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내면적 신앙, 내공>
하나님 없는 좋은 것은 우상이 됩니다. - YouTube
◈하나님 없는 좋은 것은 우상이 됩니다 삿14:1~20 2026.08.09.
이렇게 도심을 걸어가다 보면, 백화점이나 어떤 매장 같은데
화려한 쇼윈도우의 조명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 물건에는 관심이 없는데, 이상하게 조명이 쫙 비춰지면.. 이게 그럴듯해 보여요.
그리고 사고 싶어지고, 갖고 싶어지고.. 그런 게 조명 효과 아닙니까?
조명이라는 것은, 물론 그 물건의 디테일을 보게도 하지만
그냥 그 조명 자체로 뭔가 분위기, 무드가 형성이 되니까
뭔가 따뜻해지는 것 같고, 좋아지는 것 같고, 때로는 물건으로 보면 갖고 싶어지게 만들죠.
그 알고리즘도 요즘 그렇잖아요. 핸드폰도 일종의 조명인데, 자꾸 켜면
나한테 별로 필요 없는데, 계속 나오면 어때요?
‘이거 가져야 되나? 남들은 다 있나? 이거 가지면 좋나?’
여러분들 아마 집안 곳곳에, 사놓고 한 번 쓰고 안 쓰는 거 엄청 많을걸요?
필요하다 해서 샀는데, 별로 필요 없는 것이 많을 겁니다.
일종의 조명 효과에 당하신 거죠. 필요도 없는데, 좋아 보이고, 자꾸 사고 싶은 거예요.
‘저것을 가지면 내가 더 특별해지고 행복해질 것 같다’
‘나만 저것 없는 거 아니야? 그래서 나 불행한 거 아니야?’
이런 세상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내가 원해서 그거를 바라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매우 세련되고 정교하게 세팅된 쇼윈도의 조명 효과에 휘둘리고 있는 삶이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방금 제가 ‘모방 욕구’를 얘기 드렸잖아요.
‘뭔가 저 사람을 따라하고 싶고, 남들 다 가지고 있는 건 나도 갖고 싶고’
이렇게 사람은 눈이 약하니까요.
이게 조명효과인데, 마치 이 문화에 길들여지면
진짜 자기가 원해서 구매하는 줄로 착각한다는 얘기예요.
인간은 지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성인이기 전에,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에 따라가는 존재예요.
사랑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단어일 수도 있고, 긍정적인 단어일 수 있습니다.
우상도 우리가 따르는 게, 그걸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리를 가지고 통제하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결정할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갈망하는 것,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사랑하는 것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세상의 쇼윈도우는 뭘 자극해요?
우리의 눈, 계속 우리의 시선을 뺏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말로는 실제 우리의 삶은
세상에 화려한 조명이 만들어 놓은 ‘욕망’이라는 문화에 따를 수 있다라는 거죠.
▲지금 오늘 이 얘기를 왜 드리겠습니까? 딱 삼손 얘기거든요.
그는 하나님이 택하신 나실인, 하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택하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이, 시선이, 마음이 소위 제국, 힘의 논리, 돈의 논리,
그 제국의 문화에 정점에 있는 블레셋에, 자기 마음이 빼앗겼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뜻을 쫓는 것이 아니고,
블레셋이라는 화려한 조명에 현혹되어진 불나방 인생,
불나방은 죽는지도 모르고, 막 불에 뛰어든다는 것 아닙니까?
오늘 삼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사기 14장에,
처음으로 삼손이 등장하는데.
본문 사사기 14장에 매우 자주 쓰여지는 단어가 ‘내려가다’입니다.
14:1절, 5절, 7절, 10절에 계속 내려가요. 어디로 내려갑니까?
삼손이 있는 동네에서, ‘딥나’라는 지역으로 계속 내려갑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 블레셋 문화로 계속 내려가요.
그것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게 아니고,
한 여인을 향한 갈망, 원함을 가지고 내려가는 것이죠.
이것은 세상을 따라 끊임없이 추락하는 삼손의 모습,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사기의 시작과 반대였죠.
사사기 1장 맨 처음에 시작할 때는, 전혀 방향이 달라요. 그때는 ‘올라가다’ 였습니다.
삿1:1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제 가나안 땅을 점령해야 되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올라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그것은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가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1:2
그러나 점점 사사기를 지나면 지날수록, 타락의 역사죠.
가장 형편없는 사사가 삼손이란 말입니다.
열두 번째 마지막 사사입니다.
이 삼손을 ‘내려감’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삿14:1, 5, 7, 10절
삼손을 내려감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계속 우리의 삶을 점검해야 돼요.
우리는 시선에 약하기 때문에, 무엇인가의 시선을 빼앗기고 살아갈 위험이 매우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신앙 안에서 점검해야 될 게 무엇인가 하면,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
나를 살게 하는 것, 내가 그것을 선택하는 것, 내가 거기로 가는 것, 그 이유가 뭔가?’를
여러분이 스스로 한번 점검하셔야 됩니다.
▲삿13: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삿14: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그 사사기 13장 맨 끝절과 14:1절,
이 마지막과 처음이 매우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는데, ↑
그럼 우리가 움직이는 것, 동기는 두 가지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이끌고 계시는가?
-아니면 우리의 시선이 나를 이끌고 있는가?
13장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삼손이 태어날 것을 예고하고,
‘하나님이 그를 움직이신다’ 라고 말하였는데, 13:25
삼손이 태어나서는 자기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14:1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나는 도대체 무언가를 결정하고 선택하고,
내가 사고 팔고 행동할 때, 무엇이 근거가 되어지고 있는가?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를 살피셔서,
혹시 하나님의 뜻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인생이라면, 돌이키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삿14장의 메시지는 세 가지인데요.
◑1. 첫 번째, “내 눈의 욕망을 따라 추구하는 것은, 나를 파멸하는 우상이 된다”
내 눈에 좋은 것을 추구할 때
그 보이는 것을 내가 얻고자 하는 욕망이 있잖아요.
그것은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고, 우상이 됩니다.
우상이라는 뜻이 뭐예요? 반드시 나쁜 결과가 온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늘 우상을 설명할 때 소금물에 비유하잖아요.
목마를 때 너무 목말라서 물을 마시긴 마셨는데, 소금물이면,
그럼 잠깐은 해갈되지만 그 목마름이 더욱더 강해진다는 얘기예요.
상태가 더 안 좋아진다는 거죠.
우상은 잠깐은 나를 만족시키는 것 같지만, 반드시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이게 우상의 특징이에요.
내 눈에 좋은 것 같아서, 지금 당장 좋은 것 같지만,
그 욕망이 우상이 됐다는 뜻은... 그 결과가 비참하다는 얘기입니다.
14: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올라와서’
삼손이 자기 지역에서 딥나라는 지역으로 내려갔다가,
한 여인을 보고 다시 올라왔다는 얘기예요.
또한 삼손이 살던 단 지파 소라 땅은, 블레셋 보다 높은 지대예요. 주1)
블레셋은 주로 해안 지방에 정착해서 살면서, 점점 지역을 넓힌 민족이거든요.
14:3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를 좋아하오니..’
선과 악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삼손은 ‘내가 그를 좋아하오니’ .. 지금 자기 기준으로 선과 악을,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있죠.
오늘날 조명효과에 빠져서 시선을 빼앗겨 버린 현대인의 삶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 선과 악을 구별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거 못 먹게 했죠.
선악과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하면,
‘선과 악, 다시 말하면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왕좌는 유일하게 하나님만이시다’를
인정하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여러분, 기도하지 않고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내가 막 사는 것 같은데 세상적으로 뭐가 잘 되면요. 그건 좋은 신호가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건 문제예요.
삼손이 ‘내가 그를 좋아하오니’ 라고 말한 상황과 비슷하게 지금 연출이 되고 있는 거죠.
오늘 설교 주제가 뭡니까? ‘하나님 없는 좋은 것은 우상이 된다.
그 우상은 반드시 우리의 삶의 마지막을 비참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라고 믿으셔야 돼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붙잡아야 된다!’ 그것이 가장 행복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영적 전쟁의 핵심은 뭡니까?
그 사단이 뱀처럼 나를 유혹하여, 오늘의 문화를 받아들이라고 얘기하는 것 아닙니까?
창3:5 ‘너희가 그 선악과를 먹는 날에 너희 눈이 밝아지고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거야’
그 얘기는 뭡니까?
‘너희도 선해.. 너희도 옳은 결정이야.. 너희도 스스로 좋게 될 거야’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라는 얘기잖아요.
우린 하나님이 아니에요. 늘 고백해야 될 게,
우리의 처음 불렀던 그 찬양처럼
‘주님만 주님이십니다. 하나님만 선하십니다. 하나님만 옳으십니다.
하나님만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 고백이에요. 나로부터는 그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뱀의 유혹은.. 하나님의 눈을 기준 삼지 말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선악을 결정하라고 말합니다.
‘너가 선악과를 먹으면, 너 스스로 좋은 것을 결정할 수 있게 될 거야.
너가 왕좌를 차지하게 될 거야’ 그 이야기거든요.
▲그러나 이 선악과의 비극이, 역사에 계속 반복됩니다.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인간이 옳을 수 있어요? 인간은 옳을 수 없습니다.
왜요? 우리는 선하지 않기 때문에,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한 그 ‘옳음’은 그름이에요.
그러므로 좋은 결과를 가질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죄의 본질이 뭔가요?
‘하나님 없이 내가 옳은 대로 결정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죄예요.
교회 안에도 많고요. 교회 안에 다툼이 다 그런 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실까?’의 문제보다는
내 자존심, 내 신념, 내가 옳다는 것에 빠져서,
‘내 옳은 대로 주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올 거야’ 라고 확신하는...
'자기 올바름’을 주장하고 고집부렸다가, 교회가 결국 어려움을 당하잖아요.
하나님 뺀 채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것은 경건의 모양 뒤에 숨거든요.
‘이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러는 거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또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하고, 말씀 듣고, 헌신하고 하는 그 경건의 모양 뒤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내 눈에 좋은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내 뜻을 하나님께 하나님을 도구삼아 이루려는 욕심이,
그 뒤에 있을 때가 얼마나 많냐고요?
여러분 세상은 우리에게 자유하라고 그러거든요. 자꾸 자유하라는 게 뭡니까?
‘너를 억압할 건 아무것도 없어.
너가 하고 싶은 거, 너가 원하는 것, 그게 옳은 거고, 좋은 거야!’
이게 세상이 지금 말하는 자유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장로교회 헌법에 보면 치리라는 게 있거든요.
뭔가 목회자가 봤을 때 ‘이건 아닙니다’ 라면, 성도에게 치리, 경고를 주는 것,
그거 지금 할 수 있어요? 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권위라는 것이 교회에 과연 존재하는가? 없죠. 거의 없어졌습니다.
왜요? 다 왕이니까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는 게 그것 아닙니까?
그럼 노예라는 건 뭐예요. 그러면? 자유롭게 행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한다는 게 노예 아닙니까?
그러나 ‘죄의 노예’는 반대예요.
죄의 노예라는 것은 죄를 막 짓고 싶은데 억압당하는 그런 게 아니고,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그게 노예라니까요. 역설이죠.
노예는 아무것도 못해야 되는데,
죄의 노예는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내 욕구를 표출하지 않을 수 없는...
내가 옳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게.. 죄의 노예입니다. 그것도 노예예요.
나로서는 통제가 안 되는 거죠.
팀켈러는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에서, 우상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우상이란 그것이 바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져서
우리의 마음과 상상력을 더 크게 차지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맨날 그 생각한다는 얘기예요.
눈을 떠도 그 생각, 눈을 감아도 그 생각, 그 생각을 상상하고, 그 생각을 확대하고
‘아 그게 있다면 내가 어떨까?’라고 그 좋은 상황을 막 떠올려보고,
‘또 그게 없으면 막 무너지고...’ 그게 우상입니다.
여러분의 상상과 생각을 지금 꽉 채우고 있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시라는 것이죠.
삼손에게 ‘내 눈에 좋은 여인을 반드시 얻겠다’는 집착이, 선악과이자 우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이것이 없으면 나는 행복할 수 없어, 이것이 없어서 불행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아니고 다른 것이라면, 그것이 우상이라는 얘기죠.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욕망도 필요하고, 동기부여가 다 필요하죠.
그것이 또 어떤 삶에 필요한 에너지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좀 정리를 해드릴게요.
「‘내가 원한다’가 곧 ‘내가 옳다’로 바뀌는 순간,
욕망은 감정이 아니라 우상이다」
주위에 누가 ‘야, 그건 필요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까지 집착해? 왜 원해?’ 라고 할 때,
‘너가 뭔 상관이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데...’
이 원함이, 나의 옳음(이게 맞아, 이게 옳아)과 같아지는 순간.. 그건 우상이 되는 거예요.
우리 신앙인은 그렇게 옳지 않습니다.
우린 선하지도 않고... 그러므로 늘 하나님 앞에 여쭙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게 너무나도 필요한 거죠. 삼손에게는 그 마음이 없었어요.
▲여러분들이 기도에 대하여
‘내가 선택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여 받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마시고,
‘내가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그분이 주시는 것을 받는 것’이 기도라고
늘 생각하셔야 돼요.
제가 기도에 대해서 좋아하는 문장을 늘 말씀드리잖아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선택권을 주신다면, 꼴랑 그거 써먹지 말고요.
이거 주세요.. 라고 소비하지 말고,
나에게 주신 그 선택권을 기꺼이 하나님께 돌려드려서,
’하나님이라면 저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라고 물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 시간이 기도입니다. 진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보이는 순간이죠.
마치 간장 독에 쥐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
빼내야 되는 것처럼, 그 간장을 먹지 말아야 되는 것처럼...
그런데 우리는 영이 어두워진 채 기도하니까,
그게 쥐가 죽은 간장독의 항아리인지도 모른 채
간장을 떠먹기를 원하는 거예요.
자꾸 그 간장을 더 달라는 거죠. 그런 기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옳으신 결정과 그분을 따라가는 순종이야말로
항상 좋은 결과임을 믿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쫓아가는 성도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기 눈’과 자꾸 싸우셔야 돼요.
◑2. 두 번째, “우리의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은 쉬지 않는다”
우리는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삿14: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위 구절은 좀 난해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또 신학적으로 살펴봐야 될 내용들이 담겨진 구절인데요.
그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억압을 받고 있었잖아요.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이게 조금 어려운 게, 지금 삼손이 딥나 땅에 블레셋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거기서 한 여인을 보고 결혼하려고 했던 것이,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 계기를 통하여 블레셋 사람을 치려고 했던 계획이었는데,
삼손의 부모가 그걸 잘 몰랐다는 얘기예요.
그러면 이걸 자칫 잘못 읽으면 어떤 식이 되냐면,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욕망을 불어넣어가지고,
딥나에 내려가서 블레셋 여인을 사랑하게 만든 다음에,
그걸 계기로 블레셋 사람을 치려고 하셨다... 이런 잘못된 해석을 할 수도 있죠.
그런 거 있잖아요.
‘나한테 죄 지을 마음을 안 주시면 되지, 왜 그 마음을 주셔서 나로 죄짓게 하냐고?’
그런 억지예요.
‘자유의지를 안 주시고, 그냥 하나님만 사랑하게 하시면 되지,
왜 나한테 자유의지를 주셔서 자꾸 죄짓게 만드냐고?’ 그런 거죠.
어쨌든 성경은, 삼손의 죄를,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블레셋을 치기 위하여 죄짓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죄를 승인하거나 방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짜 놀라운 반전은 따로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삼손의 어리석은 실수, 그의 매우 정욕적인 그런 욕망, 또 삐뚤어진 선택,
이걸 보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거예요. 다 엉망진창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계획과 주권은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된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상관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죄에, 하나님의 주권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우린 자꾸 오해하는 게 뭐예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도대체 뭘 할 수 있으실까?’
내가 절망하면 하나님도 절망하시고,
내가 못하면 하나님도 못한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죄, 인간의 한계, 인간의 절망,
인간의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에.. 패배하지 않으십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승리를 기어코 얻어내신다는 얘기입니다.
☞체스의 고수이신 하나님 rfcdrfcd.tistory.com/6250919
이 사사기 주석의 한 내용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삼손의 삐뚤어진 고집, 그게 뭐예요? ‘내가 블레셋 여인과 결혼해야겠다’는 거예요.
‘내가 고른 여자, 내 판단이 옳다’는 거예요. 내가 원한다는 거예요. 내가 좋다는 거예요.
‘그 삐뚤어진 고집마저 거룩한 뜻을 이루는 수단으로 역이용하셨다’ 이런 표현을 씁니다.
변증학자이고 신학자이기도 한 R.C Sproul 이란 분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씁니다.
‘만약 우주 안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에서 벗어난 단 하나의 원자, 분자.. 라도 존재한다면,
(분자라는 게 뭐예요? 원자라는 게 뭡니까? 과학적으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가장 최소한의 단위가 원자잖아요.)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부를 수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 얘기는 뭡니까?
하나님은 원자 단위로 역사하신다는 얘기예요.
하나님은 실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난 영역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예요.
‘삼손이 고집되고 잘못된 선택을 한 그 가운데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는 얘기예요.
삼손은 자기 욕망을 위해 딥나로 내려갔지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 어리석은 행동조차도 통로 삼아서
블레셋을 칠 틈을 만드셨습니다.
삼손은 자신이 선택하고 지은 죄에 대한 부분에 있어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습까지도, 삼손의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족함이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여러분, 한 치의 어떤 구멍도 그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시는 분이 계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틈을 만드시고, 어둠에 빛을 쏘아 넣으십니다.
작은 빛이라도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거든요.
그러므로 뭔가 엎어진 판 같고. ‘이거 뭐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라고 생각할 때,
‘이제는 하나님도 안 될 거야’ 라고 오해하지 말고,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뜻을 반드시 완결 짓는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임스 패커가 얘기했던 이 내용은, 정말 제 마음에 쏙 와 닿았어요.
제가 진짜 싫어하는 게 실타래 이거든요.
실타래 이거 좀 풀려고 하면, 엉켜서 풀기 힘들잖아요.
요즘은 무선 이어폰이 있어서 이렇게 듣고 하는데
과거에 헤드폰 같은 게, 유선 코드로 다 돼 있었잖아요.
잘 정리해서 넣은 것 같은데, 빼려고 하면 또 확 엉키잖아요. 그럼 짜증나요.
제가 짜증나는 거 두 가지가, 실타래, 코드가 싫고요. 또 옷걸이를 싫어합니다.
옷걸이... 이상하게 걸면 따라, 옷이 흘러 내려요.
또 늘 나는 와이어 옷걸이를 하나만 빼고 싶은데, 몇 개씩 따라 나오고
이러면서 계속 몇 개가 더 엉키고... 이런 거 있잖아요.
제임스 패커가 뭐라고 얘기하냐면..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이 얼마나 지혜로우시고 섭리 가운데 우리를 이끄시는지
인간의 어리석음과 악함이 만들어낸 꼬인 실타래를 가지고도
가장 아름다운 구원의 직물을 짜내시는 하나님의 전능함!
이게 하나님의 섭리다」라고 설명을 했어요.
막 심하게 엉클어져서 있으면, 우리는 꼼짝 못하고 포기할 건데,
성질이 급하면 가위로 마구 잘라버리죠.
하나님은 엉켜진 실타래를 가지고도 풀어내서 놀라운 옷을 만들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지금 헝클어졌습니까? 막 짜증나고 분노가 납니까?
하나님은 우리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실타를 다 풀어서
그 실을 가지고 놀라운 옷감으로 옷을 만드십니다.
이게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 하나님의 섭리라는 얘기에요. 주권이란 얘기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흩어진 조각들을 가지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신다는 얘기죠. 주2)
그러므로 여러분들 지금의 상황에 너무 넘어지지 마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틈을 내시고 빛을 넣으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시작하심으로 완성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연약하고 넘어지고 실족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통치와 완성되어질 그 일들이 멈춰지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왜요?
이 일이 옳고 선함으로 반드시 성취하시기 떄문입니다.
‘합력하여 좋은 결과가 된다, 선을 이루신다’... 똑같은 얘기예요.
하나님은 항상 옳으십니다.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십니다.
여러분 요셉, 형들이 악했죠? 시기해서 동생을 팔아넘겨버립니다.
그러나 창세기 39:2, 21절 ‘하나님은 요셉과 동행하고 함께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악한 결정과 행동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구원의 계획을 그 결과를 멈추지 않고
선하게 만들어 가시는 것이죠.
형들의 악한 행동으로 애굽에 팔려갔기 때문에
오히려 야곱,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통치자가 된 이후에, 거기에는 이미 먹을 것들을 미리 예비해 놨잖아요.
야곱의 백성들이, 그 자녀들이 굶어 죽을 때 애굽에 와서
요셉의 혜택을 통하여 먹고 살 수 있게 되지 않습니까?
창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형들이 요셉을 애굽에 보낼 때, 어떻게 먼저 보냈습니까?
노예로 팔아서 보냈잖아요. 감옥에서 죽을 뻔했잖아요.
그런데 요셉이 어떻게 해석합니까?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손 아래에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모든 역경을 통하여 가장 좋은 결과를 주셨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입니다.’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사실은 누구였다? ‘하나님이셨습니다!’
여러분의 지금 어려운 일을 하나님이 모르고 계십니까?
창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삼손도 이스라엘도, 영적으로 둔감하여져
실타래가 엉망진창으로 엉켜지는 결정들은 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거기에 의존하지도, 좌우되지도 않으시고
하나님의 마음먹은 계획과 결정을 주권적으로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내 연약함 때문에 넘어질 때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구나’ 너무 쉽게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눈앞의 현상만 볼 때, 우리 눈앞의 현상은 우린 넘어지기 쉽지만,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꽉 막힌 벽에) 여전히 틈을 내시고, 실타래를 푸시고,
선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 계시구나... 를 믿는 믿음으로
한 주간 살아가시는 주의 백성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세 번째입니다. 삼손은 힘이 있었어요.
그러나 사자를 이기는 힘보다, 내 내면의 마음을 다스리는 은혜가 필요해요.
이 세상은 ‘능력주의 세상’이기 때문에 ‘너의 능력을, 네 힘을 보이라’고 얘기합니다.
드러내서 보여주는 힘을 너무너무 좋아해요.
그러다 보면 뭐가 약화돼요? 내면의 힘에는 관심이 없어지죠.
내면의 힘은 어떻게 오는 겁니까?
‘하나님이 다스려주는 힘, 성령의 충만함’ 이런 것들이잖아요. ☞ <내면적 신앙, 내공>
성령께 이끌리는 삶을 ‘내면의 힘’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 14:5~6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즉 젊은 사자(힘이 센 사자)가 덤비는 거예요.
삼손이 가장 팔팔한 나이 때의 사자를 맨 손으로 찢었어요. 괴력입니다.
자 보세요. 삼손이 하도 딥나에 가서 블레셋 여인하고 결혼시켜달라고 하니까,
부모와 함께 내려간 거예요. 내려가는데 젊은 사자가 삼손을 공격한 거예요.
그때 여호와의 영이 임해서, 사자를 그냥 찢어 죽인 거예요.
그런데 이 사실은 삼손만 알아요. 아무도 몰라요. 부모도 몰라요. 친구도 몰라요.
블레셋 사람도 몰라요. 그 상황입니다.
▲자 지금 여기서 삼손이 배웠어야 되는 건 뭘까요?
삼손의 손에 아무것도 들려지지 않은 채 사자를 이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힘을 주실 때만 가능한 겁니다.
그럼 삼손이 겸손했다면, 깨달아야 될 게 뭡니까?
‘아하! 내 손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하나님이 임하시면 이 사자도 이길 수 있구나’
더 나아가서 ‘블레셋이 40년 동안 압제하고 억압했을지라도,
하나님이 내게 임하시면, 내가 그들을 사자를 찢음 같이 승리할 수 있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으라고 힘을 주신건데... 삼손은 이걸 가지고 장난을 해요. 무슨 얘기입니까?
자기 힘인 줄 아는 거예요. 내 능력인 줄 아는 거예요.
그래서 블레셋 딤나에서 7일 동안 결혼을 위한 잔치를 벌이는 동안에,
그 블레셋 사람들한테 수수께끼를 냅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도다. 이게 뭐니?’ :14
이게 기출 문제도 아니고, 되게 어려운 문제죠. 이거 어떻게 맞추겠습니까?
이 수수께끼를 낸 것 자체가, 지금 사자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내가 이렇게까지도 할 수 있구나’를 깨달으라고 주신 건데,
하나님이 주신 그 힘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통로로 삼는 것이 아니고,
자기 과시, 또는 자기 흥미거리로, 오남용을 한 거죠.
아마 삼손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한번 막 자랑하기 위해서’ 수수께끼를 낸 것 같아요.
‘내가 젊은 사자를 찢어 죽였다’는 얘기를, 거창하게 하고 싶은 거예요.
게다가 여러분, 사자를 죽인 다음에 거기에서 꿀이 나왔는데,
그럼 사자의 시체를 만졌다는 건데,
나실인이나 레위인들 같이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들은, ‘시체 만지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이 삼손에게는 아예 없는 거예요.
삼손은 ‘나실인’이라는 자기 정체성 자체가 없기 때문에,
시체든 뭐든, 그냥 꿀을 먹을 수만 있다면, 거룩함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겁니다.
보세요. 사자의 시체에게 다가가서 꿀을 먹은 것은,
사자를 이길 힘은 있었지만,
나실인의 정체성을 지킬 마음은 없었던 것이죠. 괴력은 있는데, '내공'이 부족했죠.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사자는 이겼지만,
하나님의 영에 통제받기는 원하지 않는 것... 이게 삼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이 블레셋 사람들이 도저히 그 수수께끼를 못 풀게되니까,
삼손의 아내에게 가서 ‘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라고 물어봐가지고, 답을 찾아 냈거든요.
삼손의 아내한테는 다 얘기를 했나 봐요.
그랬더니만 삼손이 또 화가 나가지고 블레셋 사람들을 다 죽입니다. 힘자랑이죠.
사자도 쳐죽이고, 블레셋 사람도 다 처죽이고...
여러분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특별히 신앙생활 오래하면 오래할수록,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이 있어요.
은사는 말 그대로 기프트, 공짜입니다. 그냥 주신 거예요.
저에게 방언의 은사가 있다고 한다면, 제가 뭘 잘해서 준 게 아니에요. 그냥 받은 거예요.
여러분들이 섬김에 은사가 있거나 특별한 무슨 은사가 있다고 한다면, *삼손의 괴력
예를 들어서 제가 이렇게 설교할 때, 좀 이렇게 말을 잘할 수 있는 거... 이것도 은사죠.
타고난 거란 말입니다.
그런 거는 내가 잘해서 개발했다기보다는, 그냥 은혜로 주신 거예요. 근데 그게 어때요?
사람들에게 보여질 때는 잘하는 것으로 드러나죠.
예를 들어 삼손에게는 힘이 은사였습니다.
본인이 나약했는데, 보디빌딩 해가지고 막 힘이 생긴 게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나실 인으로 하나님이 힘을 주신 거예요. 이건 기프트, 은사입니다.
그런데 힘은 사람 앞에 드러나죠.
그러니까 본인이 매우 영적인 존재인 줄로 착각을 해요.
내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것이 은사인데, 성령의 열매는 아닙니다.
여러분 제가 설교할 때, 말을 잘하는 것하고
제가 인격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다르다는 얘기예요.
오늘도 어느 권사님이 제 방에 와서 ‘목사님, 너무 고맙습니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만큼만 살면.. 제 원이 없겠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것만큼만 살면.. 원이 없겠어요.
저는 너무 잘 알아요.
그냥 하나님은 저를 쓰시는 겁니다. 일주일 동안 제 삶이 어떠함과 상관없이
제 은사를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진리를 전하도록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늘 문제가 되죠.
목사가 헛짓거리 하고 다니는데, 설교단에 서면 설교 말씀이 너무 좋아요. 그럴 수도 있어요.
(지금 삼손 얘기를 하는 거예요. 헛짓거리 하고 다니는데도 힘이 너무 세요. 다 이겨요.)
그게 왜 그럴까요? 그건 기프트예요. 하나님 쓰시는 거예요. 은사예요.
그게 인격은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은사를 통해서
끊임 없이, 신앙 인격을 성장시켜야 돼요. 성령의 열매를 향하여, 끊임없이 그 쪽으로 가야죠.
우리는 자꾸 ‘단발성 은혜’를 너무 좋아해요.
이런 거를 너무 좋아하니까, 인격적 열매를 맺기 위한 점진적인 성장에 대해 관심을 안 가져요.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마치 나의 거룩함이나 영적인 능력인 것처럼
오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영적인 성품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은사는 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모하면 돼요.
근데 사모한다고 다 주시는 것도 아니고,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긴 주시지만
하나님이 주고 싶은 사람한테 주는 게 기프트, 선물입니다.
그러나 성품은, 열매는 우리가 애써 가꿔야 돼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하고, 더 사랑하려고 하고, 더 겸손하려고 하고,
더 온유하려고 하고, 더 충성하려고 하고, 더 오래 참으려고 하고,
그렇게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애써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열매 맺는 일은 고생스러우니까 안 하려고 하잖아요.
씨 뿌리자마자 열매가 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반년 이상 기다려야 되거든요. 이건 싫고,
뭐는 좋아해요? 아, 여기 앉아서 기도해서 반짝 깨달아지는 거.. 이건 너무 좋아해요.
왜요? 금방 끝나니까요.
그리고 마음에 감동도 있고, 뭔가 해소되는 것도 같고, 느낌적으로 좋고... 이런 거예요.
그러다가 삼손 꼴납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보면서 너무 이상한 인간들이죠.
금요기도회 가고, 수요예배 가서 성경은 열심히 배우고, 교회는 막 가는데,
삶에 점진적 성장이 없으니,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여지는 것은,
기도하는 시간이 아니잖아요. 기도한 다음이잖아요. 이게 사람들 눈에 보입니다.
삼손이 그랬습니다. 성품으로 내면의 순종으로 빚어지지 않았는데
외적으로 힘이라는 은사가 나타나니까
결국은 다듬어지지 않은 은사와 힘은, 곧 다른 사람을 파괴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거예요.
교회 공동체 안에, 여러분의 삶 안에, 여러분도 경험하고 피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늘 성도들 괴롭히는 게 뭡니까?
서로를 하나님의 은사 가지고 자꾸 괴롭히는 거예요.
교회 안에서 사역의 크기나 재능이.. 내 영혼의 깊이로 착각하는 비극이 없기를 바랍니다.
▲제가 한 주간 좀 살아갈 때 필요한 지침을 드리려고 합니다.
1) 우린 결국 예수 따라가는 사람이에요. 그저 삼손처럼 되지 말자 이렇게 해서는 안 되고,
예수님 따라가는 어린 양을 따라가는 삶이 돼야 되는데,
오늘 말씀에 근거해서 한 주 동안 우리의 입술을 좀 바꾸셔야 돼요.
내 능력 과시하고, 내가 해냈고, 내 성과 운운하지 말고,
자녀 키울 때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내 성과와 나를 과시하는 언어 말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안 됩니다.'
이 실타래 엉켜진 내 인생에도 하나님 틈을 내주시고 '하나님의 은혜 없으면 저 망합니다'
라고 고백하셔야 돼요.
2) 또 두 번째, 내 시선을 바꾸셔야 됩니다.
자꾸 조명 효과, 쇼윈도우 효과에 현혹되지 마시고, 늘 좀 눈을 감아보시고요.
'하나님, 이게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은 것입니까?' 라고 묻는 습관이 내게 필요합니다.
3) 또 내면에서 은사, 나에게 주신 것은 감사하시면 되고요. 성품은 애쓰시면 됩니다.
이 두 가지를 착각해서 쉬운 거에요. 제가 이런 얘기하면 은사자들은 엄청 싫어하면서
'아 나도 열심히 기도했고, 헌신했더니, 하나님이 은사 주신 거다'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건 은사가 아니죠.
그거는 내가 열심히 해서 받았는데, 그게 왜 선물입니까? 보상이지요.
은혜도 그렇고 은사도 그렇고 다 기프트예요. 내가 노력해서 얻은 거 아니에요. 공짜예요.
그러므로 그거 자랑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 기프트는 은사도 그렇고 다 기프트예요.
감사하고 성품은 노력하고... 그래서 여러분들을 향한 찬사나 칭찬을 받으면 받을수록
사자를 찢을 힘을 구하지 말고, 내 분노와 욕망을 다스릴 내면의 성령의 열매를 달라고
기도하셔야 돼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고요.
3) 또 하나는 뭡니까? 하나님 이게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은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하나님의 은사는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열매는 맺어 가겠습니다.
이 고백으로 한 주간 승리하는 주의 백성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딤나' 본래 단 지파에게 할당된 기업이었으나(수 19:34)
단 지파가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난 이후부터 블레셋에게 복속된 것 같다.
이곳은 현재의 딥네(Tibne)와 동일시되는 곳으로 소라 남서쪽 약 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내려가서' 이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딤나((timnath)는 해발 약 350m에 불과하나
삼손의 고향 소라(Zorah)는 해발 약 250m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손이 자기 고향 땅에서
딤나로 간 것은 자연히 '내려간' 것일 수밖에 없다.
2절의 '올라와서'란 말 역시 이러한 고도 의 차이를 반영한 표현으로 볼 수있다.
주2) ♣실패한 실험이, 오히려 대발명을 이루어냈다.
1928년 어느 날, 영국의 과학자 플레밍이 현미경으로 배양된 세균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이 병균을 배양해서, 그 병균을 죽이는 약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플레밍은, 당시 2차대전 동안에 전쟁이 심했고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유리창도 다 깨어진 조그만 연구실 등 매우 열악한 여건 속에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현미경으로 잔뜩 배양된 포도상 구균을 들여다보며 연구하다가
그만 무슨 일로 그 균을 그대로 둔 채로 밖으로 나가서 깜박 잊어버리고
하룻밤을 지나고 그 이튿날 연구실에 돌아왔다.
다시 현미경을 들여다보니, 그 포도상 구균이 잔뜩 있던 유리판 위에
못 보던 파란 곰팡이가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다.
‘아이고, 포도상 구균을 배양하려고 했는데 곰팡이가 와서 실패했구나!’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자세히 보니 포도상 구균이 다 죽어 있었다.
파란 곰팡이가 와서 포도상 구균을 다 잡아 먹어 버렸던 것이었다.
‘이 파란 곰팡이에게 어떤 저항력이 있어서 병균을 다 잡아 먹었구나!’
그는 여기서 페니실린 이라는 매우 중요한 항생제를 발견했다.
그럼 어떻게 갑자기 하루 밤 새 없었던 곰팡이가 실험실로 들어왔을까?
그래서 살펴보니까, 실험실의 유리창이 깨어졌기 때문에
그 포도상 구균이 묻어있던 유리판 위에 외부로부터 바람이 불어와서
바깥에서 곰팡이가 날아와 유리판에 붙어서, 그 균을 다 잡아 먹어 버렸다.
(평소에는 포도상 구균을 바깥에 오래 꺼내 놓지 않았는데,
하루 밤새 실험실에 방치해 둔 것이, 곰팡이에 오염되는 결과를 낳았는데
그 오염이 도리어 그 균을 박멸하는 약을 찾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플레밍은 탄성을 지르면서, 그는 그 파란 곰팡이를 계속 연구하고 배양해서
- 마침내 결핵을 유발하는 포도상 구균을 다 죽이는 페니실린을 만들었다.
페니실린이 만들어지자마자 영국의 수상 처칠이 폐렴에 걸렸다.
제2차 대전의 전쟁이 한참 격렬할 때 만약 처칠이 죽었으면
영국은 완전히 망할 처지였다.
그런데 처칠 수상이 폐렴에 걸려서 백약이 무용지물일 때
플레밍이 만든 이 페니실린을 주사해서
즉시로 포도상 구균인 폐렴균을 이기고 살아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칠이 플레밍을 만나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두 사람은 서로 가까운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야, 플레밍! 네가 이 열악한 사무실에서, 유리창도 깨진 곳에서
연구를 해서 페니실린을 만든 것을 보니,
좋은 연구실에서 좋은 시설로 연구했으면 더 위대한 발견을 했을 것인데…”
그러니까 플레밍은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아닐세, 내가 좋은 연구실에서 편안하게 있었더라면
이 페니실린을 못 만들었을 것일세.
왜냐하면 이 연구실에 유리창이 깨어졌기 때문에
다행히 곰팡이가 유리창을 통해서 날아 들어와서
내가 배양해 놓은 포도상 구균 위에 올라앉아서 포도상 구균을 다 죽였네.
그러므로 내가 잘나서 연구한 것이 아니라 유리창이 깨어졌기 때문일세!”
열악한 연구실에 유리창이 깨진 그 틈으로 곰팡이가 바람에 불어와서
포도상 구균을 다 죽여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페니실린이 발견되어서
그 이후로 수많은 사람이 폐렴이나 여러 가지 질병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이다.
우리도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그것에 불평하기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은 역경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만들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