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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장 복음을, 하나님만을 구하라

LNCK 2026. 7. 6. 17:03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부흥

2026.6.27 은혜샘물교회 창립 16주년 부흥사경회3 Youtube

 

◈복음을, 하나님만을 구하라       막1:1, 삿10:1~6          2026.6.27

 

여러분들은 이제 다 신앙생활 하시니까

또 주변에 교회 다니시는 분도 계시고, 신앙생활 같이 하시는 분도 계시고,

또 어떤 분들은 관심이 많아서 한국 교회에 대한 이런저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또 좋은 소식들도 있지만, 또 힘든 소식으로 마음 아프거나 낙심하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은혜샘물교회는 제가 생각하기로는 좋은 교회이고, 제가 섬기는 [우리는 교회]도

저는 좋은 교회라고 생각을 합니다만, 우리끼리 좋은 교회라고 해서

하나님 나라라는 큰 보편적 교회에 대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나만 잘 된다고 하여서, 복음의 성취가 나에게만 이루어진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한국교회를 떠올릴 때마다

제가 무슨 한국교회 대표가 된 것은 아니지만, 저는 ‘겨울 나무’에 비유를 하곤 합니다.

 

나무는 지혜롭기 때문에, 날씨가 쌀쌀해지는 가을이 되면,

잎사귀도 다 떼고요. 꽃도 다 떼고, 열매도 다 뗍니다.

왜냐하면 추운 겨울이 오면, 뿌리로부터 양분이 올라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꽃이 여전히 붙어있고, 잎사귀가 붙어있고, 열매가 붙어있다면,

뿌리로부터 양분을 올려야 될 텐데,

날씨가 춥기 때문에, 몸통이 얼고 몸통이 터져버리겠죠. 부피가 팽창되겠죠.

 

그런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나무는 가을 날이 되면, 잎사귀 꽃이고 열매고 다 떨어뜨립니다.

우리는 풍성한 나무를 보기 원하지만, 안타깝게도 겨울 시즌에는

나무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질 않아요.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고,

우리 눈에 보기에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나무처럼 보일 뿐만 아니고,

때로는 눈 속에 파묻힌 나무를 보면 ‘죽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겨울이라고 하여, 그 나무가 볼품이 없다고 하여,

그냥 가지만 남은 채로 있다고 하여, 그 나무를 죽었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왜죠?

뿌리가 살아있으니까요. 나무의 뿌리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이 '뿌리'라는 단어는 라틴어 어원이 라딕스 Radix 인데,

그게 영어로 바뀌면 radical 입니다. '급진적인' 이런 뜻이죠.

 

우리는 ‘급진적이다’ 라는 표현을 쓸 때, 뭔가 극단에 서서,

조금 더 진보적이거나, 뭐 이렇게 좀 급진적 사고방식을 가진 어떤 것을 떠올리기가 쉽지만,

이 ‘뿌리’라는 어원을 가진 ‘급진적’이라는 단어의 뜻은

어찌 보면 ‘본질’이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죠.

 

신앙생활은 진보하는 게 아닙니다. 발전하는 것도 아니고요.

무언가를 복음에 더하는 것도 아니고, 그 원래 자리, 즉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여호와께 돌아가라, 돌이키라’ 히브리어로 ‘슈브’

이 단어를 많이 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겨울나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요.

앙상해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뿌리를 찾는 것에 마음쓰기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양재 꽃 시장에 가면, 요즘 가짜 잎사귀 많잖아요.

진짜 같아 보이는 조화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짜 잎사귀 사오고, 가짜 꽃 사오고, 가짜 열매를 가지에 주렁주렁 달아서라도

내 눈에 그 장식이 아름다워 보이기를 소망하죠.

 

전 한국교회가 좀 어려울 때, 이렇게 (겨울나무처럼) 좀 쇠퇴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

하나님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늘 구약성경이고 신약성경이고, 그 나라 이스라엘의 흥망성쇠 속에서

하나님은 늘 살아계셨고, 역사하셨고, 그 역사를 주관하고 계셨다고 한다면,

이 겨울의 시즌 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또 부흥의 때를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다가 올 이 부흥의 때라는 것은, 단지 숫자가 많아지는 부흥의 때는 아닐 것입니다.

 

저는 복음이 부흥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진짜 신앙인들이 진짜 신앙인답게 서는 그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봄날, 훈풍이 부는 날, 하나님이 부흥의 때를 주실 그때,

누구만 살아나는가? 뿌리를 지킨 사람만 살아나는 겁니다.

뿌리를 지킨 교회만 살아나는 겁니다.

 

뿌리가 지켜져서, 겨울이 지나고 봄에 훈풍이 불 때

그 뿌리로부터 양분이 올라와, 다시금 잎사귀를 일으키고, 꽃을 내고, 열매를 맺는

그러한 성도, 그러한 교회만 살아남는 겁니다.

 

그것이 싫다고 뿌리에 관심 두지 않고, 가짜 꽃 사다 붙여 놓고,

그 외적 화려함을 추구했던 교회는 망할 겁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요?

무엇이 여러분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인지를 돌아봐야 하죠.

 

▲종말의 전쟁은 '아름다움의 전쟁'입니다. 이건 분명합니다.

우리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 그것들이 우상이거든요.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사모하고, 갈망하고, 탐욕하고, 욕망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핸드폰안에 어플 깔아놓은 거 한번 다 찾아보세요.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거기에 다 나와있거든요.

내가 무엇을 그렇게 갈구하고 있는지.. 다 나와 있거든요.

 

‘내가 좋다 하고, 내가 아름답다 하는 그것을, 하나님도 아름답게 여기시는가?’

이것을 질문해야 되거든요.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까? 이사야에 그렇게 예언되어 있죠.

‘그는 우리 눈에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다’ .. 노 뷰티입니다.

예수님은 아름답지 않았다 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그냥 천하게 여기고, 멸시했고, 질고를 겪게 했으며, 십자가에 매달아 버리죠.

우리 눈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왔더라면, 우리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겁니다.

 

‘로마의 압제 속에서, 메시아라는 강력한 왕권을 가진 왕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라는 것이 그들에겐 아름다움이었는데,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왔어요. 아무것도 아닌 갈릴리에 오셨습니다.

‘갈릴리에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

우리 눈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어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 아닙니까?

 

계속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이 요구되는겁니다.

우리에게 이해를 요구하시는 게 아니고, 믿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사모하고 갈망해야 될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이 교회에서 지금 3일 동안 이렇게 집회를 인도하면서,

제 마음에 무엇인가 모를, 다른 교회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부담감을 갖고 있어요.

그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저희 교회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이 교회를 이렇게 보면서,

오늘 담임목사님께 슬쩍 물어봤습니다. ‘이 교회는 문제가 없습니까?’ 이렇게 물어봤어요.

 

너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요.

어떠세요, 여러분? 아 정말 문제가 없으십니까?

 

고난의 때는 성도가 하나님을 찾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진짜 위험할 때는 우리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 하는 때거든요.

 

혹시 여러분의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닌가?

그것이 저에게 부담이 됐던 것은 아닌가?

교회에 너무 문제가 없어서, 하나님께 대한 갈망도 식어진 것 아닙니까?

이렇게 감히 좀 말씀을 드려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인도 같은 나라에, 다신교를 숭배하는 나라에,

왜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지 아십니까? 그들이 그냥 복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싸우지를 않아요. 여러 신 중에 하나로!

 

‘오, 여호와도 계시지, 예수도 있지..’ 라고 받아들인다니까요. 그리고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스폰지처럼 받아들여버립니다. 그러나 그들이 받아들인 신은, 여러 신들 중에 하나거든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면서, ‘그냥 안정되고 문제 없다’ 라고 할 때,

오히려 복음을 그냥 받아들이는데, 그거 하나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다른 것들, 우상들도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예요.

 

◑스스로 일어난 사사들 (리더들)

 

제가 어제도 사사기를 말씀드렸습니다만,

1) 기드온이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고 나서, 괴물같은 아들 하나가 나옵니다.

그가 아비멜렉이죠. 그건 기드온의 모습이었어요.

 

기드온이 ‘나는 왕이 아니야, 나는 왕이 되어 너희를 다스릴 건 아니야’ 라고 말은 했지만,

다스리고 싶은 그 욕심... 왕이 되고 싶은 욕심...   *가시나무

그것이 아들의 이름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습니까.

 

‘아비멜렉’ 그의 이름 뜻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 입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이 70명이라는 형제를 다 죽이는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2) 그리고나서 등장한 사사가,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가장 분량이 적기 때문에,

그냥 小사사라고 불려지는 돌라야일입니다.

 

그런데 이 돌라와 야일이라는 사사는 특징이 뭔가 하면, 이전에는 외부의 압제가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향해서, 외부의 압제를 통하여 사사를 일으키시고,

그 압제로부터 구원하는 이게 사사기의 순환구조거든요.

압제가 있었고 하나님이 사사를 구원자로 세우셨단 말이에요.

 

근데 이 돌라하고 야일의 특징이 뭐냐면, 외부의 압재가 없어요.

미디안이라든가 블레셋이라든가... 이런 외부의 압재가 없다는 게 하나의 특징이고요.

 

3) 또 하나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이 돌라와 야일이라는 사사는

하나님이 세우셨다’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스스로) 일어나’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요. 삿10:1, 3

우리가 짧은 구절이기 때문에, 이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이 사사기 성경 전체를 보면, 이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사가 일어났는데 스스로 일어났다

마치 스스로 일어난 리더가 탄생한 거예요. 그게 바로 돌라와 야일입니다.

 

그 시대에, 겉으로는 평화로웠고, 큰 문제 없이 유지되는 것 같았는데,

속으로는 여러 우상들이 생기고, 활개 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왜 사사가 필요했을까요? 왜 스스로 일어났을까요?

좋게 표현하자면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2~3년 동안 피바람이 불었단 말이죠.

그가 본인이 스스로 일어나서 왕이 되겠다고 일어나서 압제했단 말이죠.

 

그것을 수습하는데 사사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일어난 사사로는, 이스라엘을 온전하게 구원할 수 없었다 라는 것이

그 야일과 돌라... 무려 45년 동안 평화로웠다라고 되어 있거든요. 삿10:2~3

 

근데 문제는, 그 두 사사가 죽은 후입니다.

사사기 10:6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겼다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 전까지는 바알과 아스다롯 뿐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가나안의 풍요의 신, 두 신이 대표적으로 나왔는데

45년의 평화의 시간이 마쳐지고.. 일곱 개의 우상들이 나옵니다.

 

여러분, (그 45년간) 안정된 때, 오히려 기도하지 않고요.

‘우리 교회가 너무 좋은 교회이기 때문에’ ... 방심하기 쉽습니다.

 

놀랍게도 그 평화의 시기가, 스스로 일어났던 사람들이 리더십을 발휘해서,

때로는 상식에 기반해서, 혹은 민주적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행정적인 어떤 탁월함을 가지고, 재정적인 부유함을 가지고...

아비멜렉이 엉망으로 만들어놨던 이스라엘을... 평화롭게 만들 수는 있었습니다.

 

이 안에도 어떤 사람이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 평화는.. 반드시 여러 우상들을 만들어낸다는 거죠.

 

▲다시 말하면 제가 첫날 말씀드렸던 것처럼,

예수라는 본질 위에, 무언가를 계속 엊는(보태는) 거죠.

 

‘이것도 중요해.. 저것도 중요해’

‘이것도 이 교회에 없어서는 안 돼, 저것도 예수만큼이나 중요해!’

 

그렇게 자기 의가 쌓여지고, 사람의 의에 의해서 좋은 교회라고 평가된다면,

지금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몰라도,

그렇게 쌓여지고 쌓여지는 우상들로 인하여,

몇십 년 후가 지난 후에는 이 교회 위에도 우상이 덧입혀져서,

더 이상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그날이 오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교회가 등장하죠.

에베소교회는 이단과 싸우다가 지쳤습니다. 그런데 이단하고 너무 잘 싸운 거예요.

거짓된 교리를 다 몰아내고, 하나님의 진리를 세웠던 것입니다. 너무너무 잘 한 거죠.

 

아마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야 우리가 진리를 수호했어!’ 라고 서로를 격려하고 독려하며

‘에베소 교회는 좋은 교회야!’라고 스스로 평가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의 주인 되었던 예수님께서는, 다른 평가를 내리시죠.

‘너희가 이단하고 싸우느라 진리를 지키는 거 너무 잘했다.

그러나 너희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 사랑이 없으면 교회 아니다...’

 

이 교회가 16년 동안 하나님의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또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으로, 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점검하는 이 3일에 집회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오늘 이 밤에도 기도할 때 ‘예수로 충분한가? 정말 예수로 충분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에 더 집중하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름답게 보는 성도들을 기뻐하세요.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하다’라고 고백하는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왜 유일신 신앙이고, 왜 ‘예수로 충분하다’, ‘복음 하나로 충분하다’는 메시지가

성경 안에 가득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신감이거든요.

‘다른 거 필요 없어!

너희 눈에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필요 없어, 나로 충분해!’

 

교회는 ‘예수로 충분해! 복음으로 충분해! 하나님의 통치로 충분해!

하나님의 주권으로 충분해!’

그래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 할까?’

이것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가가 선포하는 복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아주 간단하죠. 마가복음 1:1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아멘!

 

이 구절에서, 복음은 두 가지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주1)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시다’ 라는 방향으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복음(유앙겔리온)이란 말은, 당시 사회에서 널리 쓰던 단어였습니다.

그 로마를 다스리는 황제가 ‘복음’이라고 여겼습니다.

 

‘황제가 복음이다. 황제에게 연줄을 대야 되고, 황제하고 가까워야 되고,

황제가 건강해야지 우리도 잘 살 수 있어.. 우리를 잘 되게 하는 황제야’

 

이렇게 여기고 있던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던 당시 시대에

마가가 무엇을 선포하는 겁니까?

 

‘아니야, 나라가 바뀌었어. 믿는 자들은 로마라는 나라에 사는 게 아니야.

시대가 바뀌었어! 지금은 하나님의 나라가 왔어!

이 나라를 통치하고 계시는 분이 계셔!

이 나라 안에 속한 백성들을 잘되게 하시는 분이 계셔!

그분이 복음이신데, 그분은 황제가 아니고 예수이시다!’

 

즉 ‘이 교회를 잘되게 하시는 분은 예수이시다.

우리의 자녀를, 우리의 일터를, 우리의 가정을, 우리의 성도를 잘되게 하시는

복음의 근원은 예수시다!’ ... 이 선포입니다. 막1:1절이 그런 뜻입니다.

 

▲제가 민주주의에 관련된, 특히 이제 선거라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동화책을 한 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생쥐 나라 고양이 국회>라는 동화책이에요.

 

생쥐들이 사는 나라인데, 국회의원들을 고양이들로 뽑은 겁니다. 왜 그랬겠어요?

생쥐끼리 모여보니까, 뽑을 생쥐가 없어요. 다 고만고만하잖아요.

‘니나 내나 똑같네’ 그래서 우리에게 소망이 되려면, 리더가 좀 더 강력해야 되는 거예요.

나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딱 생쥐 눈엔, 고양이가 위대해 보여요.

오, 고양이는 막 발톱도 세고, 엄청 크고 강력하고 그러니까,

‘이런 고양이들에게 어떤 리더십을 주면, 우리를 보호해 주겠지’ 그렇게 믿은 거예요.

그래서 생쥐들이 국회의원을 고양이로 뽑아놓은 겁니다.

 

그랬더니 국회는 어떤 곳이냐, 입법기관 아닙니까.

고양이들끼리 모여서 어떤 법을 만들어요.

 

‘생쥐 굴에 고양이 손이 들어갈 수 있는 깊이에다 생쥐 굴을 만든다’

이런 거를 법으로 만들면, 누가 행복해요?

고양이가 행복하죠. 생쥐는 괴롭죠..

우리가 이렇게 (강한) 나라를 추구하면, 괴로워지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고 있고,

예수님이 우리의 온전한 리더십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엉뚱한 (강한) 리더를 자꾸 뽑는다니까요.

 

우리의 인생의 주권을. 자꾸 엉뚱한 리더에게 맡긴다니까요.

그게 돈입니까? 성공이고 권력이고 유명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게 왜 교회를 맡깁니까?

그걸 가진 사람에게 왜 우리 인생을 맡깁니까?

그거 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이거 교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황제는 너의 복음이 아니야.. 돈은 너의 복음이 아니야..’

어찌보면 교회가 유명해져서, 어떤 네임밸류를 가질 수도 있어요.

‘그 유명한 교회에 다니면, 내가 뭔가 평안하고 복을 받겠지..’

 

‘그게 (네임밸류가) 복음이 아니야, 예수가 복음이야!

너희가 착각하면 안 돼, 그럼 무너지는 거야!’

 

그 메시지를 오늘 마가복음 1:1절에서, 오늘날 교회를 향하여 마가가 선포하는 거예요.

‘너희의 복음은 누구냐? 예수이시다!’  1:1

 

▲저는 이 교회 이름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은혜샘물교회

제가 늘 예레미야 2:13절 말씀 마음에 품고 살거든요.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생수라는 것은 고여있는 물이 아닙니다. 고여있는 물은 늘 썩죠.

그러나 생수는 늘 흐르는 물이기 때문에 생수거든요.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공급하고 계신 생수이신데

은혜샘물교회라는 이름으로 보면, 터져 나오는 샘물인데,

어느 날 갑자기 걱정이 되는 거예요.

 

‘오늘은 그 생수의 근원이 끊기면 어떡하지? 생수가 안 나오면 어떡하지?

샘물이 터져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나는 너무 지혜로운 거야.. 생수가 매일 나오니까, 지금 웅덩이 파가지고 물을 가둬놓으면,

좀 이렇게 생수를 저장해놓으면, 혹시 생수가 안 나오더라도 나는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물을 가둬놓으면) 물이 이미 죽었죠. 생수가 끊기는 거예요.

생수가 오지 않을 것에 대한 믿음이 온 거예요. 그리고 웅덩이를 파기 시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웅덩이를 내버려 두십니까. 터뜨려 버리시는 거예요.

'너희가 웅덩이를 의지하면, 너희는 죽으니까,

웅덩이가 너의 복음이 아니니까, 너희를 살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웅덩이는 언젠간 썩어버려.. 그 물 먹으면 안 돼’ 그래서 터트려 버리시는 거예요.

 

근데 은혜샘물교회 이름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지지 않는 샘물처럼 온다는 거 아니에요.

생수의 근원이 날마다 우리에게 솟구친다는 것 아닙니까.

 

저는 은혜샘물교회가 17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생수의 근원을 버리지 않고, 오직 복음의 근원 되신 예수를 붙잡고,

날마다 터져 나오는 샘물이 공급되어지는, 그런 교회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이 늘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향하여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눈은 늘 속이거든요.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마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성하면’이 원어로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싱글 아이’예요.

 

우리 눈이 두 개인데, 싱글이라는 뜻은 한 개입니까.

왜 한 개의 눈이 온전한 것일까요?

물리적으로 눈은 두 개일지라도, 보는 초점은 하나 single eye 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의 인생에 너희의 눈을 한눈팔게 하는 게 있다는 거예요. 
예수가 복음인데, 예수가 가장 우리를 잘 되게 하시는 분인데, 
그분만 아름답게 바라봐야 하는데, 우리의 눈을 한눈팔게 하는 게 있어요. 그게 뭘까요?

예수님이 계속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인데,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하나는 경시할 거고, 
이것을 사랑하면 하나는 미워할 것인데, 
그러므로 너희가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마6:24

우리의 눈을 한눈팔게 하는.. 우리가 아름답게 보는 그 핵심에는 뭐가 있다? 
돈이 있다.. 너무 피부에 닿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Yes 

여러분도 지금 입고 있는 옷은, 하나님이 주셨어요, 돈 주고 샀어요? 
애매한 거죠. 

‘내가 저 옷 꼭 너무 입고 싶은데’ 내게 주십사고 기도 열심히 했더니 
다음날 새벽에 눈 떠보니까 하나님이 그 옷을 고이 개켜가지고, 딱 머리맡에 두셨나요? No
아니죠. 다 돈 주고 샀죠. 

여러분이 운전하고 타고다니는 차..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앞마당에다 딱 세워놨던가요? No
돈 주고 샀죠. 

지금 여러분이 사는 집도, 돈 주고 구했죠.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모든 걸 돈으로 거래하다 보니까 
이 재물 얻으려고, 얻을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지만, 
현실적으로 '돈이 우리를 편하게 하는구나' .. 늘 체험하는 거예요. 

'돈이 없으면 너무 힘들구나'.. 하고 경험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돈이 아름다워 보이죠. 이거 돈 없으면 힘드니까요. 

그때 주님께서 뭐라고 얘기하세요? 그림 언어 두 개를 보여주시잖아요. 
'하늘에 나는 새를 보라' '백합화나 들꽃을 보라'

▲여러분 살아가시면서, 하늘에 나는 새를 보신 적 있으시죠?
저는 제주에서 사역을 오랫동안 몇 년간 왔다 갔다 하면서 했기 때문에, 
동쪽의 세화리를 종종 갔습니다. 거기에는 제비가 엄청 많아요. 

밤이 되면 제비 떼가 전선에 쫙 앉아 있습니다. 그 밑에는 차도 주차 안 해요. 
사람도 안 걸어갑니다. 똥 맞으니까요. 

여러분 밤에 해가 지면, 제비는 다 한데 모여서 잠을 잡니다. 
그런데 밤 11시쯤에, 어떤 제비가 눈 떠가지고 이렇게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 바보 같은 놈들, 잠만 자고 있네.. 이 멍청한 것들 잠만 자고 있는데, 
내일 아침에는 벌레가 없을 수 있는데, 미리 일어나서 미리 미리 잡아야지...' 

하고 제 혼자 날아가가지고, 막 벌레 잡아가지고 창고에 들여놓으면... 
죄송합니다. 그건 미친 제비죠. 그런 제비는 없을 거예요. 

제비는 그냥 동트면 깹니다. 그때 비로소 날아다니다가, 벌레가 있으면 잡아먹고, 
또 해가 지면 자요. 해 뜨면 날고, 벌레 보이면 잡아먹고, 밤 되면 자고...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무슨 얘기를 우리한테 하세요? 
'너희는 저 새들보다 귀하지 않느냐?' 

'일 하지 마! 이 땅을 살아갈 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는 메시지가 아니고, 
'염려하지 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 
이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이미 아시느리라' 

다시 말하면 '너희에게는 너희를 잘되게 할 주인이 있어, 아버지가 계셔. 
그분이 너무 선하시고, 그분은 풍요로우시며, 그분은 공급하시는 분이야. 

길가에 핀 백합화를 봐. 얼마나 이쁘니? 
근데 옷을 안 지어 입어. 하늘 아버지께서 다 입혀주시는 거야. 
너희는 이 꽃보다 얼마나 귀하냐?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24~33

너희의 삶의 우선순위, 너희 눈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어디로 포커스되어 있냐는 거예요. 
너희 눈이 무엇을 향하여 있냐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그 마4:4절에서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뜻이, '떡 먹지 말라'는 뜻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에너지의 양분으로 밥을 먹어야 되는 걸 아시는 분입니다. 
그거 먹지 말고, 금식하고, 말씀만 먹고 어떻게 살아요? 못 살죠. 

'그러나 말씀이 중요해, 영의 양식이 중요해!' 
왜요? '너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이 우선순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여러분, 어제 잠시 스포일(미리 알려줌) 해드렸던 그 주제처럼, 
오늘 우리가 나누고 싶은 것은, 
자꾸 하나님께 그것 구하는 데 몸부림치지 말고,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을 구하라'는 거예요. 

이 교회에 필요한 그것을 구하지 말고, 
이 교회를 통치하시는 하나님, 그분을 구하란 얘기입니다

◑우상을 제거하라

 

아브라함이 아들을 구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이 와버리시잖아요. *아브라함 장막 찾아오심
근데 우리는 '어, 하나님은 안 오셔도 돼요. 그냥 아들만 주시면 되지요' 
이럴 때가 얼마나 많아요? 

저도 큰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 일이 너무 많아요. 
무슨 뭐가 있고, 뭐가 있고, 
행사가 있을 때 교역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기획하고, 전략을 짜고, 
또 세부 수행사항에 대해서 점검하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정작 그렇게 추진하는 시간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비교하면, 
기도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죠. 

청년 집회 갈 때마다, 제가 막 큰 소리로 야단을 칠 때가 있거든요. 
왜 큰 소리를 쏟아내느냐 하면 '제발 그만 좀 준비해라.' 
막 초단위, 분단위로 콘티를 짜가지고 
10분 단위로 뭘 해야 되고, 뭘 해야 되고, 뭘 해야 되고... 엄청나게 계획을 세우는 겁니다. 

'어디 그 계획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되냐?' 
그러면서 청년부 집회할 때, 그런 얘기를 하죠. 

'제발 오늘 이 밤에 전기가 확 나가버렸으면 좋겠다' 
'에어컨만 빼고, 겨울에는 난방기만 빼고
전기 좀 나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찬양팀 연주 못하겠죠. 마이크도 안 나오겠죠. 
그럼 담당 목사님이 '아 진짜 전기 나갔으니까 오늘은 가서 자자' 그러겠습니까? 

나와서 뭐라도 하겠죠. 그게 something new 예요. 그게 새로운 겁니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 나타나는 일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하시는 게 아닙니다. 

성령의 특징이 뭐예요.. 새 영, 새 힘, 새 날, 새 노래, 새로운 something new를 
늘 원하시는데, 우리는 기득권이 되다 보니까... 

죄송하지만 여러분의 교회도 연혁이 16년이면, 기득권이 나올 때가 됐습니다. 
'이곳이 좋사오니..' 또 '이렇게 하는 게 좋사오니..' 
'작년처럼 하는 게 좋사오니, 16년 전에 했던 대로 하는 게 좋사오니..' 
이러면 성령이 오셔도, 역사 못 하십니다. 그건 아니죠. 

그러니 전기가 한번 나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늘 해 오던 방식을, 한 번 내려놓게 되는 거죠.

▲저는 16년된 여러분의 교회가, 리셋되고 리부트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너무너무 좋겠어요. 
정말 성령께서 이 교회, 이렇게 좋게 복음의 기치 아래에서 소명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교회인데,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교회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교회가 지금 새 날과 새 영을 꿈꾸며,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는 교회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그의 나라의 아름다움을 구하고 나가면,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거예요.
이때 우리가 '돈에 대한 욕심'을 끊어내고, 자족하는 마음을 갖는 게 훈련되어야 됩니다. 

부자라는 게 뭡니까, 부자의 기준이 뭐예요? 
얼마나 부자가 돼야지, 우리가 그 돈에 대한 욕망을 끊어낼 수 있을까요?

  

우상이라는 것은 무섭습니다. 왜 우상이냐 하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우상이 나오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 '돈이 우상이 된다'고 생각합시다. 내가 만족해버리면 끝나는 거예요. 
더 이상 돈을 바라지 않으면, 그 돈의 우상은 사라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그게 안 끊어지잖아요. 
왜냐하면 세상이 만들어준 기준을 따라가거든요. 

요즘 삼성전자, 하이닉스 주식 가지신 분들은 기쁘시다면서요. 
주식 잘 안 하시나 봐요. 뉴스 보니까 그게 몇 배로 올라가지고 
'그때 사놨어야 되는데' 이런 얘기를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근거하면, '그때 얼마 있으면 이 정도 벌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뉴스만 듣고 사니까, '나도 그 정도 있어야 되는데...' 

여러분, 얼마나 있어야 부자예요? 
어떤 분들은 한 10억 정도 자산이 있으면 부자랍니다. *2005년 경
또 어떤 분들은 한 70억 정도 자산이 있어야 부자로 인정된대요. *최근

근데 세계 표준으로 따져보면, 세계의 빈부 격차까지를 다 감안해서 따져보면 
연봉 2천만 원이면 부자예요. 
이 기준에 의하면, 아마 여기에 계신 분들 대부분 다 부자일걸요? 

우리는 늘 잘 사는 사람들 부자에게 기준을 맞춰서, 
'거기까지 도달해야 된다'라는 그 마음이 있다 보니, 
날마다 돈에 대한 갈망을 놓지 못하죠. 우상이 계속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 우상이 만들어지는 한, 하나님이 그 자리를 차지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부요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공급하신다고도 말하지만 
사도바울은 '자족할 것'을 얘기를 하죠.  빌4:11

여러분 우상을 끊어내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복음이 되심을 믿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것에 만족, 자족하는 거예요. 그때 사단이 물러가는 겁니다. 

 

여러분이 우상하고 싸우는 게 아니고, 더 큰 것이 들어와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그 하나님이 크게 보여져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우상에게 승리하는 유일한 길이거든요. 

여러분, 나의 작음을 알고, 하나님을 크게 보는, 
믿음의 눈이 커지시는 은혜가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구해야 돼요. 하나님께, 이것 저것 구하지 말고, 
그리고 나서 그것이 좀 주어지고, 돈이 좀 주어지고, 부함이 주어지면, 
'하나님 너무 기뻐요' 하다가, 
내가 구하는 그것이 없어지면.. 낙심하고 절망해버리는 것... 그건 우상숭배자 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너의 마음 안에 있는 우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별하려면 간단하다. 
무엇에 슬퍼하는지, 절망하는지를 보라'는 얘기예요. 

내가 기도하는 그것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 때, 슬퍼하는지 절망하는지 보라는 얘기예요. 
슬픔은 감정입니다. 슬퍼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내 마음이 무너지진 않아요. 

예를 들어서, 제가 뭐 목회가 좀 안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슬픔의 감정이 들어올 수는 있죠. 

그러나 제게 가족이 있고, 가족이 건강하고, 가족이 위로를 받고, 저를 지지해주고, 
저와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 저를 지지해준다면... 저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절망하진 않아요. 

그러나 목회의 성공, 유명해지고... 이런 게 나의 전부가 돼버려서,
목회가 우상이 되면 그렇게 절망하게 되겠죠. 
그런데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낙심해버리는 거죠. 

그래서 슬퍼하다가 다시 일어나서 다시 목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절망하면, 일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여러분을 절망시키는 게 뭔지를 따져보면.. 그게 우상이에요. 
아마 여러분들이 그토록 기도하고 있는 기도 제목이.. 우상일걸요

때로는 자녀의 성공, 입시, 이런 것들이 우상이 될 수도 있고, 
그게 잘 안 돼서 낙심하고 절망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존 비비어 목사님이 책을 한 권 썼어요. <무엇이 선한가> 
이게 원어제목으로는 <Good or God> 

굿! 너는 너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을 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구하라는 거예요. 

우리가 좋다 여기는 건,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서 좋은 게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예레미야 33:3절에서 뭐라고 얘기합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이거는 내가 가지고 나온 기도 제목, 그것을 막 크게 데시벨 높여서 
큰 소리로 외치라는 뜻이 아니죠. 문맥적 의미를 보면 뭡니까? 
'너는 위기 때를 만나고 고난의 때를 만날 그때에 나를 부르라'는 거에요.

 

◑주님을 부르짖어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부르라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초등학생이 집에서 혼자 있는데 불이 났어요.

근데 애가 전화해서 엄마한테 ‘엄마 엄마, 집에 불났어!

내가 한번 꺼보려고 하는데, 잘 들어봐!’ 하고

 

1번부터 3번까지 대안을 제시하면서,

1)번 내가 물로 한번 꺼볼게

2)번 그게 안되니까 이불을 뒤집어 씌워볼게

3)번 나가서 소화기를 가져올게

‘어때 엄마? 이렇게 하면 불이 꺼질 것 같아?’ 하고 물어보는데,

 

이때 전화 통화하고 있을 부모 여기 계세요?

‘그냥 어서 거기서 나와, 당장 나오라’고 그러겠죠.

 

불은 소방관이 끄는 거에요. 소방관 부르면 되는 거에요.

‘불이 났으면 소방관을 불러라. 소방관이 불을 끌 것이다’

이게 예레미야 33:3절입니다.

 

‘너는 위기의 때에 나를 부르라. 그 고난은, 그 위기는 내가 끄겠다’

그러니까 예레미야 33:3절 전체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너는 나를 찾으라.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  렘33:3

 

우리 인생에 만나는 미로와 역경, 그때 우리 자신이 대안이 됩니까?

돈이 대안이 됩니까?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인맥이 대안이 됩니까?  No

 

우상은 소금물 같은 거예요.

잠시 해갈에 도움을 줄지 몰라도, 곧바로 더 목이 타게 되거든요.

 

하나님만이 생수시라니까요. 하나님만이 샘물이시라니까요.

그거 붙잡고 살아가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생에 ‘오늘 이 밤에 무엇을 구해야 된다?’

하나님께 그 무엇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밤에 우리가 뭘 기도해야 될까요?

설교 후에 이제 담임목사님 나오셔서 기도인도 하실 텐데,

제가 기도의 제목들을 너무 이렇게 줄여놔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냥 한 시간 기도하실 때, 그냥 주님만 찾으세요.

이 교회는 보니까 ‘주여!’ 한 번만 외치던데, 다른 교회는 주여 세 번씩 외치잖아요.

이제 기도할 건데 군불 때는 거잖아요. 시동 거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떤 교회에 가니까 ‘주여 5창’을 하더라고요.

자, 부릉부릉해서 기도하는 거에요.

 

저는 그냥 주여, 백창, 천창, 만창하는 게, 예레미야 33:3절의 기도라고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위기를 만났습니다.

안정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이미 16년이라는 시간에 가둬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 우리가 알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새 힘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저희가 주님을 구합니다.

주님, 이 자리에 와 주십시오!’ 라고 외치는 기도에, 기도의 핵심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있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 주여! 이 교회는 오늘도 주님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정에 주님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녀에게 주님이 필요합니다!’

그 기도 말고 뭘 할 게 있어요?

 

우리가 뭐라고 1번, 2번, 3번, 4번 대안을 가져와서, 그분을 설득합니까?

물론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우린 유한하기 때문에, 우린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린 양이기 때문에,

뭐라도 아뢰야 됩니다. 그 기도를 멈추라는 것은 아니에요.

 

기도로 구하는 것 자체가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니까, 기도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우상을 구하는 기도는 멈추시라는 얘기예요.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너무 구하지 말라는 거예요.

 

옆집 사람과 너무 비교하지 말라는 거예요.

왜 옆집 가진 걸 다 내가 가져야 합니까?

 

▲저희 교회에 전도사님이 한 분 계세요. 찬양 인도를 하시는 분인데,

강해설교가 마쳐지고 나면, 이 분이 곡을 써서, 공동체가 같이 부릅니다.

 

<에스더 강해>가 끝난 다음에, 이분이 곡을 또 써서,

저희 교회 공동체에서 큰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 곡 제목이 ‘오늘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라는 찬양이에요.

 

그 찬양의 후렴구 가사가 이렇습니다.

‘이 커다란 바다에.. 나의 배는 너무 작으니.. 나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 커다란 바다에.. 인생의 커다란 바다에.. 나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목회라는 이 커다란 바다에 언제 폭우가 몰아치지, 어디로 바람이 불지,

어디로 휩쓸릴지, 언제 파도가 높을지 모르는 이 상황 속에서... 문제가 뭡니까?

내 배가 작은 거예요. ‘그러니 내게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런 찬양의 가사거든요.

 

이상현 전도사입니다. 이상현 전도사의 목소리가 너무 좋고요.

위로가 많이 되는 찬양 곡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바다가 크고 넓은데.. 문제는 내 배가 작은 거에요.

그럼 이제 은혜가 필요한데, 어떤 은혜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옵션 두 가지 제시해 볼게요.

1) 첫 번째는 이 커다란 바다에, 나의 배가 작으니 은혜를 주십시오!

다시 말하면 큰 배, 크루즈선 같은 거 있잖아요.

축구 운동장 막 4배, 5배만 하다면서요. 그 안에 뭐 없는 게 없대요.

조그만 파도에는 미동도 안 하는데, 조용히 간답니다.

이렇게 ‘큰 배, 크루즈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고요.

 

2) 두 번째, 또 다른 은혜가 있습니다.

‘이 커다란 바다에 나의 배는 작으나, 하나님 이 배에 오셔서 나의 항해자가 되어주십시오’

 

첫번째 기도는.. 내 배가 작은데, 큰 배라는, 내가 좋아보이는 그것을 달라는 기도이고,

두번째 기도는.. 내 배는 작아도 상관없는데, 하나님이 오셔달라는, 하나님을 구하는 기도죠.

 

여러분은 어떤 기도를 구하시겠습니까?

크루즈는.. 우리 귀에 솔깃하지만, 이런 기도가 응답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하나님이 크루즈도 주시고, 하나님이 항해사도 되어주시는 경우도.. 거의 없어요.

 

우리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만약 크루즈 받잖아요..

그럼 이제 바다가 만만해지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을 안 찾아요.

제 용어로 하면 ‘먹튀신앙’ 됩니다. 먹고 튀는 거죠.

 

여러분이 크루즈 받으셨어요. 그러면 바다가 만만해 보이는 거에요.

그럼 어디로 가겠어요? 하와이부터 가야죠. 가는 길에 괌에도 가고, 사이판에도 가고,

가서 와이키키 해변에 가서, 거기서 노느라고... 정신이 팔려서 사명 감당은 뒷전일 거예요.

 

여러분, ‘이 위기만 모면 되고, 이 사업만 잘되면 하나님 잘 섬기겠습니다...’ 하지 마시고,

그 어려움의 때에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이번 어려움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회가 되게 해 주소서’

이때 하나님 주시는 복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고요.

 

다 받은 다음에는 ‘내가 뭘 어떻게 하겠다’ 하지 마시고,

지금의 현재 이 상황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잘 헤쳐나가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선택한 광야 교회

 

이 장면이 출애굽기 33장에 그대로 나옵니다.

출33: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내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그 다음 구절을 눈여겨 봐야 됩니다.

출33:3b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지금 광야인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줄게

내가 한 약속을 지킬게. 너희를 풍요의 땅으로 들여보내줄게.

그런데 나는 너희와 같이 안 갈 거야!’ 이렇게 하나님이 선언하십니다.

 

이 맥락을 좀 아셔야 되는데, 출애굽기 32장에 ‘아론의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이 나오죠.

하나님이 그 장면을 보고 화가 나셔가지고

‘이놈의 민족 다 진멸시켜버리고, 모세를 통해서 새로운 민족을 시작해야 되겠다’ 하셨는데,

모세가 중보기도 해서 겨우 살려놨단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지 않으시고 겨우 살려는 두셨지만,

‘야, 니네끼리 가나안에 올라 가!’ 하고 떠나보내시는 장면이에요.

대신 내가 약속은 지킬 게!’ 하시고, 가나안 땅으로는 보내주겠다라고 약속하신 장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같이 안 가시겠대요. 여기도 두 가지 옵션이 있는 겁니다.

1) 가나안에서 하나님 없는 풍요. (나는 안 갈 거니까, 너희끼리 젖과 꿀의 땅에 올라 가서 잘 살아!)

2) 힘들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광야 교회, (나중에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겠죠)

 

여러분, 사실 우리는 현실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 없는 풍요’를 부러워하지 않나요?

은근히 그 길로 가려는 유혹을 받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은 적당히 믿더라도... 그래도 이 세상에서는 유족하게 폼잡으며 사는 삶!

하나님을 잘 믿는다면서, 찌질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게 아니라

불쌍하게 보이지 않나요?

 

우리가 교회와서는 ‘아멘’ 하는데,

밖에 나가보면 그래도 돈이 1등이고...

 

모세는 잘 선택을 했습니다.

33:15절에 보니까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보내지 마십시오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광야를 선택하죠.

 

그런데 모세가 위대한 것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정말 위대한 기도 한마디 합니다.

출33: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모세만큼 체험했던 사람이 있습니까?

출애굽시킬 때 애굽의 그 10가지 기적을 포함해서,

정말 인간으로서는 한 번도 경험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일들을 너무 많이 체험했던 사람이

모세예요.

 

그런데 광야는 만만한 곳이 아니죠.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 (가나안의 지금 당장의 젖과 꿀의) 풍요는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광야에서 저희와 함께 해주시면 좋은데, 다만 부탁드릴 게 있어요.

하나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날마다 보여달라는 거예요. 주의 임재를 보여달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매일 말씀하여 달라는 거예요.

 

▲신약시대에 사도행전을 보면, 돌에 맞아 죽어가던 스데반이 했던 설교문 안에

이 장면이 그려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했던 그때가 광야 교회였다’ 이렇게 표현하죠. 행7:38

 

교회가 무엇일까요?

저는... 요즘 한국교회가 너무 부유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권력의 힘, 돈의 맛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없어도, 유력한 자들이 있고,

돈이 있으면 교회는 운영되고 있구나라고 학습되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광야를 탈피하는 것이 부흥이라고 여기고,

무언가 부족함이 없는 것을 부흥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초로 탄생한 교회는 광야에서 태어났고,

그 광야라는 곳은 히브리어로 ‘미드바르’인데,

말씀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다바르’입니다.

광야 미드바르는.. ‘말씀이 나오는 곳, 말씀이 들려지는 곳’이란 뜻도 돼죠. 주2)

 

광야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곳도 없습니다.

그들을 도울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야 했죠.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유지될 수 있으므로,

광야교회라는 교회의 최초 모델에서 너무 멀어진 것은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시금 겨울 나무를 주신 것은 아닌가?

이 겨울의 시즌을 주신 것은 아닌가? .. 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질로 돌아가라 말씀으로 충분한 교회가 되어라’

저는 그런 교회를 꿈꾸면서, ‘우리는 교회’라는 교회를 목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번도 저희 교회 이름을 못 들어봤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지금... 두 가지 형태의 교회까지가 나와 있어요.

하나는 고체 교회, 하나는 액체 교회.

 

고체 교회는.. 뮤지엄 처치,

미라처럼 생명력을 잃어버려서 더 이상 확장성이 없는 거예요. 딱 가둬져 버린 겁니다.

 

여기에서 탈피하고자 많은 교회들이 몸부림치고 있는 게, 액체 교회입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유연해질까?

돛단배처럼 성령의 바람에 따라 좀 움직여 볼까?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분께 좀 제안하고 싶습니다.

기체 교회가 되세요. 기체교회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지는...

여러분이 있는 곳곳에서 교회가 되십시오.

 

‘우리는 교회’라는 이름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교회라는 거예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이 거하는 교회라는 겁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새 영을 입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교회라는 겁니다.

그 부르심에 따라, 여러분이 계신 아파트 단지를, 일터를, 학교를,

얼마든지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교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그곳이 왜 교회입니까. 말씀이 있으니까요.

그럼 보세요. 하나님이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죠..

그리고 나서 나오는 게 성막이 나오고요. 그리고 나서 나오는 게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아이디어는 아니에요. 다윗이 하나님의 성막 텐트를 보면서 아픈 마음으로,

그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꼈던 마음 때문에 허락하신 것이죠.

 

그래서 성전은 무너지죠.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성전을 3일 만에 무너뜨리라' 말씀하시죠.

그래서 성전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에 성막이 다시 나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할 때, 요1:14

‘거하셨다’가 바로 ‘장막을 치셨다' 즉 '장막이 되어 주셨다’는 뜻이에요. 성막의 얘기입니다.

다시 ‘성막 시대’로 돌아간 거죠. 물론 예수님은 ‘성전’도 되십니다. 요2:21

 

지금은 ‘성령 시대’죠. 성령이 어떤 분이십니까? 진리의 영이시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이 전부라고 말씀하는 분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부라고 말씀하는 분이 성령이세요.

 

교회가 왜 진정한 교회인가요?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교회이고,

말씀의 진리가 선포될 때 교회이고,

성령의 진리가 선포될 때... 교회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고체화 되지 않도록,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스텔스 교회처럼, 여러분들이 믿는 자인지도 몰랐는데,

여러분의 선한 행실과 선한 말과 보여주는 행위로 말미암아 칭찬을 들을 때,

 

‘어 저 사람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어!’

그게 바로 복음을 전하는 소명자의 삶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상의 선교사들이거든요.

그 소명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구한 다윗

 

그러나 내 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되겠죠.

이것을 잘 알았던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성도가 세상으로 나갈 때 세상이 녹록지 않죠.

시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않으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전쟁이 나고 대적이 나를 괴롭히는데, 다윗은 오히려 평안하대요.

아마 전쟁이 나면, 우리는 구국기도 같은 거 할 겁니다.

‘무기를 주세요, 힘을 주세요, 승리를 주세요, 대단한 영웅을 주십시오’

뭐 기도 제목이 수백, 수천 가지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위기의 순간에 딱 하나만 바라본다니까요.

4절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one thing’

이게 바로 ‘one thing 기도’예요.

  ☞원 씽, 오직 한 가지 일 https://rfcdrfcd.tistory.com/15976422

기도라는 게 하나로 압축된다니까요. ↙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one thing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27:4

 

시27편을 압축하면 ‘나는 위기의 때를 만나면, 나의 대안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구하겠다’는 거예요. 이게 좀 천박한 용어를 쓰자면

‘하나님 배째십시오. 저는 대안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

여기서 '아름다움’이라는 게 뭘까요? 시27:4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가장 좋은 대안들로 가득하시다. 각양 좋은 은사로 가득하시다’

이게 아름다움이라면,

 

그럼 여호와란 뜻은 뭡니까?

출애굽기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여러분 잘 아다시피 영어로 바꾸면 ‘I AM who I AM’

‘나는 나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나는 나다’

이것은 사실은 두 가지 의미에요.

-이름이 없다 라는 뜻도 되고

-나에게는 한 가지의 이름으로 규정할 수 없으므로, 이름이 수없이 많다라는 뜻도 됩니다.

 

저는 후자의 해석이 좋아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이름이 엄청 많거든요.

그러면서 하나님께는 히브리 시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적으로 썼지만

원래대로 하자면 I was who I was 나는 예전에도 있었고,

I AM who I AM 나는 지금도 있으며,

I will BE that I will BE 나는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너희가 어떤 이름을 원하느냐? 나는 그 이름이 되어줄게’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평안을 원해? 그럼 나는 여호와 샬롬이 되어줄게’

‘너의 인생을 인도함 받고 싶어? 여호와 로이 목자가 되어줄게’

 

▲지금 이 시간에도 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이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rfcdrfcd.tistory.com/15978427

 

여러분이 구하시면 무엇을 구하시고 계신가요? 이 밤에 그것을 구하는 거예요.

‘하나님, 저희 교회에 이것이 필요한데, 하나님 이것을 주십시오’ 이렇게 구하실 수 있죠.

 

그러나 하나님을 구할 때, 이름을 같이 구해보세요.

하나님이 그 이름이 되어주신다는 겁니다. *여호와이레, 여호와샬롬, 여호와라파,

 

그래서 5절, 그 위기의 때 여호와께서는 나타나십니다.

‘환란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에 두시리로다’ 시27:5

 

여호와가 주어로 등장하면서, 해결자로 나타나시죠. 불렀던 여호와가 나타나시죠.

여러분 보세요. 전쟁이 났어요.

여러분 다윗이 전쟁이 나서, 숨어봐야 어디를 숨겠습니까?

 

근데 하나님께 간구했더니 하나님이 대안을 말해주셨죠. 그 대안이 어떤 곳입니까?

대적은 찾을 수 없는 매우 비밀한 초막, 은밀한 곳, 높은 곳,

대적이 찾을 수 없는 곳,

하나님만이 우리의 가장 안전한 곳이 되어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죠.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도 내가 바라는 그것을 구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구하겠습니까?

 

오늘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싱글아이 다른데 한눈팔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여서 내가 하나님의 향하여서 집중하할 때,

하나님께서 이 교회와 우리 일터와 우리 가정과 우리의 자녀와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그분만을 구하는 성도, 또 교회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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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막1:1절의 두 가지 해석 방향

 

1) 목적격 소유격 (Objective Genitive) 해석: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대한) 복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복음의 '내용이자 대상'이 되는 해석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그의 생애, 십자가, 부활)를 증거하는

소식이라는 의미입니다.

 

2) 주격 소유격 (Subjective Genitive) 해석: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선포하시는) 복음"의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복음의 수여자가 되는 해석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직접 전파하시고 완성하신 구원의 은혜나,

예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권능의 기쁜 소식이라는 뜻을 강조합니다.

 

이 두 해석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입니다.

목적격은 복음의 내용(Contents)을 명확히 하고

주격은 복음의 기원과 권위(Authority)를 강조합니다.

 

주2)

히브리어로 '광야'나 '사막'을 뜻하는 미드바르(מִדְבָּר)는

전치사 '미(מִ־)'(~로부터)와 '다바르(דָּבָר)'(말씀, 일, 사물)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말씀이 나오는 곳"이나 "말씀으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곳)"으로 풀이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