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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바알의 제단에 자녀들을 바치겠는가? | 렘19:1-5 | 2026.05.03
◈바알의 제단에 자녀들을 바치겠는가? 렘19:1-5 2026.05.03.
우리 교회가 속한 침례교단에서는 유아세례를 하는 대신에 ‘헌아식’을 거행하죠.
허나식을 영어로는 베이비 데디케이션 이렇게 말합니다. Baby Dedication
왜 유아 세례 대신, 헌아식을 하느냐?
성경에 ‘세례’라는 것은, 항상 세 가지 동사가 나란히 거의 틀리지 않고 나옵니다.
사도행전 같은 데도 보면, ‘듣고, 믿고, 그 다음에 세례를 받더라’ 행18:8
‘듣고, 믿고, 세례’ 이렇게 함께 나와요.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믿은 다음에, 신앙의 고백으로서 세례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아기들은, 아직 신앙을 고백할 수 없는 아이들,
그런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세례부터 주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헌아식, 베이비 데디케이션’은, 아이보다도, 부모에게 더 강조점이 있어요.
부모가,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아이를,
하나님께 다시 바쳐서 잘 키워, 아이가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기쁨으로 자원해서 세례식에 참여하도록 축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을 하나님 앞에 어렸을 때부터 잘 바쳐서
기르고 키워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안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할까요?
하나님께 아이들을 바치지 못하는 분들은,
부모의 욕망, 부모의 신념, 부모의 생각을 따라서 아이를 바치겠죠. *아래에 설명 나옴
그러나 종종 부모의 생각, 신념, 부모의 가치관, 그 배후에는
성경에 의하면 ‘이 세상 신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이 있단 말이죠.
세속적 가치관을 만드는 자가 바로 사탄이고 마귀예요.
잘못하면 하나님께 아이를 바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사탄에게 바칠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세속적 헌아식의 비극인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던 그 당시에 가장 강력한 우상신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알신이었어요.
예레미야는 ‘유다의 신들이, 바알의 신들이 성읍의 수만큼 많다’고 했죠. 11:13
동네마다 바알신이 있었어요. 동네마다 바알에게 제사하는 산당이 있었어요.
때로는 큰 집은, 자기 집에 바알의 산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알 Baal 이라는 단어의 뜻이 뭐냐면,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바알이 lord,
우리도 하나님을, 예수님을 우리 주인으로 주님 Lord 으로 고백하잖아요.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경쟁이에요.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바알을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삼아, 바알에게 자기 인생을 바치는 것입니다.
바알신은, 예레미야가 살던 그 당시에는, 비를 내려서 농사를 잘 되게 하는 신이었고,
또 자녀를 잘 낳게 하는 신이었고, 다산을 약속하는 그런 신이었으며,
따라서 세속적 성공을 약속하는 신이.. 바로 바알 신이었습니다.
(*보니까 바알을 섬기는 이방나라들이.. 다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알신이 인기가 높은 거죠)
오늘날로 말하면 물질주의, 세속주의, 성공주의의 신이... 바로 당시의 바알 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예레미야가 살던 당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또 바알을 섬겼단 말이죠.
이런 것을 혼합주의 라고 해요. Syncreticism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기고...
자 그들은 결국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고,
바알 숭배 속에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바알 신앙, 혹은 바알 숭배의 최고의 비극이 있습니다.
렘19:5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자기 자식을 바알에게 바쳤어요. 불태워 바쳤어요.
그러니까 결정적으로 자기 집안이 성공을 얻기 위해서,
자식을 바치면 부모가 출세하고, 가문이 성공하고, 그런 미명 아래서,
심지어 어린 자녀를 불태워서 바치는 의식까지... 당시에 수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5절에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세요?
‘이것은 내가 명령한 바가 아니다’ :5
즉 ‘이것은 내가 뜻한 바가 아니다. 나는 그런 것을 의도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 말이죠.
자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바알신앙에 미쳐서, 심지어 자녀를 바알의 제단에 바치는
비극의 역사가 당시에 존재했을까요?
자 이것을 오늘날로 바꿔서 말하면, 저는 ‘세속적 헌아식’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세속적 헌아식의 참여하는 부모들 왜 그럴까요? 세 가지로 말할 수가 있어요.
◑세속적 헌아식의 여러 형태들
▲1. 첫째는, 부모의 욕망을 위해서 자녀를 바치는 거예요.
부모의 욕망을 위해서 자녀를 바치는 사람들!
대체로 적지 않은 많은 부모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내 자식들이 이루어주기를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격하게 말하면, 그런 꿈은,
부모가 이루지 못한 부모의 욕망의 연장선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꿈을 붙들고 달려야 할 자녀들이, 자신들의 꿈이 아닌,
부모의 꿈의 제단에, 부모의 욕망의 제단에 바쳐지고 있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1)
‘이 애미의 소원을, 애비의 소원을 네가 이루어다오!’ 이건 약과예요.
이게 더 나쁜 형태가 되면 ‘부디 이 애미의 원수를, 애비의 원수를 네가 갚아다오!’
자녀들에게까지 이런 비극적인 되물림이 사실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근데 우리말 성경에 생략된 말이 있어요.
사실은 ‘마땅히 그가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가’가 생략
아이들은, 아이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있어요. 그 길을 가르치도록 해야 돼요.
[새한글역]에서 이 대목을 읽어보겠습니다.
‘아이에게 자기 갈 길을 익히게 해주어라
그리하면 나이가 들어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테니까’
따라서 여기 ‘마땅히 행할 길’은, ‘부모가 행할 길’이 아니란 말이에요.
‘자녀들이, 그가 행할 길’이에요.
대부분의 영어 번역은 그래서 이 대목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In the way he should go 그가 가야할 길'
그가 가야 할 길이에요. 네, 자녀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들은 결코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있어요.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있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 내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나만의 인생, 나만의 길을 그들은 각자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부모가 원하는 길을,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것,
이것은 바로 바알의 제단에 우리 자식들을 바치는 행위와 같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의도하는 바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결코 가르치는 바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5
▲2. ‘세속적인 헌아식’의 두 번째 형태는,
자녀의 성공을 위해 자녀를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첫 번째 형태가, 부모의 욕망을 자녀에게 투사해서,
부모가 못 이룬 세속적 욕망을, 자식들이 이루어주기를 원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는, ‘무조건 세속적 성공만을 위해서 자녀를 바치고 키우는 사람들!’
성공이 뭐가 잘못이에요? 성공하는 거 좋은 일 아닙니까?
성공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성공의 정체가 뭘까요?
도대체 어떤 성공을 원하십니까?
부모들이 소원하는 자녀의 성공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창조자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 성공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세상이 박수치는 성공일까요?
자, 예레미야 시대에, 바알이 주는 성공을 자녀들이 누리기를 기대했던 부모들이 있었다면,
오늘날의 부모들이, 단순히 자녀들이 성공하기만 원해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성경적 성공관과 세속적 성공관의 차이,
성경적 성공과 세속적 성공은 뭐가 다를까요?
여러분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크고 첫째되는 계명,
즉 가장 최고의 명령은 The great commandment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자식들이 성공해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또 이웃들을 더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면... 이게 성경적 성공이에요.
하지만 자녀들이, 소위 말하는 세상적인 성공은 했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없어요.
멀어져요. 또 이웃들을 제대로 섬기지 못해요.
이것은 성공해도 성공이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성경적 가치관으로,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제대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죠.
△중세기 초기에 유럽에 많은 수도원들이 있었는데
수도원의 제도 안에는 소위 오블라티 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오블라티가 뭐냐? 어려서 자녀들을 데리고 수도원에 가요. 그리고 수도원에 아예 맡겨요.
청년이 되면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동안에 어렸을 때 결정적으로 자라나는 시기에,
자녀들은 수도원에서 성경 교육을 받고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녀를 수도원에 바치는 그런 습관도 있었어요.
그들이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한 것이죠.
잠시 전에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아니라’ 그랬어요.
그런데 여러분 구세군이라는 기관이 있죠? 구세군은 아주 좋은 교단입니다.
구세군의 창설자인 윌리엄 부스는
이 잠22:6절을 자주 인용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마땅하게 행할 길을 빨리 가르치십시오.
빨리 자녀들에게 가르치십시오. 마귀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마귀의 길을 가르치기 전에
여러분 부모들이 손을 써서 빨리 가르치십시오!’ 라고 했어요.
신앙도 조기 교육이 중요한 거죠. 따라서 하십시다.
‘빨리 빨리 행할 길을 가르칩시다!’
우리 국민성이 ‘빨리 빨리’를 좋아하는데,
빨리는.. 이런 걸 빨리 해야 돼요.
빨리 빨리 우리 자녀들에게 그들이 행할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우리 자식들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30년 동안 조용히 삶을 사시다가, 이제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세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죠. 광야에서 마귀가 어떻게 시험합니까?
그 시험 중 하나가,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올려 세웠어요.
그리고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보여줍니다.
이 세상에 찬란하고 화려한 세상의 영광을 다 보여주면서
‘나한테 절만 해. 내가 이걸 다 네게 줄게!’ 세상적 성공을 약속한 거예요.
근데 예수님이 그걸 좋아하셨습니까? 예수님이 그때 뭐라고 그러셨죠?
‘사탄아 물러가라.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할지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성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배하면,
이건 정말 너무너무 기쁜 일이죠.
그런데 자녀들이 소위 성공을 해서, 하나님과 상관 없어지는 자녀들이 된다면,
이것은 가장 커다란 비극이에요.
그것은 세속적인 성공에 자녀들을 바치는 것인데,
그것은 바알의 제단에 우리의 자식들을 바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세속적인 헌아식'은, 천국이 아닌 지옥의 자녀를 바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레미야 시대에, 자식들을 바알 신에게 바쳐서 태우던 곳,
그곳이 어떤 골짜기라고 했습니까?
본문 렘19:2절에 나오는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예요.
이게 본래 히브리어의 ‘게헨나’, ‘게’가 골짜기거든요.
그런데 이 골짜기에는, 쓰레기를 갖다 버리고, 불을 태우고,
그러다가 심지어 나중에 바알 신들에게,
부모의 성공과 가문의 성공을 위해서,
어린 자식들까지 불태우는 악습이, 이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이 골짜기에 항상 연기가 나고, 불이 태워져요.
그런데 그것을 보시고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은 ‘바로 힌놈의 골짜기가 지옥이다’
이렇게 게헨나를 지옥의 상징으로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신약에 와서 ‘지옥’을 말할 때, 이것을 게헨나로 부르게 된 거죠.
막9:48 ‘거기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아니라’
거기가 바로 지옥이에요.
마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힌놈의 골짜기를 비유로 들어서, 지옥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레미야 선지자가 울면서 경계했던 이 골짜기의 비극, 지옥의 비극에
우리의 자녀들을 바치시겠습니까?
자 그들이 비록 세속적으로 조금 성공한 것 같고, 돈 벌고, 명예를 얻는 것 같아도,
그들의 영혼이 지옥의 버림을 당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도대체 '세속적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우리의 목숨을, 영혼을 잃어버린다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흥미로운 것은, 본문 2절과 3절에,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이제 힌놈의 골짜기로 가게 하십니다.
렘19:2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3 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
거기서 심판의 말씀을, 이 골짜기에서, 지옥의 경고의 말씀을 증거하신 거예요.
근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골짜기로 내려갈 때, 혼자 가지 않고,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 지도자들을 데리고 가게 하세요.
19:1절에 보면, 토기장이의 옹기를 하나 사서, 그것을 들고
그 다음에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들을 동반하고,
어른들, 제사장들은 증인이라는 거예요.
지금부터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씀의 증인 삼기 위해서
백성의 지도자들을 데리고 가는데, 토기를 하나 사갖고 내려가라 하셨어요.
여러분, 앞서 예레미야 18장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그래서 토기장의 집으로 가서, 토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예레미야가 목격했죠.
그런데 19장에는 ‘그 중에 하나를 사라’ 하셨어요.
‘완성된 토기를 하나 사라’ 그런데 사가지고 뭘 하냐면,
19:10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11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
아니, ‘토기 하나를 사갖고 내려가라’고 그러시고는,
또 ‘그 토기를 땅바닥에 던져서 깨뜨리라’는 거예요. :10
그건 하나의 시각적인 설교죠. 상징적인 설교예요.
자 이 토기는 만들어지긴 했지만, 잘못 만들어진 토기예요.
그건 사용될 가치가 없는 토기, 그것은 던져서 깨트려버려라... 이 말이에요.
‘그런데 너희 예루살렘 백성들이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이 말이에요.
‘그대들이 그릇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은 잘못 만들어진 토기와 같다.
하나님의 심판을 이제 피할 수가 없다’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토기는 잘못 만들어져 완성되어서 이제 다시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제 오직 심판밖에는 남은 것이 없어요.
그러나 저와 여러분에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어요.
아직 ‘은혜의 때’가 남아있어요.
고후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아직은 구원의 시간이에요. 아직은 은혜의 시간이에요.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도, 아직은 그들이 만들어질 성장할 기회가 남아있어요.
구원받을 시간이 남아있어요. 빨리 그들이 구원받게 해야 돼요.
그리고 하나님께 바쳐진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루라도 어렸을 때, 하나님의 재단에 우리의 자녀들을 바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적용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어렸을 때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에 의해서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만들어져 왔던 것입니다.
사무엘을 보세요. 사무엘, 엄마 한나가 기도해서 사무엘이 태어나지요.
사무엘이 태어나자마자 그는 성전에 맡겨집니다. 제사장이 그를 기르게 됩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랐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로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민족을 구원하고, 시대를 일깨우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됩니다.
여러분 디모데 기억하십니까? 디모데가 없었으면 바울이 없어요.
바울의 위대한 역사는 디모데를 통해서, 세계 선교의 지평이 넓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근데 디모데를 디모데 되게 한 것은 누굴까요? 외조모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의 영향이 없이,
어떻게 디모데가 디모데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형제를 기억하십니까?
형제예요. 근데 사실은 이 두 사람만 형제가 있는 게 아니라,
본래 그 집에는 19명의 자녀가 있었어요.
근데 옛날에는 유아 사망이 많았어요. 그래서 9명은 어려서 죽고, 10명만 자라났어요.
그 중에서 15번째가 요한 웨슬리, 18번째가 아마 찰스 웨슬리일 거예요.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 보면, 찰스 웨슬리의 이름이 많이 나와요.
위대한 찬송을 많이 만들었어요.
요한 웨슬리는 문자 그대로 영국을 변화시킨 사람이에요.
그리고 교단으로는 감리교회의 창설자죠.
그런데 웨슬리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컸어요.
그 19명의 자녀들을 기르면서도 그 어머니 수산나는
자녀들을 일일이 일주일에 1시간을 만나서 진지하게 신앙 상담을 했다고요.
일주일에 1시간 요한 웨슬리는 목요일날 밤마다, 엄마하고 1시간 상담을 했다고 합니다.
1시간 동안! 그것이 웨슬리를 만든 거예요.
규칙적으로 시간을 나눠서 경건의 시간을 갖고, 자녀들을 교육해서,
그 습관을 따라 옥스포드에 진학했던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가
동역자들과 기도회를 만들었을 때, 그 기도회의 이름이 ‘홀리 클럽’이었어요.
그들을 통해서 일어난 운동이 감리교회의 기원이 되는 ‘메소디스트 운동’이에요.
메소드 라는 말은 규칙이라는 뜻이잖아요.
신앙생활 규칙을 스스로 정하고, 그 규칙을 잘 지켜서,
철저하게 자기 인생을 감리(감독)하며 진지하게 살았다... 이 말이에요.
▲이런 웨슬리에게 또한 영향을 끼쳤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진젠도르프입니다.
우리가 독일 경건주의 사적지를, 우리 교회에서 저와 함께 갔다 온 일이 두세 번 있었는데
그는 자기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수많은 땅으로,
당시에 모라비아 난민들, 지금의 체코의 모라비아 지역의 난민들을 *종교박해 통해 난민 발생
자기 영지에 다 받아서, 땅을 주고 집을 짓게 하고,
‘헤른 후트’라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거기에서 큐티하고 말씀 운동을 벌이고,
또 그들과 함께, 소그룹 목장 운동을 하고, 선교사 파송을 하고,
그 당시 전 세계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운동이 일어났어요.
요한 웨슬리가 거기 와서 한 달을 살면서 배웁니다. 깊이 배우고 가요.
근데 진젠도르프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었느냐?
아주 어려서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일찍 재혼을 했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위대한 할머니였어요. 카타리 라는 할머니가 날마다 함께 진젠도르프와 함께
성경을 읽어주고 날마다 함께 기도하고, 그리고 ‘믿음이란 교회만 나가는 게 아니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 하나님과 날마다 대화하는 것,
그게 진짜 신앙이야’ 이렇게 가르쳤어요. 그것이 진젠도르프를 만든 거예요.
이런 사람 진젠도르프, 존 웨슬리를 통해서 유럽이 깨어나요. 영국이 깨어났어요.
그 당시에 새로운 나라가 됐어요. ☞ 진젠도르프의 생애 1700~1760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우리의 자녀들을 누구에게 바치고 있습니까?
정말 사랑이신 창조주 하나님, 구세주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자녀들을 바쳐서 키우고 계신가요?
아니면 혹시 바알의 제단에 우리의 자녀를 바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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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저는 어느 음악대학 교수님을 압니다.
이분은 말하기를, 자기가 음악에 소질이 없답니다.
내가 보기에도 없는거 같애요. 그런데 음악대학 교수까지 됐습니다.
소질이 없는 걸 억지로 어머니가 시켜서, 시켜서 음대 교수자리까지 왔는데,
본인 얘기로는, 자기가 다른 사람의 다섯 배를 노력한대요. 그러나 결과는 없대요.
정말로 어머니를 원망하더라구요. ‘내 일생을 망쳐놓았다고...’
여러분, 자녀가 자기 하고 싶은 짓을 하라고 내버려두세요.
그거 내 맘대로 되는게 아네요.
내 맘대로 할려고 할 때, 벌써 그것은 성경에서 떠나는 것이예요.
자녀는 내 소유가 아닙니다. 나를 위해 저가 존재하는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