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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11장 아멘 여호와여!

LNCK 2026. 4. 10. 10:39

설교본문 색인            <언약>       ▣ 고난의 신학      출처, 정리

 

◈아멘, 여호와여!          렘11:1-5      2026.03.29.     [예레미야10강]   

 

◑언약을 상기시킴

 

오늘은 예레미야 11장 말씀을 같이 나누겠습니다.

말씀의 주제는 “아멘 여호와여” 입니다.

‘...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렘11:5

 

우리들의 부부관계는 결혼식장에서의 결혼 서약과 함께 시작됩니다.

주례자들은 보통 신랑과 신부에게 대체로 이런 말씀으로 서약을 하게 합니다.

 

「그대는 그대 곁에 서 있는 사람을, 그대의 아내의 혹은 그대의 남편으로 삼아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건강하든지 병들든지

변함없이 그를 사랑하고 배우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로 서약하십니까?」

 

그러면 대체로 신랑과 신부는 「예」 라고 서약하지만,

신앙적 열심이 특심한 사람들은 종종 「아멘!」 이렇게 답합니다.

결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겠다는 선언이요, 다짐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의 접착제(연걸고리)가 될 언약을

상기시켜 주시면서

이 말씀을 불순종하는 결과와, 11:3

순종하는 결과를 말씀하십니다. 11:4~5

 

유대 백성들 그리고 특별히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이게 맞느냐?’ 하고

확인 질문을 하십니다.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상기, 기억’시키신 것입니다.

 

*그들은 출19장에서 ‘시내산 언약’을 맺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가 자동적으로 미국시민이 되듯이.

이후에 태어난 이스라엘 후손은 자동적으로 ‘언약 백성’이 된 것입니다.

당시에도 노예가 출산한 자녀는 노예, 자유인에게서 태어난 자녀는 자유인이었죠.

 

그때 그 백성들을 대신해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한 대답이에요. ‘아멘 여호와여!’

이렇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11:5

‘맞습니다. 옳소이다’ 라는 뜻이지요.

마치 ‘결혼식장에서 서약하는 신랑이나 신부처럼’ 예레미야가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6절 이하에서

이제 그 말씀을 들고 거리로 나가,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11:6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말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지키라’   *오늘날 '율법폐기론' 주의

 

여기 언약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명자로

그가 역사의 마당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때 예레미야가 전달했던 언약의 말씀은

당시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고 있던 그 당시 유다의 왕이었던

요시아 왕이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했던 말씀, 그 율법책(신명기)의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왕하23:1 ‘왕이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2 이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3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아마도 요시야 왕이 받았던 동일한 말씀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시 한번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해석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말씀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모세를 통해서 전달되었던

신명기 27장의 말씀과도 동일한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도 모세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신명기 27: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이미 그 언약의 내용, 이어서 언약의 말씀을 하나하나 풀어서 읽어가면서

너희는 ‘아멘할지니라’ 이 말씀을 반복해요.  :5

 

◑언약 준수에는 결과가 따른다 (상벌 규정이 있습니다)

 

자, 본문으로 돌아와 그러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미리 전달했던 그 언약의 말씀,

그 말씀의 결론은 무엇이었습니까?

 

▲먼저 이 말씀을 <불순종>했을 때의 결과를 먼저 말씀하세요.

본문 2절과 3절의 말씀입니다.

 

렘11:2~3 ‘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말하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매우 명확한 결과를 먼저 경고하십니다.

이 율법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저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옛 언약)의 율법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따르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구약의 마지막 경고와도

그대로 일치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구약의 마지막 말씀이 생각나십니까?

말라기 4:6절이에요.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사랑하며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데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구약에 마지막 강조된 단어가 무슨 단어였어요? 저주예요.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저주가 임할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아버지 하나님과 자녀가 된 백성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이 뭐냐?

그게 바로 말씀이죠.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언약의 말씀 말라기 4:4절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호렙산은 시내산하고 마찬가지예요.

‘거기서 받았던 윤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율법의 말씀을 기억하라’

 

하늘 아버지와 땅의 자녀들을 결합시키는 것이 바로 율법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율법은 하늘아버지가 그 자녀들에게 주셨던 언약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는, 운명이 기울어가는 유다 땅의 백성들에게

그들이 다시 한번 율법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저주라는 심판을 면하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인생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주는 결코 하나님의 우선적인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도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언약(신약)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요3:16절을 잘 기억하죠? 혹시 3:17절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7

 

결코 심판은, 멸망은, 저주는.. 하나님이 본래부터 의도하신 바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래적 의도는 구원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아들을 외면하고, 아들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판과 저주는.. 피할 수 없는 당연한 결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3:17

 

▲언약에 <순종>한 결과

이어지는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제 불순종의 결과를 경고하신 다음에

순종하는 자들의 결과를 또한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순종하는 자의 결과에요. 본문 4절입니다.

 

렘11:4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을 붙들고 사는 너희들은 진짜 내 자녀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 너희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그의 말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가고자 함이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된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말씀에 청종하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결과는 거기서만 끝나지 않아요.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요.

 

계속되는 본문 5절입니다. 5절의 약속의 말씀 다 같이 읽어요.

11:5 ‘내가 또 너희 조상들에게 한 맹세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이 그것을 증언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그러니까 예레미야가 ‘아멘 여호와여!’ 이렇게 대답한 거예요.

순종의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 하나님이 되신다’는

약속에 그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 축복도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꿀이 흐르는 땅, 밀크와 허니가 뚝뚝 떨어지는 땅을 누리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성지순례로 이스라엘에 가보면,

이스라엘 근방에 있는 다른 중동 지방과 비교해보면,

우리 한국에서 볼 때, 한국 땅이 좋은 땅이에요.

 

그래서 처음에 이스라엘에 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왜 이럴까?’ *황무지 같아 보임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부지런히 하나님이 주신 그 땅을 잘 개발하여

진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번영의 땅으로 만들어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스라엘 농업은 세계적인 농업이에요.

이스라엘 농업은 토지 생산성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토마도를 1헥타르에 300톤을 생산합니다. 세계 평균은 50톤인데, 이스라엘은 300톤이에요.

자몽 grapefruit 이나 감귤 citrus 은

이스라엘에서 나오는 것이, 북미 대륙보다 더 높은 생산량을 소출하고 있고,

그리고 젖소는 1마리 당 연간 우유 1만 3천 리터를 짜 냅니다.  *보통은 1만 리터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마트에 가면, 이스라엘 자몽을 구입할 수 있는데, 품질이 좋습니다.

 

이스라엘 그 작물의 40% 이상을 다 어디서 생산하냐면

놀랍게도 광야(半사막)에서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국토의 60% 이상이 이스라엘 다 광야(半사막)이란 말이죠.

근데 그 광야를 문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농업기술 배우려는 사람들이, 다 이스라엘에 가서 배워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을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대로 축복의 땅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멘.

 

*거기가 일조량이 워낙 좋아서, 농사가 아주 잘 되고, 과일도 당도가 높습니다.

다만 물이 부족한데, 지하수를 끌어내어서 쓰기만 하면, 농사가 아주 잘 되죠. 햇볕 때문에.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 언약의 말씀을

너희 동족들에게 전해야 한다라고 위탁하신 것입니다.

 

◑언약의 말씀을 싫어하는 사람들, 선지자를 핍박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에 유다인들에게, 또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볼 수 있는 반응입니다.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 말씀을 전하는 또 예레미야 선지자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또 선지자 자신은, 이런 백성들의 반응을 어떻게 직면하며 살았을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전달자의 고난과 각오를 준비하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전달하는 전달자의 고난과 각오를 준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런 언약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고 위탁하셨을 때

선지자의 반응이 뭐라고 그랬어요? 오늘 그것만 잘 기억하시면 돼요.

 

11:5절에서 어떻게 했다고요? ‘아멘 여호와여’

‘네 진실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도 설교시간에 ‘아멘, 아멘’ 할 때,

아멘 했으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동의한다는 말이잖아요.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뭘까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아멘은 우리에게 책임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설교 들으면서 ‘아멘!’ 했으면, 아멘한 말씀대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회중들 ‘아멘!’

이제 무서워서 아멘 제대로 못하겠네요. 하하하

 

▲하나님은 이제 11:6절 이하에서 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미리 또 말씀해 주세요.

 

그들은 이 말씀을 순종하기보다도 여전히 불순종할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상인 바알을 숭배하고 따라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인 네가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렘11:19 ‘나는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그러니까 ‘네가 선지자로서 말씀을 대언해서 전하면 이런 고난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 땅에서 받는 고난,

그 고난은 바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과 같은 고난인줄 아십니까? 

 

오늘이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이사야 53:6~7절을 보면, 메시아 되신 그리스도가 받아야 할 고난이 이렇게 나옵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레미야가 당하는 고난이, 장차오실 예수님이 받으실 고난과 동일한 고난이라는 거예요.

예레미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대신해서,

지금은 이스라엘 땅에서 유다 백성들에게 이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레미야 선지자는 ‘고향 사람들에게’

이런 고통의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의 고향이 어디입니까?

예루살렘 아주 근처 가까운 곳에, 지금도 예루살렘 가시면 구시가지 old city가 있어요.

그 성 바깥에 ‘아나돗’ 이라는 장소가 있어요. 거기가 예레미야의 고향이에요.

예루살렘 수도 바로 바깥에.

예레미야가 제사장 가문이라서, 예루살렘 성전을 섬기기 가까운 아나돗에,

그 제사장들이 모여살았던 것 같아요.

 

▲이제 11:21절의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같은 고향 사람들이 제일 앞장 서서 나서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핍박한 거예요.

그런데 이런 동일한 고향 사람들에게 받는 고난, 박해를 누가 받으셨어요?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서 받으셨어요.

 

눅4장에 보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자기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첫 번째 설교를 하십니다.

근데 이 설교를 하신 후에 반응은 이랬습니다.

 

눅4: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마13:57

 

그리고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 나사렛 사람들이 어떻게 했느냐?

나사렛은 산 동네인데, 산의 낭떠러지에 가서,

예수님을 그 낭떠러지에서 밀쳐버리려고 했어요.

 

눅4: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예수님도 이런 고난을 받으셨어요.

저랑 같이 성지순례를 가면, 제가 여러분을 그 낭떠러지로 인도해 갑니다.

거기서 예배를 드려요. 낭떠러지가 그 맨 위에는 아슬아슬한데

우리가 성지순례 가면, 거기서 예배를 꼭 드립니다.

 

예수님이 동네 사람들에게 여기까지 쫓겨와서, 낭떠러지에서 밀침을 당할 뻔한 고난을

받으셨다고... 이런 예수님의 고난을 방불케하는 예레미아의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을 받으실 고난을 미리 예표하는 그런 고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예레미야의 고난은, 이제 방금 시작된 고난에 불과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인생에는 그가 고향 아나돗에서 받는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이 그의 인생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자신의 과오와 상관없이 받는 이런 고난은,

선지자를 좌절시키고 낙망시키기에 충분한 고난이었을 것입니다.

 

◑선지자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 : 장차 말과 경쟁하라!

 

동네 사람들, 고향 사람들에게 조차 외면당하고 박해당하고 주저앉아 좌절하고 있었던

선지자에게, 그 다음 장 렘12:5절에 가면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12: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이에요.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네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시간은, 보행자와 경주하는 시간이다’

보행자, 걸어다니는 사람들과 경주하는 건 쉽죠.

 

‘그러나 말이야, 조금 있으면 보행자가 아니라 말과 경주하며 달려야 돼.

네가 말과 경주하며 달려야 돼!’

선지자가 말과 경주하며 달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 사소한 고난 앞에서 피곤해하고 좌절한다면,

장차 말과 함께 경주해야 할 진짜 고난의 시간에는, 그 고난을 어찌 감당할 수가 있겠느냐?’

이 말씀이에요.

 

‘또 지금은 네가 편안한 땅에서 고난을 약간 감수하는 정도지만,

앞으로 요단 강물이 넘쳐 흐를 때, 그때 그 강을 건너야 할 때, (지금 힘들어 불평한다면)

그 환난의 시간을 네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느냐?’ 라는 말씀이에요.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12:5

 

‘그러니까 현재 당하는 고난의 때에, 미래를 준비하라’ 이 말씀이에요.

 

▲제가 지난 주간에 일본에 가서, 거기 선교사님들하고 시간을 보내고,

선교사 대회를 인도하고 왔는데요.

 

일본의 크리스찬 지도자 가운데 유명한 내촌감상 (우찌모라 간조)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우찌무라 간조 1861~1930

 

신앙의 위대성은 고난을 직면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신앙 때문에 고난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신앙이 되어야 진짜 신앙이다

 

내 신앙 때문에 고난이 생겨도 감당할 수 있는 신앙,

이게 진짜 신앙이다... 이 말이죠.

 

여러분, 기독교 신앙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제거한다면

기독교는 모든 메시지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마16:24에서 예수님이 당신을 따라오는 제자들에게, 제자도의 핵심을 말씀하시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오늘부터 고난 주간을 지나면서, 우리가 학습해야 할 중요한 레슨이 있다면

‘내게 주어진 나의 십자가의 고난이 무엇일까? 나는 지고 있는가?’

 

위 말씀처럼 ‘자기 십자가’가 있어요, 각자의 십자가가 다 달라요.

그러나 각자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각자의 고통이에요. 그 십자가가 다 달라요.

 

근데 ‘그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겠느냐?’

그때 여러분, 내게 주어진 내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고

‘아멘, 여호와여! 제가 주를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말할 수 있을까요?

 

‘비록 말과 함께 경주해야 할 시간이 온다 해도, 주만 믿고 달려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금년이 말의 해죠. 붉은 말의 해에요.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오午는 말馬

 

남은 한 해에 무슨 고난이 온다 해도, 세계에 무슨 격동적인 정세가 다가온다 해도

‘나는 오직 주만 바라보고 주만 붙들고 주와 함께 달리며, 이 한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춗원합니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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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이혼하면 뭘 해도 두렵고, 뭘 해도 두렵습니다.

뭘 해도 답답합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어기면 ‘이혼’하게 됨

 

창4: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에서

 

이 말은 히브리어로 '가라쉬' 인데 ‘이혼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분리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생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뭘 해도 두렵습니다. 뭘 해도 불안합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떠난 인생은, 여러분, 뭘 해도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공급받지 못하면, 여러분, 뭘 해도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렘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은 어느 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10지파와 이미 이혼했는데, 너희 두 지파도 이혼하기를 원하나냐?’ 3:8

 

부부사이에도 이혼은 괴로운 것이지만,

하나님과 이혼하는 것은 너무나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십니다. 말2:16

결국 이스라엘과 다시 재혼하기를 늘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언약을 선포하시고, 좋은 소식(복음)을 선포하시며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새로운 언약을 제시’하십니다.

 

말하자면 이혼했던 부부가, 다시 재혼하는 식이지요.

그것이 바로 신약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중에, 그런 하나님의 열망에 반응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너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혼하고, 죄에 빠져있고, 마음은 부패해졌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삶과 각 가정 역시 무너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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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인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건강하게 살기 하기 위해서 의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내용은, 전부 다 질병에 대한 것입니다.

건강을 얻게 하기 위하여, 질병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병이 들고, 증상이 어떻고, 왜 병이 들고...

또 어떤 사람이 병이 들고, 어떤 환경에서 병이 전염이 되는가... 등을 연구합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의학을 공부하는데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병자와 병의 아픔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까

의학도들이 처음 공부할 때는,

그 내용이 전부 다 자기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입니다.

'내게 이런 병도 있고, 저런 정도 있는 것 같아...' 이런 식으로 느낀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후기 기독교 사회’의 전도전략을 공부하는 목적은

예수님을 잘 믿고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배우기 위해, 안 믿는 사람을 연구합니다.

그들은 왜 안 믿고, 왜 믿음을 잃고, 왜 마음이 식고,

왜 교회가 쇠퇴하고, 교회가 비게 되느냐를 공부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