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F03GWZEuBnY
◈요단, 막힌 강이 열린 문이 되다 수3:6~17 2026-03-01 출처
우린 살다 보면 다양한 요단강을 만납니다. 요단강이란 무엇을 상징할까요?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불가능한 어떤 것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말하는 불가능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불가능이라기보다는, 내 생각이 규정한 불가능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과거에 신문 가운데 이와 같은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1840년대 기사입니다.
“시속 30마일(시속 48킬로)의 속도로 인간이 여행하게 되면
분명 누군가 질식하고 말 것이다”
여러분은 오늘 교회 오실 때, 시속 몇 킬로로 달려오셨어요?
1891년 신문기사입니다.
“인간의 비행을 가능하게 하는 실제적인 기계의 조립은 불가능하다”
1926년의 기사입니다.
“인간이 달에 가겠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1943년 기사입니다. “전 세계 컴퓨터는 5대면 충분하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와 같은 생각을 거부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도전 때문에, 지금 우리는 이와 같은 기사를, 웃으면서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속 48KM가 아니라, 지금은 300KM 이상을 달리는 열차를 타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었죠.
1901년도에 ‘인간에게 비행은 불가능하다’고 말을 했지만
2년이 지나서 1903년도에 라이트 형제에 의해서, 인간은 첫 번째 비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달에 가겠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1969년 닐 암스트롱은 달에 자기 발자국을 찍었습니다.
‘전 세계에 컴퓨터가 다섯 대면 충분하다’고 말을 했지만,
지금 한국의 거의 모든 집에 컴퓨터가 한 대씩은 다 있습니다.
성능으로 따져보자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핸드폰이
1969년에 달로 날아갔던 우주선에 쓰였던 컴퓨터보다, 200만 배 속도가 빠릅니다.
우주선 아폴로 호에 탑재된 컴퓨터 메모리가 4킬로바이트입니다.
지금 웬만한 사람의 핸드폰의 RAM은 8기가입니다. 속도가 200만 배 이상입니다.
여러분 손안에 든 핸드폰, 스마트하게 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불가능은, 종종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붙이는 이름일 수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불가능을 만드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가능하다고 여기면, 방법을 찾겠지만
불가능하다고 여기면, 불가능한 조건들을 찾게 되는 것이죠.
▲육상 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는 사람이 1마일을 4분 이내에 뛸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의학계에서 '사람은 의학적으로 1마일(1.6KM)를 4분 이내에 뛸 수는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런데 1954년 로저 베니스터는 그 생각을 거부합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뛵니다.
그래서 1954년도에 그 기록을 돌파하게 되었고,
1956년 불과 2년 사이에, 213명이 동일한 기록을 달성했어요. 왜요?
‘베니스터가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들을 뛰게 만든 것입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가능하다’고 하는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도,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 인생 가운데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까요? 그 하나님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 인생 가운데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어요.
수3:4b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 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너희가 이전에 한 번도 이 길(요단 도하)을 지나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길로 내가 너희를 인도하겠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3:5b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지금은 너희 앞에 요단강이 넘실거리고 있지만,
내일이 되면 너희 가운데 기이한 일이 펼쳐질 것이다’
하나님은 ‘내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니, 오늘 기대감을 가지고 잠들고
내일 아침 믿음으로 눈을 떠라’고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날이 밝았어요. 그날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넘칠거렸던 요단강이 잘려나가고, 그곳 가운데 마른 땅이 드러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전에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로, 가나안 땅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라는 것보다,
‘이와 같은 기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목적 없이 이적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이 이적을 행하신 목적은, 우리에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과 10절에 ‘알게 하리라’ 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쓰여지고 있어요.
◑오늘 우리는 본문의 요단강 도하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기를 원하시는가?
그 두 가지 대지를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 번째는,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셨듯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요단강 도하사건을 통해서, 이 사실을 오늘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리더가 되었어요.
위대한 리더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백성들 가운데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셨는데, 과연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실까?’
‘여호수아는 과연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까?’ 라는 그들 안에 궁금증과 불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그와 같은 질문을 이해하시고,
그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하여, 설명하지 않으시고
‘요단강’이라는 문제 앞으로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우리 7절 말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3: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
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그들이 알게 하리라’
이게 언제부터냐면,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인간으로는 절대로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요단강을 갈라지게 함으로써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음을
너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앞에 요단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요단강은,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음을,
세상 앞에 증명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기는 하나님을 보여줄 기회가 되는 것이죠.
우리에게 불가능한 요단강은,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여줄 무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을 수 있기를 축복해요.
그런데 ‘누가 알게 하시겠다’라고 말씀하셨냐면, 7b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여호수아가 아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 여호수아는.. 모세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와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을,
요단강 (삶의 장벽) 앞에서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시다시피 성경에서 ‘알다’라는 단어는, 정보를 들어서 지적으로 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의 인생을 통하여 ‘경험적으로 안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안다라는 단어로 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그들을 교실로 부르지 않으셨어요.
교실에서 ppt 하시면서, 그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어떻게 설명하시냐면, 그들의 인생의 경험과 지혜로는 절대 건널 수 없는 요단강 앞에
그 백성들을 세우심으로써, 그 요단강을 마른 땅을 밟고 건너게 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지식이 아닌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려주시되 정보로 알려주지 않으시고요.
경험으로 알려주신다는 거예요.
△아기 낙타가 어미 낙타에게 묻습니다. ‘엄마, 우리 등에는 왜 큰 혹이 있는 거죠?’
'그것은 사막을 지날 때,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니까, 물을 저장하는 창고야'
'근데 엄마, 우리는 왜 눈썹이 이렇게 길죠?'
'그건 사막에 모래 바람이 많이 부는데, 그 모래가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란다'
'근데 엄마, 우리 발바닥은 왜 이렇게 널찍하죠?'
'사막을 건너갈 때 모래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우리 발이 커진 거야'
그때 아기 낙타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엄마, 우리는 지금 동물원에서 뭐하고 있는 거죠?'
동물원 안에 있는 엄마 낙타의 가르침이, 아기 낙타에게 이해가 될까요?
사막을 건너올 수 있는 큰 물통(혹)이 있지만, 사막을 건너지 않는다면..
모랫바람을 막을 수 있는 눈썹이 있지만, 그 모랫바람을 맞이하지 않는다면..
사막을 건너갈 수 있는 큰 발이 있지만, 그 모래를 밟지 않는다면..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막이라는 환경 속에 가야, 자신에게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사막은 낙타에게, 고난의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임을 증명하는 장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기 위하여, 때로는 요단강을 허락하신다는 거예요.
그 경험이 중요하단 말입니다.
▲우리나라에 선일금고 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창립자는 김용호 회장님이신데
이분은 6.25때 13세였어요. 초등학교 밖에 못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 그분의 놀이터는 고물상이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고물 금고들이 있었는데,
어린 날에 심심하니까, 그거 다이얼을 맞추며 여는 놀이를 하면서 성장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선일금고 회사를 세우셨고,
그분은 가는 모든 나라마다 금고를 여는 취미가 있었어요. 놀라운 재능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회장님, 아니 어떻게 그 단단한 금고를 그렇게 쉽게 열 수가 있습니까?
비법을 알려주세요.' 그때마다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요렇게 저렇게 이렇게 그러면 열립니다'
그런데 따라하는 사람들이 '요렇게 이렇게 저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회장님은 답답해하셨죠. '요렇게 저렇게 이렇게 하면 열린다고!'
그분은 손끝으로 느끼는 거예요. 온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청력으로 느끼는 거예요.
그분의 앎을, 다른 누군가가 단순한 지식과 정보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진짜 알려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위기를 만나거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삶으십시오.
우리에게 위기가 있어요.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그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우리는 '기도'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하지만 문제를 역전시키시는 기도의 능력에 대해서는, 체험하지 못한 분도 계십니다.
우리는 '광야 가운데 길을 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가 있어요.
하지만 내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막힌 담 앞에 주저앉아 계신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모든 위기는 하나님을 보여줄,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와 같은 약속의 말씀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 본문에 요단강이 갈라진 것을 진짜 믿는다면,
우리 인생의 요단강 역시 갈라질 것을 믿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있습니까?
'요단강이 갈라지듯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알려주기를 원하세요.
수3:10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두 번째 '알리라'가 등장했습니다. '이것으로 너희가 알리라'
즉, 요단강 도하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기를 원하는 두 번째 사실은 무엇이냐면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가게 되면, 지금 앞에 넘실거리는 요단강처럼
수많은 적들이 너희에게 몰려오게 될 것인데,
내가 요단강을 끊어서 너희 가운데 길을 냈듯이,
너희에게 다가오는 모든 적들을 내가 흩을 것이다. 너에게 승리를 줄 것이다’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지금 이와 같은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요단강 도하 사건은, 미래 승리에 대한 보증이에요.
장차 있을 승리에 대한 샘플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내 인생을 인도하실 것이다’ 라고 하는 모델로서, 샘플로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건이 된 것이죠.
우리가 맞이하는 영적 전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수많은 적들이 있어요.
적들이 나에게 기습할 수 있습니다. 전투가 어디서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요단강을 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다가오는 모든 적들을 물리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믿음이 있지만, 하나님은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십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실제적으로 어떻게 하면
그 요단강이 갈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두 가지를 말씀하세요.
이 두 가지를 지켜야, 우리 앞에 요단강이 갈라지며
내 모든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1. 첫 번째는 무엇이냐면, 언약궤를 메고 문제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메고 문제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3: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요단강을 건너는 방법으로 첫 번째 요구하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 강물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요단강이 넘칠 듯 범람하고 있습니다.
물이 강둑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결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거운 언약궤를 매고 들어가라고 합니다.
강바닥이 안 보여요. 바닥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바위라도 보이면, 그 위에 딛고 올라갈 것 같은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튜브나 구명조끼도 라도 주시면서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갈 것 같은데
게다가 무거운 언약궤를 메고 강물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니까
그 언약궤의 무게 때문에, 오히려 더 빨리 가라앉을 것만 같은 것입니다.
이 순간은 엄청난 믿음을 요구합니다.
40년 전에 그들의 부모 세대는 홍해를 건넜어요.
어쩌면 홍해를 건널 때보다, 더 큰 믿음을 요구합니다.
홍해를 건널 때는, 하나님께서 이미 홍해를 갈라놓아 주셨어요.
성경을 보면 ‘밤새도록 동풍이 불게 하여서’
마치 거대한 선풍기를 튼 것처럼, 동풍이 불어서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이미 갈라진 바다를 건넜어요.
그때도 물론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언제 바다가 다시 덮칠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사건은, 그때보다 더 큰 믿음을 요구하고 있어요.
요단강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강물이 갈라지기도 전에, 발을 먼저 담그고 전진해야 돼요.
여러분 같으면 담글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담그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말씀하고 계세요?
3:13b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솔직히 저는, 위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아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다는 거지?’
하나님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요단강이 넘실거리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무거운 언약궤를 메고 들어가랍니다.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제사장의 발바닥이 땅에 닿는 그 순간에,
물이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이 ‘끊어진다’는 말은.. '칼로 무엇인가를 베다'라는 단어예요.
그러니까 마치 무언가를 칼로 잘라버리듯이,
물 자체가 잘려나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이해가 되세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은 들어봤는데,
‘아니 물을 칼로 자른다?’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갑자기 물이 잘려나가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니 걸어가면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근데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으세요. 대신에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해시키는 방법은,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경험해서 이해되게끔 만드세요.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순종이 먼저입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이 있어요.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서, 저 천성을 향하여 가는 과정을 그린 책입니다.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서, 앞에 저 천성이 보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강을 하나 건너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 강을 건너가야 되는데, 깊이가 보이지 않아요.
발이 닿지 않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크게 속에서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건너가야 돼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발을 내딛습니다.
발을 내딛는 그 순간에, 그가 살아오면서 지었던 온갖 죄가 떠올려지기 시작했어요.
그 가운데 두려움에 휩쌓입니다. 그리고 강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해요.
그리고 외칩니다. ‘나는 가라앉고 있습니다. 강물에 가라앉고 있습니다.’
그때 곁에 있던 동행자 ‘소망’이, 다음처럼 말을 합니다.
‘형제여, 나는 바닥을 딛고 있습니다. 강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고 ‘크리스천’이 힘을 내어서, 무릎을 폈더니.. 걷게 되는 것이죠.
그때 그는 깨달았어요.
강이 얕아진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크시다는 것을!
강이 얕아진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분이 강보다 크시기 때문에,
그분을 붙잡으면 그 강을 건너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단 강은 깊이가 깊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문제 역시 깊습니다.
질병의 문제, 경제의 문제, 관계의 아픔들은... 결코 얕지 않아요.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가 당하는 문제를 과소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거 다 아세요.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냐면, 우리 아픔의 깊이를 이해하시지만,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꼭 붙잡으면, 그분께 매달려 있으면,
그분과 함께 그 모든 고통의 강을 건너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인생가운데 어떠한 요단강과 문제를 만나든지 간에
하나님 손을 붙잡고, 그 안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등돌리지 말고요!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영적인 전쟁 가운데 승리의 공식을 알려주고 있어요.
제가 한번 네 가지로 정리해 봤습니다.
1) 첫 번째,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 수준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러분,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암기하십시오. 그냥 공식입니다.
2) 두 번째, 하나님은 이해보다 순종을 요구하신다.
순종하면 이해하게 될 겁니다.
3) 세 번째, 우리는 넘실거리는 문제 속으로 언약궤를 메고 들어가야만 합니다.
길이 안 보이지만, 그분과 함께 문제 속으로 들어가면,
그분이 길이 되시기 때문에(요14:6),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4) 네 번째, 우리는 그때 길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이게 성경에서 벌어지는 모든 영적 전쟁 가운데, 두드러지게 보여지는 공식이 됩니다.
그냥 암기하십시오. 2 곱하기 2는 4! 구구단이 그냥 나오듯이,
따지지 말고, 암기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벌어지는 모든 영적 전쟁 가운데,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다’
그 믿음을 가지고, 물속으로, 문제속으로 그냥 들어가는 거예요.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정말 놀랍고 기이한 일이 벌어졌어요.
3: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언약궤를 맨 제사장의 발이 강바닥에 닿자마자
그 지역이 아담 성읍쯤 되는데, 아담 성읍에서 갑자기 물이 끊어져 쌓여버렸습니다.
갑자기 물이 확 잘려나가더니만, 아담 성읍 아래로는 물이 흘러가지 않는 거예요.
아담 성읍에서 강력한 물벽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염해로 들어가는 모든 물이 끊기게 되죠. :16
그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물벽이 만들어져서, 물이 쌓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기이한 일을 행하셨고, 또한 그들이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요단강 속에 있는, 젖은 땅이 아니라, 마른 땅을 밟고 가게 하셨어요.
여러분 상상해보십시오. 바다가 아니라 강입니다.
강은 상류에서 하류로 물이 흘러가는 거예요. 지금 강물이 범람하는 시기입니다.
상류의 물이 빠르게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아담 성읍부터 물을 잘라내셨어요.
그러니까 그 물벽 위로 계속해서 상류에서 흘러오는 물이 쌓여가고 있는 거예요.
눈에 안보이는 ‘댐’을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물벽의 높이가 계속 위로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놀랍고 기이한 일을, 정말 이 사건을 통해 보여주셨어요.
핵심은 이것입니다. 이 사건 자체보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붙잡고 문제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그 문제 속에서 놀라운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 강을 건널 수 있냐면,
끝까지 언약궤를 붙들고 서 있는 거예요.
믿음으로 그 안으로 들어가셨습니까? 끝까지 버티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말씀하셨어요.
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모든 사람이 다 건너갈 때까지, 제사장들은 그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의 한 복판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죠?
믿음으로 발걸음을 떼었다면, 끝까지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하나님과 함께, 그 문제 속에 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요단강 한 가운데 서 있었으니,
200만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갈 때, 모든 사람이 제사장을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언약궤를 보았을 거예요. 그 가운데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아, 문제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니깐 길이 생기는구나’
하나님의 능력을, 요단강 한 복판 가운데서 그들은 느끼면서
환호성을 지르면서 건너갔을 거예요.
▲그런데 제사장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죽을 맛입니다.
요단강 한 복판에, 무거운 언약궤를 메고 끝까지 서 있어야 돼요.
여러분, 이 언약궤의 무게가 혹시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200~300KG쯤 됩니다. 언약궤를 감싸고 있는 목재가 40~50KG이고요.
금으로 도금한 금의 무게가 70~90KG이고,
속죄소의 무게가 100~120KG입니다. 전부 다 합치면 최소 200~300KG으로 봅니다.
(*다른 주장에 의하면, 언약궤는 약 90KG 이며, 2명, 혹은 4명이 메었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 200만 명이 다 지나가야 됩니다.
학자들은 말하기를 2백만이 다 지나가는 동안의 시간은,
적어도 반나절이나 보통 하루 정도 걸렸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걸어가는 동안에 그들은 기뻐하고 있겠지만,
누군가는 그 가운데 언약궤를 메고 버티는 것입니다.
(물론 제사장들이 교대했겠죠. 성경에는 교대했다는 말이 안 나오지만요)
어쨌거나 강바닥에 서서 버티고 있는 것은 힘들어요. 어려워요.
믿음을 가지고 문제 속으로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기분 좋았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그 자리 속에 하나님과 함께 버틸 수 있겠는가요?
그걸 지금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시작하셨습니까? 끝까지 견디십시오. 힘든 거 압니다.
허리가 휠 것 같은 거 압니다. 주저앉고 싶은 거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서 있어야 된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의 부모는 홍해를 건넜어요. 홍해를 건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구원받음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의 보혈로 구원받음을 상징하는 사건이 홍해 사건이에요.
광야는 구원받은 자가, 기업(땅)을 얻기 위하여 가는 과정입니다. *마5:5절의 '땅'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차지하는 가나안 땅은, 기업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정리해보면.. 홍해는 건져내심을 상징하고,
요단은 들여보내심을 상징합니다. 건져내시고, 들여보내시는 거예요.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간 사람들이 겪게 되는 가나안 땅의 모든 삶의 과정은,
성화의 과정입니다. 거룩한 전쟁을 치러 나가는 거에요.
그러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이냐면, 그들 안에 있는 애굽의 잔재를 걸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해 사건은, 나를 애굽에서 빼내신 사건이고,
요단강 이후 사건은, 내 안에 있는 애굽을 빼내시는 사건입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전쟁의 핵심은, 외부에 있는 적들에게 있지 않아요.
그 적들을 맞이했을 때... 내가 반응하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의 전쟁입니다.
외부에 적이 있지 않아요.
내 안에 그 적들을 맞이하는, '그들에 대한 나의 태도, 나의 반응의 전쟁'이 되는 것이죠.
우리는 지금 그 전쟁 가운데 있는 겁니다.
영적인 전쟁이 있어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승리가 보장되어 있어요.
하나님께서 그 승리에 대한 보장으로, 요단 도하 사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십니까?
‘위기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셨듯이 너와 함께 하고 있다.
또한 요단강이 끊어진 것처럼, 너희 인생 가운데 네 모든 대적들이 쫓겨나가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이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붙잡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길이 안 보이지만 ‘주님이 길이다’(요14:6) 하는 믿음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들어갔습니까? 끝까지 버티는 겁니다.
힘든 거 압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버티는 거예요.
그러할 때 우리 앞에 놓인 요단강은, 우리를 막는 문이 아니라
새로운 기업의 땅으로 인도하는 열린 문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그 믿음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영적인 전쟁 가운데 승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믿음으로 ‘내게 허락하신 시련을 통해’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전도지 <박군의 마음>
하나님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
가나안 땅에는 이미 토착 일곱 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땅은 약속의 땅이었지만
이미 다른 이방인에 의해서 점령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일곱 부족은 상징적으로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일곱 귀신, 일곱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 정복되기 전에
이미 악한 영들, 악한 죄들이 우리를 점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모든 이방인의 족속을 멸하고 그 약속의 땅을 차지했듯이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악과 죄와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고
오직 주님이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이 알려지고 사용되어 왔던 ‘박군의 마음’이라는 전도지가 있습니다.
박군이라는 청년에게 전도를 하는 내용인데
박군의 마음속에 있는 일곱 가지 악한 성향, 죄를..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안에 그 일곱 가지의 영들, 죄들이 있는데
그것을 짐승으로 표현하여 보여줍니다.
그 일곱 짐승이 차지하고 있는 마음에, 주님이 온전하게 들어오심으로써
일곱 짐승이 다 나가고.. 아름답고 선한 마음이 되는 것을 설명한 전도지입니다.
영적 전쟁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아마 이 전도지를 처음 만든 사람은
영적으로 많이 열려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 일곱 가지 짐승의 마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말이 많은 영, 교만의 영, 간교한 영, 음란한 영, 혈기의 영, 탐욕의 영, 게으른 영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세례 받은 후에,
젖이 흐르는 가나안 비전 이전에,
꿀이 흐르는 가나안 목적의식 이전에,
구름기둥의 하나님의 임재/동행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것도 40년씩이나!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으로 자기를 채우려 하고..
지기 목적의식, 비전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차단되고
오직 지금 현재 여기에 계시는 구름기둥으로 상징된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그 하나님께 마음을 두게 하는 것,
-바로 그 훈련을 위해서, 백성들을 40년간 훈련시켰다는 겁니다.
그렇게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혹하리만큼’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훈련시키신 것은.. <하나님의 임재/동행/교제> 훈련이었습니다.
그 세대가 다 광야에서 엎드려졌더라도,
그 다음 이어진 세대는 40년 동안, 그것을 집중 훈련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땅을 약속해 놓고,
땅을 주시기는커녕, 그 족장들은 땅을 못 받고 다 죽었습니다.
그들이 받은 땅은.. 그저 무덤 몇 평에 불과했습니다.
나중에 여호수아 때 들어간 가나안 땅은,
신약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땅'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은,
교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땅의 티끌’ 같은 그 후손, 하나님의 백성을 (땅으로) 실제로 받았으며,
예수님도
‘교회, 하나님의 백성’을.. ‘땅’으로.. 유업으로 받으셨던 것입니다. 마5:5
그럼 구약의 땅(가나안)은 무슨 의미인가 하면,
신약의 새 언약의 땅, 하나님의 백성들, 신약의 교회, 새 하늘과 새 땅,
-이것에 대한 구약적 예표였습니다.
진짜 땅(부동산)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만약에 진짜 땅을 준 것이라면,
우리도 지금 다 팔레스틴에 이민 가서, 거기서 살아야 합니다.
그 땅만 진짜 하나님이 주신 땅이니까요!
하나님 나라 백성은 온유한 자들입니다.
온유하게 삽니다. 그렇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땅, 유산 다툼 안 합니다)
그때 진짜 땅을 차지하는데, 그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원래..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것도 오해하면 '그저 젖과 꿀이 흐르는 유복한 땅'으로 ..
그렇게 현세적인 땅으로만 오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현실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면이 있습니다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의 임재, 통치>입니다.
그 <하나님의 임재, 통치>를 놓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만 목적 삼는 것은.. 오해입니다.
♣위 설교 관련글 / 벽에 부딛힐때마다 기도로 뚫어낸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
https://rfcdrfcd.tistory.com/15978378
♣지도자는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명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에는 어른이 없다, 지도자가 없다’는 얘기가 솔솔 들립니다.
‘방향을 제시해줄 만한 어른은 없다’는 뜻이지요.
일례로, 모 기업의 이병철 회장은
모든 임직원이 결사 반대하고, 뜯어말렸는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우리 기업, 우리나라의 먹거리는 ‘반도체’에 있다고 판단하고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 두고두고 역사의 화제가 되는 선견지명이었습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도,
반대 진영 사람들이 공사현장 도로에 드러눕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결사반대를 했지만
결국에는 나라의 대동맥을 살린, 현명한 판단으로 결판났고,
이 결정의 배후에는
당시 박대통령이 방독했을 때, 독일 에르하르트 수상의 조언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속도로 건설하라.
그 외에도 정유, 제철공장 등에 주력하라’고 독일 수상이 조언했다고 합니다.
독일도 전쟁을 겪은 후 분단국가로 남아있던 시절이라서,
상황이 비슷한 한국을 동병상련으로 여기고, 각별히 대해주었다고 합니다.
에르하르트 수상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인 제3공화국은, 대박을 터트렸죠.
당시 독일이 분단국가 였고, 그래서 분단국가였던 한국과
남다른 교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광부와 간호사도 지원했지만요.
지금 물질적인 면에서 ‘지도자의 혜안, 지도자의 비전’의 예를 들었지만,
영적인 측면,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지도자의 올바른 방향 제시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신의 한 수’가
되겠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모세와 여호수아는 스타일이 완전 다른 지도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출애굽 시대에는 모세 스타일의 지도자가 필요했다면 (율법 제정, 문인)
가나안 정복시대에는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가 요구되었죠. (장군, 무인)
김형석 교수님이 한 번은 기독교 TV 방송에 출연하셔서
‘오늘날 목회자들이 너무 교회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1백세를 살아보니.. 과거 20대 때부터 많은 설교자들을 만났는데
사회, 민족, 나라를 생각하고 염려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설교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교회, 교회’를 외치는 지도자들이 요즘 많아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민족 전체가 낯아갈 방향성, 큰 그림 전체를 제시해주는
그런 지도자가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럼 지금은, 모세 같은 지도자가 더 필요할까요?
아니면 여호수아와 같은 스타일의 지도자가 더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