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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은 바벨론에서

LNCK 2007. 3. 17. 11:19

www.youtube.com/watch?v=U0Tt_5S77Kk

◈하나님의 영광은 바벨론에서 나타난다         단1:1~7        07.03.11.스크랩, 녹취

 

 

다니엘,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 그 전쟁 포로의 극한 상황에서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다.

이와 같이 오늘도 고난의 극한 환경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계기가 된다...

 

 

◑다니엘서 서론

 

▲다니엘서 개요

다니엘서는 6가지 스토리와 4가지 꿈으로 구성된 예언서이자, 신학서이다.

역사적 배경으로는 바벨론, 메데, 페르시아(바사) 제국을 관통하며,

미래에 헬라(알렉산더)와 로마제국의 출현까지 예언하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까지 예언하고 있다.

 

다니엘서는 이방나라 바벨론에 포로가 된 한 십대소년 다니엘의 삶 가운데서

예언과 신학이 만나는 장소이다.

 

다니엘이 실재 인물이 아닌 신화, 우화라는 주장이 있지만,

예수님의 증언에 의하면, 실재하는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24:15

 

▲1차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 주전605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을 에워쌓다.  단1:3

그는 앞서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를 재기 불능으로 물리치고, 바벨론에

되돌아가는 길에 예루살렘을 거쳐 소위 ‘1차포로’로 다니엘 등을 잡아갔다.

 

이는 남유다 왕국이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집트와 손을 잡았으므로,

이집트가 망하면서 남유다도 함께 바벨론의 징계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부터 다니엘은 바사의 고레스왕 원년(주전 539년)까지 있었다. 단1:21

이것은 다니엘의 서두에서 일단 짚고 넘어가는 ‘전체적인 조명’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연대기

주전 605년, 갈그미스 전투(=1차포로) 때부터 

주전 539년, 고레스왕 원년까지

즉 최소 66년 이상의 다니엘의 행적을 담고 있다. 

(그러나 다니엘은 바사 왕 고레스 원년 이후에도 계속 왕궁에서 섬겼으니까

실제 다니엘의 바벨론 생활은 총 70년 전후로 예측한다.)

 

▲요셉처럼, 소년 때부터 절망을 경험한 다니엘

1차포로 때, 왕족과 귀족들, 그 중에 특히 소년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단1:4

이 때 다니엘과 친구들의 나이는, 약 16세 정도로 신학자들은 예측한다.

 

다니엘은 환관장 아스부나스 밑에서 교육받았는데,  1:3, 10

아마 환관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증거로 다니엘은 딸린 가족이 성경에는 없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왕의 후손들이 바벨론의 왕궁 환관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왕하20:18, 약 130년 전)

 

이들은 가장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이방 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다.

거기서 그들이 섬기는 사람은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느부갓네살 왕이었다.

더욱이 가족도 없이, 부모도 없이, 아무 피붙이도 없이

남은 평생을 이방 나라에서 환관으로 섬겨야만 했을 때,

그야말로 가장 미래가 창창할 나이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셈이었다.

 

포로로 끌려갈 때, 하염없는 눈물만 흘러내리는 절망적 심정이었을 것이다.

조국의 멸망과 함께 산산조각난 자기 청춘의 운명을 생각하면,

바벨론에서도 하루 종일 눈물이 자기 음식이 되는 비참한 처지였을 것이다.

그들이 무슨 노력을 하더라도, 자기들이 처한 상황을 되돌릴 가능성은 전무했다. 

 

베르디의 유명한 오페라 ‘나부꼬’가 있다. (느부갓네살 지칭)

그 오페라 중에 제일 유명한 노래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다.

너무 처절하고 비참한 심정을 잘 담고 있다.

시137편도, 바벨론 강가에서 우는 포로들의 애환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 극한 절망을 담고 있다.

 

▲다니엘의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

제 생각에는, 다니엘의 가장 큰 고통이 외로움이었을 것이라 본다.

16세쯤 끌려가서 약 70년 재직한 것으로 추정할 때, 늙어서 죽을 때까지

이방 나라에서 일평생 환관으로서 혼자 살았다.

 

거기에는 정기적으로 모이는 신앙공동체도 없었다.

가족도, 조국도 없었다. 우리가 위로로 삼는 신구약 성경도 그 때는 없었다.

그런 일평생 외로움의 처절한 상황에서

그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되는데...

 

 

◑1. 누구에게나 ‘바벨론’이 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에게도, 오늘날에도, 누구에게나 바벨론이 있다.

쫓겨난 장소, 외로움의 장소,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소,

자신이 의존할만한 것이 없어지는 장소, 자신의 힘이 거세되어지는 장소이다.

 

여러분,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다보면, 사람들에게 왕따가 될 수도 있다.

늘 소외당하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데, 거기가 바로 바벨론이다.

 

오늘날 캠퍼스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믿고, 다원주의를 배격하면

다원주의자들의 차가운 조롱과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남자들은 군대 생활할 때, 자신을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으면,

주변에서는 그를 바보처럼 여길 것이다.

직장에서도, 상사가 부정을 명령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잘 섬겼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병에 걸리기도 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병이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자기는 신앙을 지키려고 애쓰는데, 주변 환경은 너무 어려운 곳이,

하나님의 백성이 마치 포로로 잡혀서 고통당하는 현실이,

바로 바벨론이다.

 

▲신약에 나오는 바벨론

신약에 바벨론은, ‘성도들을 어렵게 하는 모든 은유적 장소’로 쓰이고 있다.

 

베드로는 당시 로마를 ‘바벨론’으로 묘사했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로마)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벧전5:13

 

요한계시록에도 ‘바벨론’이 자주 등장하는데,

성도들을 핍박하는 당시 세상권력인 로마를 은유적으로 지칭한다.

다른 표현으로 ‘음란과 더러움이 깃드는 세상’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바벨론이란,

*우리 믿음이 공격당하는 장소,

*복음에 반대가 있는 장소,

*우리 믿음이 용납되지 않는 장소,

*철저한 신앙의 서러움이 있는 장소를 뜻한다.

이 바벨론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존재한다.

 

 

◑2.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영광으로 나타나신다.

 

▲주께서 허락하셨다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만나주신다.

하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의 현장에 함께 해 주셨다.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단1:2

 

현실은 느부갓네살이 성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약탈해 간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주께서’ 그것을 허락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니엘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잡혀 갔지만,

하나님은 바벨론에서도 여전히 다니엘과 함께 해 주셨다.

 

▲마치 병 주시고 약 주신다?

왜 하나님은 성도에게 바벨론을 허락하실까?

막1장에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부는 음성으로, 성자는 물가에, 성령은 비둘기로서

삼위일체가 동시에 나타나시는 감격적인 상황이 있었다.

 

그런데 성령이 곧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고난). 급전직하의 상황이다.

그러나 광야로 몰아내신 후 천사들로 수종들게 하셨다(위로).

이것은 신비다.

바벨론에서도 우리를 수종드는(돕는) 천사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벨론이란 인생 풍랑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가정에서도 성도와 함께 계시고,

적대적인 학교, 일터에서도 성도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21세기의 바벨론에서도 함께 계시는 줄 확신한다.

 

▲에스겔도 바벨론에서 영광을 체험하다

주전 605년, 다니엘이 1차포로로 잡혀간 후 (느부갓네살1년, 렘25:1, 8)

8년 뒤 주전 597년에 2차포로 때, 에스겔이 잡혀간다.(렘24:1, 여호야긴 재위3개월)

그때부터 5년이 경과하여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이 소명 받는다. 겔1:1~2

그때 에스겔이 30세라고 하였으니 겔1:1, 그가 잡혀갈 때는 25세였다.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는데, 겔1:1

그발 강가, 즉 바벨론에 포로 생활 5년만이었다.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그 음성을 들을 때는

30세 가장 창창한 나이에, 타국에 포로라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였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는

-절망과 어두움의 때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원래 에스겔은 제사장 출신이었다. 겔1:3

유대 전통은 30세가 되면, 제사장 직무를 시작한다.

그는 25세에 포로로 끌려와서, 30세가 될 즈음, 하나님이 자기를 고국에 보내셔서

30세에 제사장 직무를 시작하게 하실까? 하는 개인적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게 아니었다.

‘너는 고국에 돌아가지 말고, 포로된 그 장소 바벨론에 계속 머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하셨다.

납작 엎드리는 처참한 상황에서... 비로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다.

가장 척박하고 피폐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숨 막힐 정도로 힘든 그 장소가,

숨 막힐 정도로 하늘의 신비를 맛보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장소는 ‘바벨론’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다.

모든 일이 쉽게 풀리고 탄탄대로로 나갈 때가 아니다.

주님의 영광을 그 때는 보기가 쉽지 않다.

 

절망적인 바벨론의 현장이야 말로,

주님의 영광을 뵙는 장소가 될 수 있다.(물론 도망가면 안 되겠지만)

 

▲그러므로 우리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지금 내게 처하게 하신 그 어려움의 장소가 - 능력 받는 장소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약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지금 형편보다 항상 더 나은 형편이 오기를 바란다.

‘내가 좀 더 좋은 부모 밑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좀 더 평탄한 가정에 태어나서 교육을 많이 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남처럼 좀 더 건강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좀 더 똑똑하게 태어나서 실력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예루살렘)에서, 더 좋은 여건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게 쉽지 않다.

 

이렇게 우리가 더 나은 환경을 바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 문은 바벨론에서 열린다!”

 

모세의 회막에 함께 했던 영광의 구름기둥(쉐키나의 영광)은

과거 수 백 년 동안 이스라엘 역사에 사라졌었다.

그런데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자기 시대에 그것을 체험하는 특권을 누렸다. 겔1:28

그 고통의 순간에 납작 엎드려 하늘을 바라볼 때였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처한 그 고통의 장소를 포기하지 마시라

내가 속한 환경이 더 나아지기만 기대하지 말고,

이 시간, 내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여전히 살아계신다. 단1:2↑

(하나님이 모두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는 뜻)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찬509), 주의 손 못 자국을 만지는 체험을 가져야 한다.

험한 시험 물속에서(찬463) 헤맬 때, 주의 품에 고이 품어주시는 체험해야 한다.

이 때 주님의 품을 느끼셔야 한다.

 

지금 어려운 현실에서 도망가지 말고, 이 장소가 하나님의 쉐키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임을 확신하셔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나?’ 생각할 것이다.

그 절망의 상황에서 아무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은 주관하신다. 주권적으로 다스리신다. 단1:2↑

 

주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

악하고 비양심적인 직장 상관 밑에서 일하게 될 때,

혹은 포로로 잡혀간 것 같은 상황에 처할 때,

인생의 감옥도 거룩한 장소로 변할 것이다.

암 같은 질병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통로가 될 것이다.

 

 

◑3. 바벨론에서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라

 

 

바벨론에서 포기하면 안 된다. 힘들다고 도망가도 안 된다.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사수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바벨론이란 환경 - 예루살렘과 달리 이방은,

어쩌면 신앙을 타협하기 매우 좋은 장소이다.

그러나 도리어 다니엘은, 거기서 신앙을 더욱 굳세게 지켰다.  

 

바벨론에서 그들은 창씨개명을 당했다.

예를 들면,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심판자) → 벨드사살(벨神이 나의 심판자다).

느부갓네살이 소년들의 이름은 바꾸었지만,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못 바꾸었다.

(중략)

 

▲마치는 말

우리는 왜 예루살렘에 악한 자들도 많았을 터인데,

하필이면 다니엘과 세친구처럼 신실한 자들이 포로로 잡혀갔는지

그 깊은 섭리를 다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신실한 성도들이 암에 걸리는 이유도 다 알지 못한다.

 

우리는 바벨론에 포로로 가기를 원치 않고, 그것을 기도로 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에게 바벨론에서 삶을 꾸려야 하는 환경도

주관하신다.

 

문제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저와 여러분이, 바벨론이란 극한 환경을 헤쳐 나갈 신앙적 힘이 과연 있느냐?

-이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며,

오히려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복된 장소가 되기 바란다.

 

예수님이 천국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도

마치 바벨론에 오신 것과 같다.

그러나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은, 이 바벨론 같은 세상에 오셔서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셨다.

우리도 그 본을 받아서, 이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시기 바란다.

 

물론 하늘이 열리고 초자연적인 비둘기의 영광, 변화산의 영광도 있었지만

그 분의 십자가, 그 분의 무덤도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07.03.11. 인터넷 설교 요약, 정리 *원제목 :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불행한 예술가 바하

 

바하는 일평생 불행한 예술가였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랬습니다. 

그는 열살도 되기 전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배고픈 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힘겨워서 동생들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장성한 뒤에도 불행은 계속됩니다. 

결혼한 지 13년만에 아내와 사별하고 재혼을 했습니다. 

그는 무려 20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 중의 열명이 10살 전에 죽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생을 살았습니까? 

그 남은 자녀 중에도 하나는 정신박약아입니다. 

 

이 예술가는 노후에도 비참했습니다. 

인생 말년에 시력을 잃었으며, 뇌출혈로 인하여 반신불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생을 통해서 역경을 뚫고 끊임없이 불후의 명작을 썼습니다. 

명곡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마다 그 첫머리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라고 쓰고

작품마다 마무리에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썼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하입니다. 

바하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하의 곡을 듣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 영광이 넘치는 바하를 알지만,

바하가 한평생 이렇게 모진 고생을 했다는 것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모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동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고난의 의미를 압니다. 

고난의 결과도 압니다. 

고난의 필요도 압니다.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압니다. 

 

고난 속에서 새롭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높은, 높은 곳으로 점점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고난을 어떤 의미로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내 영혼아, 꿇어 엎드리는 장소를 피하지 말라.  -조지 마티슨

 

과거의 위인들에게 가장 잊지 못할 풍요의 자리가 어디였던가 물어보라.

그들의 대답은 `내가 엎드렸던 차거운 바닥'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물어보라.

모리아 산의 번제단을 가리키리라.

 

요셉에게 물어보라.

차가운 감옥을 가리키리라.

 

다윗에게 물어보라.

그의 노래는 밤에 지어졌다고 할 것이다.

 

욥에게 물어보라.

하나님의 폭풍우 가운데서 응답하셨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에게 물어보라.

그는 풍랑 이는 바다에서 순종을 배웠다고 하리라.  

 

요한에게 물어보라.

그는 밧모 섬에 승리의 면류관을 던지리라.

 

바울에게 물어보라.

그는 자기의 눈을 멀게 한 빛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할 것이다.

 

나와 함께 가는 순례자들이여,

가는 길이 예상보다 고통스러운가?

 

만사형통, 승승장구의 경험을 할 줄 알았는데,

춥고 황량한 땅에 앉아 외롭고, 낙심되고, 상심했는가?

 

길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는가?

내 말을 믿으라.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당신 안에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당신 위에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을 감싸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당신 곁에 있다. 깨어나서 그것을 잡으라. (펀 글)