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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30장 멍에를 꺾고 포박에서 자유하리라

LNCK 2026. 7. 7. 16:15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희망>      <재건축>

(24) 멍에를 꺾고 포박에서 자유하리라 | 예레미야 30:1-9 | 2026.07.05 | Youtube

 

◈멍에를 꺾고 포박에서 자유하리라            렘30:1-9           2026.07.05

 

※아직 남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가 될 것이며, 이어서 회복될 것까지

미리 예언하고 있습니다. (본 장의 기록 시기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는 중에,

유다를 멸망시키기 직전의 극심한 위기 상황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예레미야 30장입니다.

렘30:1~9절 오늘 본문 말씀의 주제는 '멍에를 꺾고 포박에서 자유하리라'

 

오늘 본문이 예레미야 30장 인데요.

이 30장은 예레미야 전체에서 신학적 전환을 선포하는 매우 중요한 장입니다.

 

흔히 신학자들은 예레미야 30~33장까지를 위로와 회복의 장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묵상해왔던 예레미야 1~29장까지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이 있었다면,

 

이제 30~33장은, 심판 저 건너편에 주께서 예비하신 위로와 회복의 무지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렘30장은 심판에서부터 소망으로 넘어서는 문턱과 같은 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한 예언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침략 받음과 멸망,

예루살렘의 함락, 백성들의 포로 생활에 대한 예언, 그리고 다윗 왕조의 몰락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제 이스라엘의 미래는 끝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미래가 단절된 절망의 자리에서부터 희망의 예언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30~33장

그리고 그 깊은 절망의 밤에서, 희망의 새벽이 움터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선 본문에 묘사된 당시에... 절망적 상황을 함께 느껴보십시오.

 

30: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무서워 떠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그들은 지금 평화, 혹은 샬롬을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둘러싸고 온통 두려움 뿐이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그들의 존재와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이 그들의 처한 모든 상황, 모든 환경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본문의 6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30:6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어찌하여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는가’

 

아마도 여인들의 해산의 고통, 해산의 수고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극한의 고통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유대 땅의 남자들까지, 그런 해산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이런 극한의 고통을 경험하며,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절망의 예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갑자기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절망의 예언에 이어 희망의 예언이 선포됩니다.

 

30: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얼마나 기다리던 메시지였습니까?

 

◑그렇다면 절망 속에 거하던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1. 첫째 절망의 어둠 가운데서 희망을 기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절망의 어둠 속에서 희망을 기록하게 하십니다.

 

자, 본문이 시작되는 1절과 2절의 말씀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30:1~2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여러분, 두려움과 절망이 찾아올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요?

희망이죠. 희망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떤 희망의 말씀은, 한 번만 듣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희망의 말씀이라면, 듣고 또 듣고, 또다시 들어야 합니다.

내 마음속의 두려움이 떠날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기록인 것입니다. Recording인 것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가장 확실했던 미디어가 있다면, 그것은 기록이었습니다.

희망을 기록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망의 어둠 속에 있는 백성들을 위해서, 희망을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희망의 책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된 책으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물론 인간의 범죄, 인간의 실패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보다 더 큰 소리로 하나님의 은혜와 희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커다란 흐름을 우리는 네 개의 기둥으로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창조, 타락, 구속 그리고 완성입니다.

 

창조, 타락, 구속, 완성... 이것을 우리는 ‘성경의 세계관’ 이라고 말합니다.

자 성경은 인간의 창조 이후,

인간의 범죄와 타락을 증언하지만,

범죄와 타락을 넘어서서 구원과 회복,

그리고 궁극적인 완성을 약속하고 있는 책입니다.

 

△인간의 범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은 고난은,

우리의 삶의 마당에서, 그리고 역사의 마당에서 가장 보편적인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성도들에게, 이런 고난을 면제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한 일이 없으십니다.

 

따라서 고난은 인생의 길을... 역사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필연적인 경험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고난 중에서 우리를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보면,

인류에게 마침내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눈물도 환란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나라를 궁극적으로 언약하고 있습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이 성경의 말씀을 기록으로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계속해서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듣고, 그리고 지키면서,

희망을 붙들고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와 그 밖에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성경을 희망의 책으로, 우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디모데후서 3:16~17절의 말씀을 기억하고

이 책을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아멘, 그렇습니다. 세월이 어둡고, 시대가 절망적이어도

성경을 기록된 책으로 주신 그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희망이 필요할 때마다, 이 책을 읽으십시오.

아니, 날마다 읽으십시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날마다 희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인류의 매일의 양식입니다. 저를 따라서 한번 하실까요? ‘희망은 매일의 양식입니다!’

 

▲2. 자, 절망 속에 있는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본문의 말씀을 주신 이유 두 번째는,

환란 중에서 구원의 때가 다가옴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30:7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그렇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자유를 잃어버리고

저 바벨론 그 생소한 이방 나라의 포로로 끌려가는 것,

그것은 피할 데 없는 슬픔의 날이요, 엄청난 환란의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다의 마지막 날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재앙을 허용하신 하나님께서는,

재앙 건너편에 엄청난 구원의 드라마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구원의 때가 이제 다가온다’ 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예언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다시 본문 3절의 말씀을 한번 더 읽습니다.

 

30: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여기 3절에 선지자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함께 언급하죠.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 ... 이렇게 말합니다.

 

자, 이스라엘과 유다를 합하면, 통일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됩니다.

그 열두지파가 모두 함께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아직 포로로 잡혀가기도 전인데, 포로로 잡혀갈 것은 물론이고, 돌아올 것까지 예언하죠.)

 

그들은 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한때 북쪽 이스라엘, 남쪽 유다로 분열되었습니다.

마치 우리 한국이 북한과 남한으로 나뉘어진 것과 비슷합니다.

 

그때 북쪽 이스라엘은 주전 721년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가고요.

남쪽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지만

이제 돌아올 때는 그 둘이 함께 돌아오고, 그 둘이 함께 통일 국가를 이룰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는 비극적인 종말이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섭리안의 회복을 경험할 때는,

분열을 넘어선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 다시 더 좋은 모습으로 연합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심판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하나님의 회복은 옛날의 상태보다도, 훨씬 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확실하고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기에,

본문 3절을 잘 보시면, 시작할 때에도 끝날 때에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류가 타락했을 때 우리는 에덴의 낙원을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었을 때

우리는 에덴 낙원보다 더 좋은 새하늘, 새 땅을 영원한 기업의 땅으로 선물 받게 된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범죄하고 타락했을 때,

우리는 육체의 사망이라는 형벌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을 때,

우리는 사망 건너편에 더 좋은 부활의 소망을, 육체의 부활을 선물로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흔히 ‘부활장’이라고 말합니다.

‘부활의 몸의 영광’을 묘사하고 있는 장입니다.

 

고전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이것은 죽음을 넘어선, 더 위대한 부활의 완벽한 승리의 약속인 것입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15:55절과 57절의 승리의 노래, 그 승리의 찬미를 들어보십시오.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아멘 그렇습니다.

인류에게 타락의 비극이 없었다면, 이런 구원의 놀라운 승리도 우리는 몰랐을 것입니다.

더 좋은 구원, 더 위대한 구원, 더 영광스러운 구원을 예비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할렐루야! 아멘!

 

▲3. 본문의 세 번째 레슨은,

이제 멍에를 꺾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30: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자, 그들은 이제 70년간의 멍에를 꺾어버리고,

70년간의 포박을 끊고 참으로 자유하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이방의 지도자였던 느부갓네살왕을 섬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약속이 있어요.

 

그들은 느부갓네살의 멍에서 해방될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자유한 존재가 되어 영광의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윗 왕을 섬기리라’ 이렇게 말합니다.  :8

아니 다윗왕은.. 이 시점에서 본다면, 이미 죽은 사람이 아닙니까?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예언할 때, 다윗은 이미 죽은 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다윗왕은 누구입니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의로우신 왕 우리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가장 위대한 분을 섬기는 삶보다, 더 위대한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요?

세상에서는 대통령이나 왕 곁에서 그를 섬긴 것도 위대한 삶으로 기억하고,

사람들이 칭송을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 삶의 위대함과

비교할 수가 있을까요? 세상의 지도자를 섬긴 일은 세상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섬김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사도는 말합니다.

 

고전15:58절에서 ‘주 안에서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아멘!

따라서 하십시다 ‘주 안에서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 안의 수고는 결코 헛된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바친 섬김의 시간, 섬김의 노력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 무더운 여름철에 지구촌 공동체들이

선교를 위해 국내외 온세상에 흩어져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말씀을 오늘 영상으로 듣고 있는 이 시간,

저는 과테말라에서 땀을 흘리며 선교사님들을 섬기기 위해서 수고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제 수고도 헛되지 않다’ 이렇게 믿습니다.   *미리 설교 녹화

 

◑적용 / 삶과 신앙의 리모델링을 원하시는 하나님                  -출처-

 

요즘 리모델링이 유행이다. 낡고 오래된 주택의 골격은 그대로 두고,

내장재를 바꾸거나 구조를 변경해서 안락한 집으로 다시금 고쳐서 쓰는 것이다.

 

단순히 주택의 리모델링 뿐 아니라, 얼굴이나 몸매도 리모델링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쓴다.

눈은 쌍거풀 수술로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코에도 새롭게 기둥을 넣어서 세우고,

가슴에도 스티로폼 내장재를 넣어서 새롭게 꾸미고,

둔탁하게 생긴 다리와 불록 나온 뱃살을 깎아서, 날씬한 몸매가 드러나게 하는

최신식 리모델링을 하느라 분주하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집이나 몸을 리모델링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영적으로 신앙의 리모델링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영적으로 살기가 편한가? 뭔가 바꾸거나, 덜어내거나, 덧붙여야 할 것은 없는가?

진정한 삶의 질을 위한다면 영적인 편안함이 우선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왜냐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듯, 영혼이 편안해야 범사가 편안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리모델링을 해야 할 형편에 놓여 있었다.

육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읍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됨으로 백성들은 포로 생활, 노예의 신세를

앞두고 있었고, 정치인들은 바벨론의 그늘에서 자기들 이익만 챙기느라

나라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과 등진 상태요,

거짓 선지자들이 득세를 하고, 정의와 공의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성전의 파괴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가 되고 말았다.

 

즉 이스라엘이라는 골격만 남아 있을 뿐, 모든 것이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이요,

지금 빨리 리모델링을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철거해야만 할 형편이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현장감독으로 세우셔서

리모델링을 주도하라고 명하셨다.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렘 1:10)』 말씀하시면서,

빨리 공사를 시작하라는 사명을 허락하셨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렘 1:6)』 라며 거절하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1:8)』하시면서 책임을 맡겨 주셨다.

 

마침내 리모델링 공사의 현장 감독으로 임명을 받은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새롭게 고치고 세울 계획을 갖고 본격적인 공사를 추진하게 되는데....

 

① 먼저 그들을 떠받치고 있던 우상숭배의 기둥을 뽑아서 하나님의 기둥으로 교체하고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렘 3:14

 

② 인본주의적인 생각과 불의로 가득 찬 사회질서의 벽을 허물어서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의 내장재로 바꾸고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렘 5:1

 

③ 거짓을 행하던 선지자와 제사장들, 그리고 백성들의 바닥재를 뜯어내고

말씀의 바닥재로 다시 깔며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렘 6:16

 

④ 패역하여 회개치 않고, 자기 뜻대로 행하던 천장을 뜯어내서, 하나님께 통회하며 회개하는

천장으로 다시 꾸미고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렘 7:3

 

⑤ 자기의 악한 마음과 꾀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은 창문을 뜯어내서,

새로운 영적인 창으로 바꾸고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렘 7:23

 

⑥ 형식적인 제사와 금식, 그리고 허탄한 생각의 벽지 대신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사랑의 도배를 하고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렘 15:19

 

⑦ 언약을 파기하고 율법을 우습게 여겼던 낡은 전기시설을 교체하고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렘 17:7

 

예레미야는 오직 이스라엘을 다시금 리모델링해서 선민으로 우뚝 세우기를 소망하면서,

최선을 다해 공사에 임했고, 이러한 예레미야의 애쓰는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오늘 본문 말씀의 축복 (포로에서 돌아옴, 성읍과 궁궐을 다시 세움,

감사와 찬양의 고백이 넘치게 만드심, 존귀하고 번성케 되어짐, 자손이 복을 누림,

이방세력들을 벌하심,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도록 인도하심)을

허락하시면서,

 

새롭게 거듭나는 이스라엘, 리모델링 한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신 것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새로운 변신인가?

다 쓰러져가던 이스라엘 민족이 마침내 새 집 이스라엘로 새롭게 리모델링이 되어졌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축복인가?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아주 게을러서 집안 청소를 하는 일이나,

무언가를 꾸미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그 청년은 길거리에서 예쁜 꽃병을 하나 줍게 되었다.

그는 그 꽃병을 자기 집 거실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꽃병하고 장판이 잘 안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청년은 장판을 바꿨다.

 

그리고 다시 보니 장판은 새 건데, 벽지가 낡아서... 할 수 없이 벽지까지 바꿨다.

집안 분위기가 환해졌다. 그런데 소파가 너무 낡아서 서로 조화가 안 되는 것 같아서

이 참에 소파까지 바꿨다. 그랬더니 집이 완전히 새 집이 되었다.

 

그 청년은 꽃병을 하나 주은 것 때문에 집안 전체를 리모델링했고,

어느새 자신의 게으름의 본성까지 고치게 되는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꽃병을 각자의 심령 안에 모셔 들이고 살아가고 있는데,

꽃병 되신 예수가 나의 삶과 신앙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가?

 

혹시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왠지 겉돌지는 않는가?

예수와 어울리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고쳐야 할 것이며, 무엇을 갖춰야 할 것인가?

게으른 청년이 꽃병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환경을 바꿨듯이,

우리 또한 예수를 영접함으로 인해, 나의 삶과 신앙 전체가 리모델링 되어지는

역사를 체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삶과 신앙의 리모델링을 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많은 부분을 리모델링 해야겠지만, 나는 영적으로는 예배의 리모델링을...

그리고 사랑의 리모델링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1) 예배의 리모델링

신앙은 곧 예배요, 예배는 곧 신앙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공적인 예배를 만들어내는 것이 곧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꾸려가는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과 어울리는 예배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식적인 예배,

마음에도 없이 바치는 제물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1-13)』

고 말씀하시면서 예배의 리모델링을 할 것을 명하셨다.

 

즉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 앞에서 육적인 생각을 앞세워 접근하니,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겠는가? 또한 하나님과의 영적인 만남이 없는 예배를 통해

무슨 새 힘을 얻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예배를 리모델링하자.

①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라 했으니, 우리 또한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서

늦지 않게 성전에 와서 예배를 준비하자. 준비하는 만큼 은혜를 받는 것이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약속의 말씀대로,

입을 열어 은혜를 받을 준비를 하는 예배를 만들자

 

②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니 만큼 구경꾼이 아닌

적극적인 주인공의 자세로 예배에 임하자

 

③ 마음의 문이 닫히면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없고,

허락하시는 은혜를 받아낼 수 없으니, 마음의 문을 열고 예배하자

 

④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으니, 순종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올리는 예배를 하자

 

⑤ 타성에 젖은 예배가 아니라 변화를 갈망하며 체험하는 예배를 하자

 

⑥ 예배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다는 확신을 갖고, 예배 후에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예배를 드리자

 

⑦ 설교를 사람의 말로 받는 인본주의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는

신본주의적인 예배를 하자

 

⑧ 단순히 물질만 바치는 예배가 아니라 우리 자체가 산제물이 되어지는 예배를 하자

 

⑨ 예배를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로, 예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됨을 확인하는

예배를 드리자 (이렇게 되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⑩ 예배를 통해 새 힘을 얻고 새사람을 덧입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자.

 

나는 여름 휴가철이 끝난 뒤 가을부터, 우리 교회의 예배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바꿀 계획이다.

그동안 여수에서 5년 6개월 동안 같은 형식의 예배를 드렸더니 타성에 젖는 느낌을 받았고,

예배의 리모델링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좀 더 살아있고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만들기 위해 지금 찬양 팀이 준비를 하고 있고,

이제 기획위원들과 논의를 한 후에 새로운 형식의 예배를 드릴 계획이다.

 

예배가 달라지면 우리의 삶과 신앙도 달라지게 될 줄로 믿는다.

나는 우리 성도들이 예배의 리모델링을 통해 변화를 체험하고, 새 힘을 얻기를 바라며,

예배의 주인공들이 되어지길 간절히 축원한다.

 

2) 사랑의 리모델링

 

요즘 여기저기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로 요란하다. 부부지간에 사랑에 금이 가고,

부자지간에 등을 돌리고, 이웃과 전쟁을 치루고, 성도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고,

목사와 성도 간의 불신으로 신뢰에 금이 가고...

빨리 손을 써서 사랑의 리모델링을 하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사실 사랑이 있어야만 존재가 가능한 관계 속에서, 사랑이 없으니

서로 가면을 쓴 채로 껍데기만 만나고 있는 형편이다.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는 그 무게가 가벼워서, 고난의 바람이라도 불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빨리 손을 써야 한다. 사랑으로 리모델링을 다시 해야 한다.

어느 부분에 금이 갔는지, 금이 간 원인이 무엇인지를 빨리 찾아내야 하고,

그 원인을 알았다면 빨리 손을 써야 한다.

 

나중에 하겠다고 방치해 두면, 틈이 점점 넓어지고 깊어져서, 겉잡을 수 없게 되어지고 만다

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틈과 흠집이 작을 때 손보기가 쉽지, 커지면 감당할 수 없고,

한번 기울어진 관계는 다시 세우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빨리 손을 써서 리모델링을 하길 바란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사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사랑의 리모델링’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집 안의 가구를 들여 놓는 일,

지나치게 자녀의 성적에만 관심하는 일, 투자를 통해 이익을 거두는 일 등에만 신경을 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서로 사랑이 있을 때나 필요한 것이지, 사랑에 금이 갔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집안의 가구도 가족들이 서로 화목하고 사랑을 할 때 예쁘고 소중한 것이지,

좋은 가구 들여다 놓고 매일 같이 싸움만 하면, 그 가구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오히려 더 비참한 것이 아닌가? 누릴 줄 모르니 말이다.

 

자녀들 성적도 마찬가지다. 부부지간에 사랑에 금이 가서 갈라설 위기에 있는데,

자녀들 성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요즘에는 서로 안 맡으려고 하는데...

그리고 가족간의 관계가 끊어졌는데 그깟 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요즘 아내들이 어리석어서 사랑은 없어도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들을 하는데,

정말 미련한 생각이다. 남편이 있으면 남편의 것이 전부 내 것이 되는 것인데,

왜 아내들은 남편과의 사랑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지....

 

물론 남편들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비록 내 아내가 젊고 예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 고생하며 여기까지 동반자로 온 사람인데,

그 아내를 두고, 왜 다른 곳에 눈길을 주는가?

 

그리고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려고, 기준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빨리 사랑으로 리모델링을 하자. 그리고 허물어진 곳을 보수하고,

금이 간 곳을 사랑으로 채우자. 더 이상 기울면 회복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리모델링 작업에 착수하자.

그래서 그 어떤 비바람의 고난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사랑의 가정으로 재건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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