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렘34, 35장 약속을 지켜야 할 사람들

LNCK 2026. 8. 10. 10:4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신뢰, 신용, 믿음>

(28) 약속을 지켜야 할 사람들 렘34:8-11, 35:5-10 2026.08.02 YouTube

 

◈약속을 지켜야 할 사람들           렘34:8-11, 35:5-10        2026.08.02. [예레미야28강]

 

오늘의 본문은 예레미야 34장과 35장 두 장입니다.

시인 이해인의 시 중에 '사랑의 약속'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분에게 네! 하는 순명의 순간부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속입니다.

그러나 한 곳에 속해 있어모든 것에서 놓여나는

담백한 자유입니다.

 

사랑의 약속은지킬수록 단단해지는 보석입니다.

충실할수록 아름답게 빛나는

무언의 노래입니다.」

 

같은 똑같은 ‘사랑의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정연복이라는 시인도 이런 시를 썼습니다.

 

「사랑이 물거품 되는

가벼운 세상이라 말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새끼손가락 걸어

 

사랑의 약속을 하는

연인들이 있을 것이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다」

 

마지막 줄이 인상적이지 않습니까?

‘사랑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

그것이 바로 세상이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있는 이유라고요!

 

▲제가 오늘 본문 예레미야 34장, 35장 두 장을 선택했는데, 두 장은 아주 대조적이에요.

34장에는 약속을 깨트린 사람들이 등장하고,

35장에는 약속을 지킨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렘34장은 주전 588~586년경,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남유다의 예루살렘을 2차로 포위하여

공격하던 시기(시드기야 왕 재위 9~10년)를 역사적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유다에서 견고한 요새였던 라기스와 아세가만 남고 34:7

수도 예루살렘마저 함락되기 직전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예레미야 34장이 열리면, 1~7절까지 예루살렘 성 멸망의 이야기가 증언됩니다.

예루살렘 성은 이제 바벨론 왕의 손에 넘어갈 것이라고,

그리고 유다의 왕도 포로로 바벨론으로 잡혀갈 것이라고.

 

그래도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잘 순종하면,

불행한 죽음만은 맛보지 않을 것이라고, 편안히 죽을 것이라고.. 렘34:4~5

이런 예언의 말씀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그 다음 텍스트.. 이게 오늘 본문이에요.

오늘 본문에서 시드기야 왕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계약,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트린 사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한 사람들

 

렘34:8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34:9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위 8~9절에 보면, 시드기야 왕과 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약속을 하고)

히브리 남녀 노비를 자유케 하였습니다. 노예를 자유인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 이유는, 1) 성내에 음식이 핍절해서, 노예까지 먹일 음식이 부족해서였든지,

2) 노예들을 군인으로 쓰는 조건이었든지..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그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떻게 이행했습니까?

 

34:10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하여 놓았더니’

 

그러니까 처음에는 약속을 지킨 거죠.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그대로 지켰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11절은, 그 약속을 깨버린 역사가 이렇게 증언됩니다.

 

34:11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8)을 어긴 거예요.

얼마 가지 못해서 그들은 약속을 깨트린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본문에서 유다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계약(약속)을 깨트린 원인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무엇보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변하자,

마음이 함께 달라진 것입니다. (어디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하고 마음이 달라진 거죠)

 

본래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자,

시드기야 왕과 유다 백성들은 심한 공포 속에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나님 살려달라고 은혜를 달라고..

그리고 제가 무엇이든 하나님과 약속하겠다고..’

‘그래 그러면 내가 내 법에도 말했거니와, 너희의 노비들을 자유를 주라’고

‘우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 그 약속을 일단 했던 것입니다.

 

(원래 히브리 율법에는 동족을 노예 삼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노예제도가 당시 문화였기 때문에, 경제적인 빚 등의 이유로 노예가 되더라도

7년째는 반드시 풀어주어야 했는데, 출21:2 등

아마 그 율법을 성실히 지키지 않는 관행이 있었나 봅니다.

계속 동족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나 봅니다.

 

이제 나라가 망하는 위기에 처하자, 왕과 백성들은, 뒤늦게나마

‘동종 노예들을 해방시켜 주기로’ 하나님 앞에 서약한 것입니다. :9~10

그리고 처음에는 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국제적인 삶의 변화가 생깁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바벨론 군대가 갑자기 철수하는 거예요.

유다와 동맹을 맺었던 남쪽의 애굽 군대가 진격해오자, 바벨론이 일시적으로 후퇴한 겁니다.

 

자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유리한 환경이 전개된 것입니다. 상황이 바뀐 거죠.

그들은 그게 일시적인 호전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예루살렘이 포위되어서, 이제 살 길이 없어졌고,

노비 가지고 있어야 소용도 없고, 노비 먹이는데 돈만 드는 부담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제적 부담도 덜고,

또 바벨론 군대들과 싸우기 위해서 노비들을 군인으로 동원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기적인 동기에서, 노비들을 풀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급작스러운 국제적인 변화로, 포위망이 이제 풀어지자,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37: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자, 눈앞에 있던 목전의 위기가 사라지자,

유다의 백성들, 기득권층들은 그들의 마음이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전쟁이 다 끝났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에 다시 농사를 짓고, 또 집안일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노예 해방으로 인해 자신들이 입을 경제적 손실이 아쉬워진 그들은,

결국 하나님과 맺었던 약속을 깨뜨리고,

얼마 전에 자유를 주었던 노비들을, 다시 강제로 끌고 와서, 노비로 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유다 백성들의 회개(노예를 풀어주지 않은 죄를 회개)는,

그리고 노예 해방은,

하나님을 향한, 또한 율법에 대한 진정성 있는 순종이 아니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자, 문제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과 저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요?

 

위기가 다가오면, 어려움이 찾아오면, 인생에 문제가 찾아오면,

우리도 하나님을 살려달라고... 그리고 하나님과 별별 약속을 다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저를 살려만 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고요...’

그러다가 살만해지면 어때요? 약속을 지키고 사십니까?

그렇지 못한 경우가 꽤 많을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시편 15: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게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란 말이에요.

‘한 번 약속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서원을 변하지 않는 사람들!’

이게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자, 성경말씀은, 하나님 앞에 약속을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고 무겁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전도서 5:5절을 같이 읽어요.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얼마나 무겁고 신실하게 지켜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 따라, 우리의 감정에 따라,

우리 눈 앞의 이익에 편승해서, 너무나 쉽게 약속을 뒤집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이건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 아니다... 이런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잘 지킨 사람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장, 예레미야 35장에서는

이런 유다 백성들과 대조를 이루는 약속을 지킨 사람들의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누굽니까? 레갑 자손들, 레갑의 후손들입니다.

 

본문에 ‘요나답’도 나오는데, 그는 레갑의 아들입니다.

레갑인들은 혈통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순종이 아니에요.

이방인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레갑 자손은 다른 말로 성경에 겐족, 겐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사사기 1:16절에는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이렇게 겐 사람을 가리켜서 ‘모세의 장인의 후손’으로 소개되어 있어요. *이드로 또는 르우엘

 

이 겐 사람은 사실은 미디안 족속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에서 태어났던 사람들이어서,

순수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할 수가 없고, 야곱의 12지파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근데 그들 중 일부는, 아마도 모세를 통해서이든지,

하여튼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섞이기 시작했어요.

 

출애굽 할 때도 섞여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애굽을 나왔고,

가나안에 정착할 때도 이스라엘과 함께 섞여서, 그 땅에 정착해서 살게 됩니다.

(비슷하게 갈렙도 그니스 족속이었으나, 이스라엘에 편입되었죠. 그니스는 에돔의 일파)

 

그래서 레갑 족속은 유다 지역이 살던 곳에 함께 살았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제 본문 6절과 7절의 말씀 같이 읽습니다.

 

렘35:6~7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7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 살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머물러 사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레갑 족속의 선조인 레갑과 그 아들 요나답이, 이제 하나님과 약속을 했나 봐요.

하나님과 약속을 했다고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럴 것이라고 추론합니다.

 

무슨 약속을 했냐면, 그렇게 살라고 하나님이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해서, 자발적으로 그들이 약속한 것 같아요.

그들의 약속은 대단히 반문화적인 삶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포도주도 안 마시고, 집도 짓지 않고,

포도원도 우리는 소유하지 않고, 우리는 그냥 텐트(장막)에서 살겠다고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방이었던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 중에 받아준 그 은혜가 고마워서,

그들은 자원해서,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이런 약속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여튼 레갑의 후손들은, 조상이 약속한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켰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예레미야 당시까지를 250년으로 봅니다.

 

그렇다고 오늘 우리가 레갑 자손의 반문화적 삶을 답습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은,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과 약속했던 약속을.. 그들은 이어받아 지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있었는데, *시내산 언약을 비롯해서 최근 노예해방 약속 어김

예레미야는 그들의 이스라엘의 불성실(34장)을, 레갑 자손의 성실(35장)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 대조적인 사실이, 35:16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나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

 

이스라엘 속에 섞여 같이 살고 있는 ‘레갑의 후손들’은,

그 조상이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그대로 지켜 행했지만,

이 백성, 이스라엘 백성, 유다 백성은 그대로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순종한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재앙이 선포됩니다.

 

35:17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내가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그와 반대로 매우 옹졸해보이는.. 좁게 인생을 살아간 것처럼 보여지는..

이런 레갑의 자손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언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레갑 자손에 대해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요.

 

35:18 ‘예레미야가 레갑 사람의 가문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모든 규율을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였도다

19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들은 내 앞에서 그 자손이 끊어지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축복한다 그들을 존중한다

그들의 후손은 계속 복을 받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신7:9절의 말씀이 기억나지 않으시나요?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인애를 베푸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네 신실하신 하나님의 증거가 뭐예요? ‘언약을 지킨다, 약속을 지킨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을

또한 천대까지 인애를 은혜를 베푸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신실하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신실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성실하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성실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돼요?

‘신실’을 거꾸로 뒤집으면 ‘실신’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성실하지 못하면 어떻게 돼요?

‘성실’을 거꾸로 뒤집어요. ‘실성’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적용/ 왜 약속을 지키고 사는 삶이 중요합니까?

제가 결론적으로 세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1. 약속을 지키는 삶의 중요성 첫째는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 때문이죠.

 

네 우리가 약속을 지킬 때,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매우 일관성 있게 하나님을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약속에 성실하신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여러분과 제가,

우리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우리가 세상에 소개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에요?

 

우리의 입술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으로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우리가 거짓말을 안 할 때, 우리는 ‘참되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거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는 거울(형상, 이미지)이니까요.

 

디모데후서 2: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미쁨’이 뭐예요? 신실함이죠.

'우리의 신실함이 없을지라도 faithless.

주는 언제나 미쁘시니 신실하시니 faithful,

자기를 부인할 수 없는 이라'

 

히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faithful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미쁘시니' 라는 말은 ‘신실하시니’ 라는 말이에요. faithful

따라서 우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소망이 흔들릴 필요가 없어요.

 

왜요?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아멘.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날마다 우리의 입술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행동으로,

세상을 향해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우리는 정말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을까요?

 

▲2.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형성하는 공동체 존립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가정은 부부의 연합으로 시작되잖아요.

그런데 부부가 약속하고, 즉 결혼 서약을 하고 부부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부부의 서약이 약속이 무너진다면, 우리 가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신뢰가 다 무너진다면, 우리들의 자녀 양육이 가능하겠습니까?

 

자 우리가 학교에 우리의 자녀들을 보내는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없다면,

누가 자기의 자녀들을 학교에 갖다 맡기겠습니까?

 

여러분, 은행에 대한 우리들의 최소한의 신뢰가 없다면,

누가 우리의 돈을 은행에 맡기겠습니까?

 

은행과 고객 사이에 신용의 약속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뱅크 시스템이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국가를 우리 사회를 다스리는 정치가나 행정가들의 최소한의 믿음이 없다면,

그들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한 국가가 한 사회가 제대로 건강하게

지탱될 수가 있을까요.

 

그러므로 약속을 지킨다는 것,

이것은 우리들의 공동체가 존립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신뢰, 믿음 위에 구축되어 있다는 설교 rfcdrfcd.tistory.com/15983431

 

제가 이 설교의 화두를 열면서 소개했던 정연복 시인의 말,

‘세상이 아직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이십니까?

 

▲3. 한 가지만 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복음 전도의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약속 지킴은 전도의 가장 중요한 열쇠예요.

자, 우리의 모든 전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 아시죠?

 

자, 우리가 전도할 때마다 사용하는 유명한 구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

이 구절은, 구원의 약속을 전달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구원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전도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의 약속, 그 영생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영생의 말씀을 전하는 거잖아요.

우리가 그 약속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전도는 전도로서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예수님의 제자 사도요한의, 제자가 한 사람이 있었어요.

사도요한의 가장 으뜸가는.. 오른 팔로 삼았던 제자가 누구냐면 폴리캅 이었습니다.

 

폴리캅에 대한 그림인데, 그는 믿음을 지키다가 화형을 받아 순교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투르키예 성지순례를 하다 보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순례해요.

 

그런데 일곱 교회를 순례해 보면, 다 무너진 성터만 보고 다니는 거예요.

여섯 교회가 다 그런데, 꼭 하나 예외가 있어요.

마지막 서머나 교회에 가게 되면, 거기는 교회가 그대로 열려 있어요.

무너진 터가 아니라, 교회가 아직 남아 있어요.

 

 

왜요? ‘폴리캅 순교 기념교회’ 아직도 열려 있습니다. 거기서 계속 예배를 드립니다.

거기서 거기서 아직도 복음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열려진 교회!

 

여러분 서머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

계2:10에 보면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폴리캅은 이 약속을 지킨 사람이에요. 죽도록 충성, 죽도록 신실했습니다.

그가 이 말씀을 붙잡혔어요.

 

사실은 서머나의 총독에게 ‘네가 한마디로 부인만 하면 너를 놓아주겠다’

그러자 폴리캅은 ‘86년 동안 나에게 신실하셨던 우리 주님을,

내가 어떻게 부인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담대하게 순교했어요. 화형을 받았어요.

 

이 폴리캅 기념교회, 지금 투르키예의 두 번째 큰 도시가 이스탄불 다음에 이즈미르 이에요.

근데 그게 바로 서머나입니다. 거기 폴리캅 기념 순교 기념교회가 지금도 있고,

그리고 이 교회 안에 들어가면 유명한 그림이 있어요.

그게 폴리캅이 화형당하는 그림이에요.

 

 

그가 화형 당하고, 칼로 찔림을 받고... 그러나 담대하게 그는 죽도록 신실했습니다.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 결과 뭐예요?

유일하게 일곱 교회 중에 지금도 열려있는 교회, 지금도 복음을 전하는 교회,

지금도 쓰임을 받는 교회...

 

여러분, 누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 쓰임을 받습니까?

누가 그의 후손들까지 복을 받고, 계속 하나님의 은혜 아래 천대까지 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

가정의 약속을 지키고, 부부 사이에 약속을 지키고, 교회를 향한 약속을 지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인가요?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약속의 주님, 그분을 영접한 것입니다. 삶의 주인으로!

 

그리고 날마다의 신앙생활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날씨가 무덥지만 약속의 주님을 모시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이 무더운 여름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헌신과 결단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적지 않은 약속을 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위기에 처할 때, 어려움에 처할 때, 고난에 처할 때.. 여러 가지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 이번에 살려만 주시면, 은혜만 주시면... 이렇게 할게요.’

그런데 약속을 지키시나요?

 

‘하나님, 내 생애 다하도록 약속 지키고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나도 은혜 받고, 내 후손도 은혜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신실하신 주님 약속을 붙들고 살게 해 주시옵소서’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 약속하고, 기다림의 훈련 하고, 약속을 받는 훈련 시키기  

저는 언젠가 한번 교육학 책을 조금 읽다가, 한마디 뜻을 발견하고

제가 아이들을 키울 때 그렇게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진작 이렇게 했으면 참 좋았을 것인데' 하고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지금은 손자, 손녀들에게 그 방법을 그대로 하려고

이렇게 애를 쓰고, 또 다른 어머니들에게 부탁을 해 봅니다.

 

그게 뭐냐면, 자녀들에게 기다림의 훈련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도 가르쳐야 됩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기다리는 자세, 그것을 훈련시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뭘 달라고 하면 말입니다. 대체로 즉시 주는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것들은 절대로 바로 주지 말라는 거지요.

뭘 달라고 하면은 "내일 준다" 그래요.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고

"한 밤 자고 나면 내일 아침에 준다." 이렇게 딱 한마디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아무리 울어도 주면 안돼요.

 

하룻밤 자고 난 다음에 아이들은 “할아버지, 벌써 다 잊어버렸지?" 그러면,

"너 어제 나하고 약속했지?" 하고 이것을 줍니다.

 

그 다음에 얼마 있다가는 또 ‘두 밤 자면 준다’, 그 다음엔 ‘세 밤 자면 준다’,

‘일년 후에 준다’ 이렇게 약속해서... 약속을 기다리고, 그 성취의 날을 맞는 그런 기쁨을

가르쳐야 되요.

 

그런데 우리는 약속 했다가도, 지금 당장 안 된다고 발버둥치고 울면

"옜다 가져라 모르겠다" 그러면 애를 완전히 버리는 거래요.

‘울면 되더라, 발버둥치면 되더라’ 이거는 무서운 거예요.

 

이게 바로 오늘과 같은 무서운 세상을 만든 거예요. 폭력이 통하지 않습니까?

폭력은 안 통해야 되요. 잘못된 소원은 절대로 이루어져선 안돼는 거예요.

아버지가 안 된다면 안돼는 거예요. 이걸 가르쳐야 되는데,

되는 것과 안돼는 것이 있는데, 안돼는 것이 있다는 걸 가르쳐야 되는데... 이걸 못 했어요.

 

우리가 이걸 못 가르쳤던 거예요. 아이들은 이걸 훈련을 받아야 되요.

그래서 이 훈련이 되면... 보세요. 외국 가서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줄을 서잖아요.

줄 서서 거기서 가만히 기다리잖아요. 마냥 기다려요.

 

 

♣'나는 꼭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 약속을 지킨 간호사

데이비드 시멘스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심장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받기 전날 상냥하고 부드러운 간호사가 병실로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데이비드의 손을 잡고서 자기의 손을 꼭 잡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간호사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간호사는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일 수술을 받는 동안에 당신은 심장과 분리된 상태에서

오직 기계의 도움으로 생명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당신의 심장은 가슴 속에 들여보내져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마침내 회복실에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약 10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비록 움직일 수 없고 말도 못하고

심지어는 눈을 뜨고 싶어도 뜨지 못하는 상태에 있을지라도

의식은 완전한 가운데 있게 되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아듣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당신 곁에 머물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도록 도와드릴 것입니다.”

 

데이비드가 모든 수술을 마치고 의식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간호사는

약속대로 그의 곁을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수술이 시작되어 끝나기까지 데이비드는

자신의 손을 잡아준 간호사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심장 수술을 받는 데이비드에게 간호사의 손길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큰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바로 그날 밤에 보혜사를 제자들에게 보내어

영원토록 그들과 함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라는 뜻은 곁에 있도록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나간다고 했을 때에 불안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되었는데

그 예수님이 떠나가 버리면 고아와 같이 버려지는 것 같아

걱정이 안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 곁에 와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그 때에도 우리의 곁에서 우리의 손을 꼭 잡고

우리를 지키시고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당신을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지키십니다.

 

 

♣시므온은 죽기 전에 구세주를 볼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분을 만나기 전에는 결코 죽을 수 없었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괴로운 삶을 하루하루 지탱해 가면서도

늘 그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품에 안는 감격을 맛보았을 때 이렇게 찬송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이제는 눈을 감고 죽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노인의 꺼져가는 생명을 그때까지 연장시켜 온 힘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그 기다림이었습니다.

 

안나는 과부 된지 84년 동안 주야로 성전에 나와 기도하다가

그날 성전에 올라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약 안나 할머니가 매일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그날 하루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그 때 찾아오신 주님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언제 어느 때 주님이 오시더라도 달려 나가 맞이할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강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다릴 줄 압니다.

또한 기다린다는 것은 깨어있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