나그네라든지 혹은 과부,
이런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약자를 위한 ‘법질서(미슈파트)’를 통해 약한 자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바로 성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한 신학자는 ‘약자를 보호하시는, 편애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런 말을 하기까지 했죠.
◑2.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시다고 말합니다.
'진리를 구하는 자' 5:1
여기 ‘진리’라는 단어는 원어의 히브리어로 에무나입니다.
에무나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품’을 뜻합니다.
즉 ‘진실’이죠. 우리 성경에는 ‘진리’로 번역되었는데, 영어로는 truth입니다.
자 참되고 정직한 하나님은 또한 이 땅에서 당신의 성품을 따라,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를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진리/비진리' ..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 1절은 한글로 '진리' 대신에, '진실'로 번역하면 더 이해가 정확합니다.
이어지는 2절과 연결해서 볼 때도, 이 해석이 맞습니다.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2
사실 오늘 본문에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예레미야가, 바로 그런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정의의 사람, 미시파트의 사람,
즉 박해받고 눌려있는 사람을 위해서 눈물이 마르지 않던 사람,
또한 너무 정직해서 현실에 대해서 거짓을 말하지 못했던 에무나(진리)의 사람, 주1)
그게 바로 예레미야였습니다.
▲미국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 하고 조사를 하면
언제나 변함없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에요.
아시는 대로 링컨은 그가 살던 그 당시에 노예 제도,
아프리카에서 많은 노예들을 실어다가 상업적 이익을 남기면서 노예로 부리고 있었단 말이죠.
‘이 노예 제도는 도덕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아주 일찍부터 링컨은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링컨에서 말할 때, 링컨이 평생 가지고 있었던 자랑스러운 별명이 하나 있습니다.
링컨의 별명이 뭐냐면 사람들이 링컨을 이렇게 불렀어요. ‘Honest Abe, 정직한 에이브’
에이브는, 에어브러험을 줄여서 부르는 애칭이죠.
‘정직한 에이브’ 이게 링컨의 별명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가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할 때, 계산을 잘못해서 몇 센트를 손님에게
더 받은 사실을 알고, 밤길을 걸어 손님의 집까지 찾아가서,
더 받은 돈을 되돌려 주었다는 유명한 일화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링컨의 정의는 타협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았고,
그는 정직함의 인생의 질서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자신에게 불리할 때에도 더욱 정직한 모습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본문 렘5:1절의 ‘진리 truth 를 구하는’
이 말을 원어 ‘에무나’로 해석하면 ‘진실하게 사는’ 사람의 예로, 링컨을 들 수 있습니다)
정직은 위기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평소 그냥 평범한 현지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평범한 때의 선택이, 위기의 때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링컨은 평소에도 정직했고, 위기의 때에 더욱 정직(진실)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링컨을 사용하셔서 ‘노예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실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도덕적 위기’로 치닫고 있었던 당시 미국 사회를 구한 것입니다.
만약 이게 계속 지속되었다면, 나라 전체가 하나님의 큰 징계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한 사람을 찾습니다. 정의로운 사람(미슈파트),
정직한 사람(에무나)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 사람을 찾으면 예루살렘도 용서하시고, 서울도 용서하시고, 평양도 용서하시고,
워싱턴도 용서하시겠다고... 이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전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거리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런 한 사람이 있나?’
하나님은 빨리 찾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
렘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그 시대를 고치고 그 시대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미슈파트의 사람 정의의 사람, 에무나의 사람 진실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자 오늘 본문을 읽어보시면,
본문에서 하나님이 주목하고 계시는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입술의 고백만 있고, 회개가 없는 종교인들.. 그들을 하나님이 지금 주목하신다는 겁니다.
렘5: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던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우리는 중요한 일에, 진실을 전달하고자 할 때 맹세를 하죠.
맹세할 때 보통 ‘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합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은 ‘하늘을 두고 내가 맹세한다’ 보통 그렇게 말을 합니다.
모두가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는 그런 고백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맹세 뒤에 숨어 있는, 그 거짓된 얼굴을 주목하신다는 것입니다.
마7:21절에 보시면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소위 종교적 사람들에게 경고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렇습니다. 행함이 없는.. 입술만의 종교적 고백..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예레미야 당시에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고, 종교적 고백을 열심히 하면서도
그들은 회개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입니다.
렘5: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그렇습니다. 외형적인 종교적 고백을 하며 열심히 종교의식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주님 앞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회개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신 한 사람의 의인, 디트리히 본회퍼
여러분 우리가 역사를 들여다보면, 히틀러의 나치 독일 시대에
독일의 교인들이 바로 그런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독일 고백교회의 목사이며 신학자였던 본 회퍼는,
그 당시 독일 교인들의 상태를 진단하면서,
「그들이 은혜를 사모하는데, 그들이 사모하는 은혜는 값싼 은혜다. 진짜 은혜가 아니다.
그들은 값싼 은혜, cheap grace 만을 구하고 있다」 이런 유명한 지적을 했습니다.
1930년대 독일 교회의 다수는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 나치 정권과 타협하고
교회 생활을 겨우 유지하면서, 성찬에 참여하고 주일예배를 드렸지만,
유대인 학대와 히틀러 정권의 폭력에 대해서는 전혀 침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본 회퍼 목사는 책을 한 권 씁니다. 유명한 책이에요.
<나를 따르라>라는 책입니다.
원래 원제는 The Cost of Discipleship, ‘제자도의 대가’라는 책입니다.
바로 이 책에서 그는 ‘값싼 은혜’가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있어요.
회개 없는 죄 용서, 순종 없는 수세 Baptism,
순종 없는 성찬, 십자가 없는 은혜,
예수 없는 신앙을 그는 비판하고 고발합니다.
‘우리가 참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대가를 지를 줄 알아야 한다’ 라는 것이
본 회퍼가 외치고 있던 중요한 메시지였습니다.
본 회퍼는 심지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모하는 은혜,
그 은혜는 죄를 해결하는 약이 아니라, 죄를 정당화시키는 마취제와 같다’
바로 그런 마취죄 같은 은혜만을 사모한다... 진짜 은혜를 사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 공짜로, 값없이 선물로 주어지지만,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제자도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 그것은 십자가를 지고,
그의 고난, 그의 죽음에 참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본회퍼 자신이, 이 히틀러의 악한 정권을 끊어내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순교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그 길로 인도하셨지요.
입술만의 고백, 회개를 잃어버린 그 당시 교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자신의 생명을 드린 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3. 또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은 누굴까요?
세 번째는 허물과 반역에 빠져있던 보통 사람들,
허물과 반역에 빠져있던 예루살렘 사람들을 하나님이 주목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렘5: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미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그들은 비천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이었습니다.
여호와의 길과,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5절에 보면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그들 일반 백성들도,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멍에를 꺾어버리고, 결박을 끊은 채로 방황하던 그런 무리들이었습니다.
렘5: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허물과 반역’ 두 단어가 중요해요.
허물과 반역에 빠진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다수는,
바로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의 반역의 길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히틀러가 독일을 통치하던 그 시대를 돌이켜보면 놀라운 사실은,
독일 국민의 대다수가 이 미친 사람이었던 광인 히틀러의 통치를 수용하고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 회퍼 목사를 위시한 소수의 고백교회에 속한 저항하는 소수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독일 국민, 대부분의 독일 크리스찬들의 다수는.. 나치에 순응하였습니다.
(나치가 동성애 배격, 국민차 폭스바겐 보급 등 여러 개혁 정책을 폈으니까요)
그러면서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유대인들의 강제 수용소 같은 존재를
과장이거나, 정치적 필요로 보고,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독일이 패전한 후에, 독일인들 대다수는
‘히틀러가 그 정도로 잔인하게 유대인들을 박해한 줄은 우리도 몰랐다’
이렇게 독일 국민들이 회고했단 말이죠.
독일 루터교 국민들이 당시 세상을 보는 눈, 시대를 읽는 눈이 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예레미야 시대의 예루살렘의 시민들, 보통 사람들도
바로 그런 상태였던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깨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한 사람 예레미야를 찾고 계셨습니다.
1930년대부터 40년대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찾고 찾다가
드디어 찾은 사람, 그가 바로 본 회퍼 목사였습니다.
그는 히틀러 정권의 방황이 거대한 불의를 향해서 치닫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불의에 예속되지 않은 순전한 사람들과 연대하고자 했습니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 직후에, 히틀러의 연설을 들으면서
본회퍼는 히틀러가 지나치게 자신을 우상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지도자가 우상이 된다면, 그는 파괴자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경고를
벌써 그때부터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1934년 나치에 장악당한 독일 교회를 그는 떠나서,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소수의 고백교회를 형성합니다. Confessing Church
즉 진정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신학교에서 고백교회의 지도자를 양성했습니다.
즉 히틀러 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신학교를 운영하면서 지도자를 양성했었고요.
<나를 따르라>는 문제의 책을 쓰면서, 그 당시에 히틀러 정권을 고발했던 것입니다.
그는 1939년에 미국으로 갑니다. 미국 유니온 신학교를 위시해서
여러 곳에서 그를 붙잡았어요.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의 정착을 거부하고
독일 민중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 독일로 돌아오는 길을 택합니다.
그는 귀국해서 1940년부터 43년까지 유대인들을 돕기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의 해외 탈출을 도와요. 그리고 반히틀러 정권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합니다.
1943년 독일 정권에 의해서 그는 체포를 당합니다.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는 감옥에서 <옥중서신>을 집필합니다.
1945년 히틀러의 암살 사건 연루 혐의로, 그는 사형 언도를 받습니다.
1945년 4월 5일은 주일이었습니다. 본 회퍼 목사는 쉔베르크 수용소에서 갇혀 있었는데
같이 갇혀있던 동료 수용자들의 부탁을 받습니다. 예배를 인도해달라고.
그가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인도한 주일 예배였습니다.
성경을 두 구절 읽었어요. 이사야 53:5절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1:3절,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살아있는 소망을 주셨다’ 그 두 구절을 읽고
함께 그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4월 9일 새벽, 그는 처형장으로 나오라는 호출을 받고,
떠나기 직전에 같은 방에 있던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저의 끝입니다. 아닙니다.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나갑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에 입회했던 의사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마지막 순간 침착하게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잠시 동안 기도를 한 후에,
마지막 순간을 담대하고 담백하게 맞이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끝일까요?
이렇게 본 회퍼가 떠난 두 주간이 지나서, 꼭 두 주일 후에,
1945년 4월 23일 미군이 바로 그 수용소를 접수합니다. 해방시켰어요.
4월 30일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5월 7일 독일은 공식적으로 연합군에 항복을 합니다.
그리고 독일에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독일에서 시작된 새로운 역사! 이것은 한 사람의 의인의 희생과 무관할까요?
지금도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위해 한 사람을 찾습니다.
본 회퍼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시, 그 시를 찬양으로 만들어서 우리가 부르지 않습니까?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제목 :선한 능력으로
그렇습니다. 이 한 사람이 있으면, 새날이 올 것입니다. 새 역사가 빚어질 것입니다.
진정한 새해를 맞이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예레미야가 살던 그 시대 못지않게, 본 회퍼가 살았던 그 시대에 못지않게
지금 시대도 어둡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전히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주님, 기도하옵기는 참 부족하고 참 연약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찾는 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 가정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
우리 역사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부모의 신앙 안에서 자랐던 아이젠하워
히틀러와 같은 해에 태어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에 교사로 평생을 봉사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이 가정의 모토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겁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지, 이 아이의 이름을 목사가 되라고
부흥사 ‘드와이트 무디’의 이름을 따서
이 아이 이름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너는 나중에 무디 같은 목사님이 되어라’ 이렇게 이 아들을 길렀습니다.
이 아들은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저는 이 아이젠하워의 생애를 책으로 읽어보았습니다.
읽어보니까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지요,
성경을 그렇게 성실하게 읽고
사관학교 다니면서도 성경을 그렇게 외우고,
군에 소위로 있으면서도 탱크 속에서 주일학교 애들을 데려다가 가르쳤어요.
그러다가 2차 대전이 일어나서 연합군 사령관으로 참전합니다.
전 연합군을 이끌고 인류 역사에 제일 큰 세계 제2차 대전의
이 어마어마한 전쟁을 끝낸 장군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입니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에 두고
전 세계의 인류역사가 이제 이 한 사람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 때 아이젠하워 사령관은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고
모든 지휘관들, 장군들 수백 명을 모아 놓고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기도한 내용이 책에 나옵니다.
‘이제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모든 두뇌와 훈련 받은 것을 동원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다 준비했지만, 이기고 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기게 하면, 이기는 것이고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면 승리하는 겁니다.
이 세계의 평화가 오늘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여호와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God, Help Me!’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이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이 영화가 며칠 전에 나왔습니다.
이 멋진 것을 여러분이 보십시오) 이 세계적인 2차 대전을 끝냅니다.
전 세계 인류의 평화를 가져다 준 아이젠하워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하나님과 관계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물만 건너는 것이 아니라 전쟁도 건널 수 있는 것이고
사업도 건널 수 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 위대한 정치가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아이젠하워는 그 다음에 미국에 대학교 총장도 하다가
6.25사변이 끝나면서 미국에 대통령을 두 번이나 합니다.
그는 그 시대의 '한 사람'이었던 거죠.
♣대가를 치렀더니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있는 몇몇 선교사들은 섬을 떠나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갈지 그곳에 계속 머물러야 할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달런 데이블러 로즈(Darlene Deibler Rose) 선교사이라는 분이 당시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선교사들이 기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선임 선교사인 재프리 박사가
“나는 여러분이 이 문제에 대해 남편과 아내 간에도 토론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저 무릎을 꿇고‘주여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제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아니면 그냥 머물러 있어야 할까요?’라고 물으십시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하나님만이 정확하게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이곳에서 떠나라’ 하시면
여러분이 겁쟁이거나 도망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머무르라는 응답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주여, 당신이 저를 여기 있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은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금요일에 트럭이 선교사들을 데리러 왔을 때
떠나야 한다고 느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재프리 박사는“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반대하는 경우로
혼란스럽게 역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그 분의 인도하심이라 확신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안전하고 현명한 선택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섬에 계속 머무는 것은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을 네델란드로 데려가기 위하여 왔던 배는
항해 3일 후 생존자 없이 난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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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예레미야는 ‘진리는 구하는’ 사람이었죠. 렘5:1
진리는 ‘에무나’ 라고 했습니다.
걔신교인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롬1: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구절은 합2:4절의 인용입니다.
합2:4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위 구절에서 ‘믿음’은, 히브리어로 ‘에무나’입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다 알고 암송하는 롬1:17절의 믿음은,
그 출처로 하면, 히브리어로 믿음(에무나)인데,
그건 렘5:1절의 번역으로는 ‘진실(에무나)’입니다.
예레미야가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을 닮아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롬1:17절의 ‘믿음’을, ‘지식적 믿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